오늘의 묵상(0702)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 27: 1~6).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라~~~~~불교를 비롯해 힌두교 등의 동양종교는 구원이 인간 자신에게 달린 문제로 본다. 이는 소위 ‘아래로부터의 종교’들로 인간 스스로 극기하고, 선행을 베풀고, 도를 닦음으로써 구원에 이르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이 인간이 되신 소위 ‘위로부터의 종교’인 기독교는 초월적 존재인 신이 존재할 뿐 아니라 인간의 구원을 포함한 모든 일들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 하에 달려있음을 철저히 인정하는 것으로, 영혼은 물론 인생 전체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다윗은 지금까지 체험한 여호와의 구원 역사에 근거하여 자신이 비록 지금 당장은 대적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지만,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안전하며 결국에는 대적들을 무찌르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될 것에 대한 확신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선언하고 있다. 사실 위기가 눈앞에 닥친 다급한 상황에서 과거의 구원 사건을 회상하고 현재의 구원마저도 확신하며 담담한 심정으로 간구하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여 과거의 일은 금방 잊어버리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현재적 고난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여 두려워 떨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그러나 눈앞의 일이 아무리 크고 위태해 보일지라도 그 보다 몇 천배 더 큰 일이라도 능히 해결하실 수 있는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의 능력을 믿는 신앙이 있을 때 우리는 다윗과 같은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빛이요 생명의 능력이라고 고백한다.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의 보호자이시며 피난처가 되심을 의미한다. 실로 생명의 능력이신 여호와가 곁에 계시는 데 악인들이 생명을 위협할지라도 무엇이 두렵겠는가? 이처럼 어떠한 위협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믿음에 굳게 선 자를 가리켜 히브리서 기자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자'(히 11:38'이라고 한다. 누구를 의지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바뀌고 궁극적인 승리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슐라이에르마허는 믿음을 '절대의존의 감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내가 0%가 되고 하나님께서 100%가 되는 것, 즉 불완전한 인간은 완전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을 믿음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우리 자신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를 바라보지 않고 전적으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볼 때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을 수 있었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수 있었으며, 다니엘의 세 친구는 뜨거운 풀무불 속에도 뛰어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이 온전히 예배할 수 있고,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정, 교회에 어려움이 있을 때 자신의 지혜나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다윗과 같이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궁극적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통해 구원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우리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삶의 어려움이 극복되고 모든 일에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더욱 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기 위해 예배를 사모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말씀 속에서 위로와 기쁨을 얻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전적인 의지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