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종착지 지리산의 위용>
일시: 2012년 7월 28일 ~ 29일(無泊1日)
장소: 지리산 천왕봉(1915.5m)
서울 출발시간: 2012년 7월 28일 23시 32분
백무동 도착시간: 2012년 7월 28일 03시 35분
산행시작시간: 03시 54분
참샘도착: 05: 38
장터목산장 도착: 07: 26
천왕봉도착: 08: 31
장터목 도착: 09: 35
세석도착: 11: 32
백무동 주차장 도착: 15: 19
총 소요시간: 11시간 25분
산행지참물: 단팥빵 2개, 자유시간 미니바 2개, 지치 등 백초효소(5:1 로 물과 희석) 120ml, 생수 1L 1병
산행코스: 백무동 - 하동바위 - 참샘 - 망바위(일출) - 장터목1658) - 제석봉(1806) - 천왕봉(1915.5) - 장터목 -
연하봉(1730) - 삼신봉 - 촛대봉(1703.7) - 세석(1560) - 백무동
산행총거리: 주차장 - 백무동 매표소(200m) - 장터목산장(6km) - 천왕봉(1.7km) - 장터목(1,7km) - 세석(3.4km) -
백무동 주차장(7.2km) 총 20.2km
인간은 누구나 현재의 자기 체력이 아직까지 얼마나 유지될 수 있는 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가끔씩은 인위적 한계상황을 설정한 다음, 그 인위적 한계상황을 체험한 후 검정 받아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고독한 자기와의 힘든 싸움을 시작해서 그 싸움에서 이기기를 원한다. 학생들의 해병대 병영체험이나 山客들의 에베레스트 혹은 안나푸르나 등반시도도 모두 이같은 한계상황체험의 一環이리라.
地異 天王峰!
萬神을 받드는 巫堂(萬神)들은 마고할미가 살고 있다는 만신들의 고향을, 불교를 믿는 신도들은 法界를, 선도 수련자들은 걸림없는 대자유를 만끽하기 위하여 산이라기 보다는 산맥에 가까운 남한 땅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에 올라 가 철야정진기도 하기를 소원으로 삼아 평생에 꼭 한 번 가보기를 원하고, 山客들은 백두대간의 종착지인 이곳을 올라 보기를 보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이 구간은 우리민족의 靈山인 白頭山에서 시작하여 1大幹 1正幹 13正脈 16江水로 韓半島를 이루면서 雄雄雌雌하게 흘러 가는 한반도의 諸山脈 中에서 아직까지 未收復으로 비록 우리땅이지만 가볼 수 없는 북한 땅의 제산맥을 제하고는 남한 땅에서 제일 남쪽에 위치한 대간의 종착지일 뿐만 아니라 남한땅에서 가장 웅휘하면서도 아름답고 헌걸찬 山嶽美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7월 28일 토요일
11시 32분에 출발하는 심야버스에 몸을 싣는다.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와 텔레비젼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어 눈을 감은체 쪼그리고 앉아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면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다가 1시경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 안내자가 " 지금 시간 2시인데, 금산휴게소에 도착했으니 모두들 내려서 용무을 보시고 2시 30분까지 오시면 버스는 2시 40분에 출발하겠다. 여름철이라서 물이 많이 소요되기에 나는 2L짜리 두 병을 가지고 가는데, 물이 필요한 분들은 이곳에서 물을 사가라"고 하면서 하차를 시킨다.
7월 29일 일요일
오전 2시 20분경 모든 사람들이 볼 일들을 보고선 버스에 올랐다. 출발할려면 아직까지 20분이 남았기에 모두들 차에 올라 타고선 두 눈만 멀뚱거리면서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기에 내가 먼저 제안했다. " 백무동에서 천왕봉 오르는 길은 너무 급경사라, 이같은 급경사 길은 어두울 때 모르고 보지않고 오르면 힘이 덜드니 지금 출발해서 오르자. 그래야만 시간상 일출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했더니만, 30대의 젊은 산행대장이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크게 문제되지 않으니 그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고 우기면서 출발하지를 않는다.
오전 3시 35분 萬神들의 本鄕이라는 百巫洞(註1)에 도착하니 상가들의 안내판 불빛만이 우리들을 반긴다.
*註1, 백무동: 일백百은 본디 순수 우리말 '온'이다. 우리말 온은 '온갖', '온무리', '온백성'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百巫洞하면 한 반도의 온갖 무당들의 태생적 본향이자 집합소라는 뜻으로, 옛부터 이곳에는 전국 무당들이 신내림굿이나 혹은 신받기굿을 하기 위해서 전국에서 모여 들었고, 또 해마다 정초에는 해맞이 굿을 하기 위해서 모여들었던 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전국 무당들의 본향이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百武洞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아마도 이곳주민들의 청원에 의한 지명변경이 아난가 추측된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무당드르이 본향으로 남아서 지금도 해마다 정초에는 많은 무당들이 알게 모르게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산이라기 보다는 산맥이라 불러야 할 Mt.Girl>
화산 폭발시 굴러내린 너들돌로 깐 판석길이라서 밤이슬을 머금은 관계로 길이 다소 미끄럽다. 칠흑같이 어두운데 미끄러운 길을 앞사람들이 비추는 헤드 랜턴 불빛을 따라서 앞 사람 발 밑만 보고 올라 간다. 백무동 계곡의 암반수가 열기를 았아간 탓에 공기가 차고 시원하였지만, 거의 60 ~ 70도의 급경사길인 이 길을 조금 오르니 숨이 찬다. 앞 사람을 제치고, 또 앞사람을 제치고 하여 나아 갔더니 어느새 내 앞에는 사람 하나 없는 맨 선두가 되었다. 인간의 냄새가 싫어서 급히 나아 갔기에 이제는 냄새를 맡지 않아서 좋기는 한데 갑자기 눈 앞이 보이지를 않는다. 왜냐 하면 지금까지 앞 사람의 헤드 랜턴 불빛에 의지해 오다가 갑자기 그 불빛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준비해간 손전등을 비추면서 올라 갔다. 어디 쯤 올랐는지 모르겠지만, 인적하나 없이 사위는 고요한데 칠흑같은 어둠 탓으로 보이고 들리는 것이라고는 발밑에 밟히는 돌과 그 돌을 밟는 내 발자욱 소리 및 漆黑같은 어둠 속에서 고히 잠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름들이 거목들이 뿜어내는 소리없는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조금 가자 이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밝음도 없고 어둠도 없다. 그렇게 시원하게 들리던 계곡물 소리도 없다. 바로 그 瞬間 어디선가 나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 어차피 이 巨山 속의 지금 이 자리에서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거대한 어둠과 이 끝이 없는 거대한 어둠 속에 잠자고 있는 巨木들과 발에 밟히는 돌무더기들과 나 하나 뿐인데 굳이 이 조그마한 손전등 불빛에 의지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냥 손전등없이 이 어둠을 즐기면서 가자"라고.
< Great Mt. Giri>
8만4천여 字의 방대한 佛經을 줄이고 줄여 Summarizing인 한 것이 金剛經이고, 이 금강경의 엑기스를 뽑아서 이백 수십자로 Summarizing한 것이 바로 반야심경인데, 이 般若心經에 이런 말이 있다.
" 心無가(絲 + 圭)碍 無가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이라고.
그렇다. 存在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오직 나만이 존재하니 이내 어둠과 친숙해진다. 그러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보이면서 눈 앞이 환하게 밝아지고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神이 나서 앞만 보고 그 길을 계속 따라 간다. 이제는 그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두려움도 모두다 마음의 작난이고 生死도 一如이리라. 그 순간 마음이 너무나 편안해졌다.
千山鳥飛絶 하고
萬徑人終滅 이라
孤踏山行客 이
獨行道無道 라.
<지리 여명>
얼마나 올랐을까? 갑자기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깊은 산사의 새벽을 여는 道場析 소리 마냥 청아하게 들린다. 떨어지는 물소리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瀑布인것 같지만 칠흑같은 어둠이 폭포의 아름다운 전경을 꼭꼭 숨긴체 보여 주지를 않는다. 하늘가를 올려다 보니 산허리로 淸雅한 眞靑과 회백색이 혼합된 희미한 山氣가 피어오르면서 여명이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서 나타나는 샘물은 아주 달고 맛 있어서 목마른 산객의 목을 적셔주기엔 안성 마춤이다. 헤드랜턴을 켜고 주위를 살펴보니 바로 참샘이고 그 위가 산허리 7부 능선쯤 되어 보인다. 핸드폰을 켜보니 5시 38분이다. 이제 일출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부지런히 오르는데, 7부 능선 쯤 오르자 여명이 나를 깨운다. 사위가 훤하게 밝아오면서 이름 모를 새소리가 마치 천국인양 나에게 다가와 마중을 나온다.
雲海. 구름의 바다가 바로 발 밑에 있다. 자칫 한 발만 잘못 내디딘다면 저 아래 雲海로 즉 구름바다로 航海를 시작해서 이름모를 미지의 항구를 항하여 이내 사라지리라.
장관이다.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발 아래는 이름 모를 奇花妖草가 아침 여명을 받아서 눈을 비비면서 꺠어나고 있고, 때 늦은 화초들은 高山의 여름을 맞이하여 꼭꼭 숨겨둔 연분홍 속살을 살짝이 내비치면서 군락을 이루어 화답을 하고 있다. 또한 그 아래로 구름의 바다가 짙고 흰 뭉게구름을 뭉게 뭉게 피어올리면서 자기의 영역을 급속스럽게 넓혀오고 있었다.
<망바위에서 본 일출>
그 옛 날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함양군 백무동 사람들이 만나서 물물교환을 이루었다는 장터목에서 일출을 볼려고 했으나 백무동에 너무 늦게 도착한 나머지 천왕봉 8부 능선 상에 있는 천왕봉으로 行龍해오는 백두대간룡이 가장 잘 보인다는 망바위에 오르자 새빨간 속살을 드러내면서 오늘의 희망찬 태양이 떴다. 아뿔싸, 내가 염려한 일이 그만 발생했구나. 금산 休憩所에서 젊은 가이드 녀석이 내 말을 듣지 않고 쓸데없는 시간을 허비한 탓에 그만 日出을 보지 못하고 이글거리면서 붉게 타오르는 希望만 보게 되는구나. 장터목 옆 연하봉에서 일출을 보고자 그렇게 숨차게 올라왔지만은 종국에는 못보는구나. 하지만, 덕분에 지평선 위로 붉게 솟구치는 天王峰(1915.5m)의 완전한 해돋이 사진을 찍지 못하고 천왕봉의 南東出脈인 써리봉 위로 떠오른 일출 사진만 찍고 말았다. 그래도 3대가 積善해야만 볼 수 있다는 지리 천왕봉의 맑게 갠 아침 햇살을 볼 수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라고 자위하면서 장터목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터목 휴게소에 도착하니 人山人海다. 무얼 그리 많이 먹겠다고들 그 높은 산 봉우리에서 찌게를 끓이면서 까지 아침 밥을 해먹느라고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잠시 코를 막고 잰 발걸음으로 제석봉(1806m)으로 옮겨 갔다.
천왕봉은 어느지방 산악회에 점령된지 오래고 또 이들은 떼거리로 와서 증명사진을 찍는다고들 천왕봉표시석을 잡고 난리 부르스를 친다.
떠들고, 소리치고, 이름부르고, 밀치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빤히 쳐다보다가 한마디 할뻔했지만, 이 아침에 오른 것이 가상해서 그냥 내려왔다. 정녕 이들이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묻고 싶었지만 어쩌라.....
지금까지 지리산 종주와 횡단을 여러차례했지만, 그 때마다 이 철없는 산객들로 인하여 눈쌀이 찌푸려진다. 제발 산에 올랐으면 산을 좀 닮아라, 산을 오염시키지들 말고. 이 철부지들아!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백두대간의 종착지 천왕봉(1915.5m)>
장터목대피소 바닥에 큰大字로 누워자는 놈, 라면 끓여 쳐먹는 놈, 찌게 끓여 쳐먹는 놈, 떠드는 놈 등등이 꼴보기 싫여서 대피소를 우회하여 연하봉(1730m)으로 갔다.
촛대봉을 지나니 저 만큼에서 세석평전이 보이는데 그 높은 곳에도 늪지가 있다. 새로운 발견이다. 마치 펀치볼을 바라보고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대암산 용늪처럼 세석대피소를 바라보고 습지가 형성되어 있고, 그 옆에는 자연생태계의 식생천이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자연학습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고산지대 山林들의 식생천이현상을 한 눈에 살펴 볼 수가 있다.
<자연의 신비 세석평전의 늪>
고산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는지라 그렇게 화창하게 맑다가도 어느새 운무가 서리면서 비구름이 세석산장을 덮치면서 올라온다. 참으로 자연의 장관이 아닐 수가 없겠다.
<운무에 가려지고 있는 세석산장>
세석에서 한신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의 길이다. 바로 옆 추성리의 七仙이나 그 옆의 뱀사골 계곡 등 지리산 계곡이 모두다 그렇듯이 이곳도 급경사에 지루한 7km의 계곡길이다. 정신없이 달려 내려가는데, 저 멀리 다섯잎이 반짝인다. "이게 웬횡재!"하고설랑 다가가니 완전군락지다. 자세히 볼려고 허리를 굽히니 다섯잎은 다섯잎인데 풀이 아닌 나무다.
그래도 이 높은 곳에서 다섯잎을 다 보다니! 어디 이뿐인가 이제 막 익어가는 접골목 열매를 무척이나 많이 봤으니 이쯤이면 행운이라고 할만하다.
한신계곡이라는 이름이 있게 만든 한신폭포는 거대한 암벽 위를 타고 흐른다. 잠시 땀을 식히고.... 아름다운 한신계곡은 너무나 깊고 아름답다. 특히 옥빛 비취색 물색을 자랑하는 오련폭포는 보는 이들의 가슴뿐만 아니라 눈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잉크를 뿌린듯한 碧玉빛 물색을 자랑하는 오련폭포는 너무나 아름답다>
이어서 나타나는 가내소!
이곳에서 30년을 수도한 신선을 꼬드겨 파계시켰다는 지리 천왕봉 山神인 마고할미의 딸의 전설을 간직한 이곳은 파게를 한 신선이 인간세로 돌아 가면서 "가네, 가네, 나는 돌아가네" 했다고 해서 가내소라 불리는데 그 깊이를 알 수없을만큼 깊어 보인다.
< 지리 한신계곡 가내소>
1. 神仙의 氣運이 서린 方丈山 !
지구의 지붕이라는 히말리아의 에베레스트에서 起峰한 一支脈이 東으로 동으로 뻗어와서 白頭를 솟구친다. 이 白頭에서 一大幹, 一正幹, 一十三正脈, 一十六江水가 雄雄雌雌하게 동북(東北)과 남(南)으로 뻗어 가면서 마치 대륙을 향해서 포효(咆哮)하는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韓半島)를 형성(形成)하니 이것이 바로 현재의 우리나라다.
이 白頭大幹이 수천 수만의 산봉우리들을 솟구치면서 굽이굽이 휘돌아 南으로 남으로 뻗어오면서 한반도의 脊椎를 만들고 출렁이는 남해바다가 멀리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그 남은 여력을 다해서 힘차게 솟구쳐 마무리를 하니 바로 방장산(方丈山) 또는 두류산(頭流山)이라고 불리우는 현재의 지리산(地異山)으로 높이가 1915.5m, 동서길이 50km, 남북의 길이 32km, 둘레 약 320km로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두번째로 높은 산이다.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산청군, 함양군, 하동군과 전라남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군 등의 3개도 5개군에 걸쳐 있는 장대한 산으로, 산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장대하여 산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산맥이라고 해야 어울린다.
<지리 천왕봉으로 굽이쳐 올라오는 백두대간룡의 힘찬 모습>
지금으로 부터 3000여 년 전 사분오렬(四分五裂)된 중국천하를 처음으로 통일하고 스스로 황제의 지위에 올라 중국역사상 첫 황제가 된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 영정(瀛政)이 사상 처음으로 통일한 통일중국의 통일제국을 반석위에 올려놓고자 장생불로(長生不老)를 꿈꾸면서 그 당시의 장생불로선단(長生不老仙丹)을 만드는 연단술사(煉丹術士)인 도사(道士) 서불(徐弗)로 하여금 장생불로선약(長生不老仙藥)을 제조하게 한다. 진시황(始皇帝)의 명을 받은 도사 서불은 장생불로 선약의 원료가 되는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기 위해서 동남동녀(童男童女) 삼천명(三千名)을 거느리고 불로초가 있다는 해뜨는 동방(東方)의 방장산(方丈山, 즉 地異山 : 이 지명을 잘 보시라. 땅이 특이하게 다르다고 해서 다를異字를 쓰고 있지 않는가)으로 찾아왔던 바로 그 산(註2)이다.
* 註2 : 지금도 서불이 지나 갔다는 뜻인 '서불과차(徐弗過此)'라고 새긴 글씨가 소매물도의 등대바위섬 아래 동굴과 거제도와 한려수도의 바윗굴에는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서불은 동해 바다 어딘가에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을 찾아 왔는데, 옛 사람들은 삼신산이 영주, 방장, 봉래산이며, 지리산을 삼신산 중의 하나인 방장산이라 생각했다.
'지리'란 이름에 대해서 높다, 머리란 뜻의 고어에서 변형된 '두류'가 음이 변하여 '지리'가 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한자 뜻 그대로 '기이한 지혜', '세속을 초월한 신비로운 세계의 슬기'라고 풀이하는 이들도 있다. 둘 다 일리 있는 얘기로 아득한 옛날부터 지리산에는 숨어 사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세속을 떠난 은자들의 지혜가 지리산 곳곳에 진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예언서 '감결'은 지리산을 이렇게 평하고 있다.
"두류산에는 1만 문수보살이 항상 머문다. 그래서 해마다 풍년이 들고 백성들도 온화하다. 속세를 벗어나 깊숙히 숨어 살고자 하는 이들이 이 산을 찾으리라. 훌륭한 도인, 뺴어난 선비들이 무수히 들어와 도(道)를 논하리니 훌륭하도다. 참으로 훌륭하도다."
< 감결에서 1만 문수가 항상 머문다고 했던 지리산의 위용>
2. 어머니의 품 속같은 지리산과 만신(萬神)들의 고향 백무동(百巫洞)
지리산은 한반도를 만든 모든 氣가 응축(凝蓄)되어 형성된 산이기에 응당 그 만큼의 강한 힘을 비축하고 있는 이 산은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아우르고 품어 안는 마치 어머니 같은 산이다. 이같은 연유로 지리산을 감싸고 돌아 흘러가는 蟾津江, 엄천강, 경호강(鏡湖江), 남강(南江)은 그 품안에 조남명 등 수 많은 고준일사(高俊逸士)와 권진인(權眞人) 같은 기인도사(奇人道士) 및 이름없는 수 많은 민초(民草)들을 기르고 아우르면서 지금도 흘러 가고 있다. 이같은 연유로 고려왕조의 정당한 왕명을 받고도 요동정벌은 커녕 오히려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한반도 최초의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반역한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왕권을 찬탈(簒奪)한 고려의 반역자 이성계(李成桂)도 이 품안에 들어와서 하악당(下嶽堂, 註3)을 짖고 그 죄를 구했던 것이다.
* 註3, 三嶽堂: 군사 쿠데타로 고려 왕조를 뒤엎을 결심을 한 이성계는 민심을 얻고자 전국의 산신들로 부터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 받기 위하여 전국 방방 곳곳의 명산을 두루 찾아 다니면서 제(祭)를 올렸는데, 그 중 대표되는 세 곳에 산신각을 지었던 바, 즉 구월산에 상악당을, 계룡산에 중악당(지금의 신원사)을, 지리산에 하악당을 지었던 것이다. 이들 삼악당 중 현재 상악당과 하악당은 부셔져 없어지고 계룡산 신원사 내에 있는 중악당만 남아 있다.
이성계가 전국 방방 곳곳의 모든 산신들에게 도움을 달라고 기도를 할 떄 모든 산신들이 모두 응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지리산 산신에게 제를 올릴 때였다. 제를 마치고 제문(祭文)을 태우려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종이에 불이 붙지 않는 것이였다. 이를 본 이성계는 지리산 산신(山神)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에 분노한 이성계는 지리산을 불복산(不伏山), 반역산(反逆山)이라 부르면서 후손들에게 역적이 나오면 지리산 아래에 있는 전라도로 귀양보내도록 일렀다고 한다. 이 말 속에는 지리산의 웅혼한 기상이 압제자, 지배자를 거부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맑게 갠 날,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에 올라보면 누구라도 그 뜻을 실감하게 된다. 천왕봉 꼭대기에는 사방 수백 리에 펼쳐진 산과 들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충청, 전라, 경상도 삼남지방이 모두 발 아래 내려다 보이니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시야가 넓은 산은 백두산을 빼고는 다시 없을 것이다. 이렇듯 광대한 정기를 품은 산이 어찌 한낱 왕조나 만민 위에 군림하려는 지배자에게 머리를 굽히겠는가.
< 운무에 휩싸이는 지리 북릉>
감결의 예언처럼 지리산에는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이들이 많이 찾아들었다. 훌륭한 도인, 빼어난 선비 뿐만이 아니라 나라 잃은 백성들, 권세가의 탐학에 시달리던 백성들, 압제자에 항거하다 쫓겨온 의인(義人)들이 지리산에 안겨 새 삶을 꾸렸다. 일설에 의하면, 백제에 멸망당한 마한의 유민(遺民)들과 신라에 나라를 뺏긴 가야의 유민들, 조선조 때 혁명을 일으켰다 실패한 동학도들, 일제에 항거한 의병들 등이 모두 지리산으로 쫓겨 들어와 새로운 삶을 영위했다. 지금도 뱀사골 부근의 달궁마을에는 마한의 마지막 세력이 여기에 자리잡고 백제에 끝까지 저항했던 흔적들이, 또 달궁에서 남원으로 넘어가는 정령치고개에는 마한 사람들이 쌓았다는 성터가, 칠선계곡 곳곳에는 나라의 명맥을 잇고자 몸부림 쳤던 가야인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궁궐이 있었다는 국골, 곡식을 저장했던 두지터 등 여러지명이 가야 유민들의 애절한 역사를 말없이 전해준다.
지리산은 이처럼 쫓기는 백성들의 마지막 보금자리였다. 험악한 세상을 등지고 지리산에 묻힌 산사람들은 깊고 깊은 산 중에다 바깥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 즉 주인도 노예도 없고 빼았는 자도 빼았기고 통곡하는 이도 없는 아무도 헐벗거나 굶주리지 않으면서 모두들 한가족처럼 지내는 그런 별천지를 만들었고, 지리산은 어머니의 품 속처럼 지리산을 찾아드는 모든 이들을 품어 안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리산은 쫓기는 백성들과 함꼐 완성된 삶, 즉 이상향에 이르는 길을 찾는 수행자들 또한 종교를 불문하고 품어 안았다. 그래서 지리산에는 김수로왕의 일곱왕자가 성불했다는 칠불암을 비롯하여 법등을 지친 벽송사, 구산선문의 실상사, 승병의 본거지인 연곡사 등의 불교사찰을 비롯하여 이상향인 청학동의 유학신봉자들 및 구한말 신비로운 이적을 많이 보여준 정걸방 선생들을 비롯한 선도 수행자들까지를 모두 그 품 속에 품어 안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산은 그 강한 기운만큼이나 강(强)한 살기(殺氣)도 함께 내포하고 있기에 그 산자락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피를 뿌리면서 사라져 갔다. 산 자락의 모습이 마치 기치창검(旗幟槍劒)처럼 그 끝이 뽀쪽하여 창검과 창검같은 폭류(暴流)에 사상(死傷)을 당했으니 조선조 때 일어난 삼남의 민란(民亂)으로 인한 일제소탕전과 일제말의 보천교도 소탕전 및 6.25동란을 전후한 빨치산 소탕전과 지난 수십년 동안의 물난리로 인한 익사자들 및 무리한 등반으로 인한 낙상자들이 바로 이 산자락의 영향을 받고 사라져간 장본인들이다. 이 또한 '음(陰)이 있으면 양(陽)이 있기에 주고 받는 것이 제로'라는 음양과 제로섬법칙이 근본 원칙으로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인지라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3. 한 여름에도 추위를 느끼게 하는 한신계곡
깊고 넓은 계곡 또는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계곡이라는 뜻으로, 계곡의 물이 차고 험하며 굽이치는 곳이 많아 한산하다고 해서 부르던 이름이 한신이 되었다고도 하고, 옛날에 한신이라는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백무동에서 세석고원까지 여러 개의 폭포를 이루면서 10㎞에 걸쳐 흐르는 이 계곡은 백무동 위에서 세석까지 흐르는 본류 외에도 덕평봉 북쪽에서 발원하는 바른재골과 칠선봉 부근에서 내려오는 곧은재골, 장터목 방향에서 흐르는 한신지계곡 등 4갈래의 물줄기가 엄천으로 흘러 남강 상류를 이룬다. 본류는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의 협곡을 흘러 가네소폭포에서 한신지계곡과 합류한다. 지리산 계곡 가운데 폭포를 가장 많이 끼고 있으며, 지리산 등반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 아름다운 한신계곡 첫나들이 폭포>
계곡과 절벽 사이로 울창하게 우거진 숲을 2㎞ 정도 오르면 20여 개의 물줄기가 흐르는 첫나들이폭포(바람폭포)가 나오고, 다시 1㎞를 더 가면 폭포수와 넓은 반석, 울창한 수풀이 어우러져 계곡의 절정을 이루는 가네소폭포가 나온다. 15m 높이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며, 사철 변함없는 수량을 자랑하는 검푸른 소(沼)를 만들어 기우제 장소로도 유명하다. 가네소폭포 아래부터 본류까지 오층(오련)폭포와 한신폭포를 따라 세석으로 흐르고, 내림폭포를 따라 장터목으로 이어지는 한신지계곡이 흐른다. 가네소폭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폭포가 5층으로 이어지는 오층폭포 또는 오련폭포가 나오고, 다시 계곡을 건너 등반로를 따라가다 보면 계곡의 상징인 한신폭포가 나오는데, 여기서 1㎞를 더 가면 세석고원이다.
주변에 6.25 동란시 빨치산들의 야전병원이였던 조선의 한국 선종의 선맥을 잇게 만들었던 벽송사와 ·서암· 실상사· 뱀사골 등 유적지와 관광지가 있다.
<비취빛 물색을 자랑하는 한신계곡>
4. 변강쇠와 옹녀가 살았던 오도재
지리산 자락에는 숱한 전설과 일화가 산재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남녀간의 애정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물(大物)을 자랑했다는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는 많은 영화와 만화(고우영씨 등)의 소재가 되어서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곤 한다.
함양읍에서 칠선계곡으로 들어 갈려면 오도재를 넘어야만 한다. 마치 꽈배기를 꼬아놓은 것같은 구절양장의 이 길은 정상에서 보면 꼭 " S"字를 눕혀놓은 모습으로 마치 여러개의 꽈배기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 길을 오를려면 차도 헐떡이기를 반복하면서 올라 가야한다. 올라 가는 곳곳에 수 많은 장승들이 남녀의 성기모습을 하고 서 있다. 어찌보면 다소 코믹스럽고 또 어찌보면 좀 그렇고 그러한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 곳을 오는 또 다른 길인 장수의 봉화산 기슭에도 이같은 장승들이 즐비하게 서 있고, 여기에도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이 있다고 적어 놓았다.
변강쇠와 옹녀가 정착했던 곳은 지금의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휴천면의 경계인 오도재 부근이었다고 전해온다. 실제 지금도 함양군에는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된 벽송사 목장승 등이 남아 있을뿐만 아니라 여기 저기 곳곳에 장승들이 남아있어서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해발 773m인 오도재 정상 바로 아래에는 2007년 9월에 노고단에서 부터 천왕봉까지 지리산의 전능선이 마치 병풍처럼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지리산조망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이곳에 변강쇠와 옹녀를 주제로 다룬 테마공원이 완공돼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어린 자녀와 함께 가면 살짝 얼굴을 붉힐 수도 있지만 해학이 넘치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이곳에는 김종직, 정여창 등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비 15개와 장승 108개, 솟대 33개 등 다른 볼거리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하루는 옹녀가 남편 변강쇠를 보고 말했다.
“당신 성질 가지고 도망살이 하다가는 맞아죽기 알맞겠으니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팥밭이나 파서 먹고 땔나무나 베어 때면 노름도 못할 것이요, 강짜도 못할테니 산중으로 들어갑시다.”
그래서 변강쇠와 옹녀가 찾아간 곳이 지리산 골짜기. 하지만 변강쇠는 나무 베기가 귀찮아 장승을 뽑아 땔나무로 썼다가, 그만 팔도장승들의 노여움을 사 朝鮮八道장승들이 집합한 회합에서 저주를 사서 그만 죽고 말았다.
5. 함양군이 운영하는 휴천면 송전산촌생태마을휴양소
2박3일 정도 가족들과 함께 지리산 여기저기를 큰힘 들이지 않고 보고 즐기려는 관광객에게 경남 함양군 휴천면 송전산촌생태마을휴양소는 베이스캠프로 삼기에 제격이다.
송전마을은 31가구 60명이 사는 지리산 자락의 작은 마을이다. 주민 대부분이 70대 노인이다. 하지만 풍부한 천연자원과 불교·유교 문화재를 갖춰 지난 한해 동안에만 1200여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마을 앞을 흐르는 엄천강에는 형제간의 우애를 깨지 않기 위해 주웠던 황금덩어리를 다시 버렸다는 고려말 이억년 이조년 형제의 전설이 서려있다.
아직도 황금덩어리가 강바닥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낚시와 레프팅을 즐기고 있다. 덕택에 지난해 8월 함양군으로부터 산촌생태마을로 선정됐고, 지난 2월에는 산림청으로부터 우리나라 3대 산촌생태마을로 뽑혔다.
2007년 7월 문을 연 휴양소는 함양군 소유이지만, 송전산촌생태마을 운영매니저 김기완(65)씨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자치운영하고 있다. 휴양소는 4인실부터 12인실까지 객실을 갖추고 있으며, 6만~14만원하는 요금은 성수기에도 변함이 없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진짜 시골’을 맛보려는 관광객은 2만~3만원대의 민박도 이용할 수 있다. 수십명 단위의 단체 관광객은 마을회관을 통째로 빌릴 수도 있다.
식사를 직접 해결해도 되고, 휴양소에 딸린 식당을 이용할 수도 있다. 주민들이 이 마을에서 나는 산나물과 다슬기 등으로 직접 산채비빔밥, 정식 등을 만들어 한끼 5천원에 제공한다. 특미로 토종 흑돼지 바베큐를 맛볼 수도 있다. 1인분 7천원.
계절에 따라 짚불공예 배우기, 고추따기, 고사리 등 산나물 채취, 고로쇠수액과 벌꿀 채취, 도라지 캐기, 곶감 만들기, 밤과 호두 따기, 모내기 등 다양한 생태프로그램도 체험할 수 있다. 여름에는 짚불공예 배우기와 고추따기가 좋다. 짚불공예를 배우려면 1인당 5천원을 내야하며, 강사와 시간을 맞추기 위해 예약을 해야 한다. 모내기는 계절에 관계없이 언제라도 할 수 있다. 7월24~28일에 찾는 관광객은 함양산삼축제에 참가할 수 있다.
송전마을에 숙소를 정해두고 지리산을 둘러보는 것은 걸어가는 코스, 차를 타고가는 코스, 산책 코스, 불교 유적 코스, 역사체험 코스, 빨치산루트 등 맞춤형이 가능하다. 출발에 앞서 메니저 김씨에게 상세한 설명을 듣고 자신에게 맞는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버스로 갈 때는 함양읍에서 한신계곡 초입인 마천면 백무동까지 매시간 마다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동서울 터미널에서 백무동 가는 직행버스(매시간 운행)를 이용하면 된다. 백무동에는 토속음식과 막걸리 등을 파는 상점과 민박집들이 많이 있고, 일반 상품을 파는 가계들도 있다.
<별볼일 없는 글도 포장을 잘하니 그럴듯해 보이고 별거 아닌 상황버섯주도 괜찮은 큰 유리병을 만나니 작품이 된다 - 이게 바로 포장이 중요하다는 말씀인데.. 온갖것들이 다 그런것 같아서 씁쓸하다는...>
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장문의 글 즐감과 더불어 좋은 정보도 얻어 갑니다...^^
잘보고갑니다
좋은경치와 유서가 있는 픙경 잘보았씁니다...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좋은 구경하고 갑니다!! 더위에 안산하세요~~
대학때 일주했던 지리산 역시나 아름답네요
와 대단하신 작문 실력 감탄 그 자체입니다. 2년전 종주했던 모습이 새록새록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지난주에 산악회원들 이끌고 백무동계곡 다녀왔는데
좋은 글 잘 보고 배우고 갑니가.
감사해요.
즐감함 더위에 안산하세요.
지리산에 안겨본지도 벌써 여러해가 지났군요,,,
덕분에 감상에 젖어봅니다,,
한신계곡,세석,장터목그립습니다.
역시 지리산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