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가 : #휴나 ───────────────────────────────────
※ 세상의 중심에 서다 ※ 41
- 기억을 잃다
" 그게 왜 제 잘못이에요? 김 과장 때문이잖아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차라리 관두라고 하지
그래요? 나만 들들들, 볶더니만 지금 뭐하자는 거야! "
머리가 핑 하고 아파왔다. 지금 내 앞에서 미친 듯이 전화통화에 열중하고 있는 저 애는 정해현.
" 머리 안 아파? "
" 아파 ......... "
굉장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는 이 녀석은 강우현.
" 나갈까? "
" ....... 응. "
" 아씨, ......... 어라? 야!!! 너네 어딜 도망가!!!! "
나도 모르게 우현이의 손을 잡고 냅다 달리기 시작해서 건물 밖을 빠져나오고
피식피식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던 미소가 웃음으로 번져 버렸다.
" 푸... 푸하하하하. "
" 뭐가 그렇게 재밌는데? "
" 몰라 ..... 정해현 따라 나오겠다. 빨리 도망가자. "
나는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내 관점에서는.
.........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고 믿고 있는 내 머리로서는.
.
.
.
# 시내
" 굉장히 밝아진 것 같다. "
" 응? 뭐가? "
" 다 ....... 다. 치료 잘 된 거 같아. "
" 응. 응. 이제 잠도 잘 오는 걸. "
우현이의 손을 잡고 시내로 나서는 길. 기분이 좋았다. 방금 뛰쳐나온 곳은 병원.
퇴원하는 날이라서 해현이랑 우현이가 데리러 왔던 건데, 해현이는 와서 다른 사람이랑
통화나 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도망나온 거였다.
병원에 있는 내 짐 해현이가 버리고 오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 아 씨, 짐 걱정돼. "
" 다시 돌아갈까? "
" 그건 ...... 아니. "
" 역시. 오늘은 오빠가 쏜다. "
" 오빠? 웃기네. 나보다 세 달이나 늦게 태어난 게. "
" 너 내가 얼마나 바쁜 줄 알아? "
한가롭게 여유 부리는거,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 심정 생각 못하고 행복할 때 미친듯이 행복해 하는 거, 좋지 않은 짓 같다.
그거 ....
다른사람 마음 정말 파먹는 거 같다 .....
타박타박.
시내를 걷고 있을 무렵.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밴드 하나가 미친듯이 두드리고 노래를 하고 있는.
그리고 마침 노래를 끝낸.
" 와아아!!!!!!!!!!!!!!! "
" 졸라 멋있어!!!!!!! 최고야!!!!!!! "
우현이가 알 만하다는 듯이 그 쪽을 바라보았지만 다시 이내 제자리로 시선을 꽂았다.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 에이 뭐야, 노래 하는 거 좋아하면서.
" 앵콜. 앵콜. 앵콜. "
그 때였다. 가운데서 노래를 부르던 보컬과 내 눈이 마주친 건.
" .......... "
" ........... "
3초?
..... 아니 ..... 그보다 더 짧았을지도 몰라 .......
단번에 무대에서 뛰어내리는 남자였다. 그 바람에 여자아이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으로 울렸고
나는 짜증난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지만 그 남자가 내게 오고 있다는 걸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손을 잡고 있던 우현이의 손에 힘이
꽉 하고 들어갔다.
" 강우현 ...... ? "
" ........ 하아 ......... 하아. 치료는 다 한 거야? "
" ...... 네? "
우현이 머리는 갈색인데 이 사람 머리는 검정 색이네.
우현이는 장난스러운데 이 사람은 엄청 걱정스러운 말투네.
우현이는 이제 음악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사람은 노래를 잘 부르네.
........ 그리고
나는 우현이는 알지만 이 사람은 모르네 ........
" ...... 다 ........ 나았어? ..... 쉽게 낳는 거 아니라고 들었어. 지하철 사고 당한 사람들 증상같은거
찾아 봤는데, 계속 괴롭고 생각나고. ........ 그래도 넌 오래 치료했으니까. 괜찮아졌지? .... "
" ........ 어 ? "
" 왜 대답이 없어 ....... "
" 저기 실례지만 ....... "
" ......... "
" 누구 ..... 세요 ? "
나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까지도
그리고 내 옆에서 내 손을 꼭 잡고 있던 강우현까지도
....... 그리고 당연스럽게 내게 말걸던 내 앞의 그 사람까지도
모두가 침묵을 유지했다.
" ...... 정말 죄송한데요. ..... 제 상황도 다 알고계시는 거 같은데 누군지 좀 알려주실래요?
제가 지금 치료때문에 누구를 잊어버릴수도 있다고 했거든요 ............ "
" ....... 가자 윤하린 "
" ...... 어? .... 잠깐만 강우현 - "
" 빨리 와 "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잘 거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에게 내 상황까지
터놓고 말했다는 건 정말 궁금하고 그만큼 절실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우현이는 나를 급하다 싶을 정도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가기 싫었다.
" 왜이래 강우현!!!!! "
" 미안해요 "
" ........ 네? "
" ....... 닮은 사람이 있거든요. 보고 싶어서 ....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무례했던거, 이해해 줄래요? .... "
...... 아 .......
........ 그랬구나 .......
나도 모르게 두근거리길래
진짜로 날 알던 사람인줄 알았다.
대충 기억나니까. 의사가 말했던 거,
누군가를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거.
아니였나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왠지 이 사람한테는 그래 주어야 될 것 같았다.
아파 보였으니까.
" 괜찮아요. 노래 정말 잘 부르시네요. ..... 그럼 이만. 가자 우현아 "
" ......... "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침묵.
깨지길 바랬던 건 나만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들이 많은 광장을 빠져나오면서 왠지 빠져나오기 싫다, 라고 느꼈다.
빠져나가면서도 가슴속에 뭔가 휑하니 비어 버린다 싶어서 ......
" 내가 오늘 이쪽으로 잘못 데려왔다. 미안. "
" 니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근데 강우현. "
" ..... 어? "
갑자기 심각해진 내 목소리에 우현이가 주춤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 내가 잃어버린 건 ....... 뭐야? "
" ...... 무슨 말이야 "
갑자기 심각해져버린 분위기에 우현이가 당황했다는 듯 내뺐지만 .......
언제까지 모른 척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알고 싶었다. 내가 잃어버린 것. 그리고
찾고 싶었다.
" ....... 의사가 말했었잖아 ... 치료하면 ..... "
" 니가 잃어버린 건 니가 치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야. "
" ......... "
" 다시 기억하면 다시 힘들어지게 돼. 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
" ............. "
" ........ 그래도 좋아? "
.....
" ..... 아니 ........ "
후우. 라고 한숨을 쉬며 허공에 입김을 내뱉는 우현이의 모습이 그때 왜그렇게 답답해 보이던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 역시 답답함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주저앉아 버렸다.
.......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잊어버린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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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 #휴나 ───────────────────────────────────
※ 세상의 중심에 서다 ※
- 42. 익숙한 그 느낌에 젖어
뒤척.
" ...... 후우 "
뒤척.
" ..... 후. 후. 후우우우. "
뒤척.
" 야!!!!!!!!! "
버럭 소리지르는 해현이의 목소리에 내가 더 놀라 움찔 하며 옆으로 물러섰다.
간만에 같이 자자고 베개를 들고 온 나를 다정하게 맞아 주었지만, 잠을 들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이는 나를 보고는 해현이는 참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해현이가 화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결국 소리를 질러버린다.
" 너, 나랑 자자고 했으면 잠자코 자야지 뭘 뒤척거려! "
" ....... 아, 미안. "
" 필요 없고, 나가!!! "
" .... 뭐? 야, 뭘 또 그런 거 가지고 "
" 나 내일 회의 있어. 또 졸다 깨지기 싫단 말이다. 미안하지만 나가 주십쇼오 "
" .......... 너무해 "
" 너무해? 너무해? 누가 지금 너무한지 하나하나 따져 볼래? "
" 나갈게!! 알았어 ..... 쳇 "
어느 샌가 해현이에게 무척이나 약해진 나의 모습. 잔뜩 웅크리고는 베개를 들고 무턱대고 해현이의
방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내 방에는 들어가기 싫었고 잠이 이미 깨 버린 상태라
더 잠들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난 화장실 불을 켜고는 씻기 위해 발을 옮겼다.
빨리 씻고 그림 그리러 가야지.
.
.
.
병원에서 치료를 받느라 오랫동안 손을 쓰지 않아서 손이 굳은 거라고 우현이가 말해 준 적이 있다.
당연하게 여겼고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지금은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손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예전처럼 속도가 나질 않았고 난 그림 그리는 데 엄청난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학교에서 병원에서 치료 받는 것을 핑계로 강의를 빠진 지도 몇 달째. 그동안 난 수업이 아닌 진짜
내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들을 자유롭게 그릴 수 있었다. 그게 훨씬 좋았다.
' 야, 넌 뭐 할꺼야? '
해현이가 무턱대로 물은 적이 있었다. 해현이는 예고에 왔지만 결코 예술 쪽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었다. 예고에 온 대다수의 아이들이 꿈을 갖고 오지만 그 중 대부분은 현실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꿈을 모두 조금씩 포기한다. 해현이도 그들 중의 일부였다.
' 난 유일하게 할 줄 아는게 그림 조금 그리는 거라서 예고 온 거고, ..... 비전 없잖아 솔직히.
무턱대고 대학까지 가 버린 너 보고 조금 말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넌 너무 확고했으니까.
그럼 이제 뭐 할건데? 그냥 주구장창 그림만 그리면서 입에 풀칠 할 수는 없잖아. '
' ..... 강우현이 먹여 살려 주겠지 뭐 '
' 에? 그게 끝? '
' 그림만 그리면 되지 뭐. '
캔버스와 잡다한 재료들을 들고 낑낑대며 요즘 그림을 그리고 있는 옥상으로 향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왠지 건물을 보는 순간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머릿 속에
하나의 영상이 그려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건물을 선택했다.
건물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옥상은 항상 개방되어 있었다.
삐그덕.
한참을 힘들게 계단을 올라 문을 열었을 때였다.
평소와는 다른 광경이었다. 누군가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당황하며 잠시 몸을 움츠렸지만 그쪽에서 이미 문 열리는 소리에 나를 바라본 뒤였다.
" ....... 어? "
그 사람이었다. 어제 그 사람. 나를 보고 익숙하게 '하린이' 라고 불러 주었던 사람.
조금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좋게 넘어갔고 그 뒤로 조금 마음 쓰이기도 했지만 우현이 때문에,
그리고 나를 위해 빨리 잊기로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여기서 마주치다니.
끼이익. 용기를 내어 문을 조금 더 열었다.
" 안녕하세요 "
" .......... 아 ..... 여긴 어떻게 ...... "
" 생각나서 올라와 봤어요. 아 ...... 주세요. 들어드릴 게요. "
내게 다가와 너무도 익숙하게 내 짐들을 손에서 가져가는 사람. 왠지 모를 머리에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그 사람에게 짐을 맡기고 따라 옥상 안으로 들어섰다.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아 ........
오히려 친해지고 싶은 기분 마저 드는 걸.
" 그림 ..... 그리세요? "
" 아, 네. "
" ..... 그렇구나. 잘됐네요. "
" 네? "
" .... 아니에요. 근데 이 옥상엔 어떻게 오시게 된 거에요? "
" .......... 익숙해서요. "
남자가 빤히 보는 게 느껴져서 나름대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이 건물이 익숙해서 골랐어요. "
" ....... 아 ......... "
" 이번에 전국 대회가 있거든요. 꼭 상 타고 싶어서. ..... 그런데 그냥 끌리더라구요. "
" ................. "
" 어제 그 일은 ...... "
" 엄청 자주 만나는 것 같아요, 우리. 세 번 우연이면 인연이라는데. "
조금은 씁쓸한 듯 말하며 남자가 난간에 기댔다. 나는 대답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림 그리는 거, 포기하지 마세요. "
" ......... 포기 안해요. 제 전부인걸요. "
" 다행이네요. .....진짜 ........ 진짜 닮았어요. 그 사람이랑. "
" ...... 어제 물어봤던 그 사람이요? "
아까부터 사실 계속 물어보고 싶었는데, 먼저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약간의 기대를 해 보기도 했다. 저 사람이 말하는 사람이 정말 나는 아니었을까, 하고.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날 모르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저 사람이 찾는 여자는 '다른 사람' 인 거였다.
" ...... 내 이름 궁금하지 않아요? "
" ...... 아, 네. 조금요. "
" 섭섭하네 ..... 그래도 밴드 쪽에서는 좀 알아주는데. "
" .... 밴드 쪽이면 잘 아는데 .... 저도 노래 좋아하거든요. 근데 ..... "
'아뿔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현이는 이제 더이상 내 앞에서 노래를 흥얼거리지도 않는데. 그럼 뭐지? ...
나도 모르게 왜 이 말이 튀어나와버린 거냐구.
" 아니에요. 아무튼, 이름이 뭐에요? "
" ........ 한 유준 ...... "
" ...... 이름, 멋지네요. "
" ................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
뭘까. 저 사람 왜이렇게 쓸쓸해 보이지. ... ?
난간에서 내려오는 남자였다. 정말 우울해 보였다. 뭐라고 더이상 말 할수도 없을 만큼.
" 내일 오면, 하린씨 또 만날 수 있는 거에요? "
" (끄덕) "
" ...... 고마웠어요, 오늘. "
뭔가 엄청 실망한 말투로 옥상을 벗어나는 남자였다.
그리고 옥상 문 뒤로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 이름 듣고도 아무 반응 없는 거면 ...... 진짜 잊어버린 거지, 윤하린? 근데 나 왜 자꾸 기대하냐.
왜 자꾸 기대하게 해 ...... "
남자가 사라진 뒤를 바라보다가 다시 붓을 잡았을 때였다.
..... 내 이름이 윤하린인거 어떻게 아는 거지 ..... ?
우현이가 나 부를때, 그때 스쳐 들었던 거겠지 ..........
쓸데없는 자기 합리화로 난 애써 기억을 잊으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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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중심에 서다 ※ 43
- 니가 아닌 너에게
그 후로 몇 일동안, 약 이 주 정도 계속되었다. 어느 건물 옥상에서 나와 한유준이라는 사람이
만난 건.
익숙치 않아서 어색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항상 그 사람 곁에서 그림을 그렸고
그 사람은 익숙하다는 듯이 귀에 무언가를 꽂고 서서 바람을 쐬거나 노래를 불렀다.
" 저기요 "
" ...... 이름 있잖아요. 내 이름이 '저기' 에요? "
" 아, 한유준씨! "
" .... 왜요? "
" 여기, 왜 매일 오는 거에요? "
몇일 동안 마음에 담아 두고 있던 말을 결국 내뱉고 말았다. 나를 보러 오는 걸까, 라는
착각을 하게끔 그 날 이후로 매일 찾아오니까.
그러나 그 사람은 피식, 그냥 웃어버렸다. 별 뜻 없다는 듯이. 내가 괜한 기대한 것 처럼 만들어 버린다.
" 이 건물, 저한테 특별한 의미가 있거든요. "
" 아.... 뭔데요? "
" 좋아하는 여자를 여기서 맨 처음 만났거든요. "
' 신경 끄고 가 '
' 너 뛰어내리면 나도 뛰어내릴건데? '
' 뛰어내리면 너 죽어- '
' 너는 안 죽는다는 식으로 얘기하네? '
스르르륵.
낯익은 영상과 함께 무언가가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방금 그건 뭐였을까, 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그 사람이 다시 말을 이었다.
" 이 건물에 연습실이 있어요 "
" ..... 연습실? 아, 노래 하신다고 했죠 .. "
" 일부러 여기로 골랐어요. 생각나면 자주 올라와보고 싶어서. "
뜻깊은 장소구나, 이 사람에게는.
" 가수 ...... 안 할거에요? 노래하는 사람들 꿈은 대부분 다 가수던데 ... "
" 아. "
피식 또다시 웃었다.
저 사람, 혼자 굉장히 잘 웃는다. 세상 다 산 사람같이.
" 약속한 사람이 있거든요. 같이 성공하기로. "
" ...... 설마 기다리는 거에요? "
" 그렇다고 볼 수 있죠. "
" 언제까지 기다릴 순 없잖아요. 그렇다고 이렇게 머무르는 모습 상대방도 원하지 않을 거에요.
성공해서 더 멋진 모습 보여주는게 ....... 좋지 않겠어요? "
참 오랜만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의견을 말한다는 거.
그리고 한유준이라는 사람은 내 눈을 또렷이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하지만 난 전혀 알지 못했지만.
" 하린씨도 포기하지 마요 "
" ...... 그래야죠. "
" 같이 성공해요 "
" 네! "
윤하린이 아닌 윤하린에게 건네는
한유준의 소리없는 외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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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모처럼 우현이가 집에 왔다. 나란히 TV를 앉아 보다가 해현이가 밥 다 됐다는 소리에
나란히 가서 앉았다. 해현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 하나는 백수에, 하나는 놀고 먹는 회사원 ..... 나 참 "
" 너는! "
" 난 성실한 회사원. 그리고 너네한테 밥 차려준 거 누구야. 누가 말대꾸하래? "
" 죄송합니다 "
" 얼른 처먹기나 해, 속터져 내가. "
해현이는 밥을 잘한다. 반찬도 잘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지만.
정말 내 손발이 되 주는 건 정해현이구나.
툴툴대면서도 다 챙겨주고 있으니까.
" 아, 나 할 말 있었는데. 뭐더라. "
" ...... 금붕어 "
" 아, 맞다. "
" ....... 뭔데? "
" 학교가자. "
그 말에 나와 우현이 둘 다 벙 한 표정으로 해현이를 바라보았다.
" 무슨 학교? "
" 우리 모교. 한국예술고등학교. "
" ......... 정해현 "
" 가자! "
우현이의 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동시에 터져나온 내 목소리.
우현이는 해현이를 말리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난 좋았다. 가보고 싶었다. 졸업하고 한번도 가보지
못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또한, 내가 잊은 걸 내 스스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게 설령 날 괴롭혔던 거라고 해도, 정말 소중한 거였다면 감수해야 하는 거잖아.
" 뭔 소리야. 윤하린 너 요즘 그림 그리느라 바쁘지 않아? 정해현 너도 바쁘다며. "
" 학교 갔다오는 데 일주일이 걸려, 한달이 걸려? 반 나절이면 되는 거잖아. 차 빌려주기 싫으냐?
됐어, 됐어. 나도 차 있다 뭐. "
" 그 말이 아니잖아!!!! "
우현이가 큰 소리를 냈다. 거기에 나는 움찔했지만, 해현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현이한테 맞섰다.
" 왜, 다 윤하린 위해서야. 매일 바로 앞에 있는데도 모르는거 보고싶지 않으니까 "
" 그럼, 돌아오면. 어쩌자는 건데. 왜 치료받았던 건지 잊어버린 거야? "
" 이럴 거면, 이렇게 멍청해질 줄 알았으면 나 걔 그냥 내버려뒀을 거야. "
" 정해현!!!!!! 말 함부로 하지 마, 그거 하린이가 내린 결정이었어. "
" 정해현 내 가족이고 동생이고 언니야. 내가 말리면 안되는거야. 내가 윤하린이야. "
" 그만둬. 허튼 짓 하지마. "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에 난 밥숟가락을 들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 .....
" 너야말로 왜 그렇게 발끈하는데? "
" 뻔하잖아. 다 하린이 위해서 .... "
그리고 우현이가 다음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해현이의 한 마디.
" 혹여나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그애'를 찾게 될 까봐 두렵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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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휴나
# 출처 : 유머나라(http://cafe.daum.net/humo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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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중심에 서다 ※ 44
- 마침내
우현이는 그 뒤로 말을 잇지 못했다. 수긍하는 거였을까.
나는 그 대화가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어서 끼여들 수도, 말릴 수도 없었다.
다만 그 뒤로 우현이는 화를 꾹꾹 참다가 해현이를 노려보고 '나 갈게'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거.
결국 오늘, 해현이는 우현이를 떼 놓고(우현이에게는 말도 않고) 나를 데리고 학교에 가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 정말 우현이 안 데리고 가도 될까? "
" 싹수 노란 새끼. 됐어, 둘이 가자. "
" 그냥 가자. "
" ...... 그래, 그럼. "
무언가 굳은 결심을 한 듯한 말투에 난 해현이를 가만히 쳐다보았고, 해현이는 주저 없이
차를 몰았다.
위이이이잉-
우현이 차를 타는 것도 기분 좋지만, 해현이 차는 훨씬 더 스릴있다.
우현이는 어느 정도 다른 사람 배려하는 반면에, 해현이는 미친듯이 달리니까.
" 야 - 여기가 무슨 고속도로야? "
" 밟는 거야, 가는 거라고! "
" 뭔 소리야!!! "
" .... 찾으러 가자!!! "
" 뭐? "
바람에 묻혀 들리지 않는 해현이의 목소리. 에어컨 틀어 주지 ..... 쌩쌩 달리는 차 안에서
해현이는 즐겁다는 듯 외치고 있었다.
' 기억 찾으러 가자!!!!!! '
.
.
.
# 한국예술고등학교
끼이이이익.
해현이의 차가 주차장에 바르게 대이고, 나는 뭔가 두근대는 느낌과 함께 문고리를 잡았다.
그 때였다. 지이이잉 - 하면서 내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 강우현 ]
" 어! 왠일이야? "
[ .... 어디야? 집에 없네? 놀러 나갔어? ]
" 응? 나 학교야. "
[ .... 뭐? 내가 가지 말라고 했잖아, 윤하린. ]
" 너 떼놓고 왔다고 열내는 거야? 지금 올래? "
[ 하린아, 지금 그냥 당장 이리로 ㅇ ..... ]
타악. 해현이가 내 핸드폰을 빼앗아서는 밧데리를 빼고 자기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와는 달리 왠지 단호해 보이는 태도였다.
" 강우현이었지? "
" 응. 근데 그렇게 막 끊으면 어떡해 ... "
" 됐어. 설마 이런 걸로 삐지겠어? 내리자. "
" 응? 응. "
해현이의 말에 그럴 것도 같다며 문고리를 힘껏 잡고 열었다.
설마 화 내겠어? 그나저나 왜 학교 가는 걸 막는 거야, 같이 오고 싶으면 같이 오고 싶다고 말을 하지.
교정 안으로 들어섰다. 꽃과 잔디가 가득한 교정 ... 여기서 난 종종 누군가와 -
..... 어느 누군가와 항상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교무실.
" 하린이구나!! .... 얼마만이야, 이게 .... "
" 잘 지내셨어요- "
" 선생님, 저도 있는데 너무 하린이만 챙기는거 아니에요? "
" 어머, 해현이도 있었네 ... 미안미안. 잠깐 앉을래? "
왜 진작 한번 와볼걸 생각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할 정도로 ...
이상할 정도로 난 지금 학교를 원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었다는 걸 자연히 느낄 수 있었다.
" 잘 지냈는지 모르겠다. 학교는 잘 다니고 있구? "
" ..... 예. 선생님도 잘 지내셨어요? "
" 너야말로 말이다. 그건 괜찮아졌니? PT ... 뭐라더라. "
" PTSD ... 요, 선생님. "
" 그래 ....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 일 있은 후로도 꽤 앓았잖니.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 "
그러고 보니, 치료 받고 난 후에, 내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후에.
내가 왜 그 증상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떠올려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알 수 없다는 듯이 해현이를 바라보자 해현이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도리어 나를 바라보았다.
알아서 생각해 내라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기억도, 대학교 기억도, 우현이도 해현이도 ...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던 날 까지도 ...
모두 기억나지만 부분부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뭘 잊어버린 거지? ....
시간적으로 어떤 시기를 잊어버린 게 아니라 ..... 누군가를 잊어버린 건가?
" 그래. 더이상 그 얘기 꺼내는 건 너에게 아픈 기억만 주겠지 ... 그림은 잘 되니? "
" 네. 이번에 전국 대회 내보내려구요. 유명한 대회라서 입상하면 이름도 알려질 것 같고 ..... "
" 그래, 넌 고등학교 시절에도 정말 자랑스러운 학생이었으니까, 꼭 해낼 수 있을 거다. "
그래.
하나만을 보면서 달려왔잖아. 그게 내 꿈이었잖아.
무언가를 잃은 듯이 삐그덕대고 있지만 결국 내 목표는 그거였다.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으로 잡았던 수단, 목표, 그리고 내 단 하나의 꿈.
선생님과 얘기를 어느정도 나누었을 무렵, 해현이는 교무실의 여러 선생님들에게 사 온 음료수를
돌리며 잡다한 얘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 선생님, 이제 가 볼게요. "
" ..... 그래, 바로 갈 거니? "
" 기숙사 들렸다 가려구요. "
아, 맞다. 기숙사 .... 기숙사도 있었지.
해현이를 따라 교무실을 벗어났다. 교무실에서 보낸 시간이 꽤 된 건지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고 있었다. 출발도 느즈막히 한 만큼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았다.
" 빨리 가자. 애들 학교 끝나면 기숙사 올 거 아니야. 그동안 슬쩍 구경하고 오자. "
" 원래 우리 쓰던 거였는데 몰래 봐야된다니까 좀 슬프네. "
" 폼 잡지마, 빨리! "
해현이가 내민 손을 잡고 기숙사로 서둘러 걸었다.
그러고 보니 .... 정해현, 내 옆에 있어준 지 굉장히 오래 됐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내 옆에 계속 계속 .....
고맙다는 말 한번 변변치 못하게 하고 항상 부탁하고 도움받는 난 무슨 존재였던 걸까.
탁.
" 도착. "
" .... 우리 몇호였지? "
" 글쎄 .... 205호? "
" .... 그랬나? .... 가보면 알겠지 뭐, 구조는 생각 나니까. 205호라고? "
앞서 나가는 하린을 보면서 해현이 조금은 뒤 쪽으로 걸으며 하린에게는 들리지 않게
조그맣게 읊조렸다.
" 바보야, 우린 305호였다. 205호는 한유준 방이었잖아 ..... "
걸었다. 그리고 205호 앞에 섰을 때, 우리 방이 아니었다는 것 즈음은 금방 알았지만,
그 앞에 붙어 있는 종이에 잠시 걸음을 주춤 할 수밖에 없었다.
[ OOOO년 O월 O일 자로 좋지 않은 사고가 발생하여 205호를 폐쇄합니다 ]
달칵.
아무 의미 없이 문을 열었다. 그뿐이었다.
폐쇄되었다는 그 방문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열렸고, 단지 끌리는 느낌에 나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오래 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만큼 방은 어색했지만 열려진 베란다 문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로 방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무언가가 생각날 것만 같았다. 잊었던 무언가가 .....
해현이 역시 따라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 한유준!! 안 일어날 거야? '
' 방까지 막 들어오면 어떡해- '
' 한 두번인가. ... 빨리 일어나, 늦는다! '
탁.
발에 무언가가 걸리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바닥을 바라보았다.
바닥의 색깔이 이상했다. 닦아낸 것 같긴 했지만 무언가가 어색했고 노란 빛이 나는 장판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밖에 써 있던 말이 이거였나 ... 피를 흘릴 정도로 .... 잔인한 - ?
" 우리 3학년 때 205호 폐쇄됐었던 거 기억해? 애들이 안 쓰겠다고 난리 쳐서 말야.
우현이 그래서 방도 옮겼었잖아. "
" ............. "
' ..... 마지막으로 알게해준 나에게 감사해.... 난 너처럼 한유준을 비참하게 만들지는 않을테니까말야. '
" 그거 누구 때문이었는지 ..... 혹시 기억나? "
" ......... "
지이이익.
칼날이 누군가의 손목을 그었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나도 모르게 내 손목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거기엔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 ...... 나 .... 였어 ..... "
" ........ "
" ....... 내가 잊어버린거 ....
한유 ...준... 이었어 ...? "
─────────────────────────────────── # 작가 : #휴나 ───────────────────────────────────
※ 세상의 중심에 서다 ※ 45
- 결정
학교를 벗어나면서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터덜터덜, 그리고 비틀비틀 걸으면서 아무 감각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 날 일깨운 건 정해현이었다.
" 어떡할 거야? "
" ...... 뭘? "
" 한유준, 어떡할 거냐고 ...... "
" ..... 왜 도와준 거야? 그냥 내버려둘 수 있었잖아. "
" ....... "
오래 전, 날 이제 그만 놓아주라고 집에서 유준이에게 메몰차게 말했던 해현이가 생각났다.
그런데 이제는 한유준을 기억시켜 버린 것도 정해현이었다.
" 다 널 위해서였어. "
" ........ "
" 강우현한테 가려는 너 막았을 때, 난 무언가 말해야 했고
평생 한유준 모르면서 사는 너 볼 자신 없었어. 그리고 그건 너에게도 상처일 거고. "
" ........ "
" 강우현 사랑해? "
매번 똑같은 질문 같았다. 한유준을 만난 후, 강우현을 만난 후, 내게 매일 날아오는 질문같았다.
하지만 언제라도 난 확실한 대답을 내려주지 못했고 단지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살아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우물쭈물 하고 있을 때, 주차장에 거의 다 다다르자 선생님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는지
서 있다가 반갑다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 늦었구나. "
" 무슨 일이세요? "
" 여기, 이거. "
선생님이 건넨 건 어떤 곳의 팜플렛이었다. 어른과 놀고 있는 어린이들,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는 여자, 순진하게 웃고 있는 남자와 각종 문구들 ....
난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 너와 비슷한 병을 가진 사람들도 있어. 그 외에 정신 병들도 .... 우리 학교에서 최근 봉사 활동으로
많이 나가고 있는 곳인데, 그림으로도 그들의 정신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해.
..... 한번 네가 가 봤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에게 많이 도움이 될 것 같거든. "
" .......... "
선생님이 건네준 팜플렛을 빤히 바라보다가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선생님과 다시 짧은 인사를 하고 해현이의 차에 올랐다. 여전히 대답은 하지 않은 채였다.
해현이는 답답하다는 듯 운전대를 잡으면서도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 어떻게 할거야? "
" ....... 모르겠어 "
" ....... 여전히 멍청하구나. 멍청한 윤하린. "
" 나 원래 그렇잖아. .... 멍청하기만 하면 다행이지. "
해현이가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운전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면 나는 다시 나만의 생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거였다.
.... 그 때, 한유준이 날 보기 위해 뛰쳐 내려왔었다. 치료 잘 되었느냐고.
보고 싶었다는 말을 가슴에 품은 채. 그 간절함이 내게도 전해 왔건만 난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옥상에서도 계속 만났었다.
' 이 건물, 저한테 특별한 의미가 있거든요. '
' 아 ... 뭔데요? '
' 좋아하는 여자를 여기서 맨 처음 만났거든요. '
그 옥상, 이제야 생각날 것 같았다. 왜 이유없이 그곳이 끌렸는 지도 ....
거긴 내가 한유준이 처음 만났던 장소였다. 그리고 알 것 같았다.
왜 한유준의 연습실이 거기였는지.
예전에 찾아갈 땐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는지 ......
그 애는 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
처음 그 애를 만났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또 현재까지의 기억이 차가 빠른 속도로
밖의 경치를 지나듯이 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힘들었겠지.
내가 그 애 손 잡아줄 앤데, 그 애가 유일하게 내 손 잡아줬던 앤데.
어떻게 잊을 수 있었을까.
단지 한유준을 잊으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순간의 착각이었나 ......
끼익.
어느덧 집에 다 도착한 듯 했고 난 고인 눈물이 흘러내리지나 않을까 해현이가 보지 않게 스윽 닦았다.
그러나 해현이는 굳은 음성으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 어떡할거야? "
" .... 뭘? "
" 이슬빛나. "
" ...... "
" 너 찾아온 것 같은데? "
정말이었다. 집 앞에서 팔짱을 낀 채로, 하지만 뭔가 초조해 보이는 표정으로 누굴 기다리는 듯한
이슬 빛나, 그녀가 기다리는 건 분명히 나일 터였다.
" 정했어 "
" ...... 뭘? "
뜬금없는 내 말에 해현이가 되물었다.
" 앞으로 어떻게 할건지 ..... "
탁. 해현이가 타고 있는 그대로 난 해현이를 남기고 차에서 내렸다.
나를 발견한 이슬 빛나가 항상 그랬듯 급한 걸음으로 쿵쿵대며 다가와 내 앞에 섰다.
" 잠깐 얘기좀 해 "
" 무슨 일이야 "
" ...... 난 잊어버리지 않았어? "
순간 아차 싶었다. 이슬 빛나까지 모른 척 연기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나는 도리어 초조한 눈빛을 이슬빛나에게 건네며 말을 꺼냈다.
" 다른 곳으로 가자 "
.
.
.
당장 눈에 보이는 카페에 발을 내딛었다. 초조한 건 둘 다 마찬가지였기에 알바생이
무언가를 시키라는 걸 둘 다 됐다는 말로 일관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렇게 얌전한 이슬빛나의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 한유준 말야, 어떻게 할 생각인거야? "
" ........ "
" 니가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며? 성공하라고 했다며. 어떻게 된거야? ....
끝낼거면 아예 끝내라고!!!! 잊어버렸으면 그냥 놔줘. .... 그렇게 말할 거면 진작에 말하던가.
너때문에 버린 시간들은 어떡할 건데? "
" ......... "
" 이기적인 년. 고등학교 때랑 똑같아. 너 때문에 다 버린 한유준은?
결국 넌 다시 만난 후에도 강우현 좋다고 했다며? ..... 질질 끌지 말란말이야!!!! "
" 한유준 요즘 뭐해? "
" ...... 뭐? "
" 한유준 요즘 뭐 하냐구. "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한 말, 그때는 몰랐지만 진심이었다. 정말 성공했으면 좋겠다.
나는 아니어도 좋으니까, 그냥 정말 하고싶어했던 거 열심히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내 그 말에 이슬 빛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나를 떠 보려는 듯 말했다.
" 가수 데뷔 준비해. "
" ..... 잘 됐네 .... "
" ..... 너 ...... "
" ........ "
" ..... 넌 한유준을 잊어버린 게 아니지 ......... ? "
..... 완벽한 실수.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간 대화.
나도 모르게 휘청이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이슬 빛나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 잊어버렸었던 건 사실이야. ..... 다시 찾은 것 뿐이야. "
" .... 그럼, ......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
" ....... 니가 나한테 찾아온 이유는 뭔데 .... "
" 그 애 부탁해. 아니, .... 다시 찾아가. "
" ........ "
처음이었다. 이슬 빛나의 이런 모습은. 누군가에게 양보하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애 같았는데.
...... 정말로 이 아이도 한유준을 좋아하고 있던 거였다.
" 정말 힘들어해. 내가 해주고 싶어도 안된대. 난 윤하린이 아니니까 ....
질리도록 들어온 말인데도 요즘엔 실감나. 그래서 니가 더 짜증나.
너 기억 잃었다는 거 알고도 모르면 내가 억지로라도 알려주려고 했더니 잘됐네. 찾았다니까.
이제 한유준 찾아가. 그리고 잘 부탁해. 너라면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테니까. "
" 내가 할 말 ...... 니가 하고 있는 거 알아? "
" ..... 뭐? "
" ...... 난 한유준한테 돌아가지 않을 거야. ..... 한유준 잘 부탁해. "
" ..... 무슨 소리야? 그게? "
" 난 영원히 기억을 잃은 윤하린으로 살거야. "
내 말에 벙찐 듯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이슬빛나였다.
" 모른척 해줘. ...... 금방 사라질 테니까. 그러면 그 애도 날 잊겠지. "
" ......... 윤하린. "
" 잘됐다. 가수 하는구나 진짜로. "
눈에 초점을 잃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출구로 향했다.
내가 기억이 돌아온다고 달라질 건 없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없다.
모든 걸 알게 된 이상, 한유준의 모든 사랑을 느낀 이상 세상에 기억이 돌아왔음을 선전포고하고
강우현 품에 안겨 웃을 자신은 없다.
난, 혼자 떠나야 했다.
뒤돌아서는 하린의 모습을 바라보며 빛나는 쓴웃음을 한껏 지으며 여전히 끊지 못한 담배를
입에 물었다.
" 멍청이 ..... 니가 떠나면 그 애가 너를 잊을 줄 아는 건가 ......
그 애는 널 절대로 잊지 못할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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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 #휴나 ───────────────────────────────────
※ 세상의 중심에 서다 ※
- 46. 나보다도 상처나고 조각난 마음들
담임 선생님이 주었던 팜플렛을 들고 그 장소로 찾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어딘가로. 해현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로 아침에 조용히 나서는 나였다.
달칵. 소리 없이 현관 문을 여는데 그 앞에는 이미 누가 지키고 있었다.
" ......... "
" ...... 이 아침부터 어딜 가냐? 놀래켜 주려고 일찍 왔더니. "
" ..... 잠깐 .... 재료 좀 봐야 될 거 있어서. "
" 무슨 재료? 같이 가자. "
" 아니야. 나 혼자 갈게. "
" 너도 없는데 정해현 자는 집 혼자 들어가서 뭐하냐? 데려다 줄게. "
이건 무슨 우연의 일치야.
우현이는 날 데려다 주겠다면서 손을 잡고 계단 아래로 내려섰다.
이건 .... 뭔가 아닌 것 같은.
순간 쳐낸 나의 손에 당황한 듯한 우현이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 .... 왜 그래? "
" ..... 더워서. "
찜찜함을 안고 우현이의 차에 올랐다. 우현이는 내가 항상 재료를 사러 가던 곳으로 향했고
나는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지만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안 내려? "
" 내릴 거야. "
" .... 너 오늘 좀 수상하다? "
" .... 아니야, 아무 것도. "
이렇게 착한데, 이렇게 멋지고 이렇게 다정한데.
나는 더 이상 이 녀석에게 다가갈 수가 없다.
2층으로 올라가 우현이가 관심 있다는 듯이 이것 저것 만져보는 사이, 나는 계단 아래로
조용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기분이다. 이상하게.
왜 떳떳하게 말하고 떠나지 못하는 걸까.
계단으로 하린이 내려가는 걸 틈새로 살짝 확인한 후에야 우현은 한숨을 쉬며 등을 벽에 기대어 본다.
" 뭐가 그렇게 불편한데 ..... 윤하린 "
버스를 탔다. 지방은 아니었지만 수도권 내에서도 살짝은 한적한 곳에 있는 듯 했다.
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택시를 잡고 무턱대고 팜플렛을 내밀었다. 택시 기사는 그걸 보더니
끄덕거리며 그곳으로 향했다.
" 아가씨도 거기서 일하나? "
" ... 아니요. "
" 그러면? "
" 한번 ... 가보고 싶어서요. "
" 거기 좋은 사람들 많지 ..... 유명하다우, 전국적으로. "
" .... 그래요...? "
' 감사합니다 ' 를 끝으로 세워진 골목에서 나는 아저씨에게 돈을 지불하고 내렸다.
공원이 조성된 것 처럼 풀이 가득한 골목 끝으로 흰 색의 아기자기한 건물이 보였다.
나는 무심코 '예쁘다' 고 탄성을 내뱉으며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순간.
스윽.
누군가가 내 다리를 잡았다. 그 느낌이 무척 낯설었다
" ....... "
" ......... "
어린 아이였다. 눈이 참 맑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 없이 날 잡아 세웠음에도 빤히 보는 그 아이는
여자 아이였다. 머리를 단정하게 양쪽으로 딴 건 누가 해준 듯 예뻐 보이기만 했다.
난 사실 어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냥 그 아이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 한초연 "
" ...... 어? "
" 한 초연 이에요. "
" .......아. 네 이름? "
내가 말을 하지 않자 붙임성 좋게 말을 거는 이 아이.
" 혹시, 저기 .... 사니? "
" (끄덕) "
" .. 그럼, 나좀 데려다 줄래? "
같은 처지의 사람이면 느낄 수 있는가 보다. 이 아이를 보았을 때 눈동자 속에 서렸던 슬픈 빛.
그건 나도 아마 가지고 있을 터였다.
무심코, 아니면 무조건 맞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물었고 아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난 처음 보는 아이의 손을 잡고 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건물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단발 머리의 중년 여자가 앞으로 달려나왔다.
" 초연아!!!! 어디 다녀오는 길 ...... 어머나, 손님이 오셨구나. "
" ..... 언니가 데려다 달라고 했어요! "
" 그랬구나. 먼저 들어가 있을래? .... "
" 응! "
초연이라는 아이가 종종 걸음으로 뛰어 건물 안으로 익숙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 여자 앞에서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른 채 가만히 그녀를 응시했다.
" 차 마실래요? "
" .... 네? "
" 안으로 들어와요. "
세상에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는다.
한유준은 날 너무나 많이 알아서 내 마음을 읽을수 있었고
정해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정으로 내 마음을 읽을수 있었고
강우현은 나를 가장 아껴 주어서 내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
아무런 물음 없이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실내 안으로 들어와 '원장실' 이라고 쓰인 곳에 스스럼없이 들어가 '앉아요' 라고 말한 뒤
차를 내오는 여자의 모습이 꽤나 익숙해 보였다. 원장인 모양이다- 라고 생각했다.
" ...... 늦었죠? 서한나에요. 여기 원장이구요. "
" 윤 ... 하린 이에요. "
" 아. "
" ...... 네? "
" 유명하신 분이네... 상 많이 탔죠? 미술 대회 같은데서. "
" ...... 아 .... "
" 그럼 .... 이제 무슨 일로 여기 왔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
엄마 같다.
많이 포근해 보여서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 주섬주섬 입을 열었다.
" 많이 혼란스럽거든요 ..... 가보라고, 추천받아서 ....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을 거라고 했거든요.
사실 환자들을 보고 싶다거나 이래서 온 건 아니에요. 이기적이죠 .....
나랑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궁금해서 .... 그 사람들도 이렇게 힘든가 해서 ...... "
주섬주섬 늘어놓는 내 말을 내 눈을 빤히 응시한 채 바라보다가 창 밖을 바라보며 말하는 여자였다.
" 초연이 .... 봤죠? 아까. "
" .... 네 "
" 몇일동안 끙끙대면서 깨져서 흩어져 있던 마음 조각들을 스케치북 위에서 퍼즐 맞추듯이
힘겹게 맞추더라구요 ... 이제 그 마음 조각들을 주워 담기만 하면 되는데 .......
안타깝게도 그건 전적으로 초연이 몫이에요. 제가 대신해 줄 수는 없는 거죠. "
" ........... "
" 미술 하시죠? "
" ..... 네. "
팜플렛에서 대충 내용을 확인해 봤었다. '미술심리치료사' ....
내가 찾아온 곳은 그렇게 그들을 치료하는 곳이었다.
" 언제든 찾아와도 좋아요. 그게 치료건 .... 단순 방문이건 .....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거든요 .... "
" ....... "
" 하린씨처럼 자기 위로를 위해서도 상관 없구요. "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웃는 모습이 정말 그들을 생각하는 부모인 것만 같아 내 마음도
따뜻해져 오는 느낌이었다.
서 선생님을 따라 둘러본 실내에는 초연이 처럼 어린 사람들도 있었고, 어른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미술을 통해 치료받고 있었다.
단순히 꿈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여겨왔던 나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자꾸만 올라오는 걸 억누를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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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 #휴나 # 출처 : 유머나라(http://cafe.daum.net/humonara) ───────────────────────────────────
※ 세상의 중심에 서다 ※
- 47. 마지막인 걸 알면서도
그 다음부터 계속 그림을 그리는 데 매진했다. 옥상에는 가지 않았다. 나만이 생각한 나의 상상으로
그림을 채워 나가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쓸데없는 생각들로 핑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림 완성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마무리를 하기 위해 옥상으로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 ......... "
" ......... "
날 기다렸다는 듯이 빤히 보고 있는 한유준. 나는 모른 척 하며 좋은 자리에 그림을 피고
재료들을 골라 잡기 위해 서 있었다.
유준이 시선이 빤히 느껴지지만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그제서야 유준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나, .... 데뷔 하게 될 것 같은데 "
" ........... "
" 아무렇지 ..... 않아요? "
" ...... 잘 됐네요. "
" ........ "
" 정말이에요. 정말 잘됐네요. 축하해요. "
정말 한유준이 성공하는 건 내가 바래고 바랬던 일인데
지금 기억을 잃은 척 하는 윤하린을 바라보는 한유준이 성공한다면
난 아마 많이 아플 것 같다.
욕심이 많지만 그 이유는 그 옆에 내가 없을테니까.
그 애의 성공을 보란듯이, '잘했어. 거봐. 우린 할 수 있다고 했잖아' 라고 옆에서 말해줄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한유준도 ....
...... 힘들지도 몰라 ......
그 약속을 먼저 잊어버린 건 나니까.
" 하린아 ..... "
순간 저음의 그 다정한 목소리에 난 애써 모른 척 하다가 고개를 들어 유준이를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맑고 선명한 그 목소리. 그렇게 내게 매일 매일 노래를 불러주고 했었는데 .......
아이러니했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끝끝내 모른 척 하는 나 .....
세상 사람들이 다 욕해도 난 할말이 없었다.
내가 다시 기억이 돌아왔다고 하면,
만약 그렇다면
난 한유준과 강우현 둘 다 버릴 수 없다는 걸 뻔히 알기 때문이었다.
" ...... 하린아 ..... "
" ...... 왜 ..... 이래요 유준씨 "
" .... 생각해봐. 그렇게 쉽게 잊어버릴 건 아니었잖아. .... 우리 그렇게 쉬운 사이 아니였잖아. "
" .......... "
입술을 깨물었다. 버틸 수 없을 지도 몰랐다.
유준이가 모르길 바랬다. 날 너무 많이 아는 아이여서 눈치 챌 지도 몰랐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랬다.
" 있잖아요. 일주일 뒤에 이거 제출하고 그리고 또 일주일 뒤에. "
" ......... "
" 결과 나오는데, 아마 예술의전당에서 전시 할 것 같아요. "
" ........ "
" 정말 상 탔으면 좋겠어요. 유준씨가 열심히 하라고 매일 옆에 있어줬잖아요. "
" ...... 하 "
허탈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 마는 유준이를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유준이가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나는 내 얘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한유준. 그래도 우린 결국 약속 지킨거야.
결국 서로 조금은 떨어져 있지만 우린 하고싶은 일을 계속 하게 될거구.
만약 조금 떨어지 ..... 더라도
계속 약속 지키고 하고싶은 일 하면서 살면
우리 처음 약속은 지키는거라구.
....... 그러니까 ........
" 고마워요 "
응 .... ?
" 하린씨가 도와줘서요. 정말 좌절하기 직전이었는데 .....
그래서. 그래도. 정말 잘 할수 있을 것 같아요. "
" ........... "
내가 하려던 말을 유준이가 먼저 꺼내 버렸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좌절하려던 것도 나 때문이었으니까 .....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유준이가 한걸음, 한걸음 다가와서 나도 모르게 몸이 굳는 것 같았다.
" 안아봐도 돼요? "
" ......... "
나는 절대 마지막이라고 한유준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유준이는 먼저 눈치 챈 것처럼 나에게 마지막인것처럼 말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정말 서로를 많이 아는구나. 라고. 그렇게 생각해서.
끄덕.
유준이가 나를 안아줬다. 그건 정말 몇년만이었다.
고등학교 때 정말 걱정없이 녀석 품에 안겨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너무나도 밝기만 할 우리 미래를 꿈꾸면서 하고 싶은 하면서
그렇게 상상하면서 지내온 과거를 다시 한번 상상하면서 지금의 나는.
눈물을 참고 있었다.
" 미안해 하린아. 끝까지 같이 못해줘서. "
....... 응?
내 귀에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이고 나를 놓아주고, 옥상을 벗어나는 유준이.
나를 오래 기다렸을 그만큼이나 차가웠지만 그만큼 따뜻했다.
방금 뱉어낸 유준이의 그 말로 판단해 보건데, 유준이는
...... 눈치챈 게 틀림없었다.
마지막까지 모른 체 하려는 나의 발악을 한유준은 나를 위해 덮어준 거였다.
결국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고 나는 무심결에 핸드폰을 꺼내 들고 1번을 꾸욱 눌렀다.
[ 여보세요 ]
" 우현아 ...... 지금 만날래 "
[ ...... 목소리가 왜그래? ]
" 지금 만나자. 시내에 큰 카페로 와. "
정말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서.
.
.
.
택시를 타고 집에 들러서 도로 다시 미술도구들을 방에 던져놓고 다시 시내로 나왔다.
카페 이름을 조그맣게 말한 나는 카페 앞에서 내리자 문득 망설여졌다.
계속해서 생각해왔던 결말이었음에도 조금은 씁쓸했다.
결국에 내 옆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 조금은 무서웠다.
그럴 자격도 없었으면서 너무나 큰 행복을 누리며 살아왔다는 것에
나는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딸랑.
종소리가 울리면서 카페 문이 열렸다.
" 어서오세요! "
" ....... 아, 네. "
그리고 내가 뒤돌아서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잠시 내려놓았던 핸드폰을 집어 들고 소리치는 종업원.
" 지랄하지 마!!!!!!!! 미친 새끼들.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강민혁 그 새끼부터 잡아와.
족을 쳐줄 테니깐. 끊어. 미친 단합회면 단합회지 어디서 선배 가게에서 공짜로 우려먹으려고 해? "
[ 아, 환희누나!!!!!! ]
" 시끄러워!!!! "
핸드폰 안의 상대방 목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로 시끄러웠지만 여자는 가리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카페 안의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을 정도였지만
그 여자는 그런 걸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주인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우현이는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우현이를 향해 걸었다.
걸었다.
마지막인 걸 알면서도
끝까지 녀석에게 걸어갈 것 처럼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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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 #휴나 ───────────────────────────────────
※ 세상의 중심에 서다 ※
- 48. 날 가장 많이 사랑해준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했다
우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일 듯 말듯 한 흐릿한 미소를 보이면서 맞은편에 앉았다.
밝게 웃어 줄 수는 없었다. 오늘 내가 벌일 짓을 알 테니.
어느새 전화를 끊고 다가온 시끄러운 종업원이 주문을 받았고 나는 작게 '레몬에이드요' 라고
말했다. 우현이가 '같은 걸로요' 라고 말하고 나서,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를 응시하면서
말없이 자리를 지켰다.
" 뭐야? 만나자고 했으면 말을 해야지. "
" ......... "
" .... 왜 이러시나, 오늘. 나 바쁘다 윤하린~ 너 심심할때 매일 나가줄 만큼 한가하지 않아 "
" ..... 우현아 "
" ...... 왜 분위기 잡어? "
" 강우현 "
" ..... 어? "
알텐데
내가 무슨 말 할지 알텐데도
우현이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아닐 거라는 생각을 혼자 계속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아닐거야 라고
끝없이 생각하고 있을 거였다.
모른척 내게 묻는 우현이를 보면서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 미안해 "
" ...... 어? ..... 뭐가 ..... "
" 정말 고마웠어. "
" ...... 그런 말 하지마 "
" ... 정말이야. 너 없는 지난 몇년 나한테 상상할 수 없었을 거야 "
" 지금 여기서 그런 말을 왜 하는데. "
" ......... "
이제는 떨리다 못해 딱딱하게 굳어진 우현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아, 이것도 정말 마지막이겠구나. 싶었다.
매일 다정하게 내게 말을 건네고 병원에 데려다 주고 떠들고 우리 집에 놀러와서
하다 못해 재미없는 수다를 떨고
한유준이 없는 빈자리와 해현이가 미처 신경쓰지 못한 부분들까지 다 챙겨주던 게 강우현이라는거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그래서 난 너한테 백번 천번 만번이라도 감사해야 하는데.
" ........ 이해해 줄꺼지 ..... "
" 이해 못하겠다면? ..... 이해 안해주겠다면? ..... "
" ... 고마워 ... ....정말이야. 미안해 그리고 "
" 말 하지마, 윤하린 "
" ...... 강우현 ..... "
"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잖아!!!!!!! "
알고 있었다. 내 옆에 영원히 있어 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 즈음은.
그래도 내 옆에 보란 듯이 서 있어 준 적은 없었다. 항상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욕심 내서 억지로라도 세워 두고 싶었다.
처음이어서. 이렇게 많이 좋아해본 거 처음이어서.
" 시작도 못했어. 아무것도 못했다고 우린!!!! .....
적어도 나 혼자만 하는 거였지만, ... 그래도 니가 옆에 있어서 난 상관없었다고.
지금 처럼만 있어. 적어도 밀어 내려고는 하지 말라고!!!!! "
" .......... "
" 너 지금 나한테 이런 얘기 하는 이유가 뭐야. 내 얼굴 안보겠다는 거야? .... 아니면 "
" ......... "
잠시 동안의 침묵. 그리고 그걸 깬 건 바로 윤하린.
" 떠날 거야 ...... "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우현이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처럼 나를 바라보았고
나도 지금껏 생각해 왔던 이런 초라한 결말에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나는 한없이 작은 존재였다. 그래서 이렇게 나약하고 부질없는 결말을 택하는 거였다.
" ...... 하 ......... "
" 미안해 ........ "
" ...... 미안해 고마워!!!!!!! 그런 말좀 제발 그만할 수 없어? .....
내가 너한테 뭔데 매일 그런 말 듣고 살아야 되는 건데!!!!!! "
" ...... 없어서는 안될 사람. "
" .......... "
" 고마워 우현아. 정말이야. 니가 나한테 줬던 사랑 모두 잊지 않을게.
정말 행복했어. 다 갚지 못하겠지만 잊지는 않을게. "
" 다 갚아, .......갚으라고!!!!! "
" ....... 마지막이잖아. "
" ..... 윤하린 ....... "
" 웃어줘. 응? "
잊어버렸다.
내가 처음에 꿈꿔온 나의 미래를 어느 순간부터 잊어버렸다.
" ..... 윤하린 이 멍청이 .....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 "
" 그러게 ..... "
나를 지금껏 지켜준 소중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생겼다. 강우현. 멋진 남자다. 끝까지 모른 척 해서 미안해. 아프게 해서 미안해.
" 악수해. "
" ........ 뭐 하자는 건데. "
" 잊지 않겠다는 다짐. "
" .......... "
" 빨리. 손 내밀어. "
슬프지만 또렷한 눈빛으로 내게 손을 내미는 우현이의 손을 꼬옥 잡고
다시는 느낄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감았다.
정말 행복했다. 나는 이 사람 덕분에.
.
.
.
집.
해현이가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고, 나는 멍청하게 '밥, 밥'을 외치며 뒹굴대고
있었다. 짜증난다는 듯이 밥그릇을 유리가 깨지도록 내려놓은 해현이가 소리를 질렀다.
" 처먹어!!!! "
" ....... 응!!! "
" 저 우라질 년. 이번에 상금 타면 나한테 다 갚아. 븅신 또라이 쪼다 년. 내가 니 파출부야? "
" 한두번도 아닌데 왜그래~ 넌 내 엄마잖아~ "
" 누가? 내가 너 낳았냐? "
" 엄마같다구~ 내 엄마나 다름없지. "
해현이와 마주보고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다가 나는 숟가락을 밥그릇에 살짝 내려놓았다.
나의 갑작스런 침묵을 눈치챈 듯 해현이가 나를 보며 물었다.
" 우현이랑 무슨 일 있었냐? "
" (도리도리) "
" 유준이랑? "
" (도리도리) "
" ....... 뭐야? 빨리 먹기나 해.... "
모른 체 하며 다시 밥을 먹으려던 해현이는 억지스럽게 밥을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기 시작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치 챘으면서도 못 챈 척.
일부러 그렇게 해현이는 안쓰러울 만큼 모른 척 하고 있었다.
" 정해현 ...... "
" ......... "
" 정해현 ........ "
" ....... 밥먹을 때 말하는 거 아니야. "
" 고마워 ...... "
" 이게 왜 뜬금없이 딴소리야. 빨리 처먹어. "
우현이 앞에서도 유준이 앞에서도 절대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해현이 앞에서 결국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밥상 앞에서 우는 게 제일 쪽팔리는 짓이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정말 원치 않았던 일이었지만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하필이면 해현이 앞에서. 밥상 앞에서.
" ......... 으흑. ...... 흑. "
" ...... 갈꺼냐? "
" ......... (끄덕) "
" .... 나쁜 년 "
해현이의 입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욕이 튀어나왔다. 좋았다. 욕을 먹으면서도.
그렇게 고개를 들어 해현이를 보았을 때 .......
해현이도 울고 있었다 ......
" 어딜 가!!!!! 날 남겨놓고!!!!! "
" ......... 정해현.... "
" 그럼 처음부터 빌붙어 살지를 말던가, 너 없으면 허해서 어떻게 살라고!!!! "
" ....... 미안해....... "
" .......... 아 짜증나, 눈물나네 이거 ....... "
알고 있다.
강우현 많이 좋아했던 거.
나 때문에 포기한 거 한두번이 아닌 거 알고 있다.
회사에 바쁜 일 있어도 투정 부리면 다 제쳐놓고 밥 차려준다고 왔고,
병원 가는 날이면 자기가 먼저 일어나서 다 챙겨 주었고
밤이면 밤마다 내가 악몽 꾸고 있지는 않은가 해서 꼬박꼬박 방문 열어본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한유준 만큼이나 날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해준 친구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고 날 가장 많이 이해해줬고 가장 사랑해주고 있는 친구가 바로 정해현인걸.
타닥. 탁. 닥.
밖에서 빗방울이 하나둘 씩 떨어져 내려와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날 때쯤.
우리 둘은 소리 내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어느 비오던 날.
나는 날 가장 많이 사랑해준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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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 #휴나 ───────────────────────────────────
※ 세상의 중심에 서다 ※
- 49. 세상의 중심에 서다
이주일 뒤.
짐을 챙겼다. 최소한 간소하게 가져가겠노라고 줄이고 줄여서 트렁크 하나로 간단하게
끝냈다. 해현이는 팔짱을 끼고 문에 기대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 ........ "
" ... 안 ..... 도와줄거야? "
" .... 아무튼 혼자는 아무것도 못해요. "
" ....... 내가 정해현 없이 그렇지 뭐 ..... "
해현이가 다시 또 울 것 같은지 울지 않도록 인상을 팍 썼다. 다른 곳에 집중하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내 짐을 하나하나 다시 챙겨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핸드폰이 진동하며 울리면.
" 여보세요 "
[ 안녕하세요. '전국 회화 대회' 최우수 작품 선정되신 윤하린 씨 맞으시죠? ]
" 네 .... 그런데요 .... "
[ 오늘부터 전시 시작했습니다. 알고 계셨죠? ]
하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한때 내 전부였던 목표. 나도 모르게 실소가 피식피식 흘러나왔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 오늘 오전 10시부터 전시 시작했습니다. 앞에서 이름 대시면 윤하린씨는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따 뵙길 바라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
달칵. 전화가 끊겼다. 보러 가길 얼마나 원했는지. 그 가장 멋진 자리에 내 그림이 걸리길
얼마나 바라고 바랬는지.
내가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해왔는지.
다 싼 듯 짐을 끌고 현관으로 걸어 나섰다.
그리고 해현이가 따라 나섰다.
잘 봐 ..... 다시 볼 일 없을지도 모르니까 말야.
저기가 매일 해현이가 나 깨우느라 고생했던 내 방.
저쪽이 가끔 내가 해현이 잘 때 몰라 가서 같이 자던 해현이 방 .....
저기는 해현이가 보글보글 맛있는 아침 점심 저녁까지 해주던 부엌 ...
그리고 가끔 아플 때 해현이가 머리까지 감겨주던 화장실이랑 ....
떠들면서 같이 TV보던 쇼파 ........
눈 앞에 선하다. 그 모든 기억들이.
" 나오지 마. "
" 앞에 까지만 같이 가자. ..... 그냥 데려다 준데도. "
" 됐어. 신세지고 싶지 않아. "
" 신세는 .... 지금까지 져 놓고 더 미안한 게 있냐? "
" ....... 미안 .... "
엘리베이터가 그 순간만큼 천천히 내려가길 바란 적이 없었다.
버스 정류장이 가까워져 오자 내 걸음도, 해현이 걸음도 조금씩 느려져 갔다.
현관까지만 같이 가준다던 해현이는 집 앞까지만, 동네 앞 까지만, 하다가 결국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 나왔다.
그리고 난 또다른 사람이 날 배웅해주러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 어디 가는지는 ... 말 안해 줄거야? "
" 응. 연락할게. "
" 언제 할건데. "
" 금방. 그래도 우린 같은 한국 땅 아래 살고 있는 거니까. "
" ......... "
" 많이 섭섭해 하지는 마 ..... 정해현...... "
와락. 해현이가 나를 안아 주었다.
그리고 내가 바라면 안 될 일인 줄은 알면서도 혹시나 우현이가 오지 않았을까 주위를 자꾸만
돌아보았다.
뭘 기대해, 오늘 가는지도 모를 텐데.
" 버스 왔다. "
" ..... 가 .... "
" .... 응!!! "
" 잘가 .... "
" .... 미안..... "
" 미안하다는 말 그만하고!!! 빨리 타 늦겠어- "
해현이가 끝까지 흔들던 손을 내려놓고 날 버스로 밀었다.
나는 '알았어 알았어'라는 말만 반복하며 버스에 올랐다.
앉자 마자 버스는 뭐가 그리 급한지 출발했고, 해현이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날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 안녕 ........ '
해현이에게 손을 흔들다 말고 내 시선이 누군가에게 꽂혔다.
정류장에서는 차마 보이지 않던 그곳 ....
버스가 지나가면서 집 쪽에서 정류장으로 나오던 골목 하나를 버젓이 보여 주었고
그 곳에서 몹시 낯익은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졌다.
오랫동안 그 곳에서 서 있었던 듯한 ......
우현이가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내 쪽을 바라보았다.
" 강우현 ........ "
알고 있었구나 ......
' 잘가 '
입모양으로 말하는 단 두 음절의 말에 가슴이 아려왔다.
사람의 말이 이렇게나 아플 수 있다는 걸 나는 미쳐 알지 못했다.
버스가 덜컹거리며 해현이에게도, 우현이에게도 멀어져 갔다.
.
.
.
남부터미널 앞 정류장에 발을 내딛을 때, 뒤쪽으로 밴 하나가 서더니 매니저인 듯한 사람과
낯익은 남자 하나가 내렸다.
무척이나 부드러운 미소가 인상적인.
나는 혹시 나를 눈치챌까 싶어 서둘러 터미널 계단 위로 뛰어올라가면서도 유준이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유준이가 핸드폰을 꺼내 들고 버튼을 누르자, 금방 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Rrrrrrr.
" 여보세요 "
[ 윤하린, 나야. ]
매우 익숙한 음성이 이제 나에게 보란 듯이 자신을 알리고 있었다.
...... 나는 다소 얼떨떨한 목소리로 그에게 응답했다.
" 한 유준 .... ? "
[ 네 그림 보러 가는 길이야. ...... 거의 다 왔다. ]
걸으면서 전화하고 있는 듯 유준이의 숨소리까지 다 들려왔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리들 .... 난 잠시동안 서서 눈을 감고 모든 걸 느껴보았다.
기분 좋다.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
[ 뭐 이렇게 그림이 많냐. .... 니 껀 .... 어딨는데? 아, 여깄다. ]
" .......... "
[ .... 피식 ]
" ....... 왜 .... "
[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이네? ... ]
" ...... 그래 ..... "
우연인지 모르게 난 녀석과 처음 만났던 장면을 녀석과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녀석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렸고, 내가 꿈꿔왔던 상을 받았다.
" 고마워 한유준. "
[ ...... 별 말씀을. ]
" 니가 나한테 해줬던 모든 말들, 행동들 덕분에 "
[ ......... ]
" 조금은 미완성이지만 난 내가 꿈꿔온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된거야. "
[ .... 이게 니가 바라던 거라면, 기꺼이 ..... ]
" 끊을게. 마지막까지 고마워 ...... 해 "
그 말이 미안해였을지 고마워였을지 사랑해였을지
아무도 모를 말을 남기고
그녀가 표를 끊고는 기분 좋게 또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 서 선생님!!! 저에요!! 지금 가려고 표 끊었어요. 초연이는 잘 있죠?
당연하죠!! ... 다 정리했어요!! 선생님이 도와주세요, 새로 시작할 수 있게.
많이 돕고, 많이 보고 싶어요. ..... 도와주실 ..... 거죠? "
기분 좋게 모른 걸 훌훌 털어버리고 버스에 오르는 하린.
그리고
그녀의 그림을 빤히,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는 유준이 구석에 써 있던 글을 바라보고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것을 보기 위해 그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 .... ..... 2007. 08. 05.
.............. : 윤하린
작품명 : 세상의 중심에 서다 ]
" 뭐야 .... 이 바보, 제목이 ........ "
세상에는 수천억의 사람이 있고 그들은 자신만의 별이 있습니다.
누구나 그곳에 도달하길 원하고 고난과 역경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저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꿈을 꾸는 분들께 이 소설을 바칩니다.
세상의 중심에 서다 완결.
-
정말 오랫동안 이 소설을 연재했습니다. 작년 12월즈음인가요?
9개월정도, 그리고 정말 공부와 병행이라는 힘든 시간 속에 이 소설이 함께 했습니다.
원래는 에필로그까지 2편으로 구성되어 있던 내용을 한편에 완결에 정리해버렸습니다.
사실 원래 생각했던 결말은 우현이가 죽는 거였어요. 하지만 그건 될대로 되라 이후 완벽한 새드가
될 것 같아 조금 자제 하고, 새드도 아닌 해피도 아닌 이상한 결말로 끝나버렸습니다.
( 하린이 새엄마가 경찰서에 잡혀 들어가는 것도 원래는 짜여져 있었어요 )
하지만 이건 하린이에게는 행복한 결말이에요!!! 적어도 하린이가 꿈꾸고 하린이가 원하는 길로
갔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제 소설에서는 모두 주인공들이 이뤄지거나 하질 못했네요(...)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번외편이 이번에는 도플갱어와 달리 완결 후 바로 나올거에요. 일주일 정도 후에요.
항상 힘이 되준 예스팸과 감상 보내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과
제 소설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 잠시라도 제 소설 덕분에 행복하셨길 바래요!
가장 비틀거림이 심했고 가장 쓰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던 소설
세상의 중심에 서다
독자님들, 그리고 제 가슴 속에 영원히 남길 바래요!
- 2007. 8. 5. 시원한 바람과 함께
#휴나 |
첫댓글 아아아..ㅠㅠㅠㅠㅠ 유준이도 우현이도 너무 불쌍하고 마지막에 떠나버린 하린이가 조금 야속하긴 하지만 뭔가 현명한 선택같기도하고...음.. 또 제가 모르는 무슨일이 그아이들에게 일어나겠죠? 수고하셨습니다~^^
아아ㅜㅜ정말 재밌게 봤어요 유준이랑 하린이랑 이어질것 같았는데 ...은근 반전이랄까요^^;; 그래도 조금 더 뒤에를 본 사람들이 상상 할 수 있는 기회니깐....재밌게 소설 보고 가네요^^휴나님 소설은 찾아서 보겠습니다^^*
재밌어요 !! 한군이랑 이어지길바랬는데 ...!!ㅠㅠ아쉽다아 ..ㅠㅠ
끝에 여운을 남겨서 먼가 마음이 씁쓸하네요ㅠ
슬프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는데..이렇게 끝나다니..조금 아쉅네요^^ 강우현 이랑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조금 아쉽네요^^ 호호~ 음악 시간도 쓰지 않으셨나? 하하 그럼^^ 오늘 하루도 행복한 하루를~
아무하고도 안되는건가... 우현이는 어쩌고,,ㅜㅜ 뭔가 너무 씁쓸하고,, 아~ 세상의중심에서다... 왠지 슬퍼지네요~
너무 아쉬워요 ㅠㅠ 자기의 꿈을 이뤄서 좋다지만 , 유준이나 우현이랑 잘 이어질 줄 알았는데 ㅋㅋ 결말이 약간 어정쩡하지만 그래두 너무 재밌어요 ~~♡
머야 누구랑 되는거야.. 아 정말 펑펑 울면서 봤는데.... 우현이도.. 유준이도.. 결말이 너무 슬프자나요..ㅠ 흑..ㅠ
전 무엇보다 번외편이 보고싶은데.. 번외편이 안보이네요..ㅠ;;
세상의 중심에 서다...그런곳이저에게도잇으면좋겠네여
오오오오~ 마지막 글이 멋있네요, 잘보고 가요
너무 멋진 말이네요.. 세상의중심의서다.... 우현이 유준이 다 잘될줄 알았어요 결국엔 다들 뿔뿔히 떨어지네요.. 하지만 주인공 하린이... 멋진 선택을 한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미있게 잘 봤어요^^
둘 중 누구 하나를 선택한다면 다른 한 사람이 너무 불쌍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다고 하린이가 떠나는 것도 왠지 슬프네요 하지만 분명 하고 싶은 꿈에 한 발 다가간 만큼 행복할 거예요 멋진 결말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역시 슬프긴 슬프지만...ㅎ
우현이가 해현이를 좋아했다면 어땠을까?
세상의 중심에 서다.....
아..슬퍼... 하지만 역시 슬퍼서 멋있는 것 같네요.. 유준군이 해현이랑 잘되는 뭐 그런 결말 내심 원했었는데ㅋㅋ 소설 이쁘네요, 잘 보고 가요^^
저도한번세상의중심에서볼까생각해보는소설이였습니가,,,
흑..하나라도 이어지길바랬는데.. 재밌게 잘읽었어요 ^^
정말...감동 받았어요ㅜㅜ소설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잘 봤습니다^^
와진짜짱임dddd조곰울엇어여ㅠ아근데 진짜 유준이 너무 좋다 ㅎ.ㅎ!!!
아!!! 진짜... 하린이랑 해현이 울때 같이 울먹였다는... 운건아니지만........ 그래도 !!! 하린이가 행복하다니 다행이에요!!!
이소설보면서~많이 울었어요 ㅠㅠㅠㅠㅠ....진짜 슬퍼요~그래도 마지막엔 행복해서 다행이에요^^
아정말재밌게봤습니다 ㅠㅠㅠㅠ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