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쿠리 선생님 소천하신지 6주년이 되는날입니다.
늘 소쿠리 같이 넉넉하고 따스한 맘으로 모든 회원들을 품으신 넔을 기리며 이 곡을 올립니다.
아일랜드 민요 ‘아 목동아’는 웬만한 음악팬이면 다 좋아하는 곡입니다.
북아일랜드 민요인 이 곡의 원제목은 가사가 붙기 전에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데리의 노래(Derry air)와 런던데리의 노래(Lodonderry air)입니다.
데리의 노래는 가톨릭계(아일랜드공화국) 제목이고, 런던데리의 노래는 신교계(북아일랜드)가 부르는 제목입니다.
제목에서부터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를 짐작케 합니다. 20세기 초 ‘대니 보이’라는 가사가 붙게 되지만
작곡가 현제명이 ‘아 목동아’로 제목과 가사를 바꿔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즐겨하는 아일랜드민요 '아 목동아'는 세계 민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곡입니다.
클래식과 팝을 막론하고 세계의 유명 가수 수백 명이 불렀으며, 수많은 악단과 독주악기가 이 곡을 연주하였죠.
아일랜드민요로 알려진 아목동아는 엄밀히 말해서 아일랜드민요가 아니고 무늬만 아일랜드일 뿐입니다.
멜로디만 아일랜드, 그것도 북아일랜드의 런던데리에서 탄생했습니다.
가사 역시 잉글랜드에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이민 온 아일랜드계와 캐나다인들 사이에 널리 불려 알려졌습니다.
Londonderry Air (Danny Boy)
Oh Danny boy, the pipes, the pipes are calling
From glen to glen, and down the mountain side,
The summer's gone, and all the roses are falling,
It's you, it's you must go and I must bide.
But come you back when summer's in the meadow,
Or when the valley's hushed and white with snow,
And('Tis) I'll be here in sunshine or in shadow,
Oh Danny boy, oh Danny boy, I love you so!
But when you come, and all the flowers are dying
If I am dead, as dead I well may be
You'll come and find the place where I am lying
And kneel and say an "Ave" there for me.
And I shall hear, though soft, your tread above me
And all my grave will warmer, sweeter be
For you will bend and tell me that you love me
And I shall sleep in peace until you come to me!
아 목동아
현제명역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 마다 울려 나오고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가고 또 나도 가야지
저목장에는 여름철이 오고
산골짝마다 눈이 덮여도
나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
아목동아
아목동아
내 사랑아
그 고운 꽃은 떨어져서 죽고
나 또한 죽어 땅에 묻히면
나 자는 곳을 돌아보아 주며
거룩하다고 불러 주어요
네고운 목소리를 들으면
내 묻힌 무덤 따뜻하리라
너항상 나를 사랑하여 주면
네가 올때까지
내가 잘 자리라.
'아목동아'는 마치 우리의 아리랑곡조에 일본어가사를 붙인 격입니다.
아일랜드가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이죠.
현재의 영국은 잉글랜드와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가 정치적으로 연합하여 이루어진 섬나라입니다.
19세기 초 조지 3세 때 아일랜드가 병합되어 대 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국기인 유니언 잭도 그 때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영국은 세계 곳곳에 넓은 땅을 갖고 있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정도였습니다.
1922년 아일랜드가 에이레로 독립했지만 북아일랜드는 예외였습니다.
1969년부터 30여 년간 신구교도 간 유혈충돌로 3700명이 목숨을 잃었죠.
그 북아일랜드 제2의 도시 런던데리에서 태어난 곡이 오늘날의 '대니 보이'입니다.
아일랜드의 민요수집가 제인 로스(1810년-1879년)가 창밖에서 들려오는 집시 바이올린의 선율을 듣고
채보해 처음에 피아노로 연주한 게 최초의 '런던데리 에어'입니다.
1855년 조지 페트리가 더블린에서 펴낸 아일랜드 고가 집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것이 1913년 대니 보이(Danny Boy)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영국의 변호사 겸 작곡가, 라디오 진행자인 프레데릭 에드워드 웨덜리(1848년-1929년)가
이미 작사해 놓은 대니 보이를 이 곡에 붙였습니다.
그는 한 친척이 전달해준 '런던데리에어'를 듣고 전쟁터로 어린 아들을 보내야하는 부모들의
비통한 처지를 가사에 담아 '대니 보이'를 탄생시켰습니다. 대니는 다니엘의 애칭이죠.
20세기 최대 히트곡으로 현재 유튜브 성악과 기악 버전이 수백곡이나 올라 있습니다.
불후의 명곡 '대니 보이'는 마디마디에 절절한 비애가 서려 있고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와 함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배어 있습니다. 고이 기른 아들을 전장으로 보내며
그 아들을 기다리겠다는 부모의 정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현제명(玄濟明)이 번역한 ‘아 목동아’의 우리 말 가사는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로
시작해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로 끝납니다.
‘대니 보이’보다 우리 정서에 더 맞는지도 모르죠.
대니 보이 외에 ‘데리계곡에서’라는 가사도 있습니다.
런던데리의 골짜기를 떠나 멀리 바다를 건너간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입니다.
이 노래가 태어난 런던데리는 높지 않은 지형의 구릉과 계곡이 있는 목가적인 소도시입니다.
짧은 여름과 한랭기후는 작물재배에 적합지 않은 땅이지요.
하지만 이곳에서 소출된 모든 곡식을 잉글랜드에 강탈당하고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은 19세기 중엽
감자마름병이 번져 240만 명이 죽자 미국,캐나다로 이민 길에 오릅니다.
북아일랜드의 주요 항구인 런던데리는 1846년 아일랜드를 휩쓴 대기근 이후 신대륙을 향해
매일 이민선을 띄우던 곳입니다. 이 부두를 떠난 배들이 대니 보이를 함께 실어갔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지금 아일랜드에서는 이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 간 아일랜드 인들이 주로 장례식에서 부른다니 애처롭기 그지없습니다.
죽어가는 남편, 아내, 자식, 친구들을 땅에 묻으며 가족 친지들이 주로 부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중고교 교과서에 실리고 많은 국민들이 즐기는 것은
이 노래가 고되고 힘든 식민통치를 겪은 우리 정서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노래의 배경에 깔린 정서가 우리에게 공감을 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노래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아일랜드출신 명 테너 존 매코맥(1884년-1945년)이 부르면서부터입니다.
1920-30년대에 주로 불렀고, 1940년대는 빙 크로스비, 1960년대에는 해리 벨라폰테가 불러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니 보이를 부른 가수는 이밖에도 수 없이 많은데, 앞서 말한 가수 외에 테너 마리오 란자, 플라시도 도밍고,
소프라노 키리테 카나와 짐 리브스, 앤디 윌리암스, 등이 불렀고,
스토코프스키와 아더 피들러 등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습니다.
클라리넷의 리처드 스톨츠만, 첼로의 오프라 하노이 등도 연주했습니다.
하지만 세인의 인기를 독차지한 것은 실 오스틴(1929년-2002년)의 테너 섹소폰 연주입니다.
그는 16세 때 이 곡으로 섹소폰 대회 우승을 차지한바 있습니다.
첫댓글 윤광준님
아 목동아
를 아점에 무반주로 감상의 기회
소쿠리 선생님 이야기를 하모니카를 접하고 얼마안되었을때
우리 선생님이 위인전 공부라도 하는것처럼 말씀으로~~~
난도 하모니카 좀 할때쯤 되면 서울가서 만나뵈야될따로
마음속으로 다잡고~~~
어느날 남순씨 소쿠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꼭 한번뵈고 싶엇는데 ~~~
6주년이 되는 날이군요 우리 선생님 많이 아파하시던데
카페 소쿠리 선생님 알고계신분들
마음이~~~
님의 데이보이 연주와 귀한 글로 다시 마음에 카페 역사를 깨달음
주시네요
잘 하신연주 감사 드립니다
네 늘 소쿠리같은 넉넉하고 따스한 정으로 회원들의 모든것을 담아 주셨던 천사같은 분이셨습니다.
오직 희생과 헌신으로 하모사랑을 사랑하셨던분이십니다.
아 그렇군요 저는 소쿠리 선생님과
직접 교류는 없었지만 하모니카와
하모사랑 회원님들을 많이
사랑하신분으로 알고있습니다
다시한번 명복을 빕니다
아 목동아 이노래를 들으면 왠지
고향에 와있는 느낌이 듭니다
아름다운 화음에 연주 즐감했습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평온한 감정을 갖게되는 명곡인가 봅니다.
편안한 저녁보내세요.
애절한 노래
모든 이들이 사랑하는 노래
멋진 연주로 감사히 감상합니다.
.
소쿠리선생님은 제가 하모니카 시작하기전 인가봅니다.
카페에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존함은 뵌 기억이 있는데.~
훌륭하신 선생님을 위한 아름다운 연주이군요.
잘 들었습니다.
하모니카를 좋아하고 사랑하시는 회원들에게 길잡이가 되심은 물론 악보와 여러자료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셨던, 큰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던 분이십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소쿠리 선생님께서 소천하시기 며칠 전에 통화를 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주기가 되었군요. 윤 선생님 멘트로 다시 한번 소쿠리 선생님의 정답던 얼굴을 그려봅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러셨군요 교수님.
건강히 잘지내시고 계시지요?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편안하고 따스한 밤 보내세요.
세계의 명곡을 멋진 연주로 들려주시네요.
고운 연주 감사히 감상합니다.
명곡중의 명곡인 곡을 하모니카 음색에 담아보았습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리며
행복한 주말되세요.
윤선생님 좋은 자료와 함께 멋진 연주 잘 감상하였습니다.
고맙게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노래에 얽힌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어 너무 감사합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연주곡에 대한 내용들을 이해하게되면
깊이있는 감상이되기에 자료를 정리하여
함께 올려드립니다.
행복한 설날 보내셔요.
늘 따뜻한 마음이었던 소쿠리님이 소천하신지가 벌써 그리 되었군요.
지금의 하모사랑이 있기까지 그분의 공이었다라 말할 수 있습니다.
데니보이 들으면서 몇자 적어봅니다.
잘 들었습니다.
네 육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모니카계의 큰별이셨죠.
편안한 명절 보내세요.
안 열리네요
안녕하세요
유튜브 영상으로 감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