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시흥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정말 어려웠던 60년대 더 궁핍하게 살았던 시흥동 산 91번지..(또 친구들 89번지)
중학 진학은 생각도 못 하고 하루 3끼 식사 양식도 어려웠고 연탄 살 돈이 없어 관악산 나무를 베어다가 불피던 시절 ..
연우중학,, 인가도 없고 교사자격증도 없는 형,누나같던 선생님들,,거기에서 배웠습니다,,신문배달 3년하면서..
6.25 이후 최대 신생아 그룹인 54,55년생 친우들,,그중 2살터울인 4형제중,, 난 형제중에 장남 이었습니다..
중학 졸업 하기전 처음 취직 한곳이 청계천 3가의 센방기술(선반기술)..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새벽밥 먹고 버스비 아끼려 2km 가 넘는 정거장 까지 걸어 갈때면 날씨는 왜그리 춥고 귀 스럽고 볼 시럽고 양손은 번갈아 가면서 비벼주면 서서히 날이 밝아.. 자주 오지도 않는 버스에 올라타면 자리잡은 사람은 졸고 있고 입석 승객들은 뭘 생각 하는지 멍한표정.. 아침에 청소 하려고 면장갑 하나끼고 쇠붙이를 만지면 손이 쇠에 쫙 달라붙어 빨려 들어가는 느낌..
초보라고 처음 시키는 일이 녹슨 쇠에 그라인다로 불꽃응 튕귀며 쇠를 깍아내는일,, 기억난다,, 그때 그벌건 쇠불꽃이 눈에 튀어 들어간것 같은데 선배 형님이 치료하여 준다는 것이 성냥개비 이빨로 짓 이겨서 고개 뒤로 눕히고 눈동자에서 쇠조각 제거 하던 모습...
그래서 기술만 배우면 밥먹고 산다지만 선배 형들도 아저씨들도 많은 봉급도 아니었고 옷 또한 기름칠 범벅..그만 두기로 하고 한 15일만에 그만 두었습니다,,(인생 경험이 그때 임금도 달라고 못 하였습니다,, 동생 승건이의 담임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거라 폐가될까봐... 스스로 그만 둔 것 이라..한달도 못 채운 나의 의지력 때문에..)
그때부터 최소한 고등학교라도 나와서 넥타이 맨 직장에 취직하고 싶었고,,
우리 어머니의 최대희망 이..넥타이 매고 취직하는것,,동사무소라도 취직했음 좋겠다는...공장다니는 근로자 말고..
중학졸업과 동시에 약품회사의 사환으로 취직하여 (동아일보 시흥지국 선총무님의 추천으로 ..)지금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 안부도 모르지만 꼭한번 만나뵙고 싶습니다..취업후 하는 일이란 사무보조도 하고 생물학적 백신 의약품을 배달도하고 대중교통도 이용하고 퍼브리카 운전기사와 같이 다니면 재미 있었지요,,또 저녁에는 직감 비슷하게 사무실에서 야전용 침대 펴고 닭털 침낭에서 자고 식사는 전기곤로에 밥을 하고 김치 한가지 식사 였지만 꿀맛 이었습니다. 외식은 라면에 떡 몇조각 넣은 떡라면,,가끔먹는 설렁탕,, 자장면, ,오무라이스.냉면은 그때 처음 먹어 봤지요..
월급이 6000원인가 하였는데 조금씩 모으고 집과 쓸 용돈은 식비 아겨서 썻지요.. 모아서 고등학교 가려고...
승건이 한테 미안합니다,, 난 모질게 돈 모았고 승건이는 공장 다니며 집안형편 도왔으니까요..
집안 형편은 아버지는 미장공 이었는데 원래 그일이 한달에 절반도 안되는데다 여름과 한 겨울에는 일이 없어 빛내서 쓰고 일하면 노임 받아 이자갚고 그런 일이라 어머니가 살림에 보탠다고 영등포역 시멘트 하역 일 나갔다가 철도 사고로 왼팔을 절단하는 .. 장애자가 되쎴습니다,,중 2때..
한불약품 (강응필 사장님)회사의 배려로 낯엔 일하고 밤에 공부할수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나때문에 한사람의 사환을 더 쓰기로 한것이지요,,자기조카 유명철 (지금은 이세상사람 아니지만 철원 동송중학을 수시로 들먹였고 고속정 이야기를 자주 하였는데,, 그친구 그뒤로 나를 모방하듯 내 발자취를 많이 따라 했는데...)
첫 직장에서도 좋은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지금도 안부 전하고 자주 만납니다..
그래서 진학한곳이 현 송곡고(전성동상전) 야간부 입니다..
75년 졸업때 근로상?인가 뭔가를 받았습니다..(3년동안 월급타며 공부 했다는 훈장인 셈이지요..)
그때 정말 대학 가고 싶었습니다.. 상아탑이라는 말과 호기심..부러움..이성에 대한 야릇한 감정..종로2가의 재수생 학원들,,
고려대..캠퍼스에 가서 대학 캠퍼스가 이렇구나도 알았고..
그래서 가짜 대학생 행세도 잠시 해봤습니다..친구에게 뱃지를 얻어서 가슴에 달고 다녔습니다..버스 할인표 낼땐 양심의 가책도 있었지요 ..잠시지만,, 그래서 군대 마치고 빨리 돈벌고 싶었습니다,,
군대에 입대 하였습니다..공군.. 그런데 입대하자 마자 항공병학교라는 신병교육대 였습니다..
하루종일 기들고 다니며 학과 공부며 훈련을 받았습니다,,정말 학교다운 학교 였습니다,,건물도 운동장도 제일 넓고 컸습니다..
동기들은 식사 형편없다 맛 없다 잔밥이다 하였지만 난 1식 3찬에 자유배식에다 정말 좋았습니다..
자대 배치받고 인사기록 카드에 학벌란이 정말 쓰기 싫었습니다,,대학물 먹은 애들이 상당수 있더군요..
운좋게 관리특기 (엽전특기 경리병) 받아 사무실 근무 했으며,,조달병 직책으로 수원시내 공용 외출증으로 활보 했으며 뒷구멍 이지만 조종사 식당 혜택도 가끔 받으며 동기생 회장이란 직함으로 강원 거진까지 결혼식에 동기대표로 다녀 오기도 하였습니다..
말년에는 여자 만나러 미팅도 다녔고 호사스럽게 비행기타고 제주도 여행 (제주가 고향인 시설대 후배집 별명 김낯술상병)도 다녀오고 ..
제대하고,,,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입사 했는데 전문학교 중퇴 기재하고도..학력 길이가 동기생중 제일 짧았습니다,,
한달 교육기간중 학과 공부를 매일하고 다음날 아침 시험 보는데 시험 성적이 제일 하위였을 겁니다..
항생제 시험은 보여줘도 스펠이 틀릴까봐 한번에 못 썼으니..약리학 생리학 외우지 않음 답을 못쓸 형편이라 똥이 토끼똥 나왔습니다..대학 나오고 경력사원으로 입사하신 동기생들이 농땡이를 안 쳤다면 난 짤리고 말았을 겁니다..
발령이 나이순 성적순인데..난 제일 먼 부산으로 발령 받았습니다..그래서 실적으로 말해주자고 정말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후에 영업부장이신 안명수 부장님이 소장님께 보낸 서신을 보게 되었는데 학과실력은 딸려도 됨됨이가 된것 같다,,
하소장이 갈고 닦아서 일꾼을 만들어라 그런 내용 갔더라구요,,
그래서 외롭게 영업했지요..성실하나로.. 선배들만 쫒아 다니면 술집,잡기.바람둥이 통달 했을 긴데..
영업사원치고 고스톱,춤,당구 못하는이는 드물겁니다,, 그래서 열심히 했더니 진급도 잘 되고,,봉급도 올라가고..
학력의 콤플렉스는 계속 오더군요..
시간이 흘러 입사하는 신입 전부 대졸이고 대졸이상으로 자격을 주더군요..
그래서 이직도 못 했습니다..겁이나서..오라는데가 있어도 학력이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내가 원하는데로 움직여지지 않쟎아요..
그래서 몇번 전직을 하여 몇회사 경험 하였습니다. 회사 규모는 더 적은 회사로 옮겨가는데 .직책은 높아지고,,이력서 쓸때.학력난 대졸로 쓸수있음 좋겠다 였습니다..그래도 인사 담당자들이 입을 봉해주어 버틸수 있었습니다.
첫댓글 이제사 글을 읽었습니다. 너무 열정적인 삶을 사셨군요. 그리고 아직도 그열정을 간작하고 노력하시는 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마음에 새기고 살도록하겠습니다.
한번도 내색 못헸던 글 오려 보ㅑㅆ습니다..
오랫만에 다시 읽어 봅니다..
글 쓴대로 대학원도 졸업했고 석사가운 입고 졸업 한지 벌써 10년이 넘네요..
변하지 않은건 아직도 "의지의 한국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