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산회 7월 산행 : 2017년 7월 23일 대서(大暑)
동행 : 淸風(이정균 회장), 起白(박순백), 瑞頂(서영호), 石松(김영곤), 月星(김동신),
后坪(김정주)
산길 : 서울둘레길 5-2구간(삼성산 구간) : 6.8km
[전철 1호선 석수역-호압사-천주교성지-서울대 입구-서울대입구역]
금년(2017년) 3월 21일 서울둘레길을 처음 걷기 시작할 때만 해도 답산회는 서울둘레길을 시뿌잔케 생각했었다. 서울 주위의 공해며 소음과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걸어볼 마음이 내키지 않았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해서 한 구간 한 구간씩 걸어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깨끗한 산길들, 서둘지 않는 등산객들, 우거진 숲길,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오르락내리락 하나 소위 말해 깔딱 고개나 아주 가파른 길도 없다. 거리는 체력에 맞게 적당히 잘라 조정하면 된다. 곳곳에 쉼터와 운동기구와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교통도 편리하다. 아쉬운 점은 산에 가서 산길을 걸어도 정상에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레길 조성과 관리는 참 잘 한 것이라 생각된다. 70대 노인들 체력관리 및 유지에 더 좋은 길이 있으면 보여주시길!
지난 6월 25일 서울둘레길 불암산 구간을 할 때 면목동 지역의 국지적 폭우(60mm)로 금년의 장맛비를 경험했다. 그리고 이번 산행(7월 23일)에도 비가 내렸었다. 장마가 이 지역 저 지역으로 돌아다닌 지 한 달이 되었나 보다.
올해도 마른장마일가 했는데 7월 16일 충북지역 폭우(960mm)와 물난리 후 7월 23일 대서(大暑)인 오늘 서울지역에 시간당 최고 96mm의 강수량, 이런저런 사정을 아침에 몰랐던 우리, 그래도 우리가 산행을 시작한 오전10시경엔 이전에 내리던 폭우가 그쳐주어 산행을 하는 우리로서는 다행이었다.
7월 31일 휴가차 경남 밀양에 갔었는데 그곳은 마른장마로 가뭄이 해갈되지 않았었다.
석수역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 起白이 15분 정도 지각을 했었다.
그 15분 동안에 잠 깬 하늘이 정신을 차렸다. 역사를 출발할 때엔 비가 별로 오지 않았으나
하늘엔 짙은 구름이 끼었고, 대서(大暑)는 제 값을 해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습도가 높고 후텁지근했다.
사진(10:20) :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넷이 옹기종기 안내판 봅니다.
사진(10:22) 육교 건너편에 석수역
사진(10:28) : 서울둘레길 5-2구간 시작점
삼성산의 유래는 고려말 나옹, 무악, 지공 등 세 승려가 수도한 곳이라고 해서 삼성산이다.
오늘은 起白이 카메라는 가지고 왔으나 배터리가 충전이 안 되어 사진촬영을 제대로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후평이 담당했는데 내 얼굴은 어드메에 두어야 하나?
나중에 보니 起白이 m-phone으로 촬영을 하던데 그 사진들 봐야지.
산행중 비는 약간씩 내리다 그치곤 하기를 반복하다 그만 15~20분 간 주루룩 내렸다.
그 시각에 지붕이 만들어져 있는 우물쉼터에서 쉬었다.
淸風 회장과 起白 찍사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빗속에 쉬지 않고 앞서 가벼렸다.
쉬는 동안 石松이 참외를 꺼내 깎아주어 먹었다. 땀을 좀 흘린 후라 그 참외 맛이 달고 시원했다.
결과로 石松은 우리에게 참외로 보시(布施)했고,
瑞頂과 月星 그리고 后坪은 石松의 짐 무게를 줄여주는 보시(布施)를 했다.
下品中生 品位 수준인 衆生들의 보시관행(布施慣行)입니다.
踏山會 會員들의 밴 훈훈한 보시(布施)입니다.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淸風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나뭇잎에 비 듣는 소리로 잘 들리지 않으나
“왜 늦느냐?”는 뜻인 것 같았다. “호압사에서 만나자.”고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락가락 하는 비, 호우(豪雨)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위는 구름 속이다. 나무들 뿐 경관(景觀)이 없다.
사진(11:09) : 石松(김영곤)과 瑞頂(서영호)는 초등학교 6학년 4반 반창이라나?!
사진(11:41) : 나무데크길(?)이라고 해야하나, 길이가 거의 1km정도 될 것 같았다. 옆으론 평탄한 흙길이 있었다. 둘레길 보호용으론 과한(?) 투자인 것 같기도 하다.
호압사에 도착하여 앞서간 일행들을 찾기 시작했다.
M-phone으로 20분 후에 도착할 것 같다는 연락이 왔었다.
15분 이상 앞서 갔는데 20분정도 늦겠다고??
구름 속 비오는 산에서 사전에 산세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산길 잘 못 들기 십상(十常)이지?!
淸風도 동행한 起白도 산길에 대한 눈썰미가 무딘가 보다.
강원도가 아니고 서울의 삼성산 기슭의 서울둘레길이었기에 다행이다.
사진(12:20) : 9층석탑과 녹색 천막 사이로 약사전이 어렴풋이 보인다. 시계가 100m도 안된다.
호압사에는 대웅전이 없고 약사전이 있다.
조선의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후 풍수지리설에 따라 호랑이의 기를 품은 이곳이 한향에 해가 될 수 있기에 그 호랑이의 기를 꺾기 위해 이곳에 호압사를 세워 한양의 지세를 안정시켰다고 한다.
사진(12:25) : 호압사 어간(御間)에 위치한다는 정자에서 절에서 제공하는 점심공양(供養)을 하였다.
멸치나 눈챙이조차도 헤엄치지 않은 국물에 말은 국수이지만,
세치 혀에서 보낸 정보는 “고기 향이 없어도 맛이 괜찮다.”고 했다.
늦게 도착한 두 사람도 국수공양을 했다.
사진(13:01) : 일행 모두 든 사진을 부탁했었는데 렌즈를 조정하더니 AF를 M으로 바꿔 놓았다. 사진이 잘 나올리 없지. 이 후로도 몇 장의 사진이 이런 상태이다. 아쉬운 사진이나 올려봅니다.
사진(13:04) : 흐린 사진 합성했습니다. 여러분을 실망케 했습니다.
사진(13:13) : 호압사를 출발하여 구름 속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진(13:14) : 3.3km+3.5km=6.8km, 호압사는 석수역-서울대입구의 중간즈음에 위치하고 있다.
사진(13:15) : 구름 속 둘레길 따라 천주교 삼성산성지를 향해 걸었다.
사진(13:30) 천주교 삼성산성지 :
프랑스 선교사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范) 주교, 성 베드로 모방 나(羅) 신부,
성 야고보 샤스탕 정(鄭) 신부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다.
1389년 기해박해 때 9월 21일(음 8월 14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의 극형으로
사형을 당했고 20여 일간 새남터 모래사장에 방치되었다가
지금 서강대 뒷산인 노고산에 안장되었고,
1843년에 이곳 삼성산에 이장되었다.
1901년 유해가 발굴되어 명동성당 지하묘지로 옮겨졌다.
1989년 명동성당에서 유해 일부를 이곳에 옮겨와 안장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죽어서도 이사를 많이 했고, 마지막엔 유해가 나누어져 묻혀졌다. 왜?, 무엇을 위해?, 누굴 위해?
사진(13:32) : 초등학교 6학년 4반 반창들.
사진(14:14, 기백 찰영)
淸風(이정균) : 부산광역시 연제구 해맞이로 39 (거제4동 676-152) 거제초등학교 12회
石松(김영곤), 瑞頂(서영호) : 부산 동구 초량상로 49 (초량1동 994-13) 초량초등학교 17회 6학년 4반
后坪(김정주) :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사촌신북로 572 (신화리 1485-17) 中南초등학교 29회
月星(김동신) : 경남 거창군 북상면 송계로 731-18 (갈계리 1439-1) 북상초등학교 26회
사진(14:23) 찍사 起白(박순백) :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만어로 11 (송지리 162-2) 삼랑진초등학교 33회
구름 속을 거닐다 서울대학교 입구에 13:20경에 도착, 쉬고 먹는 시간 포함하여 5시간가량의 산행을 했다.
“우중 산행을 왜 하느냐 위험한데. 조심해야지!” 하며 염려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참 고마운 친구들이다.
우리 위험한 산행 절대 안한다.
자만(自慢)할 수준은 아니지만 know-how는 축적되어 있다.
하루 이틀 겪고 경험한 것이 아니다.
"70"이라는 숫자도 알고 있다.
비 맞으며 산행 안 해본 사람들은 그 맛을 어이 알꼬.
속으론 땀이 배어나고 겉으론 비에 젖어들어도 산행을 하는 동안 더위와 비는 벗할 수 있다.
“귀 장사 말고 눈 장사하라.”
70대에 들어 생각하는 마음에 정신적 건강이 졸아드는 속도가 좀 빠른 것 같다.
쉬운 말인 것 같은데,
"마음과 정신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지만,
또한 정신건강의 위축은 신체(체력)의 퇴행에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것이다.
서울대입구역으로 이동하여 삼미옥(02-889-9327)에서
설렁탕과 집 잘 찾아 갈 만큼의 막걸리로 뒤풀이를 하고 귀가했다.
后坪 김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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