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의 필수전략 ‘헬스 테크’ | |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사람일수록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 대한민국 부자들에게 건강은 자신이 일군 부가 주는 행복을 더 오래 향유하기 위한 또 다른 조건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생이라는 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해 부자라고 해서 모두 건강해질 수는 없다. 오히려 부유함이 얼마든지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검색한 나라를 조사했더니 1~3위가 아일랜드 싱가포르 뉴질랜드로 나타났다. 이 통계는 물질적 풍요와 개개인의 정신건강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에 대해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관심이 높다. 특히 고용 불안, 노후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40대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간한 2005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40대는 2005년 평균 13.5일씩 병의원을 방문해 2001년(11.2일)에 비해 20.6%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60대(33.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식생활 변화로 성인병 인구가 증가하는데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이에 따라 최근 대한민국의 성인들 사이에서는 헬스 테크가 주목받고 있다. 헬스 테크란 건강한 노후생활을 대비하기 위한 노력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사회가 고령화의 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는 젊을 때부터 돈과 시간을 투자해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헬스 테크의 골자다. 연령대별로 체계적으로 건강을 관리해 노후에 닥칠 큰 병을 예방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헬스 테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 중 하나는 ‘메디컬 투어’ 붐이다. 즉, 해외에서 치료와 요양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서비스수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국내 거주자가 해외여행을 나가 건강 관련 서비스를 받고 지불한 돈은 7120만 달러로 집계됐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한은은 지난해 전체 해외 의료비 지출액이 1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한다. 한은 관계자는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최상급의 의료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수요가 늘고 있어 앞으로 해외 의료비 지출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여행을 겸해 해외에서 치료를 받는 메디컬 투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요양과 건강이 결합된 메디컬 투어 서비스가 일찍부터 보편화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6%를 의료비로 지출했는데 전체 의료비 지출 중 56%를 해외에서 사용했다. 선진국에서는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자사 직원들의 해외 치료를 적극 지원해 주고 있다. 일례로 최근 40여개 미국 기업은 플로리다주 보카 라톤에 있는 의료보험회사인 유나이티드 그룹이 개발한 ‘치료를 겸한 해외 관광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기업들이 직원들을 해외로 내보내는 것은 위로 여행을 위한 목적도 있지만 경비 절감이 더 큰 동기다. 이들 지역에서 치료 받을 경우 미국 내에서보다 진료비가 80%나 절약되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일본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고유가에 힘입어 중동권 국가에서도 의료 관광이 크게 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슬람권 국가 국민들은 9·11 테러 이후 의료 관광지를 미국, 유럽에서 동남아시아로 바꾸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이슬람교도를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해외 치료가 확산되자 싱가포르 태국 아랍에미리트 등은 요양, 관광과 의료 서비스를 결합한 메디컬 투어를 주요 관광 상품으로 개발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각 병원들도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해 해외 고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번만 방문해달라고 아우성칠 정도다. 이곳에 가면 호텔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병원 방문이 하나의 관광 코스로 잡혀 있다. 가령 태국 범룽랏 국제병원은 환자를 공항에서 직접 태워오는 리무진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며 인도 델리의 아폴로 병원은 중동의 지도자와 왕족들을 위해 플래티넘 라운지 서비스를 벌이고 있다. 미국인 제이미 존슨은 범룽랏 국제병원에서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아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케이스다. 당뇨병 환자였던 그는 교회 성가대와 함께 말레이시아를 관광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발목 감염이 신장 이상으로 전이되면서 결국 그는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태국 방콕의 범룽랏 국제병원으로 옮겨졌다. 아시아 최초로 공인된 가장 현대적인 병원인 범룽랏 국제병원은 매년 전 세계 150개국에서 40만 명의 환자가 방문한다. 외국인 환자 수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이 병원에서는 심장병 치료부터 성형수술까지 거의 모든 수술이 가능하다. 내부 시설은 5성급 호텔을 무색케 할 정도이지만 값은 미국 병원비의 절반 수준이다. 물론 동남아시아 지역의 의료 서비스가 국내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은 아니다. 범룽랏 국제병원 등 세계적 병원들의 경우 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아 이것저것 따지면 비용이 국내 대학병원 수준과 맞먹는다. 또 심장질환, 암 치료 등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의료 서비스는 국내 대형 병원들이 훨씬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 의료 서비스를 받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은 이들 지역의 의료 서비스는 요양 등 관광 서비스와 결합돼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태국만 해도 외국인들이 찾는 병원 주변에 대규모 리조트 시설이 위치해 있어 요양을 병행할 수 있다. 관광 삼아 나들이 갔다가 현지에서 장기간 체류하면서 의료 서비스를 덤으로 제공받고 있는 셈이다. 최근 여행 판촉회사 아바카스 인터내셔널은 이처럼 의료 목적을 겸해 아시아 국가를 찾는 관광 수요가 오는 2012년에는 44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최첨단 의료서비스 외국인들이 몰린다. 국제청심·인하대병원등 인기 동남아시아에 비해 국내 의료기관들의 외국인 대상 의료서비스 수준은 이제 시작 단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1~9월 외국인이 국내에서 의료 서비스 대가로 지불한 금액은 3660만 달러에 그쳤다. 서울아산병원과 강북삼성병원 등 일부 대형 병원에 외국인들을 위한 의료 서비스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성과를 거둘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나마 가평에 있는 국제청심병원은 일본 관광객들이 대거 몰리면서 외국인 환자 유치에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 통일교가 운영 중인 이 병원은 지난 2005년 611명의 외국인이 다녀갔다. 이 병원은 특히 일본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집중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국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고자 희망하는 수요가 상당하다. 한국보건산업연구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불 능력을 갖춘 중국인 중 60%가 미용 성형, 치아 미백ㆍ교정ㆍ임플란트, 미소침습디스크 수술 등을 한국에서 치료할 의향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병원 업계는 청심국제병원의 성공을 △종교 재단의 지원 △춘천과 연계된 관광 상품 개발 △외국인 간호사, 의사 확충 등이 시너지를 발휘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분석한다. 특히 그 중에도 핵심은 외국인 인력이다. 이 병원은 임직원 중 30% 이상이 외국인이다. 행정 시스템은 물론 안내 자료도 영어 한국어 일본어로 만들어져 있다. 지난해 6월에는 트샤키아 엘베보리 몽골 전 총리가 이 병원을 방문해 자기공명영상법(MRI), 컴퓨터단층촬영법(CT) 등의 검사를 받았다. 한진그룹이 운영하고 있는 인하대병원도 대한항공의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 환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인하대병원의 경우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패키지로 판매하고 있으며 1년에 360명 정도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국제청심병원 등의 성공은 국내 다른 대형 병원들에게 좋은 선례가 될 전망이다. 실제로 우리들웰리스리조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주도 특구 내인 서귀포시 상효동 일대 37만 평에 1800억 원을 들여 복합 토털 헬스 케어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100병상 규모의 척추병원인 제주우리들병원, 18홀 골프장, 70실을 갖춘 콘도미니엄, 공연장, 갤러리 등이 건설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