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마련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좀 될까하는 마음에서 적어봅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제 이야기입니다.
저 또한 타인의 내집마련 경험담과 충고를 듣고, 읽으니 귀가 열리더군요.
심심하신 분들은 부담없이 읽어주시라고.....
1996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25살의 나이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뭐 부동산이고 뭐고 재테크에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경제관이 저에게 그대로 전해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 오직 근면성실로 직장생활을 하시며 저축으로 가정경제를 관리하시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열심히 노력해 돈벌어 저축하면 된다는 생각이 저의 경제관이었습니다.
성실히 노력하여 돈을벌어 저축하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것이다....
그당시 1800만원정도의 연봉이 되는 직장에 다녔던 시기였습니다.
실수령 월급이 130만원 전후 였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머니께 통장을 드리고 저는 용돈을 받아 생활하였습니다.
1년 정도 얼마의 용돈으로 생활하면서 지내다...여자친구가 생기게되고...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는 등 데이트 비용의 지출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용돈으로 부족한 부분에 대한 현금서비스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1~2년이지나니니 몇백만원의 빚만 남더군요.
결국 준비되지 않는 신랑감에 대한 벌이었는지 여자쪽 집안의 반대로 여자친구와의 헤어짐이 있게되었습니다. 돈도 없고 직업도 별루나 딸을 못주시겠다고 하더군요.
이 일로 저는 경제관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돈을 많이 모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카드돌려막기로 생긴 빚은 월급을 몽땅 넣어 해결하고 경제적인 독립을 선언하며 어머니께 통장을 뺏어왔습니다. (간도크죠?)
그리고 장기주택마련저축통장을 만들고 월 100여만원을 저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더군요.
시간이 지나면서 또다시 경제관념에 대한 생각이 무뎌지고..
직장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다보니 월급의 대부분은 유흥비로 지출이 되었습니다.
또한 자동차에 대한 욕심으로 통장을 해약하여 자동차를 구입하는 일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부자아빠에 나오는 자본잠식률 최고를 자랑하는 자동차를.........
그 무렵 직장 친구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여자와 결혼을 생각하게 됩니다.
서로 보일것 못보일것 다 보이고 지낸 사이었는데.....
제가 성격이 좀 냉철하고 그래서 종교나 뭐 그런 미신같은 것을 잘 안믿습니다.
하지만 와이프를 만나면서 '인연'이란 존재한다는 확신을 하게됩니다.
'정말 인연이라는게 있구나.....'
벌어놓은 것도 없이 결혼을 생각하다니 이 대목에서도...(간도크죠?)
이런 저에게 딸을 흔쾌히 주신 장인 장모님께 감사드립니다.
1999년말 28살의 나이로 결혼을 했습니다. 집사람 또한 저와 동갑입니다.
돈은 한푼도 없었습니다.
첫 직장생활해서 어머니께 드렸던 돈은 어머니가 사시는 집을 장만하시는데 보테후라 집안사정을 잘 아는 저는 돈을 달라고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께는 그냥 제가 알아서 집 구하고 결혼하겠다고 말씀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미안하다며 통장에 있던 돈 1000만원정도를 결혼 비용으로 주시더군요.
집은 서울이며 일산에 근무하던 저는 일산에 집을 얻기로 하였습니다.
아파트는 돈이 없어 구할 엄두도 못내었습니다.
그래서 근린상가주택부지에 3층짜리 주택중 2층에 18평정도 되는 주택의 전세를 구했죠.
지금 기억으로 2900만원정도의 전세집으로 기억합니다.(금액이 정확하지 않네요. 2700같기도하고..)
직장에서 2000만원의 신용대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집사람이 혼수장만하고 남은 돈, 결혼비용에서 좀 남은 돈 뭐 그런 것으로 해결하였습니다.
결국 마이너스상태에서 결혼을 시작한셈이네요.
결혼후 집사람도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습니다.
빚을 갚는데도 한결 수월함을 느꼈구요.
아이는 결혼 후 1~2년 있다가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갖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더군요.
결혼 후 허니문베이비는 아니지만 하여튼 결혼하는 그 달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2000년 7월에 첫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4kg의 사내아이였는데.....무통도 아닌 그냥자연분만으로 출산한 와이프의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울렁거리며 벅차오릅니다.
아이가 생기니 저축하기도 힘들어지더군요.
와이프가 직장생활을 계속했기 때문에 동네 아주머니를 구해 아이들 맞겼습니다. 아주머니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50여만원에 분유, 귀저기, 아기용품들 구입하다보니 생활은 넉넉하지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아이보시는 아주머니께서 2~3번 바뀌면서 아이의 정서적인 문제도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2001년 전세계약이 끝나면서 결혼후 2번째 집으로 이사가를 가게됩니다.
아이를 보아줄 아줌마를 구하기 위해 무작정 아파트 촌으로 들오가기로 합니다.
아파트 같은 동에 아줌마가 보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아무래도 아파트에는 사람들이 밀집해서 많이 살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 봐줄 아줌마 구하기도 쉬울듯했구요.
일산동의 21평 복도식 s아파트를 구했습니다.
전세금은 5000만원이었죠.
이 돈이 어디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근로자전세자금대출 2,000만원에 직장대출 을 활용했습니다. 아마 그 때 우리 자본금이 2500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행복했죠. 그 감정은 집을 조금씩 넓혀갈 때 누구나 느끼는 그런 감정일겁니다.
그때 우연히 부동산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됩니다.
집값이 급등한다는 신문기사가 거의 매일 올라올 시기였죠?
제 성격이 한군데 빠지면 그곳의 전문가가 되어야 그 곳을 빠져나오는 집착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궁굼한 것은 어떻게든 찾아서 내것을 만들고 하는 성격이었으니까요. 오지랍이 넓다고 해야하나요? 하여간 여러 방면으로 많은 지식드을 내 머리속에 넣으려고 하는 성격인지라....
닥터라는 싸이트를 접하게 되면서 저의 공부는 시작됩니다.
거의 5개 이상의 싸이트를 샅샅히 검색하면서 모든 정보를 내것으로 만들어갔습니다. 하루 5시간 이상정도는 이러한 정보를 보는데 할애하였습니다.
세법, 부동산법 등 거의 대부분의 부동산 관련 정보를 머리속에 담아갔습니다.
궁굼한 경우 직접 돌아다니며 눈으로 보고.....단지를 살피고.....
1년정도를 그렇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부동산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1. 돈을 버는 속도보다 집값이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르다.
2. 대출이자내는 것보다 집값은 훨씬 더 오른다.
3. 대출받아 집을 사 집값은 묶어두고 평생 그 돈만 갚으면 내집이 된다. 하지만 집값을 묶어두지 않으면 집값은 계속 달아난다.
뭐...이런 당연히 논리들에 대한 공감을 하게 됩니다.
집을 당장이라도 사야겠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그 당시 파주운정의 자유로아이파크 분양 발표가 있었습니다.
청약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였으나 기대이상의 고분양가로 청약을 포기하게 됩니다. 당시 34평이 16,100만원있는데 주변의 타 아파트들이 1억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주변 부동산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개발호재도 별로 없었던 지역에 16,100만원의 분양가는 당시 획기적으로 높은 분양가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인근의 운정 조합아파트 분양권 H아파트를 구입하겠다고 했을 때 부동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집사람이 흔쾌히 허락해주더군요.
자본금 2500밖에 없던 우리로서 정말 큰 모험이었지만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분양가 12,400만원이었습니다.
돈이 어디있었냐구요?
집사람 이름으로 직장 대출 2000만원을 받아 계약금을 치루었습니다. 아내의 청약부금도 해약했습니다. 저의 부금만 살려두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게 저의 다리를 잡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조합아파트의 무주택 자격유지를 위해 많은 기회를 장기가 잃게 됩니다.
조합아파트의 착공을 계속 미루어지고 집값은 계속 오르기만 하더군요.(2000년에 조합원을 모집한 그 아파트는 2006년 현재까지 정식 착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조합아파트의 착공만을 기다리며 내집입성에 대한 꿈을 꿉니다.
아이는 더이상 갖지 않기로 합니다.
경제적 이유가 가장크기도 했지만 육아를 담당한 사람이 없는 이유도 컸구요.
살림이 빠듯한 처지라 집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나 휴직할 생각을 못했습니다(지금생각하면 참 융통성도 없고 바로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육아용품(유모차, 카시트 등등)을 아는 사람들에게 기증해버렸습니다.
그 이후 일산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일산 아파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였습니다.
사실 일산의 매력은 다양한데 있었는데 제 개인적으로 자본금이 부족한 관계로 일산쪽에 실제 마음은 접어둔채 제 주변의 지인들이 필요한 경우 도움을 주는 선에 머물렀습니다.
2003년무렵 전후로 가좌지구 분양이있었습니다.
청약통장이 있던 저는 분양신청을 하였습니다. '당첨되면 1000만원만 받고 팔자....'분양권 전매가 가능했던 마지막 아파트였기 때문에 투자목적으로 청약하였습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청약후 파주신도시 발표가 이루어지면 가좌지구의 인기가 급상승하더군요. 로열층은 4~5000만원정도에 거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에 맞춰 저는 오른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사고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하게 됩니다.
입원실에서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있던 저에게 부동산 업자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가좌지구 당첨되었냐고? 병원에 있어 확인못했다고 하니 주민번호 대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대줬더니 2층에 당첨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분양권을 전매하게 됩니다.
병원에 있던 저로써는 정보를 접할 길이 없어 분양권 시세를 몰랐고, 2층이라는 이유로 헐값에 분양권을 넘겼습니다.
둘이서 열심히 맞벌이하고 분양권전매한 돈 등으로 결혼 3년 좀 넘은 시점에 대충 자본금 6000정도를 만들었습니다.
2003년 3~4월 경이었을까요?
전세집 만기가 되어 전세금 올려줄 일이 걱정이더군요.
대출이 여기저기 있는데 전세금을올려달라고 하면 또 대출을 받아야할 입장이었으니까요.
어렵게 통화한 집주인과의 통화에서 집주인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돈이 없다고 했더니 흔쾌히 그럼 안올리고 다시 재계약하자고 하더군요. 당시 집값급등여파로 전세금또한 많이 오른 상태였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사고 한박스 하들고 집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집주인은 나보다 5살정도 많아보이는 7살정도의 딸 하나를 둔 젋은부부 더군요. 그 부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옵니다. 신혼때 아파트 청약해서 당첨되어 그 중도금 매꾸기 위해 직장퇴근후 신문배달까지 한 이야기며 용돈 5만원으로 1달을 버틴 일이며...그래서 현재 3개의 집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1시간 가령 듣습니다. 화정의 택지개발이 될 당시 청약을 통해 2채를 분양받았고 일산도 우리집은 결혼후 한참 있다가 분양받은 것이더군요.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쯤 집사람이 둘째를 갖자고 하더군요.
생각할 수록 아이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저또한 흔쾌히 동의하였습니다. 그런데 3~4월생을 만들어야 한다며...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수술한 후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우리 둘째 아이를 만드느라 죽을뻔 했습니다.
첫 달에 실패~
둘째 달에 성공하여 둘째를 가지게 됩니다.
재계약하고 1년정도 더 살던 시점인 2004년 4월 둘째 아이가 태어납니다.
이 시점에 다시 제가 일을 저지릅니다.
조합아파트의 착공이 계속 지연되면서 이렇게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파주운정지구의 신도시발표등으로 그 지역에 대한 개발가능성에 투자를 하게 됩니다.
파주운정지구의 기존아파트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 운정 D아파트를 구입하게 됩니다. 18500만원에 계약을 했습니다. 집사람도 흔쾌히 허락해주었습니다.
대출이 얼마인지 계산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직장신용대출 6000, 아파트담보 9000, 조합아파트 중도금 대출 2700만원 등..... 저의 순수 자본금은 6000정도 였습니다.
이자비용만 150만원정도를 지출했던것 같습니다.
2006년 1월 '파주교하중대형 3년투자로 1억벌기'란 글을 쓰게 됩니다.
현실가능성이 크지 않고 확신이 서지 않는 글을 잘 쓰지 않아왔던 저로써는 확신이 있었기에 과감하게 시도한 글입니다. 글을 쓰면서도 제가 투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조합아파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하지만
2006년초 지루했던 제 투자에 지쳐 종지부를 찍기로 마음먹습니다.
운정의 조합아파트를 매도합니다. 어느정도의 프리미엄이 형성되어 있었던 터라...
또한 운정의 D아파트도 매도합니다. 이또한 어느정도 올라주었습니다....
여기에 어느정도의 저축을 통해 모은 돈도 합쳤습니다.
(물론 아직도 운정의 조합아파트의 매도에는 후회가 됩니다. 투자가능성이 매우 무궁무진한 아파트였기 때문에...하지만 지루한 조합과의 줄다리기에 지쳐 투자가능성이 있음에도 포기하고 만 경우죠. 입주후 4억이상의 시세를 충분히 보일 수 있는 아파트입니다. 지금 2억7천정도면 구입이 가능한데 다시 구입해 볼 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웃기죠? 그러나 자격이 안됩니다.)
역시 문제는 제 머리속에 있는 상식이라면 30평대 아파트는 어떻게든 장만하여 살겠지만 40평대로 옮기기는 쉽지가 않다는 계산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이 2개의 물건을 정리하고 중대형으로 옮기기로 마음먹습니다.
2006년 2월에 결정을 하게 됩니다.
제가 자본금이 넉넉치 않기 때문에 교하의 40평대로 옮기기는 무리가 따르다고 생각하였으나 운정의 조합아파트를 매도한다고 생각하니 뭐 옮기지 못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6년 5월 교하의 45평으로 둥지를 옮기게 됩니다.
분양가 3억1천, 프리미엄을 포함 2천정도의 인테리어비용 등기비용포함 총 3억9천의 비용이 소요되었습니다.
2006년 8월 현재.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제가 매도한 운정의 조합아파트는 제가 매도한 후 4000정도 더 올라주었고
제가 매도한 운정의 D아파트는 제가 매도한 후 7000정도가 더 올라주었습니다.
아깝냐구요? 그렇진 않습니다.
산술적으로 손해는 보고있지만 장기적으로, 혹은 여러 여건을 따졌을 때 후회스럽지는 않습니다.
더 쾌적한 공간에서 3살 7살난 아이들과 즐겁게 생활하고 있고
제가 옮긴 교하의 아파트도 제가 구입한 가격대비 1억정도는 올라주었습니다.
3년에 1억벌기란 글을 썼던 제 글이 무색하게 너무 일찍 올라버렸죠.
제가 벌어서 6년에 3억을 벌기 위해서는 1년에 5천씩 저축을 했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이게 끝은 아닙니다. 여기서 저의 고민은 계속될 것입니다.
저의 이러한 일들이 투기자 투자냐를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겁니다.
투기냐 투자냐? 그게 그렇게 중요한 사안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제가 번 돈으로 정당한 세금을 내면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가족의 보금자리를 위해 옮겨다녔던 이러한 일들이 결코 투기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첫댓글 생생한 투자 체험기를 느낍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글읽는동안 정신이 하나두 없네요 그동안 생활은 어찌햇는지?? 노력한만큼 효과가 있었으니 박수를....
참 열심히 사시는 분 같습니다...^^* 내내 행복하세요...^^*
잘 읽고 갑니다..^^ 항상 행복하시길...^^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세상에 그저되는건 없네요...노력또노력...공부해야지요.
글을 읽는동안 정리하고 이해하느라 심각했습니다. 하얀 미소님글보고 혼자 푸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암튼 사모님이 더 대단하십니다. 잘 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행복하세요
열심히 살고계시네요...^^
참 행복하시겠어요. 부럽네요...
부럽습니다.. 전 간이 약해서 일을 크게 못벌이는데...저도 요즘 생각을 조금씩 바꾸고 있습니다^^
정말 인내심이 대단하십니다. 추카드립니다.
이런글을 2년전에 보았다면 지금 우리처지도 마니 달라있지않았을까,,반성해봅니다^^;
미소님 글에 다른건 지식이 없어서 안들어오지만.위에 빨간색 글자의 단어는 당장여기에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들게 할정도로 가슴에 와닫는 말이네요..잘 읽었습니다
정말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온다는 게 맞네요..저두 공부해야겟겠요..그리고 아껴 살아야 겠네요
저도 공부 열심히 해야겠네요. 항상 행복하세요~~ ^^*
정말대단하시네영~~짝~짝~짝
몇달전에만 이글을 보았어도 내 처지가 마니 달라졌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ㅠㅠ
재태크 참잘 하신분 같아요 축하드립니다 부동산은 富를 창조 합니다... 열심히 잘 사시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