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게 무서운 사나이 [17 회 ]
“허억! 허억!” 남흥소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젠 더 이상 서있을 기력도 없었다. 마음속 깊이 차오르던 투지도 흔들리던 다리를 지탱해주던 사명감도 이젠 밤이슬에 사그라지는 모닥불처럼 그렇게 꺼져가고 있었다. “빨리 녀석의 품에서 만화미인첩을 꺼내.” “젠장할 늙은이! 왜 이렇게 목숨이 끈질긴 거야.” 남흥소를 쓰러트리는데 결정적인 수를 쓴 두 남자가 남흥소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합양이서(合陽二鼠)라 불리는 자들이었는데 스스로는 합양이웅(合陽二雄)이라고 떠벌리며 다니길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 모인 군웅들 중 급수가 떨어진다는 것은 그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이렇게 당당하게 나선 것은 믿는바가 있기 때문이다. “흐흐! 그래. 어서 만화미인첩을 꺼내거라.” “뒤는 우리가 봐줄 테니까.” 흑백상문이 그들의 뒤에서 음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군웅들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일이 끝날 리 없기 때문이다. “두 마리의 쥐새끼들, 당장 그 늙은이에게서 손을 때지 못할까?” 마침내 누군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남흥소의 곁으로 날아왔다. “드디어 움직인 거냐? 소혼미랑(素魂美郞) 만자랑.” 흑백상문 중 백문 이추문이 습격자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곧장 자신의 성명절기인 부골시음장(腐骨屍陰掌)을 펼쳤다. 슈우우! 그의 손에 지독한 음기가 서리더니 곧장 만자랑에게 몰려갔다. “흥! 이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이추문.” 만자랑은 자신의 목 어림까지 다가온 부골시음장을 향해 자신의 절기인 겁천검(劫天劍)의 절초를 펼쳤다. 콰-아-앙! 절기와 절기가 맞부딪치며 폭음이 터졌다. 그것이 신호였다. 이제까지 숨죽이면서 다른 이들의 눈치만 살피던 군웅들이 일제히 남흥소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들 중에는 이제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숨기고 관망만 하던 고수들도 끼어 있었다. 이젠 더 이상 두고 볼 수만 없게 된 상황이었다. 만약 이곳에 절대강자가 있었다면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겠지만 불행히도 아직까지 그런 자들이 오지 않은 것인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 누구도 이곳에 발을 들여 놀 수 없다.” 흑문 여준위가 광오한 외침과 함께 자신의 절기인 흑마소령수(黑魔소靈手)를 펼쳤다. 휘이이잉~! 단지 손을 휘둘렀을 뿐인데 일진광풍이 주위를 휘감았다. 그의 절기인 흑마소령수가 펼쳐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동시에 백문 이추문이 여준위의 공세에 합세를 해 부골시음장을 펼쳤다. 완벽한 합공, 비록 별 상관관계가 없는 절기 같았으나 두개가 동시에 펼쳐지자 그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퍼버버벅! “켁!” “크헉!” 순식간에 몇 번의 격타음과 함께 서너 명의 남자들이 뒤로 나가 떨어졌다. 그들의 가슴에는 손바닥 모양으로 옷과 가슴이 녹아 있었다. 비명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즉사한 것이다. “흐흐흐! 감히 우리에게 이빨을 드러내다니. 백년은 이르다.” 이추문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들에게 있어 이정도의 무인들은 한 끼 식사거리도 되지 않는 것이다. 아직은 진짜들이 나서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의 모습엔 한결 여유가 있었다. “맞아! 너희 정도로는 어림없단다.” 여준위가 옆에서 동조를 했다. 그들의 자신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 번의 손속 교환으로 만화미인첩을 노리던 자들을 물리쳤으니까. 군웅들의 습격에 잠시 움찔했던 함양이서는 흑백상문이 군웅들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고는 안심을 하며 남흥소에게 다가가려 했다. “아버지, 아버지!” 그때 처절한 음성이 사람들의 귀를 어지럽혔다. 너무나 처절해서, 너무나 애달파서 사람의 마음을 자신도 모르게 흔드는 소리. 그 소리에 궁웅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의 눈으로 거의 구르다시피 해서 달려오는 남자가 보였다. “아버지. 내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그러니까 바닥에 누워있으면 안돼요.” 남문용은 절규를 하면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흥소를 부둥켜안았다. “저건 또 뭐야?” 여준위가 그 모습에 망연히 중얼거렸다. 남흥소의 곁에 접근하는 무인들은 모조리 도륙하기로 마음먹은 그이지만 무공도 없는 사람에게 이렇게 어이없이 접근을 허용하자 그야말로 기가 막힌 것이다. “이때다. 모두 덤벼.” 그때 군웅들의 뒤편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군웅들이 그에 합세해 외쳤다. “흑백상문 따위에게 보물을 넘겨줄 수 없다.” “어차피 쪽수 앞에선 힘을 못 써. 모두 덤벼.” 비록 개인적인 능력은 흑백상문에 비해서 손색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수가 월등히 많았다. 비록 누군가 보물을 얻게 된다면 또 다시 군웅들의 표적이 될 테지만 그것은 그때의 일이었다. 지금 그들은 눈앞의 보물에 눈이 완전히 뒤집힌 상태였다. “젠장!” “이것들이 감히..........!” 흑백상문의 눈에 노화가 떠올랐다. 이제까지 조용히 흐르던 분위기가 거칠게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여준위가 군웅들을 견제하며 함양이서에게 소리쳤다. “빨리 만화미인첩을 꺼내라.” 그의 말에 함양이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급히 남흥소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남흥소를 부둥켜안고 있는 남문용을 보며 잔인한 빛을 띠었다. “이 노~옴! 죽이기 전에 어서 비키지 못하겠느냐?” “빨리 비켜라. 보물만 차지하면 너희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니까.”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남문용은 남흥소를 부둥켜안고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아....버지. 죄송해요. 죄송해요. 나만 죽으면 되는데 괜히 아버지까지 이렇게 만들어서요. 정말 죄......송해요.” 남문용의 귀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주위에서 부딪치는 병장기 소리도 무인들의 거친 고함도 어느 것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의 귀는 오직 점점 사그라져가는 아버지의 숨소리만이 들리고 있었고, 그의 눈에는 오직 미약하게 뻐끔거리는 아버지의 입술만이 들어왔다. “뭐.....라구요? 뭐라구 하시는 거예요? 안 들려요. 아버지. 제발 크게, 크게 좀 말씀 하세요.” 뭐라 입을 떼는 남흥소, 그러나 그의 의지는 소리로 전달되지 못했다. 이미 생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한 그의 몸이 말을 안 듣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문용은 알아들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아버지의 입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아본 것이다. 미.....안......하......다! 점점 꺼져 가는 생명의 끈을 부여잡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남흥소의 눈가에 한 방울의 눈물이 맺혔다. “아니에요. 오히려 내가 미안해요. 내가.........” 남문용은 남흥소의 몸을 더욱 꼭 껴안고 절규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합양이서는 어이없다는 얼굴표정을 했다. 갑자기 눈앞에서 벌어진 신파극에 어이가 없는 것이다.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구나. 내 네 녀석들을..........” 함안이서 중의 대형인 박안서가 그렇게 말하며 남문용을 향해 손을 쓰려했다. 그러나 그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등 뒤에서 들리는 감정이 없는 무미건조한 소리 때문이었다. “그들을 그냥 놔둬.” 부르르~!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올라왔다. 분명 군웅들과 그들 사이에는 흑백상문이 존재하는데 어떤 기척도 예고도 없이 누군가 등 뒤에 서있기 때문이다. “뭐야?” 아직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동생 박노서가 소리를 치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곳에 가죽옷을 입은 남자가 보였다. 그 모습에 박안서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웃음이 떠올랐다. 그가 보기에 남자의 모습은 그저 평범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젠장! 시간도 없는데 이런 녀석까지.............” 박노서는 소리와 함께 다짜고짜 신황을 향해 손을 날렸다. 그러자 박안서가 크게 소리쳤다. “안-돼!” 쉬이익! 그러나 박안서의 고함은 미처 박노서의 고막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박안서의 고함보다 엄청난 통증이 그의 뇌 속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 그의 절규가 서안의 골목 곳곳으로 울려 퍼졌다. 그의 고함이 어찌나 처절했는지 서로 어지럽게 뒤엉켜 싸우던 무인들의 움직임이 일시에 멎었을 정도였다. 박노서는 자신의 손목을 보며 절규를 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그의 손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황을 향해 날아가던 손이다. 그의 팔뚝은 어느새 바닥에 떨어져 퍼득 거리고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날카롭게 잘려나갔기에 아직까지 신경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경고야. 물러서!” 신황은 예의 그 감정 없는 얼굴로 거친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러자 박안서가 주춤거리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원래 그의 성격대로 하자면 앞뒤 잴 것 없이 신황에게 달려들어야 했겠지만 오랜 세월동안 강호의 밑바닥에서 굴러온 그의 육감이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박노서가 신황을 향해 이를 부득 갈며 덤볐다. 뇌리를 지배하는 지독한 통증에 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안 돼! 노서야.” 뒤늦게 박안서가 박노서를 말리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늦었다. 콰지직! “크아악!” 박노서의 무릎이 기형적으로 꺾이면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무릎에는 하얀 뼈가 살갗을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신황의 발이 격타하면서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으아아아~!” 박노서가 땅바닥을 뒹굴뒹굴 구르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그 소리에 무인들이 싸움을 멈추고 박노서를 바라봤다. “물러서라고 했잖아.” 신황은 싸늘히 중얼거리며 남흥소 부자를 향해 다가갔다. 수많은 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신황에게 꽂혀 있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버지, 아버지!” 남문용은 남흥소의 몸을 꼭 껴안고 하염없이 아버지만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신황은 남흥소의 맥을 잡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고 싶었던 말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다. 기구한 부자 사이, 그들은 살아있을 때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쪽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자 비로써 그 소중함을 깨닫고 깊은 마음의 상처를 가지게 되었다. 신황은 남흥소의 품을 뒤졌다. 그러자 만져지는 조그만 책자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망설임 없이 꺼내 들었다. 그러자 군웅들의 얼굴에 짙은 탐욕의 빛이 떠올랐다. “만화미인첩!” “만화미인첩이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따라 불렀다. 그것은 군중심리였다. 그들의 눈은 일제히 신황의 손에 집중이 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손에 들린 만화미인첩에 집중이 되 있었다. “이런 시러배 잡놈이.............” “어디서 어린놈이 지랄을................” 흑백상문의 눈에 기가 막히다는 빛이 떠올랐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엉뚱한 놈이 가져간다더니. 이것이 완전히 그 꼴이 아닌가. 그러나 신황의 눈은 그들에게 향해 있지 않았다. 그의 눈은 근처의 가장 큰 전각의 지붕을 향해 있었다. 그러자 그쪽에서 움찔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내려오시오.” 신황의 입이 열렸다. 너무나 차가운 목소리. 그러나 무이는 그 소리에 적대감이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같은 감정 없는 목소리지만 신황이 적대감을 가졌을 때의 느낌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무이의 시선도 전각을 향해 있었다. 전각위에서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그러나 신황은 그저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흑백상문의 눈에 분노의 기색이 떠올랐다. 신황의 태도가 완전히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망할 자식이, 정말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오냐! 죽여주마.” 그들의 몸에서 일제히 자신들의 절기가 펼쳐지려했다. 쉬이익! 순간 신황의 몸이 분열을 했다. 그리고 흑백상문의 눈에 신황의 잔상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가 바로 그들의 코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번만 더 시끄럽게 떠든다면 이렇게 끝나지는 않을 거야.” 그의 입에서 나직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무슨?” “이 녀석이..............” 아직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흑백상문이 뭐라 입을 열려 할 때였다. 갑자기 그들의 몸이 중심을 잃더니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츄화학-! 허억! “큭!” 그들의 다리에서는 붉은색의 선혈이 치솟고 있었다. 어느새 신황이 월영인으로 그들의 다리 근맥을 끊어놨기 때문이다. “...............” 순식간에 장내는 질식할 것 같은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언제 어떻게 그가 손을 썼는지 알아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신황의 움직임을 감지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내려오시오.” 다시 신황이 전각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전각의 위를 향해 있었다. 술렁~! 그 순간 공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녀석! 만화미인첩은 네 물건이 아니다.” “맞아! 보물을 내놓아라.” 누군가 외쳤다. 그러자 군중심리에 의해서 사람들이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어떤 붉은 기운 같은 것이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보물에 대한 끝없는 욕심, 그리고 집단이 만든 광기에 취해있었다. 이제 그들은 바로 터지기 직전의 벽력탄과도 같은 상태에 있었다. 이 상태에 누군가 불씨를 당기면 바로 폭발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불씨는 붙은 상태였다. “보물을 내놔라.” “그것은 네 것이 아니다.” “맞다!” “와아아아~!” 집단의 광기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큰일이 나겠군요.”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전각위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심상치 않게 변해가는 모습에 빙백쌍화가 걱정스런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한손이 열손을 당할 수는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혼자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이 많은 군웅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빙백쌍화가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홍시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기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진짜 고수들은 아직 나서지도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보물을 내놔!” “이야아아아~!” 마침내 군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이익! “시끄럽다고 했잖아.” 순간 신황의 손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동시에 그의 손에서 반월형의 검기가 뻗어나갔다. 월영인이었다. “크으읏!” “우아앗!” 칼날같은 검기에 앞에 있던 남자들이 기겁을 하며 피했다. 콰-아-앙!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군웅들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패였다. “히이엑!” 남자 한명이 자신의 앞에 움푹 패인 커다란 구멍을 보며 기겁을 했다. 그의 바지에는 누런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반월형의 검기가 날아올 때 정말로 죽는 줄 알았던 것이다. 신황의 눈에서 스산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남들 뒤에 숨어서 조잘거리며 선동하지 마라. 덤비고 싶으면 네가 직접 덤벼.” 꼭 이런 놈들이 있다. 자신은 앞에 나설 용기도 없으면서 꼭 뒤에서 남들을 부추기는 자들이 말이다. 지금 바지에다 오줌을 흘리는 자도 그런 자였다. 이제까지 군웅들의 뒤에서 제일 먼저 외치며 선동했으나 정작 그 자신은 제일 뒤에 빠져 있던 자였다. “쥐새끼들~!” 신황이 도발했다. 공기가 착 가라앉았다. 분명 수십,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고수들이 모여 있음에도 신황의 언행에는 거침이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만으로도 위축이 될 법도 하건만 신황은 그들을 한 번에 싸잡아 쥐새끼들이라고 매도해 버렸다. 누가 있어 이럴 수 있을까? 누가 있어 이렇게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을까? “저 사람은 도대체?” 홍시연의 얼굴에 곤혹스럽다는 빛이 떠올랐다. 저 거침없는 성격도 성격이지만 그가 자신의 무공을 드러내기 전까지 그녀는 그런 사실을 까마득하게 몰랐다. 체격은 잘 잡혀 있었지만 내공을 익힌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한번 움직이자 마치 폭풍이 움직이는 것 같다. 닿는 모든 것을 부숴버릴 듯한, 그래서 그의 앞길에 있는 모든 것을 초토화 시켜버릴 듯한 거대한 폭풍 말이다. “어린 잡놈의 새끼가 못하는 말이 없구나!” 슈우우~! 누군가 분노에 찬 음성을 토해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강양도인(鋼陽道人)이다.” “강양도인 양명위?” 군웅들이 그를 알아보고 감탄사를 토했다. 이제까지 군웅들 틈에 섞여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던 고수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강양도인 양명위, 이름처럼 도인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늘 도인 복장으로 다녔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그를 진짜 도인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가짜 도복 속에 패도적인 성격을 숨기고 다니는 싸움꾼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싸움을 쫓아 이제까지 존재감을 숨기고 있다가 신황이 쥐새끼라고 자신까지 매도해 버리자 참지 못하고 제일 먼저 나선 것이다. 부우웅-! 그의 손에 들린 기형의 봉을 맹렬한 속도로 휘두르며 그가 신황에게 짓쳐들었다. 그의 성명절기인 대황패력봉(大皇覇力棒)이 펼쳐지는 것이다. “일단 내손에 살아남고 나서 그런 말을 지껄이거라. 어린 놈!” 쉬이익! 엄청난 기세로 다가 오는 봉, 그리고 양명위의 얼굴.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신황의 무표정한 얼굴. 그의 눈에 살기가 떠올랐다. “우선 하나!” 말과 함께 신황이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그는 양명위가 휘두르는 대력패황봉을 향해 자신의 월영인을 펼쳤다. 신황의 손에 흐릿한 무형의 기운이 뭉쳤다. 그는 그것을 망설임 없이 양명위의 봉을 향해 펼쳤다. “어린 놈, 네놈이 단단히 미쳤구나. 감히 내 대력패황봉에 맨손으로 맞서려 하다니.” 양명위의 입에서 대갈이 터져 나왔다. 화가 났음이다. 또한 어이가 없음이다. 하지만 그는 내력을 줄이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박살을 내겠다는 일념으로 오히려 내력을 증가시켰다. 그러자 그의 봉에 푸른 기운이 넘실거렸다. 대력패황봉을 극에 이르도록 운용했음이다. 그러나 성둥! 순간 무언가 베어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헛!” 양명위의 입에서 헛바람이 터져 나왔다. 곤죽을 내리라 의심치 않았던 자신의 봉이 신황의 손에 닿기도 전에 무언가에 의해서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넌 싸움을 나이로 하나보지?” 신황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양명위에게는 마치 지옥의 사자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로 들렸다. “망할 새끼!” 그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라도 하듯 욕을 뱉어내며 손에 공력을 집중시켜 신황의 가슴어림을 쳐나갔다. 그러나 신황은 허리를 살짝 비틀어 그의 손을 피한 뒤 오히려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이익!” 양명위는 이를 악물며 신황의 팔에 잡힌 손을 비틀어 빼려 했으나 마치 강철집게에 잡힌 것 마냥그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황은 뱀처럼 그의 손을 감싸며 다리로 그의 머리를 휘감았다. “이것 놓지 못하겠느냐? 노~옴!” 양명위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신황은 그런 그의 소리를 외면한 채 몸을 회전시키며 그대로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쳤다. 슈우우~! 점점 다가오는 바닥, 확대되어 보이는 자디잔 돌멩이들, 양명위의 눈이 부릅떠졌다. 콰-아-앙! “케에엑!” 엄청난 굉음과 함께 양명위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목은 모로 꺾여 있었고, 그의 혀는 입 밖으로 길게 빠져 나와 있었다. 즉사였다. “다음..............” 그제야 신황이 일어나며 중얼 거렸다. 분명히 나지막한 소리였지만 중인들의 귀에는 너무나 또렷하게 들렸다. 내공이 실렸기 때문이다. 군웅들이 움찔거렸다. 신황의 목소리에 실려 있는 살기가 그들의 신경을 긁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군웅들을 보며 신황이 말했다. “다음 나와!” 다시 그의 말이 군웅들의 귀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움찔하는 군웅들, 그러나 누군가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잡종이.............!” 마치 깨진 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군웅들을 헤치며 달려 나왔다. 파바바바방! 그의 손에서 장력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그에 따라 주위의 공기가 넘실대며 요동쳤다. “자영소다. 개천장(開天掌) 자영소다.” 누군가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소리쳤다. 질끈 동여 멘 머리에 날카로운 눈동자를 가진 40대 후반의 남자, 그가 바로 섬서가 좁다하고 활보하는 남자였다. 개천장이라는 절기로 이제까지 홀로 독보한자가 바로 그였다. 그런 그가 모욕을 당하고 참을 리 없었다. 웅-웅-웅! 미처 장력이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여파가 밀려왔다. “둘!” 신황이 곱씹듯 말하며 자영소가 날린 장력 속으로 몸을 날렸다. 휘이익! 그의 팔이 횡으로 휘둘러졌다. 군웅들이 보기엔 마치 파리를 쫓는 손길로만 보였다. 그러나 그 가벼운 손짓이 가져온 결과에 그들은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쫘아아악! 마치 비단 폭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자영소가 날린 장력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신황의 눈에는 길이 보이는 듯 했다. 그와 자영소를 잇는 최단거리의 길이 말이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 길로 몸을 날렸다. “이런 잡종 놈의 새끼가.” 자영소는 자신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는 신황을 피해 뒤로 몸을 날리며 다시 개천장을 펼쳐냈다. 쉬이익-! 신황의 발이 마치 지상의 모든 것을 빨아올리는 용권풍처럼 맹렬히 회전을 했다. 그러자 그의 발에 월영인이 맺히며 자영소가 날린 개천장과 다시 부딪쳤다. 그러자 예의 비단 폭 찢어지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타탁! 신황은 허공에 뜬 그 상태에서 다시 자신의 월영인을 날린 발을 밟고 다시 몸을 회전시켰다. 자영소의 눈이 크게 떠졌다. 도저히 막을 방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라락! 처음엔 폭풍처럼 휘몰아쳤으나 막상 자영소의 앞에 도달했을 때는 잠잠해진 미풍처럼 사그라졌다. 영문을 모른 자영소가 다시 소리를 치려했다. 그러나 신황이 그의 옆에 내려서며 중얼거렸다. “잡종에게 죽으니 기분이 좋나?” “무슨?” 영문을 몰라 하는 자영소, 그러나 자꾸만 세상이 기울어진다. 그는 바로 서려고 하는데 세상은 옆으로 쓰러져갔다. 쿠-우-웅! 자영소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의 가슴에는 한줄기 기다란 자상이 끝없이 검붉은 선혈을 토해내고 있었다. “다음!” 다시 신황이 중얼거렸다. 이제까지 그가 상대한 두 사람 모두 섬서에서 명성을 날리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을 둘이나 쓰러트렸으면서도 그의 숨은 하나도 거칠어지지 않았다. 그의 행색만 본다면 그가 그토록 격렬한 동작을 소화해냈다는 모습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다음 안 나오나?” 신황의 목소리가 음울한 느낌으로 군웅들의 고막 속으로 파고들었다. 처음엔 영문을 몰랐다. 그가하는 말의 의미를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신황은 자신들에게 싸움을 거는 것이다. 이 수많은 사람에게 말이다. 그런데 마치 뱀 앞에 선 개구리 마냥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평소라면 머리수를 믿고 밀어붙였을 테지만 신황의 몸에서 풍기는 어떤 위험한 냄새가 그들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움찔 움찔! 군웅들의 몸이 들썩였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오직 본인들만이 알 것이다. 뚜두둑! 신황이 목을 움직여 굳어진 부분을 풀었다. 하~아! 그의 입에서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입에서 나와 허공으로 흩어져 가는 하얀 김을 보며 중얼거렸다. “안온다면 내가 가지.” 쉬이익! 갑자기 그의 몸이 흐릿해지며 형상을 잃었다. 극성에 이른 현월보였다. 마치 활시위처럼 튕겨져 나가는 그의 신형, 그는 그렇게 기척도 없이 군웅들 사이로 난입했다. “저런 미친!” 혈전검 관수문이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비록 이름뿐인 무림맹의 지부장이지만 그 역시 한때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던 자이다. 때문에 강호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혼자서 무리를 당할 수는 없는 법이다. 더구나 강호에서는 더욱 그렇다. 때문에 아무리 홀로 강해도 거대문파에 맞서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수문의 눈에는 마치 신황이 자살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보였다. 쉬이익! 신황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군웅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으아악!” “켁!” 그러자 몇 명의 남자들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쓰러져 나갔다. 모두 어깨에 깊은 상처를 입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죽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각적 효과는 충분했다. 순간적으로 그의 주위에 있던 남자들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신황의 눈은 오직 한곳을 향해 있었다. 이곳에 와 있는 인물들 중 가장 강한 기운을 풍기는 자, 비록 은밀하게 존재감을 숨기고 있지만 그의 몸에서는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었다. 신황의 입에서 다시 예의 사형선고가 떨어졌다. “셋!” 순간 신황의 다음 상대로 지목된 남자가 허리에서 빗살처럼 검을 뽑아내며 소리쳤다. “네놈이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그의 눈엔 황당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비록 그도 만화미인첩을 노리고 이 자리에 왔지만 다짜고짜 자신을 지목해 공격해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쉬쉬쉭! 그의 검이 분열을 했다. 처음엔 하나였던 검날이 분열을 거듭하며 열여덟 개 까지 늘어났다. 절정에 이른 환검이었다. 보통 환검은 환영으로 상대를 속이는 기술이지만 남자가 펼쳐낸 환검에는 실제와 똑같은 기세와 힘이 실려 있었다.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길 수 없었다. 파라랑-! 신황의 몸이 회전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의 팔이 수직으로 교차했다. 까가가가가강! 동시에 검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남자의 눈에 황당하다는 빛이 떠올랐다. 분명 상대의 손에는 어떤 무기도 없건만 쇳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놀라기에는 일렀다. 신황의 공세는 이제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씨이익! 신황의 발이 마치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에 맞서 남자는 검기를 펼쳐내며 신황의 몸을 절단낼 듯 바람을 갈라왔다. 순간 신황의 발이 궤도를 바꿨다. 허리를 노리던 그의 다리가 갑자기 남자의 목으로 날아간 것이다. 그에 남자는 기겁을 하며 검을 회수해 목을 막았다. 스가악! 순간 무언가 날카롭게 베어지는 소리가 군웅들의 귀로 파고들었다. 분명히 너무나 미약한 소리였지만 그들은 모두 똑똑히 들은 것이다. “어떻게 된.............” 주르륵! 남자의 목에 갑자기 한줄기 혈선이 나타났다. 처음엔 너무나 희미해서 육안으로 식별조차 할 수 없었지만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일만큼 또렷해졌다. 덜컹! 갑자기 남자의 목 앞에 세로로 세워져 있던 검이 동강나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남자가 무릎을꿇으며 바닥에 엎어졌다. 마치 용서를 비는 것과 같은 자세로 그는 그렇게 죽었다. “..............!” “...............” 누구도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혹시라도 입을 열었다가는 신황의 시선이 바로 자신을 향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신황이 쓰러트린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환검서생(幻劍書生) 정사익. 정사중간의 인물로 특히 이곳 섬서지방을 활보하는 자였다. 비록 섬서의 맹주인 화산파와 종남파에 가려 중원에는 커다란 명성을 날리지는 못했지만 순수 무력만으로는 결코 꿀릴 것이 없다고 알려진 자였다. 그런데 그런 자가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이 그들에게 던져준 충격은 엄청났다. 그들이 어떻게 손을 쓰기도 전에 이곳에 모인 자들 중 그래도 제일 강하다는 사람들이 모조리 죽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주춤 한발 뒤로 물러섰다.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비켜!” 군웅들의 한가운데서 신황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여파는 너무나 컸다. 그의 앞에 있던사람들이 모두 양옆으로 황급히 물러선 것이다. “저 많은 사람이 기세에서 꺾였다.” 그 광경을 보는 관수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누구하나 숨소리조차 크게 토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진정 싸울 줄 아는 자다. 저 수많은 무리들 중 가장 강한 자들을 골라 가장 처참하게 죽임으로써 군웅들의 마음을 꺾었다. 저것은 육체적인 상처보다 오히려 더한 상처이다. 이제 저들은 저자만 봐도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저자가 누구란 말인가? 도대체 저자의 정체가............” 관수문이 망연히 중얼거렸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연출한 자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며.............명왕, 명왕이다.” 오칠이 망연히 중얼거렸다. 그는 신황이 지금 신강 땅에서 전설처럼 떠돌고 있는 명왕이라고 확신했다. 반개 교수광을 단숨에 제압하고 이 많은 군웅들의 마음을 꺾었다. 더구나 목유환의 말에 따르면 그의 행적이 명왕의 행적과 일치한다고 했다. 한낱 변방의 우스개 이야기라고 치부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어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명왕, 진짜 어둠의 왕이다.” 오칠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덜덜 떨려 나왔다. 지금 그의 가슴에는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혼자서 독보하는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가슴이 떨려 오는 것이다. “명왕?” “명왕이라니.” “월영검마란 말인가?” 오칠의 말은 마치 전염병처럼 군웅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그들 역시 한번쯤 명왕이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한낱 헛소문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던 이야기다. 그러나 오늘 명왕의 실체가 그들의 눈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것은 오히려 소문이 모자랄 정도이다. 남들이야 떠들건 말건 신황은 다시 남문용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래도 군웅들 중 누구하나 덤벼드는 자가 없었다. “아저씨~!”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광경을 현실로 돌려 놓으며 무이가 남문용의 곁으로 달려왔다. 그래도 누구하나 무이를 막지 못했다. “아저씨, 아저씨!” 무이는 넋을 놓고 눈물을 흘리는 남문용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같이 눈물을 흘렸다. 신황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전각 위를 보며 다시 말을 했다. “이제 내려오시오.” 더이상 전각위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홍시연과 빙백쌍화는 전각에서 몸을 날려 신황의 앞에 내려섰다. 자신의 앞에 내려선 그녀들에게 신황은 만화미인첩을 내밀었다. “받으시오.” “이것은?” 홍시연의 얼굴에 곤혹스럽다는 빛이 떠올랐다. 비록 자신들의 보물이긴 했지만 왠지 느낌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받으시오. 더 이상 어떤 일도 없을 것이오.” “이것을 그냥 주겠다는 말인가요?” 홍시연이 의문을 표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잇는 남자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신황이 건네주는 만화미인첩, 그곳에는 환영루의 조사가 남겼다는 무공이 숨겨져 있다. 그런데 그것을 선뜻 넘겨준다니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신황의 태도는 단호했다. “물론이오. 만약 보답을 하고 싶다면 저 남자를 살려주길 바라오. 그는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있는 사람이오.” “물론이에요. 우리는 분명히 그럴 용의가 있어요. 하지만.................” 홍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어떤 우려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러자 신황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오. 만약 여기에 있는 자들이 당신이나 저자에게 어떤 위해라도 가한다면 내가 그자를 쫓을 것이오. 검을 휘두른 자는 반드시 그의 목숨을, 상처를 입힌 자는 그자의 가족까지 가만두지 않을 것을 약속하오.” 홍시연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자리에 모인 수많은 고수들을 보며 하는 경고이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지만 신황은 이 많은 남자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황의 말에 군웅들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만약 입을 열었다가는 신황이 자신을 향해 덤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황은 만화미인첩을 넘겨준 후 무이를 향해 걸어갔다. 홍시연은 잠시 자신의 손에 들린 사문의 보물을 바라보다 신황을 향해 물었다. “당신은 왜 이 일에 끼어든 거죠? 당신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 일인데............. 오히려 이일로 인해서 귀찮아질 텐데 말이에요.” 우뚝! 신황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남자는 머리로 움직이는 게 아니오.” 그는 이어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남자는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이오.” 쿠-웅! 그의 말은 묘한 여운을 남기며 군웅들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홍시연이 망연히 중얼거렸다. ‘남자는 마음으로 움직인다고..........?’ 꾸-욱! 자신도 모르게 팔에 힘이 들어갔다. 터벅, 터벅! 남문용은 아버지를 등에 업고 길을 걸었다. 이미 싸늘히 식어 차가운 체온이 등줄기로 느껴졌지만 그는 전혀 힘든 줄 몰랐다. ‘이렇게 가벼우셨군요. 어렸을 때는 그렇게 커보이던 당신의 몸이 이렇게 가벼웠었군요.’ 등 뒤로 느껴지는 감촉이 손안에 잡히는 감촉이 너무나 허하다. 이십여 년의 세월 동안 처음 자신의 몸으로 느끼는 아버지의 체취였다. 한 가지 한이라면 그것이 너무 늦어 이제 더 이상 아버지와의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그들 부자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때문에 이별의식만큼은 자신이 치루고 싶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 땅에 자신의 아버지를 홀로 내벼려 두고 싶지 않은 것이다. 꼬옥! 무이는 신황의 검지를 꼭 잡고서 남문용의 뒤를 따랐다. 무이는 남문용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에 자신이 보였던 모습을 남문용의 등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이의 눈도 퉁퉁 부어 있었다. 남문용과 같이 울었기 때문이다. 신황은 묵묵히 남문용의 뒤를 따랐다. 여기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의 역할은 그를 지켜주는 것까지였다. 이제부터는 남문용 혼자 해야 할 일이었다. 기이한 행렬이었다. 남문용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의 아버지를 업고 산으로 올랐고, 그 뒤를 신황과 무이가 따랐다. 뿐만 아니었다. 그들의 한참 뒤에서는 홍시연 일행과 혈전검 관수문과 오칠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미 다른 군웅들은 모두 돌아가고 없었으나 그들만큼은 조용히 신황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관수문은 신황의 등 뒤를 기이한 눈으로 바라봤다. 지금 그의 심정은 매우 복잡했다. 이제껏 적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이야기를 들었던 그이다. 하지만 그의 삶 어디에도 신황 같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조차 없는 사람이 그런 손속이라니.............’ 도저히 조금 전의 그와 지금의 그가 동일인물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이다. 그렇게 무서운 손속으로 군웅들을 윽박지르며 자신의 뜻대로 모든 사태를 주도했던 남자, 그러나 지금 신황의 모습에서는 도저히 조금 전의 모습을 연상할 수 없었다. 정말 지독한 이질감을 풍기는 남자였다. 그런 관수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황은 조용히 남문용을 따를 뿐이었다. 산 정상, 남문용은 혼자의 힘으로 주변 나뭇가지를 모아 제단을 만들었다. 아무도 그 과정에 끼어드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남문용 혼자만의 힘으로는 치루는 이별의식, 그 누구도 남문용의 의식에 끼어들지 못했다. “하아~! 하아~!” 홀로 나뭇가지를 쌓아 제단을 만들고 그래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래도 남문용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남흥소의 시신을 제단위에 올렸다. 그리고 부싯돌을 찾아 불을 붙였다. 타닥, 타닥! 몇번을 부딪치고 나서야 제단에 불이 붙었다. 화르륵~! 불이 붙은 제단이 맹렬한 속도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시뻘겋게 타오른 불꽃은 금방 제단을 휘감으며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편히 가십시오. 우리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하지만 훗날 저승에서 다시 뵙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다른 부모와 자식들처럼 정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주르륵~! 남문용의 창백한 뺨 위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억지로 버티고 서있었다. 홍시연은 그런 남문용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비록 사문의 보물을 훔쳐 달아난 자의 아들이었으나 이미 그런 생각은 그녀의 뇌리에 들어있지 않았다. 어차피 보물은 무사히 회수되었고, 신황이란 신흥 강자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흘끔 신황의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어디서 그런 폭발적인 힘이 나오는 것일까? 아무리 봐도 무공을 익힌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진정한 고수는 겉모습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더니 바로 이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인가 보구나.’ 그것이 그녀가 신황을 보면서 가장 절실히 느낀 점이었다. 물론 그녀도 그런 사람을 본적이 있다. 바로 그녀의 사부인 환존(幻尊) 홍연후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아직까지 신황과 자신의 사부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녀의 사부는 너무나 높은 곳에 존재했다. 그녀의 사부인 홍연후는 대륙십강에 드는 초강자로 이미 다른 무인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존재였기에 감히 다른 자들과 비교한다는 것은 불경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아직까지 신황의 능력에 많은 혼동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신황이 무이와 함께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가시렵니까?” “그렇소! 그가 부친의 장례식을 치루는 것을 보았으니 이제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소.” 신황의 말에 홍시연이 기이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신황은 그런 그녀의 시선을 아는지 묵묵히 앞만 바라볼 뿐이었다. “무이를 데리고 하북으로 가시렵니까?” “그렇소!”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녀의 물음에 신황은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무이의 외가가 북경에 있기 때문이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대협께서 무이를 맡아 기르는 것이 아닌 모양이군요.” “내 딸아이나 다름없는 아이요. 그런 것은 이미 중요하지 않소.” 꼬-옥! 신황의 말에 무이가 손가락을 꽉 잡았다. 이미 마음으로 의지하고 있는데 입으로 확신을 해주니 더없이 고마운 것이다. “무이의 외가가 북경에 있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보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마침 우리도 목적지가 그곳이니까요.” “으음~!” “혹시 북경에 오시게 된다면 만화장(萬華莊)을 찾아주십시오. 환영루는 결코 은인을 잊는 법이 없습니다.” 홍시연은 다시 한 번 신황을 보기를 원했다. 그것이 단순한 호기심인지 아니면 또 다른 마음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는 그녀 자신도 몰랐다. 단지 그녀는 지금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었다. 물론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나 다행히 어두운 밤이라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다. 신황이 뭐라 대답하기 전에 무이가 먼저 나섰다. 무이는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홍시연에게 말했다. “북경에 도착하면 반드시 만화장에 찾아갈게요.” 무이의 말에 홍시연이 그녀의 앞에 쪼그리고 앉으며 어지러워진 무이의 옷차림을 정리해주었다. 그녀는 깔끔하게 무이를 단장해주고 나서야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그래! 북경에 오면 반드시 찾아와야 한다. 그때는 나랑 같이 북경을 돌아다니자꾸나. 내가 구경을 시켜주마.” “네!” 무이는 발그레해진 얼굴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런 무이의 얼굴을 보며 홍시연 역시 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녀들의 눈에는 서로에 대한 정이 흐르고 있었다. 비록 그녀들이 만난 것은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들은 매우 깊은 정을 쌓은 것이다. “그를 부탁하오.” 그녀들 사이에 신황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의 말에 홍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그는 분명히 제가 책임지고 완치시켜 드리겠습니다. 저희한테는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것은 무이한테 먹이세요. 무이 같이 어린 아이가 육로로 간다며 고생이 심할 겁니다. 하지만 뱃길로 가면 조금 편하게 갈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이 단약을 먹이세요. 이 단약은 속을 보호해 탈이 나지 않게 도와주는 것으로 저희 환영루의 직계 제자에게 지급되는 것입니다.” 홍시연이 내민 것은 기름종이에 쌓인 조그만 환약이었다. 이미 무이에게 배 멀미를 해서 육로로 왔다는 것을 들은 그녀의 자그마한 배려였다. 그리고 환약의 약효는 결코 이렇게 가볍게 주고받을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환영루의 직계 제자에게 지급되는 것이니 만큼 몸을 보호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신황은 그녀의 호의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고맙소!” 신황은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무이를 들어 자신의 어깨에 태웠다. 그리고는 홍시연에게 포권을 해보이고는 신형을 돌렸다. 전혀 망설임 없이 등을 돌리는 그의 태도에 홍시연은 묘한 허탈감을 느꼈다. 이제껏 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미모에 감히 시선을 떼지 못했는데 저 남자는 너무나 쉽게 그녀의 얼굴을 외면했다. 그것이 그녀의 가슴에 어떤 파문 같은 것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자신의 마음에 이는 파문이 왜 이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허전하다는 생각만이그녀의 뇌리를 지배할 뿐이었다. 홍시연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신황은 무이를 어깨위에 앉히고 어두운 밤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그가 걸음을 멈췄다. “안 비킬 것이오?” 그의 앞에는 엉거주춤 서있는 관수문과 오칠이 있었다. 신황을 따라왔으나 막상 그가 앞에 있자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기이한 눈으로 바라보는 신황의 시선에 그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한참 말을 머뭇거리던 관수문이 마침내 용기를 냈는지 입을 열었다. “명왕이 맞습니까?” 신황은 그의 눈을 한참을 들여다 보다 입을 열었다. “신강에서는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 같더군요.” “그럼 신강에서 천산파를 봉문시킨 것이 맞습니까?” 신황은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긍정의 뜻을 표했다. 그러자 관수문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매우 실례란 것을 알기에 금세 얼굴 표정을 수습하고 물었다. “왜인지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신황은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로 말했다. “원한이 있기 때문이오.” “그런..............!” 관수문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단지 원한 때문에 천산파란 거대방파를 봉문 시켰다는 신황의 대답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황은 더 이상 그의 이야기에 대답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는지 그대로 관수문을 스쳐지나갔다. 어차피 남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그는 그렇게 무심히 관수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관수문은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신황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아! 그는 정말 어려운 사람이구나.” 그가 평소에 어려워하고 곤란해 했던 종남파나 화산파의 속가제자들이 검조차 뽑아볼 생각을 하지못하고 뒤돌아서게 만든 남자였다. 그런 그가 무력은 둘째 치고 성격조차 만만치 않으니 어찌 말을 건넬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의 한숨 속에서 서안의 밤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다음날 신황과 무이는 일찍 객잔을 벗어났다. 예상치 못했던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은 의식치 않았으나 이미 서안의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이른바 유명세를 치르는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종남파와 화산파의 속가제자들이 신황을 바라보는 시선은 남달랐다. 이제까지 서안을 자신의 앞마당처럼 활보했는데 검조차 뽑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히 신황의 앞에 나서지는 못했다. 단지 신황에 대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어서 본산에 그의 존재를 알려주기 위하여 부지런히 움직일 뿐이었다. 신황은 배를 타고 섬서와 산서의 경계에 있는 하진현(河津縣)까지 가기로 마음 먹었다. 홍시연의 말처럼 배를 타고 가는 것이 아직 어린 무이의 건강에 좋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홍시연의 말처럼 환약이 약효가 좋다면 배 멀미를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당겼다. 다행히 서안에는 나루터가 존재했다. 서안에 있는 상단이나 표국들이 주로 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할 만큼 이곳은 뱃길이 잘 정돈 되 있었다. 많은 양의 물건을 한꺼번에 옮기기에는 배만큼 편한 것이 없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신황과 무이는 쉽게 배를 구할 수 있었다. “이곳은 전에 우리가 배를 탔던 곳보다 더 크고 복잡하네요.” 무이가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미 한번 배를 탔던 경험이 있는 무이였다. 그러나 이곳은 전에 그들이 건넜던 여강보다 훨씬 강이 넓었다. 그만큼 이곳을 다니는 배들도 더욱 규모가 컸다. 또한 나루터에는 많은 짐들과 상인들로 북적거렸다. 때문에 이곳엔 남다른 활기가 넘쳐흘렀다. 신황 역시 이렇게 복잡한 광경은 처음 보기에 약간은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으로 통하는 뱃길이라 그런지 유달리 사람들이 많구나.” “정말요! 와~! 이렇게 사람이 많이 붐비다니 정말 신기해요.” 무이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게 보이는 듯 했다. 신황은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 보관해 두었던 환약을 꺼내 무이에게 내밀었다. “배에 타기 전에 먼저 먹어 두거라. 이런 종류의 환약은 미리 먹어두어야 효과가 있는 법이다.” “네~!” 무이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냉큼 환약을 입안에 넣었다. 그러나 곧 무이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졌다. 그녀는 혀를 내밀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이~ 써! 환약이 생각보다 쓴 모양이었다. 귀엽게 미간을 찌푸린 무이를 보며 신황은 흐릿하게 웃어주었다. 처음엔 얼굴의 표정이 많이 부족했는데 갈수록 무이의 얼굴 표정이 다양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무이의 마음속에 진 응어리도 많이 풀렸을 것이다. 그것이 신황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자 배에 타자꾸나. 출발할 시간이 다 되었으니.” “네~! 백부님.” 무이는 대답과 함께 타다닥 뛰어서 그들이 타기로 한 배를 향해 뛰어갔다. 이젠 마음대로 뛰어도 그리 숨이 차지 않기 때문에 무이는 요즘 자주 뛰었다. 그러나 오늘은 너무 마음이 앞섰나 보다. 탁! “아~!” 무이가 그만 돌 뿌리에 발이 걸리고 말았다. 무이는 두 팔을 휘저어 균형을 잡으려 했으나 이미 달려오던 기세가 있어 그만 앞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신황은 그런 무이의 모습에 잡아주려다 동작을 멈췄다. 그보다 먼저 무이를 잡아주는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은가? 꼬마 아가씨?” 굵고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이다. “아~!” 무이는 넘어지는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우는 커다란 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이를 일으켜 세우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 마치 통나무처럼 두툼한 다리에 바위 같은 동체, 그리고 무이의 몸을 한 번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손바닥과 그에 못지않은 굵직한 팔뚝, 그리고 마치 장비의 수염처럼 턱을 뒤덮고 있는 거친 수염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남자였다. 그러나 얼굴이 동안인 것으로 보아 그리 많은 나이를 먹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무이를 향해 웃으며 다시 한 번 말했다. “괜찮으냐?” “아........네! 감사합니다.” 다시 물어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무이는 급히 고개를 숙여 감사의 표시를 했다. 그러자 남자가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조심해라. 사람이 많아서 잘못하면 다칠 수가 있으니 말이다.” “네! 앞으로 조심할게요.” “그래!” 남자는 무이에게 예의 웃음을 보여주며 일어섰다. 그러자 그렇지 않아도 장대한 그의 덩치가 더욱커보였다. 신황은 남자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고맙소!” “하하~! 별말씀을...............” 남자는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순간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남자의 눈에 이채가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매우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이내 본래의 눈빛을 회복하고 다시 특유의 얼굴표정으로 말했다. “이 배를 타는 모양인데 여행 잘하시오.” “그쪽도..............!” “하하하~! 꼬마 아가씨 다음에 또 보자구.”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등을 돌렸다. 그러자 그의 거대한 등에 가려져 있던 엄청난 크기의 도가 드러났다. 도의 크기도 어지간한 어른의 몸만큼이나 두껍고 컸는데 남자의 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배위에 올라타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를 맞았다. 그는 덩치 큰 남자와 달리 호리호리한 몸에 반동강 난 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여러모로 덩치 큰 남자와 비교가 되는 모습이었다. 그는 덩치 큰 남자의 뒤에서 조용히 그를 따랐다. 신황은 약간은 놀란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다 무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마치 무언가에넋이 빠져 있는 듯한 무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왜 그러느냐?” 신황의 말에 무이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아니...........그냥 아저씨의 눈이 쪼금 슬퍼보여서요.” “응?” “제 착각인가 봐요.” 신황의 말에 무이가 고개를 흔들며 혀를 내밀었다. 분명 호탕한 얼굴에 빛나는 눈동자를 가졌지만 무이의 눈에는 남자의 눈이 매우 슬퍼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이는 자신이 착각을 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남자의 모습은 너무나 호쾌해 보였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