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註 ; 다음글은 우리나라
대표 문학誌인 '월간 수필문학'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나의 소울 푸드 (Soul food) 2.
竹 林 齋 金 武 一.
요즘들어 'Soul food' 라는
음식이 부쩍 눈에 뜨인다.
직역하면 '영혼을 울리는 음식'
혹은 '추억을 담은
음식'으로 사용되는것 같다.
정확히 풀이하면
미국 남부 흑인들의
전통 요리법이 담긴
음식과 요리법을 뜻하는 단어다.
아울러 그들의 정체성과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가 담긴 음식이기도 하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미국 식민지 시절, 남부지역
목화농장에서
고된 노예생활을 하던
아프리카계 이주민들이,
그리운 고향의 전통음식으로
미국식 요리법과 재료를
결합시켜 만들어 먹던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이 음식은 눈물과 슬픔과
애환이 담긴 추억의 음식을 뜻한다.
필자는 1970년대쯤,
미국 흑인 해방운동가인
Malcolm X 의 자서전에서도
이 단어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온누리 꽃잔치로
여름이 짙어가고 있다.
필자에게도 여름을 맞을때 마다
떠 오르는 소울 푸드가 따로 있다.
독자들도 즐겨찿는 냉면(冷麵)이다.
냉면은 우리나라 고유의
찬 국수 요리중 하나로,
삶은 국수를 冷육수에 넣고
양념과 고명을 얹는 음식이다.
이 여름음식의 뿌리는
북한 평안남,북도와
평양을 지칭하는 관서지방이다.
그러나 냉면은 서울에서
이미 1800년代부터 생겨났다는
여러 역사적근거가 있다.
조선의 순조(純祖)가 야밤에
민가(民家)에서 사 들여 들었다는
냉면이야기는 작가 이유원의
'임하일기'에 수록되어 있고,
고종(高宗)실록에도 나온다.
고종은 특히 소고기 고명을 올리고
배를 송송 썰어넣은 시원한
동치미 냉면을 특히 좋아 했다는
기록이다.
이 냉면은 1903년경
서울 광화문 네거리,
지금의 동아일보자리에
문을 열었던 대형 요릿점
'명월관'에서 진상해,
임금이 들던 냉면이라 해서
한동안 '고종냉면'이라는
호칭으로 인기를 크게
끌었다는 내용이다.
이런 연유로 냉면은
단순한 메밀국수가 아니라
서울시민이 적어도 2백년 이상
사랑해온 역사깊은
소울후드라 하겠다.
서울에서의 냉면 역사를 살펴보면,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代에
북한에서 서울로 옮겨온
관철동에 '부벽루',
단성사 인근에 '백양루' 등이
성시(盛市)를 이뤘다고 전해지는데,
지금도 이 자리에
'백양 다방'이 영업중이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서울의 대부분 냉면집들은
물자부족으로 폐업 했다가,
광복후 한집이 1946년
'서북관'이라는 이름으로
냉면집을 열었는데,
이곳이 바로 '우래옥'의 전신이다.
냉면은 이제 서울의 음식으로
보편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K - Food 로 인식되었으며,
계절을 불문하고 냉면을 즐기는
이들의 '냉면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동시에 의정부에서 이름을 떨쳤던
'평양면옥' 창업주의 자제들이
현재 운영하고 있는
'을지면옥'과 '필동면옥'
그리고 장충동의 '평양면옥'이
장안의 다크호스로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찌는듯한 삼복더위에
여늬 음식점들은 밀려드는
손님들을 한 탁자에
마구 섞여 앉히는데,
다음 음식점 만큼은
아무리 대기자가 붐빌때라도,
모르는 사람들을 한 테이블에
섞여 앉히는 법이 없다.
창업주의 창업방침이다.
아울러 손님 한명이 소주 半병을
시켜도 친절히 응한다." 라는
음식전문 칼럼을 읽은적이 있다.
다름아닌 서울 을지로 4가
주교동(舟橋洞) 인근에 위치한
우래옥(又來屋)이다.
해방전 평양 고급 한식당
'명월관'을 운영하던 창업자
장원일씨가 광복후 서울로 옮겨와
문을 열었는데, 곧 한국전쟁을 맞아
한동안 휴업했다가
다시 돌아와 주교동에서
영업을 재개했다.
그리고 "다시돌아온 집'
이란 뜻의 간판을 걸었다.
그래서 또又자를 넣어
우래옥(又來屋)이 되었다.
서울소재 평양냉면의 맏兄격이다.
얼마전 한국공연예술원(이사장 양혜숙)
에서 주관하는 'Mosaic Theater'를
관람하고, 인사동과 낙원동을
지나다가 우연히 '을지면옥
리모델링 공사 중'이란
임시간판을 보았다.
냉면 마니아라면 익숙한 이름이다.
홍정숙대표가 한창
현장점검중이었는데,
홍대표는 창업자
홍영남씨의 둘째딸이다.
'을지면옥'은 '우래옥' '평양면옥'
'필동면옥'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평양냉면 4大 노포(老鋪)로 꼽힌다.
아울러 서울 평양냉명의
계보를 크게 나누면
'의정부 계열' '우래옥 계열'
그리고 '장충동계열' 로 나뉘는데,
을지면옥은 의정부계열에 속한다.
평양 대동강변 출신인 홍영남씨가
1969년부터 경기도 전곡
'평양면옥'에서 냉면을
만들어 팔다가 소문이 나면서
1987년 의정부로 옮겨와,
장남 홍진권씨가
代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1985년 門을 연 서울 을지면옥은
둘째 딸 홍정숙씨가,
'필동면옥'은 맏딸 홍순자씨가,
서초구 잠원동 '본가 평양면옥'은
막내딸 홍명숙씨가 경영중이다.
의정부계열 냉면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는
육수가 무미(無味)할 정도로
밍밍하지만, 먹을수록
특유의 감칠맛이 우러난다.
곱게 빻은 고춧가루를
살짝 뿌려 내는게 특징이다.
냉면 맛은 거의 같지만 기타 메뉴는
식당마다 조금씩 다른데,
을지면옥은 돼지고기를 삶아서
차갑게 식혀 얇게 저민
'편육'이 냉면만큼이나 인기다.
마니아들은 "부드러운 편육을
소스에 찍었을때
궁합이 매우 좋다"라며
"소주 안주로 이만한게 없다"
라고 격찬한다.
'서북관'으로 부터 시작된
우래옥 계열은 서울 평양냉면집 중
가장 역사가 깊다.
장원일씨 손녀 경선씨와
쌍둥이 여동생故 경원씨의 큰딸
안지민씨가 공동 운영한다.
한우(韓牛) 암소로만 우려낸
감칠맛 진한 육수에
강원도 평창메밀만으로 뽑는
사리를 말아 낸다.
서울 最古, 최고가(最高價)인
최고(最高) 냉면집이라는데
이견이 없을것이다.
서울 대치동과 미국 워싱턴店도
가족들이 나눠 운영했었지만,
얼마전 폐업했다. '벽제갈비'와
'봉피양'의 평양냉면을 우래옥
계열로 분리하기도 하는데,
이유는 우래옥에서 오랫동안 일한
故 김태원조리장이 1992년부터
벽제갈비와 봉피양 냉면의
기틀을 잡았기 때문이다.
장충동 계열은 평양에서
'대동면옥'을 운영하다가 월남한
김만섭씨와 며느리 변정숙씨가
1985년 장충동에서 개업한
'평양면옥'으로 출발했다.
본점은 변씨의 큰아들 김대성씨가,
논현점은 변씨와 둘째아들
김호성씨가 운영한다.
대성씨 둘째 딸 유정씨와
사위 서상원씨는 3代째로
2014년 도곡점을 개점했다.
신세계 백화점에 문 연
평양면옥은 둘째아들 호성씨의
둘째딸 은성씨가 이끈다.
논현동 '진미평양냉면'은
주방장 임세권씨가 논현점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장충동 계열로 분류된다.
육수는 의정부계열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간이 있고,
사리는 다소 까슬까슬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한
여운이 남는다.
을지면옥은 서울 중구
세운상가지구 재개발로 주변
노포들이 모두 문닫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을지로를 사수하려 했다.
하지만 재개발 시행사가
을지면옥을 상대로 낸
'부동산 명도 단행 가처분'소송에서
법원이 시행사 손을 들어주었다.
을지면옥은 2022년 여름
개업 37년만에 문을 닫고
'낙원동 시대'로 옮겨와 2년만인
금년 5월에 신장개업
하기에 이르른다.
끝으로, 한때 현대그룹에서 추진했던
금강산관광사업과 연관된
냉면 일화(逸話)를 소개하며
끝을 맺으려 한다.
때는 1998년 4월, 정부의
'남북경협 활성화 조치'가 발표됐다.
같은해 6월 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牛) 500마리를 이끌고,
남한 기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亞太)와
금강산관광및 개발사업에
합의하였던 때의 일이다.
현대그룹측 임원들과
북한측 간부들 30여명이
상견례를 하던날, 순조로운
사업진행을 염원하는 만찬자리에서
북한측 대표가 축하의 운을 띄운다.
"남조선 현대그룹 일꾼들의
노력에 답례로, 오늘 북조선
최고의 음식인 피양랭면을
제공토록 할끼니까니 맘껒 드시라요"
해 분위기도 분위기인 만큼,
침묵속에 조용히 들던중,
남측 임원 한명이
나즈막히 한 한마디 말로
회식장소는 순식간에
파장이 되고 말았다.
그 말 한마디는
"맛이 좀 틀리지 ?." 였는데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북측 간부들은
동시에 약속이나 한듯,
젖가락을 밥상위에
내 팽개치다시피 던지고
우리를 흘겨보며 우루루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해 진
우리 일행은 "왜 저래 ?.
갑자기 무슨일이야 ?." 하며
당황해, 몇몇 간부들이
얼른 뒤쫒아 나가 영문을 물어,
한참만에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결론은 "맛이 틀리지 ?." 의
'틀리다' 가 북한에서는
큰 욕이라 했다.
예컨데 '틀리다' 라는 뜻은
'틀려 먹었다',
'저 간나아 새끼래 틀려 먹었구만 !.'
하면 그는 구제불능의 상태로
낙인찍힐 만큼
심각한 표현이라 했다.
뒤늦게 오해가 풀려
다시 합석하긴 했지만,
저들이 나름대로 우리를
귀한손님으로 여겨
정성껒 준비한 상견례 자리였는데, "
맛이 서울 냉면과 좀 다르지 ?."
해야 할것을 아무 생각없이
우리식대로 표현했다가
다 된 밥을 엎을뻔 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모두 70여년 분단되어 살아운
우리민족의 비극중에 한토막
웃지못할 단막극의 소치였다.
하루빨리 평화통일된 그날,
우리모두의 여름 소울 푸드,
냉면의 본거지 대동강변
'명월관'에서, 통일의 축배를
함께 할 그날을 고대해 본다 (完).
출처: 산마루 오두막 원문보기 글쓴이: s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