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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찰나의 빛에 천년 공양심이 되살다(안강 용화사 공양상)
庭光散人 추천 0 조회 45 10.07.06 16: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천년 세월 동안 음지에서 공양 올리는 보살상

(안강 용화사 석조여래 좌대 공양상)

 

간혹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는 별 볼일 없다고 여겼지만 실속을 챙겼을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문화재를 찾아 갔을 때 두 경우의 수를 꼭 접할 경우가 있다. 오늘 말하는 경우는 후자에 속한 경우이다. 

 

그냥 들렸는데 뜻하지 않는 수확을 얻었을 때를 말한다. 늦은 봄 계절인 4월 28일, 간혹 봄 꽃이 절간 뜰에 화려한 색조를 띄우고 뭇 인간들의 눈길을 모두고 있었다. 경주 안강읍 근계리 입불상 탐방을 마치고 바로 근처 용화사란 절에 들렸다. 규모면에서 암자에 가까운 절이다. 

 

 

인적도 거의 없을 정도로 적막한 봄 뜨락에 세워진 오층석탑의 세월의 무게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신설된 탑이며, 대웅전이란 건물도 임시로 지어진 세멘트 건물 수준이었다. 하지만 근처 근계리 입불상이 있는 용운사 주지스님으로 부터 들었던 정보에 따라 대웅전을 들어갔다.

 

겉 건물과는 완전히 다른 금동 색조의 거불이 눈에 들어온다. 양 협시불도 화강암으로 조성된 석 약사석조불과 정병을 들고 있는 관음보살상이었다. 

주불의 크기가 협시불에 비해 너무 커 삼불의 비례가 맞지 않았다. 

 

주불도 석조불에 금색 개금을 한 부처였다. 아마도 앉아 있는 석조 좌대에 맞춰 주불이 커진 것 같았다. 지금의 주불은 제작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주목해야 것은 주불 아래 좌대에 있었다.  좌대의 크기와 제작 연대로 보아 통일신라시대까지 올라갈 것 같다, 

 

 정면 부분은  수미단으로 가려져 있어 좌측과 뒷면,측면 부분을 살펴보았다. 좌대 지대석위에 2단의 각형이 둘러있어 마치 3단층을 이뤄보였다. 뒷편 벽면과 좌대받침 사이간격이 좁아 겨우 손으로 어림잡아 손으로 사진 촬영할 정도였다.

 

뒷면인 북면과 좌, 우, 옆 면엔 중앙에 연꽃 좌대에 정좌하고 있는 석가여래상을 향해 우측 둥근 약합을 바치고 꿇어 앉아 있는 모습의 보살상이 보였다. 빛의 음영에 살아나는 얼굴 모습과 오른쪽 발가락을 세우고 있는 자태가 엄숙을 넘어 간절하고 영원한 숭앙을 염원하는 한국미를 보고 있는 듯, 나의 마음과 시선은 멈추고 영원한 안식을 느끼게 하였다. 왼편공양상은 오른편 받친 손길 자세가 다르다. 이 공양상의 자태에서 마치 성덕대왕 종에 새겨진 아름다운 비천상을 엿보았다.

같은 시대의 조각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아있었다.

 

둥근 뚜껑에 입방체 사리함같은 것을 바치고 있는 모습이다. 양쪽 모두 연화좌에 옆으로 양 무릎을 모두고 있는 모습이다. 잘룩한 허리며 얇은 천의를 거치고 마치 속살이라도 비춰나올 듯 섹시하지만 야화지 않은 정숙미가 담겨있다. 화강암을 엿가락처럼 주무리는 신라석공의 솜씨는 가히 일품임을 새삼 느끼게하는 장면이다. 뒷쪽 좌대 받침면 양 옆 공양보살상들의 상태가 양호하지만 가운데 부처의 경우는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있다.

 

하지만 동쪽 면에 보이는 가운데 여래부처님의 형태는 알아 볼 수 있었다. 연화좌대에 앉아 계시는 모습이  드러나 있다. 수인의 경우 훼손되어 사진 상으로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좀 더 자세한 관찰이 요구된다.

 

 좌대를 받치는 받침대의 훼손을 막기위해 보강 석재 기둥을 사면에 몇 군데 세웠고, 좌대도 일부 석재로 보강되어 있었다.  지금의 용화사는 좌대에 새겨진 공양상 때문에 만들어진 절인 셈이다.

 

 석가여래를 향해 양손에 값진 성물을 받치고 있는 공양의 손길, 꿇어 앉은 무릎, 가지런하고 정숙하게 느껴지는 양다리, 오른쪽 다섯 발가락을 곧추 세운 자세에서 석가여래을 앙망하는 간절함이 묻어나고 있다. 어둠 속에서 사진 속 찰라의 빛 속에 천년을 다시 살아나 우민들에게 가슴 속 참나를 찾아갈 수 있는 고요한 심정을 말해주고 있다(글돋)   

 

공양상을 볼 수 있는 곳

 

1. 봉암사 지증대사 부도 속 공양상

2.화엄사 4사자상층석탑 앞 공양상-팔각 석등을 떠받치고 있는 세 기둥 사이에 한 무릎을 세우고 연화좌 위에 정좌한 공양상의 경건한 자태 속에 부처님에게의 간절하고도 숭앙을 찬가하는 한국미의 한 모습을 보고 있는 듯 하다.

3.강릉 신복사터 공양보살좌상-탑을 향해 공양을 올리는 보살의 순진무구의 염원상을 보는 듯하다.

4.평창 월정사 8각 9층 석탑에서 볼 수 있는 보살공양상(고려시대의 작품)

5.사리공양상(供養像)-1980년 경주 금장대에서 박물관으로 옮겨놓은 사리용구 좌우에 각각 5구의 보살상이 사리용기를 향해 합장하고 있는 사리공양상

   

 

 

 

                               빛의 음영에 살아나는 얼굴 모습과 오른쪽 발가락을 세우고 있는

자태가 엄숙을 넘어 간절하고 영원한 숭앙을 염원하는 한국미를 보고 있는 듯,

나의 마음과 시선은 멈추고 영원한 안식을 느끼게 하였다.

뒷쪽 좌대 받침면 양 옆 공양보살상들의 상태가 양호하지만 가운데 부처의 경우는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있다. 

 서쪽 면 가운데 석가여래좌상이 보이지만  공양보살상은 훼손되어 보이지않는다

 금박으로 개금한 석가여래불, 좌대 뒷편에 동전과 염주, 기원 메모지가 놓여있다.

 

 동편 가운데 여래좌상불이 보이지만 옆의 공양불은 역시 훼손되어 없어지고 연화좌만 보인다

 보강석재기둥들이 조잡스레 다듬지 않아 보기 흉하다, 문화재지정이 되어야 지원금이 나올텐데..

 

 

 

 석등이 일본식이다. 현재 세롭게 짓는 절에는 일본식 석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석재공에게 일본사찰에서 주문하는 예가 많아, 그 도면으로 만들어진 석등을 한국절에 가져다 세운다.

스님들의 문화재 의식 또한 문제이다.마치 중국 석재공장에서 싸다는 이유로 중국식 석재들이 들어오는 예와 같다.

 세워진 오층석탑도 시대적으로 정체불명의 탑이다. 역사성이 결여된 석탑인 것 같다

 

 

 

 

 

                               <경주 안강읍 근계리 용화사 석조여래좌대 사면에 새겨진 공양상/촬영/글돋선생/2010.4.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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