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단조양(鍊丹調陽)’이라고 했다. 단양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낱말로 ‘신선의 환약을 먹으며 햇살이 두루 비쳐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뜻이다. 과거 고구려와 신라가 힘을 겨루며 피비린내를 풍긴 격전지였으면서도 선인들이 시를 지어 극찬해마지 않았던 아름다운 절경을 품고 있는 고장이 이곳 단양 아닌가. 역사 속 단양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그 길에는 단양의 오늘이 함께 한다. 속 깊은 소백산 자락의 품에 안기고 유장한 남한강 물결을 굽어보며 가는 길이니 기대가 크다.
1.땅 속에 묻혀있던 역사-단양적성과 신라적성비
칼날을 세우고 영토를 넓히려는 세력과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격전지를 돌아보는 마음이 쓸쓸하다. 피 흘려 쟁취했어도 어느 순간 또 다른 힘에 의해 빼앗기는 것, 그것이 역사 아닌가. 적성을 돌아보는 길에 비장함마저 감돈다.
[왼쪽/오른쪽] 단양적성1 / 단양적성2
1978년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은 단양적성 안에서 커다란 비석을 발견했다. 비석의 상층부는 갈라지고 마모된 흔적이 역력했으나 비문에 적힌 글자들은 그 내력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신라 진흥왕의 명을 받은 군대가 당시 고구려 땅이었던 적성을 점령하고 적성현이라 명명했으며 신라에게 충성을 바치는 자는 그 공을 포상하고 신라인과 동등하게 대우해주겠다는 내용이다.
[왼쪽/오른쪽] 신라적성비1 / 신라적성비2
진흥왕이 직접 나서서 점령하고 세운 진흥왕순수비와는 다르게 진흥왕의 명을 받은 군대가 점령하고 세운 비라 하여 ‘신라적성비’라 이름지어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으로 국보 제 198호로 지정되어 있고 적성 아래의 전각 안에서 보호받는 중이다.
신라적성비 옆으로 난 돌계단을 올라 울창한 소나무 숲을 따라가면 단양적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진흥왕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작은 산성이지만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해 산 정상 부에 돌을 쌓아 올려 만든 것이다. 그 둘레가 1km가 채 되지 않지만 서쪽으로는 충주로 가는 길목이요, 남으로는 죽령 고개가, 북동쪽으로는 남한강의 물길이 한 눈에 들어 오는 군사적 요충지다.
적성 안에서는 신라적성비 외에도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토기 파편과 고려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고구려에서 신라로, 신라에서 다시 고려로 이어지는 역사의 현장인 셈이다.
- 소재지
- 단양군 단성면 하방3길
- 문의전화
- 단양 관광안내소 043)422-1146
- 대중교통
- 고수대교 앞 단성, 상선암 행 버스 승차, 단성면 농협앞 정류장 하차, 도보 약 2k
2.향산리 삼층석탑
절은 사라지고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석탑만이 홀로 서 있다. 대웅전이 없어도, 불상이 보이지 않아도 폐사지를 둘러보며 마음이 절로 경건해지는 이유는 지난 시간의 흔적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향산리 삼층석탑도 그렇다.
신라 눌지왕 19년(435년)에 묵호자가 열반에 든 후 그의 제자들이 사리를 봉안하고 세운 석탑이다. 묵호자는 신라 공주의 병을 고쳐주면서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시킨 고구려의 승려다. 그의 사리가 봉안된 탑이니 그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석탑이 서 있던 향산사는 소실되고 석탑마저 도굴되고 말았다. 향산리 주민들은 처참하게 흩어져 있던 석탑을 수습하여 마을 한가운데로 모셨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마을 담장과 대문이 사방을 두르고 있는 셈이다.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이지만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이 엿보이는데 보물 제405호로 지정되어 있는 만큼 그 가치는 높은 석탑이다.
향산리는 단양읍에서 온달관광지로 가는 길목에 있으니 꼭 들러보자. 마을 주민에게 물으면 석탑의 위치를 친절히 안내해준다.
- 소재지
- 단양군 가곡면 향산길 34
- 문의전화
- 043)422-1146
- 대중교통
- 고수대교 앞 온달산성, 구인사행 버스 승차, 향산리 정류장 하차
3.퇴계 이황의 자취-단양향교
단양8경을 선정하고 멋진 이름을 지은 선현이 바로 퇴계 이황이다. 48세에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은 9개월이라는 짧은 재임 기간 중 많은 업적을 남겼다. 1415년에 세워진 단양향교를 지금의 자리에 옮기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단양향교 전경
향교의 대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풍화루에 올라 강변을 바라보면 퇴계 선생이 왜 이 자리에 향교를 옮겼는지 짐작이 된다. 언덕에 자리를 잡아 남한강변이 내려다보는 당당한 모습이다.
오른쪽으로 난 쪽문을 통해 향교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명륜당이 자리를 잡았고 진덕제와 제기고 등 부속 건물이 단아하게 배치되어 있다. 『서재유안』,『향계절목』등 지방향토사 연구에 자료가 되는 서적도 보관하고 있으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07호로 지정되어 있다.
[왼쪽/오른쪽] 단양향교 내부 / 단양향교에서 바라 본 풍경
- 소재지
- 단양군 단양읍 상방리 137-1
- 문의전화
- 043)422-1146
- 대중교통
- 고수대교 앞 단성, 상선암 행 버스 승차, 단성면 보건소 정류장 하차
4.천태종의 역사를 이끄는 사찰-구인사
소백산 자락이 겹쳐진 지세가 마치 한 송이 연꽃이 피어난 듯하다. 비로봉, 연화봉, 국망봉, 신성봉 등 구봉팔문이 연꽃 모양으로 겹쳐지는 가운데에 자리잡은 사찰이 구인사다. 1945년 창건된 천태종의 본산으로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은 아니지만 모두 40여 개의 전각을 갖춘 대규모 사찰이다. 한꺼번에 5만6천명의 불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왼쪽/오른쪽] 구인사일주문 / 구인사
주차장에서 사찰 입구까지는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되지만 일주문 앞에서부터는 걸어야 한다. 옮기는 걸음걸음마다 연꽃이라도 피우라 함인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갯길이다. 깊게 패인 골짜기 양 옆으로 전각들이 이어진다. 제일 윗쪽에 자리잡은 대조사전까지 걷다 보면 108배라도 올린 듯 숨이 차지만 뒤들 돌아보면 4~5층 규모의 현대식 전각들이 빼곡히 들어 찬 골짜기의 풍광이 이색적이다.
천태종은 종교의례보다는 실천하는 불교를 지향하는 종파로 특히 템플스테이를 체험하려는 불교신자들이 많이 찾는다.
- 소재지
- 단양군 영춘면 백자길 22
- 문의전화
- 구인사 대표전화 043)423-7100
- 홈페이지
- http://www.guinsa.org
- 대중교통
- 고수대교 앞 구인사행 버스 승차, 구인사 정류장 하차
5.TV 속 거기-온달관광지 내 드라마세트장
드라마세트장치고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숨이 긴 명소이다. <태왕사신기>, <천추태후> 등 고대의 역사를 다룬 사극의 촬영지다. 가장 최근에는 드라마 <신의>를 촬영했다. 드라마 속 배경지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사적 고증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웅장한 멋이 느껴지는 궁궐과 장터거리, 정원 등을 산책하면서 이색적인 풍취를 느낄 수 있다. 시간여행이 바로 이런 맛일까.
온달관광지는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사랑을 주제로 만들어진 공원으로 고구려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고구려관, 온달장군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온달관 등으로 구성됐다.
드라마세트장 끝에 있는 온달동굴과 온달산성을 함께 둘러 볼 수 있다.
[왼쪽/오른쪽] 온달관광지 내 전경 / 온달관광지 내 드라마세트장2
- 소재지
- 단양군 영춘면 온달로 23
- 문의전화
- 단양관광안내소 043)422-1146
- 대중교통
- 고수대교 앞 온달관광지행 버스 승차, 온달관광지정류장 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