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화자(話者) ‘나’의 인식과 시적 진실 --운정 김이철 시집『오브제Objet를 떠난 꽃』 김 송 배 (시인. 한국현대시론연구회장) 1. ‘한천명’에 나누는 ‘나’의 인식 현대시 감상에서 시의 의미나 그 시인이 절대적으로 투영한 주제를 명징(明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無理)가 따른다. 그것은 그 시인이 의도한 바의 의미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독자로 하여금 시점(視點)과 관점(觀點)의 차이가 있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인들이 천착(穿鑿)하는 사물이나 관념이 그 시인의 착목(着目)으로 외적요소나 내적교감에서 창출하는 이미지나 상징 등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과 거기에 창조되는 주제가 각 시인마다 체험과 인식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시 읽기에 상당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 운정 김이철 시인이 상재하는 첫 시집 『오브제Objet를 떠난 꽃』은 이와 같은 요인들이 충분히 잠재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김이철 시인과는 상당기간을 시와창작문예대학에서 함께 시작법을 토론하면서 획득한 시어(詩語)에 대한 탐구열정이 바로 작품에서 숙성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시에서 그 의미를 명민(明敏)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시적 언어의 함축과 거기에 직조된 언어가 시와의 융합이 조화를 이루었느냐하는 문제가 그 시의 해석과 이해에 많은 부분을 감당하고 있어서 언어의 조탁(彫琢)을 많이 강조하게 되고 우리 시인들은 언어문제에 대해서 정열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등잔불 있었을 시간 눈 감고 잠든 세상에 보일 것도 없는 눈을 떠 춤추는 하얀 상여 꽃향기 마신다 별들의 잔혼마저 없는 어둠에 어이하여 상여를 그렸을까 마목지기 어깨에 걸쳐진 무게는 침묵의 끝자락에서 나를 부르고 도망도 못가는 둔한 마음은 자강 다짐에도 가늘게 떤다 사형수의 일 초 전 마음이 이와 같았을까 죄 많은 가슴에 사형수 길긴 밧줄이 내려진다 밤이 샐 때까지 허깨비로 돌아누워 삶과 죄의 만지장서 베고 눈 뜨고 잠이 든 나를 안는다. --『한천명(限天明)』전문 우선 작품 ‘한천명(限天明)’을 일별하면 ‘나’라는 자아(自我)를 인식하는 가장 중대한 이미지를 추출하고 있다. 시적 정황(情況-situation)은 현재 내가 처해 있는 자아가 어떤 정서와 사유(思惟)를 지향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나’라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독(解讀)될 것이다. 김이철 시인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어의 민감성에 익숙해져 있다. ‘한천명’을 비롯해서 ‘마목지기’, ‘만지장서’ 등의 언어를 작품에 투입함으로써 시적 주제의 형상화에 주관적인 매체로 활용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작품 아래 주(註)를 붙여서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주어서 ‘나’와 상응(相應)하는 현실적인 요인들이 그의 내면에서 ‘상여’와 ‘마목지기’가 ‘나’와 대칭적인 상관성으로 작품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서 그가 탐색하거나 구현하려는 자아가 어쩌면 현생과 내생(來生)의 생명적인 교감에서 영혼의 명언을 듣는듯해 진다. 그는 결론적으로 ‘삶과 죄의 만지장서 베고 / 눈 뜨고 잠이 든 나를 안는다’는 상황이 ‘한천명’의 주제에 걸맞는 시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나’에 관한 그의 ‘세상’에서 ‘인간이 스스로 정의한 진실에 대해 / 난 궐기한다 너희가 아닌 나에게.(「진실에 대한 반향」중에서)’라는 어조(語調-tone)에서도 확연하게 공감할 수 있듯이 ‘나’의 진실 탐구는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시적 진실은 작품 「진실에 대한 반향」중에서 적나라(赤裸裸)하게 분사(噴射)하고 있어서 그의 진정한 지적인 자아와 결부하는 주제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시간 더듬어 가지런한 이유 잡아 더하고 빼는 계산기에 건전지 없어 답이 질문으로 다시 오는 세상이다 --중략-- 無 성립과 타협하려는 노력 따윈 애초에 의미 없어서인가 진실에 대한 아집 내려놓고 가장 작은 것에서 큰 것 찾아 욕심의 한계 넘는다 그렇다. 김이철 시인이 구가하는 시법은 ‘세상’과 융합하지 못하는 시인의 고뇌와 갈등이 상존하고 있어서 그가 추구하려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乖離)가 심저(心底)에서 용암처럼 흘러넘치고 있는 것이다. 2. 시적 화자 ‘나’와 ‘너’의 화해 다시 김이철 시인은 시적 화자(話者-persona) ‘나’와 더불어 ‘너(혹은 당신)’을 지향하면서 동행의 의식을 갈구(渴求)하고 있다. 이처럼 시에서 화자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은 그 시인이 직설적으로 대화나 담론같이 표현할 수 없는 형상에 대하여 나 자신을 대신할 다른 대변인을 앞세우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김이철 시인도 이러한 시법을 구사하면서 자신이 심도(深度) 있게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창출하는 특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는 ‘나’라는 일인칭뿐만 아니라, ‘너’라는 이인칭 대명사를 대입함으로써 시적 스토리를 더욱 다양하게 전개시키는 고차원의 시법으로 우리들을 흡인(吸引)하고 있다. 여인의 흐느낌에서 흘러내려 가슴에 향기 뿌리고 사랑으로 피어나 두고두고 눈물이 되었나 봅니다 여인의 사랑 아프고 서러워 벙어리가 되어버린 사랑을 나에게만 말해주려고 진한 향기로 태어났나 봅니다 곁에 다가가 당신 보기엔 나의 아픔도 당신이기에 멀리서 당신 향기 마시며 사랑 이야기 듣습니다 애화哀話 끝나면 나의 눈물로 당신 피워 우리 사랑될 수 있게 향기로 웃는 당신 미소 마십니다. --모리화(茉莉花)-재스민 차를 마시며-전문 보라. 그는 ‘나’와 ‘당신’이 제스민꽃(모리화)를 소재로 해서 ‘나의 아픔’과 ‘당신의 향기’ 그리고 ‘나의 눈물’과 ‘당신의 미소’가 대칭을 이루면서 ‘사랑 이야기’를 화해시키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화법(話法)은 서로 모순으로 상반하는 역설(逆說-paradox)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 내용에는 진실이 내포(內包)되어 있는 것이다. 그루터기 옆에 쓰러진 너를 쳐다보고 바라보다 턱 괴고 꿈꾸다가 내가 너 되어 이름 불러본다 이슬로 쓴 유서에 너의 언어 발견하고서도 느낌의 대화 믿었을 뿐 가슴 소리 듣지 못했다 서로 바라만 보아도 통하는 목련과 대화 세상도 그랬으면 좋으련만 변화와 변질이 동거 시작했으니 변종이 태어나 신神이라 우길 것이기에 너 따라 기필코 꽃 되어 싸워보련다 절기 한순간의 생명으로 아는 게 전부인 채 주검이 된 너 안아 떠남 거부하는 향기라도 붙잡으려니 다급한 이별 사연마저 챙겨 떠났고 멍청해진 배웅은 울지도 못하고 안녕 한다. --「살화(殺花)-새벽, 목련꽃 주검 앞에서」전문 김이철 시인은 ‘내가 너 되어 이름 불러본다’는 시적 상황을 설정해 놓고 ‘내가’ ‘너를 쳐다보고’, ‘너의 언어를 발견하고’, ‘너 따라 기필코 꽃’이 되고 결국 ‘주검이 된 너 안아’보는 형상의 상황 전개는 다양한 이미지가 포괄하고 있다. 이처럼 ‘살화’와의 화해는 ‘서로 바라만 보아도 통하는 목련과 대화 / 세상도 그랬으면 좋으련만’이라는 어조로 결론을 맺는다. 어쩌면 ‘목련꽃=주검’이라는 이미지의 등식으로 그의 사람에 대한 시적 진실을 현현하고 있다. 이처럼 그가 발현하는 인칭대명사의 용례는 ‘내가 가르치고 네가 알게 했으니 / 누굴 붙잡고 탓하여 답 찾으랴(「대부도에서 사연이 울더이다-대부도 어부의 넋두리 보며」중에서)’라거나 ‘처음 잊었듯 끝 모르는 네가 아닌 나의 죄이다.(「할아버지의 비밀은 사랑이었다」중에서)’ 그리고 ‘절개 몸부림 살신성인 혼 되어 / 죽원에 부딪치는 소리가 너의 울음소리였구나(「차군화(此君(花)」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그의 작품에서는 화자의 수사학(修辭學-rhetoric)이 대체로 많은 분량으로 현상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시학에서는 설정된 화자가 어떤 어조로 작품의 중심에서 상황을 전개하고 표현하느냐가 관건이 되는데 이는 퍼소나(화자)의 태도에 따라서 또는 그 시인의 감정에 따라서 다양한 구도의 시가 창작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시학에서 인칭대명사뿐만 아니라, 남성이냐, 여성이냐. 또는 동물이냐, 인간이냐 등으로 구분짓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의 실명(實名)을 작품 속에 투입하는 작품도 많이 창작되고 있다. 3. 삶의 궁극적인 해법은 ‘사랑’ 김이철 시인은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지향점이 무엇인가라는 오랜 고뇌의 해법을 시적으로 심도있게 탐색하고 있다. 그에게서 삶의 정의는 무엇일까. 그는 사랑과 삶의 함수관계를 탐구하는 정적인 이미지를 적절하게 풀어 놓는다. 그는 이 시집 전체에 녹아있는 그의 진정한 삶의 방식이며 일생동안 구현해야 할 삶의 지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삶의 구도는 이미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軌跡)에서 획득한 가장 중요한 불망(不忘)의 체험들이 재생되면서 인식한 자신만의 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바닷가 언저리 깔린 모래 백지 위 원圓 하나 그려 놓고 바라보니 먼지로 흩어지며 판화 그려진다 쭈그리며 가보니 할 말 많아 쳐다보는 아내의 거친 심장 헐떡인다 지워도 숨어도 하나 된 언어로 이겨서 안 되는 약속 앞에서 대화와 싸움 반복한다 똥섬 향해 출렁이는 바닷소리 아직은 파도가 아니지만 개펄 채우고 나면 당신 되어 만파로 달려올 텐데 삶과 사랑의 싸움에 익숙지 않아 그냥 여기에 앉아 있는 거야 원圓 하나 겹으로 그려 놓고. --「미안한 날의 도피」전문 김이철 시인은 우선 ‘미안한 날의 도피’라는 상황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삶과 사랑에 관한 깊은 상관성에 집착하고 있다. 그는 ‘원圓 하나 그려 놓고 바라보니’ 그 ‘판화’ 속에는 ‘할 말 많아 쳐다보는 / 아내의 거친 심장 헐떡인다’는 정감 가득한 시혼(詩魂)이 넘실거리고 있다. 그는 다시 ‘지워도 숨어도 하나 된 언어로 / 이겨서 안 되는 약속 앞에서 / 대화와 싸움 반복한다’는 화자 ‘아내’와의 ‘대화’와 ‘싸움’의 ‘반복’은 무엇을 상징하며 어떤 의미가 충만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삶과 사랑의 싸움’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불행하지도, 그렇다고 무척 행복하지도 않은 실생활(real life)에서 안주(安住-‘그냥 여기에 앉아 있는 거야’) 하면서 그래도 그 ‘도피’의 자리에서도 ‘원圓 하나 겹으로 그려 놓고.’ 그는 ‘만파로 달려올’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똑딱 책 칵 멍청해진 박자 따라 쳇바퀴에 어지러운 삶 절망으로 가는 길에 세워진 희망의 이정표엔 화살표가 없다 홀로 이겨 내라고 북두칠성도 숨어버린 칠흑 속 용기가 흔들 비틀 가슴에 뜬 아내 별 만이 애달프게 손 내밀어 월식 중이라며 사랑 채운다. --「혼자가 아니다」전문 그렇다. 이러한 ‘어지러운 삶’에는 ‘혼자’일 수가 없다. ‘절망’과 ‘희망’이 상반되는 현실적 삶의 영역에서는 ‘혼자 이겨내’는 ‘칠흑 속 용기가’ 절대 필요하지만 결론은 ‘흔들 비틀’이라는 절망의 관념 이미지가 그를 엄습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인 주제는 바로 마지막 연에서 절묘하게 반전시켰듯이 ‘가슴에 뜬 아내 별 만이 / 애달프게 손 내밀어 / 월식 중이라며 사랑 채운다.’는 인생의 가치관을 자신의 내밀한 사유로 적시(摘示)하고 있어서 공감을 유로하고 있다. 이 밖에도 김이철 시인은 사랑에 대한 담론을 계속하면서 ‘애인’을 교감하고 있다. 작품 「진한 그리움은 꿈속에서도 없다」전문에서 ‘너무 보고 싶어서 / 젖은 눈썹 붓으로 편지 쓰다 잠 들어도 / 대낮에도 그랬듯이 칠흑에도 없었듯이 / 사랑하는 이는 꿈속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 너무 깊이 가슴에 묻어서일까.’라거나「백발 애인」중에서 ‘쪽진 머리 곱던 할머니 성호공원 떠났을까 / 이별할 인연도 아닌데 백발 애인 보고 싶다.’ 그리고 「그림자」중에서도 ‘사랑 애원해도 / 의지에 매달린 자립 불능 변덕쟁이 / 애인으로도 부족해’라는 등의 해법으로 삶과 사랑의 실체를 명징하게 구현하고 있어서 정감은 절정에 이르고 있다. 4. ‘시’와 ‘시인’의 융합적 고뇌 김이철 시인은 절대적 가치로 생애를 장식할 과업은 바로 시인으로서의 시 작품과의 융합이다. 그러나 그는 상당한 고뇌와 갈등을 동반하게 된다. 시인이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영국의 대시인 T.S. 엘리엇은 ‘시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감정을 찾는데 있지 않고 보통 감정을 이용하여 이것을 손질하여 시가 되게 하며 [전연 실지로 겪지 않은] 감정인 여러 가지 느낌을 표현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그가 경험한 일이 없는 감정이 그에게 익숙한 감정과 함께 안성마춤으로 쓸모가 있게 되라라’라는 언지로 시인의 위상(位相)을 말하고 있다. 다시 엘리엇은 ‘시인은 자기가 뜻하는 바로 언어를 틀에 맞추고 필요하다면 전용하기 위하여 점점 포괄적이며 풍류적이며 간접적이 되어야 한다’고 시인의 기능과 시와 언어의 상관성을 피력하고 있다. 김이철 시인은 아마도 이러한 시인의 위상과 시의 위의(威儀)에 대한 깊은 사유의 길목에서 고뇌와 갈등이 바로 진정한 시인으로서 진실된 주제를 구현하는 참신한 존재의 시인으로 남겠다는 일종의 지적인 각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묵계(默契)로 맺은 인연 침묵 탐하며 달려 와 무방비 가슴 오려 낸다 시심 농락한 오만은 이제야 육신 찢어 울고 흑훈(黑暈)에 숨긴 진실은 인제야 고개 든다 있는 만큼 자랑은 경죄輕罪 모르고 했어도 중죄重罪 알고 했다면 대죄大罪 아는 척은 사형死刑 무지의 시심에서 스스로 감탄하는 난 무죄도 아닌 불쌍한 놈. --「詩人이 된 나를 심판 한다」전문 김이철 시인의 담대(膽大)한 언술이 말해주듯이 스스로 시인인 자신을 심판하고 있다. 왜일까. 그는 ‘시심 농락한 오만’과 ‘흑훈(黑暈)에 숨긴 진실’을 고뇌하고 있다. 그의 고뇌에는 자신이 판결했듯이 경죄에서 중죄, 대죄 결국에는 사형에 처해지는 고통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무지의 시심에서 / 스스로 감탄하는 난 / 무죄도 아닌 불쌍한 놈’이라는 어조로 자신을 자조(自嘲)하거나 질책(叱責)하는 시심에는 그가 숙성해야 할 시정신(poetry)의 충만과 더불어 시인의 사명감 같은 것이 일생동안 동행해야 하는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시인의 가긍스런 고뇌는 약우물 개짓는 소리에 숨고 쩌렁쩌렁 황소개구리 시어 휘잡고 놓질 않는다 별 먹어 배부른 밤바다 선녀바위 돌아 떠나는 길에 조가비 구르는 소리에 놀라 허겁지겁 시인 삼켜 소화불량 솔봉이 약국 주인 먹은 거 없이 아픈 건 꾀병이라며 알약 대신 너털웃음 한 봉지 억지에는 약도 없다 한다. --「오늘도 시인이길 포기한다」 그는 때로 이처럼 극단적인 처방도 내린다. 이러한 ‘시인의 가긍스런 고뇌는’ 다시 ‘개짓는 소리’와 ‘황소개구리’ 소리에도 ‘시어 휘잡고 놓질 않는다’는 그의 내면에서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정작 ‘오늘도 시인이길 포기’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허겁지겁 시인 삼켜 소화불량’에 그 이유를 토로하고 있다. 그것이 결국 ‘억지에는 약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알약 대신 너털웃음 한 봉지’를 처방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 그는 작품 「술안주엔 용유도 밤바다가 최고다」중에서 ‘단어 하나 건져 詩로 노래하자니 / 여전히 허전하고 낙서만 파도 탄다’거나 ‘함께하는 용유도 밤바다에 널브러져 웃는데 / 덩달아 춤추는 詩心이 詩가 되길 거부한다’ 그리고「잘 가요 장미씨」중에서 ‘시인의 거짓말에 / 웃어 줄 거라 믿었던 건방진 희망이 낙상’이라는 풍자와 패러디가 동시에 분사하는 그의 시와 현실과의 상응에서의 고뇌들이 표출되고 있다. 이제 운정 김이철 시인의 시집『오브제Objet를 떠난 꽃』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그는 「타인의 글은 다 잡글이라 하시니」전문에서도 ‘조등 밑 만감萬感님들 수다 / 가만히 들어 보니 어느 시인의 글 칼질 중 / 침면沈面을 심연深淵이라 / 우기다 떠나간 자리엔 / 불쌍한 허풍만 가득 / 낮술에 뿌린 씨가 지랄 놈으로 태어나 / 주정뱅이 혼잣말 낭송이 명시로세 // 글쟁이 업고 이별주 나에게 따르니 / 참으로 요상 타 / 들고 있는 빈 술잔 세상보다 무겁다.’라고 언급했듯이 ‘어느 시인의 글 칼질’이나 ‘주정뱅이 혼잣말 낭송이 명시’인 시적 감응은 바로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절감(切感)한 인생론이라고 할 수 있다. 시와 인생! 참으로 다정한 어의(語義)이며 함축된 인생관이다. 김이철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서 ‘나’의 인식에서 탐색하는 진실과 ‘나’와 ‘너’의 화해를 갈구하고 현실적인 삶이 궁극적으로 사랑과의 해법을 찾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시와 시인이 융합할 수 있는 고뇌를 적시하는 시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법은 형이상시(形而上詩)라는 개념의 고차원적 시학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으나 이와 같은 오브제의 실상은 눈에 보이는 것 그 자체이며 행동과 관계있는 것 사색과 묘사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부터 그 관련을 분리시켜 한 개의 사물로서만 보는 것을 의미하는 약간 세밀하거나 특징적인 착목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