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 요한계시록 해석과 성경적 천년왕국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천년왕국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믿는 이들이 드물다. 성경을 주의 깊게 연구해보면, 그 진실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지만, 현실은 비참한 지경이다. 그렇게 본다면 모두가 무자격이요 직무유기다. 특별히 신학자와 성직자들이 문제이다.
천년왕국에 대한 진실을 흐리는 것은 악한 자의 소행이다. 복음을 혼돈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역사경영을 방해하려는 의도이다. 이번 부록으로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들을 바로 잡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좋은 참고가 되고 올바른 신학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무천년주의>
당신이 만일 성경대로 믿는다면, 당연히 대환난기 이후에 1,000년 동안 지속하는 천년왕국이 있다. 그런데 천주교를 비롯해서 개신교의 장로교 등에서는 대부분 천년왕국이 없다는 무천년주의(Amillennialism)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무천년주의는 천주교의 교리를 확립해 준 어거스틴이 만든 비성경적 교리이다.
다음은 ‘네이버 지식 백과’에서 인용한 글이다. 무천년주의자들은 현재의 교회 시대가 사탄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천년왕국 시대(계20:1-6)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이 땅을 다스릴 사람들은 이미 죽은 그리스도인들이며, 그들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무천년주의자들의 관점이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천 년 동안의 그리스도의 통치란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육체적인 통치가 아닌 하늘의 통치를 말한다. 그러므로 무천년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천 년이 지금 현재 진행 중에 있으므로 미래에 다가올 천 년이라는 개념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묵시록 20장에서 묘사된 것이 교회 시대인 지금 여기에서 성취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교회 시대가 언제까지인지, 곧 그 천년이란 수치가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가리키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들은 이것이 그저 어렴풋하게 하느님의 완전한 목적이 성취되는 오랜 기간을 가리킨다고 믿고 있다. 무천년주의자들은 이러한 교회 시대는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 때, 곧 재림의 때가 오면 육적으로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여 몸과 영이 다시 결합될 것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원한 천국의 기쁨에 참여하고 믿지 않는 자들은 최후의 심판을 받아 영벌(永罰)에 처해진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바로 이때부터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되며 마지막 심판 직후의 영원한 상태는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연옥, 마리아 숭배 등의 이단 교리를 만든 장본인이며, 그는 ‘신국’(神國)으로 알려진 <하느님의 도시>라는 책에서 천주교회가 다스리는 이 땅이 곧 하느님의 왕국이라는 이론을 폈던 것이다.
이에 근거해서 중세 암흑시대의 1,000년 이상 로마의 교황들은 이 세상을 통치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해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개신교도)들이 등장했지만, 이들 역시 천주교회에서 배운 대로 무천년주의의 틀에서 세상 역사를 이해하였고, 그 결과 여러 곳에서 사람들을 압제하였다. 그중의 대표적인 사례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신정 통치를 구현하려던 장로교의 칼빈이었다.
참으로 칼빈은 프로테스탄트 교황으로서 4년 통치 기간에 무려 58명을 학살하였고 그중 35명은 화형에 처하였다. 칼빈은 교회가 세상을 통치해야 한다는 어거스틴의 무천년주의에 근거해서 칼빈주의라는 이론 철학을 만들어 제네바 시민들에게 강요하였고 자기의 이론에 반대하는 자는 모두 처형하면서 극도의 독재 체제를 수립하였다.
그 이후에 칼빈의 저서 <기독교 강요>를 근간으로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영국의 청교도, 개혁주의 등이 동일하게 무천년주의를 수용하였고, 이들은 한결같이 유대인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구약성경의 왕국에 대한 예언을 비유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청교도들 즉 존 오웬, 매튜 헨리, 조나단 에드워즈, 마틴 로이드 존스, 존 파이퍼, 폴 워셔, R. C. 스프로울, 마크 데버 등도 성경의 예언에 관한 한 천주교회의 무천년주의를 그대로 신봉하는 분들이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은 칼빈이든 어거스틴이든 에드워즈든 그 누구든 비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분들과는 거리를 둔다.
그분들의 다른 것은 존경할 수 있어도 일관된 성경 해석에 있어서 그들의 견해는 무익한 이론으로 받아들인다. 사실 무천년주의에 기반을 둔 칼빈의 언약주의는 1948년 5월에 중동에 이스라엘이 재건됨으로써 마땅히 폐기되었어야 할 이론이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통치하기 위해서는 ‘반유대 정서’(Anti-semitism)가 기승을 부려야 하므로 유대인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이런 신학이 다시 고개를 들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다.
주후 500-1500년경에 어거스틴에게서 나와 칼빈이 정착시킨 언약주의는 말 그대로 천주교회가 세상을 통치하던 그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사람이 만든 이런 이론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성경에 있는 대로 성경을 읽고 믿고 따르려는 마음을 가지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요한14:16-17, 16:13절은 “내가 아버지께 구할 터인즉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그분께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 곧 진리의 영이시라 …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고 말한다.
<후천년주의>
한편 후천년주의(Post - millennialism)는 사람들이 자기 힘을 다해서 이 땅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면 그 이후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이론으로 대개 인본주의자들이 지지하는 견해이다. 다음 글도 ‘네이버 지식 백과’에서 인용한 글이다. 후천년주의자들은 천 년이 흐른 후에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온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며, 그 결과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이 커지고 세상은 점점 더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바뀌어간다고 본다. 이러한 현상이 점점 더해지면, 점차적으로 ‘평화’와 ‘의’의 천 년 시기가 이 땅 위에 도래하게 되고, 정확한 수치로서의 천 년은 아니지만 그 천 년만큼의 오랜 세월을 의미하는 기간이 지속된다고 믿는 것이다.
후천년주의자들에 의하면 이 천 년 시기가 끝나는 마지막 시점에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재림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모두 부활하여 마지막 심판이 이뤄진다. 그때 비로소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된다. 후천년설은 세상에 점점 평화와 의가 풍성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만일 세상에 전쟁과 갈등이 점점 사라져 간다면 그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오늘날과 같이 도처에서 분쟁이 더욱 심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이러한 후천년설은 하나의 바람에 불과할 것이다.
<전천년주의>
성경대로 믿으면 예수님의 재림은 천년왕국 이전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런 믿음은 보통 전천년주의(Pre-millennialism)라 불린다. 사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성경의 믿음이므로 ‘주의’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이미 그리스도교계에서 그렇게 불리고 있으므로 ‘전천년주의’라는 용어를 그대로 쓴 것뿐이다.
전천년주의가 가장 성경적이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고 묵상하면 그것이 소위 전천년주의인 것이다. 전천년주의가 성경적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해석들이 변화되지 않고 계속 수정되지 않은 이유는 교리주의로 인함이다. 왜냐하면 일단 교리로 정해지면, 세월이 흘러도 그 내용을 변경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천주교나 장로교의 교리들이 바로 그러하다.
<역사적 천년주의>
천년왕국과 예수님의 재림을 논하면서 한 가지 더 소개해야 할 이론이 있다. 이것은 소위 개혁주의자라 불리는 장로교인들의 일부가 수용하는 이론으로서 역사적 전천년주의(Historical millennialism)라는 것이다.
이것을 주장하는 분들은 예수님이 천년왕국 전에 재림하는 것은 맞는데 묵시록(계시록) 4-19장의 일들은 마지막 7년 대환난기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교회가 설립된 이후로 지난 2,000년 동안이 땅에서 이루어진 일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의 핵심은 계시록의 1,260일이 1,260년 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황권이 지배한 중세 1,260년이 곧 계시록의 주요 기간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교황이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 주로 종교개혁자들이 이런 우스꽝스러운 견해를 지지하였다. 이런 사람들 중에 특출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19세기에 나타난 윌리엄 밀러였다.
그는 다니엘서 8장 14절의 2,300일을 2,300년으로 계산해서 세상의 끝이 1844년 10월 27일에 임한다고 주장을 하며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그런데 그 날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자 그들은 이것을 대실망이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그의 이론을 수정해서 제7일 안식교회라는 이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 수입되어 현재 ‘진리 횟불 선교회’를 만들어 유튜브와 잡지 등을 통하여 국내에서 그 세력을 급속하게 키워나가고 있다. 여하튼 마르틴 루터, 이삭 뉴턴, 매튜 헨리, 반즈 주석의 저자인 엘버트 반즈, 그리고 최근에는 플러 신학교의 조지 래드, 아일랜드의 이안 페이즐리 등이 이런 식의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주장하는데 사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황당무계하다고 할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교회 시대의 일곱 개 변천기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일곱 봉인은 사도 요한 시대부터 4세기경까지를 말하고, 일곱 나팔은 5세기에 이교도들이 서방을 침공한 것이다. 그래서 고트 족의 로마 침략, 반달 족의 지중해 침략, 훈 족의 북로마 침략, 오스만 터키의 동로마 제국 점령 등이 일곱 나팔 심판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일곱 대접 심판은 프랑스 혁명, 이슬람의 확장, 로마 가톨릭 교회의 확장이다. 그래서 첫째 짐승은 정치적인 교황이고, 둘째 짐승은 종교적인 교황이다. 이쯤 되면 이 이론이 허구 그 자체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엉터리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성경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오직 교단 신학을 따르려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분명히 천년왕국이 있으므로 무천년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성경대로 믿으면 세대주의자로 분류가 되므로, 이들은 어정쩡하게 인간의 상상력을 동원한 체제를 억지로 만들어 가르치고 있다. 계시록 4장 이후에 나오는 일들은 아직 한 번도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세대주의>
세대주의란 여기서 소개하는 것처럼 문맥에 맞게 가능한 한 문자 그대로 역사적 관점에서 성경을 일관성 있게 해석하는 신학 체계를 가리킨다. 성경 말씀 중심의 침례교가 주류를 이루는 미국에서는 세대주의 신학 체계가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다. '세대주의'란 세대주의 신학을 의미한다.
이 신학은 18세기 영국의 신학자 '존 넬슨 다비'에 의해 제창되었으며 그후 '스코필드'에 의해 신학적 체계를 갖추어 미국의 신학계를 휩쓸었고 계속하여 전 신학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세대주의 신학이란 말은 성경에 나타난 인류의 세대를 7세대로 나눠 세대별로 하느님의 구원의 섭리를 나름대로 정립해 놓은 신학을 말한다.
<천년왕국의 필요성과 하나님의 역사경영>
하느님께서는 아담을 통해서 이 땅에 자신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왕국을 이루시려고 하셨다. 그런데 마귀의 개입으로 그것이 잠시 보류되었다. 그분께서 마귀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시며 반역할 수 있는 기간을 주시지만 결국 그는 패배하게 된다. 그 뒤에 하느님께서는 그분 자신이 하고자 했던 그 일, 곧 이 땅에 왕국을 세우는 일을 하실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공의와 화평이 이루어지는 때, 곧 천년왕국 통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사람들의 불평 및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도 천년왕국이 필요하다. 하느님을 대적하는 인본주의자들 중에서는 타고난 환경이 좋지 않아서 사람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는 마귀를 천년 동안 바닥없는 구덩이에 집어넣고 사람을 시험하신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인가? 천 년이 끝나서 마귀가 풀려나자 ‘이때다’ 하고는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은 무리들이 마귀를 따르며 주님을 대적한다. 이런 반역자들은 다 천년왕국이라는 지상의 유토피아에서 태어난 자들이다.
그러므로 환경이 나빠서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최종적으로 보여 주시고자 하는 요점은 첫 사람 아담의 피를 입은 사람은 비록 마귀가 없는 완전한 환경인 천년왕국에서 태어났을지라도 구원받지 않는 한 여전히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도 천년왕국이 필요하다. 계시록과 관련된 예언의 해석에 대해서는 세 가지 관점이 있다. 첫째는 미래적 해석이다. 이것은 다니엘의 70째 이레인 7년 대환난기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앞으로 어느 시점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물론 성경은 이것을 지지한다.
둘째는 위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에서 설명한 대로 계시록의 예언들이 교회의 설립 이후로 역사에서 성취되었다는 견해이다. 물론 이것은 종교 개혁자들의 사적인 견해이다. 셋째는 대환난기가 AD 70년에 모두 이루어졌다는 견해이다. 이것 역시 장로교의 많은 분들이 믿는 사적 견해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성경의 예언들이 주후 70년경 예루살렘이 로마 사람들에 의해 파괴될 때 모두 성취되었다고 잘못 믿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예언을 모두 과거의 일로 여기고 앞으로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신학적으로 이들은 과거주의자라고 부른다.
마태16,28절은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음을 맛보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왕권(王權)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고 말한다. 위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가지고 왕국에 임하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과거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주후 70년에 모두 성취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예수님은 주후 70년에 이 땅에 왕국을 세우러 오지 않았다. 성경의 의하면 예수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오실 때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일이 일어나야 한다.
1.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왕국을 세우러 오실 때에는 직접 땅에까지 내려오시므로 모든 사람의 눈이 볼 수 있다(마태24,25-30 묵시1,7). 물론 이런 일은 주후 70년에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도 그 때에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다.
2.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가지고 이 땅에 왕국을 세우러 오실 때에는 유대인들이 땅의 모든 나라에서 자기들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온다(마태24,31; 이사43,5-7; 에제11,14-18; 36,24; 예레16,14-15; 23,7-8; 31,7-10). 물론 이런 일은 주후 70년에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유대인들은 잡혀서 죽임을 당하거나 세상으로 흩어졌다.
3.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가지고 이 땅에 왕국을 세우러 오실 때에는 땅에 전쟁이 없을 것이다(이사2,4; 미카4,3 시편46,9 즈카9,10). 물론 이런 일은 주후 70년에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로마 군인들에 의해 엄청난 전쟁이 있었다.
4.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가지고 이 땅에 왕국을 세우러 오실 때에는 왕국이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될 것이다(사도행1,6). 또 메시아가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왕좌에 앉아 다스릴 것이다(이사9,7 예레17,25; 23,5-6; 33,15; 호세3,4-5; 아모9,11-15; 루카1,32-33). 물론 이런 일은 주후 70년에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다윗의 혈통에서 나온 어떤 왕도 왕좌에 앉아 다스리지 않았다.
5.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가지고 이 땅에 왕국을 세우러 오실 때에는 유대인들이 크게 구출을 받고 복을 받는다(예레30,7-9; 에제34,25-31). 물론 이런 일은 주후 70년에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40년 전에 메시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은 큰 심판과 저주를 받았다.
6.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가지고 이 땅에 왕국을 세우러 오실 때에는 하나님의 성소, 곧 그분의 성전이 그분의 백성들의 한가운데에 있을 것이다(에제37,26-28; 40,5-43,27). 물론 이런 일은 주후 70년에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유대인들의 성전은 파괴되어 그들은 더 이상 성전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7.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가지고 이 땅에 왕국을 세우러 오실 때에는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의 체계가 확립되고 짐승의 희생을 다시 바치게 된다(에제44,1-46,24). 물론 이런 일은 주후 70년에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로마사람들은 성전을 파괴하고 짐승의 희생을 더 이상 드리지 못하게 하였다.
8.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가지고 이 땅에 왕국을 세우러 오실 때에는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그것을 열두 지파의 수대로 열두 개로 나누어 소유한다. 물론 이렇게 12지파 별로 나누는 것은 여호수아 시대에 땅을 나눈 것과는 다르다. 왕국에서 열두 지파가 차지할 몫에 대해서는 에제47,13-48,29절에 나와 있다.
일곱 지파는 성전의 북쪽을 차지하고(겔48:1-7) 나머지 다섯 지파는 남쪽을 차지한다(에제48,23-29). 물론 이런 일은 주후 70년에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로마 사람들은 그 당시 살아 있던 유대인들을 모두 죽이거나 온 세상으로 분산시켰다. 그 뒤 1,900여 년이 지나서 일단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 유대인 국가를 세웠다.
9.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가지고 이 땅에 왕국을 세우러 오실 때에는 예루살렘을 향한 화평의 메시지가 있다(이사52,7-10). 이 메시지는 화평의 소식과 메시아가 시온에서 통치한다는 소식과 하느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로하신다는 소식과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구속하셨다는 소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주후 70년에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유대인들을 향해 나쁜 소식만 있었다. 그것은 곧 심판과 파괴와 멸망과 죽음의 소식이었다.
10.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가지고 이 땅에 왕국을 세우러 오실 때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이사35장). 이때에는 사막이 옥토가 되고(1-2, 6-7절),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구하러 오며(3-4절), 다리를 절거나 못 보거나 못 듣는 자들이 치유를 받고(5-6절), 들짐승이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못하기 때문에(9절), 이런 기쁨과 즐거움이 생긴다.
물론 이런 일은 주후 70년에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로마 사람들의 침략에서 겨우 벗어난 유대인들마저도 기쁨과 즐거움 대신 슬픔과 한숨을 갖게 되었다(이사35,10 비교). 마태복음 16장 28절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처럼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위해 우리는 마태복음 17장의 변화산 사건을 보아야 한다.
이 구절에서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 얼마’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말하며 ‘사람의 아들이 자기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는 것’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형을 목격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베드로후서 1장 16-18절을 통해 알 수 있다.
거기에는 주님의 변형을 가리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권능’이라고 말한다. 변화산에서의 주님의 변형은 실제 우리 주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권능 있게 왕국을 세우러 오시는 일을 예표로 미리 보여 주신 것이다.
<세대주의와 언약주의>
왜 성경대로 믿지 않을까?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들을 종합해 보면, 이 모든 차이의 핵심은 성경의 예언을 문자 그대로 보느냐, 비유로 해석하느냐에 있다. 신학계에서는 이런 상이한 신학체계를 간단히 세대주의와 언약주의라고 부른다.
세대주의자들처럼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하느님의 역사적 경륜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과 교회가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세대주의는 왜 성경대로 믿지 않을까? 언약주의와 갈등을 일으킨다. 언약주의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천주교회의 어거스틴 신학에서 나와 칼빈을 거쳐 정착된 ‘이스라엘 대체 신학’이다.
칼빈 당시만 해도 이스라엘은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유랑 민족에 불과했고 그래서 전 유럽에서 박해와 고난을 당하던 그들이 자기들의 땅에 돌아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성전을 지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은 그 누구도 상상하거나 심지어 인정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학살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조차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이런 이유로 1948년도에 이스라엘이라는 하느님의 국가가 세워지기 전에 나온 성경 주석들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영적인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주의자들은 성경 말씀의 문자적 해석에 따라 그 당시에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이스라엘의 회복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줄기차게 외쳤고 때가 이르자 그 일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성경적 세대주의자들은 천년왕국과 같이 이스라엘과 관련된 나머지 예언들도 문자 그대로 모두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
성경에 기록된 것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될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16세기 칼빈 시대의 언약주의라는 틀에 박혀 사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닐까? 이제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관련된 성경의 예언을 영적으로 보려는 시도들은 모두 폐기되어야 한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을 것을 강조하는 세대주의는 성경을 바로 보게 하는 힘을 키워 준다. 그래서 믿는 이들이 특정 교회나 교단의 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성경을 공부할 수 있게 해 준다. 살다 보면 구분해야 할 일들을 만나게 된다. 곧 어떤 것들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이다.
성경을 바로 나누어 보면 이 시대에게 주어지지 않은 약속들을 취해서 이 시대에 적용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특히 구약성경을 QT 용으로 읽는 데서 많이 발생한다. 어떤 성경 말씀이 주어진 대상과 그 말씀의 1차적 의미, 곧 문자적/문법적/역사적 의미를 전혀 구하지 않은 채 영적으로 내 생활에만 적용하려는 QT 식 해석은 하느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다.
1차적인 뜻을 모른 채 내게만 영적으로 적용하면 사람마다 같은 구절을 달리 해석하게 된다. 그래서 같은 구절을 강해(講解)해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게 된다. 하나님은 혼동의 창시자가 아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하나님이 주신 모든 말씀에는 1차적으로 단 하나의 뜻만 있다. 끝으로 세대주의가 배격을 받는 이유를 살펴보겠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이 땅에 거주하였다. 비록 그들이 메시아 예수님을 배척하였지만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함을 온 세상에 보여 준 ‘왜 성경대로 믿지 않을까?’의 샘플이었다.
하느님의 대적자 마귀는 이 땅에서 하나님 대신 하나님의 친 백성인 이스라엘을 미워한다.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마귀의 증오는 역사를 통해 여러 차례 입증되었다. 마귀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백성을 미워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땅을 잃고 온 세상에 흩어져 나가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엄청난 학대를 받았다.
물론 이것은 부분적으로 그들이 메시아를 거부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마귀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반유대주의(Anti-Semitism)를 일으켜 공공연하게 유대인들을 핍박했다. 이러한 반유대주의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로 절정에 다다랐다. 요즘 각종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듯이 앞으로도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오면 올수록 점점 더 유대인들은 곳곳에서 더 많은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팔레스타인 땅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인 유대인들에게 영원토록 조건 없이 주신 그들만의 보금자리라는 것을 인정하는 신학 체계는 세대주의 밖에 없다. 다른 체계는 항상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천주교 신학과 유사한 것들을 가르친다.
우리는 교회가 영적인 이스라엘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문자적인 이스라엘이 있고 지금 중동에 서 있는 이스라엘이 바로 그 이스라엘, 곧 아브라함의 씨로서 구약의 예언을 이룰 대상으로서의 이스라엘임을 굳게 믿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시간이 가면서 적그리스도의 통치 기간이 다가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 정서가 고양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을 변호하는 정부나 민족이나 신학 체계는 점점 더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많이 받을 것이다. 앞으로 이스라엘이 당할 고통은 그 민족이 창건된 이래로 전혀 없었던 대규모의 환난이 될 것이다(예레30,7; 다니12,1; 마태24,20-22). 이와 같은 성경의 예언을 우리의 주변 상황과 신학 체계에 적용해 보면, 이스라엘과 그 나라의 권리를 옹호하는 세대주의 신학체계가 어떤 비난을 받을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면 세대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읽고 역사적으로 문법적으로 문맥에 맞게 해석하는 신학 체계이다. 어느 면에서 이것은 어떤 교단이나 교파의 정형화된 신학 체계가 아니라 성경을 문자 그대로 문맥적으로 읽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들을 하나의 간결한 형태로 모아 놓은 성경 그대로의 신학 체계이다.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세대주의적 관점을 100%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문자 그대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우리 신약시대 믿는 이들은 영적인 이스라엘로서 구약에 기록된 참 이스라엘을 돕고 보호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아브라함의 씨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복을 베풀고, 그들을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내리리라고 약속하셨다(창세12,3).
성경을 문자적으로 바르게 읽고 시대와 대상을 구별하여 바르게 해석하며 그 안에 기록된 대로 지키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하나님의 모든 믿는 이들에게 하늘의 주님께서 평강의 복을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느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2티모2,15)”고 말씀하신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