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아직은 여백으로 두고 싶다
저-박 헬레나
출-소소담담
독정-2023년 6월 1일
박 헬레나 선생님이 수필집을 보내오셨다. 전번에 내가 보낸 『베나의 집에 초대합니다』 동화책을 읽고 손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주신 분이라 작가로서의 인품을 향기로 간직하고 있던 차 선생님의 수필집을 받들어 펼쳤다. 『아직은 여백으로 두고 싶다』 책 제목에서부터 마음이 끌렸다. 첫 장을 펼쳐 작가 프로필을 읽었다. 200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래, 2002년 한국 불교문학 공모전 최우수상, 2008년 대구시 문예대전 대상. 2015년 수필문예회 올해의 작품상. 2017년 현대수필문학상. 2018년 대구문학 올해의 작품상 등을 두루 수상하고 『바람 부는 날』 『꽃이 왔네』 등의 수필집을 내셨다. 끊임없이 작품을 써서 수상의 영광을 안고 사는 걸 보면 글쓰기가 곧 삶인 작가이셨다.
이런 대단한 작가가 책 머리에 쓴 글은 겸손하였다. “땅거미가 내리기 전에 수확물을 거둬 들여야 하듯-삶에 대한 사랑과 꿈이 바람을 이기고 허기를 채워주는 원력이 되어, 행복했던 노랫가락(글)을- 빈 들에 버려둘 수 없어 얼기설기 누옥을 지어 거두어들이듯 책으로 엮었다.”고 밝혔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써 모은 글이 256쪽, 장문의 수필집으로 탄생하였다.
표제어가 된 수필 <아직은 여백으로 비워두고 싶다>에서 ‘아직은’에 ‘늙어감에 대해’ 의미를 두며 읽다가 책 앞쪽에 <아직도 꿈꾸는 여자>라는 글을 찾았다. ‘아직도’와 ‘아직은’이 같은 해에 쓰인 작품인 걸 보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에 대한 계획과 희망과 여유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아직도 꿈꾸는 여자>의 말미에 “다시 연필을 쥐고 아직도 불안한 문학 바라기의 봄 꿈이다. 누가 아는가. 내 꿈이 영글어 묵은 나뭇등걸에도 꽃이 필지.”에서 무게 있는 작품을 끊임없이 써서 묵직한 수필 상을 여섯 개나 타신 분도 더 큰 꿈을 향해 자신을 갈고 닦는 모습이, 오늘에 안주하고 있는 내게 죽비를 내리쳐 주는 열정으로 다가왔다. <아직은 여백으로 비워두고 싶다> 수필은 “집안에 빈 공간이 많다. 최소한의 도구로 여백을 즐기자가 나의 생활 지침이다.“는 글로 시작된다. 이 글이 표제어가 된 의미가 깊이 들여다보였다. 손님 맞기를 즐기는 성품에 침대가 차지하는 공간도 아까워서 방 한가운데 상 하나 놓으면 거실도 되고 식당도 되고, 이불만 펴면 침실도 되는 편리함으로 실속을 채우며 많은 손님을 맞을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을 기다림의 공간으로 두고 사는 멋을 즐기고 산다. 그래서 선생님은 저번에 ”손님은 신이 주신 선물입니다.“는 내 글에 반갑게 호응해 주셨나 보다. ‘여백’은 채움의 반대편인 비움이겠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우리에게 여백은 홀가분함이요. 편안함이요. 고요함도 가져다준다.
<너 지금쯤 어디 서 있는가> 수필에서 선생님은 ‘고백문학인 수필 쓰기는 세상에 할 말이 많은 나에게 소통의 수단이 되고, 삶을 관조와 성찰로 이끈 통로였다. 해답을 구하려는 욕망의 표현이며 아름다움을 찾는 길이라 온몸으로 글을 쓴다.‘고 밝혔다. 그래서 선생님이 밝힌 네 가지 관점을 따라가며 읽은 수필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첫째: 작가의 수필이 우리에게 주는 향기(수필의 격조)
<전설 그 너머에>
-고려청자에 얽힌 이야기의 화자로 남편의 관점을 불러와 남편 말소리로 썼다. 말미에 역지사지로 써보았다고 밝혀두어, ‘나’로 시작되는 수필의 보편적 형식을 뒤엎는 기법으로 수필의 재미와 격조를 높여준다.
<돌아서다> 작가의 문장력이 돋보이는 수필이었다.
“초록 잎이 변색을 하는 것은 휴업 준비, 본체를 위한 노동인 광합성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이다. 싸한 바람 한 줄기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하던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사람에게는 인생 한 막을 접는 시간이다. 은퇴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탄한 예술가도 있지 않은가”
-문장이 수려하여 옮겨본 글이다.
둘째, 삶의 관조를 얻을 수 있는 글
<명화 한 점>에서
“저 멀리 논 가에 볏단을 쌓아놓은 낟가리도 보이고, 짐받이에 앉아서 기대었던 아버지의 등 그 온기도 전해온다. 아버지가 못내 그리울 때 불쑥 떠오르는 명화 한 점 ‘나의 만종’이다.”
-유년 시절에 겪었던 아버지와의 교감은, 어른이 되어서 힘든 날을 살아내면서도 사랑의 온기로 떠올라 힘이 되는 자산이요. 추억이라는 관조의 글이 되었다.
<소명>
우리가 실천 해야 할 환경보호와 기후 개선의 첫 과제가 쓰레기 줄이기인데, 코로나 역병으로 식료품 비대면 거래가 쓰레기 양산의 주범이 되는 사실을 지켜보며(관조하며) 인류로서 ‘생태적 소명’을 깨우치자는 내용이 울림을 주는 글이다.
<지구에서 가장 젊은 땅>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는다. 생명을 탄생시키고 보듬어 키우고 생명들이 엮어내는 역사를 안고 함께 흐른다.”
- 하와이 손자의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 정면 단 위의 가장 높은 자리에 졸업생 한 사함 한 사람을 착석시키고 교사들은 단 아래 의자에 앉는 모습을 보고 문화의 충격을 받는다. 아이들이 저렇게 귀한 대접과 사랑을 받고 자라니 존중과 배려. 인간애가 몸에 밸 것이라는 시선의 따스함에 우리도 다시 한번 자각을 하게 된다.
셋째, 삶의 성찰을 얻을 수 있는 글
<때문에>
때문에를 읽다 보니 ‘참 그래!’ 하며 잠자던 내 의식을 깨우게 된다. 주부들은 누군가 맛나게 먹어 줄 사람이 있어야 주방에 들어가서 음식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사실 우리 여자들은 혼자 있으면 음식을 정성 들여 만들지 않고 대충 먹고 만다. 자신을 만만하게 대접하는 의식에 작가는 음식을 만드는 주부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 때문에’ 가 아닌 ’덕분에‘라는 사고로 귀결을 가져왔다. 이런 사고가 삶을 성찰하며 자신을 키워가는 글쓰기가 아닌가?
<구차한 변명>
맏며느리로서 제사를 모셔 온 작가의 노고는 작가의 바탕에 긍정적인 헌신이 기둥이 되어주었다. “제사란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한 의식이라기보다 산 자를 위한 행사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것이 후손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명분이자 뿌리 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는 건 분명하다. 예를 숭상하는 의식은 오랜 세월 씨족을 묶어주는 끈이기도 했다. 그것이 제사의 순기능이다.”는 관점으로 제사를 고집하다가, 시동생의 권유로 일 년에 두 번의 묘제로 바꾸면서
‘우리는 한 조상의 후예라는 일족의 맥을 담아 평행을 유지할 묵직한 추를 하나 달아두고 싶다.’는 마음결이 복을 누릴 삶으로 빛나고 있었다.
<할망, 건망이 되다>
“다람쥐를 건망증의 상징으로 회자하고 있지만 앙증맞고 천연덕스러운 모양새로 봐서는 태생적인 할망증이다. 참나무에서 일용할 양식을, 참나무는 다람쥐의 할망증으로 일족의 번성을 얻는다. 자연계 생존 법칙인 약육강식이 아닌 주고받기 공생 원리로 아름다운 한 풍경을 만들어 내는 순간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수용할 수 없는 꽉 찬 머릿속, 여백이 남아있지 않는 상황이 건망증이다. 할망이 드디어 건강이 되었다. 하늘이 다람쥐의 할망증으로 생명의 순환고리를 의도했다면 인간 다람쥐의 할망증은 감춤 없이 펼쳐놓고 나누라는 것 같다.”고 정리한 성찰이 우리들 마음을 숙연하게 정화해 준다.
넷째, 해답을 구하려는 생각을 공유하는 글
<살림이스트의 변>
“결혼은 여자란 허물을 벗고 강인한 여전사로 거듭나는 통과의례다. 살림이란 한 집안의 경제나 생활의 모든 것을 관리, 운영하는 일로 ‘살리다’의 의미를 함의한 순수 우리말이다. 가족관계의 정립으로부터 수입에 맞춘 소비, 출산, 육아, 교육, 식구들의 건강관리, 봉제사, 접빈객, 바깥일까지 섭렵해야 하는 것이 주부다. 살림이라는 넓고도 깊은 웅덩이에 빠져 한동안 앞뒤 분간 없이 허우적거렸다.”
“누군가를 위해 ‘밥상’을 차리는 것, 그것은 곧 나의 수행이었다.”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한 가정의 관리자, 모든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힘의 원천인 살림이스트, 그 숭고한 소임에 외국어가 합쳐진 신조어가 아닌 순수 우리말로 된 적절한 어휘가 없을까.”
-선생님은 전업주부로 가볍게 치부되는 삶을 깊이 들여다보며 성찰에서 나온 ‘살림이스트’라는 단어를 찾는다. 그러나 여기에 합당한 순 우리말을 찾고자 고심하고 있다. 우리 독자들에게도 숙제로 다가온다.
참 좋은 수필집으로 독자의 마음에 힐링과 생각을 키워준 선생님께 감사하며 복 받으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