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7 월요일 아침 말씀
베드로전서 5:5~7, 이인형 목사님
우리 사회는 성공을 추구한다. 신분상승, 출세 고속승진 보다 위로 더 위로 더더욱 위로 한 방향만 바라본다. 이런 성공에 대한 우리의 과욕이 경제를 부풀려서 바람이 빵빵해진 풍선처럼 서민의 삶이 이곳저곳 폭발직전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선동을 멈추지 않는다.
“만족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돈을 벌라. 유명해지고 줄을 잘 서서 중요한 존재가 되라. 그리고 사람들을 좌지우지해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우쭐해진다. 이 성공의 3요소가 만족감을 주지 않는다면 그때는 오락을 즐겨라. 이런 것들을 성취하는 세상의 방법은 어렵지 않다. 열심히 일하고 다른 이들을 밟고 서고 신앙 따위 장애물을 제거해라.” 이것들이 성공학 책들이 내거는 가치관이다. 물론 이 논리에 따라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성공한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동안 성공을 향해 내달리느라 듣지 모했던 것들이 들려온다. 성공의 디딤돌이 되었던 적대자들, 그리고 가장 참기 힘든 것은 그들에게 의해서 정체성이 주어지는 내가 홀로 만신창이가 된 체 일제히 아우성을 치는 것이다. 그들의 역공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맹목적 성공의 만족감보다 그 성공에 의해 제거된 자들에 의해 역공됨에 의해 상실되는 자존감이 더 크다. 그래서 하나같이 외롭고 씁쓸하다. 이 악순환의 무한 반복이다. 이세상은. 학생들, 이런데도 자신을 맹목적 성공으로만 내놓겠는가. 우리가 이것을 끊어야 하지 않겠는가. 고맙게도 베드로 사도는 본분에서 이 세상의 성공과는 대조되는 하나님에게서 나는 성공과 그 열매인 만족을 얻는 방법을 내놓는다. 우리가 모두가 이 권면을 삶에 적용하고 그로부터 생겨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만족을 얻기를 바란다.
베드로서는 로마의 대 핍박이 있기 전에 교회가 그 모든 핍박을 이미 예상할 수 있었기에 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위로와 권면을 전하는 내용의 글이다. 특별히 베드로전서 5장의 내용은 고통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 말ㅎ하고 있다. 5장에서 베드로는 사회적 통념을 거스르고 있다. 예를 들면 1~4절까지에서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글림하지 말고 모범이 되라고 말씀한다. 권위만 내세우는 장로 말고, 일을 하는 장로가 되라는 것이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직함은 권위를 나타낸다. 특별히 조선말 5도된 유교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직함을 놓고 섬김과 봉사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베드로는 분명히 글림하지 말고 ㅂ모범이 되라고 말씀한다. 우리들, 너 전통을 따라가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시겠습니까. 공동체의 직책은 섬김과 봉사의 상징이다. 직분이 생기고 커지면 커질수록 섬김도 봉사도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섬김과 봉사에 맞는 영광의 면류관을 주실 줄 믿는다. 베드로 사도가 장로들에게 사회적 통념을 거슬러 말했다면 그 아래의 젊은이들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5절. 이 구절은 베드로가 장로들의 권위 안에 있는 자들에게 한 권고이다. 간단히 말해서 내용은 장로들에게 순종하라, 이다. 장로님들의 연륜과 경험을 존중하라. 본 받아라.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질서가 우선이다. 성공을 위해 독립심을 길러도 모자랄 판에 순종이라니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말도 있잖은가. 요즘 것들은 말을 듣지 않아. 하지만 베드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예수님이 세족식 때 하셨던 행동을 암시하는 말을 한다. 주님은 종을 섬기셨다. 영적으로 더 성숙하신 분이 영적으로 더 젊은 사람들을 씻기셨다. 동이라는 단어의 명사가 겉옷이 여며진 윗옷의 앞치마였다. 그래서 우리는 상상 할 수 있는데 예수님은 옷까지 종과 같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가. 우리 모두 이 겸손을 실천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말고 지혜로운 자들에게 순종하라.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은 큰 은혜를 베푸신다. 2인생에서 진정한 성공을 거두려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아래 겸손해야 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손은 두 가지를 나타낸다. 하나는 구원이고, 또 하나는 징계이다. 욥기에서 욥은 선행을 행했는데도 화가 온 사례에 해당한다. 한 신학자가 욥기는 변증적 기도서라고 했다. 변증적이란 질문과 답을 통해 정답이 아닌 근사치에 다가가는 것이다. 즉, 논쟁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항변과 불평을 하며 하나님을 찾아가는 책이다. 하나님의 허락 속에 사단에게 시험받고 있는 욥. 24절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망할 수밖에 없는 이 몸을 치십니까. 보잘 것 없는 이 몸을 어찌하여 세게 치십니까. 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손은 욥에게 징계였다. 욥기의 내용을 알 고 있기에 욥이 불평한다 말할 수 있지만, 욥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 삶의 결과를 바꾸시기까지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은 것이다. 1장 하늘 어전, 2장 욥의 고난, 3~37장 친구들과의 별론, 38~41장 하나님의 대답하심이 나온다. 인과응보를 넘어서 자기 삶에 대한 대답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42장에 내가 이제야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뵙는다, 라는 고백이 나왔던 것이다. 징계로서 영생을 이루게 하시는 힘이 된다. 다른 하나는 구원인데, 신명기 9~26절을 보자. 하나님의 손은 전차의 바퀴를 벗기며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감사하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 비포장도로도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분의 시간표에 맞춰 삶을 진행해야 한다. 그럼 때가 되면 우리를 높이시리라는 약속이 성취 될 것이다. =
다윗은 음악으로 부나 명예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히트곡보다도 다윗의 시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다. 다윗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자 하나님은 그를 적정한 때에 그를 높이셨다. 우리의 삶도 이렇길 바란다. 우리가 스카이다이빙을 뛰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낮추든 우리를 낮춘다는 유사점이 있지만, 스카이다이빙은 실수가 있고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다는 차이점이 있다. 우리 여러분들, 우리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의지합니까? 아니면 사람이나, 여건, 환경들을 의지하십니까.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권면을 한다. 7절. 단호한 표현이다. 우리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던져라.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신뢰의 대가로 던져라. 그렇다면 실제로 돌보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성도, 우리 제군들, 우리 선생님들을 어떤 성공의 길로 인도하시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주겠다. 지금까지 베드로 사도는 5~7절에서 이 공식을 전해준 것이다. 군림이 아닌 모범 + 어른께 순종 + 하나님 앞에서 겸손 – 세상의 근심 = 참된 성공과 만족. 이 공식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공식은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참된 성공과 영혼의 만족이 있다. 이것이 우리들의 삶을 인도해주길 바란다. 세상 가운데서 세상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이 알려주신 방법을 추구하는 우리들이 되길 바란다.
감상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추구한다. 또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공 기법을 책으로도 써내고 강의도 한다. 우리는 그들의 책이나 강의에서 가족이나 친구들을 등지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아도 된다는 그러한 내용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물론 성공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 5장에서 베드로는 성경적인? 성공론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오늘 설교에서는 그 비법을 공식으로 풀어서 알려주셨는데 그 공식을 내 감상문을 보시는 분들에게도 알려주겠다.
* 성경적인 성공 공식
군림이 아닌 모범 + 어른께 순종 + 하나님 앞에서 겸손 – 세상의 근심 = 참된 성공과 만족.
이 공식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본다면 훌륭하다고 생각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한 공식이다. 여기서의 성공은 돈을 잘 벌고 이 세상에서 떳떳하게 사는 그런 성공이 아닌,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사실을 깨닫고 알아갈 수 있는 바로 그러한 성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세상의 돈과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삶은 결코 행복하지도, 의미 있는 삶도 아니라고 말이다. 오히려 돈은 먹고 살 만큼만 아니 돈이 없어 내일 먹을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그 삶이 더 행복할 것이고, 그 삶이 더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내일 먹을 것이 없더라도 그 근심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먹여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돈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돈이 많아져 하나님을 믿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만약에라도 하나님이 나에게 돈을 많이 주신다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전도하고,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일에 사용하는 내가 되기를 기도한다. 절대 그 돈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먹지 않고자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실 지금 몇 만원 쥐고 있는 것도 기부하기가 힘든데 나중에 돈이 많이 생기면 그럴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생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이 들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겠다. 하지만 누구라도 내가 돈이 많이 생겼는데 사치를 부리고 하나님을 잊은 거 같으면 나에게 말해주면 감사하겠다. 오늘 이러한 글을 쓰려는 게 아니었는데 아무튼 시간이 없어서 이만 줄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