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봄 부흥회 5.21(화요 새벽) / 김운용 목사(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말씀 : 시편 34:1-10
제목 : 그래도 하늘 길은 열려 있습니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사랑하는 아버지,
오늘도 귀한 새 날을 허락하여 주시고,
그 첫 시간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려 기도함으로 찬양함으로 하루의 문을 열게 해 주셔서 주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첫 시간을 올려드리며 귀한 예물을 구별하여 들고 나와 하나님께 봉헌하는 손길들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무슨 감사할 일들이 그렇게 많아서 어제 저녁에도 넘치도록 주님께 올려드렸고,
어제 새벽에도 그렇게 올려드렸는데, 이 아침에도 귀한 예물을 들고 나와 주님 앞에 봉헌하는 손길들..
주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정성을 담았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주님 향한 간절한 기도의 제목도 함께 담았습니다.
하나님, 이 예물들 주님 기뻐 받으시고 사용되는 곳마다 주의 영광, 주의 사역,
주의 복음 널리 증거되고 잃어버린 영혼들 세워지는데 아름답게 쓰여지는 예물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참 어려운 때를 살아가오나, 주님 앞에 모든 것 들고 나왔습니다.
이 시간 기도로 펼쳐 놓을 때, 주님 역사하시고 심령 심령들마다의 속에 허락하신 하늘 은혜가 있어서
오늘도 춤추며 나아가는 복된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 앞으로 나아갑니다.
성령님, 우리 가운데 운행하시고 말씀이 들려질 때, 우리의 심령이 반응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긴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 또 기도를 부탁하면 정말 나를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해 줄 친구,
그런 친구가 있다라고 하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습니다. 가끔 기도 제목 나누느라고 통화하다 보면, 제가 그 친구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보다
'그 친구가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게 훨씬 더 깊고 뜨겁구나, 간절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미국에 가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 한 2년 정도 하고 난 다음에
교수가 그렇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지 공부만 하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사역지를 위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어느 시골 교회에서 와서 주일에 한번 설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답니다.
그리고 내려갔는데, 교회가 참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한 주만 더, 한 주만 더 이런 부탁을 받고 계속 내려가는 중에 교회에서 아예 담임을 해 달라고 부탁이 왔답니다.
상황을 보니까, 교회가 건축을 하다가 시골 교회가 부도가 나서 중단되어 있었고,
성도들이 아예 솔직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목사님, 당장 사례비는 드릴 수 없지만, 밥은 안 굶길게요. 우리 교회 와서 목회 좀 해 주세요."
그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그렇게 내려가서 목회를 시작한 친구입니다.
생활은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밤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서 번역 작업을 하면서 생활을 이어갔답니다.
물론 몇 년 후에 교회가 사례비를 챙겨주었지만,
그 몇 년 동안 밤 늦게까지 앉아서 번역 작업하고 하다 보니까 허리병이 도졌습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고, 한 의사가 '독일에서 인공디스크가 나왔는데 이거 하면 백방입니다.'
얼마나 강하게 권유하든지, 그 의사 말을 믿고 수술을 받았는데 그게 문제가 생겨서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습니다.
진통제가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어서 한 주먹씩 진통제를 먹는다 그럽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진통제로 살다 보니, 신장이 망가지고 간이 망가져서 정말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런 친구입니다.
그런데 제 기도 제목을 부탁했더니, 저를 위해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는지
2021년도 10월 20일에 총장 취임식 날 새벽에 저를 위해서 새벽에 드렸던 기도라면서
'그 기도를 자네에게 전하려고 그걸 글로 정리했네' 하면서 보내온 기도문이 있었습니다.
그 기도문을 늘 제 기도로 바꾸어서 지금도 드리고 있는 내용이라 조금 쑥스럽긴 하지만, 그 기도문을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ㅇㅇㅇ 총장이 역대 총장 가운데 가장 학생들을 사랑하고
신학생들의 영적 회복을 위해 가장 힘쓴 총장으로 기억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그의 재임 기간이 역사상 가장 은혜로웠으며
모든 예배와 강의와 모임마다 강력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나타남으로
모든 학생들과 교수들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그들의 인생과 사역이 거듭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진실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시간,
장신대 역사 가운데서 가장 놀랍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모든 이들로 고백하게 하옵소서!
진실로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조력자들을 많이 붙여주셔서
힘차게 하나님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신학교에서 강력한 영적인 회개와 부흥이 일어남으로
모든 훼방꾼들과 대적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항복하게 하옵소서!
총장으로서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무슨 일로 고민하기만 해도 생생한 주의 음성으로 인도하시고
무슨 낙심할 일이 있을 때에도 "내가 네 마음을 안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위로하시고 힘주셔서
능히 역경을 이겨내게 하시옵소서. 진실로 하나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찬미하게 하옵소서!
어떤 사람들의 자랑이나 칭송보다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것을 욕심내는 그런 총장이 되게 하옵소서!
눈물로 주님 앞에 엎드릴 때마다 학교 전체가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하심 아래서
보호받고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모든 이들이 보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만이 승리하시고 주님만이 높임 받으시고 주님의 거룩한 임재가
임기 내내 사랑하는 총장과 학교를 호위하여 주옵소서!
허망한 인생들에 휘둘리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아멘!" - 신대중앙교회 최기운 목사 기도문 -
친구인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이런 친구의 기도가 고마워서
늘 이 기도를 꺼내서 하나님 앞에 내 기도로 바꾸어서 올려드리고는 합니다.
그런데 3년여가 지나가고 나니까,
아! 이 친구의 기도대로 하나씩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고 응답해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때, 감격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1년 전부터 학생들 속에 놀라운 기도의 부흥들이 일어나서
오늘도 채플 마치고 나면 12시에 학생들 6,70 명이 모여서 저희 학교의 미쓰바 광장에서 함께 기도회를 이어갈 것입니다.
5월 30일에는 이 학기의 마지막 밤 기도회로 학생들이 세 시간 넘게 모여서
6~700 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기도하는 일들이 지금 기도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자기의 삶은 꽁꽁 얼어붙고 있는데, 큰 사역 한다면서 저를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이런 친구가 있어서 참 고맙습니다.
이 친구가 목회하는 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한 호수가 있지요.
충남 청양군 칠갑산 동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천장호'라고 하는 호수입니다.
문득, 그곳에 다녀온 한 시인이 쓴 시가 생각이 나서 꺼내 읽으면서
'맞다. 맞다. 곧 이것은 그 친구 이야기다'라고 하는 생각을 갖게 될 때가 많습니다. 이런 내용의 시입니다.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 나희덕, "천장호에서" -
꽁꽁 얼어붙어 있었답니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품지 않는 꽁꽁 얼어붙은 얼음 호수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24~5년 동안 목회하는 동안 벌써 성도님들을 그 작은 시골 교회에서 100명 이상 천국으로 떠나보냈고,
이제 남은 성도님들 천국으로 떠나 보내고 나면 어쩌면 교회가 문을 닫을지도 모르겠다 하면서도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친구입니다.
작년 겨울에 일산의 한 교회 집회 인도 중에 숙소 부근에 있는 일산 호수공원을 잠시 산책했습니다.
한겨울이어서 호수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생명이 있는 것들은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그렇게 꽃으로 장식하는 아름다운 호수가 꽁꽁 얼어붙어서 몇몇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 몇 사람밖에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인생길을 걸어가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인생은 아름다운 봄이고 화창하게 꽃이 피고 찬란하게 보이는 그런 봄날이지만,
내 인생만큼은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겨울 호수와 같다 얼음 호수와 같다 하는 생각을 가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도 그런 어려움의 시간을 보내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는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믿음의 고백으로 가득합니다.
찬송시로 분류되는 오늘 시편 말씀에는 찬양과 기도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한 발짝만 본문의 세계로 들어가면, 얼음 호수를 만나게 됩니다.
죽이려고 달려드는 대적들이 눈을 번득이고 있고, 그를 향해서 칼을 갈고 있고,
하루도 빼지 않고 그를 추격해 들어오는 어려움의 삶의 현장에서
이런 아름다운 찬양과 기도를 올려드리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사무엘상 21장 말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오늘 말씀은,
전쟁터에 서 있고 얼음호수에 서 있는데, 첫 말씀부터 찬양으로 넘쳐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1절에서 3절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습니다.
"내가 항상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를 찬양하는 일을 계속하리라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고통 당하는 자들이 듣고 기뻐하리라
다같이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선포하고 그의 이름을 높이자"
도대체 무슨 은혜를 받았기에 무슨 사랑을 받았기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항상 하나님께 찬양하면서 살겠답니까!
도대체 무슨 은혜를 받았기에 이런 찬양과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자랑하겠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계속해서 선포하며 남은 인생길 걸어가겠답니다.
도대체 무슨 은혜를 받았기에 [항상]이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며" -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이 사람은 무슨 은혜를 받았을까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본문의 세계로 한 걸음만 걸어 들어가면 얼음 호수입니다.
아니, 모든 것이 떨어져 없는 늦가을의 우울함으로 가득한데 말씀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기도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의 히브리어 표제어를 읽다 보면 정신이 번뜩 듭니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왜 다윗은 미친 체했으며, 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났을까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사무엘상 21장 말씀을 배경으로 하는 오늘 시편의 말씀은
사울 왕이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그가 왕궁에서 도망 나와 도망다니던 시절에 쓴 시편이고 고백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사무엘상 16장 말씀부터 시작되는 영적 전투의 현장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 모든 것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찬 전투가 무엇이었습니까? 골리앗과의 전투였습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내 힘으로는 헤쳐 나갈 수가 없고 내 힘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어려운 난제였지만,
하나님께서도 도와주시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 그 어려운 난제가 풀립니다.
그 어려운 대적이 쓰러집니다. 그래서 그가 승리를 거두었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서 승리케 하는 역사를 보았던 사울 왕이 그를 가까이 두고, 또 어려운 전투마다 그를 내보냈답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가, 전투 경험도 없는 젊은이가 나가기만 하면 아무리 어려운 싸움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어려운 전쟁터라 할지라도 승리하고 돌아옵니다. 엄청난 전과를 거두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다윗은 젊은 날에 군대 장관까지 되었답니다. 지금으로 치면, 국방부 장관이나 참모총장에 해당되는 직위이지요.
모든 국민들이 부러워하고 모든 사람들이 칭송을 아끼지 않는 승승장구했던 사람이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나가다 보면, 어려움의 문제도 생기게 됩니다.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그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그가 목숨 걸고 섬겼던 그의 주군이었던 사울 왕이 그를 질투하고 그를 죽이려고 달려듭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장인어른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더 다윗을 칭송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마음속에 불 일듯이 질투가 일어나서 활을 그를 향해 쏘아대고 창을 던져대더랍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제 명대로 못 살겠다 싶어서 스스로 왕궁의 모든 것을 내버려 두고 도망을 나왔답니다.
젊은 날에 이루었던 성공도, 차지했던 자리도, 모든 사람들의 박수갈채도, 칭송도 다 내버려 두고 도망을 나왔답니다.
그것으로 끝납니까? 수십 수백의 군사를 풀어서 하루도 빼지 않고 그를 잡아 죽이려고 추격대가 그를 추격해 들어옵니다.
하루 저녁도 발을 편히 뻗고 잘 수가 없는 이런 상황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우리나라 산하는 여름이든 가을이든 가면 그래도 먹을 것이 풍부하지만),
이스라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는 그 기간에만 물도 얻을 수 있을 뿐 건기에는 먹을 것 하나 구할 수가 없습니다.
벌써 사흘째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하나님의 전에 찾아가면 그래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전으로 찾아 들어왔답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그를 보더니, 얼굴 색깔이 어둡습니다.
'아, 이곳도 안전하지 않구나' 순간적으로 이곳도 안전하지 않다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다시 빠져나오려고 하면서 '혹시 먹을 것 좀 없습니까?' 하고 어려운 부탁을 했더니,
지금 이 시간에는 먹을 것이 없으나 제단에 진설했던 진설병은 있습니다. 원하시면 그것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딱딱하게 굳은 오래된 빵 한 조각 받아 들고 그것 들고 나왔답니다.
도망자로 살고 있는데, 변변한 무기 하나 없이 지금 들로 산으로 도망다니고 있습니다.
맹수라도 적이라도 만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빵 한 조각 받아들고 나오면서 물었답니다.
혹시 무기할 만한 것 없습니까? 그랬더니,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얻은 긴 칼이 전시되어 있다면서
그 칼 당신이 주인이니 원하시면 드리겠습니다. 그 칼은 구척 장수가 쓰던 것이어서 누가 뽑아서 휘두를 수도 없는 큰 칼입니다.
그것은 도망자의 삶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습니다. 도망 다니면서 간편하게 다녀야지, 긴 칼 들고 어떻게 도망을 다닙니까?
어느 때는 무거워서 들고 가다가 질질 끌고 다니던 긴 칼, 그것이 도대체 왜 필요한 것입니까?
그런데 그것만큼 확실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내 인생의 어려운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셔서 내가 지금 여기 서 있습니다.
그만한 물건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에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그 칼을 들고, 지금 도망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는 목숨을 보전할 수 없어서 그는 잠시 이웃 나라로 피신했답니다.
그 나라에 가면 내 얼굴을 몰라보니까 괜찮겠다 싶어서 도망을 갔는데,
가드라는 나라에 그렇게 잠입해 들어갔는데, 긴 칼을 들고 나타난 다윗을 그 나라 사람들이 알아보더랍니다.
'국민적인 영웅이었던 우리나라의 구척 장수를 쓰러뜨렸던 이스라엘의 그 장수가 우리나라에 나타난 것'입니다.
결국 왕궁에까지 끌려갔답니다. 미친 체 하지 아니하고서는 생명을 보존할 수가 없어서 침을 질질 흘리고 정신 이상한 사람처럼
'그래 정신이 이상한 놈이니까. 저렇게 긴 칼 들고 질질 끌고 돌아다니지.. 야 미치광이다. 내보내라'
그래서 목숨 가까스로 구해서 살아나왔답니다. 이 광경을 사무엘상 21장 12-13절 말씀은 이렇게 우리들에게 들려줍니다.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참 기가 막히는 상황 아닙니까..
모든 길이 다 막혔는데, 혹시 그쪽에 가면 목숨이라도 보존할 수 있을까 싶어서
적국의 땅에 들어갔는데, 그곳도 안전한 곳이 아니었답니다.
가까스로 미친 체 해서 생명을 부지하고 나왔는데 어느 곳에서도 내 생명을 어떻게 지켜낼 방도가 없고,
어느 곳에 숨을 곳이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얼음 호수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 호수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불렀던 찬양이 오늘 시편 말씀이랍니다.
그런 시간에 찬양이 나왔을까요? 그런 시간에 감사가 나왔을까요? 그런 시간에 기도가 나왔을까요?
자존심도 내려놓고 힘든 것도 내려놓고 그리하지 아니하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운 상황,
그런 상황에서 무슨 감사가 나오고 무슨 찬양이 나올 상황입니까..
여러분, 혹시 '빈센트 반 고흐'의 '밀밭 위를 나는 까마귀'라고 하는 작품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프러시안 블루에 가까운 하늘빛, 격렬하게 일렁이는 밀밭이 내뿜는 노란빛, 그리고 그 사이를 낮게 날고 있는 까마귀의 검은빛...
이 빛깔들이 서로 섞이지 않은 채 그냥 자기만의 색깔로 서 있습니다. 조화를 이루기 위한 조바심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세상과 불화하고 있었던 당시 고흐의 내면의 풍경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세 갈래 길이 나 있습니다.
한쪽 한 길은 좌측으로 나 있고, 한쪽은 우측으로 나 있습니다. 한 길은 중앙에 놓여 있습니다.
좌우에 뻗어 있는 길은 수직으로 상승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테두리에 의해서 단절되고 있습니다.
그 단절됨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난히 유난히 아프게 느껴집니다.
예기치 않는 시간, 예기치 않는 사건으로 인해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인생, 꽁꽁 얼어붙은 얼음 호수와 같은 인생,
도무지 살 길을 찾기가 어려운 그런 어려운 삶의 순간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참 다행인 것은, 밀밭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중앙의 길은 아직 열려 있습니다.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 그 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세상 길은 다 닫혔습니다. 내가 달리고 싶은 길도 다 닫혔습니다. 그러나 참 다행인 것은, 한 길은 아직 열려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어떻게 이 상황을 바꿀 수가 없고, 어려운 문제를 이겨낼 수가 없고 뛰어넘을 수도 없는 거대한 장벽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그 장벽이 무너져 내렸고, 골리앗도 쓰러졌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이 어려움의 순간도 다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 고백을 담아 고흐는 어쩌면 밀밭 한가운데로 하늘로 나는 길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렇게 얻은 칼을 차고 달리면서 하늘로 난 길을 그는 찾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4절 말씀은 이렇게 우리들에게 알려줍니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무슨 말씀입니까? - 하늘길을 찾고 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나와 하늘길을 찾고 있습니다.
세상길은 다 닫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우리 가정, 우리 자녀들, 내 인생 세워지게 될 줄 믿습니다. 그 고백 가지고 하늘길을 찾고 있습니다.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하늘길을 찾고 찾았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답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길은 다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늘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시편 34:5-6)
"내가 절망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궁지에서 빼내 주셨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천사가 우리를 둘러 진치고 보호한다." 아멘입니다.
"하늘길을 찾을 때, 천사를 동원하셔서 하늘길을 예비하신다"
그렇습니다. 간절하게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늘길을 찾았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두려움에서 건져주셨답니다.
그러면서 지금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 나와 같이 어려운 인생의 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
꽁꽁 얼어붙은 얼음 호수와 같은 인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그는 권면을 잃지 않습니다.
"주님을 우러러보아라 내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너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 비천한 몸도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들으시고 온갖 재난에서 구원해 주셨다.
주님을 우러러 보아라! 주님을 우러러 보아라!"
주님을 우러러보았더니, 주님께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답니다. 응답하셨답니다.
그 확신을 가진 시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오늘 새벽에 기도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주님을 우러러보아라 하늘길은 아직 열려 있다. 하늘길은 열려 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자신에게 권면하며
아직 끝나지 않는 얼음 호수와 같은 인생길을 달려가면서 자기 자신에게도 이렇게 명령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나, 순간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숨이 턱에 차도록 주님을 찬양하리라"
"주님을 찬양하리라" 나 순간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겠답니다.
아침에도 하나님 앞에 나와 찬양하고, 한낮에 일하다가도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또 찬양하고,
그리고 일 마치고 돌아와 잠자리에 들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나, 순간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제 입술에 계속해서 맴돌았던 찬양이 있었습니다.
♬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우리 함께 찬양할까요..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는 것 같은 그런 인생의 시간을 보내다가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 계시지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어려운 인생의 문제,
아무리 기도하고 몸부림쳐도 아직도 응답되지 않고, 응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어려운 문제 가운데서 허덕이다가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 계시지요..
저에게도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순간들...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길이 다 닫힌 것 같아도 마지막 적국의 땅 숨길 곳은 그 곳 밖에 없다고 마지막 길을 선택했는데, 그 길도 닫혔습니다.
그러나, 하늘길은 열려 있답니다. 그래도 하늘길은 아직 열려 있답니다.
'솔아 솔아 푸른 솔아' 그 시를 썼던 시인 박영근 시인이 있지요.
48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참 아까운 시인입니다.
밤낮으로 허덕여도 길이 보이지 않아 한숨 쉬다가 그렇게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 나온 분에게
그 어려움의 한복판에서 박영근 시인은 이렇게 우리들에게 그의 노래를 들려줍니다.
"꽃 떨어진 그 텅 빈 대궁에 빗물이 스쳐간다
이제 나를 가릴 수 있는 것은 거센 바람 뿐
시 한 줄 없이 바람 속에 시들어
눈 속에 그대로 매서운 꽃눈 티우리" - 박영근, "다시 11월" -
꽃잎이 다 떨어지고 꽃대 하나 외롭게 남아있는데, 겨울비까지 내리더랍니다.
온몸을 얼어붙게 하더랍니다. 꽃대궁에 빗물이 스쳐 가더랍니다.
시인인데, 시 한 줄이 없더랍니다. 인생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더랍니다.
그런 어려운 시간 얼은 호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눈 속에 그대로", "눈 속에 그대로 매서운 꽃눈 티우리"
하늘길을 찾고, 하늘길을 걸어가겠답니다. 그런 인생길에서 그는 하늘을 바라보겠답니다.
오늘 시편 기자도, 미친 체하지 않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그 시련의 시간,
그 전쟁의 시간, 그 가혹한 고난의 시간에 믿음으로 벌떡 일어나서 외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그렇게 시작되고 그렇게 끝을 맺습니다.
(1절)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10절)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강인함의 상징인 젊은 사자가 왜 굶주립니까?
마음먹고 달리기 시작하면 어느 먹이나 다 잡아서 내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데, 젊은 사자가 왜 굶주립니까? 젊은 사자가
설령 굶주린다 할지라도 하늘길을 찾는 사람들,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하늘길이 예비되어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렇게 찬양하고 그렇게 감사하며 얼음 호수와 같은 인생길을 찬양하면서 달려가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더랍니다.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세우는 나라가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익어가고 있습니다.
길이 다 막혀 있어도, 그래도 하늘길은 열려 있다면서 오늘 힘들게 또 하루를 시작하는 한 사람 한 사람들에게
유진 피터슨 목사는 오늘 5절과 8절 말씀을 새롭게 번역해서 이렇게 들려줍니다.
"그분을 우러러 보십시오. 그대의 가장 밝고 따스한 미소를 그분께 드리십시오!"(여러분 새벽이어서 그런 거지요..)
가장 따뜻하고 밝은 미소를 지금 하나님께 올려 드리랍니다.
"그대의 가장 밝고 따스한 미소를 그분께 드리십시오.
그대의 감정을 그분께 숨기지 마십시오.
그대 입을 크게 열고 그분의 선하심을 맛보십시오.
그대 눈을 활짝 열어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
그분께 피하는 그대는 참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분께 피하는 그대, 참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께 가장 따스한 미소를 드리면서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 그것이 저였으면 좋겠고, 우리 성도님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몇 년 전 이 때,
서울의 한 교회에서 모이는 젊은이들 찬양 집회(마커스 목요찬양예배)에서 설교를 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사역하고 있는 신실한 평신도 사역자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날의 설교 결단송이 "주 나의 모습 보네~"라고 하는 찬양이었습니다.
한 달 가까이 그 찬양을 부르면서 제가 은혜 받고 있는 찬양이어서 그 찬양을 마커스에서 만든 찬양이었기 때문에
'이런 아름다운 찬양을 만들어 주셔서 참 감사하다' 그랬더니,
그곳의 사역자들이 평신도로 섬기고 있는 두 부부를 저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자매는 찬양팀 싱어로, 형제는 집회 준비와 진행을 돕는 도우미로 섬김이로 일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고, 교제 기간을 마친 다음에 결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난 다음에 한 달이 지난 어간에 자매에게 급성 백혈병이 발병을 했습니다.
무균실에 입원을 했고, 그 긴 투병의 시간을 시작을 했답니다.
그런데 아주 독특한 백혈병이어서 치료제가 없어서 전정긍긍하며 치료를 이어가고 있는데,
어느 날 의사가 와서 '다행히 미국에서 신약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신에게는 이 악을 투여받는 방법밖에는 살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작용이 있습니다. 여러 부작용이 있지만,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여성들의 경우 만약에 이 약을 투여받게 되면
아이를 평생 못 갖게 된답니다. 결정을 부작용을 담보해 주시면 저희들이 이 약을 투여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자매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답니다.
"저는 그 약 투여받지 않을래요."
신혼부부인데, 아이를 못 갖게 된다는 약을 쉽게 투여할 수가 없었답니다. 의사가 남편을 설득했다지요..
남편이 그 아내를 설득합니다. "나는 아이 없이는 살 수 있지만,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
일단 살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니 아이 문제는 나중에 하나님께 기도하자"
눈물로 눈물로 아내를 설득해서 약을 투여받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1년여의 긴 투병 기간을 마치고 난 다음에 자매는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을 하게 됐답니다.
다시 사역의 자리로 돌아와서 어느 날 찬양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그 은혜가 그렇게 감사하면서도 찬양하는데
'이제는 나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인이야' 이 사실이 얼마나 마음에 힘들게 느껴지는지, 그냥 울면서 울면서 찬양을 했답니다.
그때 만든 찬양이 "주 나의 모습 보네"라고 하는 찬양이었다고 했습니다.
♬ 주 나의 모습 보네 상한 나의 맘 보시네
주 나의 눈물 아네 홀로 울던 맘 아시네...♬
이 찬양을 만들어서 눈물로 눈물로 이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 자매의 태를 어루만지셔서 아이를 갖게 하시었고, 아들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간 날, 그 날이 아들의 백일이라고 했습니다.
'아니, 백일 잔치도 안 하고 사역 하러 나왔습니까?' 했더니,
'어제 당겨서 부모님들 모시고 백일 잔치하고 오늘 사역 하러 나왔습니다.'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만든 찬양이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라고 하는 찬양이라고 했습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 뿐이네~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예수 오직 예수 뿐이네~♬
†
하나님, 그렇습니다.
나는 무너져서는 안되는 우리 가정의 버팀목입니다. 우리 교회의 기도의 버팀목입니다.
주여, 내가 믿음으로 더 굳건하게 서게 하여 주옵소서. 찬양과 기도로 더 충만해지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길을 바라보면서 얼음 호수와 같이 얼어붙은 인생길 때문에 실망하고 낙담하고 좌절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늘길을 걸어가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서는 부자가 혹시 아닐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믿음의 부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의 대장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늘길을 힘차게 걸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는 이 자리가 하늘길이 열리는 자리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시고,
기도가 약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우리, 이 시간 이러한 기도 제목으로 함께 합심해서 통성으로 기도하며 나가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