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내 주변을 서성이며 코를 킁킁거린다. 사뭇 인상을 찡그리며 코를 잡아매는 걸 보니 장난은 아닌 듯하다. 큰놈이 농담 반 진담 반인 듯한 어투로 "엄마한테서 외할아버지 냄새가 나. 아주 고약하고 싫은 냄새." 아버지의 냄새를 아이들도 알아버린 것일까. 당황하며 팔, 어깨, 옷까지 들춰가며 아버지를 닮은 냄새를 찾는다.
냄새들이란 다 이런 걸까. 누군가의 기억에 몰래 스며들어 깊게, 오래도록 쉽게 빠지지 않는 눅눅하고 찜찜한 기분으로, 떠올릴 때마다 아픔의 족적을 선명하게 들추어내는 것, 추억으로 치부되어 아름답고 은은한 향기로도 기억되기 어려운 아픈 상처 같은 것, 저린 내와도 같은 습하고도 음침한 냄새는, 산산이 흩어지지 못하고 오래도록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랬다. 언제부턴가 내 몸에 아버지의 냄새가 스며들었다.
문을 열자 방 안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채 산화되지도 못한 연기들이 시야를 흐렸다. 숨이 막혔다. 한손으로는 코와 입을 막고, 한손으로는 연기를 밀쳐내려고 허공을 가로저었다. 읖- 자유하며 들고 날던 숨을 막혔다. 더는 내 안으로 들여놓기 싫었던 냄새가 와글거렸다. 이불이며 옷가지의 틈마다 스며들어 산란하는 연기는, 쓰리도록 아픈 상처를 후벼내어 끈적한 진을 내려놓던 순간까지도 역하고 독했다.
미간의 일그러진 주름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창문을 열었다. 연기와 새어드는 몇 가닥의 바람이 질서 없이 수북했다. 불똥이 떨어졌는지 장판 서너 군데가 까맣게 녹아 있었다. 아버지는 취기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언제나 핏기 없는 얼굴로 어두운 방구석에 차갑게 가라앉아, 눅눅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소주를 마셨을 게다.
친구들은 귀가 얇은 아버지를 술로 유린하며 도장을 찍게 했다. 다 잘 될 거라던 보증은 물거품이 되었고, 연대보증인 1,2순위는 진즉에 눈치를 채고 발 빠르게 재산을 타인의 명의로 옮겨 놓았던 터였다. 3순위였던 아버지는 빚을 갚기 위해 제일먼저 전답을 정리했다.
할아버지의 땅은 따뜻했다. 생명이 움트는 삶의 단내가 났다. 일제시대에 할아버지는 일본으로 건너가 목숨을 담보로 젊음을 바쳤다. 마흔 다섯에 고국으로 돌아와 딸 다섯 끝에 얻은 오대 종손, 귀하디귀한 아들이 바로 아버지였다. 고된 노동으로 진폐증을 앓던 할아버지는 쉰도 되지 않은 나이에 객사를 했고, 겨우 걸음마를 떼던 아들의 이름을 땅문서에 올려 주었다. 금싸라기 땅들을 상속받은 아버지는 부유했고, 그런 아버지의 곁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댔다. 할아버지의 이름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바뀐 전답들이 아버지의 손에서 죄다 남의 손으로 넘어갔다. 빚잔치가 끝나자 사흘을 멀다 하고 고모들이 찾아와 난리를 쳤다. 술잔은 빌 날이 없었다. 아버지는 취기가 오르면 그 역하고도 구린 과거에 집착하며 담배를 피워댔다.
세월을 따라 아버지의 머리카락도 연기를 닮아 하얗게 변해갔다. 아버지의 냄새도 세월만큼 무게를 더해 더욱 습하게 저려졌다. 아버지의 폐에서는 썩고 문드러진 시궁창 냄새가 났다.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늘 고개를 돌렸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싸늘히 식어있는 딸년과의 대화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는 연거푸 담배에 불을 붙여 속을 달랬다. 손사래를 치며 기침을 해대는 딸년이나, 할아버지 냄새가 싫다고 곁에도 가지 않는 어린 손자들의 태도는 언제나 아버지를 이방인처럼 멀리 밀어냈다. 나는 친정집을 멀리했다. 아버지의 냄새를 내 자식들의 기억에 물려 주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아프기 전까지는.
오년 전, 몸의 일부를 도려낸 후 무기력증은 수시로 찾아왔다. 수술후유증이 그림자처럼 남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울증까지 겹쳤다. 밤이면 통증은 날개를 달고 더욱 나를 괴롭혔다. 불면으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밤을 새웠다. 뇌하수체의 양이 줄어들고, 갑상선에도 이상이 왔다. 오후가 되면 온몸이 뒤틀리는가 싶더니 이내 세포 하나하나까지도 아리고 쓰라린 증상들이 밀려왔다. 감정의 기복을 극복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화를 내거나 울고 웃었다.
통증과 무기력함은 견디기 힘들 만큼 나를 망가지게 했다. 금방 한 일에 대해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는 횟수가 늘었다. 불면의 날들이 이어지고, 입맛을 잃어 먹지 못한 탓에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한의원을 찾았다. 몸 구석구석에 뜸이 올려졌다. 산천의 풀잎사귀를 말려 비벼 만들었다는 뜸에 불을 붙이자 매캐한 연기들이 피어올랐다. 기침을 하며 얼굴을 돌렸다. 타들어가던 불씨는 연기들을 내뿜었고 살갗 위에서 춤을 추듯 스멀거렸다. 아버지의 폐 속을 휘돌아 나오던 연기처럼.
이틀이 멀다하고 뜸을 떴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불안했던 마음들이 평온해지는 듯했다. 나른한 잠이 쏟아졌다. 점점 연기 속에 스며있는 냄새에 익숙해졌다. 산천의 풀잎사귀 타는 냄새가 좋았다. 다 탄 뜸의 밑둥치에는 맵고 눅눅한 진액이 그을음과 함께 남았다. 뜸을 뜨는 동안 내 지친 영혼은 온전히 자유하고 있는 듯했다. 내 몸에서 풀 냄새가 났고, 때로는 대나무의 냄새가, 황토의 냄새가 났다. 자연을 그대로 모셔와 내 몸 위에서 태워 그들의 기운을 내려 받는 듯 기분이 묘헀다.
"엄마한테서 외할아버지 냄새가 나. 아주 고약하고 싫은 냄새." 아이들이 던지 한마디가 뇌리를 스치면서 눈이 떠졌다. 나는 다시 몸 구석구석을 들추며 냄새를 찾았다.
아버지도 지금 나처럼 힘들었던 걸까. 그래서 그 허(虛)한 속을 달래기 위해 줄담배를 피웠던 걸까. 어쩌면 아버지도 한 모금 한 모금 온기를 빨아 당기며 얼어붙었던 과거의 아픔을 조금씩 녹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냄새와 내 몸의 냄새가 무엇이 달랐을까. 어렸을 적 밭에서 푸르게 푸르게 자라나던 담뱃잎들을 보지 않았던가. 그것 역시 산천의 풀잎사귀 아니었던가. 달랐다면 아버지를 미워했던 내 마음과, 병을 치유하기 위해 뜸을 올리는 내 마음이었으리라. 오늘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나의 냉한 가슴부터 뜸을 떠야 하지 않을까. 차가웠던 내 마음의 진액이 아버지의 외롭고도 허한 혈 자리에 스며들 때까지.
무엇이든 차가우면 그 자리에는 풀 한포기도 못 자라는 게 순리이리라. 아버지를 향해 차갑기만 했던 내 마음에서 어찌 사랑이 자랄 수 있을까. 매몰차게 돌아서던 내 등 뒤에서 아버지는 또 얼마나 딸년의 살가운 정을 기대하며 가슴 아파하셨을까. 눈시울이 젖어 온다. 매캐한 냄새 때문인지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 때문인지 연신 눈물을 훔치는 내게 큰아이가 티슈 서너 장을 건넨다. "엄마. 내가 할아버지 냄새 난다고 해서 속상해서 울어?" 고개를 가로저으며 또 뜸에 불을 붙인다. 이 온기가 흘러흘러 내 심장에 닿아 얼었던 가슴이 녹는 날, 따뜻한 가슴으로 아버지에게 가 용서를 빌고 싶다.
- 박시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