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누리길 3코스 한강을 품은 들녘을 걷는 한강철책길은 물처럼 순하고 산처럼 깊은 김포의 오래전 우리의 기억 속에 있던 풍경이 펼쳐지는 길이다. 역방향 시작점인 김포시 하성면 소재의 전류리포구는 한강하구에 존재하는 유일한 포구이며 한강하구의 최북단 최전방 어장으로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으로 생태의 보고이다. 예전에는 노를 저어 고기를 잡아야 했으나 지금은 이곳의 어부들이 김포대교 아래서부터 전류리 어로 한계선까지 14km 구간을 오가며 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리고 있다. 큰고니나 흰비오리가 많이 찾아오고 민간인도 겨울엔 들어가 전류리포구의 명물인 새우와 숭어, 웅어를 맛볼 수 있는 곳, 특히 이곳의 참게는 수랏상에도 올렸을 만큼 최고급으로 전해지고 있다.
평화누리길 3월 정기모임으로 함께 걷는 길, 전류지포구에 선 길동무들이다.
김포는 서울 지척에 있지만 한가로운 전원풍경과 최신 신도시, 최전방 철책선의 긴장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이 김포다. 한강이 실어온 토사가 쌓여 곡창지대 김포평야를 빚어냈고, 한강하류와 염하강에 둘러싸여 반도를 이룬다.
강 하류의 서안에 펼쳐진 김포평야는 토양이 비옥해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곡창지대로 예로부터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졌다. 기후와 풍토가 개성과 비슷해서 인삼재배가 성한 곳이기도 하다. 인삼과 더불어 김포쌀은 질이 좋아 예로부터 통진미로 알려져 임금님의 수랏상에 올랐던 진상미였다.
전류리포구는 20여 척의 어선들이 내수면어업을 하는 전류리 포구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으로 한강의 최북단 어장이다. 포구는 군사분계선과 인접해 있어 어민도 고기를 잡으러 나갈 때마다 군에 출항신고를 해야 하지만, 2010년 평화누리길이 열리면서 출입이 자유로워졌다.
전류리는 병자호란(1631, 인조 14) 때 경정공의 후손으로 민지옥은 부인과 같이 강원도댁에 가서 글공부를 하다 그 곳에서 난을 치르고 난 후 귀가하여 보니 일가족 13인이 천등산 토우 중에서 순절하여, 이에 부형과 함께 죽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긴 후에 죄인으로 자처하고 돌로 담을 쌓고 두문불출하고 벼슬을 주어도 나가지 않았다 한다. 인조가 그 충의효절을 가상히 여겨 특강은전(特降恩典)하고 ‘전류(顚流)’-천리외응일전 만절동래일류(千里外應日顚 萬折東來日流)라는 당호를 주니 정자(亭子)를 짓고 ‘전류(顚流)’를 마을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내촌동, 국사동, 중곡, 용바위, 전류정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겨울을 강화에서 보낸 길동무들이 봄이 오는 길목에서 평화누리길을 찾아 나섰다.
길동무 파이팅!
봄이 오는 길목의 석탄리 풍경이다. 석탄리는 ‘돌여울’ 마을을 한자로 석탄(石灘)이라 하였다.두곡동, 도련동, 오정동, 동이점, 곡촌동, 핑굿재, 능파장, 신촌동, 덕복재, 미루지, 가로지, 돌밖재, 보롱뫼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석탄배수펌프장이다.
후평리 평야지대가 질펀하게 펼쳐진다. 이 길목에 서면 김포가 5000년 동안 쌀을 생산해온 땅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토양과 물, 기후 모두 최상의 조건을 갖춘 김포는 예부터 품질 좋은 쌀이 나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후평리 철새도래지 전망대다.
후평리는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하다. 만통선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묶인 땅은 철새들의 먹이거 풍부할 뿐만 아니라, 후평리 일대의 비옥한 농경지가 언제부터인가 철새들의 안락한 보금자리가 됐다. 끊긴 길, 갇힌 땅이 어느새 터전으로 자라가헤 되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이곳에는 월동을 위해 시베리아 등지에서 철새들이 찾아든다. 겨울이면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 흰죽지, 황오리 같은 오리류 뿐 아나리 천연기념물 제203호인 재두루미도 만나볼 수 있다.
후평리는 본래 통진군 소이포면의 지역으로서, 테뫼 뒤에 넓은 들이 있으므로 뒷들 또는 후평, 후평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작동, 포창리, 사야로리를 병합하여 후평리라 해서 김포군 하성면에 편입됐다.후촌동, 한집골, 포창동, 용에머리, 충시논, 재촌동, 가작동, 감나무골, 푸묵골, 당고개, 능모루, 노루뫼, 장수바위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연화산 연화사에 도착한다. 연화봉이 봉긋하게 얼굴을 들어낸다. 해발 75m의 연화봉은 1500년 전 영토 전쟁의 비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1500여 년 전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영토 확자을 위해 백제를 침략할 때의 일이다. 고구려 병사가 백제의 낭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 후 낭자는 매일 같이 이 산봉우리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병사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병사는 오지않았고, 병사를 향한 마음을 못 이겨 강을 건너려다 개벌에 빠져 죽었는데, 그 자리에서는 한 송이 연꽃이 피어났다 하여 연화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평화누리길 카페 3월 정기모임에 주체측이 준비한 도시락이다.
상품 추첨시간이다.
평화누리길 3코스 한강철책길은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하다. 민통선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묶인 땅은 철새들의 먹이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후평리 일대의 비옥한 농경지가 언제부터인가 철새들의 안락한 보금자리가 됐다. 끊긴 길, 갇힌 땅이 어느새 터전으로 자라가게 되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이곳에는 월동을 위해 시베리아 등지에서 철새들이 찾아든다.
오두산 전망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평화누리길을 걷다보면 이곳이 살기 좋은 곳임을 알 수 있다. 정말 그런 연유 때문인지 그림같은 전원 주택지가 마을 곳곳에 자리한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 곳에 쌍둥이 탑의 교회가 길동무들의 배경이 되어 준다.
마조리를 통과한다. 본래 통진군 소이포면의 지역으로서, 신리의 마음도리로부터 옮겨 와 새로 이뤄졌으므로 마음도리, 변하여 마호동, 마조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곡리를 병합하여 마조리라 해서 하성면에 편입됐다.
봄이 오는 길목의 마조리 풍경이다.
마조리에는 "글로버 VIP를 향해 도전하는 금성교육" 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미래의 굼을 키우는 교육,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교육, 자긍심을 키우는 교육을 펼치고 있는 금성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평화로운 마을풍경을 보며 걷는다.
애기봉이 시야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서부전선 최전방인 하성면 가금리에 있는 쑥갓머리산(155m) 애기봉은 북한 땅과 가장 가깝다. ‘애기봉’이란 이름은 병자호란 때 평양감사와 기생 애기의 한(恨)이 서려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애기의 한과 분단으로 가족과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한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해마다 조상들에게 제를 올리고 통일을 기원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근포리를 통과한다. 마근포리는 강가에서 마조리, 수곡동, 양택리, 양존동까지 갯골이 있었는데 이 갯골을 막은 후부터 ‘막은갯골’ 즉 ‘막은개’를 한자로 麻近浦라 쓴 것이라 한다. 또한 일설에는 마곡 마조리에서 가까운 포구라는 뜻이며, 마곡 마조리 부근에서 생산하는 마(麻)를 실어 수로로 다른 곳으로 운반하는 곳이란 뜻이라 한다. 일명 ‘모주개’라고도 부른다. 봉-바위, 맴두리, 해지기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마근포는 과거 나루터의 기능을 했던 곳으로, 조강 건너 북한의 개풍군 임한면 정곶리 사이의 왕래를 가능하게 했다. 조강포구가 사람과 물자를 북한과 서울의 마포로 오고가는 길목의 역할을 하던 것처럼 이곳도 같은 기능을 했다. 마근포는 6, 25전쟁 이후 포구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하여 현재는 포구 마을이 흔적조차 없이사라지고 마을은 문서상에 지번으로만 남이 있다.
들판의 끝트리머리에 북녘 땅이 얼굴을 들어낸다.
쉼터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다.
가금리로 들어선다. 하성면 가금리는 애기봉전망대로 오르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이기봉 일대는 6, 25 전쟁 당시 남북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격전지였다. 햐병대 독립 5연대는 1, 4후퇴 이후 중공군, 인민군과 50여 차례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이 산을 지켰고 지금도 해병대가 최전방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곳이다.
고려 문신 박신 묘역과 그가 심었다는 500년 된 향나무가 마중나온다. 박신은 고려 말 정몽주의 제자로, 고려 1385년(우왕 11년)에 과거에 급제하고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자 원종공신의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세종 때 이조판서로 재직하였으나 아랫사람들의 비리에 연루되어 1419년부터 1432년까지 13년간 김포 통진에 유배되었다. 이때 그는 통진과 강화 깁곶진 사이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내리기 위해서 한 겨울에 갯벌에 빠져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사재를 털어 갑곶나루를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현재도 석축으로 된 나루터(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경기도 기념물 제108호)가 남아 있다.
박신 묘
가금리의 또 하나의 명품인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마중나온다. 수령이 500년 가까이 된 고목들은 나무의 연륜으로 보아 예전 이곳이 꽤 큰 마을들이 있었을 것 같다. 느티나무에 가까이 서면 그 웅장함에 사뭇 압도당하는 기분마저 든다. 50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위풍당당 자리를 지키는 두 그루의 나무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애기봉입구다. 애기봉은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병자호란 때 평안감사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애첩을 데리고 수도 한양을 향해 피란길에 올랐다. 허나 개성직할시 판문군 조강리 즈음에 이르러 뒤따라오던 청나라 오랑캐에게 평안감사가 붙잡혀 다시 북으로 끌려가고, 애첩 애기만 강을 건너 구사일생으로 조강리 마을에 머물게 되었다. 이후 애기는 매일 이 봉우리에 올라 평안감사가 계신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임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평안감사가 끝내 돌아오지 않자, 병들어 죽어가면서 고향 하늘과 임이 계신 북녘 땅이 잘 보이는 이 봉우리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유언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애기의 일편단심과 애달픈 사랑을 가엾이 여겨, 애기를 이 봉우리에 묻어 한을 달래 주었다.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이곳을 ‘애기봉’이라 부른다.
평화누리길에서 봄이 오는 길목에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남긴다.
첫댓글 평화누리길 3코스
한강철책길 주변의 모는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
다음에 다시 걸을때
참으로 좋은
정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느길이든 이야기가 있지요.
길동무와 이야기가 있는 길을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면
더욱 아름다운 추억거리가 되더군요. 감사합니다^^*
자연과 하나 되고 평화를 얻으면서 즐겁고 아름다운 평화누리길이 하나 더해져서 공부가 됩니다 언제나 색다른 기법으로 도전하신 수명산 선생님의 영상기록들은 최곱니다
감사합니다^^!
감곷땜시 평화누리길을 걷게된 것 같습니다. 어떻든 완주해야되겠지요. 감사합니다^^*
~☆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 ~☆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
저도 고맙고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시간과 정성으로 꾸며주신 후기 즐감합니다.
좋은 정보도 알게되어 감사 합니다.
다음 길위에서 뵈어요.
수고 하셨습니다.
알고 걸으면 더 재밌게 걷을 수 있는 길이되지요. 어번 길에서는 이야기가 있는 금성초등학교를 놓치고 말았어요. 다음 길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파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다니던 누리길의 지명과 유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후기 즐감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예전에 우리의 산줄기를 걸을 때 아름다운 이야기거리를 찾아 이곳 저곳을 뒤지던 습관이 아직 남아 있어 걷기에 앞서 찾아보곤 하지요. 그래도 놓치는 곳이 아직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모 카페 행사 때 모두 잘 걸으셨군요. 늘 한결 같은 수명산님에게 존경을 표해드립니다. 평화 나들길 곧 접수 되리리고 생각합니다..잘 보았습니다.
샘! 방가방가 그새 보고 싶네요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모든 일 보시고 꼭 오세요^^?
겨우내 함께했는데 안 계시니 허전했답니다
샘 후기도 그립고 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