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10주차] 글 쓸 용기
민주적 학교 공동체에 대한 심화 연구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늘 이상을 추구하고 깊은 사유를 통해 이상적인 삶의 철학을 논리적으로 풀어내어 설득하고 학자들의 말에 내 생각을 덧입혀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 공부가, 전공하고 있는 학과의 특성이 좋으면서도 버거웠다. '나는 교실에서 민주적 학급 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있는가', '우리 반 아이들은 행복한가?', '내가 말한 대로, 글 쓴 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자기 검열에 빠져 이상일 뿐인 주장마저도 속으로 삭혔던 시간들이 2년 가까이 되었다. '살아가는 여정이고 연구를 하고 글을 쓰면서 나도, 아이들도 더 성장하는거야!' 라고 깔끔하게 다짐하고 연구를 이어가면 되는데, 뭔가 찜찜하고 풀리지 않는 것들로 노트북을 켜면 백지 위에 답답함만 한참 쏟아놓다 멈추게 된다. 머리와 마음으로 납득이 가지 않으면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모순된 상황과 진실하지 못하다 판단될 때 마음에 선을 긋고 중단해버리는 외곬수 같은 성향이라 더욱 그랬다.
2주 전 토요일에 다녀온 박웅현 작가의 북토크가 떠오른다. "나도 가고 있는 과정이다, 아직 부족하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라며 함께 이 순간에 몰입하고 현재를 만끽하며 지금, 이 순간에 오롯이 존재하자고 독자들을 초대했다. 'here&now'라는 흔한 메세지이지만 그렇게 살아가지 못했던 시간들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회상하는 작가의 모습이 말한 대로, 글 쓴 대로 살아가는 삶인 것 같아 나도 미소와 박수로 화답했다. 함께 북토크에 다녀온 남편과 차를 마시며 각자 마음에 남은 울림을 나누는 시간이 편안하고 따스해서, 이 시간을 선물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래, 북토크에 다녀왔으니 작가님의 영감을 받아 글이 더 잘 써지겠지? 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학술지 논문으로 지금까지 연구한 루이스를 정리하고, 학위 논문으로 석사 때 연구한 민주적 학교 공동체를 더 깊이 제대로 연구하고 싶다고 교수님께 말씀드렸는데.. 이를 어쩌나.
그냥 앉아서 글 쓰면 되는데 무슨 버퍼링이 이렇게 긴지, 왜 생각에 빠져 나아가지 못하는지, 막상 시작하면 앞만 보고 몰입할 거면서 왜 이리 웅크리고 있는지 - 가까운 사람들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점점 잦아지는 듯 하다. 왜 유독 이 부분에 있어서 내가 막혀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매주 토요일 내적 여정 과정을 이어오며 예수 기도로 나를 돌아보고 에니어그램을 활용해 내면을 돌아보고 복기하는 시간을 가져서인지,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경험했다.
오프라인인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배려 없고 이기적이며 동료와 아이들을 자신을 알리는 도구로 이용했던 사람이, 온라인에서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참교사가 되어 여기 저기 강의도 다니고 책도 출판하는걸 지켜보며 느꼈던 분노. 약삭빠르고 속물적인 태도로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몫의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남은 시간에 학위 과정을 이어가며 잘 나가는 스타(?) 교사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 매일 화려한 수업을 자랑하고 sns에 인증하여 불특정 다수로부터 찬사를 받지만, 정작 그 반 아이들의 눈에는 슬픔과 억울함이 가득하고 점점 수심이 짙어지는 얼굴을 마주했던 일. 다사다난한 학교에서 교사로서 꿈꾸고 노력한 것이 화살이 되어 돌아오고, 어딘가에 풀지 못해 학교를 쥐어흔드는 어른들의 장난에 무력함을 느낀 일들. 사람들에게 모질게 대하지 못하고 크리스챤이라면 마땅히 끌어안고 내 것을 내어주어야 한다는 지속적인 교육(?)으로 인해 정면으로 맞은 풍파.
주로 첫 학교에서 겪었던 일이고 지금 내 생활 반경에는 (그때 데인 경험으로 조금의 낌새라도 보이면 질색팔색하며 거리를 두어) 없는 인간 군상들이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공부하다 지치고 이상적인 글을 읽고 쓰며 현실에 적용할 점을 찾다가 불쑥 '교사로서 잘 존재하고 있는가? 아이들과 공명하는 이 시간이 서로에게 즐거운가?' 라는 물음이 올라오면 "그래!!"라고 답할 자신이 없었다. 어디 교직 뿐이겠는가. 어느 직종이든 다 현실은 똑같겠지만, 유독 교육이기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사회 앞에서 당당할 용기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글은 써야 하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함께 이 삶을 살아가야 하며, 함께 살아가며 느낀 것들을 글로 풀어내어 더 좋은 학교와 공동체를 위한 지혜를 제시해야 한다. 이번주, 나에게 다시금 글을 쓸 용기를 준 2가지가 있다. 교원능력개발평가(줄여서 교평)와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 이라는 책이다.
올해 결혼을 하고 나니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는 건 보통 일이 아니고, 이 귀한 아이들을 씻기고 먹여서 학교에 믿고 맡기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좀 더 알게 되었다. 유독 순하고 귀여운 2학년 아이들이기도 해서, 아이들에게 재밌고 소중한 추억을 남겨주고픈 마음에 각종 놀이 연수에, 한 달에 3~4회 공부 모임과 실습 연수도 참여해 즉각 교실에서 시행해보는 등 교실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재밌어하고 예쁜 피드백을 해주는 아이들 마음이 고마워 더 열심히 수업을 준비했다. '내가 있는 이 곳에서 꽃을 피우자. 우리 반, 우리 학년, 우리 학교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마음으로 동료 선생님들께 자료도 나눠드리며 (논문보다는) 학교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충실했다. 그 마음이 닿았는지 마치 선물보따리를 여는 것처럼 학부모님들의 따뜻한 격려와 감사의 메세지가 쏟아졌다. "선생님을 만난 건 저에게나 아이에게나 큰 복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봐주시며, 따뜻하게 대해주십니다."는 글귀가 내내 마음에 남아 캡쳐해서 저장해 두었다. 마음이 통한 것 같아 기뻤다.
신규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루종일 아이들 생각만 나고, 좋은 선생님으로 아이들에게 행복한 학교생활을 만들어 주고 싶어 자청해서 초과근무를 했던 시기들. 방학 때마다 외국에서 사온 엽서에 손편지를 적어 아이들 집으로 보냈던 우리들만의 귀여운 추억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영혼에 씨앗을 심고 물을 뿌리는 마음이었다. 몸은 힘들고 교사로서의 기량은 부족해도 교실에 늘 웃음이 피어나고 아이들의 자라나는 모습이 꽃 같았던 시간들.. 그 시간이 그리웠는데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열심히 하다보니 답답함과 목마름이 느껴져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교육을 지식으로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차가워지는 걸 느끼며 '이건 아닌데, 나 잘하고 있는걸까..' 마음이 부대꼈다. 그 터널을 지나 다시 햇살이 비치는 통로에 다다랐다. 점수가 중요하지 않고 누군가의 평가에 개의치 않는다 하더라도, 칸을 가득 채울만큼 길고 사려 깊은 감사의 피드백을 받으니 '글 쓸 용기'가 생겼다. '아, 나 이 주제로 연구해도 되겠다. 민주적 학교 공동체, 교실 공동체, 역동적이고 살아 있는 학교.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 맞다'는 힘이 솟았다.
또 나에게 글을 쓰고 연구를 이어갈 용기를 준 것은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 이라는 책이다. 제인 블루스틴 박사가 다양한 나이, 직업, 사회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선생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편지를 써서 받은 이야기들을 엮었다. 이 책에는 매일 안아주시는 선생님,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의 에너지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사용하도록 이끌어주신 선생님, 배우는 일을 좋아하게 만들어주신 선생님, 열악한 환경 속 아이를 특별하게 봐주셨던 선생님, 글쓰기의 기초를 알려주신 선생님,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신 선생님, 한 아이의 영혼을 일깨워 온 가족을 변화시킨 선생님... 많은 위대한 선생님들의 일화가 담겨 있다.
"선생님과 함께 있을 때마다 매순간 나는 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이가 되는 것을 느꼈다."(p.14)
"우리는 선생님이 우리에게 큰 기대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언제나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모든 학생들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p.169)
선생님(교사, 교수, ...)은 내 생각보다 더 크고 깊은 울림을 주는 존재이고 학교란 영혼이 살아나고 자라는 곳임을 다시 새기며, 뭉클해진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영혼을 보는 깊은 눈을 달라고 매일 기도하는 일, 하나님께서 어린 영혼들을 빚으실 때 감추어두신 빛나는 보석들을 발견하는 것, 그 보석이 세상에 나와 빛을 발하도록 입술에 사랑을 담아 지혜롭게 건네는 한 마디, 따뜻하게 안아주는 품, 다독여주는 손, 함께 걷는 걸음. 하나님은 이미 나에게 허락하셨다. 심으신 곳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살아갈 때, 오히려 나를 살리시고 용기를 주시며 비전을 발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10년 전 임용 공부가 너무 힘들어 "하나님, 합격하면 저 교육을 위해 몸 바칠게요' 울면서 기도했던 (서원인 줄 몰랐던) 약속을, 내가 지키기 버거워 이리저리 헤맬 때 주님께서 "내가 그 약속 지킬게" 하시며 손 잡고 이끌어주신다. 나를 제일 잘 아시는 그분께서, 움츠려든 나를 다독이시며 다시금 글 쓸 용기를 주신 일주일이었다.
첫댓글 내적여정에서 만났던 분 같습니다. 진심어린 글, 공감하며 읽었어요. 쓰담쓰담, 주먹 불끈 화이팅, 응원을 드립니다~~^^
저도 언뜻 기억나는 것 같습니다. 글 읽고 응원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응원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