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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칼럼 >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 공군 ~!!!
(The Ultimate Protector of Korea – Air Force)
경남 진주 공군‘기본군사훈련단’수료식 참가 후기
글 : 유지현(시인), 시집 <화인(花印)> 2020년 3월 출간예정
“찬비 내리는 영마루에서 우리는 내일 아침 떠오를 태양을 생각한다”
‘조선의용대 최후의 분대장’, 독립운동가, 소설가인 김학철(1916~2001)선생이 중국 태항산 전투 중 영마루에서 밤을 지새우며 한 말이다. 지금은 춥고 비 내리는 밤이지만, 내일 아침엔 환한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1941년12월12일 조선의용대는 하북성 호가장(胡家庄) 마을에 도착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밀고를 받은 일본군 500명이 기습적으로 마을을 포위하자, 민간인에게 피해가 갈까봐 산으로 적군을 유인해 전투를 펼치다 4명이 전사하고, 김학철도 다리에 총상을 입는다. 민간인 피해를 안 가게 했던 조선의용대에 감격하여, 18명의 중국 농민이 전사한 4명의 시신을 메고 그 추운 겨울날 무려 3일 밤낮을 걸어 35km나 떨어진 곳에 전사자들을 묻어줬다. 그것이 유명한 ‘호가장 전투’다. 이들이 묻힌 곳에는 ‘순국열사기념비’가 있다고 한다. 박철동 27세, 손일봉 29세, 최철호 26세, 왕현순 23세. <격정시대>, <해란강아 말하라> 등 김학철의 소설을 읽으며 26살의 나는 누더기같은 한국현대사와 분단의 비극에 몸서리쳤다. 미국에서 살때 콜롬비아대학 도서관에서 우연히 김 선생의 사망기사를 접하고,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폭풍한설 칼바람 부는 중국 땅에서 총알이 다 떨어져 일본군과 육박전을 벌이다 처참히 죽임을 당한 왕현순, 박철동, 손일봉, 최철호를 생각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도서관 창밖으론 흰 눈이 무정하게 펑펑 내리고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데도 눈물이 철철 흐른다) 나중에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에 이어, 홍구공원 안에 있는 ‘매헌기념관’에 갔을 땐 윤봉길의 커다란 사진을 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죽어서, 니가 살고 있는 거야” 그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아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휘청거리며 대성통곡을 쏟았다. 윤봉길은 그렇게 25살에 갔다... 이런 분들이 내놓은 피의 목숨 값으로 우리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 11위의 경제성장과, 1인당 국민소득 3만2천 달러의 번영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충남대 영문과 김명주 교수께 이메일이 왔다. 공군사관학교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강의 요청이 왔는데, 강의 끝부분에 내 시 ‘다른 주기도문’을 생도들에게 읽어 줄 계획이라고 했다. 나는 공사의 ‘성인지적 감수성’이 매우 높은 것에 놀랐다. 김 교수는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아카데믹한 지성이 어우러져 매우 수준 높은 여성주의적 담론을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분의 칼럼을 복사해 공사, 해사, 육사 모든 생도들이 수업시간에 필수 교재로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면 최근 “여군 투스타 탄생”, “공사 최초 여성 생도 3명, 공군 최초 비행대대장 취임”이라는 뉴스도 나왔지만, 싫든 좋든 핸드폰을 써야 하는 것처럼 이미 개인의 선택과 상관없이 ‘젠더 감수성’을 높이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구글 검색에서 ‘중도일보–세상속으로–김명주’ 치면 볼 수 있으니 독자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김 교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윌리엄 포크너(캐나다 공군출신이다)의 소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As I Lay Dying)> 번역했고, <여성의 성이 성스러웠을 때>라는 책을 썼다.
병 804기 공군 훈련병
2019년 가을 차남이 공군에 입대, 5주 훈련을 마치고 10월4일 수료식이 열린다고 하여 장남과 함께 경남 진주 공군훈련소(기본군사훈련단)에 가게 됐다. 장남은 카투사(KATUSA) 전역했는데, 우리 집이 서울 마포 공덕역 근처인데 마침 ‘용산미군기지’로 배치돼 집까지 택시로 8분 거리라 진짜 매일 집에 왔다. 매주 금토일 외박, 12일씩 휴가, 한국 공휴일과 미국 공휴일 다 놀아 군대를 간 건지 놀러 간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이래서 나는 카투사 다 없애야한다고 생각한다. ‘형평성’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 그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던 차남은 “카투사만이 살 길” 이라 결심하고 응시했으나 7대1의 경쟁률에서 탈락, 할 수 없이 한국 군대 중에서 가장 좋다는 공군을 선택했다. 그러나 입대일이 다가오자 아들은 급격히 우울해했다. 땅이 꺼져라 한 숨 쉬고 멍하니 앉아있거나 새벽 3시까지 게임만 했다. 대문밖에도 안 나가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고통스러웠다.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대체복무가 없는 한국의 현실이다. “요즘 군대 좋아 졌대~ 구타도 없고, 사병들도 인격적인 대우해준대” “그렇게 좋으면 엄마나 가 ~” 포로수용소에 끌려가는 포로같이 무기력하고 인생 체념한 태도였다. 할 수 없이 특단의 방법을 제시했다. “그럼, 군대 가지 마” 아들이 눈을 번쩍 떴다. “병역법 제88조에 의거, 정당한 사유 없이 군복무를 이행하지 않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나와 있네. 그냥 감옥 가 ~” 아들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고, 엄마가 훈련소까지 데려다 준다고 해도 싫다며 혼자 서울역에서 기차타고 떠났다. 호소다 마모루의 영화 ‘늑대아이’를 줄줄 울며 본 적 있는데, 마치 그 장면 같았다. 엄마 품을 떠나 숲속으로 영영 떠나는 ‘늑대아이’ 같은 아들...
그렇게 아들이 떠나고 잠이 오지 않았다. 아들이 생일선물로 준 <지금 나는 화창한 중년입니다> 책을 읽으며 고민 고민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공군본부로 전화했다. “저기요~, 제 아들이, 며칠 전에 경남 진주 공군훈련소로, 입대를 했는데요~, 5주 훈련받고, 자대로 배치된대요~. 근데 자대라는 곳이, 전국 어디 어디에 있고, 몇 개나 있나요~? 제가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와서요~, 바쁘신 데, 정말 죄송해요~” 구구절절이 ‘거지처럼’ 애원했으나 돌아온 건 벽돌 한 장이었다. “군사기밀이라 가르쳐줄 수 없습니다.” 기가 막혔다. “네...... 안녕히 계세요......” 전활 끊고 확, 열불이 나 온 세상 군대를 다 폭파시켜 버리고 싶었다.
서울역에서 새벽6시 기차타고 333km를 달려 3시간40분만에 진주역에 닿았다. 작고 아담한 역을 나와 택시타고 부대 앞에 내렸다. 길에서 꽃 파는 아저씨에게 가장 크고 화려한 꽃다발을 2만원 주고 사, 정문으로 들어가니 파란색 셔틀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타자마자 금방 버스에서 내리자 저 앞에 큰 강당이 보였다. 길 건너가려는데, 마침 오른쪽 저 먼 언덕 같은 차도에서 병사들이 깃발을 든 채 수십 명씩 끝도 없이 쏟아져 내려왔다. 마치 성냥통의 성냥개비처럼 간격과 줄을 정확히 맞춘 채 촘촘히 한 떼거리씩 다가오는데, ‘집단’이 뿜어내는 강력한 에너지 파장이 사방을 압도했다. 아, 이게 군대구나, 싶었다. 개인이 녹아든 ‘집단’. 저 중에 내 아들이 있겠다 싶어 이리저리 병사들 얼굴을 살폈으나 도무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울상이 돼 “누가 누군지, 구분을 못 하겠어”하자 장남이 옆에서 “누군지 구별 못하게, 군복 입힌 거야”했다. 아, 그렇구나... 강당에 도착해 아들의 소대장에게 전화했다. 아까 열차에서 내리기 직전 그는 내게 전화해 도착하면 연락 달라고 했었다. 장남이 강당 안으로 들어간 뒤, 다부진 체격에 건장한 남자가 선글라스를 쓴 채 웃으며 다가왔다. 아들의 소대장이었다. 나는 그에게 인사하며 꽃다발을 줬다. 부모들 출석체크인 줄 알았는데, 그는 다짜고짜 내게 단상으로 같이 가자고 했다. 깜짝 놀라 물으니 며칠 전 10월1일 국방부 홈페이지에 내가 짧게 쓴 글을 이곳 단장님도 보시고, 오늘 내가 오면 단상 위로 모셔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날 우연히 TV를 켰는데, 화면에 무슨 전투기들이 마구 보이고 올해 공군 창군 70주년이라 특별히 대구공군기지에서 ‘국군의 날’ 기념식이 열리고 있었다. “어, 우리아들 공군 갔는데”,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TV를 보며 손으론 방송내용을 휙휙 받아 적었다. 나는 20년 넘게 잡지 프리랜서 기자로 일해 24시간 내 곁에는 노트와 펜 있고, 언제 어디서든 즉각 받아 적을 준비가 돼 있다.
한 대 1200억 원이라는 F-35A 스텔스 전투기가 일반에 최초 공개됐고, KF-16, F-15K, K-9 AI, FA-50, F-4 등 다양한 전투기들이 소개됐는데 어쩐지 엄숙하고 감격스러웠다. 창공을 휘젓던 날렵한 전투기들이 하나씩 땅에 착륙해 조종사들이 내리고 대통령 앞에 칼같이 서 있는데, 너무 멋있어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우람한 나무처럼, 큰 별처럼, 하나의 로봇처럼 멋지게 서 있는 조종사들의 몸에서 사방으로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조종사 하나하나 빛났다. 나는 가슴 뭉클하고 숙연해, 평소 부모들에게 늘 친절하고 다정한 문자를 보내준 아들의 소대장에 대한 칭찬 글을 국방부 홈페이지에 썼다. 그는 내가 아는 유일한 군인이었다)
‘단장님’이 누구냐고 물으니 ‘기본군사훈련단’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했다. 고맙지만 부담스러웠다. 굳이 가고 싶지 않아, 됐다고, 그냥 일반석에 앉겠다고 몇 차례 사양하자 계속 사람 좋게 웃던 그가 단호히 말했다. “안 됩니다, 단장님 명령입니다!!” 깜짝 놀랐다. ‘명령~?’ 명령이 뭐지?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명령이라는 말이 거침없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런데 어이가 없었다. 이까짓 게 무슨 명령이야? 내가 안 가면 그만이지. 하지만 문제는 소대장의 태도였다. 그는 내 의사와 무관하게 나를 단상으로 데려갈 태세였다.
끝까지 안 간다고 하면 짐짝처럼 번쩍 들어 나를 단상 위에다 탁, 내려놓을 철벽같은 기세였다. 소름끼쳤다. 끔찍한 획일화, 극도의 일방통행, 이런 게 군대인가 싶었다. 약간의 호기심도 있었지만 내가 안 가면 이 사람이 단장이라는 사람한테 혼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따라갔다. 단장님의 솜털 같은 한마디가 소대장에겐 강철판으로 떨어지는 게 명령의 ‘작동원리’인가? 그의 안내를 받아 단상에 올라가 앉으니 과연 어마어마하게 큰 강당 안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단상 위에는 오늘 수상하는 훈련병들의 부모 예닐곱, 소대장으로 보이는 분들 15명쯤이 똑같은 군복, 똑같은 빨간 모자를 쓴 채 앉아있었다. 그러니까 나만 순전히 열외로, ‘단장님의 명령에 의해’ 졸지에 특별히 앉혀진 사람이었다. 소대장들을 둘
러보니 다들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 같았다. 어딘가 순박하고 모범적이며 따뜻함이 느껴졌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훈련병들이 깃발을 높이 치켜든 채 줄맞춰 꾸역꾸역 안으로 들어왔다. 저 무수히 공짜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병사들이 실은 하나하나 “한 여자가 온 몸의 208개 뼈 마디마디를 다 벌려 우주의 깊은 수렁에서 혼신을 다해 건져 올린 뽀얀 달덩이”라는 사실을, 여기 앉아 있는 빨간 모자의 남자들은 알까?... 멀리서라도 아들이 빨리 찾으라고 나는 새빨간 블라우스를 입고 갔는데, 왜 이들은 죄다 빨간 모자를 쓰고 있는 거지. “가, 너의 꿈을 펼쳐~!” 호기롭게 남편을 미국으로 보냈으나 현실은 가혹했다. 남편은 편도 비행기 표 한장 들고 급작스레 유학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나는 친정부모와 3살 첫째아이, 그리고 뱃속의 둘째까지 혼자 책임져야 했기에 임신한 몸으로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미친 듯 취재 다니고 미친 듯 원고를 써야만 했다. 밤마다 매일 2시간씩 일기를 쓰며 울다 잠들었다. 그때 뱃속에서 같이 울던 아기가, 통장에 돈 35만 원 남았을 때 동네 가장 작은 산부인과에서 33만 원을 내고 3.2kg로 혼자 낳은 아기가, 저기... 군복이라는 이상한 옷을 입고 내게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 절실하고 애절했던 20년 세월이 꿈결처럼 지나고, 21살의 멋진 공군이 된 것이다.
정해진 구역 내로 차례차례 병사들이 대나무처럼 빽빽이 서자 오전 11시 수료식이 시작됐다. 수료식은 건조하고 간단명료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수료증 수여 그리고 단장님의 ‘훈시’가 이어졌다. “북한은~”으로 시작한 훈시는 너무 밋밋하고 재미없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훈시 대신 ‘빨간 모자들’이 죄다 일어나 부모형제 떠나 낯선 곳에서 5주간 힘들게 훈련받은 훈련병들을 위해 춤추고 노래 한곡 불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30분의 짧은 수료식은 한마디로 ‘단장에 대한 경례’로 시작해 ‘단장에 대한 경례’로 끝났다. 강당을 가득 메운 약 1000여 명의 병사들이 “단장님께 대하여 경례~!” 소리에 맞춰 일제히 강당이 떠나가도록 우렁차게 “필승~!!!” 외치며 단 한사람 ‘단장님’께 깍듯이 경례를 했다. 그 모습이 가히 장관이었다. 나는 내가 경례를 받는 것도 아닌데 그 장면이 가슴 벅찼다. 로봇처럼 꼿꼿이 선 수많은 병사들의 강인한 눈동자엔 ‘절대복종’이라는 의지가 서릿발처럼 담겨있었다. 화살이 날아가 꽂혀야 할 정중앙 과녁처럼, 오직 ‘단장님’이라는 한 점을 향해 송곳같이 초점을 맞춘 채 경례를 하고 서 있는 훈련병들의 모습 속엔 분명 사람을 압도하는 그 무엇이 엄정히 살아 있었다. 경건함, 신성함, 숭고함 같은 그 무엇이.
나 같으면 너무 행복하고 감격에 겨워 그 자리에서 기절이라도 할 것 같은데, 그 단장이라는 사람은 수많은 병사들의 단도(短刀) 같은 경례를 너무도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받았다. 그 모습이 멋있어 나는 넋을 잃고 쳐다봤다. 문득 궁금했다. 저 사람은 누굴까. 왜 군인이 됐을까. 저 1000명의 칼날 같은 경례를 영광스럽게 한 몸에 받고 있는 저 사람은 여기까지 무슨 생각을 하며 걸어왔을까. 그가 맨 앞에 앉아 있어 나는 그의 뒷모습만 보다 행사가 끝나고 ‘단장’이라는 사람의 얼굴을 딱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얼굴에 ‘진심’, ‘본질’, ‘참됨’이라는 글씨가 진하게 써 있는 듯했다. 도저한 품격이 있었고, 분명히 소대장들과 어딘가 분위기가 달랐다. 소대장들이 땅속 10미터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면, 이 사람은 땅속 100미터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느낌, 소대장들이 월급쟁이 직장인 같다면, 이 사람은 뭔가 ‘오너’ 같은 주인의식이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그 차이가 뭘까? 계급의 차이인가. ‘깊은 강처럼 흐르는 자의 진중함’, ‘남을 속이지 않고 또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살아온 자의 맑음’, ‘가장 투철하게 자신의 삶을 뚜벅뚜벅 관통해온 자만이 지닐 수 있는 강인함, 유연함’이 그에게 있었다. 그리하여 시정잡배가 범접하기 어려운,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 같은 어떤 단단한 위엄이, 숲속의 맹수가 지닌 시뻘건 용맹성이 아우라 처럼 그를 감싸고 있었다. 이름도, 나이도, 어디 사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 순간에 그의 전 생애를, 그의 알맹이를 다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공군 지휘관의 수준’이 저 정도인가 탄복했다. 그러나 그를 보고 나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대한민국 다 뒤져도 저런 사람 몇 없을 텐데, 100년 인생 중 비록 30분의 짧은 수료식에서 말 한마디 못해 보고 겨우 얼굴만 보고 스치는 인연이라 할지라도, 저런 사람에게 단 1초라도 단아한 모습으로 남으면 좋으련만 거울도 안 보고 무작정 뛰어온 내 모습이 한심했다.
여기서 저렇게 멋있는 남자를 만날 줄 미리 알았다면, 좀 꾸미고 올 걸, 자식 사랑에 눈멀어 내가 여자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새벽5시 일어나 미친년처럼 뛰어와 여기, 빛나는 귀빈석에 ‘50대의 뚱땡이 아줌마’로 무참히 앉아 있는 내 자신이 암담했다. 시간을 오늘 새벽으로 되돌릴 수도 없고, 마음은 봄처녀인데 가는 세월 잡을 수 없으니 아아, 파도야, 나는 어쩌란 말이냐 ... 흑흑흑
하지만 인생에 공짜는 없는 법. 수많은 병사들의 경례를 영광스레 혼자 받기까지 그는 또 얼마나 많은 경례를 그동안 상관들에게 붙이며 한 발 한 발 여기까지 왔을까. 수백 수천 일을 날마다 동트기 전 캄캄한 새벽에 일어났을 것이고, 가장 성실하고 가장 우직하며 가장 올곧게 군인의 길을 걸어왔으리라. 나는 그를 보며 문득 ‘군인의 삶은 무엇인가’ 아득해졌다. 그러나 그는 알까. 군대에선 계량화된 수치, 최적화된 정보가 중요하겠지만, 그런 치밀한 논리를 단번에 훌쩍 뛰어넘는, 0.1초 안에 상대를 꿰뚫어 보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번개보다 빠른 전광석화의 직관(直觀), 심안(心眼), 통찰(洞察)도 있다는 사실을. 나 역시 매순간 칼을 갈며 살아온 ‘정신의 무사(武士)’라는 사실을. 내가 바람처럼 자유로워 아무도 잡을 수 없는 ‘즉시현금 갱무시절(卽時現金 更無時節)’의 천년 사나이 임제, 그의 자칭 애인이라는 사실을. 아마 모르겠지...^^
수료식이 끝나고 단상을 내려가 아들 소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군복 입은 아들이 낯설었는데, 아들은 날 보자 훅, 눈물을 떨구며 군복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자유분방하게 살다 ‘자기’를 죽이며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긴 세월’ 5주가 끝나고 드디어 엄마를 보자 참았던 설움이 치밀어 오른 모양이다. 사진 찍고 잠시 웃으며 서 있는데, 갑자기 아들이 부동자세를 취하고 큰소리로 “필승~!” 외치며 칼같이 경례를 했다. 돌아보니 선글라스를 쓴 아들의 소대장이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멀리서 상관이 보이기만 해도 경례를 해야 하나. 소대장은 대견하다는 듯 웃으며 아들을 바라봤다.
‘가르쳐 준대로 잘 하네~’ 그런 표정이었다. 백악관에 선글라스 쓰고 간 밥 딜런보다 그가 10배는 더 빛나고 늠름했다. 1주일에 5분씩 걸려오던 ‘효전화’에서 아들이 “우리 소대장님, 성격 되게 좋아”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의 싱그러운 미소가 내 가슴에 물결쳤다. 아, 저렇게 밝고 따뜻하고 선한 사람이었구나!... 아, 저렇게 기민하고 씩씩하며 아름다운 이 땅의 군인이었구나!... 그 존재가, 그 영혼이 보석처럼 반짝여 나는 눈물이 나려했다. 문득 깨달았다. 한국의 괜찮은 남자들은 죄다 공군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내가 그동안 바깥에서 봐온 남자들은 남자가 아니라 시든 배추들이었다는 사실을. 소대장은 다른 훈련병에게 갔고, 나는 아들에게 “아까 보니 1등한 애, 단장님하고 사진 찍더라. 너도 가서 찍어. 엄마가 찍어줄게”하니 아들은 화들짝 놀라며 “안 돼” 소리쳤다. “왜~?” “안 돼, 안 돼, 엄마가 여기 분위기를 몰라
서 그래. 내가 가서 말 시킬 수 없어” 아들은 단호했다. 이해가 안 갔다. 훈련병은 단장님께 말도 못 시키나. 수료식 후 2박 3일 휴가가 주어져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건너는데, 갑자기 아들이 뒤를 돌아보며 “엄마, 나 저기 ‘공군’ 글씨 나오게 사진 찍어줘”했다. 강당 외벽에 써 있는 ‘공군’ 글씨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 찍는데 아들은 깍듯한 경례 자세를 취했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정문을 향해 가려는데, 오른쪽으로 아파트 7~8층 높이의 아주 크고 높다란 파란색 기둥이 눈에 띄었다. 두 아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정문 밖으로 성큼성큼 나가버렸고, 나 혼자 파란 기둥 가까이 가보니 “젊음을 조국과 하늘에”라고 써 있고, 뒷면엔 ‘하늘로! 우주로!’ 써 있었다. 어쩐지 마음이 짠했다. 화엄경의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과 군인의 삶이 무엇이 다르랴. “세상일에 물 안들고, 서리같이 엄한계율 털끝인줄 범하리까” 발원문이 바로 군인의 인생 아니고 무엇이랴. 아아, 그러나, 이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평생 안전하게 사는 이들은 알까? 일반 국민들이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겨우 연명하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비굴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너절하고 시시하고 비루하고 누추하고 부당하고 치사하고 모욕적이고, 오해와 왜곡, 배타와 배제, 차별과 무시로 점철된 세속의 밑바닥에서 겨우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 결국 서서히 ‘인간의 존엄성’마저 무너뜨릴 수밖에 없는 야만적인 생존의 법칙을 이 안전한 이들은 알까...
이제 나가면 끝이니 마지막으로 이 파란 기둥이나 찍자, 생각하고 가방에서 막 핸드폰을 꺼냈을 때 뒤에서 귀청 찢어지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사진 찍으시면 안 됩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정문 근처의 웬 이병 같은 군인이 나를 째려보고 서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소대장도 “안 됩니다”, 아들도 “안 돼, 안 돼”, 그럼 되는 건 뭐야? 다 안 되는 게 군대야? 이것들이 정말, 사람을 뭘로 보고. 이번만큼은 질 수 없었다. 이제 나가면 끝이니 나도 이판사판이다. 이까짓 기둥이 무슨 1급 비밀이야? 나는 성질이 나서 멀찍이 떨어진 그 군인을 눈싸움하듯 똑같이 째려보며 큰소리로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저기요, 이봐요, 그냥 이거만 찍으면 안 돼요~??” 내가 세게 나가면 “그러세요, 그럼, 빨리 찍으세요”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외나무다리에서 원수 만난 듯 오만상을 쓰며 이번엔 아예 천지를 북북 찢어놓겠다는 듯이 “여기서, 사진, 찍으, 시면, 안 됩니다~!!!!!” 버럭버럭 소릴 질러댔다. 마치 도끼로 장작 후려 패듯 한 음절 한 음절 정확히 내리꽂았다. 그 기운이 해일 같아 마치 무협지에서 손으로 장풍을 날리는 것처럼 내 몸이 휘청거리는 착각마저들 정도였다. 딱 보니 이길 수가 없었다. 왜 안 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여기서 한마디만 더 했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아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모기소리로, “알았어요~ 미안해요~”하며 핸드폰을 도로 가방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정문을 통과할 때도 그는 안 보는 척하며 촘촘히 실눈을 뜨고 적(나)의 동태를 살폈다. 정문을 벗어나 몇 걸음가다 살짝 돌아보니 그는 여전히 나를 뜯어먹을 듯 차갑게 응시하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저게 사람인가 독수리인가 싶었다.
택시를 기다리며 생각하니 이건 놀라운 사건(?)이었다. 왜냐면, 셔틀버스에서 나 혼자 내린 게 아니라 대략 30명쯤 우르르 내렸고, 이미 그 파란 기둥 주위엔 수십 명의 가족들이 흩어져 있었으며 무엇보다 정문과 기둥은 약 60~70미터 가량 떨어져 있었다. 내가 무심코 핸드폰을 꺼냈을 뿐 아직 높이 치켜들고 찍는 자세를 취한 것도 아닌데, 그는 어떻게 내가 사진 찍을 것을 미리 알고 고함부터 질렀을까. 이런 게 군대에서 말하는 ‘선제공격’, ‘선제타격’, ‘초전박살’인가? 적의 동태를 예의주시하다 적이 막 움직이려는 찰나 먼저 공격해 박살내 버리는. 나는 불현듯 그 군인도 대단하지만, 저렇게 허점을 보이지 않고 송곳 하나 꽂을 틈 없이 100% 철통같이,
0.001%의 타협점도 없이 자기 입장을 관철시키는 ‘기본군사훈련단’의 철두철미함에 감탄했다. 저렇게 완벽하게 훈련 시켜 장기판에 장기 놓듯 적재적소 저 자리에 꽂아놓은 소대장이 누군지 궁금했다. 진짜 얼굴 한번 보고 싶었다. 아까 셔틀버스에 “최강의 정예 공군”이라고 써 있었는데, 이래서 ‘최강’이라고 하는 걸까. 최, 강, 의, 정, 예, 공, 군!......
부대 앞에서 택시 타고 진주역으로 향했다. 부대가 얼마나 큰지, 운동장이 어디 있는지 차로 한번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정문에서 강당, 강당에서 정문으로 곧장 나올 수 밖에 없어 아쉬웠고, 대쪽 같은 여군의 모습도 꼭 보고 싶었는데 진주에는 여군이 없는지 못 보아 서운했다. 19살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뚝 떨어진 바위가 어디 있는지, 남강의 물결은 또 얼마나 푸른지 보고 싶었으나 오로지 서울 생각뿐인 두 아들 때문에 곧장 서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칠십쯤 돼보이는 택시기사가 “오늘부터 유등축젠데, 왜 벌써 가십니까?”물었다. 대답대신 “진주가 커요?” 물으니 “아니요, 크지 않습니다”했다. “인구는 얼마나 돼요?” “40만쯤 됩니다” 40만 명이면 우리 마포구 정도다. “요새 진주 경기는 어때요?” “아주 안 좋습니다. 택시 손님도 하나도 없어요” 나는 마음이 아파 내릴 때 2천원을 더 주며 “기사님 우유 하나 사드세요”하니 기사는 아주 좋아하며 “서울사람 멋쟁이~!”라고 했다. 다시 열차로 3시간40분 달려 집에 도착, 아들은 현관에 털썩 주저앉아 군화 끈을 풀며 “아~, 오늘이 전역 날이면 좋겠다~”라고 했다. 나는 아들의 등짝을 치며 “야, 이 녀석아, 5주 훈련받고 전역하는 군인이 세상에 어디 있니~?” 말하자 아들이 히 웃었다.
저녁 먹으며 아까 강당 앞에서 사진 찍을 때 누구한테 경례한 거냐 물으니 “다~” 그랬다. 공군 전부한테 경례를 했다는 말이다. 나약한 한 개인이 거대한 성 앞에 홀로 선 것처럼 두렵고 무서웠는데, 5주간의 훈련소 생활을 통해 공군조직에 대한 신뢰와 긍지를 갖게 된 모양이다. 아들이 군대에 무사히 안착한 것 같아 나도 안심됐다. “형, 내 군번줄 멋있지? 나 훈련소에서 한대도 안 맞았다~! 우린 절대로 안 때려. 이 새끼 저 새끼, 욕도 절대 안 해! 심지어 이놈 저놈 소리도 한번도 못 들어봤어. 조교들도 우리들에게 다 존댓말 써. 먹을 것도 엄청 많이 줘. 과자, 콜라, 컵라면도 주고 초코파이도 6개씩 막 줘” “와~ 부럽다~! 나도 공군 갈 걸 그랬다. 난 논산에서 한 달간 초코파이 딱 1개 먹었는데” 초코파이 더 많이 주는 곳으로 육군 갈까, 공군 갈까 결정짓는 어린 사병들의 유치함에 웃음이 나왔다. 아들은 대학후배와 통화하면서도 공군 자랑을 했다. “너도 공군 와~ 우린 뭐든지 다 원칙대로 해. 모든 훈련을 점수대로 공정하게 해. 그래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그리고 아들이 달라졌다. 친구들 만나고 와도 술 한방울 마시지 않았고 다음날 새벽6시 일어나 운동하러 나갔다. 뭔가 정신교육을 단단히 받은 모양이다. 이불을 딱 네모지게 개어 그 위에 베개를 올려놓고 군복도 정갈하게 옷걸이에 걸어 옷장에 넣었다.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인간개조’를 시켜준 ‘기본군사훈련단’이 너무 고맙다. 군대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 거기서 겪은 모든 일을 자세히 말해 달라고 했더니 아들은 “그런 거 외부에다 말하면 안 돼” 고갤 저었다. 기가 막혔다. 어떻게 정신무장을 시켰는지 가족에게조차 군대 경험을 말하지 않았다. 어쩐지 말을 안 해주니 아들이 진짜 군인이 된 것 같았다. ‘군수2학교’에서 보름 간 ‘특기교육’ 받고 자대로 배치됐다. 어느 날 아들이 흥분해 전화했다. “엄마, 엄마, 우리 오산에 준위라고 있거든” “준위가 뭐야?” “상사보다 높은 사람이야. 준위 되기 엄청 어려워. 여기 처음 와서 이병들 10명 앉아 대기했을 때 준위가 교육하러 왔어. 근데 천장의 슬라이드가 고장난거야. 그러니까 준위가 혼자 책상 위로 올라가 낑낑거리며 자기가 다 고쳤어. 우리들 시켜도 되는데. 나 완전 감동 먹었어~! 우린 아무리 부하라도 업무와 관계없는 일은 절대 안 시켜” “역시 공군은 다르다~ 세련됐어!” 우리 모자는 서로 공군에 대해 감탄했다.
“지금 대한민국엔 군 통수권자가 없다”, “감 따는 건 공관병 고유 업무다”라는 명언(?)을 길이길이 남기신 전 육군 ‘별4개 박찬주 대장’이라는 인간은, 안하무인이 하늘을 찌르고 부부가 쌍으로 공관병을 괴롭혀 그 마누라는 지금 재판에 회부중이다. 장성 아들의 빨래를 해주고 냉장고 대청소를 하는 게 ‘국방의 의무’야? 남의 집 귀한 아들 데려다 공짜 하인처럼 부리는 게 ‘장성의 특권’이야? 난 개인적으로 운전병, 조리병 등 모든 공관병 싹 다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까짓 장성이 뭐라고 대단히 출세한 것처럼 착각해 잠시 맡겨진 ‘아주 작은 권력’을 영원히 자기 것인 줄 알고, 그 마누라까지 감히 이 나라 군인에게 부침개를 던지고 폭언을 일삼고 아주 지랄발광을 한다. 역겨워 봐줄 수가 없다. ‘합계 출산율 0.88명’으로 세계 유일의 0%대 저출산 국가인 한국은 이제 심각히 사회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 나라가 망해가는 것이다. 이젠 군대 가고 학교 갈 아기들이 없다. ‘생명’은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고 최소 20년이 걸린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데도 여전히 사병들을 공짜 하인처럼 부리는 구태 의연한 군대 시스템은 즉각 혁신해야 한다고 본다.
트럼프는 질겅질겅 껌 씹듯 농담처럼 “나는 (한국에) 전화 몇 통 걸어 5억 달러 받아냈다”고 큰소리쳤다. 그의 농담은 약소국 한국에겐 강철 같은 ‘명령’으로 떨어진다. 연간 1조원도 충분히 과하건만 갑자기 600% 인상해 6조씩 내놓으라니 날강도가 따로 없다. 난 ‘한미동맹’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돈을 뜯어내기 위해 윽박지르고 협박하는 건 더 이상 친구도, 우방도 아니다.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는 북핵 정보공유를 위해서”라고 하더니 실은 미국의 ‘중국 견제 목적’이라는 것이 드러났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 국무부 경제부 차관, 국무부 차관보 등 조폭처럼 떼거지로 입국해 지소미아 연장과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며 한국정부를 무례하게 압박했다. 이 정도면 내정간섭이다. 주한미군에 의존하는 한 자주국방은 요원하다. 남편이 자기 처자식을 지켜야지, 왜 ‘외국남자’가 와서 우리나라 처자식을 지켜줘야 한단 말인가. 하와이 3차 협상이 결렬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워싱턴에서 4차 한미 방위비 협상이 열리고 있다. 맑고 강인한 차돌 같은 정경 두 국방장관은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도출하겠다”고 했으나 과연 그가 그럴 수 있을까? 힘의 균형이 하늘과 땅 차이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저 세계 최강국가 미국을 상대로 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에게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래서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고생하고 있는 정 장관이 안쓰럽고 애처롭다. 미 서부 끝도 없이 펼쳐진 모하비 사막을 달리며, “왜 우리는 이런 넓은 땅이 없을까” 뼈가 저리게 부러웠다. 라스베가스 ‘황금색 트럼프 빌딩’ 앞에선 내가 막연히 생각한 것보다 트럼프가 어마 어마하게 부자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항상 전쟁위기감을 고조시켜 뒤에서 돈은 ‘록히드마틴’이 다 벌고 미국이 신형 전투기 100대 있다면 우린 겨우 3대 있는 꼴이니, 한국의 위상과 국방 현실이 참담하고 가슴 아프다.
어쨌든,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 공군~!!!”을 알게 돼 기쁘고, 저 남녘 끝 진주 ‘기본군사훈련단’에서 오늘도 하나의 두부처럼 들어온 아이들을 벽돌처럼 강하고 단단하게 제련(製鍊)시키느라 애쓰고 있는 소대장들, 그리고 아득히 먼 활주로가 펼쳐진 모든 비행단 부대에서 전투기가 수없이 뜨고 내리는 굉음을 견디며,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뛰고 긴장하며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내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공군들, 그리고 육지와 바다에서 우리조국을 지키고 있는 모든 군인들에게 바치는 나의 존경의 헌시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한글이 익숙하지 않은 교포를 위해 뉴욕 주 김지영 변호사께서 영어로 번역해 주었다) 공군에 간 아들이 자랑스럽고, 두 아들 낳아 군대에 보낸 내가 자랑스럽고, ‘기본군사훈련단’의 훈련병들에게 반말 한번, 욕지거리 한번 안 하고 강도 높은 훈련을 무사히 이끌어 준 조교님들, 22개월 군대에서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늘 ‘자기계발’하라고 격려해 준 소대장들, 정문 앞에서 내게 고래고래 소리치던 그 독수리 같은 군인, 모두 다 자랑스럽다. 왜냐면, 우리나라는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하니까~!!! *^^*
군인
- 진주 ‘공군 기본군사훈련단’에 다녀오며
유지현(병804기 공군 훈련병 母)
당신이었군요
나를 지켜 준 사람이
당신이었군요
내 어린 아기들을 보호해 준 사람이
안 보여 몰랐는데
여기,
이토록 먼 곳에
그림자처럼 수호신처럼
내 뒤에
늘
당신이 있었군요
강인한 체력
치열한 성실함
올곧은 정신력으로
저 푸른 하늘에서 영공 주권을 지키고
저 외로운 벼랑 끝에서 국토를 수호하며
저 무한한 해양에서 조국의 바다를 사수하는
당신
몰랐어요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모든 곳
별이 뜨고 별이 지는 모든 순간
자주 국방을 향한
당신의 사무치는 헌신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편안한 내 일상이
느긋한 내 가족의 하루가
당신의 반듯한 애국심 덕분이라는 사실을
장맛비 쏟아질 때
칼바람 부는 겨울밤
봄 햇살처럼 따스한 아침
이젠, 당신을 당신들을 생각하겠습니다
Soldier
- Returning from Jinjoo ‘Air Force Base’
Poems of Jeehyun Yu
Translated by Jeeyoung Kim
It was you
Who have protected me all this time
It was you
Who have kept my babies safe
I did not know
As I did not see
You have been here, this far
Like a shadow
Like the guardian angel
Behind me
You have been with me all this time
Strong body,
Fierce Sincerity, and
Ever Straight Spirit
That is what kept our territory in the sky
That is what preserved our land from crisis
That is how our seas could remain ours
I did not know before
Everywhere the sun rises and the sets
Every moment when the stars rise and fall
Your desperate devotion made our country’s self-defense possible
I had no idea
My comforts,
My family’s relaxed days
We owe this all to your righteous love for the country
In the pouring rainy season,
On shivering winter nights,
On warm and bright spring mornings
Now, I am thinking of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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