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행진곡
오정순
지난 연말, 몇몇 부부가 송년 모임을 가졌다. 어떻게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부부 소개를 하였다. 맞선 볼 남자를 꿈에 미리 보고 분심(分心) 없이
결혼하게 되었다는 부부의 이야기는 천생연분이란 말을 실감 나게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차례가 되었다.
“재혼한 부부는 우리밖에 없나 봐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쏠린다.
만난 지 6개월 된 신혼 부부라고 하니 더 궁금해한다.
부부의 만남은 신비이며 운명이다. 우리 부부는 성질이 다른 쇠끼리 녹아 합금이 될 만큼
열정적이지는 않아도, 둘이 가면 외롭지 않을 ‘나그네의 만남’이다.
겉모습과 성격, 취미까지 닮은 데라곤 없는 색상표의 보색 대비와 같다.
남편과 나를 결속시킨 유일한 끈은 ‘만학’이었다.
교직에 있으면서 고시 공부를 하는 남편과, 출판사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응용미술학과에
편입하여 공부하는 나를 본 중매쟁이의 눈은 빗나가지 않았다.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여정을
같이 하는 것 외에 바라는 것이 없어서인지, 순탄하게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마쳤다.
신혼의 둥지를 틀었으나 ‘만날 시간’이 없다. 직장에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해 두고 학교에 가면,
뒤늦게 온 남편은 저녁을 먹고 도서관으로 갔다가 새벽에 온다. 남편 뒷바라지와 임신으로 내 일은
포기할 수밖에 없고, 남편의 공부가 무모한 도전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빈정거림에도 남편은 뜻을 꺾지 않는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길운을 몰고 왔는지, 원하던 공부의 뜻을 이루었다.
새 길을 가는 남편은 전과 달라져 간다. 한숨 돌리고 뛰었으면 좋으련만, 지각생 부부에게 시간적 여유는
사치일까. 남편은 공부와 일로부터 수혈받는 환자처럼 쉴 새 없이 일에 매달린다.
마주 보는 눈길도 길면 시간 낭비인 듯 “여보, 시간 없어. 밥 빨리 주고 커피와 과일 주게”의
몇 마디면 끝이다. 들고 간 쟁반을 두고 오기도 전에 남편의 뒷머리가 보인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먼데, 만남의 의미는 저만치 있는 것 같아 고개를 돌리고 싶어 진다.
오랜 긴장은 바라보는 시선을 곱지 못하게 한다. 맥주 한 잔을 마시면 ‘술꾼 여자’,
등산을 가자고 하면 ‘바람 든 여자’, 분위기를 실용성보다 앞세우면 ‘별난 여자’,
창가의 탁자에 촛불을 켜 놓으면 ‘위험한 여자’, 계획한 일에 조금의 융통성만 보여도 ‘나사 빠진 여자’로
호칭되는 나다.
그런가 하면, 남편의 손이 닿으면 멀쩡한 물건이 망가지고, 버너에 불을 붙이면 아예 불이 나 버린다.
조립식 장난감을 아이와 함께 조립하다가는 몸체에 접착제를 칠해 고슴도치 등처럼 아무 데나 붙여 놓는다.
이런 일들은 모자라도 작은 행복일 수 있다.
그러나 빚 독촉하듯 밀려 둔 관심을 끌어들이려는 나는 늘 목이 마르다. 삶의 구비마다 쉬어 가며 여유를
찾기에는 발걸음이 급하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생각할 틈도 없다. 10년이 넘게 달려온 시점에서 본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려간 듯하다.
남편은 당당해지고 아이들은 훌쩍 컸다. 집도 내 가슴보다 여유롭다. 40고개를 넘으며 잔병치레로 1년을 앓고
나니 자신감과 존재감은 초라할 정도로 작아졌다. 달빛이 거실에 가득한 날 밤, 우리는 만남과 영혼의 자유에
대해서, 결혼과 사랑에 대해서도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미련과 아쉬움의 과거로부터 탈출하여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일주일만 남이 되어 보자고
제의했다. 너무나
가정부가 해줄 수 있는 정도의 의식주는 해결해 주며, 자기 발견을 위해 철저히 혼자가 되어 보는 것이다.
저녁 준비가 필요 없어진 첫날은 홀가분했다. 그러나 다음 날에는 같은 상황인데 허전하니 웬 조화 속인가.
퇴근 시간에 기다릴 사람이 없다는 절망감은 단절의 아픔을 안겨 주었다. 사람의 가치를 필요에 두지
말자고 했는데 아니었다.
수입원이 필요하고, 아이들이 받아온 가정환경조사서에 아버지 이름 석자가 필요했다.
서야 할 자리에 설 수 없는 아픔을 그동안 몰랐다. 평소에 소파에서 잠들면 담요를 덮어주던 자상한 손길도
필요했다. 몰래든 정이 소중하게 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큰 어둠에 가려 보지 못하던 남편의 실체를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되고, 나 자신의 현주소를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말없이 쌓아 올렸던 벽을 허물며 일주일이 지났다.
멋스럽게 머리도 만지고 아침부터 열심히 꽃단장을 하였다.
“어디 갈라고.”
“나 선보러 가요.”
“어디로”
“식탁으로요. 10시에 만나기로 했어요. 하느님이 중매 서 주었어요.”
“나도 갈 건데...”
미리 준비해둔 새 양복을 남편 눈에 띄게 걸어두고 나는 인디언 핑크색 새 투피스를 입고
새 사람을 만나듯 마주 앉았다. 남편도 신선해 보이지만 조금은 신중해 보인다.
탐색이 필요 없는 안전지대라는 생각 때문일까.
생년월일과 이름까지 소개를 하고 나자 대뜸 왜 이런 결단을 내리게 되었는지 묻는다.
“고시 뒷바라지를 3년간 해서 합격한 남편이었는데, 그 사이 아이 둘을 낳아 키워서 3 식구가 되었지요.
한데, 내가 하던 공부를 접고 밀었으면 말이라도 이제는 당신 차례라고 말해주어야 하는데
도무지 의리라고는 없어요. 자신의 일만 앞세워 달리는 바람에 내가 왜 그 사람과 살아야 하는지를
몰라서 헤어졌어요.
이제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남편을 만나서 받을 것이 없는 사이로 살고 싶어요.
예전에는 제 수입이 남편의 두 곱이 넘었었는데 지금 남은 것은 아픈 몸과 두 아이들 뿐입니다. ”
“예전의 내 아내도 참 착했는데..... 결국은 그 일이란 것이 가족을 위한 일이었을 텐데요.
우리 결혼합시다. 나도 애가 둘이나 있어요.”
나의 변화를 위한 이벤트에 진지하게 응수해준 남편이 고마웠다. 여태 말이 안 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로 진지한 대화를 하지 않았고 각자의 말이 가득 차서 남의 말을 들을 여유가 없었던
거였다.
둘이 서로 오메가 시계를 나누어 차고 아이들과 함께 재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날 우리 가족이 외출하는 모습을 보고 경비 아저씨는 속도 모르고 너무나 멋진 가족 나들이라고
찬사를 보낸 하객이 되어주었다. 혼수 물로 주방 용품의 일부를 새것으로 바꾸었다.
형식은 마음을 새롭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남편의 생활은 변함이 없다. 그와 나 사이에 하고 싶은데 참았던 말의 안개가 걷힌 것뿐이다.
이제는 말이 거추장스럽다. ‘사랑’이 ‘필요’에 밀려났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용서와 위로가 칵테일 되어 삶의 새 맛을 낸다.
나를 구속한 것은 나였다. 싫다는 말도 필요하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고백하는 것도 나여야 했다.
내가 만든 틀에 내가 갇혀 숨통을 조였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응축된 열정을 문예 강좌에서
풀어낸다.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스스로 목석이라는 남편 덕택에 어설픈 글로도 용기를 잃지 않는다.
서로의 이질감이 유익한 조건이 된다.
둘이 나란히 책상을 붙여 놓았다. 뒷머리를 보지 않아도 된다.
영역을 침해받고 싶지 않은 아이들처럼 사전이나 스탠드가 중앙의 경계를 넘어오면
웃으며 밀어낸다.
남편은 생각 없이 달린 것이 아니었다. 부모 없이 자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가족이 세파에 시달리지 않게 하기 위해 튼튼한 방파제를 쌓은 것이다.
없는 듯 있음이 있음의 최상이라 했던가. 공기처럼 귀함을 느끼지 못하게 있어 온 남편의 사랑은
이제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화는 변화를 가능케 하고, 우리는 존재 자체로 같이 살 가치를
느끼게 되었다.
떡갈나무와 싸이프러스 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다.
칼릴 지브란의 말을 주례사처럼 서로의 가슴에 새긴다. 사랑의 증거를 찾기가
이렇게 소중하며, 어렵고도 쉬운 일인지 몰랐다.
신혼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보듯 담담하게 풀어 가는 ‘재혼 이야기’를 들으며
장내는 숙연해지고, 남편은 식탁 밑으로 내 손을 힘주어 잡는다.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고요가 흐르더니 일제히 박수를 친다. 감미로운 음악이 우리 사이로 소리 없이
흐른다. 축복된 앞날을 위한 행진곡으로…. (1993년 작 )
나의 행복론은 이 글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관습으로 덧입혀진 사람의 외적 성격 모습이 아니라
조건에 저당 잡힌 삶의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이 넣어둔 본모습 그대로의 영혼을 사랑하기에 이릅니다.
영혼에 대한 경이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이후 30년 동안 사람이 변한 건 없는데 조건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고
무엇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나의 관점이 변했지요. 사는 게 훨씬 안정적이던 걸요.
* 나중에 예술심리치료 공부를 하면서 보니 스스로 드라마 세러피를 한 사례였어요
물으면 답해드릴 경험자입니다. 연말이 가까워져 이 글을 올려 보았습니다.
첫댓글
새로운 행복으로 채워가는 날 들..
변화를 위한 이벤트!
응원합니다!!
ㅎㅎ 발표한 지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오정순 사랑의 이벤트
푸르른 추억들
소복소복 30년 쌓아가시길 바라는 마음 담아봅니다^^
재혼 행진곡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광주교대 몇
회신가요 난 10회 입니
다 반갑네요 ^^
반갑지요 드물게 만나지는 동창이라서요
전 6회입니다 교직에 일년 머물고 자격증을 반납해서
문단에서도 아는 동창이 별로 없어요
여튼 많이 반갑습니다
아 선배님이시군요 반갑
습니다 전 고향이 보성
입니다 ^^
전 2년만 거기서 머물렀어요
광양 매화마을이어도 전주로 서울로 돌아다닌 셈이지요
wow
대단하십니다
전과후로 변화를 맞았다면
얼마나 나를 변신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는지
짐작하실 거예요
지금은 갇힌 나를 해방시켜 주었어요
내가요
일주일만 남이 되어 보자는 제의도 참 신선하고 좋은 방법이었고, 선생님 다우신 제안이십니다. 제의를 받아주심도 참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었구요. 대화를 못해서 그렇지...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편안하면서도 감동이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올려주셔 감사합니다^^
대부분 정확한 감정 전달을 하지 않고
다 말 한 듯 살아가면서 소통하지 못하더군요
서로 다르게 착하고 성실하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부부로 살아지지는 않아요
신뢰는 당연히 바탕에 깔아야 하고 서로를 알려는 자세가 참 중요하지요
부부만 그런게 아니라 소통이 필요한 사이라면 알리고 알아야 되는 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