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봄 부흥회 5.21(화요 저녁) / 김운용 목사(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말씀 : 신명기 6:4-13
제목 : 그대가 바로 서면 가능한 일이다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
오늘 새벽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하루 종일 입술에 맴돌았습니다.
"그대의 가장 따뜻한 미소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아멘! 하셔야지요.
그래서인지 오늘 여러분들의 모습이 다 예쁘십니다.
아까 찬양 인도하는 찬양팀도 예쁘고, 워십 하시는 분들은 더 예쁘고,
오늘 찬양대의 찬양하시는 모습도 예쁘고, 성도님들도 예쁘고 다 예쁩니다.
우리 옆에 분들에게 인사 한번 하고 말씀 나눌까요.. '저녁에 뵈니 더 예쁘세요.'
저 뒤에 권사님 한 분은 '참 오랜만에 들어본 이야기다' 하는 표정을 짓기도 하시고
쑥스러워서 뭐 이렇게 하시는 분도 계시고 하는데
요즘에 젊은 사람들은 이런 인사를 받으면, 이렇게 약간 새침스럽게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한대요
'저도 알아요.' 옆의 분에게 대답해 주시지요. "저도 알아요~"
주님께 가장 따뜻한 미소를 보내면, 하늘에서 주님께서 미소를 또 지으실 것입니다.
저는 등산을 좋아해서 주로 서울 외곽에 있는 7~800m 산들을 골라가면서 혼자서 등산을 합니다.
학교 일이 바빠져서 한참 등산을 못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얼마 전에 토요일 하루를 일부러 일정을 만들지 않고 비워 두었습니다.
'아, 이번에는 어느 산을 갈까' 생각하다가,
정약용 정약전 형제가 즐겨 찾았다라고 하는 남양주 팔당댐 부근에 있는 예봉산을 등산하기로 했습니다.
조금 늦게 가면 양평으로 놀러가는 행락객들이 많아서 차가 굉장히 막힙니다.
그래서 아예 일찍 출발하자, 전날 배낭을 다 챙겨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기도를 마친 다음에 아침 6시쯤 준비해 놓은 배낭을 메고 스틱을 챙겨들고 등산화 신고 막 현관 앞을 나가다가
'오늘 미세먼지가 어떻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현관 앞에 서서 그냥 대기질 웹을 열어 보았습니다. 온통 빨강색이었습니다.
미세먼지 매우 나쁨, 초미세먼지 매우 나쁨, 친절한 문구까지 떠 있었습니다.
'실외활동 차례 자제할 것', '가급적 실내에 있을 것', 제가 그날 등산을 했을까요? 포기했을까요? 포기했습니다.
산에 가면 5~6시간 머물게 되는데 건강에 좋자고 가는 것이잖아요.
나쁜 공기 제 몸에 채울 이유가 없어서 다 원위치 시키고요. 문 꼭꼭 걸어 닫고 아무 데도 안 가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날 모압 평지에서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한 가지 소식 때문에 모든 것이 묶이고 말았습니다.
먹구름이 덮쳐오고 있었습니다.
어떤 소식 때문이었습니까? - "너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모세가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40년 동안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아시는 것처럼, 가나안 땅을 가서 깃발만 꽂으면 우리 땅이 되는 것이 아니고요.
전쟁을 해서 차지해야 되는 건데, 언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생활 하느라고 제대로 전쟁 경험을 해 보았겠습니까?
이집트의 왕자로 자라면서 무예를 배웠고, 수많은 전투 경험을 가졌던 모세라고 하는 걸쭉한 지도자가 없다고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물론 가장 힘든 사람은 모세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마다 저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세가 얼마나 섭섭했을까요?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하나님, 저한테 그러시면 안 되죠. 제가 어떻게 하나님 섬겼는데요.
지금까지 어떻게 하나님의 일 감당해 왔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아실 것 아닙니까!"
그런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런 명령입니다.
더군다나 어디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 하면, 하나님께선 느보산 정상으로 모세를 인도해 가셨답니다.
저 사진은 느보산에 올라가서 찍어온 사진인데요. 하늘 색깔과 땅 색깔과 만나는 지점 정도가 요단강이 흐릅니다.
그러니까 느보산에서 내려가서 요단강을 건너면 거기서부터가 가나안 땅입니다.
하필이면, 거기에서 하필이면 나만 못 들어간답니다.
하나님께서 그림처럼 펼쳐지는 가나안 땅을 보여주신 다음에 모세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모세야, 가나안 땅 멋있지? 아름답지? 너는 저기 못 들어가' 누구 염장 지를 일 있습니까?
다 보여주신 다음에 하필이면 가나안 땅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가나안 땅이 목전에 있는데, 얼마나 섭섭했을까요?
"하나님 그러시면 섭섭하지요. 제가 어떻게 하나님 섬겼는데요?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다 아실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만 못 들어간다고요? 그러시면 안되지요"
절로 그런 소리 터져나올 상황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모세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3장 말씀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가 눈물 젖은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 저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가난한 땅 지난 40년 동안 꿈에도 그리던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날까지 참고 견디면서 달려왔는데,
단 하루 저녁이라도 좋습니다. 단 한 걸음 만이라도 좋습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모세야, 하룻 저녁은 너무했고, 내가 1주일 시간 줄게. 대신 약속 하나 해라.
여기저기 쏘다니지 말고 반경 4km 범위 내에서만 돌아다니기로 약속할 수 있겠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경상도 말로 이렇게 응답하셨답니다. '고마해라 됐다 마.' 그걸로는 기도도 하지 말랍니다.
기도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고, 이미 결정된 일이기 때문에 그걸로는 기도도 하지 마
얼마나 섭섭했을까요?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얼마나 분했을까요?
그런데 모세는 그런 상황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의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일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는데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라고
말씀을 가슴에 가득가득 채워주시는데 말씀을 마지막 날까지 그래서 신명기의 말씀을 보게 되면,
모세의 죽음 예고와 모세의 간절한 기도가 나오고 하나님의 거절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다음에 모세는 어쩌면 마지막 날 그랬을지도 모르는데, 세 번의 집회를 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사흘 동안 우리가 집회를 했던 것처럼, 인생의 마지막 날에 세 번의 집회를 엽니다.
모세가 갑작스럽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총회로 모이도록 하고, 집회를 선언한 다음에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그래서 신명기의 말씀을 보게 되면, 모세의 세 편의 설교가 이어지고요. 그리고 31장에서 말씀이 끝납니다.
32장 되면 모세가 딱 이 자세로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두 손 들고 긴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목사님들이 보통 강복선언하는 것처럼 신명기 33장에 보면,
모세가 손을 들어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강복 선언을 하는 내용이 나오고,
신명기 34장에, "모세가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이것이 신명기의 주 내용입니다
모세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순간에도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모세는 정말 담대하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신명기 말씀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거기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세계적인 석학에 유명한 구약학자 월터 부르그만 박사가 된 선생님이었는데,
그분의 지도를 받으면서 신명기를 한 학기 동안 샅샅이 다 뒤졌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찾을 수가 없었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 가운데서 모세가 승리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런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모세는 이렇게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그래야 우리도 모세처럼 승리할 수 있을 거 아닙니까..
성경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거기에 대한 어떻게 모세가 승리했는지 비결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묵상해 가다가 신명기 33장 1절 말씀과 신명기 34장 5절 말씀에 하나님께서 그 해답을 숨겨 놓으셨더라고요
(신 33: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신 34:5) "여호와의 종 모세가"
무슨 말씀입니까? - 모세가 자기 감정과 기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답니다.
내 감정과 내 욕망과 내가 바라는 내 비전을 따라서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갔던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내가 똑똑해서 내가 잘나서 내가 이만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산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종으로 살았답니다.
이것이 모세가 마지막 순간까지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었답니다.
어쩌면 여기에도 그런 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공부는 잘했습니다. 1등 한 번도 놓친 적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를 가기가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니까 머리가 좋으니까 형제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줘서 그렇게 해서 중학교를 갔답니다.
열심히 공부했더니, 이 아까운 인재를 놓치기 어렵다고 해서 선생님이 장학금 연결해 줘 갖고 고등학교를 갔답니다.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전액 장학금 받고 합격을 했답니다.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밤새워 가면서 공부하다 보니 성적이 늘 상위권이었고 성적이 좋았습니다. 성실했습니다.
졸업하자 마자 대기업에 바로 취직이 됐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야에 일가견을 이루신 분들, 소위하기 위해서 자수성가하신 분들 계시지요.. 아마 이 중에도 계실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아르바이트 하고, 장학금 받고 그러면서 이만큼 내 인생을 세우신 분들, 자수성가 하신 분들 계실 것입니다.
참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참 대단한 참 대단한 분들이십니다. 그런데 그분들 영적으로 보면 굉장히 위험한 분들입니다.
왜요? - "내가 잘나서, 내가 머리가 좋아서, 내가 공부를 잘해서, 내가 좋은 대학 나와서, 내가 밤새워 가면서 공부해서,
내가 열심히 일해서 이만큼 이루었고 이만큼 누리고 살고 있다."
마치 인생의 주인이 나인 것처럼 생각하기 딱 좋은 분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세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대장 노릇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기가 마치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았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답니다. 그것이 모세가 승리했던 비결이었습니다.
모세가 인생 길 가만히 돌이켜보니, 살아온 걸어온 인생 길을 가만히 돌이켜보니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은혜로 살았습니다.
살아온 인생 길을 돌이켜 보면서 내가 잘나서 내가 똑똑해서 이만큼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구나'
'여기까지 섬길 수 있었구나, 여기까지 살아갈 수 있었구나' 그런 고백을 갖고 있기에 모세가 벌떡 일어서서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은혜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승리하고
그렇습니다. 그날 모압 평지는 눈물에 젖어들고 있었으나
모세의 고백은 더 새로워지고 있었고, 모세의 고백은 더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예배 공동체가 뭐하는 공동체입니까? 우리가 지금 예배공동체로 모여 있습니다.
예배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입니까? 예배 공동체는 하나님의 왕 되심,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일생을 살아오면서 내 인생길 가운데 허락하신 수만 가지 은혜들을 떠올리면서
왕 되신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경배하기 위하여 모여있는 공동체가 바로 예배공동체입니다.
시편의 말씀은 예배 공동체에서 올려드렸던 찬양의 내용이자 기도의 내용이고,
선포되었던 말씀의 내용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을 읽다 보면,
시편 중에 예배 공동체에서 가장 많이 올려드리는 고백이 무엇일까? 하고 언젠가 한번 조사를 해 보았는데
시편의 예배 공동체에서 가장 많이 올려드리는 고백이 바로 '할렐루야'라고 하는 단어였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것처럼, 할렐루 하면 찬양하라 라고 하는 히브리어이고 '야'는 야웨, 여호와를 찬양하라 뜻이지요.
할렐루야 하면,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로 많이 나오는 히브리어를 찾아보니 '야웨 말라크'라고 하는 단어였습니다.
야웨는 여호와라고 그랬지요. '말라크'는 '다스리신다' '통치하신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그런 뜻이지요.
예배 공동체는 바로 이런 공동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생길에 허락하셨던 수만 가지 은혜들을 떠올리며
"주님 감사합니다. 주의 은혜로 여기까지 살았습니다."
할렐루야를 외쳐 드리고 이런 놀라운 고백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서 가장 즐겨 부르는 찬송 가운데 한 곡을 들라고 한다면,
478장 "참 아름다워라"라고 하는 찬양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찬양은 미국 뉴욕 주에서 목회했던 'Maltbie Babcock' 목사님이란 분이 1901년에 작사한 이런 찬송입니다.
우리나라의 태백산맥이 마치 등뼈처럼 펼쳐져 있는 것처럼
미국에는 북쪽에 동부의 북쪽에 메인 주부터 시작해서 남쪽의 조지아 주까지
'애플래치안 산맥'이라고 하는 산맥이 등뼈처럼 펼쳐져 있지요.
그 부근에 가 보면, 이런 아름드리 원시림들이 우거져 있는 것을 발견합게 됩니다.
뱁콕 목사님도 뉴욕 주의 애플래치안 산맥 부근에서 목회를 했던 모양입니다.
목사님이 아침 기도를 마치면, 그 원시림으로 산책 겸 운동을 나갔는데,
나가면서 꼭 가족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나갔답니다. "우리 아버지 지으신 세계 보러 가요!"
영어로 이야기하면, I'm go see the world my father built! 그러면서 나갔답니다.
그런데 이분이 갑자기 42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들이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까 최근에 쓴 찬송시가, 6절로 된 찬송시가 깨끗하게 정서가 돼서 책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붙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의논을 합니다.
제목을 어떻게 붙일까? 아빠가 늘 산책 나갈 때 남편이 늘 산책 나갈 때마다
"우리 아버지 지으신 세계 보러 가요!" 하던 그 말이 떠올라서 가족들이 합의해서 제목을 붙였습니다.
영어로 이야기하면, "This Is My Father's World" "이것은 우리 아버지께서 다스리시는 세계야!"
그의 친구인 프랭클린 셰파드(Mark Shepperd)가 여기에 곡을 붙여서
현재는 85개 국어로 번역되어 예배 가운데 가장 즐겨 부르는 찬송이 되었습니다.
찬송 가사는 이렇게 되어 있지요
♬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목사님, 가사만 읽지 말고 찬송 한번 합시다.' 하는 표정으로 보시는 것 같아 찬송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아버지께서 지으신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과 그 가운데 깊은 영광을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게 찬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찬송입니다.
그런데 원곡 원 가사를 읽어보면, 원 가사는 6절로 되어 있다고 그랬잖아요.
6절 가사를 읽어보면,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과 그 가운데 깃든 영광만 찬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사실 하나를 찬양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왜 원곡은 6절로 돼 있는데, 우리말 찬송은 3절로 되어 있을까요?
UMC라고 하지요. 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 찬송가를 개편하는 작업을 하면서
6절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지, 3절로 축약을 했습니다.
우리말 찬송은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찬송가에 실려진 3절 찬송가를
소설가이자 감리교 목사였던 전용택 목사님이 찬송 가사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지금 우리가 부르는 가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6절 가사를 읽다 보면, 또 다른 사실 하나를 찬송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특별히 3절 가사가 사실을 원어의 분위기를 좀 느껴 보겠어요.
원곡의 분위기를 느껴보기 위해서 영어로 제가 먼저 읽도록 하겠습니다.
This is my Father's world,
이것은 우리 아버지께서 다스리시는 세계
Why should my heart be sad?
그런데 우리 마음은 왜 슬픔에 사로잡혀 있나?
The Lord is King; let the heavens ring!
하늘이여 선포하라 주님이 왕이시다!
God reigns; let the earth be glad!
온 땅이여 기뻐하라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냥 지어 놓고 내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한치의 어그러짐도 없이 1년 동안 다니는 속도를 우리는 일광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전 우주를 돌이켜보면 몇 만 광년을 다녀가도 이르기 어려운 몸
인간의 머리로는 도무지 셀 수 없는 광대함과 하나님의 세계를 하나님께서 지구 뿐만 아니라 모든 우주계를 통치해요.
모세가 바로 그 고백으로 일어서고 있습니다. 내 인생 여기서 끝나지만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와주셨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내 인생은 벌써 이미 갈대 상자에 담겨서 나일강에 던져졌을 때 끝날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내 인생이 망가지는 것 같고, 내 인생이 끝나는 것 같고,
억울한 누명 뒤집어쓰고 이집트에서 추방되어 나올 때 인생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험한 광야길 지나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로 먹이셨고, 만나로 먹이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셔서 물 없는 광야에서도 40년 동안 걸어올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모세가 은혜를 깨달았을 때 난 이렇게 하나님만 됐습니다. 내 인생은 비록 여기서 끝나지만,
하나님 내 인생을 인도하신 하나님 난 하나님을 무엇이 되게 좋은 것인지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줄 믿기에 인생의 마지막 날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주신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신명기 6장의 말씀은 가장 긴 설교인 두 번째 설교의 서론 격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모압 평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모아서 이제 모세가 설교하기 위해서 강단에 올라가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부 다 모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설교가 시작됩니다. 히브리어로 설교를 했겠죠. "쉐마 이스르엘!" "이스라엘아 들으라...." 시작됩니다.
우리가 '쉐마'라고 하는 말은 '들으라'고 하는 뜻을 가진 말이지요. 조금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주목' 이런 뜻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왕따지만 쉬는 시간에 왁자지껄 하면서 떠들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다음 수업하려고 들어와서 뭐라고 이야기하시죠? "주목!" 이러지요. 이게 쉐마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드려도 남자분들께서 별로 감동을 안 하시는 분위긴데,
쉐마라고 하는 말을 군대용어로 번역하면 '동작 그만'의 뜻입니다. 모든 군대에서는 밤 9시에 점호를 합니다. 점호라고 하는 것은
쉬운 말로 하면 오늘 밤중에 전쟁에 일어나게 되면 바로 출동할 준비와 정신 상태가 되어 있는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되어 있는지 이런 것을 점검합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엄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준비가 잘 돼 있지 않거나 흐트러져 있으면 밤새 잠 안 재웁니다. 될 때까지 청소도 하고, 또 깨끗하게 해서 정리하고,
또 그리고 모든 용모라든지 모든 걸 정확하게 다 정리하고 점호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한 친구만 TV 켜 놓고 드라마 보면서 발 쭉 뻗고 벽에 등 기대고 혼자 낄낄대고 있습니다.
제대가 15일 밖에 안 남은 고참 병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번 사령인 중대장이 들어오더니, '동작 그만' 그랬습니다.
그러면 내가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도 아무리 재미있는 텔레비전에 지금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어도 텔레비전 끄고요.
딱 정자세로 일어서서 차렷 자세하고 지휘관의 소리를 들어야 되는 것, 이게 '동작 그만' 뜻입니다.
이것이 '쉐마'라고 하는 뜻입니다. 무슨 말이지요? - 이 말씀 놓치면 당신들은 망합니다.
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당신들은 결코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를 담아서 설교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들의 가슴에 잘 듣고 새겨서 평생 이 말씀대로 살아야 된다.
이런 뜻을 담고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며 기다랗게 말씀이 이어지고 있잖아요.
우리가 말씀을 핵심적인 말씀만 읽었습니다마는 이어지는 말씀에 6절 전체의 말씀을 한 네 가지로 축약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마음과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둘째, 이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에 새기고 여러분의 자녀에게도 그것을 가르치십시오.
셋째, 축복의 땅에 들어가 잘 먹고 잘 살게 될 때에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넷째,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고 그분만을 섬기고, 그분만을 예배하십시오.
이것이 오늘 말씀의 중심적인 내용입니다.
우리 말씀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는 오직 한 분 뿐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선언이 나오잖아요. 어떤 선언입니까?
사람 따라 인종 따라 지역 따라 문화 따라 어떤 지역에서는 기다란 나무토막 가닥을 가져오더니,
두 사람이 붙어서 열흘 동안 그것을 깎고 대패질하고 사포질하고 그렇게 해서 어렴풋이 사람 형상 만들어서 딱 세워놓고
지네들이 지난 열흘 동안 그거 깎아서 만들어 세워놓고 그것이 복 준다고 새벽부터 그 앞에서 이렇게 빌고 있더랍니다.
어떤 지역 어떤 문화권에서는 기다란 돌을 가져오더니, 석 달 열흘 동안 정으로 찍고 어렴풋이 사람 형상 만든 다음에
지네들이 100일 동안 찍어서 만들어 놓은 돌덩이 세워놓고 그것이 복 준다고 그것에 대고 열심히 빌고 있더랍니다.
'그것들, 다 가짜 신이다'
"살아계신 신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아멘!
제가 다시 한 번 선포합니다. 여러분, 자신있게 아멘 해 주셔야 됩니다.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아멘입니다.
살아계신 신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정말 내가 믿고 지금 신앙생활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하나님 섬길 때 대충대충 기분 따라 환경 따라 그렇게 섬겨서는 안 되고
"너의 마음 전부, 너의 뜻 전부, 너의 정성 전부, 너의 생각 전부, 너의 모든 것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가지가 더 추가됩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그러한 사실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바로 섬기고 있다고 한다면,
그 은혜, 너 혼자 누리지 말고 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도 그것을 전해주어서
네 자녀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그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도록 자녀를 세워라" 이 말씀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자녀라고 하는 카테고리는 우리 집에서 자라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만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부모 형제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교육적인 사명과 전도의 사명이 주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미국의 할리우드에서는 1년에 수백 편의 영화가 제작되어 나오지요.
제작자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영화가 어떤 등급을 받느냐가 관심사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등급을 받느냐에 따라서 흥행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화의 등급을 매기는 단체는 굉장히 힘이 있겠지요. 무비가이드라고 하는 단체가 그 일을 하는데요.
그 단체를 이끄는 신실한 크리스찬인 '테드 베어' 박사가 우리에게는 복음성가 가수로 알려진 '유진 펫분'이라고 하는 사람과 함께 공저한 책을 읽다 보니, 참 재미있는 데이터들을 많이 들려주더군요.
미국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를 통계를 내보았는데 "자녀들이 하루 보낸 시간 통계"
*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21분 밖에 안 되고요.
* 미디어에 쏟아 붓는 시간 : 하루 10시간
컴퓨터 텔레비전 게임기 스마트폰 이런 미디어 앞에 보내는 시간은 거의 10시간이 넘더랍니다.
왜 그럴까요? - 미디어의 세계 속에는 아이들의 혼을 빼앗아가는 컨텐츠가 있어서겠지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크리스찬 가정에서 태어나서 좋은 신앙의 부모를 만나서 17살 때까지 매 주일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렸다고 전제를 했을 때,
17세가 될 때까지 그 아이들이 보낸 시간을 통계를 내놓았는데,
교회에서 보낸 시간은 약 800시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약 2000시간,
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11,000시간, 미디어 앞에서 보낸 시간은 6만 3000시간이더랍니다.
여러분, 이 수치가 무엇을 말합니까? 교회에서 아무리 좋은 시설을 한들 좋은 프로그램을 한들
800 : 6만 3000이 게임이 될까요? 당연히 게임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미디어 세계는 아이들의 혼을 빼앗아가는 정말로 멋진 콘텐츠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공부 성적만 떨어 조금만 떨어지면 세상이 절단 난 것 같고,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힘들어하면서도 아이가 신앙생활 등한이 하고
하나님 멀리하는데도 불구하고, 눈에서 눈물의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반대도 우리는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바뀌고 있고 아무리 어려워지고 있다 할지라도
어린 영혼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아이를 믿음 위해 바로 세우게 하여 기도하고,
아이에게 믿음으로 양육하고 이런 신앙의 부모가 우뚝 서 있다고 한다면,
800 : 6만 3000이든 800 : 7만 3000이든 상관없이 세워지는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이 영적인 원리를 알았습니다. 너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지만,
누가 보아도 억울하고 누가 보아도 분하고 누가 보아도 섭섭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 서 있으나
"하나님의 왕 되심을 네가 선포했는데, 네가 설교했는데 설교대로 살고 네 고백대로 사는 모습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보여주라"
네가 바로 서면 저들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바로 서게 되었다.
내가 믿음으로 바로 서게 되면 내 자녀들이 믿음 가운데 바로 서게 될 것이다.
영적인 원리를 깨닫고 모세가 벌떡 일어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첫째날 둘째날 새벽에 우리가 말씀 나눴던 것처럼
모세가 "나는 결코 쓰러져서는 안되는, 쓰러질 수 없는 나는 이 민족의 버팀목입니다"
사명감이 있어서 왜 섭섭함이 없었겠으며,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벌떡 일어나서 나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면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세워졌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나가는 종들이 우뚝우뚝섰을 때,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는 부흥하게 되고,
죽어가는 영혼들이 수없이 주님 앞에 돌아오는 역사가 그 시대 속에서 계속되었습니다.
모세는 그 영적인 원리를 알았습니다. 모세야, 네가 바로 서면 이들도 서게 될 것이다.
이 억울한 순간에도 이 답답한 순간에도 네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믿음으로 내가 벌떡 일어서서 믿음으로 걸어가게 되면,
자녀들도 세워질 것이다. 이 민족도 세워질 것이다. 그 말씀을 모세가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버팀목의 역사입니다. 버팀목이 있는 곳에서 세워지는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500년 동안 이어져 왔던 나라가 풍전등화처럼 망하기 직전에 서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평양 땅에서 1901년 5월 달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가 평양에 있는
그의 작은 사랑방에서 학생 두 명을 데리고 한 학교가 시작되게 하셨습니다.
그 학교는 6년 후인 1907년 6월 20일에 7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합니다.
이름하여 길선주 양전백 서경조 한석진 송인서 방기창 이기풍, 우리 귀에도 익숙한 우리 교단의 최초의 목사님 7분이지요.
한국교회 최초의 7분의 목사님들의 성함입니다.
책을 쓰다가 우연히 저는 초대교회 문헌들을 뒤지면서 이분들의 나이를 조사해 보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학교를 졸업했는데 39살짜리가 한 명 40살짜리가 세 명 41살짜리가 한 명, 그리고 58살짜리도 두 명이나 됐습니다.
그때 1900년대 초에 한국 남성들의 평균 수명은 만 40세였습니다.
그러니까 단지 인구통계학적인 관점으로 놓고 본다고 한다면, 한국교회 최초의 졸업생이 7명이 배출됐는데
그중에서 1년이라도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입니까? 딱 한 명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언제 폐기 처분될지 모르는 그런 기대가 되지 않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7명이 나왔다고 해서 이 나라의 한국교회의 어떤 대단한 역사가 일어날까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들이 복음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바로 세워진 어린 교회들로 달려나갑니다.
어린 교회를 가슴에 품습니다. 어린 성도들을 가슴에 품습니다.
그때 한반도 땅 특별히 이 학교가 서 있었던 평양을 중심으로 해서
서 있었던 서북 지역에 기독교가 융숭하게 놀라운 부흥을 이루고 있었는데,
서북 지역에서 러일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청일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강대국들끼리 이 땅에서 싸우는데, 이 땅의 백성들은 얼마나 수탈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했겠습니까?
미국 선교부에 보낸 선교사들의 보고서를 읽다 보면 시신더미가 산을 이루었다
이런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고 이런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 성도들 어떻게 도와줄 방도가 없습니다.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서 교회당으로 달려옵니다.
달려왔더니, 영수 한 명이 교회 나와서 기도하고 있었고 조사 한 사람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영수'는 지금으로 치면 장로님에 해당되고 '조사'는 전도사님에 해당되지요.
찬송 한 장 부르고, 성경말씀 한 장 읽고서 이 세 사람이 흩어져서 기도합니다.
그들의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세 사람이 울기 시작합니다. 다음날도 그들이 울면서 기도하기 시작하고
소식들이 전해지면서 다른 사람들이 달려가 나오면서 똑같이 기도가 되게 되고
이게 소위 이야기하는 평양 대부흥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장대현교회에서 새벽기도가 한국교회에서 최초로 새벽기도가 시작된 스토리입니다.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어서
하나님 앞에 나와 하늘길이 열려 있음을 믿기에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렸던 역사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놀라운 평양의 부흥들이 일어나고 교회들로 흩어지기 시작했고,
그리고 전국이 부흥의 불길 가운데 휩싸이게 되고 먼저 원주에서 부흥이 일어났지요.
그리고 부흥이 바로 평양으로 옮겨 붙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목포로 옮겨 붙었습니다.
1906년 10월 달에 조셉 저자인 선교사라고 하는 감리교 선교사를 불러다가 집회를 인도했는데
목포에서 막 엄청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2007년도 평양부흥 100주년 되던 행사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초대교회 문헌 가운데서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목포에서 한 여인이 쌀을 머리에 이고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서
평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흥의 놀라운 소식을 듣고 은혜받기 위해서 목포에서 평양까지 걸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전혀 안 놀래시는데, 저는 군대에서 100키로 행군을 많이 했기 때문에
목포에서 평양이라고 한다고 한다면, 얼마나 먼 거리인지 압니다.
더군다나 아낙네가 아이를 업고 머리에 쌀자루를 이고서 평양까지 걸어갔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는데 주님 나도 사랑하면서 살겠습니다.
첫사랑으로 막 불타오르고 있었으니까, 저보다 더한 사람이 있었더라고요.
저는 전주까지 8시간 차 타고 내려갔는데 거기를 걸어서 평양까지 갔대요.
이런 놀라운 역사가 평양 땅에서 일어났던 것은 시대가 되지 않는 7명의 인물들이 나오면서
예수님 부활 승천하신 이후 2000년 선교 역사 가운데 우리 한국 교회는 가장 놀라운 부흥을 경험한 교회로 기록되고
이 작은 학교는 민족의 캄캄한 밤에 민족의 소망을 주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정말로 하나님의 소망과 하나님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 몸부림쳤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1930년대가 되면서 이 학교는 큰 위기 가운데 봉착하게
왜냐하면, 1919년 3일 만세 운동의 중심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 학교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한 것이
일제에 의해서 발각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한 70명도 종교성이 안 되는 작은 학교였지만,
재학생들 가운데 5명이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이름을 올렸고, 길선주 목사님도 양전배 목사님도 가운데 한 분이지요.
이수문 장로님 알려져 있는 이수문 장로님 같은 재학생 그래서 이 학교의 설립자 교장은 암살 위험에 시달렸고요.
학교가 신사참배 위협을 받으면서 폐교 직전에 이르러 암살 소문이 들려오면서
조선의 크리스찬들을 강제로 기차에 태워지고 부산으로 가서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이 학교의 설립자는 미국으로 피신하지 않으면 목숨을 지켜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1936년에 떠난 다음에 남은 교수들이 1938년 8월 20일에 교수 회의록을 읽어보게 되면,
800만 잡신들에게 넓죽넓죽 절하여야만 우리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한다면, 학교 문을 걸어 잠급니다.
그리고 대신 학생들이 있는 곳에 교수들이 찾아가서 가르치는 방식으로
1945년 해방과 함께 학교는 다시 평양 땅에서 문을 열지요.
그런데 또 다른 위협 세력이 다가옵니다.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이었습니다.
그 학교에 제가 22대 총장인데 그때 4대 총장이었던 김인준 박사,
이분은 천재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고 러시아어와 영어를 원주민보다도 더 잘 구사했습니다.
그리고 남장로교회는 백인들 학교였기 때문에 유색인종들이 PHD 학위가 그렇게 어려운 학교라고 하는 소문이 났는데,
그 학교에서 3년 만에 PHD 학위를 받고 1930년대 초에 모교의 교수가 된 분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서북지역에 융성한 기독교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공산주의가 북녘땅에 뿌리를 내릴 수 없을 것 같아서 계속해서 회유하고 위협하고 김인준 박사도 할 수 없이 끌려갔습니다.
소련 사람들 만나게 해 달라고 하고 소련 사람들이 오면 러시아어로 독대해서
왜 내가 당신들에게 협조할 수 없는지 당신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나는 함께 손을 잡을 수가 없다.
당신들이 하는 것을 돕지는 않지만 내가 방해는 하지 않고 러시아어로 다 이야기를 하니까 풀어주고 하다가
'저 반동새끼는 우리가 감당할 수가 없어. 시베리아로 끌고 가' 그래서 시베리아까지 연행되어 거기서 순교했습니다.
그곳에서 그것은 5대 교장이었던 이성희 박사도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순교를 당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북녘 땅에서는 신학교육을 이어갈 수가 없어서
생명과 같은 귀한 학교의 건물을 다 북녘 땅에 놔두고남쪽으로 내려옵니다. 1948년의 일이었습니다.
남산에 가면 어린이 회관 건너편에 지금 터만 남아있는 8백만 잡신을 섬겼던 조선신궁터에서 신학교육을 이어갑니다.
소위 이야기하는 평양에 있어서 평양신학교, 남산에 있어서 남산 신학교 시대가 그렇게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강나루에 있어서 강나루 신학교 이야기하지만 정식 명칭은 1회 졸업생의 졸업장에는 대한장로회신학교라고
정식 명칭이 써 있고, 1912년 이후로부터는 일본 사람들이 대한이라는 말을 못쓰게 해서
조선장로회신학교라고 이름이 붙여진 그 학교가 남산에까지 내려왔습니다.
6.25를 만났습니다. 대구로 부산으로 피난 가서 미군들에게 가서 24인용 군용텐트를 얻어다가
그것 쳐 놓고 그곳에서 신학교육을 이어갔습니다.
왜냐하면, 주의 종들은 계속해서 세워져야만 주의 교회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전쟁 끝나고 나서
서울 광장동 353번지에 교지를 마련하고 지금 하나님의 일꾼들을 키우고 있는 제가 섬기고 있는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개교 123주년을 지내는 동안, 지난 2월까지 117기 졸업생..
그러니까, 1907년에 1기 졸업생이 시작해서 지난 2월달 117기 졸업생들을 현장으로 파송을 했습니다.
지금 동문들은 95개국에 흩어져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1기부터 시작해서 117기까지 통계를 내 보았더니, 36,928명,
그 인원들이 각 곳에 흩어져서 하나님 나라의 버팀목으로 현재도 섬기고 있습니다
선교사로 교사로 그 학교가 있었기에 그런 일꾼들이 있었기에 한국 교회가 세워졌고, 이 민족이 이만큼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라고 하는 생각을 할 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중에 몇 분들만 좀 설명을 드릴까요?
일제 지하에서 허덕이고 있던 성도들을 말씀으로 일깨웠던 부흥사 길선주 목사님, 제주와 섬 선교의 선구자였고
신사참배에 항거하다가 주기철 목사님과 함께 평양감옥에서 맞아서 순교하신 이기풍 목사님이 1기 졸업생,
말씀과 신유의 기적으로 전국을 흔들어 놓았던 신유의 부흥사였던 김익두 목사님은 3기 졸업생,
신사참배 강요와 일본의 압제에 온몸으로 항거하며 신앙의 정절을 지켜냈던
독립운동가이자 순교자이신 주기철 목사님은 19기 졸업생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애향원 교회를 목회하면서 신사참배 항거로 긴 옥고를 치르고 두 아들을 여순반란 사건 때
순교자로 바친 다음 1951년 여수까지 밀고 내려온 인민군에게 붙잡혀서 순교를 당하신 손양원 목사님은 33기 졸업생,
여러분 가장 중요한 분 한 분이 빠졌지요.. 눈치 채셨습니까?
여러분들의 담임 목사님은 78기 졸업생,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아니, 이어져야 해요.
왜요? - 하나님의 교회 버팀목들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버팀목이 없으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기에, 버팀목이 필요한 시대 영적인 버팀목이 필요하기에, 계속해서 이어져야 합니다.
저는 코로나가 시작될 때 학교의 중책을 맡았습니다.
"하나님 이 어려운 때, 어떻게 학교를 이끌어 갈까요?"
학교도 다 셧다운 되어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되는데 모일 수가 없어서
강의하는 방법부터 해서 어떻게 예배를 학생들 드리게 하고 어떻게 기도를 하게 하고,
그래서 학교를 운영해 가는데 맡자마자 그런 일이 생겼기 때문에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새벽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 이 어려운 때 어떻게 학교를 이끌어갈까요? 어떻게 신학 교육을 감당해 갈까요?
새벽에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하나님 대답은 간단하더군요. "네가 버팀목이 되면 된다." 한마디였습니다.
그리고 또 그 말씀을 받고서 기도하고 있는데, "버팀목이 된다는 게 뭔 줄 아느냐? 총장이 된다는 게 뭔 줄 아느냐?
총장이 된다는 이야기는 학교를 위해서 죽어야 된다고 한다면, 제일 먼저 죽는 것 그것이 총장의 일이란다.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된다고 한다면,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되는 사람이 총장이란다."
버팀목이 되랍니다.
교회도 그랬던 것처럼, 학교도 함께 모일 수가 없었습니다.
예배도 온라인으로 진행을 했고요. 새벽기도회도 교수들이 설교 녹화해서 올려놓으면
그거 그날 시청을 하면 새벽기도 참석한 것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교회들이 다 새벽기도가 닫혔기 때문에 저도 제 서재에 엎드려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들이 어려우니 후원금들은 다 끊어지지지요. 또 학생들은 얼굴을 볼 수가 없죠
정말 위기감이 느껴져서 새벽마다 기도가 그렇게 간절해서
어느 날 기도를 하고 났더니, 기도가 길었던지 아침 동이 터 오르고 있었습니다.
눈을 딱 떴는데, 아침 햇살이 제 서재에 딱 비치면서 눈을 떴는데 제일 먼저 눈에 보였던 것은
이집트에서 가져와서 제 서재에서 자라고 있는 파피루스 사진이었습니다. 한국으로 하면, 갈대입니다.
저것으로 엮어서 거기다 성경 구절을 쓰기도 하고, 그것으로 작은 이 생활 도구도 만들어서 썼던
아주 이스라엘에서는 유용한 게 저 파피루스였지요.
물만 부어주면 잘 자라는 수생식물인데, 제가 바빠서 물 주는 것을 깜빡했던 모양입니다. 저렇게 다 변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뿌리는 살아 있으니까, 저거 다 잘라내면 또 파란 새싹이 돋아오를 것입니다.
그래서 저것을 잘라내서 말려서 버릴려고 서재 베란다에다 딱 펼쳐 놨는데,
기도 마치고 나자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침 햇살로 조명까지 비취시면서 제 눈에 딱 그게 들어오게 하더라고요.
순간적으로 그걸 보는 순간, 하나님께서 통찰력을 주시는데 바로 박수를 쳤습니다.
왜냐하면, 저 가느다는 줄기 하나 둘을 묶어서 아까 우리 위임 목사님 말씀하신 대로 갈대 상자를 만들었거든요.
거기다 담아서 모세를 살려냈거든요. 그래서 출애굽기 2장 말씀을 폈습니다.
그날 따라 '갈대상자'라고 하는 단어가 왜 제 눈에 그렇게 크게 들어오던지요. 히브리어 성경을 폈습니다.
갈대상자가 어떤 히브리어를 사용했지? - '테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더군요.
'테바'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지? 아침에 연구를 하는데, 성경에 딱 두 번밖에 안 나오는 단어더라고요.
한 번은 장세기 6장에서 방주로 번역되었고, 한 번은 출애굽기 2장에서 갈대상자로 번역이 되었더라고요.
영적 원리는 똑같잖아요. 방주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김집사님 집에서 판자 하나 가져오고,
박집사님 가정에서 판자 하나 가져오고 그걸로 붙이고 붙이고 모아서 생명을 살려내는 방주가 만들어졌잖아요.
갈대상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은 갈대 하나를 둘을 엮어 엮어서 민족의 지도자 하나님의 종인 모세를 거기서 살려낸 것이지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학교를 세우는 프로젝트, 이제부터 테바 프로젝트라고 명하겠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테바 프로젝트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 참 친절하시기도 하죠. 캐치프레즈까지 제 입술에 담아 주시더라고요.
[테바 프로젝트]
"장로회 신학대학교는 세워야 할 '어린 모세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월 커피 두 잔, 일만 원을 절약하여 선지동산에 보내주시면 우리 시대에도 모세와 같은 영적 지도자가 우뚝우뚝 세워질 것입니다."
버팀목들이 있을 때 세워지는 역사는 계속된답니다. 우리 목사님도 언젠가 은퇴하시게 될 것입니다.
은퇴하시고 후임을 찾는데 목회자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왜요? - 신학교가 어려워져서 다 문을 닫았고, 학생들이 없기 때문에 목회자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시대가 한국교회에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학령 인구 감소로, 점점 이런 상황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학교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신학교의 오늘 현재는, 이것은 교회의 한국교회의 미래입니다.
오늘 신학교가 충만하면, 10년 후에 한국 교회가 충만해질 것입니다. 지금 교회 전도사님도 계시고 신학생들이 있는데,
그 신학생들은 이제 10년 후에 한 교회가 됩니다. 어느 교회 담임 목회자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또 여러분들의 자녀들의 목사님이 되고, 여러분들의 손자들을 영적으로 이끌 목사님들이 될 것입니다.
이런 목사님들이 신학교에서 더 말씀으로 충만하고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나오게 될 때, 한국교회는 견고하게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주안교회에 감사를 드리는 것은,
위임 목사님께서 지금 법인이사로 학교를 섬기시면서 얼마나 학교를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격려해 주시는지
이 자리를 빌어서 목사님과 성도님들, 장로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주신 후원과 기도를 힘입어서 더 저희들도 성심껏 이 학생들을 교육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2020년 9월 전임 총장의 인준위 총회에서 부결되면서 학교는 깊은 어려움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때 신학대학원장을 하고 있었다는 그것 때문에 저는 갑자기 등 떠밀려서 총장 직무대행을 시작을 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때, 학교의 책임을 맡아서 학교를 이끌어 갈려고 할 때 제일 필요한 게 기도였습니다.
언젠가 저 혼자서 학교를 위해서 아무도 없는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네 시 반에 오늘은 학교 가서 좀 기도해야 되겠다 하고 왔는데,
당연히 학교 채플실이 열려있는 줄 알고 바로 새벽 네 시에 집에서 나와서 한 5시가 못 돼서 학교의 채플에 도착했는데
채플실이 문이 꼭꼭 닫혀있는 것입니다.
예배도 새벽 기도도 다 닫혀 있으니까, 관리하기 좋게 아마 경비하시는 분들이 다 문을 잠근 것 같아요.
새벽 네 시 반에 경비가 깨어있기 때문에 전화해서 "채플실 문 좀 열어주세요." 하면 문 열어줄 텐데,
총장이라는 사람이 새벽 네 시 반에 학교 나와서 문 열어 달라고 하면 갑질한다고 할까 싶어서
전화도 못하고 바로 총장실로 올라갔습니다. '아,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데, 학교의 기도실이 닫혀서 이렇게 어렵구나..'
교수들을 바로 설득했습니다. 새벽기도 시작했습니다. 교수들을 설득했습니다. 현장예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기도가 죽으면, 이 어려운 때 우리 학생들을 어떻게 세워갈 수 있겠느냐, 기도회 다시 시작합니다."
'감염되면 총장이 책임질 것입니까?'
'책임 못진다. 대신 목숨 걸고 기도해서 학교를 세울 사람들은 학교에 나와서 기도하자'
그렇게 해서 새벽 기도를 다시 시작을 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교수들 몇 사람 모여서 기도하다 보니까
아, 우리 기도만으로는 부족하구나 '기도후원동역교회'를 시작하자. 교회에 기도를 부탁하자.
장신대 '기도후원동역교회'는 함께 약정을 체결하고 적어도 1주일에 새벽에 한 번 정도는 장신대가 보내온 기도 제목을 가지고
1분 이상 합심해서 기도해 주기, 그러면 우리도 교회에서 보낸 기도 제목 가지고 채플이든 새벽기도회에서
우리 그 '기도후원동역교회'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약정을 하고, '기도후원동역교회'를 결정을 했습니다.
수도권에 우리가 찾아갈 수 있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교회 60 교회를 했더니, 세 교회 목사님이 알고서 난리법석
왜 우리는 뺐느냐, 왜 우리는 안 넣어줬느냐, 해서 지금 63개 교회가 새벽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학교의 놀라운 영적인 기도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교회에서 기도해 주시기 때문에 일어난 역사라고 믿기에 주안교회에도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 신학 교육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야 됩니다
그래서 버팀목이 되는 버팀목들을 세우는 사역, 이 신학교육을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제 총장 집무실 책상 중앙에는 한 십자가 작품이 놓여 있습니다. 오늘도 학교에 가서 일 보면서 작품 한번 만지고 왔습니다.
출근하면, 항상 저 작품을 한번 쓰다듬습니다.
몇 년 전에 저희 학교 개교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젊은 작가들의 십자가 작품전이 전시된 적이 있었는데요.
정지은 작가의 '통곡하는 여인'이라고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그 바쁜 와중에도 저 작품 때문에 전시가 되는 한 달여 동안 한 열댓 번 가까이 20번 가까이
저 작품이 있는 전시실에 가서 서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한 여인이 강대상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눈물로 눈물로 기도했는지, 그 앞에 눈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습니다.
저 작품 앞에 그렇게 자주 가서 서 보았던 것은, 저것은 제 어머니의 이야기거든요.
제 어머니가 새벽마다 방석 하나 들고 강대상 앞에 엎드려서 저렇게 엎드려서 눈물로 눈물로 기도하셨거든요.
그것이 어찌 저만의 이야기겠습니까? 우리 주승중 목사님의 어머니의 이야기이고, 장로님들의 어머니의 이야기이고,
집사님들의 어머니 이야기이고, 권사님들의 어머니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그 기도 먹고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고, 이만큼 서 있고, 이만큼 축복받아 누리고 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그때 사진만 저렇게 찍어 놓았지 작품을 살 생각을 못 했습니다.
문제는 총장이 되고 나서 그 작품이 생각나서 사진을 꺼내보면서 '아이고, 그때 사 놓을 걸.. 그때 사 놓을 걸..'
어디서 어떻게 사야 되는지도 몰라서 살 생각은 못하고 있다가 소망교회 권사님들이 무슨 수련회를 한다고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해서 어머니의 기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저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소망교회 권사님들 600명 중에는 검색의 여왕이 몇 분이 계시더라고요.
인터넷을 검색하고 검색해서 총장 취임 기념으로 이 선물을 보냅니다.
예쁘게 포장해 갖고 제게 보내 왔더라고요. 저 작품을 안고서 울었습니다.
저 작품을 볼 때 느끼는 것은, 누군가가 있어서....
'새벽마다 엎드려 나를 위해서 기도했던 어머니가 있어서 내가 여기 서 있구나 이만큼 쓰임받고 있구나..'
그렇습니다. 버팀목이 있으면 세워지는 역사는 계속된답니다.
모세가 그 영적인 원리를 알았습니다. [모세야 네가 바로 서면 나머지 일들은 다 가능해진다.
가나안 정복, 걱정하지 마라. 네가 바로 서면 그거 일도 아니다.
가나안에 가서 저들이 어떻게 살 것, 네가 바로 서면 그 모든 것은 다 가능해진다.] 그래서 모세가 벌떡 일어서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로 살았습니다. 돌이켜보니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인생의 순간 순간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자기는 벌써 나일강에 갈대 상자에 담겨서 떠내려갈 때 끝날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두셨습니다. 도도하게 흐르는 나일강 물에 그 갈대상자가 떠내려가고 있는데,
하필이면 갈대상자를 처음 발견한 것이 바로의 공주였답니다.
히브리 노예의 아들들은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사람이 바로였습니다.
죽은 목숨이나 진배 없었습니다. 그런데 상자를 열자마자
히브리 노예의 아들이 거기에 누워 있는데, 불쌍한 마음이 생겨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 상자를 가지고 바로의 궁궐로 가지고 갑니다.
이게 죽은 목숨이나 진배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두셨습니다.
그 아이를 숨겨서 이 아이를 양자로 삼고 싶은 마음이 생겨 숨기고 숨겨서 양자를 삼았답니다.
살아온 인생길를 돌이켜보니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와주셨고,
은혜로 은혜로 은혜로 덮어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로 살았습니다.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텅빈 가슴을 그래서 모세는 감사로 세웁니다.
이날까지 쓰임 받은 것도 감사, 이날까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 것도 감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 모든 것이 감사 감사 감사로 채워집니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납니다.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보다도 천 배 만 배 더 좋은 저 영원한 천국으로 나를 들어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꺾어지는 것도 은혜였고, 하늘나라에 들어오라는 것도 은혜였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였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가면 레드우드(Redwood0라고 하는 거대한 나무가 있지요.
세계에서 제일 높이 자라는 나무입니다. 큰 나무는 130m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키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거대한 나무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도록 찍어 놓았던 사진 몇 장을 담았습니다.
언젠가 그곳에 갔다가, 나무 한 그루가 거대한 나무가 저렇게 쓰러져 있더군요.
설명을 보니까 1968년에 그곳에 엄청 폭설이 쏟아지면서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 3000년 된 나무가 저렇게 쓰러졌답니다.
길을 내기 위해서 저렇게 나무토막을 자른 게 아니라 이 나무를 영구 보존하기 위해서 한 토막은 영구 보존을 했고,
한 토막은 관광객들이 보도록 저렇게 전시를 해 놓았더군요.
저 나무 앞에 서서 느꼈던 것은 야 3000년 동안이나 한 곳에 서서 섬길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대단한 은혜겠다.
그런데 3000년 된 나무에게 쉬라고 저렇게 쓰러졌습니다. 아, 이것도 은혜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 앞에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시인이 한 명이 있더군요.
"장엄한 숲"이라고 하는 '김남조' 시인의 시에서 그 시인은 이렇게 노래를 합니다.
"삼천 년 된 거목들의 숲은 겨우내 끝이 안 보이는 설원
나무들은 그 눈벌에 서 있습니다.
어느 겨울, 그 중에 한 나무가 눈사태에 떠밀려 쓰러질 때
하나님께서 품속에 안으셨습니다.
낮에게 이르시되 아가야 쉬어라 쉬어라 쉬어라
하나님께서는 이 나무가 작은 씨앗이던 때를 기억하시며
거대한 뿌리에서 퍼져나간 젊은 분신들도 알으십니다.
쉬어라 쉬어라고 하나님의 사랑은 이날 자애로운 안도이셨습니다.
가령에 삼천 년을 노래해 온 새가 있다면, 쉬어라 쉬어라고 하실 겝니다.
이 나무도 기나긴 삼천 년을 장하게 맥박쳐 왔으니까요.
레드우드 품종의 이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수면이요 안식이며
이후 삼천 년 동안 그는 잠자는 성자일 겝니다.
장엄한 숲에서 이 겨울도 끝이 안 보이는 아득한 설원에서"
천지를 다스리고 계시는 우리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삼천 년 된 나무도 아가랍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 가운데 서서 삼천 년 동안이나 많은 씨앗들을 배출하고
많은 어린 나무들을 배출하고 수많은 산소를 내뿜을 수 있었던 것 그것도 돌이켜보면 은혜입니다.
그런데 쉬라고, 하나님께서 이제 그만 쉬라고 천국으로 부르시는 것도 은혜랍니다
이날까지 살아온 것도 은혜, 달릴 수 있었던 것도 은혜, 쉬라고 하신 것도 은혜,
더 좋은 천국으로 돌아오라는 것도 은혜,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은혜에 사로잡힐 때 모세는 살아 있을 동안에도 견고한 버팀목이었고,
민족을 세웠고, 가정을 세웠고, 교회를 세웠고, 가슴 시린 영혼들을 세웠고, 다음 세대를 세웠고, 버팀목이었습니다.
죽어 넘어져서도 그는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 [그대들이 바로 서면 다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길을 온통 은혜로 덮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살아온 것도 은혜, 쓰임받은 것도 은혜,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 전할 수 있는 것도 은혜,
비록 가나안의 문턱에서 가나안 땅은 못 들어가지만 더 좋은 천국으로 들어오라 하신 것도 은혜,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을 때 섭섭함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요. 억울함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는 아쉬움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요? - 더 좋은 하나님의 은혜에 둘러싸여 그는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어렵습니다. 사역들이 어렵습니다. 한국교회가 점점 어려운 시간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때 첫사랑의 정열로 일어서는 사람들, 모세와 같이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사역을 가슴에 품고 마지막 순간까지 달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우뚝 서 있을 때,
교회가 다시 세워질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견고하게 세워질 것이며,
우리 가정의 자녀들이 세워질 것이며, 우리 다음 세대가 세워질 것이며,
우리 가정이 온전히 세워지는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은혜, 한없는 은혜,
하늘 은혜에 둘러싸여 살았습니다.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정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그런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가슴에 교회를 품고 가정을 품고 자녀를 품고 주님 앞에 부르짖는 사람,
그 사람들이 우뚝 서 있을 때, 세워지는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나는 결코 흔들릴 수 없는, 나는 결코 흔들릴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 속에는 하늘 파티가 계속된다네요.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된다네요. 이 땅에서 생명을 살리는 역사 우리 주안교회가
지난 역사 가운데 한국의 어느 교회보다도 멋지게 멋지게 그 사명을 수행해 왔는데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멜리데 섬으로 사랑하는 종을 초대하셔서 놀라운 하늘 잔치를 맛보게 하셨습니다.
은혜에 대한 감격을 가진 사람들, 이 잔치에 참여하여 새 힘을 얻고 새 능력을 얻고
일어서서 맡겨주신 그 사명들을 감당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우리 이제 결단 찬양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의 자리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오늘 숨을 쉬는 것 감사 나를 구원하신 것 감사
내 뜻대로 안 되도 주가 인도하신 것 모든 것 감사
내게 주신 모든 것 감사 때론 가져가심도 감사
내게 고난 주셔서 주 뜻 알게 하신 것 모든 것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