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요한계시록 11장 1절∼5절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 요한계시 11장에 있는 말씀, 여기에 보면 갈대와 같은 것을 주면서 측량하라 하는 이런 것은 요한계시록은 사람들이 영감받지 안한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도록 그래 해 놓은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러면 가서 중단을 시켜. 여기에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가운데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밖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저 둬라. 이방에게 내어 줘 가지고서 마흔두 달 동안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게 하겠다.” 그렇게 여기에 말씀 했습니다. 이방에게 내 준다 그말은 세상에게 내줘서 그거는 세상의 이용물이 되게 하겠다 그말입니다. 성전은 여러분들이 성전 도면을 봤겠지마는 성전은 가에 성전 울타리가 있습니다. 성전 울타리가 커다랗게 있는데 예를 들면은 성전 울타리 안에 있는, 울타리가 우리 사람 앉은 이 주변 모양으로 이래 돼 가지고 있다고 하면은 그 안에 들어 있는 성전은 얼마나 큰고 하니 아마 요 책상만할 것입니다. 성전은 요 책상만해. 아주 작습니다. 성전 밖마당은 너르고 크고 성전 그 성전 밖마당 안에 있는 성전은 요 책상 요 정도로 작습니다. 그러니까 뭣을? 방해 많다. 보물이 있으면 도적이 많은 것처럼 방해가 많은 것은 우리 은혜 하나님이 주실라고 하시는 것이라, 그러니까. 됐어. 그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일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 근방에 가면 성전이 이래 울장이 되어 있습니다. 울장이 되어 있는데 그 울장 안을 다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렇게 봅니다. 울장 안을 그걸 ‘이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이라’ 이렇게 보지마는 그 안에 들어가 보면, 나는 가 보지 안했는데 도면으로 압니다. 들어가 보면 그 울장 안에 성전 밖마당이라고도 하고, 이방인의 마당이라고도 하고, 여인들의 마당이라고도 하는 그 밖마당은 아주 여기로 말하면 지금 이 장내만치 이렇게 크다고 하면은 성전으로 말하면 그저 이 책상 하나 정도만치 그렇츰 작다 그거요. 이런데 여기에 기록하기를 “성전 밖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대로 둬라” 안 믿는 이방인이 말할 때에는 그걸 다 성전이라고 말하지마는 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다 말하고 예수교라고 말하지마는 그 안에 들어와서 보면은 성전 울타리 안에 있기는 있지마는 밖마당된 그 많은 부분은 하나님께서 “관리하지 말아라. 그거는 간섭하지 말아라. 그거는 측량하지 말고 거기서 관리하지 말고 간섭하지 말고 지도하지 말아라. 그것은 내비둬라. 그건 포기해 둬라.” 뭐할라고? “이방에게 내줘 가지고 안 믿는 사람들에게 내줘서 마흔두 달 동안을 짓밟히게 한 것이니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거기에 마흔두 달이라는 것은 삼 년 반인데 성경에는 하나님의 수를 칠수라 해 가지고서 일곱 달, 일곱 주일, 칠 일, 또 일곱 때 이렇게 말씀했는데 여기에 삼 년 반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교회 시대를 구약 시대 신약 시대 두 시대로 나누어서 구약 시대를 삼 년 반 신약 시대를 삼 년 반으로 해서, “마흔두 달 동안 짓밟히게 하라” 그말은 신약 교회가 시작한 후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그 교회로서 이 세상에게 내어 주어서, 세상에게 짓밟힌다 그말은 세상에 종노릇 한다 말이요 세상에게 이용을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게 이용당하는 교회로 그거는 내 줘라. 또 세상에게 짓밟히는 교회로 내 줘라. 세상의 종으로 내줘라. 그러면 교회가 세상에게 복종하는 것, 세상의 이용물, 또 세상에게 짓밟히는 것, 그 교회의 분량이 더 많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볼 때에 예수나 믿는다 하고서 뭐 교파라고 하면은 다 저거는 예수교라고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실은 그 안에 들어와 보면은 하나님께서 그 다대수는 관리하지 말고, 간섭하지 말고, 그것을 다스리지 말고, 그 측량이라 하는 것은 그게 얼마냐 정확한 것을 알라고 측량하는 것인데 이제 그 안에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 요 셋만 측량해서 그것만 그저 요게 틀렸다 옳다 요걸 관리해 가지고 세밀히 간섭을 하고 그 나머지기는 간섭하지 말아라 했습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참 놀랄 만치 깨달아야 될 겁니다. 그 나머지기는 간섭하지 말아라. 어짤라고? “이방에게 내어줘 가지고서 마흔두 달 동안에 이방에게 짓밟히게 둬 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짓밟히게 둬 두라 말은 이방은 안 믿는 불신을 말하는 것인데 불신들에게 내줘 가지고서 거기에 이용물로 삼고, 거기에 짓밟히고, 또 거기에 종되고 이렇게 하도록 냅둬라. 그러니까 교회 중에는 세상에 이용물 되어 있는 교회가 숫자가 훨씬 많고, 또 세상에게 짓밟힌 그런 교회가 훨씬 많고, 세상에게 종이 되어 있는 교회의 양이 많다 그것을 여기서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그라면 하나님께서 관리하고 취급해 가지고서 구원을 이루도록, 하나님의 보배를 만들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라고 이렇게 관리하면서 간섭하면서 이것을 구원을 이룰라고 하는 그 종자는 셋 종류다. 뭣 뭐? 성전, 또? 제단, 또? 경배하는 자들. 요 셋만 관리해 가지고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알곡으로 삼아 가지고 구원하시고 그 나머지기는 다 그때 껍데기 있어 가지고 이거는 알맹이는 위해서 그 안에 껍데기로 이래 둘러싸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내가 언제 어떤 그 종이 쪼가리에 보니까 요새 지금 소련서는 아주 예수교가 크게 왕성이 되고 뭐 박해를 당하면서 신앙 생활 하는데 소련 정부에서 그걸 억제를 하지 못한답니다. 어떻게 많이 그만 예수 믿는 사람이 일어났든지 억제를 하지를 못해요. 그만치 숫자가 많이 일어났는데 그 교파는 어떤 교파냐 하면 여호와의 증인 교파라. 여호와의 증인 교파가 거기 가 가지고서 전도를 하는데 뭐 이거는 전쟁 하라 하니 전쟁을 하나, 뭐 나라에서 시키니 시키는 대로 하나? 아무것도 시켜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안하고 그대로 꾹 밀고 나가는데 그러니까 소련 그 당국에서 이거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지금 골치를 앓고 있는데 그렇게 속에서 일어난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게 들어와 가지고 이래 야단을 지기다가 그만 밀려 나가 버렸습니다. 밀려 나가서 그거는 이단으로 정죄를 받고 밀려 나갔는데 또 거기 가서는 예수 믿는 예수교를 전하고 거기서는 지금 그게 또 된다 말이오. 그러면 사람은, 그 말이 있어요. 입술이 망하면 이가 시리다 하는 말, 울타리가 없으면 그 집 지어 놓은 벽이 상해요. 그게 자꾸 인제, 우리가 신 안 신으면 속에 양말 신은 것이 상하는 것 모양으로 또, 양말 안에 또 살 있지, 살을 보호하는 양말 있지 양말 보호하는 또 신 있지 그래 가지고서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렇게 이 복음 운동을 애끼고 애껴서 넓은 범위에서 이 모든 것을 이래 가지고서, 그거는 뭐 하나님을 믿는 건지 안 믿는 건지 그라면서 그저 예수 믿는다는 말만 하고 성경하고는 도무지 맞지 안한 그런 예수교들이 많이 있다 그거요. 그렇게 많이 있는데 여기에 그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성전 밖마당은 측량하지 말아라. 관리하지 말아라. 간섭하지 말아라. 거기 대해서 상관을 하지 말아라. 손 떼라. 그대로 내비둬라. 그거는 뭐이냐? 성전이라고 하기는 하지마는, 예수교라고 하기는 하지마는 안 믿는 이방인들에게 정치에도 이용되고, 사회에도 이용되고, 문화에도 이용되고, 모든 데에 이용되는 이용물이요, 또 거기에 짓밟히는 것이요, 거기에 내나 종질하는 것인데 그런 것은 그대로 둬 둬라.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그것은 그렇게 되도록 내비뒀다 그렇게 여기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는 없어요. 이 해석은 이래밖에는 달리는 해석을 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 해석은. 그랬는데 그 안에 이 셋은 단단히 간섭하라. 이거는 알곡이다. 이러니까 이거는 단단히 간섭해서 이것을 잘못되면 그것을 고쳐서 어짜든지 성전이 되도록 하고, 또? 제단이 되도록 하고, 또? 그 안에 경배하는 자가 되도록 하고, 이 셋만 구원 얻는다 그거요. 그러니까 또 우리는 껍데기고 우리보다 더 알맹이가 또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보다 더 알맹이가 있는지 몰라. 하나님은 너무 능하셔서 지금 아마 공산주의 속에 더 알맹이가 있는지 몰라요. 그들은 생명 내놓고 다 믿어요. 거기에 있는 사람들 언제 한번 나온 것 보니까 그저 날마다 생명 내놓고 그래서 하나님의 날마다 기적으로 살고 기적으로 전하고 기적으로 운동하고 하는 그런 굉장한 사람들이 그 알맹이고 우리는 또 그 속껍데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속껍데기인지 몰라요. 우리가 알맹이인지 우리가 속껍데기인지 우리 안에 알맹이가 또 있는지 어쨌든지 여기에 알맹이가 되고 싶거든 성전이 되든지 제단이 되든지 경배하는 자가 되든지 이게 돼야 알맹이가 되겠다 그겁니다. 이러니까 이 세 가지가 돼야 되겠는데, 그러면 성전은 어떤 게 성전이냐?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 성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자기 지식 안에도 왕으로, 지혜 안에도 왕으로, 성품 안에도 왕으로, 욕심 안에도 왕으로, 전부 우리의 온갖 속성, 온갖 행동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는 우리 마음이 성전이요, 우리 몸이 성전이요, 또 우리 소유가 성전이요, 우리 사업이 성전이요, 우리 모든 활동이 성전이요, 우리 행동이 성전이라. 저 안경쓴 분, 잠이 속에 들었는데 잠을 확 깨버려야 돼. 속에 마귀 들어갔구만. 확 털어내 버려요. 뭐 딴것 생각하는가? 딴것 안 생각해? 딴것 안 생각해? 처음에는 좀 잘 듣더니마는 얼렁얼렁 좀 듣다가 이래 듣다가 이래 자꾸 이라는데 딱 들어요. 그라면 안 돼. 이 성전되도록 만들어 가지고 성전이 된 것은 버리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성전은 쉽소. 성전은 하나님 계시는 집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은 그 주인으로 계시고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이 회사를 경영해도 그 회사가 하나님의 성전만 되면 됩니다. 그 회사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회사는 하나님의 계시는 곳이 되면 돼요, 하나님의 계시는 곳이. 하나님께서 그 회사에 그만 사장만 되면 그 회사는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의 기업도 되고. 그러니까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 행동 속에 주님이 주인으로 계시면 그 행동은 성전이 돼요. 또 우리가 욕심을 품는데 우리 욕심 안에 하나님이 내재해서 주장만 되면은 우리 욕심은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욕심 속에 마귀가 들었든지, 악령이 들었든지 악성이 들었든지 악습이 들었든지 이제 거짓된 자기가 속에 들었으면, 자기 욕심이 속에 들었으면 그거는 마귀의 전이 됩니다. 마귀의 전이 돼요. 마귀의 전. 이러니까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되기를 늘 힘을 씁니다. 자기 속에 하나님이 계셔서, 이래 가다 보면 그만 하나님은 그만 우리 영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떠날 사이가 없고 우리의 영과 하나님과는 언제든지 하나돼 가지고서 영이 하나님을 모시고 이래 있지마는 우리 마음은 이거 거짓부리요, 거짓부리.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가진 사람들은 그만 교만해지고, 또 율법으로 가진 사람들은 죄인되고 맙니다. 우리는 율법으로도 가져야 되고 명령으로도 가져야 되고 복음으로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런데 가만히 있다 보면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딱 모시고 그저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하고 의논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모시니까 든든합니다. 전지를 모셨소. 전능을 모셨소. 완전을 모셨소. 우주에 대주재인 주인이 내 안에 계시니까 우주는 내것이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그말이요? 모시고, 이라는데 이래 모시고 주님을 모시고 또 주님하고 무엇이든지 동행을 하고 이라는데, 뭐 일할 것도 ‘주님 이것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라면 그것을 주님이 이래 해라 저래 해라 하면은 주님이 원하시는 그 소원이 나를 통해서 내라는 껍데기를 통해서 성전을 통해서 내 밖으로 나간다 그거요. 이라는데 그만 가다가, 이 사람이 참 제일 기묘한 것입니다. 이래 살다가 어떤 사람이 갑자기 턱 닥쳤다 말이오. 그 사람을 만나 가지고 ‘아, 안녕하십니까?’ 하다가 보니까 나중에 그 사람하고 얘기를 한 오 분이나 십 분이나 하다 보니까 그만 주님은 간 곳이 없고 주님은 잊어버려 버리고 그사람하고 저하고 단둘이라. 그만 음행을 했다 그말이오. 그만 음행했어. 그만 성전이 이거는 인간 집이 됐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기가 차서, 얘기하다가 ‘주님이여, 내가 또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는 또 음행을 했습니다. 주님은 배척을 하고 이제 인간을 영접해 가지고 인간하고 둘이 얘기를 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또 새로 성전이 된다 말이오. 그러면 얘기를 하면서 그저, 그 사람 보면, 볼 때 기도하면은 그 사람이 미치괭이라 할 터이니까 볼 때 기도는 못 해도 속으로 ‘주님, 이제는 내가 그런 짓 안 하겠습니다. 주님 나와 계시면서 이 사람 하고 얘기할 때에 주님이 앞서서 얘기하시는 거기 따라서 나는 말을 나팔 모양으로 발표만 하겠습니다.’ 그게 제법 조직이 바로 된다 말이오. 바로 돼 가지고서 얘기를 하다가 또 무슨 뭣이 갑자기 무슨 사건이나 턱 오니까 그것 할 때 그만 그것 떡 보다가 또 잊어버렸다 그말이오. 우리는 이 성전이 계속 되지를 못하고 성전이 어떻게 변동이 되어지는지? 이래서,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성전으로 살기로 ‘주님이여, 이제는 내가 주의 전으로, 주의 종으로, 주의 것으로, 주의 지체로, 주님의 백성으로, 주님이 파송하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주님이 파송하는 똘똘한 선지자로, 주님이 파송하는 정확한 왕으로 이렇게 내가 살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이라고도 그만 연습 안 하면 그게 한 시간 지속하다가 마는 사람, 또 두 시간 지속하다 마는 사람, 제법 한 나절 지속하는 사람, 어북 하루 종일 조심하면 하루 종일은 성전 생활 해서 저녁에 잘 때까지는 ‘주여, 오늘은 주님 모시고 살았습니다. 오늘은 주의 전이오니 나를 누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주재 당신이 나를 지키시니 든든합니다.’ 이라고 잠을 잔다 말이오. 자는데 또 꿈을 꾸는데 주님하고 이래 살아야 될 터인데 또 엉뚱하게 꿈을 꾸는 데 보면은 부흥회 하고 돌아다니고 뭣 하고 돌아다니고 또 성전 틀렸다 그거요. 이래서 성전은 주님을 자기 안에 주님으로 모시고 자기는 주의 소유가 되어져 가지고서 주님 모시고 있는 그게 성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한 마디 한 마디의 말 속에 주님이 계셔 가지고 내 안에 주님이 계셔 가지고 주님이 말씀하는 그대로만 말을 해야 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설교할 때 처음에 시작하기를 ‘주여, 내 말 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나는 못된 요소 있어. 나는 죄악의 요소가 있어요. ‘주님이 하라는 말만 하고 주님이 말할 때에 받아서 전달하는 것만 하게 해 주옵소서.’ 이라고 제일 시험 많이 드는 것이 ‘교만한 말 하지 말게 하옵소서. 자긍하는 말,’ 자긍하는 것은 제 자랑이 자긍이야. 자긍죄를 잘 지어요. 이제 자긍죄는 다른 사람이 모르니까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 말한다고 말하다 보면은 그만 그게 나 가지고 자긍돼 버리고 말거든. 이런 것 다 못쓰는 건데,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이 된 그 성전이 알곡이니까 성전만 하나님께서 추려 가지고 간다. 이라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섭을 받을라면은 성전이 돼야 간섭을 받는다 그말이오. 우리가 그 측량 속에 들어갈라고 하면은, 구속 속에 들어갈라고 하면 우리가 성전이 돼야 되니까 성전되기를 부지런히 힘써야 되겠습니다. 성전되기를 힘써. 그전에는 참 예수 믿는다고 해도 보면은 주님이 하시는 시키시는 일, 그 일만 열심히 하고, 그 일만 충성하고, 그 일만 부지런히 했지 그만 하루 종일 그만 예수님은 깜빡 잊어버렸습니다. 잊어버리고, 기도한다 하면서 밥기도 하면서 ‘주님이여’ 해도 실은 주님은 없는데 하나 습관으로 그만 습관이 돼 가지고서 입술뿐이지 주님을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그말이오. 주님을 생각하는 게 그리 쉽게 대번 생각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라다가 차차 차차 자꾸 자기가 주님의 성전되기를 원하고, 성전이 안 되면 다 죽었어. 성전이 안 되면 그것은 벌써 더러워져 버렸어. 더러워졌기 때문에, 주님이 내 안에 계셔 가지고서 주님이 나를 지키셔야 되고, 내가 주님의 것만 되면 주님이 지키시니까. 또 주님을 내 안에 모시고 내가 주님만 배척하지 안하면 지켜. 그러니까 중생된 영은 “하나님이 지키시매 악한 자들이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해하지를 못한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영은 그리 됐지마는 우리의 마음인데 지금, 마음이 성전돼야 되는데, 우리 마음이 성전이 돼야 되고, 우리 몸이 성전이 돼야 되고, 또 그 밖에 껍데기는 우리의 행동이 성전이 돼야 되겠고, 우리의 모든 해 놓은 일이 성전이 돼야 되겠고, 그 일 속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있어요. ‘이 일은 하나님이 속에 계셔 가지고 일했다’ 하는 그런 일이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첫째는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이 돼야 되겠고,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돼야 되겠고,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의 성전이 돼야 되겠고, 우리의 모든 하는 사업 속에 하나님이 주인이 돼 가지고서 역사하셔야 되겠더라 그거요. 이러니까 하나님의 성전되기를 우리가 힘을 써야 됩니다. 성전이 안 된 것은 하나님께서 취급하지 안하요. “그거는 버려 둬라. 그건 측량하지 말아라. 이방에게 짓밟히도록 버려둬라.” 이렇게 말했어. 우리 우리 저 목사님 눈에 잠이 곤곤하고 또 뭐꼬? 선생도 잠이 가글가글 채였는데. 나는 눈에 잠든 사람은 말이요, 나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저 속에 우상이 있구나.’ 그렇게 합니다. `우상이 있구나.' 우상 무슨 우상? 자, 알아맞춰 보십시오. 무슨 우상? 어? 녹음기 우상. 녹음기 우상. 녹음기 우상만 있으면 좁니다. 그것 믿거든. 녹음기 믿는다 말이요, 주님 믿지 안하고. 녹음기에는 성령 전달은 안 됩니다. 녹음기에는 성령 전달이 안 돼요. 저 장로님도 조는데 녹음기가 있습니까? 그래, 그렇지 봐, 우상 있네. 녹음기 있네. 그만 조는 사람 녹음기 있어. 목사님들 쳐놓고 조는 사람은 전부 녹음기 다 있어요. 우상 그놈이 있어. 그거 녹음 할라면 이다음에 여기서 집회에 참여한 것을 여기 아는 사람들에게 증명을 하면은 여기 집회에 녹음은 돈만 실비로 내면은, 뭐꼬? 녹음 복사기가 있나? 녹음 복사기에 해 가지고서 달라면 줄 수 있으니까 아예 여기서 녹음하지 말고 딱 깨서 여기서 증거하는 주님을 영접해 가지고서 그리 돼야 되지 녹음 그거 우상을 버리라 그말이오. 내가 오늘 아침에 여기 뭐꼬? 선생이 보니까 아주 죽자살자 하고 예수 믿을라 하는 사람인데 그만 졸아. ‘저게 왜 조나? 저게 아마 우상이 속에 들었구나. 보자. 녹음기 있나?’ 이라니까 녹음기 있다 해. 녹음기 버리라 하니까 ‘예, 안 하겠습니다.’ 녹음기 빼내 버리고 나니까 눈이 또록또록하게 잠 하나도 자네. 마귀란 놈은 묘하게 점령한다 말이오. 목사님도 녹음기 그거 녹음하지 말아요. 복사기 여기 와서 하면은 목사님 알기 때문에 복사 해 달라면 복사 해 줘요, 테이프만 주면. 이러니까 아예 녹음 치워 버려. 딱 꺼 버리요. 꺼 버리고 우상 그놈 버리자고. 그라면 은혜를 받아요. 하나님은 얼마나 세밀하십니까? ‘녹음기가 있으니까 내가 여간 졸아도’ 졸라고 하는 건 아니지. ‘녹음기 있으니까.' 그것 믿으니까 주님이 아주 그만 삐꿔 돌아 가십니다. 어떻게 예민한지. 주님같이 시기 많은 분이 없고, 모든 인류의 시기를 그분이 만들어 냈소. 그 시기의 왕입니다. 알겠습니까? 시기 만드신 분이 그분이 시기를 만드셨소. 또 질투를 미움을 만드신 분이 그분이 만드셨소. 이러기 때문에 이제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의 말씀만 듣지 안하고 녹음기를 믿으니까 그만 ‘에, 이놈 너는 보기 싫다. 가라.’ 보기 싫다 하고 그만 아주 잡성스런 창기 모양으로 버려버린다 말이오. 그러니까 마귀 이놈이 거머쥐어 가지고는 ‘좀 졸아라. 또 지금은 졸면서도 네가 그냥 졸 게 아니라 알아듣는 체하고서 끄떡끄떡 이렇게 해라.’ 그게 별별 놀음을 다 합니다. 보면은 그런 놀음이 보인다 그말이오. 보이요. 거기도 조네요. 졸지 말아요. 졸면 안 돼. 참 안팎에 눈이 있어야 돼요. 자, 녹음 믿는 분들, 뭐 안 졸면 되지마는 녹음에 마음은 거기 가 있습니다. ‘테이프가 언제 탈칵거리는고?’ 또 바꿔야 되니까 거기 다 쏠린다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께 못 가거든. 그러니 그렇다 말이오. 여기 왔던 사람은 복사기가 있으니까, 녹음 복사기가 있으니까, 그 한 번 하면 몇 장 나오노? 하나에 몇 분 걸리노? 하나에 십 분 걸려? 그라면 노임만 주고 이래 하면 그래 복사할 수 있어요. 안 온 사람은 복사를 안 해 주지만 여기 온 사람은 복사를 해 줘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녹음 하지 말라 했으니까. 녹음기 다 치우고 우상 섬기지 말아요. 딱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하나님께는 마음 기울이지 안하고, 겉어머리는 ‘주여’ 이라고 있으면서 속으로는 귀는 속은 마음은 이래 가지고 언제 탈칵거리는고 싶어 ‘아, 탈칵거린다.’ 그러니까 헛일이라. 목사님, 녹음기 했지? 처음에 녹음기 했지? 인제 안 했습니까? 그러니까 눈이 또록또록하네. 어제는 자꾸 졸아. 다 그래요.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 마음과 성품과 목숨과 뜻 이것 힘 솔빡 다 차지해야 만족하지 그 조그매라도 남구면 당신은 섭섭해 그래요. 왜?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기를 그렇게 사랑하셨거든. 이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주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는데 아무리 주를 위해 충성하고도 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기 전에는, 생명 바쳐 나를 사랑했는데 나는 생명 바쳐 사랑하지 못했으니 사랑에 빚졌다. 전하라 하는 데도 빚졌고 주님의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비비된 미비점 미달점이 있다.’ 이러니까 항상 그게 일편단심 지금 정성이라. 이래 가지고서 이제 순교를 떡 받기로 딱 시작하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싸울 싸움 다 싸웠고 이제는 지킬 믿음 지켰고 달려갈 길 다 갔고 이제는 면류관밖에는 없다. 주께서 면류관 들고 나에게 주실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이게 암만 녹음기에는 그래도 이제 여기서 주님이,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여기서 성전이 돼라 하는 것을 전하실 때에 그때에 지극히 큰 능력의 영감은 녹음기 속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영감은 녹음기 속에 안 들어가. 영감은 하나님인데 그 녹음기 속에 붙들려 들어갑니까? 안 들어가요. 다만 당신이 당신의 피로 값주고 산 당신의 지체라 했기 때문에 당신의 입을 통해서는 당신이 하시는데 하실 수가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전도 방편을 육십육 권 성경만 기록했지 그외에는 문서 기록 안 해 줬는데 그외에 문서 기록이 많이 있어서 이 문서 기록이 복음 운동이라 하는 이거는 뭐 이걸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지금 입을 못 벌리고 있지마는 그 유력한 개혁가가 자기가 기록해 놓은 그것을 나중에 성령은 떠나고 그것만 자꾸 울궈 먹으니까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교만만 나오고 결국은 교만만 나오고 유익이 별로 없기 때문에 뭣한 사람은 설교집을 읽다가 세상 떠날 때에 다 태우고 떠나버려. 주기철 목사님이 자기가 세상 떠날 때에 자기의 설교집을 가져오라 해 가지고서 싹 다 태웠는데 태워도 또 남은 것이 있기는 있다 그거요. 그러니까 남은 것 그것만 보지 그 목사님이 각자에게 전해 놓은 성령 전달은 받지 안하고 자꾸 문서 전달만 받으니까 껍데기라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는 성전되기를 힘써야 됩니다. 성전되기를 힘써야 되는 것. 그다음에 둘째로는 뭐이냐? 제단을 제단을 측량하라 했습니다. 제단은 뭣이 제단인고 하니 산 짐승을 잡는 것이 제단이오. 살아 있는, 제대로 살아 있는 것을 제대로 살아 있는 것을 하나님에게 바치기 위해서 제대로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이 제단이요 죽여 가지고서 하나님에게 바친 것이 제단입니다. 그러기에 이 제단은 자기대로의 사는 사람을 죽여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죽여 하나님만이 하나님만이 쓸 수 있는, 하나님께만이 소용되는 것, 하나님에게만 소용되는 제물로 바쳐지는 것, 하나님에게만 바치는 것, 이것만 측량해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인서 12장에 “너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하는 그것은 “너희 몸으로 산 제사 드리라” 그말은 고기덩어리만 드리라 말아닙니다. 거기에 “몸으로” 말했지마는 육을 산 제사로 드리라 그말입니다. 마음과 고기덩어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그렇게 했습니다.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살아 있으나 자기로서는, 살아 있으나 자기로서는 산 것이 없고 전부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그 제물된 것을 가리켜서 산 제물이라 순생자를 가리켜 말합니다, 순생자. 순생자 순교자. 그러기에 하나님에게 바친 마음, 하나님에게 바친 마음, 바치면 살려서는 바친 것 소용이 없어. 살아 바치는 건, 산 양이나 산 소나 그대로 몰아다가서 제단 위에 놓지 안해요. 다 잡아서 놔서 다시는 이제는 하나님에게만 소용 있지 제물로만 소용이 있지 제물되기 전대로의 행동이나 소용은 하나도 없어. 아무리 부리기 좋은 소라도 제물이 딱 되고 난 다음에는 논 못 갈아요. 또 아무리 젖이 많이 나는 그 양이라도 제물되고 난 다음에 양은 젖을 못 짜요. 젖이 안 나와요. 이라니까 제물되기 전 행동은, 제물되기 전 소용은, 제물되기 이전의 행동은 하나도 없이 하나님에게만 바쳐진 것, 제물된 이전의 소용은 하나도 없어지고 하나님에게만 소용되는 것, 요렇게 해 가지고서 하나님에게 바친 것, 하나님만 위해서 바친 그것이 제물입니다. 하나님에게만 바친 것. 제물되기 전 그것은 다 잡아서 없는 그자로 하나님에게만 바친 것. 그러면 마음도, 마음도 하나님에게 바쳤다고 그게 바쳐 가지고 있으면서 바쳤다 하면서 과거대로 행동하는 그것이 속에 섞여 있으면 그것은 산 짐승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욕이 되고 제물이 되지 안해요. 욕이 되고 제물되지 안해. 그거 제단 위에 올려 놓으면 제단 더러워져요. 더러워지는데, 잡아서 하나님에게 바쳐서 하나님에게 바친 마음, 하나님에게 바친 생각, 바친 성질, 바친 힘, 바친 몸, 바친 생명, 바친 소유, 이제 자기가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께 바친 소유로 사는 사람들 있어요, 하나님께 바친 소유. 이러니까 자기 소유로 자기가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께 바친 것으로서 하나님으로 것으로 자기가 보관해 가지고 있는 줄 알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법대로만 처리하지 그것을 제가 많게 할라고 적게 할라고 하지도 안하고 그거 제 맘대로 쓰지도 안하고, 하나님의 것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이 쓸 주권이 있는 줄 알고 당신의 것인 줄 알고 당신에게 보관하라 했기 때문에 보관했으니까 다 내놓으라 하면 다 내놓고, 던지라 하면 던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소유물을 취급하고 사는 사람들 많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옳게 들은 사람들은 다 자기의 소유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바쳐 놓고 살고 자기의 몸도 바쳐 놓고 사는데 가끔 가다가 도적질을 해요. 하나님께 바쳐 놓고 살다가 도로 되찾는 그런 망령이 있지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힘이나 자기의 성품이나 지능을 다 하나님께 바쳐 놓고 살라고서 애를 쓰는데 바쳐진 그것만이, 바쳐진 그것만이 하나님께서 관리하시고 알곡으로 하늘나라에 가지고 들어가신다. 그런데 이제 제단 위에 바치는 그 제물은 어떤 것인고 하니 그 제물은 하나님을 위해서 바친 것인데 그것이 이용되어지기는 어데 가서 소비되고 이용되어지는고 하니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 구원에 소모가 돼집니다. 예수님은 첫째로 하나님 앞에 대제사장으로서 제사를 드렸고 또 당신의 몸을 대제사장이 드리는 제물로, 속죄 제물로, 화목 제물로, 번제물로 그렇게, 속건제물로 당신을 드렸는데 그 제물로 드린 것은 순전히 하나님에게 드린 것인데 드린 그것이 쓰여지기는 어데 쓰여졌습니까? 쓰여지기는 어데 쓰여졌소? 어데 쓰여졌습니까? 하나님에게 쓰여졌습니까? 녜, 하나님에게 드렸는데 쓰여지기는 우리에게 쓰여졌다 말이오. 쓰여지기는 우리에게 쓰여져. 그러면 이제 제단이라고 여기 말씀하신 것은 제물은 하나님에게 드렸다고 그들이 말했지마는 그 제물은 예수님의 대속의 모형으로 예표로 그렇게 하신 것인데 그 제물은 하나님에게 드린 것이라고 사람들이 알지마는 실은 그 제물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서 줬다 말이오. 사람에게 줬기 때문에 사람을 위한 제물이 됐습니다.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인간에게 필요한 제물이 되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하나님은 그게 필요가 없어요. 이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대로의 그 소원 성취인 인간 구원을 위해서 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님이 제일 소원하는 것을 이루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대접이 되어지고 또 아버지에게 바친 게 되어지고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제물되신 거와 같은 그렇게 제물된 그 성격에 소속한 그것이 알곡으로서 하늘나라에 간다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성경은 이리 꿰나 저리 꿰나 다 한 진리기 때문에 하나가 됩니다. 그런고로 제단이라고 말하는 이 제단은 그러면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 잡아 바치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을 위해서 하나님에게 바치는데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이 어떻게 쓰시는가?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데에 쓰시는, 죄인들 구원하시는 데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얼마든지 쓰실 수 있도록 자기의 사욕과 주관과 주장은 완전히 죽여서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 놓은 요것만이 하나님께서 이제 하나님께서 들고서 무궁세계에 가져갑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기본구원을 말한 것 아닙니다. 건설구원을 말한 것입니다. 기본구원은 다 얻었지마는 건설구원은 제단이 돼야 이제 하늘나라 가져가 가지고 쓸모가 있는 것이지. 이러니까 자기는 완전히 죽여서 부인하고 자기라는 것은 주님의 소원하시는 대로 피조물을 살리기 위해서 피조물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제 바쳐진 그것만이 하늘나라에 필요가 있다 그말이오. 이제 택한 자라도 그런 것 없는 것은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 하늘나라에 가서 아무 소용은 없어요. 쓸모는 없어요, 그저. 어데든지 가 이래 가서 가만히 섰지, 그저. 여기에 삐꿈하게 들여다 보면 ‘여기 오셨습니까?’ 섰으면 ‘이것 좀 해 보십시오.' 생전 세상에서 안 해 봤는데 할 수가 있소? 세상에서 안 해 봤으니까, 거기에는 뭐 거기에는 이 과학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거기에는 하나님의 명령 일하에 순종하는 그 일밖에는 없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 일밖에 없으니까 세상에서 순종을 해 봤어야 하지? 세상에서 순종을 한번도 안 해 봤으니까 이제 거기 가서는 할 일이 없어. 여기 있으면 ‘이것 좀 해 보십시오.’ 못 하는 거라. 또 `이거 나는 가만히 놀고 안 됐는데 뭐 도울까 싶어 왔으니까 뭐 도울 게 없습니까?’ ‘예, 이것 좀 해 보십시오.' 못 하는 거라 말이오. 아무 데 돌아다녀도 할 게 없어. 그 하는 기능은 세상에서 연습하고 세상에서 배워야 되지 세상에서 배우지 안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서 연습하지 않은 것은 그 나라에서는 안 돼요. 그라니까 그 사람은 여기에 가도 소용 없고 저게 가도 소용 없으니까 그거는 무용지 인간으로 그저 먹고 놀기만 실컷 놀지 소용 없어. 그거 좋은 게 아닙니다. 보면 그만 여기에 현역 일꾼들이, 현역 일꾼들이 그만 후방 일꾼이 되면 그만 죽소. 우리는 좋은 것 있어. 정년퇴직이라고, 목사님들이 지금 그저 경험이 인제, 경험이 있고 체험이 있고 참 이제는 쓴것 단것 다 알아 가지고서 인간들의 심리 알아서 일을 할 만하고, 일을 할 만하면 그만 정년퇴직이라. 정년이 몇 살이지? 칠십이 정년퇴직이라? 그라니까 나는 정년퇴직 같으면 벌써 퇴직된 지 사 년 돼야 되러구만. 나는 칠십너이니까 사 년 됐어야 돼. 한창 일할 수 있을 때 그만 정년퇴직이라. 정년퇴직만 되면은 그만 정년퇴직 한 목사님들은 그만 삶아놓은 나물같애. 그거 이상해요. 모든 사람들이 다 해. 팍 늙어버려. 그만 팍 무능하고, 그라고 그만 일찍 죽어버리고. 이러니까 일하는 것 좋아요 일 안 하는 게 좋아요? 일 안 하는 게 그게 참 고통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쓸모가 없어. 그러니까 하늘나라에는 이 제단에 속한 것, 제단 성질에 속한 것만이 가져가지 그 외에거는 가져갈 필요가 없어. 또 성전만이 가져가지 성전 아닌 거는 소용이 없어. 그것 가져가서 뭐할라고? 그 속에 사욕이나 가지고 있고 야욕이나 가지고 있고 뭐 그런 것 가지고 있는 그런 것 가지고 뭐 할라고? 그안에는 하나님이 가뜩 차 가지고, 하나님이 가뜩 차 가지고, 마치 콩자루를 여기에도 꾹 뚫어도 콩이 조르르 저게도 꾹 뚫어도 콩이 조르르 하는 것 모양으로 하나님은 그 속에 계셔서 이리도 하나님이 썩 나오고 저리도 하나님이 썩 나오고, 하나님의 전지가 나오고, 하나님의 전능이 나오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오고, 하나님의 완전이 나오고, 그거라야 하늘나라에 쓸모가 있지 그것 아니면 쓸모가 없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제 성전을 가져 가십니다. 제단을 가져 가십니다. 그다음에는 뭐입니까? 경배하는 자. 경배하는 이거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 하나님만 하나님만 섬기는 자, 경배는 이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경배하지 안하고 피조물 어떤 것도 섬기지 안하고 하나님 한 분만 섬기는 것. 경배하는 것은 숭배성을 가리켜 말한 건데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는 것, 한 분만 좋아하는 것, 한 분만 두려워하는 것, 하나님 한 분만 높이는 것, 하나님 한 분만 믿는 것, 하나님 한 분에게만 맡기는 것, 하나님 한 분의 지도만 받는 것, 하나님 한 분에게만 순종하는 것, 하나님 한 분으로 전부 삼는 것, 이것이 이제 경배하는 자라 그말이오. 그 사람만 쓸모 있어요. 그것 아닌 건 쓸모가 없어요. 그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가 생각해도 그것 아닌 거는, 교회도 그것 아닌 거는 부득이 내비두지마는 실상 쓸모가 적어요. 교회도 보면은 그래 된 요소가 조금 있는 그걸 쓰고, 그 요소는 쓸수록이 보배 아닙니까? 경배하는 자. 그런데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곧 두 증인이요 두 감람나무라. 그것이 두 증인이요 두 감람나무라. 또 그것이 두 촛대라. 그게 뭐이냐? 그렇게 성전으로 살고 제단으로 살고 하나님만 경배하는 자는 사로 사는 그것이 세상에 빛이요, 그것이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는 사람이요, 그것이 또 세상에 등대라, 두 증인이라, 두 감람나무라. 자꾸 앞으로 갈수록이 일천 척 흐르면은, 일천 척이 내려가니까 발꿈치에 오고 일천 척이 내려가니까 무릎에 오고 일천 척을 내려가니까 허리에 오고 일천 척 지나가니까 뭐라 했습니까? 드부렁 떠 버린다 그말이오. 그러면 천 년 가니까 더 낫고 만 년 가니까 더 낫고 그것이 두 감람나무라. 감람나무는 무성한 성장을 가리켜서 성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제 그것이 성장이라. 그러니까 그것이 증거를 하는데 증거를 할 때 그뭐 권세를 어디다 줘 놨느냐 하면 입에다 줘 놨어요.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 성전 제단 경배하는 자 그자에게 준 권리가 어데 있느냐 하면, 마귀는 꼬리에 권리가 있었는데 이 성도들은 입에 권리가 있어. 입에 권세를 줘 가지고 비 오지 안하게 하면 비가 안 오고 비 오게 하면 비오고 또 무엇이든지 그 입에서 나오는 불이 나와 가지고 태워버리고, 이 말은 입에, 이렇게 사는 자의 그 입은 전능의 입이요 전지의 입이라. 그러니까 실은 예수님이 오셔서 다 대속하시고 난 뒤 이 세상 것은 이런 성도들, 성전되고 제단되고 경배자되고 참 두 감람나무 되고 두 증인 되고 두 촛대가 되는 이분들의 입을 따라서 우주는 움직입니다, 여러분들. 이분들의 입을 따라서 우주는 움직여요. 세상도 이분들의 입을 따라서 움직이요. 그것을 다른 데는 성도의 기도가 천사로 더불어 함께 올라가서 금단에서 거기서 부으니까 가게서 불을 담아 가지고 땅에 쏟으니까 땅에 뭘로 나타났소? 뇌성, 번개, 지진,음성, 녜. 뇌성은 웅장한 것으로 말했소, 두려운 것. 번개는 성령의 역사를 말하고, 음성도 하나님의 자비를 말하고, 또 지진은 그뭐 지진은 오늘 섰던 게 휘떡 뒤벼지고 그저 강한 강대국이 휘뜩 없어지고, 일본이 그때에 세계에 삼대 강국에 거기 들었다 했지마는 실은 마지막에는 제일 강대국 될라고 그때 전쟁을 제이차 전쟁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렇지마는 그 입에서 ‘일본 나라 저걸 멸해 주십시오’ 하니까 휘뜩 뒤벼졌다 그말이오. 그래 이러니까 그 입에다가 권세를 줘 가지고 입에서 불이 나와 가지고 태우기도 하고 비오지 않게 하면 비가 안 오기도 하고 또 비 오게 하면 비가 오기도 한다. 그것은 뭘 가리켰느냐? 엘리야의 것을 인용한 것인데, 그렇게 어떻게 사신 우상이 돼도 그 입에서 나온 그 말로 말미암아 우상의 세력을 담박 깨뜨리고 확확 뒤벼뜨려서 복음화시킬 수가 있다 하는 걸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전되고 제단되고 경배하는 자 되면 이것이 곧 가면 갈수록 무성할 장생불사, 이제 영생하는 두 감람나무요 두 촛대요 또 두 증인이라. 이러니까 이것을 세상이 미워서 이래 하는데 세상이 와 가지고서 싸우는데 그들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서 이긴다. 성도들은 지고 성도들을 이긴다 그말은 무슨 말이요? “성도들은 지고 그들은 이긴다” 그 이기는 것은 세상법으로 이긴다 말이요 천국법으로 이긴다 말이요? 세상법으로 이겨. 세상법으로 이기니까 성도들은 천국법으로 이겼어요 못 이겼어요? 성도들은 천국법으로 이겼어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놓고 세상법으로 그들은 이겼고 예수님은 또 천국법으로 이겼거든. 누가 이긴 것이 바로 이긴 것입니까? 예수님이 바로 이겼어. 그러니까 그들이 이긴다는 그말은 섭섭하게 놀라지 말아요. 그들이 이기는 것은 그들의 이기는 법으로 이겨야 이제 성도들이 하늘나라에 이기는 법으로 이겨진다 그말이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기는 법으로 이기지 안하면은, 이기지 못하면 그들도 이기지 못해요. 그들도 이기지 못하면 헛일이라. 그러기에 그 다니엘을 사자구덩이에 집어넣어 놓고 이제는 됐다 할렐루야 하면서 잔치하고서 기뻐하고 즐거워했는데, 자, 그러면 그들이 이겼소 안 이겼소? 그들 법으로 이겼소. 이겼는데 그 뒤에 또 뒤에는 다니엘은 또 무슨 법으로 이겼소? 하나님 법으로 이겼어. 그러니까 언제든지 우리 하는 일은 마귀하고 시비를 붙으면 말이요, 마귀하고 시비 붙으면 마귀가 먼저 이기고 그다음에 성도가 이기는 줄 알아야 됩니다. 마귀가 이기는 걸 보고서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했느냐 안했느냐 그것만 문제지 그것만 떡 되고 나면은 마귀가 이기면 ‘옳지, 마귀가 완전 승리해야 봐라 하고서 하나님이 그다음에 완전 승리가 나온다.’ 하는 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기억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이 세상에는 주님의 재림 때까지 신약교회 시대에는 이거 많은 예수교가 있으니까 이제 안 믿는 이방들은 생각하기를 ‘이것 다 예수교다. 이것 다 기독교다. 다 예수교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마는 예수교 안에는 참, 예수교 안에는 아주 하나님이 택할, 그물로 가지고 모든 것을 훌트려 넣어 가지고 좋은 것은 가려서 다 그릇에 담고 나머지기는 다 내버리지 안했습니까? 이것 모양으로서 알곡은 모으고 쭉정이는 내버리는데 이 쭉정이, 말하자면 쭉정이, 또 버릴 것, 깨끗지 못한 것 버릴 것, 그런 것은 많고 알곡은 적다. 이렇게 이 거짓 예수교, 또 껍데기 예수교, 그런 가짜 예수교는 많고 진짜 예수교는 적다. 그러면 그 가짜 그걸 뭐 할라고 두느냐? 가짜는 진짜를 보호한다. 그러면 보호하기 위해서 그것을 뒀다 그말이오. 하나님께서 자꾸 발에 보선 신고 덧보선 신고 덧보선 신고 자꾸 덧보선 신고 구두 신고 하는 것 모양으로 하나님께서 성전 제단 경배하는 자를 이렇게 보호하기 위해서 참 기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먼저 이 세상적으로 다 이렇게 성전에서 이렇게 해 나가는 껍데기 있고 그 속에 알맹이 진짜는 성전이 돼야 되고, 제단이 돼야 되고, 경배하는 자가 돼야 합격이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에 그렇게 ‘저래 믿어도 되는데, 저래 믿어도 되는데, 저래 믿어도 뭐 부자만 되고, 저래 믿어도 영광만 있고, 저래 믿어도 존귀만 되고, 자꾸 장로만 되고 목사만 된다’고 그래 생각지 말라 그거요. 그저 우리가 가치를 정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과 진리대로 됐느냐 안 됐느냐 거기서 가치를 정해야 되지 그 외에 뭐 세상에 눈에 보이는 데 그것을 가지고서 가치로 정하지를 말아야 합니다. 자, 그러니까 그런 걸 보고서, 여호와의 증인, 여호와의 증인 그것도 괜찮아요. 여호와의 증인이 우리 나라에 와 가지고는 들어왔지마는 손해를 못 보였거든. 해를 못 보였어. 지금도 있지마는, 여호와의 증인이 서부교회와 가지고서, 서부교회 와서 여호와의 증인이 와서 하나 달라드는데 그 사람들이 있다가 ‘그라면 우리 교회’ 그때 내가 조사 때인데. 조사님하고 한번 와서 말을 하자고 이래요. 그래 왔어. 그전에, 그전에 여기 한국에 제가 서부교회 부임한 지 한 달포 되니까 여호와의 증인이 하나 왔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한 삼십이 년 전인데. 삼십이 년 전에 그때 여호와의 증인이 참 처음 들어올 때입니다. 그때 와서 한번 만나고 그 뒤에 뭐 여호와의 증인 말을 들었지마는 못 만났는데 그 뒤에 한번 왔어요. 한번 와서, 그 뭣을 말하기 때문에 그래 나는 아닌 줄 알았어. 그래 그걸 ‘자, 그라면 요 성구를 씁시다. 요 성구에 대해서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요거는 요렇다' 해석을 해. `요거 당신들 말하는 것을 당신 손으로 쓰십시오. 요 성구는 요런 해석이라 하는 것을 쓰십시오. 또 나는 요 성구를 요런 해석이라고 쓰겠습니다.’ 딱 쓰고, 쓰고 ‘그라면 요것을 이제 가서 성경에 한번 대조를 해 봅시다.’ 그래 그 사람 써놓은 걸 성경 다른 성구를 찾아 가지고서 ‘성구에 이래 놨으니까 당신이 말한 이거와 이 성구는 어찌 됩니까?’ 자꾸 들이 대니까 모든 성경이 다 그렇지 않다고 틀려버리고 나니까 그래 말하기를 ‘이거는 내비두고 딴걸로’ 그래요. `아니 이것부터 판정을 지워서 이거는 당신이 틀렸든지 내가 틀렸든지 판정 지우고 나서 그다음에 갑시다.’ 이거는 참 찝게한테 뽈끈 찝혀놨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이라니까 그래 그만 자꾸 ‘이것부터 판정합시다’ 하니까 그만 달아나요. ‘말 못 하겠습니다.' 하고서. `자꾸, 딴것 말하자 하는데.’ 그라며 가버려. ‘가십시오.' 그라고 난 뒤에는 다시 안 와요. 지금도 거기 있어도 서부교회 교인이라 하면 별로이 안 옵니다. 우리는, 내가 뭣 말하다 그리 나갔노? 옳지. 껍데기는 알맹이를 위해서 있어요.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이 소련에 가 가지고서 예수교를 전해서 거기서는 뭐 소련이 지를 못한대요, 그것. 그것 다 생명 내놓고 이러니까. 그런데 안에 들어가 보면은 교리가 맞지 안해요. 교리가 맞지 안하고 그 사람들 구원은 천년왕국 구원인데 천 년 후에는 죽는대요. 천 년 후에는 죽고 천 년만 살아요. 천 년만 사는데 그 천 년 사는 것은 육체가 천 년 산다는 것 이것을 말해요. 그라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이제 죽으면 그다음에는 그만 끝이야. 안 죽어야 된대. 그러니까 그 사람은 안 죽는다 해요. 여호와의 증인은 안 죽는다 합니다. 안 죽고 그만 그대로 천 년 산다. 암만 전쟁에서 그들이 칼로 쳐도 안 죽는다. 그 교리를 배워 놓으니까 전쟁 반대를 담대히 합니다. 그래 가지고 또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게 만들어요. 이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 뭐 껍데 속에 알맹이 들었고, 알맹이 속에 속알맹이 들었고 또 자꾸, 이래 가지고 속알맹이를 말하노니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그것만 측량하고 그 나머지 밖마당은 다 이방인에게 이렇게 이용되고 저렇게 이용당하도록 그건 버려둔 것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전 또 제단 경배하는 요 셋을 완성을 해야 됩니다. 완성을 해야 됩니다. 이치에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으면 좀, 뭐라 하노? 맞으면 아멘 더러 하라 그말이오. 다른 데는 아멘 하니까 참, 춤추는 사람이 춤출 때 ‘아 좋다’ 이라면 좀 기분이 날 건데 다른 사람 설교해도 여기는 아무 말도 한 마디도 안 하고 맞는지 안 맞는지 꾹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자, 아멘 해 봅시다. 아멘! 아멘! 아따 아멘 소리 야무지다. 우리는 성전 밖마당이라는 것을 이해를 해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세에는 뭐 별별, 예수교인데 정치 앞잡이 많아요. 정치 앞잡이 많은데 실상에 사실 기독교는 정치와 기독교는 분리해 가지고서 그 딱 갈라져야 되는 것이지 한테 합하면, 정치 속에 교회가 들어가면 정치가 망하고 교회 속에 정치가 들어오면 교회가 망하고 이거는 서로 상극이기 때문에 분리해서 해. 그러니까 기독자가 기독자로서 국민의 충신을 해야 됩니다. 옳은 국민 노릇을 아주, 세상의 빛의 국민의 빛노릇을 하고 국민의 양심 노롯을 하고 이래 하지마는 교회라 하는 것은 이건 거룩한 하나님의 몸이기 때문에 이거는 세상 정치하고 타협할 그런 것이 아니라 그거요. 그런데 요새는 또 이제는 교회하고 이 사회하고는 조화를 해서 한덩어리가 돼서 들어가고 나오고 이래 가지고 한덩어리가 돼야 된다 하는 이것이 대단한 세력으로 지금 강력하게 나가는데 그것을 또 성경에 말을 해 놨다 그거요. 여기도 보면 성전 밖마당이라 하는 것을 해 놨는데 그것을 또 다른 성경에 보면은 많이 해 놨습니다. 그걸 요번에 될 수 있으면 증거를 할 것입니다. 녜, 그래 오늘 오전에는 자, 그라면 복습 좀 했고. 우리가 될 것이 우리가 뭐이 돼야 되겠느냐? 우리가 될 것 그게 요지 아닙니까? 우리가 될 것. 우리가 뭐이 되겠느냐? 성전 밖마당 되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성전 밖마당이 되고 싶은 사람 저 뒤에 손 한번 들어 봐요. 여기도 한번 들어 봐요. 그 사람은 좋은데? 세상하고 한덩어리 되고, 세상 앞잡이 되고, 세상에 일꾼 되고, 서로 주고 받고 이래 가지고 아주 좋은데, 세상에서 살기에 뭐 아주 뭐, 주일을 범해도 관계 없고, 주일날 시험쳐도 관계 없고, 어제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서 ‘주일날이 내가 지금 그 준비를 하느라고 뭐끼y 해 기다렸다 하더라? a렸는데 주일날 시험을 치는데 이 시험을 쳐야 됩니까 안 쳐야 됩니까?’ 그거 제 짐을 제가 지고 가야 되지 나한테 지일라고, 내가 그런 걸 모를 사람인가? 지금 뺄갱이한테 예수를, 뺄갱이 앞에도 예수를 믿는다 해야지 예수 안 믿는다 소리 하면 안 된다 이래 가르쳐 놨더니마는 빨갱이가 와 가지고서 잡아 가지고서 ‘너 예수 믿을래 안 믿을래? 이놈아 말해라.’ 그랄 때 나한테 데리고 와 가지고서 ‘목사님 내가 예수 믿는다 해야 되겠습니까 안 믿는다 해야 되겠습니까?’ 그라면 내가 뭐라고 대답할 거야? ‘그거는 네 신앙으로 네가 대답하고 나한테 예수를 믿을래 안 믿으래 물으면 내가 내 신앙은 내가 대답하지마는 네 신앙을 어찌 내가 대답하겠노?’ 그럴 것 아니겠소? 그래 내가 어제 그 학생에게 하기를 ‘그것은 학생이 어떻게 배웠든지 이제까지 배운 걸 어째 배웠는지 그대로 하지.’ 성경에 어떻게 가르치는가 묻기 때문에 ‘성경에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어.’ 이라니까 ‘예, 알겠습니다.’ 이랬는데 어떻게 할지 몰라. 그래야 거기서 뭣이 마찰이 있고 투쟁이 있고, 자 투쟁이 있어야 승리가 있지 투쟁이 없으면 승리를 못 받아. 면류관 못 얻어요. 이러니까 성전 밖마당은 아무도 되기 싫은 모양이지. 그라면 자, 성전되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이소. 성전되고 싶은 사람? 녜, 다 되고 싶네요. 옳습니다. 성전 돼야 됩니다. 또 제단되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제단도 다 되고 싶고. 또 경배하는 자 되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녜, 경배하는 자 다 되고 싶고, 다 되고 싶어. 이 서이만 되면 돼요. 그러면 이 서이가 되도록 주력을 하고 노력을 해요. 애만 쓰면 우리가 됩니다. 우리가 성전돼야 되고, 또 제단돼야 되고, 그 가운데 경배하는 자 돼야 되고, 이 셋만 되면, 셋이 되면은 그 사람이 뭐라 했지요? 셋이 된 그 사람이 뭐라요?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 두 증인. 증인이라니? 그것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구원을 증거하고, 또 지옥을 증거하고, 영광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증거하고, 하나님만 알고 계시는 것을 그걸 세상 사람들에게 다 알려 준다 그말이오. 다니엘이 파사 나라에서 그렇게 하나님 증거한 것처럼. 그 사람들이라야 증거가 돼요. 증거할 자격이 있어요. 그라고 그 권세는 뭐 어데 꼬리에 있다 했소 팔에 있다 했소? 입에 있어. 입에 있어. 그 입은 전능의 입이라. 말한 그대로 돼요. 뭐라 해도 말한 그대로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전에 배운 대로 셋 알맹이를 말했으니까 셋 알맹이 단단히 준비합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제 기도해요. ‘내가 소유와 몸과 생명 다 바쳐서 이제는 하나님의 성전되겠습니다. 이제는 제단되겠습니다. 이제는 경배하는 자 되겠습니다.’ 요 셋이 되기 위해서 이제는 다 기울여서 결심해요, 결심. 결심을 해요. 이제는 결심하고 여기서부터 성전 생활을 계속해요. 여기서부터 제단 생활을 계속해요. 여기서부터 이제 하나님을 경배하는 생활을 계속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