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오세티아의 위치
1991년 소련이 붕괴되자 조지아(원래 그루지아라는 러시아식으로 불렸지만 대러감정이 점점 안좋아지자 그루지아 정부는 러시아식 이름인
그루지아대신 영어식인 조지아로 불러달라고해서 우리나라에서의 정식명칭도 조지아로 바뀜...미국에도 철자와 발음이 똑같은 조지아주가
존재해서 2008년 러시아군이 조지아에 진주했다고 기사가 났을 때, "난 조지아 주에 사는데 뉴스에서 러시아군이 쳐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탱크나 전투기나 군인은 단 한명도 안보이는데 어떻게 된거냐?"라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실제로 있었다고한다(...))영토내에 있던
남오세티아가 분리독립을 주장하자 조지아는 즉시 군대를 파견...약 1년에 가까운 내전이 발생했고 러시아의 개입으로 츠힌발리 지역을
러시아와 공동관리하기로하고 정전을 맞게됩니다.
이때부터 남오세티아는 러시아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했고 조지아는 소련 최후의 외무장관이였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에의해 친 서방정책을 피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불안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조지아는 카스피해와 중앙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지나는 중요한 통로로서 러시아의 필살기 밸브 잠그기에 대항하기 위해
서방 세력들은 조지아를 지나는 BTC송유관등의 시설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였습니다.
03년, 장미혁명으로 셰바르드나제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미하일 사카슈빌리는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한 적도 있는 친미파에다 반러
민족주의자로서 그는 EU에게선 조지아의 NATO 가맹 합의를 이끌어내고 미국에게서는 거액의 군사 원조를 받아 내는데 성공한다.
06년, 남오세티야 자치주의 독립찬반투표에서 잠재되어 있던 문제가 터진다. 선거 결과는 독립파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조지아 정부는
이를 "러시아에 의한 병합음모"라 비난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다.
08년 초에 있은 조지아군과 USEUCOM(미 유럽군) 합동의 <Immediate Response 2008>에 심기가 불편해진 러시아는 4월에 MiG-29로
조지아 군의 UAV를 격추시키더니, 7월에 조지아 국경 부근에서 <Caucasus Frontier 2008>이라는 군사훈련을 강행, 게다가 훈련 종료후에도
병력을 철수시키지 않아 양측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진다. 서로가 군사행동을 계속 경고하는 과정에서 접경지역에서는 남오셰티아 무장조직과
조지아 정부군간의 소규모 충돌과 포격이 지속,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서방 정부들 사이에는 곧 닥쳐올 올림픽을 앞두고 어느쪽도
본격적 충돌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했습니다. 그러나 그 섣부른 기대는 결국 최악의 형태로 무너져버렸습니다.
끝내 참지 못한 조지아의 샤카쉬빌리 대통령이 전 세계가 온통 올림픽에 시선이 쏠린 틈을 타 잽싸게 남오셰티야 자치정부를 박살내면
러시아도 신속히 개입 못하겠지? 하고 전면적인 군사작전을 단행했으나 이미 이 단계에서 조지아는 러시아의 낚시바늘에 낚인 상태였습니다.
올림픽 개최식장에서 조지부시 미국대통령에게 직접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푸짜르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는 8월 8일, 조지아군의 포격이 시작되어 평화유지군으로 있던 러시아군 수명이 사망하게 된다. 러시아군은 바로 반격을 시작했고 러시아군과 조지아군은 남오세티야 수도 츠힌발리 시내로 진군, 본격 충돌이 시작되었다.
전쟁의 결과는 조지아의 참패였다. 당시 러시아가 투입한 병력수량은 주둔중이던 조지아군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압도적인 차이의
공중, 기갑, 해상 전력으로 10일, 츠힌발리를 장악했고 여세를 몰아 조지아 국경을 월경, 12일에는 거점도시 고리(Gori)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점령하여 후퇴하는 조지아군의 허리를 끊어버렸다. 동시에 압하지야 방면으로도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어 조지아군은 이렇다할 저항도
못하고 패퇴하게 된다.
인터넷 역시 공격대상이 되었는데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 전자전 부대의 소행으로 보이는 조지아의 인터넷망에 대대적인 해킹과 디도스 공격이
시작되어 인터넷망이 마비되었다.
또한 이렇다 할 공중전력은 이스라엘에서 개량사업을 받았던 Su-25 몇 대가 전부였던 조지아군은 개전 초기부터 러시아군이 제공권을 장악하면서
지상부대는 일방적인 학살을 당했다. 러시아군은 자국의 Su-25와 Mi-24를 동원하여 조지아군의 기갑부대를 섬멸하기 시작했으며 Tu-22M으로
수도 트빌리시의 대통령궁과 주요 군사지역과 공군기지를 폭격하여 조지아 내각은 한곳에서 전투지휘를 하지못하고 소련 시절 건설되었던
여러 벙커들을 전전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NATO 회원국이 아님에도 조지아는 파격적으로 나토의 항공감시정보처리소에서 러시아 공군을 감시할 수 있었으며,
미국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에서 상당한 양의 방공무기들을 제공받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에 러시아군은 Tu-160을 발진시켜 Kh-555 단 두발로 중앙방공망을 통채로 날려버림으로서 개전 2일만에 조지아 방공망을 마비시켰다.
제공권은 물론이고 러시아 흑해 함대가 해상봉쇄를 가해 제해권까지 장악하면서 조지아군은 모든 면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 심지어
러시아 해군 소속 프리깃 한 척이 함대함 미사일도 아닌 함대공 미사일로 조지아 해군 함정들을 유린하기도 했다. 뭐 애당초 조지아 해군
소속 함정들은 대부분 고속정 수준의 소형 함정들 뿐이었지만...
러시아군은 수도 트빌리시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장악했고 조지아군은 가용할 수 있던 모든 해상전력인 미사일 고속정 5척이 해상봉쇄를 뚫기위해
접근하다 북해 함대 소속 프리깃 한척에게 2대가 격파당하고 퇴각하고 만다. 결국 미군 원조물자 야적장이 있던 군항 포치(Poti)시를 점령당하자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제안한 화평교섭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14일에 조인된 교섭으로 조지아는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둘다 잃게 된다.
화평교섭 이후로도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두 괴뢰정부군을 앞세운 러시아군의 진격은 계속되었고 사실상의 전투 종결은 미국 정부 특사인
국무장관 라이스가 트빌리시에 도착한 16일이 되어서였다. 당시 러시아군은 트빌리시 55km 앞까지 진군한 상태였다.
결국 미 제6함대와 NATO 혼성함대가 흑해로 들어와 당시 포티 항구를 봉쇄하던 러시아 흑해 함대와 대치하는 상황에 이르자 러시아는
프랑스의 화평교섭을 받아들이고 종전을 선언한다.
승전국인 러시아는 남오세티야의 전영역을 신속하게 접수하였다. 종전협상이 끝나기 전에 조지아 내에 모든 가용전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사용가능한 무기들을 모두 압수하였다. 살아남은 T-72전차는 물론이고 Su-25와 각종 군사장비,러시아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 BUK-1M, OSA까지
모조리 압류한다. 또한 미군과 조지아군의 합동훈련이 끝난뒤 많은 양의 미군의 군 장비들이 포치 항구에 집결해있었는데 러시아군은 이를
손실없이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포로가 된 험비
덕분에 러시아군은 미제 군수품으로 잔치를 벌였다. 러시아군은 미제 헬멧과 미제 BDU 군복으로 갈아입고 탱크(우크라이나에서 구입한 T-72전차) 등
가져갈 수 있는 모든 차량을 쓸어갔다. 또한 서방제로 개량된 각종 전자장비를 압류함으로 상당한 이득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은 조지아 해군 군함들은 모조리 파괴하고 해군 사령부 물품들까지 탈탈 털어갔다.
흔한 노획 물품
M4 소총도 대량으로 노획해서 일부는 노획 전시회로, 나머지는 전부 불태워서 폐기. 이스라엘제 방공미사일시스템인 파이썬이나 Dervy을 장착한
SPYDER방공 체계도 노획하고 심지어 미군의 험비까지 털었다. 총부터 탱크까지 싹 노획해왔다. M16이나 M4 탄창 같은 건 박스만 까 보고 그냥
내무실에 버리고(…) 갔다. 대신 구소련제 군장이나 총기는 죄다 탈탈 털어간 듯. 그리고 버리고간 M16과 M4는 후에 조지아군이 사용하는걸
막기 위해 기념품으로 챙긴걸 제외하면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총기들을 모조리 기름붓고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리고 일부 주둔지엔 "Aucle Sam thenks for uniform for russian airborn" 이라고 낙서까지 하고 떠났다.
(해석하자면 미군님들 옷 고마워요 - 러시아 공수부대가)
또한 개전 초기 제공권과 제해권이 완전 장악당하자 러시아군은 일방적으로 조지아군을 몰살시켰고 조지아군은 가진 자산을 모두 버리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은행까지 털었다고 한다.
신속한 퇴각으로 조지아는 병력손실은 최소한으로 막았지만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주요 군사시설이 모두 파괴되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사
용가능한 무기들이 모두 러시아군에게 압류되면서 사실상 무장해제 당하였다. 그리고 조지아군이 그냥 무기들을 길가에 버리고 떠난덕분에
러시아군은 대량의 조지아군 물자를 획득할 수 있었다. 가령 80대 가량있던 조지아군의 T-72 전차중 파괴된 건 겨우 20대 가량에 나머지는
그냥 버리고 도망간 덕분에 러시아군은 60여 대의 T-72전차를 획득할 수 있었고, 그 중 40여 대는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을정도로 상태가 A급이었다.
사실 이 전쟁은 좁게 봤을때 사용된 탱크와 전투기가 몇대가 어땠고 하는 군사적 문제보다는 전쟁을 전후하여 벌어진 정치적 여파가 훨씬크고,
그 정치싸움의 전초전이라고 할수 있다.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의 주된 전략 중 하나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나라들에 너네 이제 한물 간 러시아랑 놀지 말고 우리편 해라!라는 추파를
던지는 것이었다. 즉, 러시아가 이전 자기 땅덩어리들에 영향력을 찾아서 미래에 다시 강대국이 되어 미국을 위협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국가들에 막대한 양의 경제지원은 물론 러시아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군사부문에서도 상당한 지원을
해준다. 조지아는 역시 그런 대러시아 포위망의 일부로서, 장기적으로는 해당 국가들에 미군기지를 건설해서 유사시 러시아군의 도발까지
막아준다는 그런 차원의 배치였다. 그렇게 하여 러시아가 만에하나 이전같이 미국을 위협할 거대한 가상적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하는대...
그러나 이 전쟁을 통해 멀리 있는 미국만 믿고 까불면 가까운 러시아 주먹에 맞는다는 사례가 되버리면서, 주변국과 이러한 정책을 펼치고
있던 미국등에게 강력한 메세지를 던진셈이 되었다. 사태 직후 러시아 국방장관의 발언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TV에서 대략 주변국들이
우리한테 어떤 대우를 받는가는 그들한테 달려있다.는 연설을 한다. 즉, 이전 독립국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서
'조지아 꼴 나기 싫으면 우리한테 알아서 기어라.'는 의미.
실제로 이때를 기점으로 친미정권이 들어서있던 구 소련권 국가들이 투표에서 패배하여 친러파로 돌아서거나, 주변 군소국가들이 러시아에
유화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확연해졌다. 게다가 미국도 자기네 경제, 군사적 상황이 이를 그냥 눈뜨고 지켜보게만 하는 상황이 되버렸고...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 공화국이라는 괴뢰정권을 수립함으로서도 장부상으로도 남는 전쟁을 했다. 그러나 사카슈빌리 정권을 전복시키지는
않았고 조지아와 서방의 밀월관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참고로 당시 미국의 부통령 딕 체니는 이 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와 싸우자!라는 전쟁 구상을 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못했다.
또한 러시아군은 비록 승전을 했지만 많은 전술적 단점과 부족한 역량을 노출했던 58군 사령관과 보스토크 대대의 장교들을 모조리 짤라버렸다.
조지아군이 미국의 무기까지 지원을 받으면서 싸웠지만 결국은 대패했네요
첫댓글 이런 글은 패배의식버리자가 잘하는 말인뎀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