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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족 =丹國은 예맥족의 일부로 료서= 섬서성 감숙성으로 "예맥족 = 험윤족"으로 설유/궐유족으로 일체 현재 몽고족입니다.
만리장성 북부로 말갈족 + 여진족 퉁구스족으로 만주 현 흑룡강성 만주평원으로 滿洲 섬 주 삼수 눈수 속[말]수, 흑수로 둘러싸인 사방 3000리급 州로 "滿洲" 로 내 滿洲고 현 러사아 흑수 위의 외만주/ 연해주 사할린 섬 = 鹿屯島는 1860년 아편전쟁으로 북경조약에서 淸國이 러시아제국에 할양한 땅이 외만주/ 연해주/사할린섬입니다.
거란[丹國 契卵 = 巨卵]족은 예맥족 과 함께 재서 즉 마한 마조선으로 내외몽고, 섬서성 감숙성으로 鮮卑족은 "예맥 중 예 와귀 =魏/燕 등으로 불린 재서 "대륙 남으로 남하한 족"이 선비족으로 한민족 구한족중 "鮮卑"는 재서 西夷족입니다. 들어가지 않는 족이 曹魏 曺國의 좃국 曹魏로 위만 倭鬼 胡盧 동호로 들어온 연왕 盧[관] 胡盧새끼입니다.
거란 = 丹國, 契卵, 巨卵족으로 2자 국명 족명은 우리 古里의 2자국명으로 기이타이 끼이타이라고 합니다.
《회남자(淮南子)》의 주석(注)에서 이르기를 동쪽의 이(夷) (즉, 동이(東夷)는 아홉 종이 있다 하였고 《논어정의(論語正義)》[92]에 이르기를 구이란 첫째는 현토(玄菟), 둘째는 낙랑(樂浪), 셋째는 고려, 넷째는 만식(滿餙), 다섯째는 부유(鳬臾), 여섯째는 소가(素[93]家), 일곱째는 동도(東屠), 여덟째는 왜인(倭人), 아홉째는 천비(天鄙 )라 하였다.
《해동안홍기(海東安弘記)》[94]에 이르기를 구한(九韓)의 첫째는 일본(日夲), 둘째는 중화(中華), 셋째는 오월(吳越), 넷째는 탐라(乇[95]羅), 다섯째는 응유(鷹逰), 여섯째는 말갈(靺鞨), 일곱째는 단국(丹國), 여덟째는 여진(女真)[96], 아홉째는 예맥(穢貊)이라고 하였다.
한민족 문자발명국으로 우리 문자를 모르니 왜? 2자 족명 국명법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구한족 구환족=구천족으로 이는 환국 = 천국으로 카자흐스탄 天山[산맥]으로 알타이=알태 金太로 우리말은 알태지 알타이가 아닙니다 즉 한문한자=一文一字로 취음어라고 하나 아니고 국명법으로 국호 로 古 나라=那羅를 朝鮮으로 古里로 "나라이름 리"로 高麗는 고리 고울 려이나 나라이름 리[里]의 전음법 리=麗다. 句麗가 高麗로 졸본주=遼州로 료하-遼河는 료주의 河로 우리 역사이야기에는 주로 료하 =료해로 黃州는 섬서성 내몽고지역으로 사르센 사르 黃으로 살수 황하의 일 수로 살수도 황주의 하=黃河 북에서 남으로 그리고 黃海=遼海는 北海로 중국 짱개는 북방경계가 황하=료하 海로 北海라고 부른 강이 황해=북해 료해로 한민족사와 중국정사의 이야기중 충돌이 문을 썼는데 우리는 료주의 하=료하[遼河]로 멀 얼 光 ㅁ = 田 光田=黃으로 황주의 하= 黃河입니다.
만리장성 료녕산맥으로 연산은 료녕산입니다 즉 북으로는 대흥안녕산맥이 그로 아래로는 료산산맥 = 현 태행산맥이 뻗어 있고 료주의 료산은 산서성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중국 고지도 중공 아새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쉽게 중국 고금 지명을 알 수 있는데 왜 중공 중국 고지도의 지명들이 삼국유사 삼국사기 신.구당서 등의 동이전 에는 전부 중국 대륙의 동쪽 삼국 고구려 백제 신라는 재동 즉 북방 = 섬서성과 산서성이 고구려 동서 3100리 남북 2000리 사방 6200리로 신라 낙랑군 의 재동으로 동서 1000리 남북 3000리 사방 3000리 백제를 멸하고 封한 더한 동서 900리 남북 1800리 대략 사방 2000리는 하남성 호북성 호남성 으로 全州와 武州로 웅주는 변한 백제 남부여= 사비성은 오월로 절강성+복건성으로 熊州라는 곳입니다.
중국 탐원공정중 말실수 황하를 중심으로 당요 요황제 요도= 平壤이다 평양은 고유지명이 아니고 도읍 주의 도읍 주도를 평양으로 일문일자가 서울 京 도읍 평양 陽입니다. 일일이 이런 중국어에요? 아니고 우리 문자어다. 夏都다 舜都다 하는데 낙랑의 평양은? 安陽입니다 평양 陽을 알면 고려의 도읍 평양은 高陽이다. 광주의 평양은 光陽이다 낙주 낙수의 평양은 洛陽[落陽]이다 漢州의 평양은 漢陽이다 풍산 풍주의 평양은 風陽이다. 료주의 평양은 료양[遼陽]이다 심주의 평양은 瀋陽이다. 등등 무수히 많은 지명 陽은 주의 도읍 州都=平壤 陽이다 한민족 평양들 도읍들의 우두머리는 首都는 서울=徐蔚로 神市로 天坪= 開坪으로 일문자로 ㄱ+영 = 경[京]으로 아사달 하, 당장 坪= 장당 京으로 현 홍산문명권 = 아사달 문명으로 료녕성 조선의 평양 양으로 조양=朝陽으로 부여의 수도 장당경= 조양으로 신라의 수도 徐羅伐이 바로 부여 대부여 신부여 신한의 수도 서울 장당 경 = 徐羅伐로 서울 이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단서대강의 료하로 黃河는 없고 료하 황해=료해로 보면 모든 것이 확실해 집니다.
芬河의 句麗= 高麗로 고죽국 으로 백이숙제 묘, 수양산 등 平壤으로 고유지명으로 고구려 수도 평양성으로 서경입니다. 고려의 서경으로 산서성 임분시로 高麗도 대륙고려지 한반도 고려가 절대로 아니란 소리입니다.
己酉九年. 命定全國版圖境界. 東窮滄海, 南曁閻洋, 西接碣石, 北至島拉列【今西伯利亞也】. 分封諸侯, 大民族九部, 小民族十四部, 總地域全三萬餘里.
己酉(기유, BC2232) 9년. 전국의 版圖(판도) 境界(경계)를 정하도록 명령하였다. 동쪽으로는 滄海(창해)에서 끝나고 남쪽으로는 閻洋(염양)에 미쳤으며 서쪽으로는 碣石(갈석)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島拉列(도랍렬)【지금의 시베리아이다.】에 이른다. 제후를 分封(분봉)하였는데 큰 민족은 9部(부)이고 작은 민족은 14部(부)인데 총 영역이 전무 30,000여리이다.
사방 3만리..
乙巳五年. 西鄙藍國隣接之地, 舜復置幽州于遼西營州于遼東, 帝遣兵征之盡逐其衆定界于碣石西北之地盡爲朝鮮版圖. 自是遼東遼西更不置虞國州郡, 而諸侯來貢者數十. 於是封道羅爲沸流王東武爲卒本王, 旭成爲沃沮侯以表征遼之功.
乙巳(을사, BC2236) 5년. 西鄙(서비)는 藍國(람국)과 이웃하여 접한 땅이다. 舜(순)이 다시 遼西(료서)에 幽州(유주)를 설치하고 遼東(료동)에 營州(영주)를 설치하였으므로, 帝(제)는 병사를 보내 이들을 정벌하고 그 무리를 모두 쫓아 국경을 碣石(갈석)의 서북에 정하였는데 모두 朝鮮(조선)의 版圖(판도)가 되었다. 이때부터 료동과 료서는 다시는 虞國(우국)의 주와 군이 설치되지 않았고 諸侯(제후)들이 와서 조공하는 자가 수십이었다. 이때에 道羅(도라)를 봉하여 불류왕(沸流王)이 되게 하였고 東武(동무)를 봉하여 卒本王(졸본왕)이 되게 하였으며 旭成(욱성)을 봉하여 沃沮侯(옥저후)가 되게 하였는데 이는 遼(료)를 정벌한 공로를 表(표)한 것이다.[6]
료서로 불류 비류로 료동으로 산서성 구려=고려를 료주= 졸본주로 옥저= 하북성 = 현토로..
九夷중 고려- 낙랑 - 현토는 황하북부 삼성으로 산서성 - 하남성- 하북성이다. 그 국명이 2자로 高麗 樂浪 玄菟=현토로 삼개 국명이다.
戊午五十一年. 洪水旣平, 化被四土. 北曁大荒, 東窮滄海, 南至海岱, 西率獗猶, 東西五千餘里, 南北六千餘里. 區劃天下之地, 分封勳臣爲諸侯. 環南西地封蚩尤氏之後, 曰藍國侯, 在遼河近地, 宅奄慮忽. 環北東地封臣智氏之後, 曰𠐍侲國侯, 在黑水東南地, 宅夙沙忽【肅愼】. 環南東地封高矢氏之後, 曰靑丘侯, 在大同江近地, 宅樂浪忽. 封朱因爲蓋馬侯, 在太白山東南地. 封余守己爲濊國君, 在黑河近地, 治濊城. 封緋天生爲南海長, 在渤海上, 守閻洋. 封夫餘爲餘州侯, 在濊地南. 封夫宇爲眞蕃侯. 封夫蘇爲句麗侯.
戊午(무오, BC2283) 51년. 홍수가 이미 평정되고 교화가 사방을 덮었다. 북쪽은 大荒(대황)에 미치고 동쪽은 滄海(창해)에 닿으며 남쪽은 海岱(해대)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獗猶(궐유)[32]를 다스렸으니 동서 5000여리이고 남북으로 6000여리이다. 천하의 땅을 나누었는데 군신은 공적에 따라 제후로 임명하였다. 남서쪽을 둘러싸도록 蚩尤(치우)씨의 후손을 봉했는데 藍國(람국) 侯(후)라고 하였으며 遼河(료하) 근방의 땅이고 奄慮忽(엄려홀)에 도읍하였다. 북동쪽을 둘러싸도록 臣智(신지)씨의 후손을 봉하여 𠐍侲國(속진국)[33] 侯(후)라고 하였고 黑水(흑수) 동남쪽의 땅이고 夙沙忽(숙사홀)【肅愼(숙신)】에 도읍하였다. 남동쪽을 둘러싸도록 高矢(고시)씨의 후손에게 봉하여 靑丘(청구) 侯(후)라고 하였는데 大同江(대동강) 근방에 있고 樂浪忽(락랑홀)에 도읍하였다. 朱因(주인)씨를 봉하여 蓋馬(개마) 侯(후)가 되게 하였고 太白山(태백산) 동남쪽의 땅에 있다. 余守己(여수기)를 봉하여 濊國(예국) 君(군)이 되게 하였고 黑河(흑하 濊河로 현 하북성 호타하) 근처에 있으며 濊城(예성)에서 다스렸다. 緋天生(비천생)을 南海(남해) 長(장)에 봉하였고 渤海(발해) 위에 있는데 바다의 관문을 지킨다. 夫餘(부여)를 봉하여 餘州(여주) 侯(후)가 되게 하였고 濊(예)의 땅 남쪽에 있다.[34] 夫宇(부우)를 봉하여 眞蕃(진번) 侯(후)가 되게 하였다. 夫蘇(부소)를 봉하여 句麗(구려) 侯(후)가 되게 하였다.
濊貊 濊河= 黑河로 황하=료하로 들어가는 현 하북성 호타하라고 하고는 이게 뭐야???
발해 남대방군 에는 澣海로 산동성 대야택입니다.
동서로 5000리로 갈석 등은 료서=섬서성으로 산서성 + 하북성 = 일직선으로 동서 5000리로 중요한 사실은 유목민이 아니고 "몽고리 토착민" 설유/궐유족으로 험윤족 예맥족이라고 합니다. 궐유 돌궐로 투르크로 투르키 터키로 한국?은 왜 돌궐로 2자 족명 국명으로 투르=툴 =突로 그/크 족명은 厥로 그 궐로 그것이 아니고 그/크 투르크 크 족이다. 돌궐 옆 궐유로 이러한 문자사용법은 짱개 개들과는 180도 다른 북방제족 한문한자 쓰기인데 바로 고조선 문자로 신라다 한국인만 돌궐로 읽을 수 있다입니다. 靺鞨로 말갈 ㄹ 종성발음으로 짱개는 ㄹ 탈락 혹은 딴 이로 마가 마이가이 로 하는 음절언어다.
구국 九夷로 夷는 國인데 九國=九夷로 우리 동이 동방족의 나라이름 夷 후에 韓으로 소속 2자 국명법 문법입니다.
滄海로 삭방군 창해군 삭군으로 천진시 아래가 滄海로 이는 고구려 맥국으로 기원후 494년 연나부로 고구려 맥국으로 신라가 거칠부 진흥왕 기원후 514년 고구려 맥국 10개군은 정벌하고 신라 朔州라고 한 곳이 하북성 황하북부로 그 위가 고구려 철국 동부여 갈사 부여=갈사국으로 고구려 철국 = 신라 溟州입니다.
신.구 당서 동이전 삼국의 위치..
중국정사 25사로 신.구당서 동이전 삼국 = 고구려 백제 신라의 내용에 강역 백제 중화 =마한 54국지 사방 2000리[ 동서 900리 남북 1800리]로 해/발해/한해는 산동성 대야택으로 고구려 남으로 황하로 海한 곳으로 이는 제수=패수=현 추수로 수.당 고구려 공격시 고구려 최남단 패수로 료택 황하습지로 남에서 북으로 고구려// 패수 남으로 수.당으로 한반도에 패수가 있다면? 이는 전부 진/한 수.당이 다 남한땅에? 이 무슨 동서 남북도 몰라요? 남으로 최남단에 패수? 그 아래 수.당 수양제 당태종이 료택 황하습지를 건너 고구려 침공은 남에서 북으로 아니 이게 그리도 머리에 안들어가요? 도대체 뭘 일고 부여= 만리장성 북부고 고구려 남으로 동으로 옥저/동옥저 = 동부여로 가섭원으로 고구려가 쳐서 갈사국으로 갈사부여 보다는 갈사국으로 고구려 철국으로 신라가 쳐서 "명주"로 아니 하북성 아니에요???
夫餘
<夫餘>在<長城>之北, 去<玄 >千里, 南與<高句麗>, 東與<相婁>, 西與<鮮卑>接, 北有<弱水>, 方可二千里. 戶八萬, 其民土著, 有宮室·倉庫·牢獄. 多山陵·廣澤, 於東夷之域最平敞. 土地宜五穀, 不生五果. 其人序大, 性彊勇謹厚, 不寇 . 國有君王, 皆以六畜名官, 有馬加·牛加· 加·狗加·大使·大使者·使者. 邑落有豪民, 名下戶皆爲奴僕. 諸加別主四出, 道大者主數千家, 小者數百家. 食飮皆用俎豆, 會同拜爵洗爵, 揖讓升降. 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於是時斷刑獄, 解囚徒. 在國衣尙白, 白衣大袂, 袍·袴, 履革 . 出國則尙繒繡錦 , 大人加狐狸· 白·黑貂之 , 以金銀飾帽. 譯人傳辭, 皆 , 手據地竊語.
'부여'는 '장성'의 북쪽에 있다. '현토'에서 천리를 간다. 남으로 '고구려'가 있고, 동쪽으로 '읍루'가 잇으며, 서쪽으로 '선비'가 있다. 북쪽으로 '약수'가 있으며, 가히 이천리이고 호수는 팔만호이다. 그 백성은 토착생활을 하고, 궁실과, 창고, 감옥이 있으며, 산과능선이 많으며, 연못이 넓으니, 동이의 지역중에 가장 평평하다. 흙은 오곡에 마땅하고, 오과는 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과격하고, 크다. 성격은 강하고 용감하며, 삼갈 줄 알고, 후덕하니 도둑질 하지 않는다. 나라에 군왕이 있고, 모두 여섯가축의 이름으로 관직을 명하니,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대사', '대사자', '사자' 가 있다. 읍락에는 호민이 있는데, 신분이 천한 사람들을 모두 노비로 하였다. 여러 '가'의 주인은 각각 사방을 다스리는데, 도가 큰자의 주인은 수가 천집이고 작은자는 백집이다. 음식을 먹음에는 모두 조두를 사용하고, 여럿이 모이는 때에는 서로 절하고 잔을 씻어 술을 마시며, 서로 읍하고 사양하면서 출입한다. '은'의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나라의 큰 모임이다. 연일 음식과 가무를 하는데, 이를 '영고'라 한다. 이때에는 형벌과 가둠이 없고, 죄인들을 풀어준다. 나라에서 옷에 흰색을 숭상하여, 백색 옷에 소개가 넓고, 도포와 바지가 있다. 신발은 가죽으로 한다. 나라에서 나갈때는 비단옷을 입기를 숭상한다. 성인은 여우, 원숭이, 흑색담비 가죽으로 옷을 해 입으며, 금은으로 모자를 장식한다. 통역하는 사람이 말을 전할 때는 모두 꿇어 손을 땅에 대고, 조용히 말을 한다.
[출처] 삼국지 위서 동이전 원문과 번역|작성자 anaud
高句麗
<高句麗>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濊貊>, 東與<沃沮>, 北與<夫餘>接. 都於<丸都>之下, 方可二千里, 戶三萬. 多大山深谷, 無原澤. 隨山谷以爲居, 食澗水. 無良田, 雖力佃作, 不足以實口腹. 其俗節食, 好治宮室, 於所居之左右立大屋, 祭鬼神, 又祀靈星·社稷. 其人性凶急, 喜寇 . 其國有王, 其官有相加·對盧·沛者·古雛加·主簿·優台丞·使者· 衣先人, 尊卑各有等級. 東夷舊語以爲<夫餘>別種, 言語諸事, 多與<夫餘>同, 其性氣衣服有異. 本有五族, 有<涓奴部>·<絶奴部>·<順奴部>·<灌奴部>·<桂婁部>. 本<涓奴部>爲王, 稍微弱, 今<桂婁部>代之.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에 있다. 남쪽은 '조선''예맥'이 있고, 동쪽은 '옥저'가 있으며, 북쪽은 '부여'에 접한다. 도성은 '환도'로, 사방 이천리 이며 호수는 삼만이다. 큰 산과 깊은 계곡이 많으며, 벌판과 호수가 없다. 산과 골짜기를 따라 거주하며, 계곡물을 마신다. 좋은 밭이 없어, 비록 힘써서 밭을 경작하지만, 열매가 충분하지 않아, 배가 고프다. 풍속에 음식을 절약하고, 집을 관리하는 것을 즐겨 그 거하는 곳에 큰 집을 좌우에 세우고, 귀신에 제사지낸다. 또한 신령스런 별과 토지신에게도 제사 지낸다. 그 사람들의 성품이 흉악하고 급하여, 도둑질함을 즐긴다. 그 나라에 왕이 있고 관직이 있어 '상가', '대로', '패자', '고추가', '주부', '우태승', '사자', '조의','선인'이라 하니, 높고 천함의 등급이 각각 있다. 동이의 오랜 말로써 '부여'의 다른 종류로 언어가 여러 가지이나, '부여'와 같은 것이 많다. 그러나, 그 성질과 기운과 의복은 다름이 있다. 본래는 다섯 부족으로 '연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가 있다. 본래 '연노부'에서 왕을 했는데, 점점 약해저, 이제는 '계루부'에서 대를 잇는다.
<漢>時賜鼓吹技人, 常從<玄 郡>受朝服衣 , <高句麗>令主其名籍. 後稍驕恣, 不復詣郡, 于東界築小城, 置朝服衣 其中, 歲時來取之, 今<胡>猶名此城爲< 溝 >. <溝 >者, <句麗>名城也. 其置官, 有對盧則不置沛者, 有沛者則不置對盧. 王之宗族, 其大加皆稱古雛加. <涓奴部>本國主, 今雖不爲王, 適統大人, 得稱古雛加, 亦得立宗廟, 祠靈星·社稷. <絶奴部>世與王婚, 加古雛之號. 諸大加亦自置使者· 衣先人, 名皆達於王, 如卿大夫之家臣, 會同坐起, 不得與王家使者· 衣先人同列.
한나라때에 북치고 피리부는 재주를 가진 사람을 하사하였는데, 항상 '현토군'에서 조복과 의책을 받아갔다. '고구려'를 영주로서 그 이름을 기록하였다. 후에 점점 교만해지고 방자해 지더니. 군에 복종하지 않고, 또한 동쪽 경계에 작을 성을 쌓았다. 조복과 의책을 그 가운데 두면, 해마다 이를 가질러 왔다. 이제 '호'들 조차도 그 성의 이름을 '책구루'라 한다. '구루'라는 것은 '구려'의 성의 이름이다. 이곳에 관을 두고 '대로'을 두면, '패자'를 두지 않고, '패자'를 두면. '대로'를 두지 않았다. 왕의 종족으로 '대가'는 모두 '고추가'로 칭하는데, '연노부'가 본래 나라의 주인으로 이제는 비록 왕이 아니라 하더라도, 혈통을 잇는 대인으로 '고추가'가 칭한다. 역시 종묘를 세우고, 영성과 사직에 제사를 지낼 수가 있다. '절노부'는 세세토록 왕과 혼인을 하는여, '고추'라는 이름을 얻었다. 여러 대가들은 역시 스스로 '사자', '조의', '선인'을 두어 그 이름을 모두 왕에게 알리는데, '대부' 벼슬하는 집의 신하들은 모임에 앉거가 일어서는데 있어, 왕가의 '사자', '조의', '선인'과 같은 반열을 얻지는 못한다.
其國中大家不佃作, 坐食者萬餘口, 下戶遠擔米糧魚鹽供給之. 其民喜歌舞, 國中邑落, 暮夜男女 聚, 相就歌戱. 無大倉庫, 家家自有小倉, 名之爲 京. 其人 淸自喜善藏釀. 拜申一脚, 與<夫餘>異, 行步皆走. 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 其公會, 衣服皆錦繡金銀以自飾. 大加主簿頭著 , 如 而無餘, 其小加著折風, 形如弁.
그 나라의 대가들은 밭을 갈지 않는데, 앉아서 밥 먹는 자가 만여호나 이른다. 아랫사람들이 멀리서부터 쌀과 양식과 물고기와 소금을 짊어지고 와서 공손히 보태준다. 그 백성들은 노래와 춤추는 것을 좋아하여, 나라의 읍락에서는 밤이 되면 남녀가 무리지어 모여들어, 서로 따르며 노래하고 춤춘다. 큰 창고는 없으나 집집마다 스스로 작은 창고가 있어, 이름하여 '부경'이라 한다. 사람들은 탐욕이 없지만, 좋은 술을 감춰두는 것을 좋아한다. 꿇어 엎드려 절할 때 다리 하나를 뻗는데, '부여'와 이것이 다르다. 길을 갈때는 모두 달린다. 시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나라의 큰 모임으로 '동명'이라고 한다. 공적인 모임때의, 의복은 모두 비단이고 금과 은으로 스스로를 꾸민다. '대가'나 '주부'는 머리에 두건을 하는데, 수건같이 생기고, 뒤가 없다. '소가'는 절풍을 하는데, 형태가 고깔과 같다.
其國東有大穴, 名隧穴, 十月國中大會, 迎隧神還于國東上祭之, 置木隧于神坐. 無牢獄, 有罪諸加評議, 便殺之, 沒入妻子爲奴婢. 其俗作婚姻, 言語已定, 女家作小屋於大屋後, 名壻屋, 壻暮至女家戶外, 自名 拜, 乞得就女宿, 如是者再三, 女父母乃聽使就小屋中宿, 傍頓錢帛, 至生子已長大, 乃將婦歸家. 其俗淫. 男女已嫁娶, 便稍作送終之衣. 厚葬, 金銀財幣, 盡於送死, 積石爲封, 列種松柏. 其馬皆小, 便登山. 國人有氣力, 習戰鬪, <沃沮>·<東濊>皆屬焉. 又有<小水貊>. <句麗>作國, 依大水而居, <西安平縣>北有小水, 南流入海, <句麗>別種依小水作國, 因名之爲<小水貊>, 出好弓, 所謂<貊>弓是也.
그 나라의 동쪽에 큰 굴이 하나 있는데, '수혈'이라 한다. 시월 나라의 큰 모임에서 수혈신을 맞이하여 나라 동쪽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나무로 수혈신의 자리를 만들어 둔다. 감옥이 없고, 죄가 있으면, 여러 '가'들이 모여 의논하여, 이를 죽인후 처자는 노비로 삼는다. 그 혼인하는 풍속은 말로써 이미 정해지면, 여자의 큰 집 뒤에 작은 집을 짓는데, 이를 '서옥'이라 한다. 사위 될 사람이 저녁무렵에 여자의 집 대문 밖에 이르러, 스스로의 신분을 밝힌 후 꿇어 엎드려 절한 후에 여자와 하룻밤 자기를 청하는데, 보통 두세번 한다. 여자의 부모님이 받아들여 작은집에서 잠잘 수 있게 하면, 돈과 비단을 내 놓는다. 아들은 낳아 장성하게 되면, 이에 마땅히 부인과 집으로 돌아 온다. 그 풍속은 음란하다. 남녀가 결혼만 하면, 조금씩 죽어서 입을 옷을 만든다. 장사는 후하게 하는데, 금은 비단을 죽은자에게 보낸다.(함께 묻는다.??) 돌을 쌓아 봉분을 하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는다. 말들은 모두 작아, 산을 오르기에 편하다. 나라 사람들은 기력이 있고, 전투를 익힌다. '옥저', '동예'가 모두 속하였다. 또한 '소수맥'도 속하였다. '구려'가 나라를 일으킬 때 큰 물을 의지하여 일어났는데, '서안평현'북쪽에 소수가 잇어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구려'의 별종으로 소수를 의지해 나라를 일으키니, 인하여 '소수맥'이라고 이름한다. 좋은 활이 나오니, 소위 '맥궁'이라 한다.
[출처] 삼국지 위서 동이전 원문과 번역|작성자 anaud
韓(馬韓)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辰韓>者, 古之<辰國>也. <馬韓>在西. 其民土著, 種植, 知蠶桑, 作綿布. 各有長帥, 大者自名爲臣智, 其次爲邑借, 散在山海間, 無城郭.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동쪽과 서쪽으로 바다를 한계로 한다. 남쪽은 '왜'와 접해 있으며, 사방 사천리이다. 세가지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마한'이고, 둘은 '신한'이고, 셋은 '번한'이다. '신한'은 고[조선]의 '신국'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백성들은 토착을 하며 씨를 뿌리며 양잠을 알고, 갈포를 짓는다. 각각 장사가 있는데 큰 자는 스스로를 '신지'라 하고, 그 다음은 '읍차'라 한다. 산과 바다사이에 흩어져 있는데, 성곽은 없다.
[출처] 삼국지 위서 동이전 원문과 번역|작성자 anaud
夫餘 = 나라로 대부여= 大夫= 대한 으로 신부여 = 신한 바로 신라다.
어째서 못읽는 것일까? 안 읽는 것일까?? 그것이 問題因이다.
-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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