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은 날
산새들 모아
흰 구름 불러
물소리와 함께 머리맡에 두고
쪽빛 바람 실리운 대로
고운 산 찾아
깊은 고요에 들어
심연의 나와 만난다
이리도 고요한 한낮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은 날.
절을 하다가
3천 배 그 긴 시간
아버지. 어머니.
그동안 불효했던 것만 생각난다.
다시는 못 만날 것만 같은 생이별의 현실과
이렇게 장성하게 키워 주신 그 노고에
목메여
두 눈 퉁퉁 붓도록
울었다.
장삼 등골 흰 서리와 함께
구슬땀 흠뻑 젖은 좌복 위에서
16살 하얀 손가락, 두 눈을 움켜쥐고.
연꽃 핀 날
연꽃이 피었습니다.
하늘의 정성과
땅의 인연으로
어둔 진흙을 딛고 일어나
꽃잎을 틔웠습니다.
님께 드리워질
꽃의 향그러움과
꽃분은 순풍을 따라
허공에 흩어지고
노송에 걸린 햇살 꽃숲을 비추어
온몸엔 붉고 푸른 그림자
무늬지워요.
이른 아침 맑은 이슬 담아
꽃을 끌어안은 건
오로지 님 향한
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눈물
속가로는 내게 조카 되는 녀석이 1년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린 꽃망울 아련히도 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맞벌이 부부였던 형님과 형수님보다 더한
어머니의 애정으로 자랐습니다.
아이의 죽음은 생노병사의 순리라 체념했지만
정작 나의 눈물은 어머니의 가슴을
도려 내는 아픔 위에 흐릅니다.
밤을 새워 불경을 읽어 명복을 빌어 주고 싶지만
님에 이르러서는 도저히 경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이 좌복 위에서 평생을 바쳐 기도하신
어머니의 염원이 눈에 맺히기 때문입니다.
목메인 함성으로 반야심경을 내려친 것도
내 슬픔보다 더 괴로우실 어머니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아이의 장난감과 옷가지, 조막만한 신박들을
보자기에 싸고 있는 나를 힘없이 때리고 있습니다.
문창살 창호지, 아이가 낸 손가락 구멍을 보며 울었습니다.
거울 속에 울고 있는 어머니를 보며 또 울고 있습니다.
화장터 아스팔트 위에
어머니의 눈물이 마르기만을 기다립니다.
인연
우연이었다기보다는 인연이라 믿고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의 이야기를 해명할 수는 없습니다.
전생 쌓고 쌓은 숱한 날들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그 첫 만남을 축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헤어진다면
분명 나의 큰 잘못 때문일 겁니다.
그는 결코 나를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떠나야 하는 아픔으로 헤어질 것입니다.
애별리고 애별리고
처절한 괴로움으로 더 이상 인연을 맺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봄을 기다렸다
지난 겨울
모진 바람 이겨내며
얼어붙은 냉기 버티어 내며
숨죽인 나의 용기는
길고 끈질긴 겨울을 견디며
봄을 기다렸다.
너의 겨울은
나의 겨울보다
차라리 아름답다. 마음 한 점 고요하니 무명은 사라지고
나는 학교를 가는 아침의 그 상쾌한 오솔길을 잊을 수 없다.
가슴 깊이 새벽공기를 들이켜면
온몸을 바르르 떨리고 체모는 바짝 일어서서
내 안의 모든 탁한 것들을 떨구어 내는 것 같다.
영혼마저도 청명하게 해 주는 산초의 향기도 빼놓을 순 없다.
계절마다 확연히 달라지는 산천의 색채와 향기는
강렬한 인상으로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 버렸다.
물론 합천 가야산의 풍모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산세이지만
그 순수함으로 풋풋한 정감이 어려 있기 때문이다.
마을로 이어지는 산사의 오솔길은
30분은 걸어야 버스 정유장에 닿을 수 있다.
이따금 늦어져 지각이 염려될 때면
한 걸음에 뛰어내려 가지만
반야심경이나 천수경을 창불하며
산의 주인인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걸어가는 게 보통이다.
오솔길을 걸을 때면
언제나 동요에 나오는 꼬부랑 할머니의 길을 연상케 한다.
평탄하더니 어느새 고갯길.
어렵사리 넘어가면 굽이치는 꼬부랑 길이다.
게다가 묘비도 없는 무덤들이 길 가장자리에 수제비 떨어뜨려 놓은 듯
듬성듬성 앉아 있어 전설의 고향을 보는 듯,
볼 때마다 스산하다.
동틀 무렵 아침 햇살에 비춰지는 오솔길과 무덤을 보며
세간의 무상한 인생살이를 곱씹어 보거나
나를 잊게 하는 순간들은
잔잔한 기쁨과 함께
하루하루의 일상적인 삶에
새로운 성찰을 갖게 한다. 호수와 소년
옛 고승들이 수시로 포행했다는 외골짜기 숲길.
고목들과 산대나무가 우거져
그늘만이 드리워진 그 길 끝에 작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호수 위에는
언제나 달이 잠들고
구름이 머물고
하늘이 발을 담그어
푸른 향내음이 있다.
짙은 고요함이 있다.
이따금 산수유 붉은 멍울이 물가를 어지럽혀도 호수는 평화롭다.
물 속에는 나보다 더 예쁜 소년이 살고 있다.
더 맑은 눈빛으로 더 진실한 마음으로 나를 맞이한다.
이따금 소년은 펑펑 울다가도 금세 웃곤 한다.
때로 그 소년의 변덕이 싫어질 때면 돌을 던지기도 하지만,
소년은 내게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는다.
아무런 말을 해 주지 않는 소년이,
내 얘기만 들어 주는 소년이 밉지만은 않다.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고 벌거벗고 누워 있을 때
언제나 함께하는 그가 있어 좋다.
걱정스러운 것은 소년은 너무 감성적이어서
내가 떠나가 버리면 쓸쓸해 하지 않을까 하는 가엾음이
나를 이 호수로 자주 찾아오게끔 하는 이유이다.
호수 위에는 언제나 햇살이 머물고 달빛을 안고 바람이 잠을 잔다.
녹음이 우거져 푸르름을 간직한 호수에는 철없는 소년이 살고 있다.
그 소년이 보고 싶다.
그 소년이 너무도 보고 싶다.
이러고 싶을 때
목놓아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사무쳐 밀려오는 설움도 있습니다.
복받쳐 끓어오르는 분노도 있습니다.
삭혀도
삭혀도
터지는 슬픔이 있습니다.
고통과 외로움, 슬픔이 있을 때
이러고 싶습니다.
[원성스님]
서울시 미술대회 금상, 국제 유네스코 미술대전 금상과 언론사 등의 공모전에서 수상한 바 있다. 17세의 나이에 출가하여 해인강원을 거쳐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했다.
천진하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담은 동자승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국내는 물론 뉴욕, 도쿄, 밀라노, 베를린, 타이페이, 상하이 등 해외에서 30여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지은 책으로<풍경>(1999), <거울>(2001), <시선>(2002)이 있으며 대만과 중국, 일본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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