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81]섬진강 우정한담友情閑談과 작가 정지아
전라선 구례구역 앞 다리를 건너면 ‘맛집’이라는 대합실식당과 구례제과점이 있다. 식당 앞에는 유유히 섬진강蟾津江이 흐르고, 어제 그 식당 앞 전망 좋은 벤치에서 친구 4인이 한담閑談을 한참 나눴다. 정담情談도 좋고 정화情話도 좋다. 한 분만 용띠로 5년 선배. 두 친구는 전주대 전 역사학과 교수와 전 동아일보 호남본부장, 자치동갑으로 어울린 지 수 년이다. 신탄진역, 전주역, 오수역에서 같은 차를 타 합류했고, 선배는 정읍에서 자동차로 달려오셨다. 지난해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베스터셀러 작가가 된 소설가 정지아씨와 점심 약속을 한 때문에 모처럼 회동을 한 것이다. 작가가 출현하기 전 1시간여 동안 문학 이야기며 ‘화려한 백수’ 이야기 등 어찌 화제가 끊어지랴.
정확히 12시, 한 수더분한(수수한) 아주머니가 살며시 웃으며 '너끈하게' 나타났다. 유튜브에서 한두 번쯤은 보았으니, 금세 알아볼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반갑게 서로 수인사를 나누고, 점심을 시켰다. 돈가스파스타와 다슬기파스타. 준배해온 술이 있었으니 ‘조니워커 블루’. 이 유서깊은 비싼 양주는 작가의 ‘최애주最愛酒’인데, 운전 때문에 '딱 한잔'으로 그쳤으니, 오호 통재라. 저자 사인의 문구가 인상적이다. “좋은 술/좋은 친구/글먼 족한 인생”. 그렇다. 유붕자원방래만한 즐거움이 어디 있으리오. 초면인데도 오고가는 말들이 따뜻하고 정답다. 개인적으론 베스트셀러를 좋아하지 않는데, 작가의 다큐소설은 언론인 김택근 형의 칼럼으로 알게 돼, 읽자마자 ‘대박칠 것’을 감히 예언했다. 오죽하면 서너 권을 친구들에게 사줬을까? 심지어 최근 호주의 간호사 아들(36)에게 권했더니 “하루만에 다 읽었네.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엇성. 자고 일어났는데도 마음이 아린 것같구 여운이 너무너무 남네”라는 짧은 소감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흐흐. 역시 빨치산부모의 고명따님답지? 미모까지 받혀줘”라는 댓글을 보냈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레터 49/빨치산의 딸 이야기]『아버지의 해방일지』 - Daum 카페
이름이 크게 나지 않던 중견작가의 이 작품이 40만부가 넘게 팔렸다던가. 그이후 전국 각지에서 쏟아지는 북토크, 1년이 넘게 행진이 이어진 게 500회를 넘었다던가. 물 들어올 때 배 띄워라라는 말처럼 무척 바쁘다. 인세印稅 수입을 물어볼 필요도 없이 말년(?)은 안존할 수 있을 성싶은 늦복이 터져 참으로 다행이다. 더구나 1926년생 그 어머니, 올해 백수, 내년에는 한 세기를 가르는데 너끈할 거란다. 한 작가가 그 아버지의 3일장을 치르면서 듣고 보면 자란 아버지의 친구를 비롯한 지인들의 사연과 아버지와 함께했던 평범한 사회주의자 어머니의 일생을 제3자처럼 담담하게 그린 소설 아닌 소설이 왜 이렇게 울림이 크고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했을까? 이념을 다루거나 주장하는 게 아니고 “긍게 사람이제”라는 인간 내면을 읽은 휴머니즘이 배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15]작가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을 읽고 - Daum 카페
그가 지난해 가을 펴낸 에세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에 나오는 에피소드들도 주요 화제였다. 자기를 만나려면 조니워커 블루 1병과 던힐 라이트 한 보루를 가져오라고 공개선언한 작가의 만용(?)이 너무 좋아 준비했는데, 천하의 술꾼 작가도 육십 고개를 넘어서니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솔직한 고백이 작가의 귀염성(?)을 더하게 했다. 하하. 인증샷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호주 아들에게는 한 커트 보내줘야 한다며 찰칵하는 재미도 삼삼했다. 에세이집 덕분에 다시 찾아읽었던 양주동의 『문주반세기』나 변영로의 『명정 40년』에 이어, 새롭게 알게 된 대한민국 칼럼니스트 1호 언론인 심연섭의 『건배』 책 이야기가 이어지니, 초로初老의 남자 4인과 작가의 얘기샘이 어찌 마를 수가 있었으랴. 단지 아쉬운 것은 작가가 노모를 보살피기 위해 가야 하는 시간.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94]“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 Daum 카페
작가는 가고, 일행은 인근에 있는 <섬진강책사랑방>이라는 헌책방을 둘러보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지난해 장서랄 것은 없지만 1500여권의 책을 우리집에서 가져가신 김사장은 부산 보수동 헌책방 운영 등 헌책사랑이 반세기가 됐다고 한다. 3층까지 수만 권의 책이 가득하다. 한우충동이 이를 말할 것. ‘지독한 책괴冊怪’가 아니라면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커피를 마시며 또 ‘책 이야기’이다. 이 책방에서 방금 헤어진 정작가가 북토크를 서너 차례 했다고 한다. 구례는 이런 작가와 책방이 있으니 복 많은 곳이 틀림없다. 남원에 사는 또 한 명의 괴짜시인이 여자친구와 함께 마침 들러 책방에서 만났다. 그것도 재밌는 일. 정읍형님은 금강경金剛經관련 책을 보듬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일어선 게 오후 4시, 나야 무궁화호를 자주 이용하지만, 두 친구는 수십 년만에 탄 것같다며 감회가 새로운 모양. 더구나 경로 우대까지 되니 여유도 갖고 경비도 아끼고 말 통하는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금상첨화 조합이 아니면 무엇이리. 일행 모두 오수역 하차. 멋과 맛, 즉 풍류風流를 아는 인간들이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머위잎 무침 안주 하나로 5명이 막걸리 5병. 다시 오수역발 전주행 남원행 6시 출발. 날이 많이 길어졌다. 집에 돌아와 긴 밭고랑 3개에 겨우내 벽에 걸어놓은 옥수수를 분해하여 고급비료와 버물려 꾹꾹 눌러 심었다. 싹이 다 나기만 빌 밖에. 점백이 찰옥수수, 너를 믿는다. 청국장에 생채에 밥을 비벼 실컷 먹고 포만감에 잠이 든, 4월 어느 행복한 날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