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굴암, 박달재에서 배론성지, 의림지, 교동 민화마을로...
2월 23일 토요일, 오케스트라가 찾은 곳은 제천 목굴암을 보고 박달재에서 배론성지 숲길을 걷고, 의림지 부근 오디향에서 점심을 한 다음 겨울 의림지와 최근 개장한 의림지박물관을 둘러보고 교동 민화마을을 거쳐 전통시장 5일장 구경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일종의 제천패키지였는데 하루 꽉찬 일정, 바쁘지도 않고 여유롭게 하루를 잘 즐긴 날입니다. 지난해 8월 18일 얼음골을 시작, 11월 18일 괴곡성벽길 이후 세 번째, 익숙해서인지 갈 곳도 볼 곳도 많은 곳이었는데 여유로운 하루였습니다.
제천하면 청풍호에 둘러싸인 청풍명월 산자수려한 곳, 그런데 이번에는 풍경이 전혀 다릅니다. 천둥산 맞은 편, 주론산이 있는 박달재에서 시작, 한국 천주교 성지인 배론성지 가는 길, 산속 숲길로 갑니다. 박달재 가는 길, ‘천년목찰’ 목굴암이 반겨줍니다. 사찰 아닌 목찰, 불교의 상징 등을 주지이신 성각 스님이 혼자 20여 년에 걸쳐 조각하여 봉안했는데 목굴암과 오백나한상이 반겨줍니다. 봄 날씨답게 푸근한 날 영상 10도의 날씨인데 목굴암 일대 박달재 목각공원을 볼려고 했더니 눈이 많이 쌓여 있더군요. 순간 박달재가 그냥 박달재가 아님을 알겠더군요. 목굴암에서 목각작품을 보고 직진하면 바로 코앞인데 박달재자연휴양림을 버스로 10분 걸려 빙돌아 갑니다.
박달재에서 배론성지 가는길에서... 봄날씨 속 응달에는 눈이 아직도... 아이젠은 필요없었습니다~~
박달재는 이 일대에 박달나무가 많이 자생하므로 박달재라고도 하고, 이 근처에서 죽었다는 박달이라는 청년의 이름을 따서 박달재라고 부른다고도 합니다. 옛날 경상도 청년 박달도령이 서울로 과거보러 가는 길에 이 고개를 넘어 아랫마을 금봉이 처녀를 만나 사랑을 나눴는데, 박달은 과거급제하면 돌아와서 금봉이와 백년가약을 맺겠다고 언약하고 상경하고, 금봉이는 도토리묵을 장만하여 낭군이 될 박달도령 허리춤에 매달아주고 먼길에 요기하도록 배려했지만 낙방한 박달이 슬픔에 잠긴 채 돌아오다가 평동 금봉이 집을 찾았는데 금봉이가 박달을 기다리다 지쳐 3일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하면서 슬피 울다가 따라 죽었다는 사연이 있는 곳, 예나 지금이나 신분상승에 얽힌 슬픈 사연, 다른 말로 하면 이룰 수 없는 사랑인 측면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박달재가 나름 이 지역 교통의 요충지임을 반증합니다.
김대건 신부에 이어 조선 두번째 신부이신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 푸르른날 순교한 최양업 신부를 생각하며..
박달재자연휴양림에서 넓직한 임도로 배론성지로 갑니다. ‘천등산 박달재’라는 노랫말 때문에 박달재가 천등산에 있는 줄 알지만, 박달재는 주론산에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1791년 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농사를 짓고 옹기를 구워 생활하며 신앙공동체를 이룬 곳으로, 마을이 위치한 계곡이 배[舟] 밑창을 닮았다 하여 배론[舟論]으로 불린 배론성지가 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이곳의 옹기굴에 숨어 있으면서 조선 교회의 박해상황과 외국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의 백서를 작성하다 발각돼서 순교했고, 1855년에는 배론 공소회장 장주기(張周基)의 집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당'이 세워져 교장 푸르티에 신부, 교사 프티 니콜라 신부가 조선인 신학생을 가르쳤습니다. 1861년 조선의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가 문경(聞慶)에서 병사하자 푸르티에 신부 일행이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습니다. '성요셉 신학당'은 한문이나 한글뿐 아니라 수사학·철학·신학 등도 가르쳤으며 한국 천주교 교육의 요람이 되었으나, 1866년 병인박해 때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 니콜라 신부가 체포되어 순교함으로써 폐쇄된 한국 천주교의 성지입니다.
배론성지에서 황사영 사건을 생각합니다. 신유박해(1801년)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배론의 토굴에서 베이징 주교에게 박해의 전말을 알리고 조선교회 재건책을 제시하는 백서(帛書)를 작성하여 중국으로 보내려고 했으나 발각되어 같은 해 9월 체포, 서울로 압송된 뒤 11월 서소문 밖에서 처형당했는데 백서의 내용이 외세의 개입, 조선왕조 전복 등 너무 과격(?)하여 천주교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초래했습니다. 황사영은 정약용의 (이복)형인 약현(若鉉)의 딸 명련(命連, 정난주 마리아)과 혼인하고, 정약종에게 천주교를 배운 인재, 그러나 너무 급진적인 황사영백서로 인해 자신 뿐 아니라 가족, 정약용 일가 등 당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천주교에 엄청난 타격을 가하게 됩니다. 부인은 당시 아들 황경한을 낳은지 얼마 안됐는데 제주도 관노비로 유배당하자 아들만이라도 살리겠다고 추자도에 젖먹이 아들을 놓고 제주도로 유배가는 등 가족에게도 엄청난 비극이었습니다. 황사영백서, 청년 황사영(26살)의 종교적 열정이겠지만 그 일이 아니었다면 새로운 학문, 새로운 대안으로 천주학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박달재 입구 목찰인 목굴암부터 찾아갑니다~~
박달과 금봉이 설화를 불교식으로 형상화 한 목굴암
고사목에 오백나한을 일일이 조각
목굴암의 주지이자 혼자 20여 년 목각을 만든 성각스님
여성단원들의 눈길(?)을 많이 끈 '백팔번뇌'라는 작품
성각 스님의 작품
굉장히 무섭네요...
성각 스님의 작품세계는 잘 모르겠는데 마치 단테의 <신곡> 중 연옥편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괴기스럽네요.
소월님
샘님
하늘이님과 안나님
박달재자연휴양림에서 주론산 방향 배론성지 넘어가는 길...숲속의집인데 금봉동이네요
겨울산행은 몸풀기가 필수죠~~ 에어로빅과 스트레칭 연구 30년의 소월님이 시범을 보입니다~~
박달재휴양림에서 배론성지까지는 6.5Km 잘 정비된 임도입니다.
박달재는 503m 높이. 응달에는 아직도 눈이...
다음에는 목굴암 위 박달재 목각공원에서 배론성지 가는 길로...
박달재에서 배론성지 넘어가는 길은 완만한 오르막길...
갈림길에서 배론성지까지는 계속 내리막길...
낙엽송은 헐벗었지만 버들강아지에는 물이 오르고 있네요...
이 표지판을 찍은 이유는? 같은 길에 어느 표지판은 '팔왕재'로, 이곳은 '파랑재'로... 어느 표기가 맞는건지....
배론성지 내려오는 길, 민가를 지나는데 한복을 입은 마네킹 인형, 가만히 보면 그네타는 여인인데 밤에 보면 소름끼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내려오는 길 민가도 지나지만 웅장한 기념관이 갑자기 나타나 경건한 마음을 들게 합니다.
종교는 달라도 순교자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로데오님과 건축왕님
깜콩님 제이엠비님 안젤라님
이 분들은 3인조...
소월님과 샤론님
운정님
아름다운 동행. 삼시세끼님과 따님
쿨밤님
동심초님과 육당님
하늘이님과 안나님. 독실한 신자들입니다.
마리아님과 태연한인생님. 한분만 독실한 신자랍니다~~
삼위일체로~~
샘님과 스머프님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를 벽화로...
최양업신부 기념성당에서...
마리아님... 성당 규모가 큽니다.
태연님
한결님과 편백송님
가운데 신부님은 프랑스에서 오신 올해 91세의 나성도 신부님.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깜놀. 안동교구 소속이신데 서울신학대학에서 교리 강의하신다고...
규모가 굉장히 큰 곳. 황사영 토굴은 가지 않았습니다. 원망의 마음이 들까봐...
흰뜰님과 별나무님
온유맘님과 마이또님
이명숙님과 소프트님 언니
리우데자네이로의 예수상 같은 곳에서... 자연과나님
배론성지의 예수상
2부에서 계속==>
첫댓글 금봉이는 도토리묵을 왜 허리춤에 매달아줬을까?
엉뚱한 생각만 듭니다 ㅎ
쉽게 부서지고 으스러지는 도토리묵을 먹지도 못했겠어요
도토리묵을 너무너무 좋아하는지라
괜스레 아까워서 쓸데없는 생각에 잠시 빠져봅니다
물오른 버들강아지를 보니 봄을 찾아 나서야 겠어요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즐거운 맘으로 잘 보았습니다
낙화님따라 두번째 제천투어~
약간은 가파르지만 걷기좋은
박달재 넘어 눈길도 엉금엉금 걸어 넘어가니 봄이 오는 계곡 물소리도 들리고 버들강아지도 피어나는 봄이오는 임도길이 너무좋아 발걸음도 가볍게 즐겁고 여유로운 봄맞이 제천투어 즐겁고 행복한 나들이~~ 낙화님 감사 드리며 함께한 오케님들 덕분에 즐거웠답니다~~~^^
오랫만의 봄맞이 길, 차암 좋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조선왕조 전복’을 외세에 기대려 한 것은 비단 황사영(백서) 뿐만이 아니겟죠. 백서사건 70년쯤 후, 중인 역관 오경석(=오세창의 아버지)은 주청(駐清) 영국공사관에 찾아가 조선을 무력으로 제압해 식민지로 하라는 제안(?)까지 햇고, 같은 시기 ‘개화승’(??) 이동인(일본명 : 아사노 토진, 朝野東仁[조선이 야만국이라고 해서 朝野로 ㅜㅜ;])은 주왜(駐倭) 영국공사관에서 ‘조선전복(!)법(?)’을 논의햇엇죠! ‘웃픈 조선근대사’의 한 현장을 답사(=트래킹!)한 것은 개인적으로도 감동무량이엇습니다!! 뜻깊은 길, 주선+안내+해설,,,로 이끌어주신 낙화님! 함께 호흡하며 즐겻던 답사동무들께 정답고 고마운 맘 듬뿍 담아 올립니다*^^*
쿨밤님!
댓글에서도 역사 공부하니 좋아요
감사합니다~~^^
틈새시장을 타 한 컷 ㅎ
챙겨주셔서 감사햇어요,낙화님~~
두번째 제천여행..
추자도에서 열심히 들었던 스토리가 베론성지와 이리 연결이 될줄이야^^
베론성지에서의 봄맞이길
오래기억에 남을듯 합니다~^^
따듯한 봄볕 아래, 그래도 아직은 곳곳에 눈 쌓인 박달재 넘어
낙화님 덕분에 거의 10년 만에 순례길처럼 배론성지 잘 다녀왔습니다.
훗날 즐거운 추억으로 돌아볼 수 있는 사진도 잘 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오랫만에 느껴본 물아일체였습니다. 이런 카페에서 여행간 경험이 거의 없어서 신선한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냥 낙화님과 운영진에 묻혀간 느낌이라 조금 죄송한 마음도 들었지만 계속 묻혀가고 싶네요. 일부러 꾸물거린건 아니고 제가 무릎을 좀 다쳐서 걷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다음에는 평지인지 보고 참가해야겠네요. 고의가 아니였지만 죄송했습니다.
걷고 보고 먹고 얘기하고 아주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알찬 하루 만들어 주셔서 행복한 시간 보내고 왔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멋진 여행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첨,,,, 사진 봅니다.. 낙화님 덕분에 제천의 좋은 곳을 ~~ 탐방해서 넘 좋았습니다... 제가 올해 1월에 가입해서 넘 좋은 카페라 생각되어 친구들 10명은 가입시켰습니다..
제가 많은 헤택을 누리고 있어서 지인들도 느끼게 하려구요~~~ 이전에도 와 봤지만,, 울고 넘는 박달재를 100년 전의 호랑이도 만나며,, 조선시대의 향수를 느끼면서 넘어갔습니다. 올 3월부터 ,,., 냉담자에서 다시 천주교신자로 돌아가고자 베론성지에서 다시금... 기도했습니다.
의림지 박물관에서 해설과 견학 넘 즐거운 시간이었고,, 앞으로도 좋으신 분들과 또 뵐 것을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을 리드하셨던 낙화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천의 작년 얼음골 여행후 두번째 박달재 배론성지 여행 좋은 봄날씨에 넘 좋았구요
전통시장구경은 옛시절을 그립게 하는 좋은시간 이었습니다
낙화님의 진행에 항상 고마움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