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주안 온가족 새벽기도회 / 이종남 목사(추산교회 담임)
말씀 : 요한복음 7:38
제목 : 하나님의 일하심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
반갑습니다.
주안장로교회 온 가족 새벽기도회에 함께하게 돼서 영광이고요.
여러분들을 만나게 돼서 참 기쁘고, 오늘 주실 은혜가 또 기대가 됩니다.
저는 유명한 강사도 아니고요. 이따 더 말씀을 드릴 거지만, 시골의 작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입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는 자리에마다 먼저 이 이야기를 꼭 합니다.
저는요 말씀을 전할 때, 이 한 가지만큼은 누구보다 뒤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이 새벽에도 이 시간 어린아이부터 우리 장년이신 성도님들까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살려내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 통로가 되고자 기도하며 준비하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살려내실 줄 믿습니다.
우리 한번 서로서로 인사할까요.. "하나님께서 살려 내십니다!"
보니까, 중고등부 우리 청년들도 온 것 같은데, 제가 다음 세대 수련회를 할 때 이 인사를 하거든요.
우리 중등부 아이들의 표정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그들을 위해서 한번 이 인사를 한번 해 볼게요
마주 보시고요.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인사하는 거예요. 자 한번 둘씩 마주 보세요.
두 사람씩 마주 보시고, 다음 세대가 인사하는 인사법인데, "당신의 얼굴을 보니, 내 얼굴에 자신이 생깁니다." ㅎㅎ
한 번 더, "자신 있게 삽시다!" 우리 중등부 아이들이 얼굴이 밝아졌어요. 감사해요..
예전에 제가 한 청년 집회의 말씀을 전하러 갔었는데, 정말 평생 잊혀지지 않는 한 장면이 있었는데요.
한 중년의 남자분이 청년 집회에 기도를 하는데 계속 울기 시작했어요. 그냥 우는 게 아니에요. 통곡을 하며 막 우는 거예요.
집회를 마쳤습니다. 집회를 마쳤는데도 이분의 눈물이 그치지 않는 거예요. 집에 돌아왔는데, 이분이 잊혀지지가 않았어요.
마침 담당하시는 목사님께서 연락이 왔어요. 이분 얘기를 하는 거예요.
잘 들어보세요. 이분은 그 교회 집사님이신데, 방송실 봉사하시는 집사님이세요.
이분은 평소에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냐면,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대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다.'
누가 봐도 이 집사님은 항상 열심히 예배 자리에 있고, 언제든지 봉사하고 있고,
맡은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누가 봐도 좋은 믿음을 갖고 계신 분이었어요.
그런데, 본인은 정작 하나님과의 어떠한 뜨거운 채워지는 은혜들을 누려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고, 예배를 드려도 그리고 봉사를 해도 사명을 감당해도 자기에게 오는 어떠한 은혜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나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는가 보다.
저 집사님 권사님은 저렇게 은혜 받으며 하나님과 뜨거운 관계가 있는데,
나는 없는 걸 보니까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어'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그 청년 집회에 방송실 봉사를 하러 왔는데 청년들이 놀라운 회복을 경험하거든요.
그래서 이 집사님이 도전을 받고 방송실에서 나와서 무릎을 꿇고 그 가운데 앉은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지금 나에게 이 은혜가 필요합니다. 나도 이 은혜를 부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이분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나는 너와 항상 함께 했다! 나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한다!"
이 응답을 받고 나서 이 집사님이 놀라운 회복을 경험하면서 그렇게 감격과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문제가 뭔지 아세요?
우리의 문제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어떤 주어지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그걸로 우리는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뭔가 좋은 상황, 뭔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 그렇게 여기지만,
나에게 원치 않는 상황이 온다면,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시나 봐.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나 봐' 이렇게 여깁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다 경험했을 거예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어떤 가정의 일이든 삶의 문제든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첫 번째 응답은 문제 해결이 아니었어요.
그건 뭐냐면, 하나님은 항상 똑같이 나는 이 문제를 가지고 갔는데, 내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나아갔는데,
하나님은 먼저 알려주셨던 것이 무엇이었냐면, 항상 변함없이 이걸 알려주셨을 겁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변함없는 사랑을 알려주셨을 거예요.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반복적으로 질문하셨던 두 가지가 있는데요,
그 첫 번째가 뭐냐면 이거였어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에 대해서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아주 열정적으로 따랐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부르느냐?" 그렇게 제자들에게 물었을 때,
베드로가 (마태복음 16:16)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할 때, 이제 예수님께서
"모두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 그 말씀을 하셨을 때, 베드로가 또 이런 말을 합니다.
(마 26:33)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장담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다 아시는 것처럼, 베드로가 고난 당하시는 주님 앞에서
너무나 연약한 모습을 보이고,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됩니다.
여러분,그 이후의 베드로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지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베드로 앞에 계십니다.
베드로는 그 앞에 계신 예수님을 똑바로 볼 수 없었을 거예요. 본인이 알잖아요.
그렇게 장담했지만, 분명한 신앙고백을 했지만, 베드로는 안 거예요.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아! 이분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메시아이시구나!"라는
그런 확실한 믿음이 생겨서 그런 고백도 했고, 끝까지 따르겠다고 했지만 정작 지켜내지 못한 거예요.
그때, 예수님 앞에 선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아마 예수님을 똑바로 보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 그렇게 말했잖아. 너, 나를 끝까지 따른다고 했잖아. 네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이렇게 책망하지 않으셨어요.
그냥,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을 물으셨습니다.
제가 이 본문을 신학교 다닐 때 만났어요. 고민이 되는 거예요.
왜 사랑을 물으셨을까? 뭐 사랑한다 하면 되는데, 왜 이걸 물으셨을까?
한 1주일 동안 묵상하며 고민하다가 그 답을 찾게 되었어요. 사랑이란 단어에 그 답이 있습니다.
'사랑'은 원어로 '아가페'라는 단어를 썼어요. 이 아가페 사랑은, "변함없는 사랑",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했던지, 배반하고 부인했던지, 지키지 못했던지 그것과 상관없이
변함없이 조건 없이 사랑한다라는 걸 예수님은 지금 베드로에게 질문하시면서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몇 년 전에, 세계 수영선수권 대회가 있었어요. 그때, 한 경기가 기사로 나온 걸 본 적이 있는데요.
수중발레 결승전에서 미국 선수가 연기를 막 합니다. 연기를 하다가 갑자기 물속에서 의식을 잃었어요.
그 경기장에는 수천 명의 관중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가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것을 아무도 몰랐어요. 누가 수영 선수가 죽는다고 생각하겠어요.
아무도 의식을 못 하고, 나오겠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여자분이 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분이 누구였냐면, 바로 이 선수의 코치였습니다. 아무도 몰랐어요. 수천 명의 관중들이 있었지만,
이 수영 선수가 물속에 의식을 잃고 죽어간다라는 걸 몰랐지만, 이 수영 코치는 안 거예요.
'뭔가 문제가 생겼구나' 물 속에 뛰어 들어가서 이 선수를 끄집어내고, 기도를 확보하고, 그래서 이 선수가 살려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마음을 사람들은 몰라요. 가족들도 몰라요.
내 마음이 왜 공허한지, 내 마음이 왜 슬픈지,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내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압니까? 모르지요.
그러나 여러분, 주님은 아십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내가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 내가 무엇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지 주님은 아십니다.
그걸 아시는 주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그 주님이 찾아오셔서 변함없는 아가페 사랑을 말씀해 주시면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우리를 회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게 되었어요.
아마 모태 신앙인 분들은 아실 거예요. 교회를 안 나가면 부모님들의 엄청난 박해와 핍박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안 나갈 수가 없이 어차피 끌려서 갈 거잖아요. 그래서 다니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십자가의 사랑이 믿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뒤로는, 정말 더 열심히 예배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가 20살이 되고,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게 돼서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살 때부터 마음대로 살았어요.
그렇게 청년의 시기를 보내고 군대를 갔다 왔는데, 제가 해병대를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무서운 게 없는 거예요. 더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3학년 때였어요. 대학교 축제 때, 주점을 운영하는데 제가 그만 사람을 때렸어요.
그래서 그게 사건이 돼서 아주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그리고 많은 합의금을 구하기 위해서 밤새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어요.
한 번은 밤새워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제 한 새벽에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땀은 범벅이 되고 기름칠 범벅이 돼서 아스팔트에 누워서 하늘을 보는데요.
갑자기 막 눈물이 나는 거예요.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을까? 내 미래는 있을까?
그런데 그때, 중학교 2학년 때 그때 가슴으로 만난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 그때 만난 은혜의 그 경험의 때가 기억이 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정말 오랜만에 기도하게 되었어요. "주님, 저 너무 힘듭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주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 고난에서 나를 건져 주세요" 정말 오랜만에 그런 기도를 드리게 되었어요.
그리고, 내가 왜 이렇게 기도하게 되었을까?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바로 아버지의 기도 때문이었어요.
저는 매일 그렇게 마음대로 살다가, 매일 이렇게 술을 먹고 술 취해서 집에 돌아오면 그것도 양심이 있어서요.
아버지 새벽 예배 끝나고 돌아오기 전에 들어와 있었어요. 얼마나 늦게 온 거예요.
그렇게 술에 취해서 자고 있으면, 저희 아버지가 장로님이셨는데
새벽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서 매일마다 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셨어요.
저 같으면 화가 날 텐데, 아버지는 그렇지 않으셨어요. 야단을 치는 게 아니라 그냥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셨어요.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어떤 때는 그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시더라고요. 여러분, 안 듣고 싶어도 그 기도가 들리잖아요.
매일마다 듣는 그 기도가 제 마음을 울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런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언젠가는 내가 돌아가야지, 내가 언젠가는 회복해야지] 매일마다 아버지의 기도를 들으면서 '내가 언젠가는 돌아갈 거야'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제가 주님을 찾게 되더라고요..
여러분, 이 자리에도 우리 부모님 되시는 성도님들 계시잖아요.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위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이 자리에 함께 자녀들과 나와 예배하는 이 모습이 너무나 귀합니다.
이 온 가족 새벽기도회에 함께 나와 드리는 이 기도,
우리 가족들과 함께, 우리 자녀들과 함께 드리는 이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특별히 여러분, 저와 같은 청년의 때에 제가 주님을 떠난 것처럼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주님을 떠나 있는 자녀들이 있습니까..
여러분, 그냥 '교회 다녀야지', '교회 나와야지' 여러분 이렇게 권면만 하지 마세요.
그 자녀들이 올 때, 품에 안고 기도해 주세요.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세요.
정말 진심을 다해 그 자녀를 붙들고 한번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왜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인가?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요한복음 21장 15절의 말씀을 보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반복적으로 물으신 다음에, 또 한 가지 말씀하신 것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내 어린 양을 먹이라"라는 말씀을 계속 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래, 그러면 내 양을 먹여라" 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베드로와 제자들은 뭐하러 간지 아십니까? 이들은, 주님의 사명을 붙들고 감당하러 간 것이 아니라
그들은 지금 어디로 갔느냐면, 분명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갑니다.
요한복음 21장 3절에 보면, 예전처럼 고기를 잡으러 갔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어요. 이건 당연한 일이지요.
그들은 주님을 만났잖아요. 주님의 사랑을 다시 경험했잖아요.
그러면 그들은 다시 그들이 처음 부름 받은 것처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돼야지요. 양을 먹이는 사명을 감당해야지요.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먼저 변함없는 사랑을 알려주시고, 그리고 양을 먹이라는 이 사명을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의 사랑을 경험한 우리들은, 그 사랑을 경험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양을 먹이는, 영혼을 살려내는 그런 사명을 우리가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우리를 향하여 변함없는 사랑을 알려주시고
그 사랑으로 영혼을 품고 그 영혼들에게 우리가 은혜의 통로가 되어,
사랑의 통로가 되어, 살리는 통로가 되어 그렇게 그 사명을 감당하길 원하시는 거예요.
그때, 주의 손이 함께하여 우릴 통해 영혼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시골에서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게 뭐냐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이루시는 순서가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기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 이 모든 걸 다 바꿔주세요. 이것도 바꿔주시고 저것도 바꿔주시고요.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바꿔주세요.
그리고 사람들도 다 바꿔주세요. 우리 가정도 내가 원하는 대로, 우리 가족들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꿔주세요."
그런데 막상 안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왜 안 바꾸어 주세요? 아니, 왜 우리 자녀들은 안 바뀝니까?
우리 가족들은 왜 안 변해요? 하나님, 기도하고 있잖아요. 왜 안 달라져요?
내 주변에 왜 싫어하는 사람들이 왜 있어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왜 있나요? 하나님"
그렇게 하소연하지만, 하나님이 역사를 이루어 가실 때를 보면 주변이 먼저가 아니에요. 먼저 하나님은 나에게 주목하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세요. 요한복음 4장 1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이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주님 앞에 나와 이 은혜를 누리면서 이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변함없는 사랑을 알려주시는 거예요.
"먼저 양을 먹여야 돼, 네가 해야 될 게 이거야"가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변함없이 사랑한다"라는 것을 먼저 알려주시는 거예요.
우리들도 이렇게 예배할 때, 주님 앞에 나올 때,
주님께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이 생수의 은혜, 우리의 목마름을 먼저 채워주십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가 부르심의 자리에서 양을 먹이는 사명을 감당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냐면,
오늘 본문의 말씀 요한복음 7장 38절의 이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여러분, 강물이 흘러가는 곳은 식물이 자라납니다. 동물이 와서 물을 먹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마을이 형성이 돼요. 물이 흐르는 곳에는 생명이에요.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임한 이 목마름의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안에 임한 이 은혜를 가지고
우리가 양을 먹이는 사명을 감당하며 나아가는 우리들을 통해 주의 손이 함께 하여 강물이 흘러가 주변을 살려내는 것처럼,
우리를 통해 가정이 살아나게 될 것이고, 교회가 살아나게 될 것이고,
우리 주변이 살려내는 역사를 주님은 이루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우리를 통해 그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거예요.
베드로를 찾아오시는 이유도,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시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그 일이 일어나야 되기 때문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이야기를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 이름은 추산교회인데요.
여러분, 추산교회 이름을 들으면 시골 같아요? 도시 같아요? 그렇다고 또 크게 시골이라고 말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저 교회 사진인데요. 밤중에 한번 찍어봤어요. 저만 보기 아깝더라고요. 저렇게 주변이 깜깜합니다.
주변이 다 산이고요. 가장 밝은 빛이 십자가고요. 그 앞에 가로등이 있는데, 한 50가구가 안 되는 리 단위 마을입니다.
저 동네에 저희 교회가 있는데, 저희 교회 주변에 저희 동네에 엄청난 발전이 있었어요.
2년 전에 어떤 발전이 있었냐면 버스 정류장이 생겼어요. 그래서 버스가 다녀요. 버스도 서요. 엄청난 발전이에요.
그런 동네입니다. 그런 동네에 제가 한 15년 전에 부임을 했는데요.
가서 보니까 시골 교회가 처한 그 열악한 상황들이 있었어요. 제가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 "시골 교회에 열심히 해도, 시골은 안된다. 그러니까 젊을 때 도시로 가라. 젊었을 때 도시 갈 생각해"
(그때 제가 젊었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요. 여러분,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고요. 사람들에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시험 들고 낙심하고 절망하는 건 세상의 소리,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때 시험 들고 낙심해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때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소리는, [기대하게 만들고요. 소망을 갖게 만듭니다.]
그때 들렸던 하나님의 소리가 뭐였냐면 이거였어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 시골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시겠다라는 그런 소리를 들려 주셨어요.
그걸 붙들고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많은 간증들이 있지만, 시간이 없기 때문에 다 얘기할 수 없고, 저희 교회 다음 세대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토요일에 길거리에 있던 여자아이들 무리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교회에서 함께 먹고 같이 생활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이제 자연스럽게 그게 다음 세대 사역이 시작되었어요. 그 중에, 이제 운행을 하다가 한 집에 가게 되었는데
그 집에는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와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가 살고 있었는데요.
집에 가보니까 집이 엉망인 거예요. 그래서 물었어요.
'야, 어른들 안 계시니?' 물었더니, 이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이혼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시골에 있는 할머니 손에 키워지고 이제 자랐는데, 할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이 남매 아이들만 남게 된 거예요. 집이 엉망이에요.
그래서 이 여자아이는 맨날 학교만 끝나면 나가서 방황하고 다녔고,
남자아이는 누가 돌보지 않으니까 빼짝 말라서 집에서 방에 틀어박혀서 그냥 게임하는 거예요.
방법이 없었어요. 제 아내랑 가서 짐을 다 싸서 저희 집에 데려왔어요.
그렇게 그때부터 함께 지내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15년이 됐어요.
이 아이들이 저희 딸이 되고 저희 아들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희 아이들이 얼마나 잘 자랐는지, 정말 멋지게 아름답게 잘 자랐어요.
저희 딸아이는 공부를 잘해서 늘 전교에서 1등을 했어요. 여러분, 전교생이 몇 명인지 물어보지 마세요. 시골이니까...
전교생이 30명인데, 거기서 전교 1등이잖아요.
아주 열심히 공부도 하고, 아주 좋은 사람을 또 만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결혼도 하고, 다 잘 자랐습니다.
이제 그렇게 시골에서 이런 아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몇 개월을 같이 지내기도 하고, 또 며칠을 보내기도 하고, 그러면서 저희 교회에서 아이들이 항상 바글바글했어요.
저희 사택에서 항상 아이들과 지내면서 다음세대 사역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 토요 예배였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제가 이 말씀이 믿어지는 거예요. 그래 아이들한테 얘기했어요.
'야, 이 말씀이 진짜야. 너희가 믿으면 이 말씀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전했더니, 이 아이들이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같이 기도하는데요.
우리의 토요 예배 가운데 우리 아이들한테 마가의 다락방에 임했던 성령의 은혜가 임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막 방언을 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환상을 보는 거예요. 어떤 남자아이가 막 고등학교 2학년 아이가 막 울어요.
그래서 왜 우냐 물어봤더니, 예수님이 십자가 달려 죽으신 게 내 눈앞에서 보인다는 거예요.
저도 놀랬어요. 그래서 이 사건이 나의 사건이 믿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놀라운 은혜들이 막 임하니까, 그래서 제가 아이들한테 이렇게 얘기했어요.
"얘들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셨는데, 우리 어떻게 해야 될지 기도해 보자"
그리고 같이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릴 통하여 강물의 은혜,
우리만 은혜를 입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은혜가 강물이 되어 흘러가기를 원하시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시골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예배하기 시작하고, 수련회를 하고,
또 주변에 있는 교회들을 불러서 계속 집회하면서 그들에게 은혜받는 일들을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모여서 수련회를 하고 집회를 하는데,
저렇게 많은 친구들이 와서 같이 은혜를 나누고 우리 이 시골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말씀하셨잖아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통로로 사용하실 거라"고... 그런 통로로 저희 교회를 사용해 주셨어요.
놀라운 건 뭐냐면, 저희 아이들에게 임했던 은혜가 거기에 모였던 아이들에게 똑같이 임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아이들이 은혜를 받고 학교에 가서 고등학교 중학교마다 기도 모임을 시작했어요.
그들 스스로, 은혜를 받고 이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마다 모여서 기도했어요.
그냥 기도하지 않았어요. 수련회 때처럼 똑같이 뜨겁게 열정적으로 기도했어요.
선생님들이 깜짝 놀래서 못 하게 했어요. 종교활동 하는 거 아니라고..
그래도 이 아이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 그렇게 모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지켜내려고 애를 썼어요.
지금은 저희 동네에는 이제 태어나는 아이들이 없어요. 초등학교도 폐교가 됐고요. 중학교도 폐교가 됐고,
이제, 군에 고등학교가 하나밖에 없어요. 아이들이 많이 줄었어요.
그런데도 고등학교에서는 지금도 기도 모임이 계속되고 있고요.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제 폐교가 되고 아이들이 없지만,
이 아이들이 저희 교회에 다시 돌아와서 이 아이들이 장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또 결혼을 하고, 그리고 자녀를 낳게 되어서 저희 교회는 시골에 있지만, 다음 세대 사역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저희 가정에 정말 큰 고난의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부흥회를 앞두고 있었는데, 저희 청년들이 차를 타고 간식을 먹으러 갔다가 안 오는 거예요.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빨리 와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 보니까, 아이들이 타고 갔던 차가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있는 거예요.
5명이 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네 명의 아이들은 멀쩡해요. "야, 다친데 없냐?" 보니까 멀쩡해요.
그런데 한 명, 중학교 2학년인 저희 딸아이가 안 보이는 거예요.
보니까, 우리 아이가 낭떠러지 밑에 굴러 떨어진 차 옆에 엎어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막 깨웠어요. '괜찮냐? 성은아 괜찮아?' 그랬더니,
저희 딸아이가 그러는 거예요. '아빠, 나, 너무 아파. 움직일 수가 없어' '뭔가 큰일이 생겼구나'
구급차가 와서 이제 가까운 대학병원에 갔어요. 그랬더니, '여기서 안 된다.' 여기서 안 된다는 거예요.
저는요, 제 딸을 너무 사랑하거든요...
저는 물론 천국에서 만날 거지만, 살아있는 동안 딸하고 이별한다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 순간이 온 거예요. 여기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서울로 갈 시간이 안 되니까 원주에 응급수술을 할 수 있도록 다 준비해 놓을 테니까 빨리 가라'고 했습니다.
제 아내한테 "여보, 얘 지금 의식 있잖아. 의식 있을 때, 당신 천국 소망 심어줘.
예수님 얘기하고, 하나님 얘기하고, 그리고 천국에 대한 이야기 해 줘.."
그렇게 보내고, 그 차를 따라가면서 하나님을 향해서 정말 절규했습니다.
"하나님, 이건 아니잖아요. 제가 시골에 와서 아이들하고 뒤엉켜 살면서 우리 아이들은 챙기지도 못하고,
우리 아이들은 뒷전이었는데, 항상 아이들 살리려고 먼저 했는데, 하필 왜 저희 아이입니까?
이건 아니잖아요. 하나님, 살려주셔야 돼요.."
옆에 있게만 해 달라고 그렇게 막 하나님께 절규하면서 갔는데, 가서 보니까 상태가 심각하더라고요.
이 차가 굴러 떨어지면서 아이가 튕겨 나와서 그 차가 밟았던지 쳤던지 해서 골반뼈가 다 부러졌어요.
그러면서 이 부러진 골반이 장을 다 찔러버린 거예요. 장 파열이 일어나고, 장기도 다 다치고,
피도 너무 많이 흘리고 상태가 너무 안 좋은 거예요. 수술을 해 봐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이제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지금 저 모습은 수술을 받고 나와서 한 열흘 정도 지나고 난 다음의 모습이에요.
그때, 아이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수술실 앞에서 아내하고 그냥 울고만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말씀이 생각났거든요. 시편 57편이 생각이 났어요.
여러분, 여러분들의 위기 순간에, 정말 고난의 순간에, 정말 힘들 때..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말씀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주일에 예배 때 들었던 말씀이든, 여러분들이 묵상했던 말씀이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생각날 때가 있어요.
그 말씀은, 여러분들을 살리시려고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걸 붙드셔야 됩니다.
저도 그 말씀을 붙들었어요. 그리고 그때 부흥회를 하게 되고, 그 부흥회가 우리 교회를 살렸어요.
우리 성도님들이 이 아이를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하시고요.
전국의 목사님들 사모님들 성도님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저희 아이를 위해
정말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정말 많이 중보해 주셨어요.
그리고 저희 아이에게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었고요.
물론 수술을 많이 하고, 또 장도 반은 절제를 하고, 여러 가지 감당해야 될 이 후유증들이 있고 장애들이 있지만,
지금은 일상생활을 다 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다 회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일으켜 주셨어요.
저희 아이가 이제 장을 다치고 또 골반을 다쳤기 때문에 늘 누워만 있었어요. 누워서 손만 움직일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점차 회복이 돼서, 정말 오랜만에 처음 앉게 되었어요. 휠체어에 앉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때 이제 처음으로 제 아내가 이 아이를 샤워실에 데리고 가서 씻기는 거예요.
그런데 이 아이가 막 우는 거예요. 갑자기 엉엉 우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그렇게 얘기하더래요.
샤워를 하면서 거울에 비친 자기의 배의 흉터를 처음 본 거예요.
이 아이가 큰 수술을 다섯 번을 받아서 배에 수술 자국(흉터)가 많아요. 그러니까 그걸 보고 우는 거예요. 나 어떻게 하냐고,
그때 나이가 중학교 2학년이었어요. 나 친구들하고 같이 기숙사 생활도 해야 되고, 친구네 집도 가야 되는데,
나 이거 흉터 땜에 어떻게 하냐고 막 우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 아내가 참 지혜로워요. 그렇게 얘기해 줬대요.
"성은아, 너 잘 생각해 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는지 아니?
손에 못 자국, 옆구리에 창 자국 다 깨끗이 회복된 채 나타나지 않으셨어.
그 상처 자국 그대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그것을 그대로 보이셨어.
왠지 아니? 그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이고, 그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했던 예수님이고,
그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예수님이심을 알려주시는 거야.
야, 너는 평생 이 흉터가 지워지지 않겠지만, 너는 이 흉터를 보면서
'나는 왜 나만 다쳤어. 5명 중에, 나는 이렇게 큰 수술을 받고 고통 당해야 되고, 평생 장애가 남고, 난 이렇게 살아야 돼.'
너는 그렇게 이 흉터를 보며 원망하고 불평하면 안 돼. 너는 이 흉터를 보며 하나님이 살리신 은혜들을 생각해야 돼.
하나님이 날 살리셨지! 하나님이 나를 일으키셨지! 난 지금도 걷고 있지!
난 지금도 살아있지! 난 지금도 생활하고 있지! 무엇보다 하나님이 나에게 비전을 주셨지!
너는 그걸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어야 돼"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은 일도 많았지만 어려운 일들도 있었을 거예요.
예수를 믿는다고 어려움이 없진 않았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기억들을 하고 있습니까?
정말 주님과의 만났던 뜨거움의 은혜들, 주님이 함께하셨던 그 은혜들을 붙들고 날마다 날마다 기대하며 승리하며
'아, 이번에도 주님이 이렇게 역사하실 거야.' 이렇게 기대하며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예전의 그 아팠던 기억들, 예전의 힘들었던 일들, 상처들을 다시 끄집어내서
또 이렇게 힘들어지면 어떻게 하지? 또 이렇게 아픔을 경험하면 어떻게 하지?
여러분, 그렇게 불안해하며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부족하지만, 올 초부터 곳곳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요.. 정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정말 많은 안타까운 이야기들도 듣고 있어요. 여러분들도 아실 거예요. 세상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느끼고 있잖아요. 교회도 많이 달라졌어요. 사람들도 많이 달라졌어요. 많은 것들이 변했어요.
그런데 제가 말씀을 전하면서 여러분들을 만나면서 많은 게 달라졌지만, 하나는 안 달라졌더라고요.
그 달라지지 않은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전이나,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경험했던 그 은혜나,
제가 방황하다가 다시 주님을 찾아 주님 옆에 나왔을 때의 그 은혜나,
그리고 곳곳에서 말씀을 전할 때 그 예배 가운데 임하는 은혜나,
이 시간에 우리가 함께 누리는 이 은혜도 마찬가지로 ※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이 없더라고요.]
다 변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다시 우리를 살리시고, 그 변함없는 사랑을 알려주시고, 다시 일으키시고, 회복케 하셔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은 여전히 이 살려내는 역사를 이루시길 원하시더라고요.
여러분, 오늘도 이 온가족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자녀들과 가족들과 함께 나온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이 변함없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신다고,
여러분들의 자녀들, 여러분들의 가정을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함께하고 계신다고,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여러분들에게
분명히 다시 여러분들을 일으키시고, 여러분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 말씀하실 거예요.
"내 양을 먹여야 된다. 살려내야 된다."고...
여러분을 통해서 그 일이 일어나야 되기 때문에 주님은 여러분들에게 사명을 또 부여해 주실 거예요.
오늘 이 시간에, 그 은혜를 누리며 주님 앞에 나아가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 갖겠습니다.
♬ "주가 일하시네" 우리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 날이 저물어 갈 때 빈 들에서 걸을 때~
그 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될 때 빈 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