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서초·강남·송파구) 중층(대개 10~15층) 단지들의 재건축 사업이 잇단 호재에도 불구하고 거북이 걸음이다.
현 정부 들어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지상 건축연면적 비율)과 안전진단 규정이 완화되면서 중층 단지들은 사업에 물꼬를 텄다.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올 3월 4수 끝에 안전진단을 통과했고, 지난달에는 잠실 주공5단지가 안전진단 문턱을 넘었다.
이 덕에 30여 단지 3만 가구 정도로 추정되는 강남권 중층 단지에 투자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는 달리 사업이 진행 중인 중층 단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올 초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현재 건축심의가 진행 중인 논현동 경북과 대치동 청실, 지난해 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안전진단을 준비 중인 삼성동 상아3차, 정비계획수립에 들어간 대치동 홍실 아파트 정도다.
소형 의무비율 등도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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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청 주택과 고재풍 재건축팀장은 “은마 아파트를 계기로 중층 단지 주민들의 재건축 기대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움직임을 보이는 단지가 별로 없다”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매수세도 뜸하다. 서초구 서초동 L공인 김모 사장은 “중층 단지 주민들이 사업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적다보니 매수세도 거의 없다”고 전했다.
사업이 좀처럼 활기를 띠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층 단지가 갖고 있는 특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중층 단지는 기존 용적률이 200% 안팎으로 높은 편인 데다 중형 주택이 많다. 그러다 보니 규제 완화 덕을 보더라도 가구 수나 주택 크기를 기존보다 확 늘리거나 키울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전용 60㎡ 이하 소형주택 의무비율, 층수 규제 등은 그대로다. 디에스포럼건축사무소 박향철 부장은 “일부 중층 단지들은 법정 상한선까지 용적률을 올린다 해도 소형의무비율 등으로 일부 주민들은 집 크기를 줄여야 한다”며 “이를 피하려면 모든 주민이 집 크기를 지금보다 10%만 키워야 하므로 사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조권 등의 건축 규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법정 상한 용적률을 다 찾을 수 없고, 층수 규제로 쾌적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주택경기 좋아져야 활기 띨 듯
서울시가 재건축 기본계획을 수립 중인 압구정동에서는 기부채납 비율(25%)이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다. 압구정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25%를 기부채납하면 남는 게 없다며 주민들이 손을 놓고 있다”며 “하반기 확정될 기본계획에서 기부채납 비율이 내려가지 않으면 재건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남권 아파트 값이 약세를 보이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J&;K부동산투자연구소 권순형 소장은 “재건축 사업은 주변 아파트 값이 올라야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인데 강남권 아파트 값 전망이 불투명하니 쉽게 사업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간 해묵은 갈등도 발목을 잡고 있다. 서초구청 건축과 최명환 주무관은 “잠원·반포동 등지의 일부 중층 단지들은 주민들간 소송으로 수년째 사업이 멈춰 서 있다”며 “언제쯤 사업이 재개될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잠실 주공5단지만 해도 재건축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어 조합 설립(주민 75% 이상 동의)부터 삐걱거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주택시장이 나아지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두성규 건설경제연구실장은 “강남권은 기본적으로 주택 수요가 많고, 강남권에서 새 아파트를 공급할 유일한 수단이 재건축이므로 주택경기가 좋아지면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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