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주일 설교말씀 / 김정훈 목사
말씀 : 민수기 9:15-23
제목 : 광야에서는 하나님이 일등입니다
(23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
우리, 좌우 양 옆에 있는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당신은 1등입니다!" 인사하겠습니다.
한 번 더 인사하겠습니다.
"당신도 하나님을 1등으로 모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1등으로 여기시고, 우리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고, 가장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도 1등으로 모시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를 가장 소중히 여기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를 부족하다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어 자녀 삼아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 사랑과 그 은혜에 감격하여 이 시간 주님 전에 나와 예배드리오니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아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에게 한량 없는 은혜와 응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섰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꼭 필요한 은혜의 말씀으로 응답의 말씀으로 우리의 갈한 영혼을 해갈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베푸실 은혜를 기대하며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제가 겪었던 황당한 경험을 나눔으로써 말씀을 시작하려 합니다.
여러분, 혹시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어버린 적 있으십니까?
무슨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어버리냐 하는 그런 표정이신데요.
분명 표지판을 보고 가고자 한 동을 찾아가고 있었는데,
더 이상 그 동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나오지 않고 제가 찾던 동이 나오지 않는 겁니다.
코로나 기간에 우리 교회에서 진행했던 두드림 블레싱을 진행하면서
제가 교회에서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서 찾아갔던 그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분명 제가 찾던 동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보고 따라갔는데,
더 이상 그 동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나오지 않고, 그 주변에도 아무리 찾아도 그 동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맡고 있는 교구에서도 약속한 심방 시간이 늦어서 지하주차장으로 허둥지둥 내려갔는데,
잘 따라가던 표지판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길을 잃어버린 겁니다.
안 그래도 시간이 늦었는데, 그래서 구역장님에게 전화드려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목사님들께서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다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싶어서 인터넷을 뒤져 보았습니다.
제가 찾아보니까, 배달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저와 비슷한 황당한 경험을 하셨다라는 이야기가 올라와 있는 것들을 봤습니다.
배달을 마치고 내려왔는데 분명 주차해 놨던 그 자리에 자신의 차가 없어졌다라는 겁니다.
한참을 찾아보니, 그 아래층에 자신의 차가 있더라는 겁니다.
본인은 분명 한 층을 내려온 줄 알고 무심코 배달하고 지하 1층으로 내려왔는데, 자신의 차가 지하 2층에 있더라는 겁니다.
알고 봤더니, 어떤 진입로로 내려가느냐에 따라서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한 번만 내려와도 바로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그런 아파트가 있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희 교구의 어느 권사님은 심방하는 날이 다가오면
저에게 아주 상세하게 주차장 진입로부터 중요한 지점의 사진을 찍어가며 상세하게 설명을 붙여
길을 잃어버릴 것 같은 교구장인 저에게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스티브 도나휴'가 쓴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라는 책에 보면,
저자는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기 위해서 가던 중에 인살라라고 하는 도시를 지나면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분명히 잘 깔려있는 포장된 도로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 포장된 도로가 없고 진정한 사막이 나타나고 진정한 광야가 시작되었다라는 겁니다.
마치 제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잘 따라가던 표지판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제가 찾던 아파트의 동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그는 잘 포장되어 있는 도로를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에 더 이상 포장된 도로가 없고 진정한 사막이 나타난 것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사막을 인생에 비유합니다.
우리네 인생도 걸어가다 보면 이러한 순간을 만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잘 따라가던 길이 사라지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는 사막과도 같은 순간,
광야와도 같은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단순히 차가 가던 길을 잘못 들어가고 길이 막히면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인생은, 인생이라는 길은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길입니다.
아무리 후회한다고 해도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길이 우리네 인생의 길입니다.
그러하기에 광야 같은 인생 사막과도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여러분, 후회하는 일이 없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혹여나 광야 같은 순간을 맞이하고, 진정한 사막과도 같은 순간을 경험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통해서 사막과도 같은 순간을 견뎌내고
마침내 승리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 방법을 우리가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광야 같은 이 인생길을 살아가는 동안
그 길을 어떻게 가야 하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시간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간 애굽에서 종으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애굽에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가 점차 많아졌고
그 결과 애굽 왕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적과 내통하는 것이 두려워 그들을 종으로 만들었다 기록합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이스라엘에게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모세였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열 가지 재앙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 주십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 일로 그들은 하나님께 감격했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비록 상황은 힘들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키시고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날마다 느끼면서 그렇게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걸었던 그 광야는 그리 녹록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오랜 기간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 200만 명이 넘는 그 사람들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간다는 것은 여러분,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하였고, 출애굽한지 2개월 뒤에 시내산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고,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율법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과 함께하시기 위한 성막을 세우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 제 2년 1월 1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성막을 완성하였을 때 일어났던 일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본격적으로 광야를 행진해야 될 그들에게
반드시 그들이 광야길을 걸으면서 지켜야 할 방법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통해서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게 되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우리가 먼저 살펴보기를 원하고,
비록 광야 같은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인생길에서 그러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기를 소원하고
우리가 그 방법을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게 될 하나님은
첫째로, 그들과 함께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을 세운 날이라고 하는 말씀, 그 시점을 가리키는 말로 오늘 본문은 시작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 성막이 세워지던 그날, 성막 위에 구름이 덮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출애굽기 40장 35절에 보면,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모세가 받은 설계대로 성막을 잘 지어졌고,
그 성막을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뒤덮었다"라고 기록합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거룩한 현존이 머무는 곳이고, 동시에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자신의 임재를 나타나기 위해, 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성막을 세우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광야에 있던 그들은 성막을 보면서 자신들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고,
자신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민수기 2장 17절에 보면, 행진 간에 성막의 위치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가 나옵니다.
들어 보십시오. "그 다음에 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있어 행진하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하다가 머물게 되면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게 됩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세 개의 지파씩 진을 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중심에 성막이 위치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스라엘 백성 한 가운데에 누가 계신다는 겁니까?
하나님이 거하신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모든 지파 한가운데 있는 성막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그들은 보고 느낄 수 있었다라는 겁니다.
그렇게 본격적인 광야 행진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걸어가는 그 모든 길에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라고 하는
성막을 통해서 그들은 가시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라는 겁니다.
그 성막이 세워지는 그날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며,
나는 너희와 함께 할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되던 날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 광야에서 자신들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광야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게 되는 하나님은
둘째로, 그들을 주목하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성막이 세워지던 그날, 구름이 성막을 덮었고
또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성막이 세워지던 그날 그 당일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16절 말씀에 보면,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항상'이라고 번역된 이 히브리어 단어의 뜻은, '끊이지 않고', '계속적으로', '날마다 규칙적으로'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구름과 불 모양이 나타나는 현상이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매일매일 계속해서 있었다라는 겁니다.
찌는 듯한 낮의 더위와 혹독한 밤의 추위가 거듭되는 광야에서
40년의 긴 기간의 여정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견딜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처럼 그들을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항상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과 동행하시며 그들을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행진할 때에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얼마든지 다른 모양, 다른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하실 수 있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과 함께 동행하셨을까요?
얼마든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셨다면 다른 형태로 나타나셔서 그들을 보호하실 수 있는 분이신데,
왜 하나님은 굳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나타나 보이시고 인도하셨을까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처음 등장하던 출애굽기 13장의 말씀을 살펴보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나온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낮에 덥다고, 밤에 춥다고, 밤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불평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허락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할 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배가 고프다고 원망할 때,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의 배를 채우셨어요.
그런데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허락하실 때, 그들이 불평했다라는 말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더라는 거예요. 좀 달랐습니다.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왜 허락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것들이 있는지도 아마 몰랐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구하지도 않았는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것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이었습니다.
중동의 광야를 걸을 때, 내리쬐던 그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 걸어가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생각하실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 그늘을 만들어 주실 수밖에 없으셨어요.
차디찬 광야에서 추위에 떨며 밤을 보내야 될 내 사랑하는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바라보실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 따뜻하게 해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광야길 내내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셨다라는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뭐가 필요한지를 알고 계신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신다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광야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으셨다라는 말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에게 뭐가 필요한지, 그들에게 어떤 것이 있어야 되는지 하나님은 아셨다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신명기 8장 4절에서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를 주목하고 계시기에,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셨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러하기에 불평할 수 없었노라고 그들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주목하시는 하나님을 시편 기자는 시편 121편 3절과 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아멘!
*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분이시다"라고 고백합니다.
"한 순간도 단 한 번도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광야길을 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통하여 그들을 주목하고 계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며 그들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난으로 이르게 하시겠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가셨습니다.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면서 자신들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으시는 하나님,
우리를 주목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그들은 날마다 날마다 40년 동안 느끼며 광야를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길에서 자신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본문 17절부터 [구름이 하게 되는 역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진을 치게 하거나, 머물게 하거나,
아니면 다음 번 목적지를 향하여 진을 거두고 행진하는 역할을 구름이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와 현현을 상징하는 그 구름의 역할은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행진을 인도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들이 표지판 하나 없는 광야길을 걸으면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보십시오. 구름이 성막에 떠오를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행진해야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친히, 주님께서 친히 그들을 인도하셨다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그 진영 한가운데 성막이 있었다라고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계신 곳 성막을 바라볼 수 있었고, 그 성막의 상황을 살필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 나왔더니, 자연스럽게 늘 하나님께 집중하며 살 수가 있었습니다.
성막의 상황을 매일매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집중하며 살아갈 때,
그들은 온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고, 길을 알 수 없었던 광야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외롭고 차가운 광야에서도 그들에게 다가오시며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그들은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마실 물이 없고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광야에서도
그들은 그들을 주목하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막막한 광야에서도 그들은 친히 자신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척박한 광야에서 살아낼 수 있었냐라는 겁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이러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냐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좀 다르게 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어떻게 살아내야 하냐는 겁니다.
다르게 말하면, 광야 같은 인생길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에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말씀을 주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채우시며 함께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그 방법을 오늘 말씀이 가르쳐 주시는데
성경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아가야 한다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목적지를 빨리 가려고 노력하고 애쓰지만,
하나님은 빨리 가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우리는 목적지를 갈 때에, 내 경험과 내 지식과 내 생각대로 가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네 생각, 네 지식, 네 능력, 네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가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철저하게 그분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17절)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광야에서, 이제 출발해야 되는 그 문제를 두고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자, 이제 날씨가 좋으니 출발하거라"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아요.
"지금 딱 걷기 좋은 계절이다. 이제 가자" 그렇게 말씀하지 않아요.
여러분, 진을 치는 장소를 결정하는 문제를 두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8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다" 기록합니다.
"여기서 천막 치기 딱 좋은 땅이다. 여기서 천막을 칩시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여기 마실 물이 있으니 이제 여기에 진을 쳐라" 그렇게 말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쉬고 출발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랫동안 걸어서 이제 걸을 힘이 없으니, 여기서 쉬어야 되겠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하지 않아요.
미안하지만, 아직도 걸어갈 힘이 남아 있지만, 하나님이 '여기서 쉬어야 된다.'
구름이 멈추면, 그들은 자리에서 쉬어야만 했습니다.
철저하게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그들은 살았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진하였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진을 쳤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18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19절)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20절)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
(23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아멘!
18절에서도, 19절에서도, 20절에서도, 23절에서도...
그들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렇게 광야를 걸어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철저하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광야를 걸었기에 채우시는 하나님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광야를 걸었기에 그들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광야를 걸었기에 길이 보이지 않는 광야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겁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철저하게 살아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내 생각, 내 경험, 내 뜻대로 살았다면 그들은 약속의 땅을 절대로 차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하기에 광야에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되고,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됩니다.
이제 여러분은 광야같은 인생길에서 누구를 의지하며, 누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누구와 함께 걸어가시겠습니까?
그 광야같은 인생길에서 사막과 같은 상황에서 내 힘과 내 능력으로 한 번 해 보고,
그것도 안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고, 그나마도 안될 때, 하나님을 찾으시겠습니까?
예전에, 저희 부부가 결혼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제 아내의 친구가 있습니다.
제 아내가 저랑 결혼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친구(미국에 있는 아내의 친구)가
'목사님 괜찮은 것 같은데 다시 기도해 보고 만나보면 어떻겠니?'라고 하는
그 권면이 결정적으로 저희 부부가 결혼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가 결혼한다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제 아내가 자기 미국에 갔다 와도 되겠냐라고 물었습니다.
돈 있으면 가라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대출을 받아 가더군요.
그 친구도 저희 결혼식 때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 정도로 친했기에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는 날, 이제 엄마 없이 지내야 될 아이들을 걱정하며
처갓집에 아이들을 맡기며 나올 때에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교회로 운전하며 오는 그 길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가 이제 미국 가는데, 결혼하고 처음으로 이제 떨어지게 되는데, 왜 자기는 기도해주지 않느냐라는 겁니다.
자기는 목사랑 결혼하면 그런 일이 있을 때 기도받을 줄 알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끄럽게 무슨 기도냐고, '교회 가서 내가 아무도 모르게 할 테니까, 잘 다녀오라'고 그랬더니,
제 아내가 그러는 겁니다. '도대체 니한테 나는 몇 등인데?'
그래서 장난으로 '3등이다.' 그랬습니다.
'1등은 하나님, 2등은 우리 아이들, 3등이 너다' 그랬습니다. 말 주변이 참 없지요.
그랬더니, 제 아내가 그럽니다. '나는 너한테 1등이면 좋겠다. 1등이면 좋겠다.'
'그래, 니 일등이다. 잘 다녀오라'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하고 출근해서 일을 하는데, 아내의 말이 자꾸 떠오르는 겁니다.
일을 하고 있는데, "도대체 니한테 나는 몇 등인데? 1등이면 좋겠다."
"도대체 니한테 나는 몇 등인데? 1등이면 좋겠다." 그 말이 자꾸 떠오르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말이 처음에는 아내의 말로 들렸는데,
나중에 되니까 이 말이 하나님이 저한테 물어보는 것 같은 겁니다.
"김 목사, 니한테 나는 몇 등인데? 나는 니한테 1등이면 좋겠다."
"니한테 나는 몇 등인데? 나는 니한테 1등이면 좋겠다." 그러시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척박하고 힘들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1등의 자리에 놓고 살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광야에서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그분과 함께 동행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살아가지 못할 때가 있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는 우리가 1등입니다.
그래서 광야에 있는 우리가 꼭 붙들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광야에 있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광야를 걸어가는 우리들을 주목하고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그 일을 겪고, 한동안 잊고 있던 옛날의 어떤 글이 생각났습니다.
인터넷에 떠돌던 작가 미상의 글이었습니다. 제목은 "내게 하나님은 3등입니다"라는 글입니다.
내게 하나님은 3등입니다.
1등은 하고 싶은 일
2등은 해야 하는 일
3등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해야 하는 일도 다 마치고,
그 후에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내게 하나님은 3등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하나님은 3등입니다.
내 힘으로 한 번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하고,
그나마도 안될 때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게 3등입니다.
거리에서도 하나님은 3등입니다.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내 자신,
그 다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그 다음에야 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내게 하나님은 언제나 3등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께 나는 1등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1등으로 도와주십니다.
내가 괴로워할 때는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오십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 생각될 때, 홀로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언제나 1등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1등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사를 제쳐 놓고 만나고
작은 고비 때마다 손을 꼭 붙잡는
내게 1등으로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1등이신 하나님을 나도 1등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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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분과 동행한다는 것이고,
그분과 동행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마음에 그분을 모시고 살아간다는 것일 겁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잘 따라가던 그 길이 끊어져 광야 같은 순간을 걷고 계신 분들이 혹여나 이 자리에 계신다고 한다면,
부디 하나님을 일등으로 모시고, 그분과 동행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왜냐하면, 광야에서는 하나님이 1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붙들고, 정말 그분의 말씀을 철저히 따라
우리의 걸음을 정말 주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동행길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이 시간,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혹시 이 가운데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지만, 잘 따라가던 길이 끊어지고
어찌할지 모르는 광야와 같은 길을 걷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붙들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아무도 도와줄 이 없는 광야길을 걷는다 하여도
광야에 길을 내시며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면 승리할 줄 믿사오니
하나님, 우리의 인생길에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달라고
이 시간, 주님 한 번 부르짖고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