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원치(女院峙) ~ 561.8m봉 ~ 고남산(高南山) ~ 통안재 ~ 매요리(梅要里) (백두대간 제31구간)
산행일자 : 2006년 11월 19일
산행장소 : 여원치 ~ 561.8m봉 ~ 고남산 ~ 통안재 ~ 유치재 ~ 매요리
산행모임 : 대전한겨레산악회 (58명)
산행날씨 : 맑음 (구름많다가 화창한 날씨)
산행시간 : 3시간 49분
산행거리 : 10.47km
백두산 장군봉을 출발하여 개마고원과 금강산을 지나 산행객들은 넘을 수 없는 분단의 아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철책을 뛰어넘어 남쪽의 첫 봉우리인 향로봉에서 잠시 쉬었다가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등을 지나며 얻은 피로를 중회지구에서 회복 한 후 덕유산을 힘있게 뛰어 넘어 지리산 천왕봉까지 남으로 이어지는 1,621.5km 의 거대한 산줄기를 풀어 놓는 거대한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르는 종주길도 어드덧 오늘이 마지막 종주길이다.
백두대간의 거대한 산줄기 중 전북 지역의 백두대간 산줄기는 민주지산 삼도봉에서 시작하여 대덕산, 덕유삼봉산, 덕유산의 향적봉을 비켜서 육십령을 지나 장수의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금남호남정맥을 분기 시키고 백운산과 봉화산을 지나 고남산을 솟구쳐 놓고 지리산 천왕봉으로 향하는데 이미 천왕봉과 영취산을 종주를 했기에 오늘은 여원치에서 고남산에 오른 후 매요리로 하산하는 아주 짧은 산행을 하는 날이다.
07시 58분 여원치(女院峙 477m)의 장교리마을에서 바라본 고남산(高南山 846.4m)의 모습
새벽에 들뜬 마음으로 일어나 배낭을 매고 용문네거리에서 대간호에 오르니 회장님께서 하는말 "오늘 정회원님들은 시민회관에서 작은 봉고차로 옮겨타야 합니다."라고 하신다.
이유인 즉 산행 예약을 받을 때 평소에는 44명 정원을 초과하면 정중히 사과하고 정원이 초과하였으니 부득이 다음 산행 때 함께할 것을 권하였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정원을 초과해서 예약을 받았다는 것이다.
덕유산휴게소에서 아침으로 찰밥을 나누워 먹은 후 다시 출항한 대간호는 순항을 하여 07시 50분에 여원치의 버스정류장 옆에 정박한다.
먼저 장교리에서 바라다 보이는 고남산(高南山 846.4m)의 고즈넉한 보습을 카메라에 담고 산행하기 전 행하는 준비운동을 한 후 저마다 배낭을 매고 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대간길에 오른다.
08시 05분 여원치(女院峙 477m)
산행하기 전 여원치의 버스정류장 앞에서 모처럼 58명이라는 많은 수의 회원님들을 모시고 기념촬영을 해 본다.
아직 날씨가 흐린 탓에 빛이 부족하여 사진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래 사진은 24번 도로에서 561.8m봉으로 향하는 들머리에 세워져 있는 푯말의 모습이다.
여원치는 남원과 함양을 잇는 24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로서, 옛날엔 영남과 호남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도로였다. 여원재는 전략적으로도 가치가 있어 임진왜란이나 민란, 반란 등이 있을 때마다 항상 쟁탈전의 대상이 되곤 했다.
08시 39분 561.8m봉을 지나
여원치 들머리에서 부터 야산만이 굽이굽이 연이어지는 은선의 대간마루금은 561.8m봉을 깃점으로 급하게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임도와 만나는 안부로 내려 선다.
오늘 나는 후미에서 주변의 풍광을 조망하며 여러 회원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요량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561.8m봉에 다다르니 송영래님께서 앞서 가시는 서너분의 회원님들을 불러 세우시더니 대간마루금은 이 지점에서 우측으로 향한다고 바로 잡아 주신다.
소나무가 잘 자라 솔향이 그윽하게 풍기는 산행로를 따라 무심코 걷다보면 우측으로 이어지는 대간마루금을 지나쳐 "강기리"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진행하기가 쉬운 지점으로 흔히 쓰는 말로 "알바"하기 좋은 곳이 561.8m봉이다.
송영래님과 나는 우측으로 이어지는 대간마루금을 따르며 우리가 걷고 있는 방향을 뒤 따르는 회원님들에게 알리기 위해 잇따라 "한겨레"라는 소리로 시그널을 보내며 장동재로 보이는 지점을 지나 제법 가파른 오르막 비탈길을 오른다.
09시 29분 지리능선을 조망하며
561.8m 봉에서 1시간여 동안 나즈막한 산과 작은 안부가 굽이굽이 연이어지는 능선의 대간마루금을 따라 걸으니 지난 산행에서 올랐던 고리봉(1,304.5m)과 수정봉(水晶峰 804.7m) 그리고 태극종주길에 있는 바래봉(1,165m)이 만들어 내는 능선이 보이고, 그 능선 너머로는 지리산 10경중 제2경 반야낙조(般若落照)로 유명한 반야봉(1733.5m)과 천왕봉(天王峰 1,915m)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이 지점(김해김씨의 묘가 있음)에서 지리산의 뛰어난 풍광과 함께 약간의 과일을 나누며 다리쉼을 하고 있으려니 아래의 산기슭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그 인기척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손중호님과 신현숙님등 여러 회원님들이 우리가 다리쉼을 하고 있는 쉼터를 향해 열심히 발품을 팔며 올라오고 있는게 아닌가.
561.8m 봉에서 이곳까지 오며 561.8m봉 갈림길에서 알바를 하여 후미인 우리 뒤를 따르게 된 10여명의 회원님들을 앞 세우며 천천히 산행을 했건만 아직도 여러명의 회원님들이 뒤를 따르고 있을 줄이야....ㅎㅎㅎ 나는 알바한 구지양님을 보며 한바탕 웃어 주었다.
09시 44분 로프가 메어져 있는 암릉을 오르며
아래 사진은 조금 위험하여 다른 회원님들은 비켜 지나는 멋진 바위에 올라 그 바위를 우회하는 한정현님과 이석춘님의 장난기 어린 모습을 담아 보았다.
09시 45분 멋진 조망바위에서
조망 바위에 서니 여원치(女院峙 477m)에서 고남산(高南山 864.4m)으로 이어지는 대간 능선과 여원치 너머 수정봉과 고리봉이 아스라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남원시가 고즈넉히 자리하고 있다.
09시 48분 남원을 등지고
조망바위에서 남원을 등지고 서서 포즈를 취해 본다. 이 조망바위부터 고남산(高南山 846.4m) 정수리 까지는 소나무숲길에 암릉이 곳곳에 솟구쳐 있어 산행하는 산행객들에게 재미를 주는 암릉길이 잇따른다.
아래사진을 보면 남원시의 고즈넉한 전경과 우측 증앙에 중절모 형상을 하고 있는 시루봉을 볼 수 있다.
09시 52분 고남산(高南山 846.4m)
고남산(高南山 864.4m) 정수리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니 오른쪽으로 흐르는 강줄기는 동쪽 방향이지만 산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느낌이고, 왼쪽으로 흐르는 강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며 앞쪽으로 흘러 내려오는 느낌이다. 그러므로 고남산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 강줄기는 낙동강으로 흐르고 왼쪽은 섬진강으로 흐른다.
고남산 정수리에는 "전북산사랑회"에서 설치해 놓은 푯말만이 정수리를 치키고 있는 가운데 흠뻑 수분을 머금은 찬 바람이 얼굴을 들 수 없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정수리에서 간단하게 기념촬영을 한 후 20여미터 동쪽 아래 고남산빗돌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09시 57분 고남산 빗돌 너머로 보이는 운봉(雲峰)마을
고남산빗돌이 있는 곳에서 동남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고리봉과 바래봉 그리고 덕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너머로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이 아스라이 보이고, 그 산기슭에는 철쭉과 판소리의 고장으로 불리는 "운봉(雲峰)"마을이 말 그대로 구름에 뒤덮힌 큰 지리산 자락 500m가 념는 고랭지에 넓은 터를 잡고 있다.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에는 멀리 진주의 남강으로 향하는 광천이 흐르고, 다리를 건너면 바로 앞에 황산대첩비와 어휘각이 세워져 있단다. 한때 나는 황산(695m)이라는 이름 때문에 백제 계백장군의 황산벌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착각했으나, 다른 산행객의 산행기와 송곡님의 설명으로 이 곳이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왜구와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황산대첩(荒山大捷)"으로 유명한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말인 1380년(우왕 6) 8월에 500여척의 배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온 왜구들이 금강 입구인 진포(鎭浦 지금의 장항, 군산)로 침입하여 약탈과 살육 등 만행을 저지르다 퇴로가 막히자 약관 16살에 불과한 아지발도(阿只拔都)를 대장으로 한 수천명이 경상도 지역을 우회하여 상주, 함양 등지를 약탈한 후 팔량치(八良峙)를 넘어 인월에 진을 치면서 한양으로 진격한다고 소문을 퍼트려 민심이 흉흉하여 당시 삼도(양광, 전라, 경상) 순찰사로 임명된 이성계(李成桂) 장군이 장수 이두란, 배극렴 등과 함께 남원에서 여원치와 운봉을 지나 황산 북서쪽의 협곡에서 적장을 활로 쏘아 죽이고 왜적을 섬멸시켜 대승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원래 1577년(선조 10)에 세웠던 황산대첩비는 일제시대에 비문이 전부 긁혀지고 허리가 두동강 난 채로 처참하게 파괴되었으며, 현재는 1957년에 새로 오석으로 만든 비가 세워져 있다. 도대체 일본인들은 여러가지 못된 짓을 자행한 업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왜 일본열도를 한번도 공격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이 일대는 재미난 지명이 많은데 운봉과 이웃한 인월(引月)은 황산대첩 당시 깜깜한 그믐밤에 밝은 달빛을 끌어와 환하게 비쳐준 곳이며, 인풍(引風) 역시 아군이 바람을 등지고 싸우기 위해 바람을 이끌어 온 곳이라고 전한다.
한편 역사의 숱한 곡절과 한이 서린 비전마을의 강변에는 판소리 동편제의 시조인 송흥록(宋興祿 1780~1863년경)의 생가와 동상이 조성되어 있으며, 지리산 정기를 받아 태동한 동편제는 섬진강 동쪽 지역인 남원·순창·곡성·구례 등지에 전승된 소리로서, 서편제의 계면조(슬픈 가락)와 달리 씩씩한 가락인 우조의 표현에 중점을 두고 감정을 절제하며 장단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고 한다.
09시 57분 고남산빗돌에서
고남산 정수리 빗돌에 오랜만에 여러 회원님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해 본다.
아래 사진은 송영래님을 담은 사진으로 송영래님은 "대전한겨레산악회"에서 실시한 백두대간 2차 종주에서 한번도 빠지지 않고 전구간을 종주(일면 땜방 없이)하고 오늘 마지막으로 고남산 산행을 마치면 전 구간을 종주.완주하시는 유일한 분이시다.
고남산 정수리에서 통안재로 이어지는 산행로는 처음에는 임도와 솔밭길을 넘나들다가 이내 완만한 내리막 비탈이 40여분간 이어진다.
통안재로 내려서면서 고남산(高南山 846.4m)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몇 번이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으나 고남산의 모습은 잡목들에 가려 좀처럼 그 모습을 허락하지 않는다.
10시 39분 ~ 11시 16분 통안재
통안재에 도착하니 예전에는 통행량이 많았음을 짐자케 할 정도로 넓은 임도가 가로 지르고 우측으로 조금 내려서니 안부와 함께 잘 가꾸어 놓은 묘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번 만복대 산행에서 약속했 듯이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모여 2차 백두대간종주 마지막 산행을 기리며 또한 하산 후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최현경님을 조금이나마 배려해 최영장군님께서 준비해 온 아욱된장국을 끓여 맛있는 점심을 먹고 배낭을 매고 일어서는데 회장님으로 부터 왜 빨리 내려오지 않냐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 내용은 2차 백두대간완주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산에서 어찌하여 늦장을 부리고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 일행이 점심식사를 준비하며 찹쌀떡과 약간의 과일을 나눌때 그 음식을 같이 먹고 이내 배낭을 매고 먼저 하산 하신 한 회원님이 "후미 일행이 빨리 하산 할 생각은 아니하고 산에서 라면을 끓리고 있다"라고 우리의 생각과 취지와는 상반되게 말을 잘 못 옮기는 바람에 일어난 해프닝 때문이었다.
11시 54분 매요리(梅要里)
풍수설에 의하면 매요리(梅要里)는 예부터 말의 허리처럼 생겼다하여 마을 이름을 말마(馬)자와
허리요(腰)자를 합하여 마요리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에 고승 유정대사(사명당)가 산천을 유람하다가 마요리에 당도하여 매화는 순결 하여 이 마을에서 낳은 사람들은 매화 같은 순결하고 선량할 것이니 마요리를 매요리로 고치는 것이 지형과 인심에 합당하다고 한 후에 마을 이름을 지금의 매요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통안재에서 완만한 산행로 옆으로 가격이 폭락하는 바람에 생산비도 건질 수 없어 그냥 밭에 널브러져 있는 고랭지 배추와 무를 바라보는 농부들은 얼마나 가슴 아퍼 할까 라고 생각해 본다.
매요리로 넘어서는 작은 고갯마루에서 오늘 산행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지금까지 산행하는 내내 후미에서 온갖 궂은일 도맡으며 함께 산행한 후미 일행들의 모습을 담으며 오늘 산행을 마친다.
*** 오류나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을 남기세요.*^^* ***
2006년 11월 27일
강일구
아래 사진들은 산행 후 매요리의 운성초등학교(지금은 페교 되었음)를 잠시 빌려 그 곳에서 2차 백두대간완주 기념식을 갖고 뒤풀이로 통돼지바베큐와 하산주를 나누며 즐거운 오후의 망중한을 담은 사진입니다.
저는 아직 걸어야 할 구간이 여러구간 남아 있지만 18개월여 동안 비가오나 눈이오나 대간마루금을 종주하시어 오늘 드디어 백두대간을 완주하신 모든회원님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첫댓글 다시 산행하는 느낌이네요, 짧은 산행거리라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들이었는데 나중에 회장님 전화받고는 잠시의 쉼도 없이 종횡무진 걸었던 기억이납니다. 끝은 곧 시작을 의미하죠, 앞으로도 변함없는 산행기 부탁드립니다.
백두대간 완주를 축하합니다.*^^* 명산 산행에서도 즐거운 산행 함께해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샘터님의 관심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산이 좋아서 산행을 하다가 아무 생각없이 산행을 마치는 것 보다는 산행한 내용을 글로 남기면 어떠할까 생각하던 중 한겨레산악회의 산행기(샘터님의 산행기도 포함)를 읽고 난 후 산행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겨우내 남은 구간 종주하여 내년 봄에는 대간을 완주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