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하면서 한 이야기(10)
수심결 강의 1 –2 (2023.4.13. 서울 반야문화원)
修心訣(마음을 닦는 비결)
海東曹溪山沙門 知訥撰
(해동조계산사문 지눌찬)
海東
우리나라를 중국에서 海東(해동)이라 불렀다. 바다 동쪽이라는 말이다.
曹溪山
曹溪宗(조계종)이라고 할 때의 曹溪(조계)이다. 원래 조계는 중국 당나라 때 六祖(육조) 혜능 스님이 머물었던 산 이름이었다. 普照國師(보조국사)가 六祖(육조)스님이 쓰신 『六祖壇經(육조단경)』을 스승으로 삼고, 大慧宗杲(대혜종고) 선사가 쓴 禪(선)의 지침서라 할 수 있는 책 『書狀(서장)』을 벗으로 삼았다고 한다. 전라남도 순천 근교에 있는 산을 보조국사가 머물고부터 曹溪山(조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승보사찰 송광사가 있는 산이다. 원래는 송광산이라 불렀던 것인데 절 이름이 송광사가 되고, 고려 희종 때부터 산을 조계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沙門
沙門(사문)은 출가 수행자들, 스님들
인도에서는 스님들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출가 수행하는 풍습이 있었다. 출가 수행자를 통칭 사문이라 했다. 불교 스님들 뿐만 아니라 자이나교라든지, 힌두교 일부 수행 단체도 沙門(사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知訥撰
知訥(지눌)이 지었다.
三界熱惱 猶如火宅 其忍淹留 甘受長苦 欲免輪廻 莫若求佛
삼계열뇌 유여화택 기인엄류 감수장고 욕면윤회 막약구불
삼계(三界:욕계·색계·무색계)의 뜨거운 번뇌가 불타는 집과 같으니, 그 차마 머물러서 달게 긴 고통을 받겠는가? 윤회를 벗어나려면 부처를 구하는 것만 못하니
淹(엄) 담그다, 적시다, 머물다
三界熱惱 : 삼계의 뜨거운 번뇌가
三界 : 세 세계
중생이 사는 세계를 욕망의 정도에 따라서 세 가지로 구분하여 欲界(욕계) ․ 色界(색계) ․ 無色界(무색계)로 나눈다.
欲界(욕계) : 貪 · 瞋 · 痴(탐 ·진· 치) 三毒(삼독)을 바탕으로 해서 온갖 욕망을 가지고 사는 세계. 물질문명이 발달하는 오늘의 세상도 욕계에 속한다. 감정적인 것과 모든 외형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다.
色界(색계) : 정신적으로 상당히 수승한, 고요하고 맑은 생각으로 살아가는 세계. 그런데 그 욕망의 잔재가 없어지지는 않고 남아있는 세계. 色(색)은 물질을 뜻하는 것으로 五蘊(오온) 중 色蘊(색온)이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 줄어든 순수한 정신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색계 중생들은 욕계 중생들처럼 관능적 욕망은 없다.
無色界(무색계) : 색도 없어진 세계. 중생들은 거의 욕망이 없다.
우리는 먹어야 되고 마셔야 되고, 이처럼 육체를 위해서 추구하는 것이 많은데 무색계는 색이 없으므로 그러한 것이 없다.
熱惱
熱惱 : 뜨거운 번뇌
쉽게 말하면, 이 세상 중생들이 욕망으로 인해 일어키는 번뇌다.
猶如火宅 : 우리 살고 있는 세상이 불타는 집과 같다는 말
猶如 : ~과 같다
猶如火宅은 『法華經(법화경)』에 나오는 화택유(火宅喩)의 이야기다. 『法華經(법화경)』에는 이 세상을 비유해 놓은 이야기가 일곱 가지가 있고(法華七喩), 뒤에 샘 파는 비유(鑿井喩), 아버지가 아들보다 나이가 적다는 말이 나온다. 이를 ‘父少喩(부소유)’라 한다. 일곱 가지 비유에다가 ‘父少喩(부소유)’와 샘을 파는 비유인 ‘鑿井喩(착정유)’의 두 가지 비유를 합하면 아홉 가지 비유(九喩)가 된다. 이 아홉 가지 비유 중 첫 번째 비유가 ‘火宅喩(화택유)’이다. 『法華經(법화경)』 제3 비유품에 설해진 내용으로 불난 집에 노는 아이들을 아버지가 구해내는 이야기인데 철없는 아이들이 집에 불이 났는데도 놀이에 빠져 위험을 모르는 것이 안타까워 羊車(양거), 鹿車(녹거), 牛車(우거)의 수레가 있다고 아이들을 달래 불난 집에서 나오게 하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문밖으로 나왔을 때 큰 흰 소가 끄는 수레, 大白牛車(대백우거)가 있었다. 여기서 아이들은 중생들을 말하고 아버지는 부처님이다. 양거, 녹거, 우거는 성문, 연각, 보살의 삼승에 비유한 것이고 대백우거는 일불승에 비유한 것이다. 『法華經(법화경)』에서는 중생들이 윤회하는 세계인 삼계를 불난 집과 같다고 하였다.(三界無安 猶如火宅)
삼계의 뜨거운 번뇌가 마치 불타는 집과 같으니
其忍淹留
忍 : 차마, 참고
淹留 머물러서 --- 불타는 집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남아 있어서
淹(엄) 머물다
甘受長苦
甘 : 달게, 쉽게
甘受長苦 달게 긴 고통을 받겠는가 → 달게 긴 고통을 받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하는 뜻으로 한 말.
欲免輪廻
윤회를 면하라는 뜻에서 한 말.
윤회는 생사윤회. 윤회를 면하는 것이 고통을 면하는 것이다.
莫若求佛
부처를 구하는 것만 하지 못하니
若 : 같다
莫若求佛은 부처를 원하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윤회를 면하려면 부처를 찾아라, 부처가 되라. 부처를 구하려고한다는 말은 부처가 되려고 한다는 뜻
~~게 하라는 내용이다.
若欲求佛 佛卽是心 心何遠覓 不離身中 色身是假 有生有滅
약욕구불 불즉시심 심하원멱 불리신중 색신시가 유생유멸
만약 부처를 찾으려면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니, 마음을 어찌 멀리서 찾을 것인가.
이 몸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몸은 거짓된 것이어서 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지만
若欲求佛
만약에 부처가 되려고(부처를 구하고자) 한다면
佛卽是心
부처가 뭐냐 그걸 밝히고 있다. 부처가 곧 마음이다. ‘내 마음’이라고 할 때, 이 마음이 부처라는 말이다. ‘불교는 마음의 종교’라고 자주 말하지만, 우리가 마음을 모르고 있다. 우리가 마음을 반조할 때 ‘回光返照(회광반조)’라는 말이 있다. ‘빛을 돌이켜 반대로 비춘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창문을 통해서 창밖을 보게 된다. 창밖으로 내보내는 시선을 거두고 안으로 시선을 돌려 자기 안을 보라는 것이다. 불교의 참 공부는 ‘回光返照(회광반조)’하는 공부이다. 佛卽是心은 제 마음을 찾아 안에 있는 자기 부처를 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心何遠覓 : 마음을 어찌 멀리서 찾으리오
覓(멱)은 ‘찾는다’의 뜻,
마음을 어찌 멀리서 찾겠는가?
不離身中
내 몸 가운데를 떠나지 않는다. 내 마옴이 부처이니 나를 떠나서 부처가 없다는 말이다. 離는 여의다, 떠나다로 해석한다. 내 몸에 있는 내 마음, 그게 부처라는 것.
色身是假 : 색신(몸)은 거짓된 것이니
色身은 우리 육신을 말한다. 色(색)은 물질이니, 地 · 水 · 火 ·風(지수화풍)의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우리 몸은 수분이 제일 많다. 체온은 불기운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혈액이 순환하고 숨을 내쉬고 하는 것은 바람입니다. 몸에는 흙 기운이 들어 있다. 우리 몸은 사대가 합해진 것이 色으로 육체 – 이 몸뚱이를 말한다. 원소 이름으로 말하면 땅은 질소, 물은 수소, 불은 탄소, 바람은 산소라 할 수 있다.
색신이 거짓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뭐 그런 말을 하냐, 염세주의자냐”고 대들 것이다.
有生有滅 : 태어남이 있으면 소멸함이 있겠지만
생겨나면은 죽는다는 말이다.
내가 얼마 전에 고성에 계시는 송안 거사가 안내하여 남해 이순신 장군 유허비를 찾아가다가 내가 살던 고향 마음을 지나게 되어 내가 살던 집이 있던 골목을 살짝 염탐하듯이 가 본 적이 있다. 옛날 모습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다 바뀌어버려 있었다. 내가 살던 집은 새로 콘크리트 건물로 새로 지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내가 1970년도에 출가했으니까 내가 아는 어른들은 다 돌아가셨을 것이고, 후배가 한 사람 산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한 번 만나 볼까 해도 위치가 다 바뀌어서 그 집이 어느 집인지 알 수 없었다. 모처럼 고향을 가봤는데 어릴 때 뛰어놀던 뒷동산에는 큰 모텔이 들어서고, 아래의 마을 끝이 바닷가인데 항구도 어마어마하게 커져 있었다. 항구에는 등대도 있고 부두가 널찍하고 동력 어선들 수십 척이 정박해 있고 ...
좋게 보면은 많이 발달해 있었다. 그런데도 예날 모습을 볼수 없어 마음 한구석이 매우 허전하였다.
有生有滅, 즉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다. 몸은 죽는다는 말이다.
眞心如空 不斷不變 故云百骸潰散 歸火歸風 一物長靈 蓋天蓋地
진심여공 부단불변 고운백해궤멸 귀화귀풍 일물장령 개천개지
이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끊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육체는 죽으면 흩어져 불이나 바람으로 돌아가지만 한 물건(마음)은 길이 신령스러워서 하늘과 땅을 덮는다.’라 하였다.
潰(궤) 무너지다. 흩어지다
眞心如空 :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眞心은 참마음.
허공이 생기는 것인가? 허공이 없어지는 것인가? 앞에 有生有滅을 부정하면서 空(공)을 비유한 것이다. 진심은 허공과 같아서
不斷不變 : 끊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허공이 없어지는 때가 있는가? 지구 표면에 가까운 데는 공기가 탁해지는 이런 미세먼지가 있어서 日氣(일기: 날씨)를 말할 때는 하루하루 변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허공 자체가 변하는 건 아니다.
故云百骸潰散 : 그러므로 말하기를 내 몸은 흩어져
故云 : 그러므로 말하기를. 그러므로 예로부터 말해 왔다는 뜻이다.百骸潰散는 靈駕(영가)법문 할 때 설하는 <無常偈(무상게)>에 나오는 내용이다.
百骸 :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던 뼈와 살
潰 : 흩어진다.
潰散 : 흩어져 버린다.
불교는 화장법을 해서 다 태운다. 화장할 때에는 “불 들어가니 빨리 나오라”고 하는 말을 한다. 시신을 태우려고 불을 지피는데 꼭 외친다. 불 들어가니 火宅(화택)을 나오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火葬(화장)할 때 화덕에 시신을 밀어 넣는데 불을 지피면서“불 들어가요” 하고 외친다. 이처럼 몸이 재가 되어 地水火風(지수화풍)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歸火歸風 :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거든 → 없어지지만
一物長靈 : 한 물건(마음)은 길이 신령스러워서
一物 : 우리 마음
마음이 있으면 온갖 생각을 다 한다. 마음이 신비한 것이다.
長 : 길이, 언제나
蓋天蓋地 :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
이 한 물건(마음)이 우주 전체를 안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가 흔히 우주란 말을 쓰고 있다. 우주는 범위가 없다. 우주는 지구본처럼 이렇게 범위를 정해놓을 수 없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20세기 최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박사는 “지금도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지금도 우주는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楞嚴經(능엄경)』에도 ‘空生大覺中 如海一漚發(공생대각중 여해일구발)’이라는 말이 나온다. ‘허공이 마음(大覺)에서 생긴 것이 바다에서 한 거품이 일어난 것과 같다’라고 하여 우주를 바다 수면 위의 한 거품에 비유하고 있다. 우주가 바닷물에 떠 있는 거품 하나라는 말이다. 바다 전체가 무엇인가? 마음이다. 그러니까 우주가 아무리 팽창해도 마음을 따라오지는 못한다. 부피를 말할 때 마음의 넓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圓覺經(원각경)』에도 ‘無邊虛空 覺所現發(무변허공 각소현발)’이라 하여 ‘가없는 허공이 마음(覺)에서 나왔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많이 인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 一物이 마음인데 一物은 언제나 신령스러워서 천지를 덮는다는 것은 우주가 마음 안에 들어 있다는 말이다.
嗟夫 今之人 迷來久矣 不識自心是眞佛 不識自性是眞法
차부 금지인 미래구의 불식자심시진불 불식자성시진법
슬프도다! 요즘 사람들은 미혹됨이 오래되어 자기 마음이 참 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성품이 참된 법인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嗟夫 : 슬프도다!
탄식하는 말
今之人 迷來久矣 : 요즘 사람들이 미혹됨이 오래되어
迷 : 자기 마음에 대해서 생각을 못하다가 모르게 된 상태
不識自心是眞佛 : 자기 마음이 참 부처인 줄 알지 못하며
不識自性是眞法 : 자성(자기 성품)이 참된 법인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欲求法而遠推諸聖 欲求佛而不觀己心 若言心外有佛 性外有法
욕구법이원추제성 욕구불이불관기심 약언심외유불 성외유법
법을 구하고자 하되 멀리 성인들에게 미루며, 부처를 구하고자 하되 자기의 마음을 살피지 않나니, 만약 말하길 마음 밖에 부처가 있고 성품 밖에 법이 있다고 한다면
欲求法而遠推諸聖 : 법을 구하고자 하되 멀리 여러 성인들에게 미루며
求法 : 불교 수행은 법을 구하는 것이다. 法은 부처님께서 깨달은 진리, 인도말로는 다르마(dharma)다.
遠推諸聖 여러 성인들에게 미루며
이 말은 ‘성인이나 깨달을 수 있는 거지 나 같은 범부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느냐’‘성인이어야 진리를 아는 것이지, 범부가 무슨 진리를 알 수 있겠나?’는 식으로 생각하며 체념한다는 말이다. 포기하는 것을 나타낸 말이다.
欲求佛而不觀己心 : 부처를 구하고자 하되 자기 마음을 살피지 아니하나니
觀 : 관찰하다. 보다
欲求佛而不觀己心는 공부하는 방식이 틀렸다, 부처를 찾으려는 자세가 안되었다는 뜻.
若言心外有佛 性外有法인댄 : 만약 말하길 마음 밖에 부처가 있고 성품 밖에 법이 있다고 한다면
마음 밖에 부처가 있고 성품 밖에 법이 있다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
堅執此情 欲求佛道者 縱經塵劫 燒身燃臂 敲骨出髓 刺血寫經
견집차정 욕구불도자 종경진겁 소신연비 고골출수 자혈사경
단단히 이 생각을 고집하여 불도를 구하고자 하는 자이라면 비록 먼지수 만큼 많은 겁을 지나도록 몸을 태우고 팔을 태우고, 뼈를 두드리고 골수를 내고, 피를 내어 경전을 베끼며,
堅執此情 : 단단히 이 정을 가져서 → 이 생각을 고집해서
情은 감정, 생각
欲求佛道者 : 불도를 구하고자 하는 자일진댄
부처님의 도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일 것 같으면
縱經塵劫 비록 먼지 수 만큼 많은 겁을 지나도록
縱 : 비록
經 : 지나다
塵劫 : 먼지 수만큼 많은 겁을 지나가는 기간. 흙덩어리를 부수어 먼지가 되는 기간.
燒身燃臂 : 몸을 태우고 팔을 태우고
燒身供養(소신공양)의 이야기가 『등신불』에 있다.
스님들이 가끔 손가락 하나를 촛불에다 태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燃臂한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제 燃臂를 한 경우에는 계를 받을 때는 반드시 스님들이 비구계라든지. 비구니계를 받는다. 그때 燃臂를 하는데 요즘은 발톱에 초심지로 한다. 내가 통도사에 가보니 어떤 사람이 들어와 사는데 여름에 팔을 내놓고 일을 하는데 발톱에 燃臂자국이 있었다. 발톱에 연비자국이 있으니“너 어느 절에서 왔느냐?”고 물었다고 하였다.
敲骨出髓 뼈를 두드리고 골수를 내고
刺血寫經 : 피를 나게 하여 피로 경전을 쓰고
刺血 : 피를 찌르다. 찔러서 피가 나게 하다
燒身燃臂 敲骨出髓 刺血寫經은 고행을 한다는 얘기로, 마음을 잘못 먹고 고행해 봐야 소용없다는 말이다.
長坐不臥 一食卯齋 乃至轉讀一大藏敎 修種種苦行 如蒸沙作飯
장좌불와 일식묘재 내지전독일대장교 수종종고행 여증사작반
오래 앉아만 있으면서 눕지 않고, 묘 시에 한 끼만 먹으며 나아가 책장을 넘기면서 모든 대장경을 다 읽어서, 갖가지 고행을 닦더라도 이는 모래를 삶아 밥을 짓는 것과 같으니
長坐不臥 : 오래 앉아만 있으면서 눕지 않고
범어사 노스님 한 분이 젊었을 때 長坐不臥를 오래 하시었다. 해인사 스님한 분도 오래 長坐不臥하시었다. 앉아서 조금씩 자기는 하지만 항상 앉아 있는 것이다. 나도 젊었을 때 일주일은 밥 안먹고 잠 안 자고 물만 마시고 하였다. 나이가 열아홉 살 된 내 손상좌가 하나 있는데 이렇게 하겠다고 하여 못하게 했다. 겁도 없이 하려고 하여 철야기도와 삼천 배도 하고 몇몇 기도는 하라고 하여 얼마 전에도 하였다. 그 잠꾸러기가 참 부지런해졌다. 그렇게 잠 많던 사미 스님이 기특하게도 보통 저녁 9시 15분에서 9시 반에 잔다. 내가 반야암 카페에 항상 새벽 두 시 ~ 세 시가 되면 글을 올리는데 내가 어쩌다가 피로하거나 다른 일 때문에 늦게 올리면 전화하여“스님 오늘은 왜 ‘경전의 말씀’안 올리십니까?”하고 전화를 한다. “내가 어제 늦게 자서 조금 후에 올릴 거다”라고 대답하면 “빨리 올리세요”라고 하니, 그 잠꾸러기가 9시 반에 자서 새벽 두 시면 일어나서 법당에 가서 108 배 하니 참으로 기특하다. 밤새 목탁 치며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신심을 가지고 해 보는 아주 굳건한 정신이 상 줄 만한 일이다.
一食卯齋
一食은 하루 한 끼만 먹는 걸 말한다.
卯는 卯 시로 보통 巳(사) 시에 먹는데, 하루 한 끼 먹는데 卯 시에 밥을 먹는 걸 말한다.
乃至轉讀一大藏敎 : 게다가 책장을 넘기면서 대장경을 읽어서
乃至 : 나아가서, 게다가
轉讀 : 책장을 넘기면서 책을 읽는 것
一大藏敎 : 대장경 경전
修種種苦行하야도 : 갖가지 고행을 닦더라도
앞에 마음 밖에 부처님이 있고 성품 밖에 법이 있다라고 잘못 생각해서 이런 고집을 가지고 있으면서 수행을 한다면 온갖 고행을 다 하더라도 부처가 될 수 없다, 도를 깨달을 수 없다는 뜻이다.
如蒸沙作飯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과 같으니
가지가지 고행을 닦더라도 그 결과가 이렇다는 것이다. 모래를 쪄서 밥을 지을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자주 나오는 비유이다.
只益自勞爾
지익자로이
다만 더욱 스스로 고생스럽게 할 뿐이니라.
只益自勞爾 : 단지 더욱 스스로 힘들게 할 뿐이니라
勞 : 노고를 하다. 고생하다
但識自心 恒沙法門 無量妙義 不求而得
단식자심 항사법문 무량묘의 불구이득
다만 자기의 마음을 알면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미묘한 뜻을 찾지 않아도 절로 얻게 될 것이다.
但識自心 자신의 마음을 알면
恒沙法門 無量妙義 不求而得 항하 모래알 수만큼 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미묘한 뜻을 구하지(찾지) 않아도 얻어지느니라
자기 마음이 말이 항하 모래알 수만큼 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미묘한 뜻을
恒沙 : 인도 갠지스강 모래
인도의 갠지스 강이 있는데 모래가 많이 밀린다. 많은 수를 나타낼 때 비유로 ‘항하 모래(恒沙)’ 라고 하는데, 恒河(항하)는 갠지스강으로 그 강변에 쌓여 있는 모래알의 수라는 것이다.
恒沙法門 : 항하 모래알 수만큼 많은 법문
無量妙義 : 한량없는 미묘한 뜻
不求而得
마음을 알면 다 안 된다는 말이다.
故世尊云
고세존운
그러므로 세존께서 말씀하시길
普觀一切衆生 具有如來 智慧德相
보관일체중생 구유여래 지혜덕상
‘널리 모든 중생을 관찰하니 여래의 지혜와 덕상(德相)을 갖추고 있다’ 하시고
普觀一切衆生 : 널리 일체 중생을 살펴보니
具有如來 智慧德相 :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고 여래의 덕상을 갖추고 있다.
『華嚴經(화엄경)』「여래현상품」에 나오는 경문을 인용한 것이다.
누구나 부처님과 똑같이, 마음속에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 덕상을 갖추고 있다.
叉云
차운
또 이르시되
一切衆生 種種幻化 皆生如來圓覺妙心
일체중생 종종환화 개생여래원각묘심
“일체중생의 가지가지의 환화(허깨비로 생간 것)들이 다 여래의 원만한 깨달은 묘심(妙心)에서 나온다.” 하셨다.
幻化 : 허깨비로 생긴 것. 마술사가 마술을 부릴 때 나타나는 모습. 옛날에는 요술쟁이라 했다. 인형극이 원래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옛날 인도 사람들이 인형으로 요술을 부리던 것
一切衆生 種種幻化 皆生如來圓覺妙心은 『圓覺經(원각경)』에 나오는 경문이다.
是知 離此心外 無佛可成
시지 이차심외 무불가성
그러므로 이 마음을 떠난 밖에서 부처를 이룰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離 此心外 無佛可成
是知 : 이로 알라. 이러므로 알아라
離此心外 無佛可成 :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를 못 찾는다
부사대의 『심왕명』에도 “마음이 부처고 부처가 마음이다. 마음을 떠나면 부처가 없고 부처를 떠나면 마음이 없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過去諸如來 只是明心底人 現在諸賢聖 亦是修心底人
과거제여래 지시명심저인 현재제현성 역시수심저인
과거의 모든 여래도 오직 이 마음을 밝히신 분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들도 역시 마음을 닦은 사람들이다.
過去諸如來 : 과거 모든 여래
賢聖 : 수행 단계에 현인의 지위가 있고 성인의 지위가 있다. 보살들을 성인이라 하기도 한다. 십성이라고 한다.
亦是修心底人
마음을 닦아서 현인이 되고, 성인이 된다.
未來修學人 當依如是法
미래수학인 당의여시법
미래에 닦아 배울 사람도 마땅히 이와 같은 법에 의지해야 할 것이니
願諸修道之人 切莫外求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원제수도지인 절막외구 심성무염 본자원성 단리망연 즉여여불
바라건대 도를 닦는 모든 사람들은 간절히 밖에서 구하지 말라. 마음의 성품은 오염됨이 없어 본래 스스로 원만한 것이라 단지 허망한 인연을 여의면 곧 본래 그대로가 부처일 것이다.
切莫外求
마음에서 부처를 찾아야지 다른 것을 간절하게 하지 말라
心性無染
마음의 성품은 오염됨이 없이 본래 순수하고 깨끗한 것이다. 누구나 다 자기 진심자리는 오염됨이 없어서 더러움이 없이 깨끗하다.
本自圓成
누구나의 부처의 德相(덕상)을 다 가지고 있다.
但離妄緣 卽如如佛
이게 아주 유명한 법문이다.
중국의 福州(복주)에 고령사(古靈寺)에서 神贊(신찬) 선사가 은사 戒賢(계현)스님을 모시고 살다가 은사스님 곁을 떠나 중국 선종사의 이름을 날린 百丈(백장)스님을 찾아가서 참선정진 끝에 견성오도(見性吾道)한 후 자기를 처음 입도(入道) 시켜준 은사인 계현 스님을 고령산으로 찾아가자 스승은 "너는 나를 떠나 여러 해 동안 소식이 없더니 그동안 무슨 소득이 있어느냐?"라고 물었다. "본래 무일물(無一物)인데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니 스승은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어느 날 스승은 신찬에게 목욕물을 따뜻하게 데우게 하고 등을 밀어 달라고 하였다. 등을 밀어 주다가 "好好法堂佛無靈驗(호호법당 불무영험 :법당은 훌륭한데 영험치 못하군)" 하며 혼자 말로 중얼거리니, 이 말의 뜻이 법당은 참 좋은데 - 스승의 몸은 참 건강해 보이고 좋은데 공부한 소식이 안 보인다는 뜻이다. 스승이 뒤를 돌아 보았다,
그러자 "佛無靈驗 能知放光(불무영험 능지방광) : 부처는 영험치 못하나 방광은 할 줄 아는군)" 하며 거리낌 없이 또 중얼거렸다. 이 말의 뜻은 영험은 없는데도 몸에서 다만 빛이 나온다는 뜻이다. 스승은 무엇인가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 들며 신찬이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짐작하게 되었다.
그 후 스승이 누각에서 경서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벌 한 마리가 누각에 들어와 열려 있는 곳으로 나가지 못하고 창문에 몸을 부딪치는 벌을 보고 즉흥시를 지었다.
空門不肯出(공문불긍출)
열려 있는 문으로는 나가지 아니 하고
投窓也大痴(투창야대치)
창에 부딪치니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百年鑽古紙(백년찬고지)
백년을 낡은 종이 뚫은들 --- 100년을 책만 보아서는
何日出頭期(하일출두기)
어느 날에 머리를 벗어날 기약 있으리오. -- 언제 깨닫겠느냐
스스인 戒賢(계현)스님이 신찬스님이 게송 읊는 것을 듣고 "나는 네가 나가서 허송 세월을 하고 온 줄 알았더니, 그동안 누구에게서 무슨 법을 배웠느냐?”라고 물으니
"백장 선사 법좌(法座)에서 참선을 하나 조금얻은 것이 있습니다. 라고 했다. 이에 스승 계현 스님이
“오! 기특한 일이로다. 네가 비록 내 상좌(上佐)이나 공부로는 나의 스승이니 백장 선사를 대신해서 나에게 불법을 설해다오.” 하니 신찬이 법상에 올라 다음과 같이 말했다.
“靈光獨露(영광독로) 逈脫根塵(형탈근진)
신령스러운 빛이 홀로 드러나 육근육진을 멀리 벗어나
體露眞相(체로진상) 不拘文字(불구문자)
본체가 참모습을 드러내니 문자에 의지하지 않네
眞性無染(진성무염) 本自圓成(본자원성)
우리 마음의 성품자리는 깨끗하여 원만하게 구족되어 있으니
但離妄緣(단리망연) 卽如如佛(즉여여불)
단지 허망된 생각만 여의면 여여불이라네”
우리는 보통 根塵(근진)을 벗어나질 못한다. 根塵(근진)을 벗어난다는 것은 깨닫는다는 말이다.
不拘文字(불구문자)는 앞에서 나온 不立文字(불립문자)와 같은 뜻으로, 물론 세속사회에서는 나름대로 가치가 있지만, 도에서 보면 책이나 지식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깨침을 얻는 경계와 다르다는 것이다.
眞性無染(진성무염) 우리 마음의 성품 자리는 아무 하자가 없이 깨끗한 것이다. 본래 우리 마음도 貪瞋痴(탐진치) 三毒(삼독)이 없었던 것이다. 자기 고집도 없었던 것이고, 나쁜 습관도 없었던 것이다. 만약 마약을 하게 되면 나쁜 습관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마약을 못먹게 하는 것이다.
但離妄緣(단리망연) 허망된 생각이 허망된 인연을 불러 온다.
卽如如佛(즉여여불) 妄緣(망연)을 여의면 본래 조작이 없는 여여한 부처님이라는 것이다. 如如(여여)는 본래 순수한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있다는 그런 뜻에서 쓰는 말이다.
오늘은 여기서 마쳐야 되겠습니다. 오늘 좀 지루했더라도 새로 온 기념으로 하시고, 이제 또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여기 오셔서 좋은 이야기도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강의 안 해도 수시로 와서 좋은 대화도 나누시고, 차도 마시시고, 사경도 하고, 보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할 게 많은 것 같으니 기대하시고, 또 시간 나시는 분 은 여기 오셔서 쉬세요. 사이좋게 의견도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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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스승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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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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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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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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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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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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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