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의 망망대해를 거대한 화물선 한 척이 가로지른다. 화창한 날씨지만 머지않아 폭풍우가 닥쳐올 것이라는 예보에 방향을 틀어 우회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배에는 사람이 한 명도 타고 있지 않다. 예정대로 지정 항구에 도착하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AI)의 판단에 따라 스스로 항해 중이다.’
승무원 없이 스스로 운항하는 무인 선박 이야기다. 공상과학 영화 속 한 장면 같지만 적어도 몇 년 안에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어업이나 크루즈 관광의 경우 사람이 타지 않고 항해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관련 기술이 상용화할 경우 해운업이 가장 큰 수혜 분야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무인 선박 연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영국의 롤스로이스다. 현재 롤스로이스 자동차 부문은 독일 BMW 산하에 있다. 무인 선박 연구에 나선 롤스로이스는 항공기와 선박 엔진 등 엔지니어링 전문 업체다.
롤스로이스는 현재 핀란드에서 현지 기업들과 합작으로 무인 선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우선 차량을 싣고 강이나 협곡을 건너는 단거리 노선에 투입한 뒤 해운 분야로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초기에는 원격 조종 방식으로 운항을 시작해 10~15년 이내에 AI 기반의 완전한 무인 운항 화물선을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다.
유럽연합(EU)과 중국에서도 무인 해운 선박 상용화를 위한 기술적·경제적·법적 타당성 조사가 한창이다. EU는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프라운호퍼 해운 연구소 주도로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중국은 해양부와 우한(武漢)공대가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무인 화물선의 최대 장점은 안전성이다. 악천후나 해적의 공격으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 AI 접목이 활발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물론 일자리 감소에 관한 우려도 있다. 하지만 글로벌 해운 업계가 숙련된 전문 인력 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롤스로이스의 오스카 라벤더 해양 부문 혁신 담당 부사장은 최근 보고서에서 “승무원이 없으면 승무원들의 휴식공간과 환기·난방·하수처리 시설 등도 필요 없어지기 때문에 배 무게를 줄여 운항 속도를 높이고 비용은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감시카메라로 불법조업 방지 연구
남획 방지와 지속 가능한 어족 자원 관리에는 ‘스마트 광학기술’이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 등에 폭넓게 사용되는 얼굴(형태) 인식 기능과 동작 인식 센서, 고화질 수중 카메라 등을 이용해 불법 조업을 방지하고 수산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에서는 감독관이 정기적으로 조업 어선에 승선해 불법 어획 여부를 조사한다. 하지만 원양어선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 하와이에 이르는 태평양 지역은 세계 참치 어획량의 상당 부분을 담당한다. 미국 최대 환경 단체인 국제자연보호협회(TNC·The Nature Conservancy)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이 지역에서 조업에 대한 감독이 이뤄지는 비율은 2%에 불과하다.
TNC는 현재 이 지역에서 얼굴 인식 기능과 동작 인식 센서가 접목된 감시카메라를 이용해 참치 남획을 방지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어족 고유의 형태와 움직임을 카메라로 포착해 관련 데이터를 저장해 놓으면 조업 어선에서 어떤 어종이 얼마나 잡히는지 어선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현재 관련 정보를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하고 있지만, 데이터가 방대해 분석에 어려움이 많다. TNC가 머신러닝(기계학습)을 기반으로 한 분석 플랫폼 개발을 위해 빅데이터 분석 업체 ‘캐글(Kaggle)’에 15만달러(약 1억7200만원)를 지원한 것도 이 때문이다. AI 기술을 접목하면 동영상 데이터 중 의미 있는 것들을 자동으로 추려, 위치 정보 등과 함께 관련 부처로 자동 전송할 수 있다.
하지만 고성능 ‘감시’ 카메라가 사생활과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논란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수중 지형 파악과 수산물 관리에 ‘드론’ 활용
미국, 러시아 등 일부 군사 강대국들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수중 드론’도 점차 사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드론은 항공기뿐 아니라 무인기 전반을 총칭한다. 수중 드론은 강이나 바다 수중 지형 파악이나 수산물 양식 현황, 녹조류 발생 원인 등을 파악하는 데도 유용하다.
현재까지 공개된 민간용 수중 드론으로는 미국 오클랜드대 연구팀의 ‘룬 콥터(Loon Copter)’와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오픈로브(OpenROV)가 개발한 ‘오픈로브 트라이던트(OpenROV Trident)’가 대표적이다.
룬 콥터는 회전 날개가 4개인 쿼드콥터 형태로, 물속에서 프로펠러를 이용해 이동한다. 잠수는 물론 비행도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오픈로브 트라이던트는 전면부 1개, 후면부 2개, 총 3개의 추진력 발생 장치를 이용해 수심 100m에서 초당 2m의 속도로 최대 3시간까지 구동할 수 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수중 드론 활용 노력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4월에는 유선철 포스텍(포항공대) 극한환경 로봇연구실 교수팀이 자체 개발한 수중 드론 ‘사이클롭(Cyclops)’을 이용해 경북 포항시 구룡포읍 장길리 앞바다 일대 500m²(약 151평)에 대한 정밀 해저지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해양과학 연구는 물론이고 건설업 등 관련 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는 지난달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드론쇼코리아 2017’에서 수중 드론 ‘와이샤크’를 선보였다. 길이 1.95m, 무게 80㎏인 와이샤크는 스스로 길을 찾으며 물속 수십미터 깊이까지 유영할 수 있다. 물체에 초음파를 쏘아 반사되는 음파의 시간, 속도를 분석해 자신의 현재 위치와 수중 환경을 파악하며 지형을 분석한다. 수중 드론 활용의 가장 큰 걸림돌은 완벽한 무선 통신 시스템 구현이 어렵다는 점이다. 물속에서 무선 신호의 전송 거리는 수미터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음파를 활용한 무선 통신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keyword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인공지능(AI)의 한 분야로 클라우드 컴퓨터가 학습 모형을 기반으로 외부에서 주어진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것을 말한다.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공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어 내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