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함께 가는 선배에게, 5시 전화를 부탁하고, 잠든 시간이 밤 1시.
두 번째 전화라는 선배의 목소리를 들으며 부산을 떤다.
오늘, 내게 주어질, 하느님의 선물은 무엇일까? 하느님은
무심재 선생을 통해 무슨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고 계실까?
어느땐가부터, 하루는 내게 주신 선물이 됐고, 그 선물 안에는
특별한 만남과, 특별한 이야기들이 들어있어, 하루를 여는
잠자리에서의 깨어남은 내게 호기심과 설렘의 시간이 되곤 한다.
오늘의 테마는 봄 들과, 봄꽃과, 그리고 우리의 옛 어른들이
남겨놓은 학문을 연마하던 학습장과 그들의 흔적들을 돌아보는 날,
무심재 여행 속엔 자연과 역사와 시가 있어 언제라도 즐겁다.
이 카페와의 만남을 맺어준 중신에미, 그 선배가 오늘은 나와 동행을 한다.
‘너무 좋겠더라. 가 봐’
‘ 나 혼자는 싫은데,’
‘나 가고 싶어도 애들이 와. 우리 양녘설 세쟎아.’
흠뻑 내린 눈에 마음은 설레고, 혼자는 약간은 민망하고, 그래도 차마
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주춤거리며 발을 들여놓은 남녘의 눈꽃여행,
그렇게 무심재와의 인연은 시작이 됐다.
이제 겨우 문열고 들어온지 석달, 옆에 앉은 선배보다 내가 무심재 카페의
선배가됐다. 평생 살며, 이런 도반을 몇이나 만날 수 있을까? 만날 때 마다
그 ‘인연’이 소중한 선배다.
들로 산으로, 바다로. 발 길 닿는대로 많이 휘젓고 다녔는데,
안동 근처엔 발길조차 하지 않았던게다. 조금은 이 산하가 낯설다.
차창을 스치는 바람결, 질펀한 들판의 그 푸르름조차도 정겨운 남녁의
들판과는 사뭇 다르다. 이상하게도, 한세상을 풍미하던 권력을 태동시킨
양반의 땅이라는 선입견일까? 괜스레 그 딱딱함이 마음을 주눅들게 하는가?
‘뼈대있는 집안, 사대부 집안의 조상을 갖었노라’고 팔베개에 뉘워 놓고
이미 백골이 진토 되었을 아버지, 항상 말씀하셨는데. 왜 양반이라는
그 말은 항상 두꺼운 겨울 옷처럼 거추장스러울까?
차창 밖 풍경은 아직도 조금은 더 있어야 잠에서 깨어날 것인가?
흙빛이 겨울이다.
안동.
조선조의 권력 중심의 김씨, 권씨가 일찍이 바리잡아 그 터를 닦아 놓은곳,
수많은 학자와 권세가 를 키워낸 땅. 뼈대있는 가문의 전통과 체통을 위해,
쉽사리 변화에 문을 열지 않았던 곳, 어쩌면 그들의 자긍심과 체통의 고수로
우리는 오늘, 그 자취를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꽃 속에 묻어있을 양반네들의
기개와 정신을 만나보는 시간으로 하자.
병산서원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예술로 승화스킨 유교건축의 백미라는 병산서원,
(선생님 강의 노트에서)
서원을 찾는 길은 포장되지 않은 거친 길이다. 호사스런 여행객은 근접이
어렵겠다. 이제사 늦잠에서 깨고 있는가? 이미 남도에 휘드러지게 피었던
매화에 눈을 담근게 두주도 더 전, 지금쯤 이곳이 만개 시점이라 했는데?
서원 앞 고목의 홍매는 봉오리가 터지기 시작이다.
아주 간간이 활짝 핀 꽃송이 눈에 안기고, 그리곤 방금이라도 그 꽃 잎 터지는
소리라도 들릴 듯, 봉싯이 입 열고 있는 꽃봉오리 조롱조롱 가지마다 맺어져있다.
서원 뜰 백매는 홍매보다 개화 시기가 좀 빠른가? 나뭇가지에 얹힌 하아얀 눈처럼
만개한 백매 앞에 매화처럼 예쁜 회원님들 사진 촬영이 한창이다.
낙동강 흐르는 물에 병풍처럼 둘러친 병산을 바라보며 지어진 유림들의
자제가 학문을 닦아 연마하던 서원. 서애 유성룡 선생의 뜻에 따라
이 장소로 서원이 지어졌다는 500여년전의 그 서원의 모습에서
꼿꼿한 기개가 느껴졌던 것은 왜일까? 세월이 그리 흘렀음에도
건물의 이곳저곳이 정갈하고 품격있는 모습이 흐트러짐이 없다.
하아얀 두루마기에 빳빳한 갓을 쓴 어느 노인 하나 방금이라도
사당문을 열고 나올 듯 싶다.
서애선생의 사당, 학문을 연마하던 명륜당, 도서관, 서재 입교당,
크고 작은 건축물들로 이뤄진 서원의 백미는 만대루. 우리나라
누각중 가장 많은 기둥을 갖고 있다는 이 누각의 기둥은 13개.
누각 사이사이로 비춰지는 풍광이 그대로 한폭한폭 그림이다.
13폭 병풍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행여 경치에 빠져 공부에
소홀할까, 배려하여 너무 아름다운 곳은 피해 지어졌다는
이 서원은 그러나 누각위에 펼쳐지는 그림이 절경이다.
하화마을 돌아 흘러들어온 낙동강 물줄기는 누각 앞을 흘러
나가고, 그 강물 위엔 병풍처럼 병산이 둘러쳐져 있다.
눈 아래로 하아얀 모래톱이 속닥이는 물소리를 끌어안았다.
‘너무 정원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지 마세요. 기도에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정신이 하느님보다 아름다움에 머무는 것도 수도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눈길을 돌려 놓았다는 어느 수도회의 장상 말씀이 떠오르던 곳.
유림들의 휴식처, 만대루엔 여유와 머무름이있다.
눈이 부시도록 만개한 매화를 만나진 못했지만, 이슬방울처럼
조롱조롱 맺힌 홍매가 만개한 꽃보다도 휠씬 더 신선하고
청초할 수 있음을 보여준 시간이기도했다.
의성군 화전리 산수유마을.
봄이면 ‘의성에서 올라온 마늘’을 실은 트럭을 길가에서 만나곤 하던
바로 그 마늘의 고장, 의성. 숲실마을의 산수유 꽃을 찾는다.
초록으로 덮인 마늘 밭. 흐르는 냇물따라 아름드리 산수유 나무엔
꽃이 휘드러진다. 마늘 잎의 초록과 산수유의 노오랑 색의 절묘한
조화가 하늘 화가의 손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바람이 있고, 흙이 있고, 아련한 향기가 대기를 가득 채우고. 곰살맞게
속닥이는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있고.
들며 나며, 변덕을 부리던 햇님 덕에
회색빛 하늘에 별꽃처럼 동동 떠있던 산수유 꽃송이는 회색빛 하늘 속에
더욱 선명한 꽃으로 살아났고, 비치는 햇살에 노오란 불꽃처럼 다가오던
그 꽃송이는 투명한 잠자리 날개처럼 빛났고
휘청휘청 꽃 구름 속에서 다리가 땅에 닿질 않았던가,
산수유 꽃 따라 내 몸도 허공을 부유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봄 들판, 의성 마늘 밭에 무심재 마음들이 수를 놓는다.
캔버스에 엷은 노랑의 물감이라도 뿌려 놓은듯, 이 들판은 지금 파스텔톤의
레이스커텐이라도 둘러친것 같다. 꽃송이들은 아른거리는 레이스의 커튼처럼
하늘을 가린다. 언덕을 오르고, 황토빛 들길을 걷고,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아주 작은 소리로 재잘거리는 새 소리를 듣는다.
행여, 선물처럼 주어진 그 짧은 봄날의 꿈에서 깨어날세라, 순간순간으로
펼쳐지는 무르녹은 봄빛을 노칠세라, 깊은 침묵에서 꽃 숲길을 걷는다.
자! 깨어나라, 산수유 하늘하늘 몽롱한 여린 빛 속에서.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묵계서원으로.
묵계서원
길안면 묵계리 마을 길을 돌고 돌아 올라선 언덕.
꽃등을 켜 놓은듯, 고목 한그루, 붉게 타오르고 있다.
깊은 회색의 고색 창연한 서원 앞뜰, 농익어 만개한 홍매 한그루.
돌담 속 서원 앞 뜰, 온 천지를 덮고도 남을 만큼 그 향기가 안개처럼 코끝에 감긴다..
묵계서원은 전통적인 서원 건축물로,조선조 성종시 대사성과 이조판서를
역임했던 보백당 김계행과 세종시 사헌부를 지낸 옥고를 봉향하기 위해
숙종 임금시 창건된 서원이다.
발빠르게 찰라의 빛과 순간의 장면을 찾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정신없이 터져 나오는 속에서 시간은 순간 정지라도 시킨듯, 멈추며,
책장을 넘기는 유생들의 모습을 끌고 온다.
볼을 스치는 보드라운 햇살과 매화의 향, 마음을 뒤 흔들며 붉게 피어난
꽃 속에 그 춘심 달랠길이 없다. 유생 앞에 놓은 훈장의 눈빛도 잠시 흔들린다.
그 고혹적인 빛으로, 그 요염한 자태로 매화는 흩어짐이 없다.
수백년의 세월 속에서 어김없이 피고, 지고, 피고 졌을 꽂.
그 향기와 그 자태에 말을 잃는다.
서원은 매화 속에 묻혀 말이 없다.
봉오리도 활짝 핀 꽃보다도 아름다울 수 있다던 생각이 살짝 숨어 버린다.
매화를 쫒아 그 어려운 걸음을 했던 수녀님이 이 꽃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냐, 수녀님이 이 매화를 보지 못함이 얼마나 다행인가, 너무 이 아름다움이
현란하지 않은가? 고고함이 백매에 있다면 홍매엔 요염함이 있다.
왜 수도원의 장상과 옛 선비가 ‘너무 아름다운 것은 피하라’했던가 헤아릴 것 같다.
‘달빛이 교교한 달빛 아래서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못이뤄-했던 그 마음이 다가온다.
길안면과 천지골이 한 눈에 들어오는 소나무 밭 언덕에 올라, 주인없이 무너져
내리는 묘소, 인간사 덧없음에 석양빛조차 쓸쓸하다.
만휴정
묵계천 하교리를 건너, 하리 골짜기 계곡에 있는 만휴정을 찾는다.
보백당 김계행이 만년을 보냈던 누각. 흐르는 계곡과 바위 위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 한 세상을 풍미하던 낙향한 선비의 여유로움을 누리기엔
부족함이 없는 곳.
세상을 등진 외로움과, 뒤로 돌아설 수 밖엔 없었을 어지러웠던 마음을
품어주기엔 더 할 수 없이 한가롭고, 넉넉한 자연의 품이 있는 곳,
만휴정 정자는 자연을 품에 안아 자연 속의 하나로 녹아 그 자리에 서 있다.
산자락 뒤로하고, 의젓하게 자리한 누각의 모양새, 아직도 단단하고, 고집스러웠지만
어둠이 내리고, 을스년스런 바람까지 불어와 그럴까?
힘차게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에도, 뒤로한 만휴정 누각에 외로움이 엿보인다.
인간사 이리도 ‘새옹지마’인것을.
시절 잘 타고나, 켜켜이 쌓인 것들, 한자락씩 잘라내어 계곡 물줄기로,
짓푸른 바다의 파도 속으로, 어느 산자락 양지 바른 언덕에 뿌려
낼 수 있으니, 더 바랄 것이 무엇일까?
여행 길에서 얻은 벗들의 따듯한 눈길과, 다정한 인사 한마디,
수줍은듯 맺히다 마는 그 미소를 담아들고 돌아오는길,
그것은 오늘 내게 주신 선물이었다.
| | |
첫댓글 노래까지는 올리겠는데, 사진을 오릴 수가 있어야지요. 신봉 공주님께서 제 글 안에 선배님의 사진으로 편집을 해 주셨지요. 요즘 사진에 심취해, 얼마나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계신지요. 본인은 겸손하셔, 아니라 하시지만. 제 눈엔 그 구도가 너무 좋았답니다. 아마 앞으로 여행에 자주 동행하실 것 같습니다.
안정된 구도에 옛 선조들의 숨결이 뭍어나고..금련화님의 맛갈나는 글이 향을 더합니다...마음이 함께 머무르다 갑니다.
또 한분의 향기가 가득 퍼지는 여행후기,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도 금련화님의 향기를 듬북 느낄 수 있는 글과 음악에 취해 봅니다 신봉공주님의 사진 구도가 너무 좋아요 저도 열심히 배워 보고 싶네요 머물다 갑니다
하나님의 선물! 이란 말씀이 맘에 와닿습니다.. 세월의 연륜이 그대로 녹아있는 향기 가득한 후기 감동입니다..! 파노라마로 보여주신 산수유마을은 눈이 다 시원해집니다 글도 멋지고 사진역시 아름다와 한참을 감사한 마음으로 머물다 갑니다 ...!
출중하신 금련화님의 글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신봉공주님 사진을 보니 제 사진들이럽기만 하네요... 두분한테 감동 또 감동입니다 앞으로 두분께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서원의 매화향기만큼이나 금련화님 글의 향기 또한 짙게 느껴집니다. 금련화님 , 경주 여행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요.^*^
늦은 밤까지, 오늘 카페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봤습니다. 아름다운 글과 사진과, 음악으로 가득 채워진 곳에 머물다 나오며, 부끄럼도 모르고 여행기라 올린 것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이 생각났답니다. 격조 높은 카페, 격하 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있지는 안은지 염려가 됩니다.
세월의 연륜이 곳곳에 배여있는 금련화님의 여행기에 사진과 음악을 곁들이니 금상첨화입니다.'무식하면 용감하다' 무슨 당치도 않는 말씀!!
격조높은 카페에 제 사진을 디밀기가 두려웠는데(진심입니다) , 마침 금련화님의 여행후기를 쓴다기에 자청하여 제 사진을 슬쩍 내어 놓았읍니다. 너무 사진의 대가들 이기에 앞으로 기회 될때마다 쫓아다니며 배울까 합니다. 많이 이끌어 주십시요. 부탁... 부탁....
아름다운 두 공주님께서 아름다운 얘기를 올려주셨네요. 다녀온것처럼 생상한 글 ...재미나게 읽엇어요. 병산서원앞에 유유히 흐르는 강물 ~~흐르는듯 싶슴니다.
금련화님! 지난번 능경봉 번개때 후기도 너무 좋았는데, 지금도 너무 좋네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도 좋고....
똑같은 사물을 찍었는데 모두가 느낌이 다르네요. 보면볼수록 아쉬움이 큽니다. 넘 아름다운글과 사진에 푹빠져봅니다..... 감사합니다. ^^
이제는 이 곳 식구들과도 구면이 되어 너무 좋아요. 댓글에 올라온 아이디를 이제 제가 모습과 함께 다 기억할 수 있으니, 행복합니다. 이사도라님께선 제게 사진도 보내주셨고, 후리지아님의 홍매 속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고, boly님은 버스에서 제 뒷좌석에 앉으셨고, 햇살님이 찍어주신 사진엔 저와 나란히 아래위로 올려졌고, 별ㅂ님, 피엘님은 뵌지 오래됐고, 아! 바람의향기, 우리의 중전을 뵐 마음에 가슴설레고, 그런데 수산나님은 다음 기회에 인사를 여쭤야겟습니다.
수줍은 미소의 금련화님글은 어쩜 이렇게 표현력이 풍부하신지 다시 한 번 놀랍니다. 신봉공주님 열심히 사진 찍으시던 모습 눈에 선한데 이렇게 근사한 장면을 찍고계셨군요. 두 분 오손도손 속삭이며 걸으시는 모습 보기 좋았는데 여행기도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십니다. 아름다운 글과 사진에 저도 너무 감사드리며 두 분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봄과 어우러진 님들의 행보가 아름답습니다 함께 다녀온듯하네요....
어쩜 그리도 글을 잘 쓰시는지, 마치 그곳으로 여행이라도 한 기분입니다. 사진도 글도 너무 좋습니다.
돌아와 열어본 사진 속, 블루레인님, 얼마나 아름다웠던지요. 그 청순함과 젊음에, 아! 이렇게 아름다운 시절이 내게도 있었던가? 다시한번 세월을 헤아려봤답니다.
엇모리님, 이번 길에선 뵙지 못했습니다. 함께하셨다면 놀라운 사진들을 올리셨을텐데요. 구름꽃님, 감사합니다. 다음엔 꼭 뵙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