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역사 기반 관광 콘텐츠 개발 [금릉잡시(金陵雜詩)]
임을 향한 그리움을 시(詩)로 달랬던 여류시인 ‘지재당 강담운(只在堂 姜澹雲)’
지역마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끄는 주체 및 표상이 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문학, 미술, 음악, 공예 등 다양한 소재로 지역의 문화유산 혹은 그 시대 민족의 생활 이념을 후손에게 전한다.
그리고 과거 19세기 조선, 김해에도 사랑하는 임을 하염없이 떠올리며 자신의 그리움을 시(詩)로 달랬던 여류 시인 ‘지재당 강담운(只在堂 姜澹雲)’이 있었다.
강담운은 평양에서 기녀의 딸로 태어나 여덟 살에 김해로 옮겨 와 지냈다. 김해 관아의 분성관에 몸을 담아 기생의 삶을 보내다 운명적으로 만난 차산(此山) 배전의 소실이 되었지만 그가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서울로 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글솜씨가 뛰어났던 그녀는 자신의 일생과 마음을 45수의 시집 『지재당고』에 남겼으며 그 중 <금릉잡시>는 자신의 마음과 대비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김해 자연의 모습을 담았다. 당시 홍문관 부제학 겸 규장각검교대교 이재긍(李載兢)의 『지재당 소고서』에는 『지재당고』를 본 후 “시정의 언어가 투명하여 티끌이 없고, 금릉의 풀 하나, 꽃 하나, 산 하나, 물 하나가 환하게 눈에 들어왔다. ···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며 후세에 전할 생각을 하였다”라고 쓰여 있다.(<출처: 강담운(저자), 이성혜(역자), 그대 그리움을 아는가, 보고사, 2002>)
금릉은 김해를 아름답게 이르는 말로써 과거 정현석 김해 부사가 김해를 중국 양쯔강 유역의 유서 깊은 도시인 금릉에 빗대어 불렀다고 한다.
도시 미래유산 만들기 지원 사업은 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 요소를 재발견하거나 새롭게 발굴하여 지역을 대표하고 미래의 후손에게 전승될 지역 고유의 콘텐츠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본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지역 역사 기반 관광 콘텐츠개발 [금릉잡시]’ 사업은 4월부터 연말까지 진행된다.
먼저 시집『지재당고』
내 <금릉잡시>에 기재된 총 34곳의 김해 지역을 사진·영상으로 촬영할 예정이다. 장소 중 현존하지 않아 모습을 담기 어려운 장소들은 추후 그래픽 작업 및 시각 작품으로 복원하여 과거, 지재당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름다운 김해를 현대의 시민들 또한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 문화 자원으로 남기고자 한다.
이후 하반기에는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출판물을 발간한다. 강담운의 시와 함께 촬영된 사진을 기재하여 시를 짓던 당시 강담운의 시선과 감정을 전달하면서 김해를 소개하는 관광 콘텐츠 중 하나로 개발함에 그 목적이 있다.
발간된 출판물은 김해시의 역사 문화 콘텐츠로써 도시를 방문하는 분들에게 지역의 명소를 담은 시 사진의 역할과 동시에 도시 가이드 맵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으로 ‘지재당 강담운’과 함께, 시집 『지재당고』를 소개하는 시민 참여형 세미나를 주최하고자 한다. 이는 도시의 역사를 시민과 공유하는 정보 전달의 목적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도시의 역사적 사실을 접하여 지역의 이해도를 높임으로써 역사·전통형 문화 도시 김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리고 올해 말, 지재당고 속 <금릉잡시>에 기재된 김해의 모습과 번역된 강담운의 시를 전시의 형태로 소개하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해당 전시회는 앞서 개발되었던 콘텐츠의 결과 전시로써, 발간된 출판물을 소개하고 시민들이 시각적으로 ‘강담운’의 시를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될 수 있게 구성할 예정이다.
출처;김해문화재단
https://naver.me/FVbccUNH
여성한문학의 맥을 이었던 김해의 기생 지재당 강담운 只在堂 姜澹雲
조선시대의 기생 중에는 지배층인 사대부와 예술과 문화를 공유할 만큼 문화예술 방면에서 재능을 보였던 이들이 많다.
서화담·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로 불리는 황진이, 일본 장수를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의기 논개, 허균과 시를 나누었던 부안기생 매창 등 당대는 물론 후대까지 이름을 남긴 기생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김해에는 한 사람을 지극히 그리워했고, 김해의 산과 강과 하늘을 아꼈으며, 그 마음을 한시에 담아 여성한문학의 맥을 이었던 기생 '지재당 강담운'이 있었다.
홍문관 부제학 이재긍 "시정과 언어 투명하다" 극찬 이성혜 부산대 교수 "한국한문학 사상 큰 의의" 평가
차산은 서울에 있으면서 흥인군(이최응. 대원군 이하응의 형)의 아들이자 고종의 사촌인 이재긍(홍문관 부제학)에게 지재당의 시를 보여주었다.
이재긍은 시집 '지재당고' 출간을 도우며 '지재당소고서'를 직접 썼다. "시정과 언어가 투명하여 티끌이 하나도 없으며, 환하여 그림과 같았다.
금릉의 풀 하나, 꽃 하나, 산 하나, 물 하나가 환하게 눈에 들어왔다. 밝고 투명함이 남전에 나는 옥이 햇볕처럼 따뜻하고, 여룡의 여의주가 밤을 밝히 듯하여 차마 손에서 놓지 못하였다.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면서 후세에 전할 생각을 하였다."
이재긍이 눈여겨 본 지재당의 시는 '금릉잡시'였을 것이다. 지재당은 김해의 자연을 노래한 '금릉잡시'를 썼는데, '금릉'은 김해를 아름답게 이르는 말이다. 이 시편을 읽어보면 옛 김해의 모습이 눈앞에 아스라이 펼쳐지는 듯하다.
"연자루 앞 버들개지 /버들개지 제비새끼 비스듬히 나네. /제비는 꽃을 쫓고, 꽃은 제비를 쫓아 /성 안의 여러 집으로 흩어져 들어가네."에서는 봄날의 풍경을 전해준다.
"구지봉 머리에 붉은 노을 비치고 /후릉의 송백엔 가을바람 이네. /상심한 한 조각 파사의 돌 /늘어진 풀 쓸쓸한 안개 참으로 적막하다."는 가을날 구지봉과 허왕후릉의 해질녘을 그림처럼 펼쳐준다.
"여뀌꽃 핀 섬 가을빛이 그림 속에 들어오고 /끊어진 노을 맑은 비단 그 경치 어떠한가. /초선대 옆에 말 세우고 /온 산 붉게 물든 신어산을 바라보네." 지재당은 신어산의 단풍에 넋을 빼앗긴 어느 가을날 이 시를 지었으리라.
시서화에 뛰어난 문인화가였던 차산 배전과 강담운은 어떤 사랑을 나누었을까.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이었던 가도(賈島)의 시 중에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이 있다. '지재차산중'은 '오직 이 산속에 있다'는 뜻으로, 사물이 일정한 범위 밖으로 나가지 않음을 이른다.
이 구절에서 배전은 '차산'을 취하여 자신의 호로 삼았고, 강담운은 '지재'를 취해 호로 삼았다. 강담운은 스스로 오직 차산 배전 안에서 살아가고 존재할 것을 약속한 것이다.
차산 역시 강담운의 시를 엮어 '지재당고'를 펴내면서 '一心人 裵此山 校'(배차산이 교정을 보았다는 뜻)라고 썼으니, 강담운을 아낀 차산의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지재당고'에는 차산을 그리워하는 지재당의 마음을 담은 시가 절반이 넘는다.
차산이 1870년대 서울로 떠난 후 떨어져 있는 동안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이 배인 시는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시월 강남에 비 내리니 /북쪽엔 눈 내리리라. /북쪽에서 눈 만나시거든 /비속에서 그리워하는 저를 생각하소서. /떠날 때 주신 귤 하나 /손의 반지인 듯 아낍니다. /양주로 오시게 되면 /돌아오시는 날, 만 개를 드리오리라."('서울로 가는 사람과 이별하며' 전문)
출처; 김해시청 naver.me/5cDmofBE
(11/26 방영) KNN특집다큐 금릉의 미 http://www.knn.co.kr/267737
강담운의 시집 '지재당고'를 이성혜 교수가 번역하여 펴낸 '그대, 그리움을 아는가'(보고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