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조명연 신부 스페인 바로셀로나에 까면 위대한 건축가의 작품을 보게 됩니다.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구엘 공원, 까사 바트요, 까 사 밀라 등등…. 맞습니다. 위대한 건축가라고 불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입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건축에 온 힘을 쏟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우디는 하루의 건축 일을 마치면 오후 5~6시까지 긴 거리를 산책했습니다. 어느 날, 산책하던 중 전차와 부딪쳐서 뇌 졸중으로 쓰러진 것입니다. 이때의 나이 73세. 그런데 형색이 초라했던 그에게 그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습 니다. 꽤 긴 시간을 사고 장소에 그냥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지나가던 택시 기사 한 사람이 그를 부축해서 병원으 로 옮겼지만, 그의 신원을 증명할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병원에서는 입원 처리를 하지 않았고 당연히 치료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고 후 3일이 지나고서야 그의 인부들이 병원에서 그를 찾았고,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지만 너무 많 은 시간이 지난 뒤라서 수술하고 3일이 지난 뒤에 하늘 나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가우디의 이 이야기를 들으며, 이웃 사랑을 강조했던 예수님을 떠오르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입으로는 너무 쉽게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실천도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지금 어렵고 힘들어하는 내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까? 행색이 형편없다고, 모르는 사람이라면서 외면한다면, 2,000년이 지난 지금 예수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그런데 이 물음을 단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 번이나 계속해서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시몬 베드로의 답변에 곧바로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주님의 양들을 돌 보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의 이웃을 자기 기준에 맞춰서 판단하고 미워하고 또 단죄한 다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 사랑에 대한 실천을 전혀 하지 않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양들은 화려하고 멋진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행색이 초라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한 사람 역시 주님의 돌봄을 받아야 할 양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도 제외 없이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도 어떻게 사랑하는 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명언: 감사하다는 건 인생을 선물로 느끼는 능력이에요(존 오트버그). 사진설명: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인천가톨릭대 성 김대건 안드레아성당/조명연 마테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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