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관한 시모음 2)
사랑하는 딸 민교에게 /정연복
예순 일곱 밤이 한순간의 꿈같이 흘러
다시 포항으로 떠날 시간 되었네
종달새처럼 재잘대던
명랑한 목소리 한동안 귓가에 맴돌겠지.
일년 전 너를 멀리 낯선 곳에 남겨두고 올 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지금은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떠나보낸다
그때보다 한층 성숙한 모습의 너.
작년 이맘때 네가 보낸 문자 메시지
아빠는 한평생 보물로 간직하고 있을 거야
"아빠,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그래도 나는 씩씩이."
그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딸
늘 밝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모험심 넘치는 씩씩한 민교야
공부와 연애, 서클 활동이든 인간 관계든
매사에 욕심 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천천히 풀어가렴
남보다 뛰어난 훗날의 큰 성공 바라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최선을 다함으로
나날의 긍지와 행복을 느끼는 멋진 사람이 되렴
겉모습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이 참 예쁘고
똑똑하고 우뚝 서기보다 착하고 깊은 마음 씀씀이로
네가 아프고 힘들 때 남들의 위로와 사랑 듬뿍 받고
남들이 아프고 힘들 때 그들에게 다정히 천사 되어 주렴.
너의 앞날에 그분의 조용한 은총 늘 함께 하기를
매일 한번은 맘속으로 기도할게
하늘만큼 땅만큼 예쁘고도 예쁜
딸아, 내 딸아.
딸을 기다리며 /박철
-고3 아이에게
늦은 밤이다
이 땅의 모든 어린것들이 지쳐 있는 밤
너만 편히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지구상 어느 나라에 우리처럼
가난은 곧 불행이다, 라는 공식을 외우며
걸식하듯 밤하늘을 쳐다보는 바보들이 있을까
오늘도 뉴스에는
여성들의 80%가 결혼조건의 최우선으로
경제능력을 꼽는다지만
막상 부자로 사는 이들은 열의 둘이란다
그러니 가난을 물리치는 대신 행복을 찾는 게 낫지 않겠느냐
하는 의연함을 키우다가도 옆집 갓난아이
슬픈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라
빈 주머니를 쑤셔본다 너를 기다리며
딸아 가여운 아이야
많은 이들이 옳다면 옳은 것이겠지
지지 말고 살아라
이민 가며 친구가 남긴 한 마디
악하게 살아야 오래 산다는 말도 되살아오는 밤
어서 돌아와 잠시라도 깊은 잠 마셔봐라 숨소리 예쁘게-
반쪽의 달이 외면하며 구름 뒤에 숨고
밤이 어둔 것조차 내 죄인 양 송구스런 밤
너의 행복을 쌓으며 몇 자 쓴다 아이야
사랑하는 딸아 /오보영
사랑하는 딸아
아빠 엄마 오빠 널 사랑하고
가족 모두
아는 사람 모두가
널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하지만 내 딸아
넌 아마 다 모를거다.
열달 동안 배안에서 곱게 키워서
진통하며 기쁨으로 너를 낳은
엄마와
너 가진 성 네게 물린
아빠가
얼마나 널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지를
우리 딸이 있음만으로도 좋고
목소리만 들어도 기쁘고
바라만 보아도 즐겁다는 걸
네 밝은 목소리로 집안 채우고
네 환한 모습으로 집안 밝히고
네 고운 마음으로 집안 데울 때
가슴 따뜻해지고
마음 포근해져서
아빠 엄마
행복하고 자랑스럽다는 걸
넌 아마도 다 모를게다
사랑하는 귀한 우리 딸아
너 있어 행복한 우리들만큼
너에게도 큰 행복 펼쳐지기를
아빠 엄마 늘
너 위해
기도한단다.
결혼하는 딸에게 띄우는 편지 /이승복
재잘대는 안개꽃
꼭꼭 여며 하나로 묶은
한 아름 행복 안고
외톨로 산 어제가
둘이 살날 앞에 섰구나
오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너희 둘의 만남이
열매를 맺는구나
한 가정의 주역으로
제 2 생의 열차를 타고
막 출발을 하는구나
원앙 한쌍이 되어
가지마다 열매 틔워
사랑꽃 수를 놓으려
둥기당당 새 둥지를 트는
너희에게
주고싶은 말이 있단다
행복은 저절로 얻는게 아니다.
보듬어 소망 가득함으로
가꾸어가야 된단다
가정의 관심을 찾아
대화를 갖어라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없다는데
금쪽같은 내 새끼야
잊지말 것은
사랑 속에 믿음 이란다
신뢰 속에 행동 이란다
(사랑을 하늘삼아 이고 믿음을 땅삼아 딛고 온종일
햇빛받는 풀잎처럼 그렇게 건강하고 밝게 살겠습니다 - 청첩장 글귀)
가슴 깊이
연비를 새겨서라도
한껏 둘의 사랑과
오직 둘의 믿음과
진정 둘의 소망으로
백년 거울되어 마주보라.
막 내 딸 /정영자
어제는 강물로 흐르고
그저껜 바람으로 날리더니
오늘은 불되어 타고 있는 꽃송이
창밖에는 장마비가 잔디를 씻기는데
솟아난 열꽃
홍역을 앓고 누운 막내딸
거울을 쳐다보고
얼굴이 못났다고
자꾸만 눈물 흘린다.
눈송이처럼
머리털이 날리는 어릴 때
예방주사도 잘도 맞았는데
학교도 못 가고
옛날의 할머니가 엄마를 그랬듯이
더운 방에서 땀을 내고 누웠다.
초록의 모든 초록으로
바람의 모든 바람으로
어여쁨의 모든 어여쁨으로
샘 물 솟듯 넘쳐나는
어린 딸이 누웠다.
딸아 /윤용기
딸아, 오늘은 너한테 큰소리를 쳤구나
솟구치는 울음 주체할 수 없어
딸아, 너한테 부질없는 소릴 했구나
고단한 삶이 너에게도 있으련만
나를, 이 아빠를 원망도 많이 했겠구나
미안하구나
가족이란 모름지기
힘들 때 위로해주고 보듬어주며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데
오늘은 넓은 바다 같은 내 마음도
봇물 터지듯 내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구나
뒤돌아서면서 후회 할 것을.....
살아 온 내 삶이 때로는 후회도 되지만
딸아
씩씩하게 살아가는 네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구나
사랑스런 내 딸아
사랑하는 딸에게 /최원정
생각만 하여도 신기함이 가득이구나
그 여린 몸을 갖고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힙합의 리듬인가
아니면 너의 내면적內面的인 역동力動인가
아침마다 잠에 취해 비몽사몽인 너의 뺨에
내 입맞춤의 인사를 싫어 하지 않는 네가
한없이 이쁘고 고마운 마음인걸 알고있니?
끓어오르는 정열情熱과 온화溫化의 따스함을 갖고있는
사랑하는 내 딸아,
어느 한 곳에 그렇게 미칠 수 있음은
분명한 행복일 거야
네가 그 행복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이 축제가 끝나면
또 다른 행복을 위한 준비를 하리라 믿는다
그간의 쌓은 실력 맘껏 발휘하여
내일의 축제가 너로 인해
더욱 빛이 났으면 좋겠다
격동이 있으면 고요도 필요하단다
꿈꾸고 있는 미래를 머릿속에 그리며
지금의 나를 추스릴 수 있는
예쁜 여고생이길 바라는 건 엄마의 욕심이 아니겠지?
엄만,
힘들면 와서 기대어 쉴 수 있는 나무이길 자청하는데
우리 딸이 그래 줄 수 있을까
네게,
희망과 사랑을
맑게 개인 푸른 하늘 위로
너의 생일을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띄워 보낸다
딸 보러 가는 길 /서지월
생후 1개월
딸 보러 가는 길
새벽잠에서 밀려나 앞산도 흰눈 쓰고
바다로 통한 길바닥도
얼음으로 덮인 차창 밖에는
겨울나무들이 아직
잎을 달 기척 없는데
포항 지나 화진포 지나 망양바닷가
울진 지나 삼척 죽서루 지나
망상해수욕장 하얀 파도살 지나
딸 보러 강릉 가는 길.
너는 생후 8일째
보자기에 싸여 세상에 태어난
기쁨의 울음 뿌리며
이 길 따라 먼저
강릉 외가에 가 있지
나, 오늘은 떡국 먹는 설날도 지나고
생후 1개월
널 보러 가네.
세상 사는 것 신기해서
구르는 바퀴는 자꾸 가자 가자고
이르는 것 같고
갈매기는 한 발 앞서서 빨리
오라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네.
딸아 미안하다 /문정희
딸아, 미안하다
오늘 나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무능한 나라의 치욕과
적국을 향한 분노로 소리 지르다 말고
나는 목젖을 떨며 깊이 울어야 한다
기실 나는 민족을 잘 모른다
그 민족의 주체가 남성인 것도 모른다
다만 오늘 네 앞에 꿇어 엎드려
울음 우는 것은
나의 외면과 나의 망각을 다시 꺼내놓고
사죄하는 것은
네 존엄과 네 인격을 전리품으로 가져간
일본군보다 더 깊게
나의 무지와 독선이 슬프기 때문이다.
심청을 팔고, 홍도를 팔고 살아난 아비와 오빠
기생과 놀며 풍류를 더하고
그녀들을 화류로 내던진 이 땅의 강물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결국 강압과 사기로 세계에도 유래 없는 성 노예 집단인
적국 군대의 종군 위안부로 보내진 내 딸아
민족보다도, 그 민족의 주체인 남성의 소유물이
상처를 입은 그 어떤 수치심보다도
내 딸의 존엄과 내 딸의 인격이 전리품으로 능욕당한
그 앞에 나는 무릎 꿇어 사죄한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딸아
* 매주 수요일 정오, 서울 안국동 일본 대사관 앞에는 흰옷 입고 종군
위안부 여성들이 모인다.
사랑하는 딸아 /이훈식
청각 장애자다
지체마저 부자유스러운
마을에서 부르는 이름은
버버리
고향도 나이도 모른다
걸식하며 떠돌던 삶
서너 해 전 앞을 못보는 할아버지와
짝을 맺었다
종소리 들릴 리 없고
시계도 없는데
예배 시간에 늦는 법이 없다
까막눈 버버리 주제에
찬송가 책은 옆구리에 끼고 다닌다고
보는 이마다 조롱을 했다
찬양이 끝난 줄 모르고
이응이 약한 소리로
엄마 엄마하다 웃음꺼리
기도가 끝난 줄 모르고 눈감은 채
엄마 엄마하다 눈총도 여러번
그분에게 남은 기억은
오직 엄마뿐이었나 보다
하나님은 엄마
엄마는 하나님
오른발 질질 끌며
예배당에 들어 설 때면
분명 그분은 그냥 앉아 있지 못하시리라
엄마가 눈물로 흐를 때면
맨 뒤에 앉으셔 추운 영혼을 보듬고 계시리라
사랑하는 딸에게 /김희선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청명한 하늘 아래
둘이서 하나가 되는 굳은 약속의 날,
신의 축복이 내리는 귀한 인연 앞에서
이토록 가슴 벅찬 기쁨을 맞이하였구나!
너는, 화사한 봄꽃으로 피어난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고
한겨울 아침 햇살 같은
따뜻한 희망이 되어 주었지
이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영원한 동반자와 넉넉한 가슴으로
가을 단풍보다 더 곱게 꽃물을 들이고
한 올 한 올 믿음으로 수놓으며
소중한 보금자리를 알뜰하게 엮어가는구나
암울한 세상을 사는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고자
고귀한 사명감이 자랑스러운
사랑 많은 내 아이야
너의 앞날에
이 가을날 알차고 풍성한 열매처럼
행복이 주렁주렁 열리길 기도한다
병상일지 /나태주
- 우리 딸 민애는
우리 딸 민애는 좋겠다
저의 엄마 젊어 있고
저는 나이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니
우리 딸 민애는 참말 좋겠다.
딸아이 /천봉현
배꼽 밑이
거뭇거뭇 하더라
가시나 벌써 배 밑에
까만 것이 났더래이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와
목욕탕에 다녀 온
제 엄마의 말이다.
오늘은 월요일 저녁
어제의 일을 말하고 있는
제 엄마의 표정에는
차곡이 쌓인 지난 시절 미련들이 얼핏얼핏
보이기도 하는데
중학교 2학년 여름
靑竹 숲에서
불두덩에 원죄 같은 검은 이끼를
처음 노출하고 서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던
하학길 개천에서
나른한 햇빛으로 친구와 함께
검은 이끼를 문지르던 욕망이
마음을 격랑의
노을 빛으로 물들이며 떠돌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서서히 머리가 벗겨지는 연륜 앞에서
다시는 딸아이의 배를 볼 수 없겠구나
다시는 가을하늘 흰 구름처럼 볼 수 없겠구나
그러나
빛나지 않는 것으로도
눈부실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흰 천에 먹을 뿌려야
검은 것이 산수화가 되고 난(蘭)이라도 쳐지듯
별은 밤이 깊을수록
오직 맑게 빛나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