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시 ; 밤 11시~새벽 1시 축시 ; 새벽 1시~새벽 3시 인시 ; 새벽 3시~새벽 5시 묘시 ; 새벽 5시~새벽 7시 진시 ; 아침 7시~아침 9시 사시 ; 아침 9시~아침 11시 | 오시 ; 아침 11시~오후 1시 미시 ; 오후 1시~오후 3시 신시 ; 오후 3시~오후 5시 유시 ; 오후 5시~오후 7시 술시 ; 밤 7시~ 밤 9시 해시 ; 밤 9시~ 밤 11시 |
23. 강녕전 康寧殿
1) 사정전 뒤쪽 향오문 지나면 나온다. 5의 수 적용.
강녕전 외에 4개 작은 침실을 두어 5의 수를 이룬다.
2) 침전, 독서, 사색, 정사도 논하고, 잔치도 베푸는 곳
3) 천원지방天圓地方 우주원리 적용, 바깥 기둥은 네모, 안쪽 기둥은 둥글다.
4) 강녕전, 교태전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다.
24. 강연전 의미 ; 서경 홍범구주에 오복중 셋째가 강녕이다. 오복 중간에서 오복을 다 관장한다.
"대체로 임금이 마음을 바르게 하고 덕을 닦아서 황극을 세우게 되면 능히 오체를 향유할 수 있다.
-오복 ; ①수壽(수명) ②부富(복과 같은 개념) ③강녕康寧(환난 없음)
④유호덕攸好德(덕을 좋아하고 행한다.)
⑤고종명考終命(형벌, 환난, 질병으로 죽지 않고 제 명대로 산다.)
25. 사정전 부속 건물
* 강녕전 동서에 소침 ; 동-연생전(生은 東), 서-경성전(成은 西)
천지 자연 법칙은 봄은 만물을 생성, 가을로써 이룬다.
26. 교태전 대문 양쪽 벽의 굴뚝은?
-교태전에 들어 가는 문, 양의문 양옆에 문자무늬를 새긴 높다른 굴뚝이 붙어 있다. 이것은 앞건물인 강녕전 부속건물의 굴뚝이다.
27. 흠경각 ; 교태전 서쪽 행각에 둘러싸인 함원전과 흠경각이 있다.
* 흠경각은 세종 때 유명한 과학자 장영실의 과학기구들이 설치됐던 곳이다. 세종의 과학정신과 애민정신이 잘 나타난다. 흠경각의 명칭은 서경 요전의 구절에서 따왔다.
-흠약호천 欽若昊天 하늘을 우러러 공경하며
-경수인시 敬授人時 백성들에게 때를 일러 준다.
* 함원전 : 교태전 서쪽, 부처님을 모시고 불교행사가 열렸던 전각이다.
28. 쪽문
29. 아미산
1) 교태전 뒤 인공 언덕, 꽃동산. 경회루를 파면서 나온 흙을 유용하게 처리한 것.
2) 아미산은 중국 사천성 아미현 서남쪽 산, 양쪽 산이 상대되어 나방의 촉수 같다.
3) 2개의 석조, 4개의 아름다운 6각형 굴뚝이 있다.
-6각 굴뚝엔 길상의 동식물 조각 십장생 등
-윗부분 귀면, 학, 봉황(상서), 박쥐(복) 등 / 중간부분 모란(부귀), 국화(은일), 창살, 매화(삼청) / 아래쪽 해치(벽사), 불가사리(벽사), 박쥐(복) 장식
30. 건순각 ; 교태전 부속 건물, 왕비의 순산을 기원하는 전각 명칭이다.
▣ 교태전交泰殿
1) 강녕전 뒤쪽 양의문兩儀門(양의는 음과 양 의미) 들어가면 교태전, 왕비 침전
2) 의미 ; 주역, 지천태 괘의 대상전에 "하늘과 땅의 사귀는 태의 괘상이다. 왕후는 그것으로 친지의 도를 이룩하고 천지의 마땅함을 보필하여 백성을 좌우한다"
태괘는 하늘과 땅이 서로 교합하는 상이다.
3) 교태전엔 용마루가 없다. 교태전은 왕과 왕후가 합방하는 곳인데, 용마루가 있으면 하늘의 기운과 땅의 정기가 합치는데 방해가 된다. 용마루가 없는 이유는 왕은 곧 용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 창덕궁 대조전, 창경궁 통명전 등 왕과 왕비의 침전(내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양식이다.
4) 왕의 침전인 강녕전에는 대청앞에 넓은 월대가 있고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에는 월대가 없으나, 대신 행각이 모두 연결되어 시녀들이 활동하기 좋다.
* 왕실 가족들의 주요 건물에는 화장실이 없다. (요강사용, 이동식 변기)
▣ [참고] 내명부 품계
① 정1품 ; 빈 ② 종1품 ; 귀인
③ 정2품 ; 소의 ④ 종2품 ; 숙의
⑤ 정3품 ; 소용 ⑥ 종3품 ; 숙용
⑦ 정 4품 ; 소원 ⑧ 종4품 ; 숙원
⑨ 종5품 이하 상궁부터 무수리까지
31. 자경전앞, 조대비와 수렴청정
1) 자경전은 조대비 거처, 총 44칸 규모, 침실은 복안당.
2) 교태전 아미산을 보고 동쪽 담에 나 있는 건순각(교태전 부속 건물, 왕비 순산 기원하는 전각)의 건순문을 나오면 꽃담장
-문자 萬,壽,福,康,寧 등, 소나무, 매화, 국화, 대나무, 모란, 연꽃 등
3) 십장생(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이, 사슴, 학) 굴뚝
* 흥복전(후궁 거처) 터와 풍기대 ; 풍기대는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측정하는 기구
4) 수렴청정
-왕이 어리면 대비나 대왕대비가 수렴청정 할 수 있는데, 왕대비가 원칙이고 왕대비가 없으면 대왕대비가 한다. 그런데 정실부인 왕비를 거친자라야만 할 수있고 후궁 출신은 안된다.
▣ [참고] 조선왕조에서 수렴청정이 있었던 것은 몇 번인가?
-성종; 13세, 세조비 정희왕후 윤씨
-명종; 12세, 중종비 문정왕후 윤씨
-선조; 16세, 명종비 인순왕후 심씨
-순조; 11세, 영조비 정순왕후 김씨
-헌종; 8세, 순조비 순원왕후 김씨
-철종; 19세, 순조비 순원왕후 김씨
-고종; 12세, 익종비 신정왕후 조씨
6명의 대비에 의해 총 7차례 시행됐다.
▣ 조대비와 대원군
1) 효명세자가 단명하고 추존된 익종의 왕비 신정왕후 즉 조대비의 거처가 자경전이다.
2) 조대비의 도움으로 흥선대원군의 제2자 이명복이 즉위하여 고종이 됐기 때문에, 대원군은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그 보답으로 자경전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주었다.
3) 특히 담장이 아름답다. 매화 난초, 모란, 연꽃 등 아름다운 그림으로 벽이 장식 돼 있다. 조대비는 여기에서 1866년까지 수렴청정을 했다.
* 조선말기 세도정치 ; 순조 11세, 헌종 8세, 철종 19세, 고종 12세로 즉위했다. 연속적으로 어리고 유약한 왕들이 즉위하여 순헌철 3대 60여년 간 외척세도정치가 자행되어 국력이 약화 됐다.
32. 신정왕후(조대비)의 지아비 익종의 계보 ;
1) 22대 정조와 수빈박씨 사이에 태어난 정조의 차남이 제23대 순조이다.
2)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 태어난 장남이 효명세자인데 단명하고 추존하여 익종이라고 칭한다. 이 익종의 부인이 신정왕후 조씨(조대비)는 헌종의 모후이다.
3) 익종과 신정왕후 사이에 태어난 장남이 24대 헌종이다. 헌종에게는 아들 없이 단명하였으므로 방계 철종이 즉위하였다.
33. 철종의 계보
1) 철종의 계보 ; 영조→사도세자→ 은언군 →3 남 전계군 → 3남 제25대 철종이다.
2) 철종도 후사가 없어서 방계 고종의 즉위하였다. 철종은 얼마나 자녀 복이 없나 하면, 왕비 포함 부인이 8명인데, 달랑 옹주 하나 뿐었네요. 왕위에 14년 6개월이나 있었는데~ 후계 생산 기술이 많이 부족했죠.
▣ 고종의 계보
1) 고종 선대 계보 ; 고종의 즉위는 행운이었다, 아주 먼 방계였다.
2) 영조→ 사도세자(장조) → 은신군 → 남연군(입적된 양자, 실제는 인조 세째 아들 인평대군 6대손)→ 흥선대원군(이하응) → 차남 고종
3) 고종의 6남1녀 자녀 ; 명왕황후 민씨 사이 27대 순종 / 귀비 엄씨 사이에 영친왕 / 귀인 이씨 사이에 완친왕, 육/ 귀인 장씨 사이에 의친왕 / 귀인정씨 사이에 우 / 귀인 양씨 사이에 덕혜옹주 출산.
34.아름다운 향원정 香遠亭
1) 자경전 북쪽 경복궁 후원, 향원정은 건청궁 앞뜰 연못이다.
* 청와대도 원래 경복궁 후원 자리, 과거시험, 군사훈련을 했다.
2) 향원 명칭 ; 송나라 성리학자 주돈이의 글 <愛蓮說>에 '향원익청 香遠益淸, 연꽃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라는 구절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이름이 연꽃에서 나와, 연꽃이 있었는데, 준설하여 연꽃을 없앴다. 연꽃이 불교 상징이기 때문이다. 연꽃은 조선 유학자들도 고운 빛깔과 고결한 기품이 군자 닮았다고 사랑했다.
원래 심은 대로 복원해야 할 사항이다.
3) 향원지 북서쪽 모퉁이에 '열상진원洌上眞源' 글자는 맑은 샘. 물이 들어오는 근원 의미
35. 건청궁 곤녕합
▣ 건청궁
1) 고종이 대원군 섭정 영향을 벗어나기 위하여 경복궁의 북쪽 향원정 연못 뒤에 가장 북쪽 외진 곳에 있다. 독립된 공간 영유. 궁궐속의 작은 궁궐이라고 흔히 말한다. 일반 사대부집같이 수수하다.
2) 고종10년 1873년에 지을 때 신하들의 반대가 있어서 고종이 내탕금으로 지었다. 사랑채 안채 별채 등 양반집 주택 비슷하다. 고종은 10년 11월에 친정을 선언했다.
3) 건청궁은 장안당(초양문, 고종 거처), 곤녕합(함광문, 명성황후 거처), 복수당(상궁거소) 건청, 곤영, 장안 이라는 이름엔 하늘(왕)은 맑고, 땅(왕비)은 편안하며, 모두 오랫동안 안녕을 누린다는 뜻.
36. 건청궁 옥호루, 을미사변 현장
* 명성황후는 친러정책으로 일본을 견제하였으므로 을미사변(1895. 10월 8일)을 당하여 건청궁 내에서 일본인에게 시해 당했다. 나이 45세.
* 을미사변 직후에 고종은 경복궁으로 옮긴지 28년 만에 1896년 아관파천(러시아 공사관 으로 거처 피난)으로 피신하고, 다시는 경복궁으로 환궁 못했다. 환궁은 경운궁(덕수궁)으로 갔다.
* 집옥재 ; 건청궁 서쪽, 도서수장, 서재 활용, 중국풍, 옥같은 귀한 보배(책)를 모은 곳이라는 의미.
37. 건창궁 부속건물, 녹금당
38. 관문각지
장안당 누마루에서 바라보면 향원정 연못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곤녕합 누마루에 옥호루가 있다. 건청궁 경내 뒷쪽에 서양식 관문곽이 있었다.
39. 가장북쪽 ; 태원전
1) 답사의 마지막은 대개 서북쪽 외진 곳 태원전이다. 그 기능은 왕실의 죽은이의 시신을 임시로 안치하는 빈전이다. 빈전의 빈殯자는 주검시尸변에 손님 빈賓자의 합자이다. 실제로 시신을 모시는 곳은 빈전 영역 안에 숙문당이란 곳이다.
2) 태조와 원종(인조 부친) 어진 봉안, 정통성 시비를 차단한 것.
3) 선원전 궁궐내 선대왕 초상화 모셔 놓은 곳, 작은 궁궐안 작은 종묘,
종묘 행차 번거로움 때문에. 경복궁엔 국립민속박물관 자리에 있었다.
▣ 참고 ; 종묘
1) 종로 4가, 태조 3년부터 지음. 선대 4조 신주 봉안 시작. 매력적인 장식은 없다.
2) 역대 왕과 왕비, 계비 포함, 신위만 모심.
3) 2001년 유네스코 등재. 필요시 정전 19칸, 영녕전 16칸, 기존건물 옆에 칸수를 널려나감.
* 연산군모 영조 모는 없다. 폐비나 빈은 안 모신다.
* 연산군은 생모를 위해 폐비 윤씨 위해 효사묘 세움. 폐지된 후에 그 땅을 종부시로 했다.
* 7궁사 ; 합사, 효명세자 문우묘, 의경세자 의경묘, 폐비 윤씨 효사모, 순화세자 순화묘, 인조생부 숭은전, 소현세자 소현묘, 중종 폐비 신씨 신비사.
▣ 능호 붙이는 규정 ; 후궁들의 무덤은 무엇이라고 부를까요?
1) 능(릉)陵 ; 왕과 왕비 무덤
2) 원園 ; 왕의 사친, 세자, 세자빈 무덤
3) 묘墓 ; 대군, 공주, 옹주, 후궁 등의 무덤
예) 태조 무덤-建元陵 / 쫓겨난 왕은 왕자신분으로 강등하여 광해군 묘, 연산군묘(도봉구 방학동)라고 한다. / 후궁은 일반적으로 묘이지만, 왕을 낳은 후궁은 원으로 높여 칭한다. 영조를 낳은 숙빈 최씨는 소령원, 영조 후궁 영빈이씨 무덤은 수경원으로 격상시킴.
[참고] ; 태실 ; 비빈이 왕자를 출산하면 그 태를 항아리에 담아서 묻었다.
-경상북도 성주에는 세종대왕의 열여덟 명의 왕자 중에서 적장자인 문종을 제외하고 열일곱 명의 태를 집단 안장한 태실이 있다.
-왕자가 태어나면 3일 만에 유모를 구하는 것이 관례였다. 주로 각사의 공노비 중에서 구했다. 훗날 자신이 키운 왕자가 왕이 되면 奉保夫人으로 봉해지기도 했다.
▣ 후궁 궁호. 7궁
1) 후궁은 간택 후궁도 있고, 궁녀중에 성은을 입어 되는 경우도 있다.
2) 조선전기에는 대개 후궁 거처를 궁이라고 하였으나, 후기에는 후궁출신인데 왕의 생모이면, 거처하는 곳이나, 생모 사당에 궁호를 붙였다. 인조 생모는 계운궁, 정조 생모는 혜경궁, 순조 생모는 가순궁, 영조 모 숙빈최씨사당은 육상궁.
3) 궁녀 출신으로 왕비가 된 사람은 장희빈 뿐이다. 왕비가 됐다가 다시 강등되기는 했지만~
40. 민속박물광
▣ [참고] 청와대에는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7궁이 있다.
왕을 낳은 후궁들 사당들이다. 청와대도 경복궁 영역이었다.
1. 저경궁= 선조 후궁, 인빈김씨, 원종(인종의 생부) 생모
2. 대빈궁= 숙종 후궁, 희빈 장씨, 경종 생모
3. 육상궁= 숙종 후궁, 숙빈 최씨, 영조 생모
4. 연호궁= 영조 후궁, 정빈 이씨, 진종(효장 세자, 정조가 입적한 부) 생모
5. 선희궁= 영조 후궁, 영빈 이씨, 장조(사도세자, 정조 생부) 생모
6. 경우궁= 정조 후궁, 수빈 박씨, 순조 생모
7. 덕안궁= 고종 후궁 ,순빈 엄씨, 영친왕 생모
41. ▣ 경복궁 스토리 텔링 ; 영조, 정순왕후
1) 조선시대 가장 오래 산 왕은 영조이다. 재위기간도 가장 길다. 1694~1776, 수 83세, 재위기간 1724~1776, 51년 7개월
2) 아름다운 대답
영조의 왕비 정성왕후가 66세로 승하하였다. 세살 연하인 영조가 66세 때 다시 맞이한 계비가 15세 정순왕후였다. 영조가 집적 간택할 때 처녀들에게 질문했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인가? 다른 처녀들은 산이 깊다, 물이 깊다했다. 정순왕후는 인심이 가장 깊다고 했다. 영조가 또 질문했다.
-가장 아름다운 꽃은 무엇인가? 정순왕후의 대답은 목화꽃이라고 했다.목화꽃은 비록 멋과 향기는 빼어나지 않으나, 실을 짜서 옷감을 만들어 백성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꽃이라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42. 근정전 회랑밖
▣ 오례 五禮 ;
1) 길례吉禮 ; 종묘사직 등에 제사
2) 가례嘉禮 ; 조회 사대례, 교육, 관례, 혼인 등 왕실 일상사
3) 빈례賓禮 ; 사신접대
4) 군례軍禮 ; 군대 통솔
5) 흉례凶禮 ; 국상절차
* 서례序例 ; 글로만 다 전달 못하는 정보를 그림 + 부연설명
* 의궤儀軌 큰 행사 공사, 전말 공식기록보고서
* 왕과 선비의 예법체계가 같은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논쟁했다.
-같다(왕사동례), 다르다(관혼상제 4례는 민간과 같고 왕실은 다른 오례가 있다.)
* 관례
-성인식 ; 15~ 20세 혼례를 치르기 전에,
-상투를 틀고 관을 썼다. 여자는 계례笄禮(쪽을 지고 비녀 사용)
-세자 관례는 10~12세, 세자 책봉 전후
* 유교적 사고 ; 논어에 "신종추원 愼終追遠" ; 돌아가신 부모의 상례를 잘 치르고 선조들의 제사를 잘 모시는 것.
-창덕궁 선원전 어진 초상화 모시는 곳, 종묘는 신위 모시는 곳.
-3년상 ; 태어났을 때 부모가 나를 온전히 보살펴 준 3년 되갚는다는 의미.
▣ [참고] 경복궁 시절 인원
-내명부의 후궁과 궁녀가 500명 내외 / -상시 수비 병력 2000명 정도
-노역 종사자 합치면 3000명 이상 / * 조선초 한양 인구 10만
43. 자선당 석축
▣ 동궁(춘방), 자선당
1) 근정전 동쪽 융문루(서고) 아래쪽 통로나, 사정전 동편 사현문으로 들어간다.
2) 자선당(정문 진화문, 세자 가족생활 공간), 비현각(이모문, 공부하는 곳), 행각, 중광문(서문), 이극문(동문)
3) 자선당資善堂이란? ; 왕세자가 기거했던 동궁이다. 資善이란 '착한 성품을 기른다' 명종 때 궁궐 일부 화재로 중건할 때 퇴계 이황이 쓴 상량문에 의거한 명칭.
▣ 조선왕조 왕실, 적장자 계승 원칙
1) 형편이 여의치 못했다. 정식 왕비와 많은 후궁을 거느렸음에도 불구하고 왕자 생산이 게을러서 후계자 계승에 차질이 많이 생겼다. 운동부족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있는 우리들은 복이다.
2) 적장자로서 즉위한 왕은 몇 명이나 될까요?
500년 조선왕조 27대 왕 중에서,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등 단 7명입니다.
▣ 조선의 권력 견제 균형
1) 조선의 권력은 임금이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임금, 관료, 사대부 식자층이 균형과 견제
-왕조실록은 임금 언행 죄다 기록했으나, 임금은 못 본다.
-정치가 붕당과 사론에 좌우
2) 궁궐 규모가 크지도 않고 , 장식이 화려하지 않다.
정연한 논리 체계, 이론적 건축 장치, 명징함과 단정함이 특징이다.
3) 세종은 경복궁을 그의 이상에 어울리는 유교적 공간으로 개편
4) 연산군은 창덕궁 후원에 서총대(지금 춘당지 부근) 인양전 유희 공간화, 폐위로 완성되지 못함.
5) 광해군 ; 인경궁 경희궁 공사
6) 정조는 흐트러진 의식 체계를 복구, 정전의 마당에 품계석 설치.
▣ 창덕궁과 관련 (* 다음 기회에 별도로 자세히 공부할 것)
1) 창덕궁은 태종이 지음, 성종 창덕궁 선호, 왕이 가장 오래 거처 한 곳은 창덕궁
2) 홍화문, 옥천교, 명정문, 명전전(정전), 숭문당, 문정문(편전), 후원은 비원秘苑 칭함.
3) 창덕궁은 병렬식 배치, 지형에 순응 자유분방, 조선적 특징,
-창덕궁은 답사하기 편하다. 건물이 아기자기한 구성, 자연경관과 어울린다.
-경북궁은 지그재그식으로 봐야 한다.
* 속담 ; "이왕이면 창덕궁" 과 같은 뜻의 속담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 영조 경희궁 선호 ; 경복궁 서쪽 6상궁 향사 편리해
* 정조 창경궁 선호 ; 사도세자 묘우 경모궁 가까워, 서울대 병원 자리.
정조의 경모궁 참배 회수는 300회에 이른다.
▣ 운현궁
1)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
2) 조선조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 , 12세까지 삶),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사저.
3) 한일강제병합 후 일제는 1912년 토지조사를 실시하면서 대한제국의 황실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 이왕직 장관을 시켜서 운현궁을 관리, 실제로 운현궁을 유지·관리하는 일은 소유권에 관계없이 이로당의 안주인들이 계속 맡아했다.
4) 대한민국정부와 대원군 후손 사이에 법적 공방, 대원군의 5대손 이청(李淸, 1936- )씨에게 운현궁 소유권이 확정되었다. 1991년 운현궁을 유지, 관리를 위해 서울시에서 매입, 1993년 12월부터 보수공사 정비.
출처 :문예시대 한국가람문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 學亭 이재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