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인 더 하이츠>
1. 미국 뉴욕 ‘워싱턴 하이츠’에 거주하는 라틴 아메리카인들의 삶을 때론 고통스럽게, 때론 유쾌하게 묘사한 영화 <인 더 하이츠>가 개봉했다. 미국 뮤지컬 부문 토니상 11개 부문을 수상할 정도로 검증된 작품을 영화로 재현한 것이다. 미국 사회의 차별적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라티노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아픔과 고민의 실체를 전달한다.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고향을 떠나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라티노들은 몸은 미국에 있어도 고향에 대한 향수를 쉽게 잊지 못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가 그들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현실에 대한 전망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2. 영화의 초중반부는 현실의 무게와 장벽 때문에 무너지고 있는 라티노들의 고통이 조명된다. 마을은 경제적 어려움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며, 마을을 떠나 의상 디자이너의 꿈을 꾸는 바네사는 집을 임대하는 데에서부터,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는 것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편견을 만나야 했으며, 마을의 희망을 상징하는 공부 천재 니나는 서부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을 했지만 그곳에서 마치 모래알처럼 사람들에게 배제의 대상으로 살아갈 뿐 아니라 인권모독적인 대우를 받게 되자 자퇴를 결심한다. 이들이 지닌 삶의 어두움은 어느 날 마을에 닥친 갑작스러운 정전사태로 극대화된다. 모든 것이 멈추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생활의 의욕을 잃어버린 채 거리에 쓰러진다.
3. 이때 거대한 반전이 시작된다. 마을의 상징적 지주였던 쿠바 출신의 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사람들은 삶의 회복을 선언한다. 마을 광장으로 모여든 수많은 국가 출신의 라티노들은 한바탕 춤과 노래로 축제를 벌이며 정전으로 무너진 마을을 생기로 가득차게 만든다. 이때 흥미로운 장면은 각 국 출신 라틴노들이 소개되며 유사하지만 독립적인 라틴인들의 차이가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라티노라고 불리며 공동의 차별과 싸우고 있지만 각자 모두 그들의 국가를 지닌 개성적인 존재들인 것이다. 한바탕 축제가 끝나자 불은 들어온다.
4. 차별과 고통 때문에 꿈을 포기하거나 미국을 떠나려던 라티노들은 미국에서의 진정한 삶의 의미를 파악하고 새로운 도전에 들어서게 된다. 고향 도미니카의 해안으로 돌아가려던 우스나비는 워싱턴 하이츠의 부흥을 위해 ‘지금-여기’에 충실하기로 결정한다.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던 바네스도 마을 속에 널려있는 흔적을 통해 작품의 영감을 찾고 자신의 일에 열정을 회복한다. 대학을 포기하려 했던 니나도 대학에서의 공부가 단순히 자신만의 일이 아닌 라티노 전체의 권리와 인정을 회복하는 중요한 과제임을 파악하고 다시 도전한다. 영화 속 어린 소년은 불법이민자 추방유예를 주장하는 집회에 참석한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미국에서의 삶이 ‘적응과 도전’이라는 두 개의 상반되지만 중요한 행위를 통해 결정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5. 영화 초반에 미국 사회에서 살면서도 지속적으로 조국에 대한 향수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에 불편을 느꼈다. 현실적으로는 미국의 사회적 제도를 이용하면서도 그 곳에서 얻은 이익을 갖고 미국을 떠나려는 태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처럼 삶은 과거의 정체성에 지나치게 얽매여서는 안 된다.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이 바로 삶이 이루어지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한 지역에 거주한다면 그 지역에서 요구하는 삶의 방식과 태도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후에야 그곳에서 만나는 차별과 불이익에 대해 투쟁할 수 있는 것이다.
6. 결국 삶이 ‘유목의 여정’일지라도 멈추었을 때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떠나려는 마음’이 지배하는 사람은 장소에도, 사람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끝없는 불행과 마주해야 한다. 영화 마지막 여전히 ‘워싱턴 하이츠’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라티노들의 모습을 보면서 고통 속에서도 적응하려는 그들의 긍정적 에너지를 확인한다. 공간은 특정한 자격을 지닌 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마음과 그것을 위해 필요한 규칙을 준수할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공존할 수 있는 장소이어야 한다. 때론 불가능의 장벽이 가로막는다 해도 사는 것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변화를 위한 점진적인 노력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
첫댓글 현재가 있기에 과거와 미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