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변한 이정표 하나 없는 작은 절집, 박달재를 굽어보며 늙은 소나무와 바위들을 벗한 작은 절집, 이따금 찾아드는 구름과 산새들이 내집인양 쉬어가는 그곳...그곳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 위치한 어여쁜 절 경은사이다.
제천에서 충주로 이어지는 38번국도는 박달재를 넘는다. 박달재터널을 빠져나오면 오른쪽 산 중턱에 얼핏, 하얀 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달리는 차의 속도가 빠르다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크기와 거리에 있어 바쁜 걸음이라면 눈여겨보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가파른 바위산 위에 우뚝 솟은 그 모습에 끌려 차의 방향을 틀었다면 예쁜 절 경은사와 만나는 즐거움이 기다린다.
그 길은 박달재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휴식년을 맞아(2009년 1월 1일~2010년 12월말까지)운영이 중단되고 출입이 통제되는 박달재휴양림이지만 경은사로 가는 걸음은 출입이 자유롭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멀리서 보이던 신기루 같던 하얀 탑이 바로 눈앞에 있다. 쭉쭉 뻗은 소나무과 잡목이 우거진 숲은 금세 깊은 산중을 방불케한다.
그리고 그곳,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한 경은사의 모습이 보인다. 수령 150년 이상의 소나무들과 기암괴석들에 둘러싸인 경은사의 모습은 풍경화가 따로 없다. 자잘한 들꽃이 나붓하게 엎드린, 자연석으로 만든 계단을 한 층 한 층 밟아 오르면 마침내 경은사 앞마당이다. 그 앞마당에 서서 둘러보는 주변 풍광 또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저 멀리 산중턱으로 보이는 길이 국도38번 길이고, 박달재 터널 입구도 작게 보인다.
태백산맥 치악산의 가지인 구학산 기슭에 자리한 경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이다. 사찰 뒤로 기암괴석이 울퉁불퉁한 봉우리를 이루고, 앞으로는 도덕봉 너머로 박달재 옛길이 보인다. 조선 중기, 탄명 스님이 수행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당시에는 도덕암 혹은 백운암으로 불렸다. 빈터로 전해오던 곳에 작은 토굴을 마련하여 명맥을 잇던 것을 1939년 화재로 전소된 후 1942년 법당을 재건하고 경은사로 개칭했다.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해 삼성각 봉향각 향적당 범종각 등의 여러 건물들이 소박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다. 또 이곳에는 유형문화재 몇 점이 보관되어 눈길을 끈다. 목조문수보살좌상 및 복장유물과 강희오십년명 석감, 우암 송시열 영정과 추양정사 영정이 그것이다.
충북도가 유형문화재 제294호로 지정한 '목조문수보살좌상 및 복장유물'은 규모가 작고 조각솜씨도 단정해 조선시대 후기 불상양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복장기가 전해져서 조성시기를 알 수 있고 두건을 쓰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유형문화재 제295호인 '강희오십년명 석감'은 석감의 뒷면과 측면의 명문에 의해조성 주인공과 연대를 알 수 있으며 석감 자체가 희귀한 유물로 평가되기 때문에 중요연구 자료로 꼽힌다. '우암 송시열 영정'은 옥천 경현당에 보관 중이던 초상화로, 경현당은 우암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옥천에 내려와 세운 서당이다. 명암을 사용하지 않고 표현한 강한 눈매와 숱 많은 눈썹, 붉은 입술 등 의리의 삶으로 점철된 우암 선생의 고집스러운 성품이 잘 표현돼 있다.
절집 한 구석에는 바위 틈새로 샘솟는 자연 암반수가 있다.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한번 둘러보는 경은사의 그 모습은 여전히 풍경화 속에 자리한 한 장면으로 펼쳐진다.
*맛집 묵마을(043-647-5989)은 제천에서 충주 가는 38번국도 변에 있는 도토리묵 전문점이다. 도토리 냉면, 도토리 묵무침, 도토리 빈대떡 등 박달재에서 자생하는 도토리로 만든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다. 가늘게 채 썬 묵에 양념한 육수를 붓고 따끈한 밥을 말아먹는 채묵밥이 인기.
*가는 요령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에서 찾아 들어가는 코스와 중부내륙고속도로 음성감곡 IC에서 진입하는 방법이 있다. 어느 코스를 잡아도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