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성탄 2022. 12. 25
최고의 선물
요한복음 3:16-17
성탄 인사- 오늘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아기의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날입니다.
옆에 계신 성도님들과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Merry Christmas! 성탄을 축하합니다!
그런데 과연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일이 맞을까요? 실상 성경에는 예수님의 생일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즉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면 12월 25일은 어떻게 예수님의 생일로 정해진 것일까요?
12월 25일 설을 내세운 대표적인 사람은 주교 율리우스 1세(재위 337-357)입니다. 그는 누가복음 1장의 내용에 근거해서,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초막절에 환상을 본 후 요한이 잉태되었는데, 그로부터 6개월 후 춘분에 그의 친척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고, 9개월 후 동지(12월 25일)에 예수님을 낳았다고 추정한 것입니다.
354년에 편찬된 ‘필로칼루스의 연대기’라는 책에 보면, 336년에 최초로 예수님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기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발포하여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지정한 후였습니다. 아마도 그 이전에는 기독교가 로마의 박해를 받고 있었기에 예수님의 탄생일을 기념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12월 25일은 로마인들이 전통적으로 태양신의 생일로 지키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여러 문화권의 종교에서 생명과 선을 상징하는 빛의 원천인 태양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바로 12월 25일이 태양의 탄생일이었던 것입니다. 12월 25일을 태양신의 생일로 지킨 것은 동짓날인 12월 22일에 태양이 가장 약해졌다가 3일 후인 25일에는 힘을 얻어 새로 태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회의 입장에서는 12월 25일이 태양을 섬기는 축제일이라도, 예수님의 탄생일로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비추는 빛”(요1:9, 3:19)이라고 증언합니다. 이후 태양절 축제는 사라지고 12월 25일은 성탄절로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동방 정교회(러시아)에서는 1월 7일을 성탄절로 지킵니다.
로마 시대에 정한 달력을 율리우스력이라고 합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이집트의 지식을 접하고, 1년을 365일 또는 366일(4년에 한 번, 2월 29일)로 정합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매년 11분 14초가 길어서 128년마다 1일의 편차가 났습니다. 큰 문제 없이 사용되던 율리우스력은 천 년이 넘어가면서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가톨릭이 지배하던 16세기 유럽.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기념일인 부활절의 날짜를 정하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원래 부활절은 춘분 다음 보름이 지난 첫 일요일로 정해지는데, 처음에 부활절을 제정하던 서기 325년에는 3월 21일이던 춘분이 율리우스력의 오차 때문에 조금씩 앞당겨져 1300년 정도가 흐르자 10일까지 차이가 생긴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교황이던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우선 1582년 10월 4일 다음 날을 10월 15로 정하여 열흘의 날짜를 줄여, 춘분이 3월 21일이 되도록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400년에 윤일이 100일이던 것을 97일이 되도록 조정하였습니다. 이것을 그레고리력이라고 합니다. 율리우스력보다 더욱 정밀해진 것입니다.
문제는 모든 나라가 다 똑같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이 제정하였다는 이유로 이 역법을 사용하지 않은 지역이 적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로마 가톨릭과 다른 동방 정교회(orthodox)의 그리스와 러시아는 20세기 초까지도 율리우스력을 사용하여, 날짜 때문에 웃지 못할 사건·사고가 많았다고 합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여전히 율리우스력으로 날짜를 헤아리기 때문에, 율리우스력 12월 25일은 그레고리력으로는 다시 하루가 더 벌어져 11일 차이가 나는 1월 7일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와 함께 1월 7일을 성탄절로 기념해왔으나 올해는 러시아 침공 여파로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옮겼다고 합니다.
성탄절은 선물의 계절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보배합을 열어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린 이후로, 사람들은 성탄절에 선물이나 카드를 서로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성탄절을 손꼽아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선물 때문입니다.
양말을 걸어두는 이유 – 전설에 의하면 세 명의 착하고 예쁜 딸을 가진 귀족이 있었습니다. 딸들은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만, 귀족이었지만 가난한 아버지는 딸들에게 줄 지참금이 없었습니다. 그 착한 딸들에 대한 소문과 그들의 어려운 사정에 대해 전해 들은 성 니콜라스는 그 집 굴뚝으로 금화 세 주머니를 떨어뜨려 주었다고 합니다. 이 금화 주머니가 마침 말리기 위해 벽난로 위에 걸어둔 딸들의 양말 안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후 아이들은 산타클로스(성 니콜라스)로부터 선물을 받기 위해 벽난로 위나 집안 곳곳에 양말을 걸어놓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니콜라스라고 하는 수도사는 서기 280년경 지금의 터키 지역에 있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관대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전설에 의하면 그는 상속받은 재산을 사람들에게 전부 나누어준 다음, 멀리 떠나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가톨릭교회에서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성 니콜라스’(줄여서 ‘세인트 닉’, Saint Nick)의 네덜란드식 애칭은 ‘신터 클라스(Sinter Klaas)’였는데, 그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한 후 영어 발음 ‘Santa Claus’로 변형되었습니다. ‘성 니콜라스’를 기념하는 기일이 12월 6일이었는데, 훗날 성탄절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성탄절에 선물을 전해주는 ‘산타클로스’가 된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1886년 12월 24일 스크랜턴 여사가 이화학당 학생들을 위해 만든 크리스마스트리가 첫 크리스마스 장식입니다. 한국의 첫 산타클로스는 아펜젤러 선교사였습니다. 1887년 12월 25일에 정동교회 아이들과 배재학당 학생들과 함께 성탄 예배를 드리고, 양말에 선물을 담아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
<선물로 오신 예수님>
‘성탄절’은 왜 우리에게 귀한 날입니까? 그 가치를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말씀이 바로 요3:16입니다. 요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선물로)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괄호 안에 “(선물로)”를 넣어 읽으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집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스스로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소개하신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땅을 통과하여 지나가신 일이 있었는데, 수가라 하는 동네에 있는 야곱의 우물 곁에서 쉬셨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는데, 예수님께서 물을 좀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며 부담스러워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십니다.
요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선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선물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선물은 주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선물을 줄지 말지는 주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받는 사람이 요청해서 받는 것이라면 엄밀한 의미에서 선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대가를 바라는 것은 진정한 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뇌물입니다. 진정한 선물을 주는 사람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줍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사실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을 선물로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런데 왜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선물로 주셨을까요? 예,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선물로) 주셨다”고 명확하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여러 가지로 부끄러운 존재이지만, 하나님 앞에 사랑스러운 존재이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은혜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받는 사람이 주인>
그런데 선물은 받는 사람이 받아들여야 선물이 됩니다.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강제로 받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 받아들이는 사람, 즉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만 그 선물이 의미(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계(로봇)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고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해 하나님을 기뻐하고 예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독생자 예수님을 통한 구원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들은 자’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믿는 자’, ‘영접하는 자’는 적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 탄생하실 때에도 그랬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의 탄생을 칼로 맞이하였습니다. 바로 당시 최고의 권력자 헤롯 왕입니다. 그는 유대 남쪽에 있는 에돔 이두매 출신이었습니다. 에서의 후손으로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로마 황제의 마음에 들었고, 유대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대 땅의 왕으로 임명받을 수 있었습니다. 헤롯은 공포정치를 통해 정치적으로는 유대인들을 억압했으나 또 다른 한편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46년에 걸쳐 성전을 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헤롯 왕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마2:1-2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유대 땅의 정치적인 상황을 모르는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는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묻고 다닌 것입니다.
당연히 이 소식은 헤롯 왕의 귀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는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현재 자신이 유대인의 왕인데 자기도 모르는 새로운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은 엄청난 긴장감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합니다.
장차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마2:4-6))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동방박사들을 불러 베들레헴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속마음을 감춘 채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마2:8)고 부탁합니다.
이렇게 해서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으로 가는데, 가는 도중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별이 멈춘 곳에서, 아기 예수님을 발견한 동방박사들은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황금은 왕에게 드리는 가장 가치 있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왕으로 오셨음을 의미합니다. 유황은 당시에 가장 거룩한 제사에서 태우는 향료였습니다. 유황을 바쳤다는 것은 예수 아기를 장차 하늘과 땅 사이에 다리를 놓아 인간을 구제할 중재자로 진정한 구세주로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몰약(沒藥)은 시체에 썩지 말라고 바르는 방부제의 일종입니다. 갓 태어난 어린 아기에게 주는 선물로는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십자가에서 처형되실 것을 예언하는 물건입니다.
경배를 마친 동방박사들은 헤롯에게 돌아가 알리려고 하는데,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음성을 듣고 바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조바심이 난 헤롯은 아기 예수를 죽이고자 베들레헴에 태어난 두 살 미만의 유아들을 살해하라는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립니다(16절).
하나님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현몽하여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라”(마2:13)고 전해주어 애굽으로 피하였습니다. 그리고 헤롯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사렛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것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북한입니다. 집안에서 성경이 발견되거나 예배하면 사형에 처합니다. 왜요. 수령님을 우상화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헤롯과 같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었지만, 그저 지나가는 소문쯤으로 여겼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묻고 다니자,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문이 예루살렘 성안에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다”(마2:3)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습니다. 그 이상의 어떤 반응도 없었습니다.
아니, 선지자가 예언했던 메시아가 태어났다는데 어찌 그럴 수 있냐고요?
잠시 관심은 가졌지만, 그냥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더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듣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일상에 치이기 때문입니다. 삶이 고단하고 바쁘다 보니, 다음에, 다음에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선물도 받는 사람이 거부하거나 무관심하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동방의 박사들처럼, 이 땅에 선물로 오신 주님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경배하며 찬양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의미>
선물이 진정한 선물이 되려면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진정한 선물이 됩니다.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성공한 아들이 시골 어머니에게 편지와 함께 수표를 부쳤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그 수표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 수표들은 벽지가 훼손되었을 때 덧붙이는 종이가 되었습니다. 그 수표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기에 그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에게 선물로 오신 예수님은 얼마만 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마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오직 보물을 발견하고, 또 그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전 소유를 팔아서 밭을 산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3:45-46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오직 진주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그 진주를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보물입니다. 독생자가 바로 그 진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몽땅 팔아서라도 그분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이란 결국 가치의 문제입니다.
<맺는 말씀 – 최고의 선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탄절에, 예수님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최고의 선물’로 이 땅에 오셨음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은혜로 값없이 주신 그 선물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알기에, 나의 모든 것을 팔아 보화(진주)를 사듯, 나의 삶을 그분을 위해 드리는 복된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성탄절이 여러분 생애 최고의 선물을 받는 성탄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말씀에 은혜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