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진리 등대/딛 1:10-16
성경본문 : 디도서 1:10-16
10.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11.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12.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13.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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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6(새번역)
10복종하지 않으며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특히 할례받은 사람 가운데 많이 있습니다.
11그들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그들은 부정한 이득을 얻으려고 가르쳐서는 안 되는 것을 가르치면서 가정들을 온통 뒤엎습니다.
12크레타 사람 가운데서 그들의 예언자라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크레타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거짓말쟁이요, 악한 짐승이요, 먹는 것 밖에 모르는 게으름뱅이다." 하였습니다.
13이 증언은 참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엄중히 책망하여 그들의 믿음을 건전하게 하고,
14유대 사람의 허탄한 이야기나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십시오.
15깨끗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합니다. 그러나 더럽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깨끗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그들의 생각과 양심까지도 다 더러워졌습니다.
16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행동으로는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증하고 완고해서 전혀 선한 일을 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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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올해 1월 18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천주교 사제와 신도들 사이에 단전호흡과 기공수련이 번져나가자, 천주교 지도부는 각 교회에 "氣수련 말라"는 공문을 하달했습니다. 강주교는 이 공문에서 “기성 종교의 권위와 가치, 제도를 거부하고 개인의 잠재능력을 개발해 심리적인 안정을 얻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신흥 종교운동은 명상, 요가, 기, 선(禪) 등과 같은 수련방법을 제공하며 한국 사회에서도 널리 동조자를 모으고 있다”며 우려했습니다. 그는 이어 “기 수련 문화는 처음에는 비록 건강의 보조수단으로 다가오지만 차츰 정신세계와의 교류가 전제되고 자연스럽게 종교적 차원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공존하기 어려운 신비주의적 우주관으로 연결되기 쉽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또 1989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내려보낸 ‘그리스도교 명상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이라는 문헌을 인용하면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그리스도교 신비주의는 엄격한 의미에서 기교나 기술에 바탕을 두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기 수련이란, 원래 자기 안에 있는 능력을 개발하자는 데서 출발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를 섬기고 숨기는 방향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강주교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크리스천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그분과 하나가되는 신비는, 어떤 비밀스러운 노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은 만큼, 인간은 거룩해지고, 하나님께 한발짝씩 더 가까이 나아가며, 마침내 그분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하게 되는 은총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율법주의가 침투한 초대교회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수련의 예에서처럼, 율법주의란, 원래 하나님의 계명/율법을 잘 지켜보자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하나님이 율법을 주실 때에 목적하신 바가 무엇인지 탐구하지 않고, 율법을 잘 지키는 방법과 규칙만 연구하고, 이를 엄격히 실천해나갔습니다.
기원전 2세기에 이스라엘 지역을 다스리던 셀류커스 왕조는 유대인들이 여전히 율법을 지키고 모세의 하나님을 섬기면서 희랍 문화에 동화되지 않음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강제로 유대인들에게 돼지고기를 먹이고, 이를 거부하는 자들은 무참히 죽여버렸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변절하였지만, 또 많은 유대인들이 신명기 율법서에 기록된 부정한 짐승을 먹을 수 없다는 규정을 어길 수 없어, 죽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혁명 시기에, 일단의 유대인들은 동굴로 도피해서 살길을 모색했습니다. 적들은 곧 그들을 뒤쫓아와 그들을 모조리 죽여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 저항없이 죽었습니다. 그날이 바로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배자에 의해 체포된 한 랍비는,깨끗이 씻지 않으면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다는 정결법을 이행하기 위해서, 죄수에게 주는 아주 적은 물로, 손을 씻다가, 물이 적은 팔레스틴 감옥에서 목말라 죽었습니다.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어서 죽은 사람들, 안식일에 무기를 들 수 없어서 죽은 혁명전사들, 자신이 마셔야 할 물로 손과 발을 씻은 랍비...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도대체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들은 분명 목숨 걸고 율법을 지켜낸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과연 목숨을 걸만한 일인지 아닌지를 차지하고라도, 그들은 분명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사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만약 율법에 대한 유대인의 열심이 여기서 끝났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런 열심을 모든 사람에게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가차 없이 내쫓고 죽여버렸습니다. 거기에서부터 율법은 감화력을 주는 것에서, 종교생활을 억지로 하게 하는 율법주의로 변질되어갔습니다. 그런 종교생활에는 인간만 남고, 하나님은 실종됩니다. 경건은 있는데, 하나님의 성령은 없습니다. 의로운 행위는 있는데, 하나님은 인정하시질 않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주의 신앙은 결국 죽은 종교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런 율법주의의 폐단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바울은, 크레타 섬의 도시 교회들에 파고든 율법주의의 도전에 경고하고 나선 것입니다.
본문해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런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0복종하지 않으며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특히 할례받은 사람 가운데 많이 있습니다. 11그들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그들은 부정한 이득을 얻으려고 가르쳐서는 안 되는 것을 가르치면서 가정들을 온통 뒤엎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크레타 교회를 흔들어놓은 거짓 교사들의 그림을 봅니다. 그들 가운데서도 유대인 교사들은 더 심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막 그리스도 신앙으로 개종한 크레타 사람들에게 두 가지로 설득하려 했습니다. 첫째로, 현명해지려면, 예수와 십자가에 대한 단순한 얘기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그래서 복잡한 족보에 관한 지식과 랍비들의 난해한 가르침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경건해지려면, 은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음식과 정결에 대한 규례와 규칙을 잘 알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가르침을 주는 교사들을 세 가지로 정의합니다.
첫째로, 그들은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절하는 군인과 같이 불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신자의 모든 삶에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획일적 신앙을 요구하는 것도 틀린 것입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그걸 어떻게 하면 잘 실천할 수 있는지는 반드시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은총으로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이 진리에서 벗어나면, 신앙은 인간의 업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크레타의 유대 교사들은 크레타 사람들을 바리새인처럼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헛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희랍어로 "마타이오로고이 (mataiologoi)"입니다. 헛됨 (vanity), 공허 (emptiness), 유익없음 (profitlessness)이란 뜻입니다.
희랍 사람들은 이 말을 이교도들의 예배에 적용하곤 했습니다. 자기가 예배하는 신은 진짜요, 다른 사람이 다른 신에게 예배하는 것은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입에 담고, 성서를 인용한다고 해서, 다 삶을 선하고 경건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2:2에서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알지 않기로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3:8에서는, "자신의 훌륭한 종교적 이력서를 배설물로 여긴다"고 선언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고...율법에서 오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가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빌 3:8-9). 그런데 크레타의 교사들은 바울이 이미 배설물로 여기고 버린 것을 다시 줏어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그들은 속이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왜 거짓말을 합니까?
심리학적으로 보면, 자기 방어의 기제 (self-defense mechanism)로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왜 자기를 방어하려 합니까? 창피를 안 당하려고, 위기를 모면하려고, 잘못을 은폐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좀 다르게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안에 있는 것을 내놓습니다. 안에 진리가 있는 사람은 진리를 내놓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없는 사람은 거짓을 내놓는 것입니다. 진리로 삶이 변화된 사람은 진리를 쏳아놓습니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없는 사람은,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문제점, 즉, 크레타의 거짓 교사들이 교권에 불순종하고, 경건에 아무 유익이 없는 말을 하며, 자기 자신과 남을 속이는 일은, 크레타 교회에 아주 나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크리스천 가정들을 온통 뒤집어 엎었던 것입니다. 개인의 신앙생활만이 아니라, 가정의 행복마저 파괴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으로 경건해진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며, 멀리합니다. 자기 의에 가득차게 되고, 교만해집니다. 그러니 인간관계가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11절에서 바울이 언급한 가정은 꼭 핵가족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대가족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크레타 교인들은, 율법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받아서, 경건해지기는 했는데, 다른 믿지 않는 친척들을 그리스도 신앙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럼 왜 이런 문제가 벌어지게 되었을까? 바울은 12절과 13절 상반절에서 그 첫 번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12크레타 사람 가운데서 그들의 예언자라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크레타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거짓말쟁이요, 악한 짐승이요, 먹는 것 밖에 모르는 게으름뱅이다." 하였습니다. 13이 증언은 참말입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악명높은 세 그룹이 있었는데, 모두 C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는 크레타 사람들 (Cretans)이요, 그 다음은 시실리아인들 (Cicilians)이요, 마지막은 카파도키아인들 (Capadocians)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크레타인들은, 술 잘 먹고, 무례하고, 믿을 수 없고, 거짓말 잘하고, 탐식하는 자들로 유명했습니다.
폴리비우스는 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는 돈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졌다. 그래서 많은 소유를 갖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었다. 결국 탐욕과 악덕이 크레타 땅에 팽배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돈이 되는 것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또 크레타에는 제우스의 무덤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신중의 신이 죽을 수 있다는 건, 거짓말 중에서도 큰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래서 희랍어로 거짓말하다라는 말로, 크레타 사람을 비유하여, "크레티제인 (cretizein)"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크레타 사람들은 고대 희랍세계에서도 거짓말쟁이로, 믿을 수 없는 사람들로, 배신자로 낙인찍혔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 희망 없는 사람들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가서 그들을 변화시키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가스펠 송 가수 피터 빌혼이, 한번은 아이오와 주에 있는 포트메디슨 형무소에서 가스펠 송으로 전도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때에 부른 노래 가운데 "날개가 상한 새는 날 수 없습니다" 하는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를 듣고 죄수 하나가 찾아와서 울면서 "날개가 상한 새는 영영 날수 없는 겁니까?" 하고 슬픈 얼굴로 묻습니다. 아무 대답도 못 했습니다. 그리곤 집에 돌아왔는데 그 물음이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습니다. '날개가 상한 새는 날수 없습니다.' 그 슬퍼하는 사람을 보고 그는 깊은 은혜 가운데 노래를 다시 지었습니다. 그 작곡한 노래가 이렇습니다. "예수께로 가면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 맡기기만 하면 실패한 과거도 새롭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에 그대를 맡기십시오. 그대의 날개는 다시 새로워지고 높이높이 푸른 하늘을 날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20년 후에 뉴욕 YMCA에 행사 참석차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거기에서 자기 눈앞에 미군 대령 한 사람, 버젓한 대령이 나타나서 인사를 합니다. "제가 20년 전에 상한 날개를 치유하면 다시 날 수 있다고 한 그 노래를 듣고, 당신의 노래를 듣고 새 사람이 된, 바로 제가 그 사람입니다." 피터 빌혼은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은 희망 없는 존재에게 새 삶을 주시고 변화되게 하신 것입니다. 복음 앞에서는 희망 없는 존재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은총 앞에선 용서받지 못할 죄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에 접촉되고, 그 안에서 그분을 만난 사람은 모든 것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왜 크레타 교회에 율법주의의 문제가 생기게 되었을까? 그 두 번째 단서는 13절 하반절부터 16절에 나와 있습니다.
13...그러므로 그들을 엄중히 책망하여 그들의 믿음을 건전하게 하고, 14유대 사람의 허탄한 이야기나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십시오. 15깨끗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합니다. 그러나 더럽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깨끗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그들의 생각과 양심까지도 다 더러워졌습니다. 16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행동으로는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증하고 완고해서 전혀 선한 일을 하지 못합니다.
크레타 교회에 율법주의가 들어와 사람들의 신앙을 어지럽히게 된 것은 바로 유대인들이 그 교회에 들어와서, 거짓된 가르침을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사람의 허탄한 이야기"란 족보에 관한 것입니다. 신약성서 시대의 유대인들은, 위대한 인물에 대한 가상적인 족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 것 알면, 성서에 대해 굉장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믿음에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바울의 지적입니다. 또 진리를 배반한다는 것은, 15절과 16절에 언급된 정결법 논쟁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 14:20에서, 선언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고, "당신의 제자들은 왜 율법의 규례를 지키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사람 밖에서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서 그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힌다" (막 7:15-16)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이 율법을 주실 때는, 무더운 사막 기후에 사는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것이었습니다. 가령 돼지고기는 그 무더운 날씨에는 쉽게 부패하고, 그걸 먹은 사람은 죽기 쉬웠습니다. 또 씻지 않고 음식을 먹으면, 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정결법은 유대인들이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좋은 습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법이 되면서, 좋은 습관이 남의 나쁜 습관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잣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즐거움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감동과 감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미워하고, 정죄하고, 죽게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그들의 마음에서 악한 생각들, 즉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증언과 비방이 나오고,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 15:18-19). 그들은 남보다 겉은 더 깨끗했지만, 속은 더 더러웠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양심을 위배하고 있었습니다 (15). 그래서 입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행동으로는 그분의 존재를 부정했습니다 (16a). 가증스럽고 = 구역질 나고, 완고해서, 전혀 선한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남도 상처주고,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경건--이것이 유대인의 율법주의가 갖는 중대한 허점이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일간지들은, 2월 2일자 뉴스로, 인터넷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20대 남자 두명이 조치원읍 모 여관에서 동반자살했다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여관 주인 조모(50)씨는 『30일 투숙해 소주 2병과 맥주 4병을 시켜 먹은 뒤 다음날 오후까지 기척이 없어 확인해보니 이불을 덮고 나란히 숨져있었고, 옆에 「자살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적힌 메모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버려야 했을까? 저는 지난 주에 깊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바로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가증스럽고 = 구역질 나고, 완고해서, 믿지 않는 사람에게 전혀 매력을 주지 못하고, 소망을 잃은 사람들이 기대고 의지할 어깨가 되어주질 못한 것입니다.
또 하루 평균 0.74개씩 자살 사이트가 생겨난다고 합니다. 법으로 금했음에도 불구하고, 3일에 두 개씩 삶을 비관하고 죽음을 찬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처럼 율법주의로 변질되서, 아무런 생명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성하게 됩니다.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생긴 일입니다. 따뜻한 봄날이 되어, 마을의 모든 배들이 만선의 기대를 안고 출항했습니다. 몇 일이 지났을 무렵, 그 해안가에는 무서운 태풍이 몰아쳤습니다. 아내와 어머니, 아들과 딸들은 모두 부두가에 나와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바람의 기세는 꺾일 줄 몰랐고, 사나운 파도가 들이치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등대도 고장이나, 밤은 칠흙이 어두웠습니다. 그때 멀리서 "불이야"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산 꼭대기 집에 불이 붙은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불이 난 게 아니라, 불을 지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칠흙 같은 어두움 속에서 사방을 분간하지 못하던 배들이, 그 불빛을 보고, 모두 무사히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 산꼭대기 집에 사는 사람들은 집을 잃었지만, 마을의 남정네들을 죽음에서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집을 제일 좋은 것으로 다시 지어주었습니다.
크리스천이 자신의 경건에 빛을 비출 때, 세상은 어두어지고, 사람들은 죽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불태워 세상을 비췰 때, 사람들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시고, 불멸의 것으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이 번 한 주간도, 하나님의 진리 등대가 되어, 온 세상을 환히 비추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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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Titus 1:10-16
Title Let's be His lighthouse!
10There are also many rebellious people, idle talkers and deceivers, especially those of the circumcision; 11they must be silenced, since they are upsetting whole families by teaching for sordid gain what it is not right to teach. 12It was one of them, their very own prophet, who said, "Cretans are always liars, vicious brutes, lazy gluttons." 13That testimony is true. For this reason rebuke them sharply, so that they may become sound in the faith, 14not paying attention to Jewish myths or to commandments of those who reject the truth. 15To the pure all things are pure, but to the corrupt and unbelieving nothing is pure. Their very minds and consciences are corrupted. 16They profess to know God, but they deny him by their actions. They are detestable, disobedient, unfit for any good work.
In our text Paul begins to speak,
0There are also many rebellious people, idle talkers and deceivers, especially those of the circumcision; 11they must be silenced, since they are upsetting whole families by teaching for sordid gain what it is not right to teach.
Here we have a picture of the false teachers who were troubling Crete. The worst were apparently Jews. They tried to persuade them that the simple story of Jesus and the Cross was not sufficient, but that, to be really wise, they needed all the subtle stories and the long genealogies and the elaborate allegories of the Rabbis. Further, they tried to teach them that grace was not enough, but that, to be really good, they needed to take upon themselves all the rules and regulations about foods and washings which were so characteristic of Judaism. The false teachers were seeking to persuade men that they needed more than Christ and more than grace in order to be saved. They were intellectualists whom the truth of God was too simple and too good to be true.
One by one the characteristics of these teachers pass before us.
They were undisciplined; they were like disloyal soldiers who refused to obey the word of command. They refused to accept the creed or the control of the Church. It is perfectly true that the Church does not seek to impose upon her members a flat uniformity of belief; but there are certain things which a person must believe to be a Christian, the greatest of which is the all-sufficiency of Christ. Even in the Prostestant Church discipline is not eliminated.
They were empty talkers; the word is mataiologoi ( ), and the adjective mataios ( ), vain, empty, profitless, was the adjective applied to heathen worship. The main idea was of a worship which produced no goodness of life. These people in Crete could talk glibly but all their talk was ineffective in bringing anyone one step nearer goodness. Christian conversation should be fruitful in godliness.
Their teaching were upsetting whole households. There are two things to notice there. First, their teaching was fundamentally upsetting. It made nothing but disturbances, lack of certainty. Second, their teaching was upsetting households. It had an ill effect on family life. Christian teaching must give persons certainty through and beyond doubts and strengthen family life along with individual.
Their teaching was designed for sordid gain. They were more concerned with what they could get out of the people they were teaching than with what they could put into them. The Greek, aischros ( ), means filthy, disgraceful, which refers to an attitude to seek gains regardless of means good or evil. The false teachers in Crete were seeking gain in disgraceful manner.
These men are to be muzzled. That does not imply that they are to be silenced by violence or by persecution. The Greek, epistomizein ( ), is the word for to silence a person by reason or reasonable explanations. The best way to combat false teaching is to be equipped with truth, to present what true teaching is like, and to make them silent by true Christian conduct.
In vv 12 and 13a Paul goes on to say,
12It was one of them, their very own prophet, who said, "Cretans are always liars, vicious brutes, lazy gluttons." 13That testimony is true.
No people ever had a worse reputation than the Cretans. The ancient world spoke of the three evil C's--the Cretans, the Cicilians, and the Cappadocians. The Cretans were famed as a druken, insolent, untrustworthy, lying, gluttonous people.
Polybius wirtes of them: "Money is so highly valued among them, that its possession is not only thought to be necessary, but highly creditable; and in fact greed and avarice are so native to the soil in Crete, that they are the only people in the world among whom no stigma attaches to any sort of gain whatever."
The quotation which Paul makes is actually from a Greek poet called Epimenides. He lived about 600 B.C. and was ranked as one of the seven wise men of Greece. In Crete there was a monument called The Tomb of Zeus. Obviously the greatest of the gods cannot die and be buried in a tomb. The Cretans were notorious liars, cheaters, gluttons, and traitors, but here is the wonderful thing. Knowing that, and actually experiencing it, Paul does not say to Titus: Leave them alone. They are hopeless and all persons know it." He says: "They are bad and all people know it. Go and convert them." Few passages so demonstrate the divine optimism of the Christian evangelist, who refuses to regard any human being as hopeless. The greater the evil, the greater the challenge. It is the Christian conviction that there is no sin too great for the grace of Jesus Christ to conquer.
In vv 13b~16 Paul points out the main issues among the Cretans as follows:
13...For this reason rebuke them sharply, so that they may become sound in the faith, 14not paying attention to Jewish myths or to commandments of those who reject the truth. 15To the pure all things are pure, but to the corrupt and unbelieving nothing is pure. Their very minds and consciences are corrupted. 16They profess to know God, but they deny him by their actions. They are detestable, disobedient, unfit for any good work.
The great characteristic of the Jewish faith was its thousands of rules and regulations. This, that and the next thing were branded as unclean; this, that and the next food were held to be tabu. When Judaism and Gnosticism joined hands even the body became unclean and the natural instincts of the body were held to be evil. The inevitable result was that long lists of sins were constantly being created. It became a sin to touch this or that; it became a sin to eat this or that food; it even became a sin to marry and to beget children. Things which were either good in themselves or quite natural became defiled.
So Paul strikes out the great principle--To the pure all things are pure. He had already said that even more definitely in Romans 14:20 when, to those who were constantly involved in questions about clean and unclean foods, he said; "All things are pure." It may well be that this phrase is not only a proverb but an actual saying of Jesus. When Jesus was speaking about these countless Jewish rules and regulations, he said: "There is nothing outside a person that by going in can defile, but the things that come out are what defile" (Mark 7:15).
It is a person's heart which makes all the difference. If he/she is pure in heart, all things are pure to him/her. If he/she is unclean in heart, then he/she makes unclean everything he/she thinks about or speaks about or touches. The person with a dirty mind makes all things dirty. But the person whose mind is pure finds all things pure.
Paul argues that both the mind and conscience of those who separate clean from unclean are defiled. A person comes to his/her decisions and forms his/her conclusions by using two faculties. He/she uses intellect to think things out; he/she uses conscience to listen to the voice of the inner self conscious of God, goodness, and truth. Buf if his/her intellect is dark , a person is to use false perceptual images; if his/her conscience numbed, a person is to use self-deceptive images. At last he/she fails to discern realities as such from misleading imaginations; misinterprets the genuine intent and purpose hidden behind the law or the divine commandment. To escape that uncleanness we must walk in the cleasing presence of Jesus Christ.
When a person gets into this state of impurity, he/she may know God intellectually but his/her life is a denial of that knowledge. Three things are singled out here about such a person.
First, that person is repulsive. The word, bdelyktos ( ), is the word particularly used of heathen idols and images. It is the word from which the noun, bdelugma, an abomination, comes. There is something repulsive about a person with an obscene mind, who makes sniggering jests and is a master of the unclean innunendo.
Second, that person is disobedient. Such a person cannot obey the will of God. The disobedient are unfit to be instruments in the hand of God. When Saul was an obedient boy, he was elected to be a king among Israelites by God. Afterwards when disobeying the word of God, he was unthroned.
Third, that person is useless. The word used for useless, adokimos ( ), is used to described a cowardly soldier who fails in the testing hour of battle. It is used of a rejected candidate for office, a man whom the citizens regarded as useless. It is used of a stone which the builders rejected. (If a stone had a flaw in it, it was marked with a capital A, for adokimos, and left aside, as being unfit to have any place in the building.) The ultimate test of life is usefulness, and the person whose influence is ever towards that which is unclean is of no use to God or to his/her fellow-persons. Instead of helping God's work in the world, he/she hinders it; and uselessness always invites disaster.
When you shed a light on your piety, the world becomes dark and people in there perish. But when you shed a light to the world burning yourself, the world will be bright and people will be moved from death to life. Let's be His lighthouse in this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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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