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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하면, 이리안자야 섬에서 원주민으로 그냥 살아야겠다. 현지인이 되면 그 까다로운 퍼미션 없이도 등반할 수 있겠지. 그도 그럴 것이 칼스텐츠(Carstensz·4,884m)로 등반 잘 다녀오겠다며 주변 지인들에게 인사한 것도 벌써 세 번째다.
두 번째는 올해 2월 초, 섬 북쪽 해안에 위치한 자야푸라(Jayapura)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와메나(Wamena)로 간 후 다시 헬기를 타고 시낙(Sinak)이라는 산골 마을에 내렸다. 느릿한 현지 포터들과 2박3일 동안 약 30km를 걸어 산 하나를 넘어 일라가 마을에 도착하니 OPM(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며 무장투쟁을 벌이는 이리안자야 원주민 독립단체)의 협박편지가 우리 앞길을 막았다. 한 발만 더 앞서 간다면 총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환상적인 정글 캐러밴을 뒤로하고 산 밑에서 정상 구경도 못한 채 씁쓸히 되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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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4,200m BC 오른 뒤 이튿날 등정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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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실은 트럭은 어두운 광산길을 따라 2시간을 달려 광산의 한 사무실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또 다른 차량을 2시간동안 기다렸다. 불이 켜진 광산 마을은 대관령 옛길에서 내려다보이는 강릉 시내의 야경 같았다. 눈에 다 보이지 않는데도 상당히 크게 느껴졌다.
오후 4시에 한 대의 트럭이 다시 우리를 싣고 광산터널을 달렸다. 말이 터널이지 터널 안엔 여러 갈림길과 이정표가 있었다. 내가 본 가장 긴 터널이다. 시속 20~40km 속력으로 거의 30분을 달렸다. 급하게 꼬부라지는 벽면에 부딪힐 거 같으면서도 운전기사는 능숙하게 행진했다.
밤을 꼬박 새워 제브라라는 벽 앞에 내려 20kg 카고백을 짊어지고 베이스캠프까지 직접 짐을 나르게 되었다. 네팔에서 카고백을 등에 지고 나르는 셰르파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곳엔 포터가 없어 3시간이 걸리는 베이스캠프까지 직접 짐을 날라야 했다. 내려올 땐 1시간 반 거리인 가까운 곳까지 차가 들어가도록 흙이 파헤쳐져 있는 것이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올해 거쳐 간 몇몇 팀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많은 등반비를 지불하고 오는데 이 모양이니 속이 상했다.
점심 무렵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우리 팀의 인원은 7명이었다. 현지 인도네시아 가이드 2명과 쿡 1명이 동행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마리오(Marie)는 나이가 제일 많고, 미국에서 온 릭(Rick)은 좀 뚱뚱한 편이며, 모터사이클 선수 생활을 하느라 13번의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았다는 영국의 존(John), 그리고 키 작은 나까지 4명이 등반대원이다. 나만 여자였고 또 모두들 40~50대 남자였다. 더욱이 다들 체격 좋은 서양인들이라 키가 나보다 30~40cm나 컸다.
모두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다. 전부 7대륙 최고봉을 하고 있어서 저녁 식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7대륙의 산을 등반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아콩카구아를 등반하면서 맛보았던 멘도사의 말벡 와인에 흠뻑 취했고, 가격과 향이 너무 좋았으며, 아르헨티나의 스테이크 또한 최상급이라고 칭찬했다. 입 속엔 침이 솟았지만 우리 식탁 앞엔 4,200m 고도에서 양은냄비에 밥을 해 덜 익은 쌀밥과 두어 종류의 레토르트 식품뿐이었다. 비싼 등반비에 대해 더욱 화가 나고 억울해지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등반은 90% 성공한 셈이다. 베이스캠프엔 에메랄드 빛 호수와 이스트 칼스텐츠쪽으로는 만년설이 쌓여 있었다. 다음날 새벽 4시30분 캠프를 향해 출발했다. 한 번에 4,200m의 고도까지 올리고도 단 하루의 휴식을 통한 고소적응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다행히 컨디션이 무척 좋았고, 날씨 또한 전날 오후 내내 내리던 비 대신 하늘엔 별이 초롱초롱 빛나고 무척 포근했다.
랜턴을 켜고 좌측으로 크게 돌아 바위 우측 끝으로 접근하니 1시간이 소요된다. 어둠 속에 시커멓게 시야를 가득 가로막은 커다란 암벽이 서 있다. 이곳에서 안전벨트와 헬멧을 착용하니 해가 뜨기 시작했다. 등정이 목적인지라 노멀루트에 설치되어 있는 고정로프를 따라 등반했다. 로프 고정은 하켄과 볼트, 촉스톤이나 암각의 돌출부에 걸쳐져 있었다.
간혹 최근에 설치된 로프도 있으나 언제 것인지 알 수 없는 빛바랜 로프들에 몸을 의존하는 상황이다. 바위 질감이 무척 날카로와 맨손으로는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날 정도라 장갑은 필수적이다. 계단식 형태를 띠고 있는 암릉 등반에 간혹 너덜지대를 따라 걷기도 하는데 3시간 정도 바위를 오르다 보니 저 멀리 파헤쳐진 광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으로 가는 능선에서 모든 사람들이 올라오길 기다린다. 하루에 한 차례 꼭 비를 뿌리는 기후를 가진 이곳에 오전의 맑은 날씨가 사라지고 정상부에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능선에서 30분만 가면 칼스텐츠의 최대 난코스라고 불리는 4~5m의 오버행 주마링 구간이 나온다. 주마링이 익숙하지 않은 대원들의 지체로 이곳에서 2시간을 보내고 나니 마지막으로 내가 올라가려고 할 땐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급변하여 서둘러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 번개가 지지직하더니 천둥이 크게 소리쳤다. 고압전선이 터져 불꽃이 이는 것 같은 번개 소리에 재빠르게 몸을 웅크려 바위 밑에 숨었다. 그렇게 큰 번개와 천둥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기는 처음이다. 두어 번 더 번개가 쳤고 바람 없이 함박눈이 계속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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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 마음이 금은보화보다 귀하게 느껴져
조금 먼저 정상에 도착한 존과 나는 이상한 소리에 헬멧과 모자, 배낭과 재킷을 하나씩 벗어버렸다. 알고 보니 번개는 칼스텐츠 피라미드의 정상을 강타했고, 정상에 남은 전류는 20여 분간 이유도 모른 채 온몸에 흘렀던 것이다. 세 번만에 어렵게 오세아니아주 최고봉 정상에 섰는데 번개 맞아 죽을 뻔했다고 생각하니 박복한 건지 운이 넘친 건지 싶다. 산에선 어떠한 형태로든 위험은 도처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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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캠프를 출발한지 7시간만에 정상에 섰다. 번개 때문에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외국 등반가들은 세 번만의 성공을 축하해 주었다. 내리는 눈으로 온통 가스가 가득해 주변 경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각국의 등반가들과 등정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눈이 내리는 정상을 뒤로하고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정상에서 왔던 길로 똑같이 하강하는데, 나는 베이스캠프까지 3시간이 걸렸고 다른 대원들은 5~6시간 소요되었다. 하강길엔 비가 많이 내려 바위틈새로 홍수 같은 물이 퍼부었다. 잔돌이 많아 하강로프로 낙석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고, 물먹은 자일에서 얼굴로 물이 튀었다.
이번엔 꼭 오르고 싶었다. 나의 소망과 기도를 하늘이 들어주셨기에 안전하게 베이스캠프까지 하산할 수 있었고, 또 평범한 삶의 궤도에 안착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적인 광산 속 어마어마한 자원들 가운데 내가 캐내어 올 수 있는 보석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떠난 등반이다. 내가 등반할 수 있도록 늘 도와주고 내가 안전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고 걱정해 주는 주변 지인들의 따뜻한 마음들, 그 마음들은 어떤 금은 보화보다 더 귀하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보석들이다. 내가 캐어낸 가장 귀한 보석은 광산 가장 깊은 곳에 다시 묻어두고 돌아왔다.
글·사진 김영미 강릉대 OB
이리안 자야 섬 지도
[지도 상에 Jaya Peak 사진이 게재된 곳이 칼스텐츠]
이리안 자야 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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