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8월에 끝마치지 못한 지리산 둘레길 코스에 늘 아쉬움에 가득 차 있다가 올 초부터 가야지 가야지 혼자 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기회를 노렸다.
가자. 가자.
휴가를 내서라도 가자.
조금 날씨가 더워지면 그것도 쉽지 않으리라.
4월 16일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1박 2일로 여정을 잡고 평소 같이 가고 싶어했던 친구들에게 동행하지 않겠느냐는 프로포즈를 던졌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아무도 선듯 나서지 않는다.
그럼..나 혼자 가야지.
그게 편하다. 혼자 가는 여행길이..
잠이나 음식이 불편해도 혼자 가면 참을 수 있고, 힘들어도 혼자가면 푹 쉴 수 있어 좋다.
5개의 지리산 둘레길 코스 중 지난번 가지 못한 금계-동강, 동강-수철 두 코스를 가기 위해 이번에는 반대편 코스를 택했다.
산청까지 버스타고 가서 수철까지 버스나 택시 이용.
수철에서 동강까지 약 11키로 정도니 5시간 정도
그리고 다음 날은 일찍 출발해 금계-동강코스 약 17키로를 한 7시간 걷고 서울로 올라오면 딱 좋다.
지난 번 여행 때 워낙 먹을 것 마실 것 준비하지 못했다가 고생한 생각이나서 이번엔 먹을 것 좀 챙겨넣었다. 오이도 사서 넣고, 초코파이도 가방에 깊숙히 쑤셔 넣고, 지리산 둘레길 책자도 무겁지만 배낭에 집어 넣었다.
남부터미널에서 산청까지 3시간 10분걸린다 하는데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3시간 만에 도착.
산청읍내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는데 확실히 전라도 지방과 경상도 지방의 음식이 다르다. 지난 번 전라도 남원같이 푸짐한 반찬이 이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백반을 시켰는데 그냥 형식적인 반찬만 몇개 보인다.
시골 장터에 음식점은 시골 아저씨들 아주머니들의 모임장소.
여기 저기서 구수한 사투리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줌마들은 미장원에서 머리하하다가 나온 듯 머리를 빠글 빠글하게 볶고, 핑크색 비닐을 덮어 썻고, 남자들은 금방 밭일하다 나온 듯 옷에 흙이 묻어 있다. 장터에 봄나물이 지천이다.
'우리가 남이가' 라는 억양이 이 곳에선 흔하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수철까지 가는 버스시간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여기서 시간 허비할 필요가 없어 택시를 탔다. 7000원.
수철리에 내려 개울가 다리 위에서 트레킹화의 신발끈을 단단히 동여맨다. 자 이제 출발이다. 지도상으로 봐도 시작지점에서 몇 키로정도는 700미터고지의 산행을 해야 한다.
천천히 세멘트길을 올라가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큰 솥에 나무를 때며 무언가를 끓이고 있다. 반갑게 인사하고 뭐 끓여요? 했더니 나물을 끓인단다. 나물을 끓여 마당에 넓게 펴서 말리고 있다.
조금 더 간곳에서는 이제 막 산행을 마친 듯 보이는 두 여자가 인사를 건넨다.
주택의 지반을 돌로 쌓아지었는데 아슬아슬해 보인다. 요즘같이 지진이 많은 때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집이 그대로 무너질 것 같다.
때가 때인지라 시야가 뻗치는 모든 곳에 개나리는 시절을 지났지만 하얀 벚꽃, 진달래가 가득하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 첫번째 이정표가 보인다. 반갑다. 이정표야. 너 보기 위해 이 아저씨가 해가 지나도록 그리워 했다. 동강-수철간을 표시하는 빨간색 그리고 까만색 삼각형. 그리고 20번의 숫자가 보인다.
숫자를 곶감빼먹듯 하나 하나 빼 먹다 보면 동강마을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목적인지 몰라도 길가의 어느 집에 물레방아가 돌며 계곡에 물을 떨어트리고 있고 벚꽃들의 화려함에 혹 빠져 길을 천천히 오르다 보미 어느 덧 정상처럼 보이는 언덕. 멀리 저 아래로 지나온 길이 보인다.
길을 가는데 하얀 개 한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내가 길을 가니 으르렁 거린다. 속으로는 무척 겁나지만 겁먹은 것을 보여주면 안된다. 그냥 천천히 내 길을 가는데 계속 따라오며 으르렁거린다. 그러나 나에게 일정 거리를 두고 있다. 어느 정도나 따라올까...
그 해답은 금방 풀렸다.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사유지가 있다. 아마 벌통이 있는 듯.. 그 벌통을 지키는 개일것이다. 사유지 표시가 되어 있는 구간을 스쳐 지나가니 따라오던 개도 저기 뒤에 멈추어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
이제 막 물오르는 나무들을 따라가다 보니 쌍재로 가는 고동재의 팻말이 보인다. 재라는 것이 고개의 꼭대기인줄 알았는데 지나가는 아낙네가 재는 고개의 아래라고 가르쳐 준다.
쌍재로 올라가는 길부터는 드디어 둘레길의 아름다움이 나온다. 좁고 작은 부드러운 흙길, 길 옆에 진달래가 가득 피어 있다. 이제 막 잘라낸 듯한 나무 밑둥이 해바라기같이 보인다.
커다란 나무 하나의 긴 그림자가 내가 가는 길의 해바른 양지에 길게 누워 낮잠을 청하고 있다.
갑자기 진달래가 소롯길에 잔뜩 떨어져 있다. 누군가 일부러 진달래를 따라 땅에 뿌려 놓은 것일까?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고..
그런데 산꼭대기의 산불감시대 초소에 있는 아저씨가 하는 말씀이 4월에 눈이 내려 진달래가 많이 떨어졌단다.
하긴 요즘은 날씨가 이상기온이라 최근에도 산에 눈이 많이 내렸다. 여리디 여린 꽃이 얼어버렸으니 다 피지도 못한 채 떨어질만도 하지.
호젓한 길은 계속되고 작은 정상에 올라 멀리 보니 작은 구조물이 하나 보인다. 지도상으로 보니 산불감시초소. 멀리 보였었는데 산 정상의 평지를 걷다보니 금방 그 곳에 도착. 나이 든 아저씨 한 분이 점심을 먹고 있다가 사람을 반가와 한다. 반갑게 인사하고... 오늘 사람들 많이 지나갔느냐고 물었더니 한 다섯팀 정도 지나갔단다.
혼자 지내야 하는 사람. 외로움이란 말조차 나이들면 생각나지 않는걸까? 아저씨 모습은 그저 무덤덤하다. 오늘 유난히 날씨가 맑아 지리산 천황봉이 보인다고 멀리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사진하나 찍어 주겠단다.
힘들지 않느냐. 외롭지 않느냐...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인걸..
근무시간을 물었더니 여름엔 10시경 올라와서 6시경까지 있고
겨울엔 4시경 내려간단다.
요즘이 산불철이 아니냐 했더니 아직은 아니지만 곧 사람들이 많아지면 빈도수가 높아 진단다. 문제는 자연이 아니고 늘 사람이다.
배낭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드리고 나그네는 다시 길을 간다.
익히 보던 나무인데 껍질이 무수히 많이 벗겨져있다. 이게 나무이름이 뭐더라. 마치 포스트잇을 나무에 수없이 붙여 놓은 것처럼.. 나무껍질을 벗겨 보니 그 안에 시 한편 써 놓아도 좋겠다.
내리막길. 커다란 개인 사유지의 울타리를 따라가다가 보이는 소나무 하나. 굵은 가지들이 얼크러 설크러져 있다. 나무에 제목을 하나 붙여 볼까? 운우지락.
그 끝에 비닐하우스로 만든 간이 매점. 막걸리가 마르다. 이미 안에는 먼저 4명의 아줌마가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막걸리에 익어가고 있다. 통나무를 듬성 듬성 잘라 만든 의자에 케이블을 감았던 나무 틀과 엉성한 식탁들.
막걸리 하나 달라 했더니 안주는 묻지도 않는다.
빈주전자를 같이 내 오며 막걸리는 이런 주전자로 마셔야 기분인 난단다. 하모 하모. 같이 나온 김치가 땅에 파묻었던 김치인듯 얼마나 맛있던지. 막걸리보다 김치가 더 맛있다.
그리고 된장에 파묻었던 고추. 맵지는 않은데 너무 짜다. 시원한 냉막걸리에 등에 흐르던 땀들이 모두 들어갔다. 잔을 거의 비울 때쯤 한 무리의 남자들이 밀려 들어온다. 족히 20명 정도 되는 듯. 비닐하우스를 가득 채웠다.
다시 배낭메고 천천히 길을 내려가니 상사 폭포. 상사병의 상사겠지. 별로 크지 않은 폭포지만 물이 힘차게 떨어지고 있다. 폭포 아래 내려가 막걸리로 얼근해진 기분을 시원한 물살을 보며 식히고, 쉬며 놀다가 하산.
도로가 저기 보이는데 물살이 막혀 갈 수 없다. 어쩌지?
가까이 가보니 이런 일을 예측이라도 한 듯 징검다리가 놓여져 있다. 반가와라. 큰 도로로 나와 길 꺽어진 곳을 돌아가니 갑자기 거대한 구조물이 보인다. 산청 함양 추모공원.
별로 인적도 없고 이렇게 깊은 산중에 이렇게 거대한 추모공원이 있다는게 다분히 정치적인 배려가 보인다.
입구에 세워놓은 솟대들. 멀리 지리산을 바라보며 쳐다 보고 있다. 대개 좋은 일을 위해서 세워 놓는게 솟대인데 여기의 솟대는 무슨 의미일까?
화장실도 깨끗해 보이고 가파르게 높게 솟은 추모탑과 계단들 그리고 좌우로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비석들이 숙연해진다는 느낌보다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들이 지리산내 깊숙히 숨어있는 빨치산 토벌을 명목으로 선량한 주민을 대규모로 학살한 슬픈 과거가 이 곳뿐만은 아니다. 거창 양민학살이 그랬고, 제주 양민학살 그리고 노근리 주민 학살등등..
어느 나라나 전쟁은 수없이 많은 과오를 만들어 낸다. 수십년 전에 죽은 사람을 DNA로 확인하여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놀라운 문명의 세계에 살아도 여전히 이라크를 비롯한 전 세계의 전쟁지역에서는 아군에 의한 아군의 피해가 자주 일어난다.
물론 그당시의 군대를 옹호하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단지 공명심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두고 두고 불명예로 남겠지만 역사는 그런 슬픈 과거까지 끌어안아야 하는데 역사일 것 같다.
가파른 계단을 힘들게 올라갔다. 위패를 모셔다 놓은 사당도 보고.. 색색의 조화로 깨끗이 다듬어 놓은 비석도 양쪽으로 날개펼치듯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내 뒤를 따라 내려온 둘레꾼들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몇 십명의 젊은이들이 이 곳을 지나쳤을텐데 아무도 이 곳에 들어오지 않았다. 추모공원에서 내려와 보니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자. 이제 지리산 자락에도 어스름 땅거미가 밀려온다. 나그네는 머리 둘곳을 찾아야지.
미리 확인해 둔 동강마을에 전화를 거니 지금 내가 있는 곳 가까운 곳에 '지리산유'라는 민박집을 이용하란다. 추모공원에서 가까운 곳의 지리산유를 찾아가서는 금방 실망의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이건 민박이 아니라 모텔정도의 건물이다.
어찌되었던 굳게 닫혀 있는 문을 두드렸다. 아무 답이 없기에 돌아서려는데 안에서 인기척이 난다. 나이든 아저씨 한 분이 나오시는데 손님을 반기는 기척이 전혀 없다. 잘테면 자고 싫으면 그만 두라는 어투. 잠시 다른 곳에 전화를 해 보겠다고 했더니 문을 닫고는 나와보지도 않는다.
동강마을에 전화를 걸어 다른 곳을 추천해 달라 했더니 알아보겠다 하며 길을 따라 오란다. 동강을 끼고 꺽어진 길에 작은 마을 하나. 멀리 강 건너에 시원스럽게 달리는 차들이 보인다.
마을길로 들어가니 어떤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다. 누추한 곳이지만 오늘은 이 곳 밖에 안된단다.
그리고 농삿군티가 나는 시골아줌마를 따라 가라기에 마을 속으로
들어가 내가 묵을 허름한 시골집을 보고는 난 환성을 질렀다.
흰털의 개 한마리가 컹컹 지으며 손님을 맞이하며 들어선 마당.
그래 바로 이런 곳이야. 이런 곳이야 말로 시골에서의 하룻밤이야.
어릴 적 시골 사촌형님댁이나 이모님댁에서 보아오던 사랑방.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던 그 사랑방에 사람의 온기가 있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지만 사람이 떠나고 아궁이에 불을 때지 않으면 그런 흙집은 저절로 무너진다.
아줌마는 내가 온다고 연락을 미리 받았는지 무쇠솥에 물을 부어 놓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고, 아궁이 옆 광에는 고르게 잘라놓은 나무들이 가득 쌓여 있다. 방문을 열어주는데 내부가 모두 흙벽 흙천정이다.
천정은 마치 가뭄때문에 갈라진 논바닥같이 쩍쩍 갈라져 있지만 무너질 것 같지는 않고, 방안의 기둥을 이용해서 횟대를 걸어 놓았는데 아마 살면서 걸어 놓은 것들을 감추려는 듯 커다란 이불보 하나로 횟대에 걸어놓은 옷들을 감추고 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불을 가져다 주는데 베개가 없다고 했더니 방 구석에 쌓아 놓은 나무 목침을 보여준다. 이걸 베고 자라고..
아니...이런 목침베고 어떻게 자나? 하면서 목침을 들어 보니 무척 가볍다. 오동나무란다.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고, 누워서 머리에 대보니 딱딱한 감촉이 전혀 없다. 좋아 좋아. 오늘은 이렇게 자보자.
마당에 보이는 농기구와 옥수수 몇개, 그리고 가장 반가운 오강. 요강인가? 오강인가? 어릴 때 쓰던 놋쇠나 도자기 오강은 아니지만 스텐레스 오강이 내 눈을 반짝인다. 이 밤에 저걸 끌어안고 자볼까?
질끈 동여맸던 신발끈을 여유있게 다시 매고 있는데, 방이 데워지기 전에 식사를 하라고 권하며 부엌으로 들어오란다.
땀을 흘렸기에 막걸리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막걸리 조금 있고, 어제 동네에서 돼지 한마리 잡았기에 안주도 있단다. 워매 좋은거. 곱창과 순대 그리고 약간의 돼지고기를 앉은뱅이 소반에 내 온다. 그런데 순대의 내용물이 특이하게 모두 선지로 채웠다.
시골 막된장과 같이 내온 김치와 싸먹는 시골돼지고기는 얼마나 맛있던지.. 포만감. 풍족함. 행복감.
마을 산책을 하며 뒷짐지고 걸어가시는 동네어른들께 인사하고, 마을 집 담위에 핀 벚꽃들, 그리고 작은 텃밭에 심어놓은 마늘들이 반갑다. 동네 입구의 작은 우물, 동네 사람들 어울리는 작은 정자 하나.
산책하고 돌아오니 저녁 밥상. 된장국하나, 미나리, 김치 그리고 깍두리가 반찬의 전부. 그래도 얼마나 밥맛이 맛있던지..
시골의 어둠은 빨리 스며든다. 밥을 먹고 나오니 벌써 어두워지고 마당의 개도 짖는 것을 멈추었다.
점점 뜨거워지는 방바닥 이불 밑으로 손을 넣어 따스함을 느껴보며 내일의 여정에 대해 지리산 둘레길 책을 읽고, 한수산씨의 에세이집을 보며 긴 긴 시골밤을 견디어 볼라 하는데, 똑 똑. 아줌마가 아궁이에 호일로 싸서 넣은 군고무가 까맣게 익은 채 들어온다. 김이 무럭 무럭 나는 고구마에 또 한 번 탄성.
황토방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문명의 단어같아서...흙집이라고 하자. 문명의 도구라고는 없는 흙집에서 먹는 고구마와 내 MP3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 선한 눈빛의 시골 아줌마. 이러한 것들없이 살면 세상이 얼마나 황폐할까?
방이 서서히 뜨거워지며 한참 밤이 이슥해졌을 때 별을 보고 싶었다. 유난히 맑은 날씨라 하늘에 구름한점 없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환한 등하나가 밤별의 숫자를 잡아먹고 있지만 그 등을 피해 어둠속에서 바라보는 별들은 그야말로 보석이다.
북두칠성이 보이고 그 넘어 북극성이 보인다. 지난 번 둘레길 산행때 처럼 많은 별을 보지는 못했지만 저 별들이 모두 내게로 쏟아지길 바라면서 오늘 5시간의 산행에 피곤한 나그네는 흙냄새 폴폴 풍기는 방으로 들어가 평소 자정을 넘은 시간까지 TV와 벗삼던 금요일 저녁과는 완전히 다른 초저녁 잠을 청한다.
다음날 아침.
밤새 방이 뜨거워. 자면서 방을 빙빙 돌았다. 등이 익는것 같다. 우리나라 온돌방의 전형적인 시스템이라 얼굴은 따뜻한 줄 모르겠는데 바닥에 닿는 모든 면은 그야말로 난로다.
몇시정도나 되었을까?
일찍 잠에 들었으니 일찍 눈이 떠졌지만 사방은 어두컴컴.
일어나봐야 나갈 곳도 없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어디선가 닭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아직 창은 훤하지 않다.
더 몇 번 뒤척이니 인기척이 들린다.
아궁이에 불을 더 넣는건가?
떠지지 않는 눈을 간신히 뜨고 방문을 여니 무쇠솥에 김이 무럭 무럭 나고 아궁이에 작은 불씨가 이제 막 자라고 있다. 아마 내가 아침 세수할 수 있도록 물을 데우는 것 같다.
마당에 따로 떨어져 있는 화장실 갈 때 어제는 날보고 짖던 개(주인이 이 개의 머리 일부를 염색시키고 이름을 놀순이라고 지었다)가 오늘은 잠잠하고 자꾸 나에게 안길려 한다. 하룻밤에 정이 들었단 말인가?
아줌마가 양동이에 찬 물을 담아 온다. 뜨거운 물과 섞어서 사용하라는 것이겠지. 시원하게 머리를 감고 들어가니 소반에 어제 먹은 반찬과 같은 메뉴에 된장찌게 대신 멸치로 국물을 낸 미역국이 걸쭉하게 김이 모락 모락 솟는다.
아침 많이 안 먹기에 지난 번 둘레길 올 때도 아침은 사양했는데 다음 코스는 아무래도 점심시간을 넘길만한 코스라 아침을 조금 먹어 두었다.
아침 7시 반.
아주머니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접었던 지팡을 길게 펼쳐 들고 2번째의 코스로 떠난다.
아직 조용한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 드는데 이제 또 다른 코스의 이정표가 보인다. 멀리 산이 보이고, 저 산을 넘어가야 한다.
산으로 구불 구불 올라가는 길이 모두 세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아마 저 꼭대기에 절이 있거나 무슨 시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흙길을 걷고 싶은데 그건 외지에 온 배부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 이 곳 사람들도 편한것을 좋아한다. 그 들도 언덕 올라갈 때 차가지고 올라가고 싶고, 옆 마을에 마실갈 때도 트랙터라도 끌고 가고 싶다.
커피가 마시고 싶은데.. 커피를 못챙겨온게 아쉽다.
커피대신 오이를 빈 정자에서 씹어 먹는데 젊은이들이 탄 듯한 승용차 한대가 휙 지나간다.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큰 물소리.
어느 집앞에 큰 연못이 있고 높은 곳에서 물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양어장인가? 저 곳에 카페라도 있으면 조금 비싸더라도 커피 한잔 마시고픈데 그런 곳이 없다.
양 옆으로 멋진 소나무의 전시장이 이어지고, 내가 나무장사라면 이 곳 위치를 기억해 두었다가 저 소나무들을 사서 팔고 싶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벌통이나 목장이 있는 곳. 아니나 다를까 사슴목장이 보인다. 사슴은 하나도 안 보이지만..
어느 길 모퉁이에 예쁜 펜션이 보인다. 단체로 와서 숙박하기에 좋은 시설. 앞으로 이런 시설이 더 많아질 것 같다.
동네 앞에 이정표와 나란히 세워져 있는 소방용 시설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이정표는 행복을 위한 것이고 소방용 시설은 불행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모퉁이를 돌아가니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고 지리산청정낙원이라는 펜션이 너무 멋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보기에도 건물이 깨끗하고, 앞에는 지리산 염천강의 넓은 공간이 있으며 작은 공간에 닭같은 가축을 키우고 있다.
구차한 민박이 꺼려지는 사람은 여기 청정센타를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둘레길을 다니다 보니 이젠 저런 개인 사유물의 이정표도 마치 지리산 둘레길 같은 모양의 이정표를 해 놓아 잘 모르는 이들을 헷갈리게 한다. 짝퉁 이정표.
내가 오늘의 둘레길 산행이 이 짝퉁 이정표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던지..
지난 밤에 돼지고기를 먹어서 인지 자꾸 큰 일이 보고 싶다. 간 밤의 민박집의 화장실도 쪼그리고 앉는 식이라 자세가 영 불편하여 시원하기 용변을 보지 못했는데 자꾸 급해진다. 어디 인적 드문 곳이라도 있으면 뛰어 들어갈려고 두리번 거리는데 눈에 보이는 화장실 건물. 마치 여호와 이레의 은혜인가?
비록 화장실도 깨끗하고 화장지도 비치해 놓았지만 역시 쪼그리고 앉는 식. 또 대충 용변을 해결했다. 이제 둘레길은 계속 강을 끼고 지방도를 따라 달린다.
가다가 또보이는 화장실 건물. 생각해 보니 여름에 이 곳 강에서 물놀이를 하는 이들을 위해 특별히 여러개 화장실을 마련해 놓은 것 같다.
멀리 손잡고 오는 둘레꾼연인.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분명히 다음 마을인 세동마을에서 자고 오는 것이리라. 시간이 딱 그정도 되었으니..
내 짐작은 맞았고, 반갑게 인사하고 이 연인들은 내가 왔던 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강이 푸르다. 바위가 많은 강에 물결이 포말지며 내려가고 있다. 청정지역. 제발 저 청정이 둘레꾼들에 의해 훼손되지 말아야 하는데..
버스하나가 휘익 지나간다. 저 버스를 타면 3박 4일 달리는 둘레길의 목적지들을 불과 한 두시간안에 모두 갈 수 있다. 그러나 난 느림의 미학을 알고 느림의 철학을 실천한다.
음식을 꼭 꼭 씹어 먹어야 건강한 것처럼 한발 두발 천천히 걷는 길도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에 좋다.
길가에 허름한 간판 하나. 눈에 덮힌 지리산 사진인데 그 안에 설명들이 역사를 말해준다. 빨치산 본부 및 주둔지. 이념과의 전쟁에 희생된 남북의 민족이 저 흰눈속에서 떨고 있는 것 같다.
길가에 있는 어느 펜션같은 민박집 앞에 동백꽃이 아직 싱싱하게 살아있다. 아직 동백꽃이 떨어질 때가 아닌가?
강건너편에 보이는 산에 지그재그로 길이 산위로 나있고 승용차가 아슬 아슬 내려오고 있다.
이렇게 계속 강을 따라 도로를 다니는 것도 별로 재미없다고 마음속으로 불평하고 있는데 저 앞에 마을하나 보인다. 세동마을.
길은 세동마을로 가는 길과 도로를 따라 직진하는 두 갈래 길.
세동마을 앞에 조금 전 지나간 버스가 기사도 없이 멈추어져 있다. 또 다른 주민들이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고...그 옆에 보이는 팻말 하나. 지리산 둘레길. 마을 길을 열어주어 감사하다는 팻말.
그래 분명 둘레길은 이쪽으로 갈거야..
마을을 지나가는데 길이 몇 군데로 갈라지는 곳이 보이지만 이상하게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가 없으니 직진하라는 얘기인가? 조금 더 가다 보니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자주 보이는 단어하나가 보인다. 범숙학교. 대안학교로 알고 있다.
범숙학교옆을 지나는데 개 여러마리가 또 짖어댄다. 따라오지는 않고.. 범숙학교 옆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이제야 오늘의 산행이 시작된다. 거의 700미터 높이의 산행이니 이제부터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산은 구불 구불.. 가파르기도 하고 걷기 힘든 세멘트길.
한참 올라가다 보니 정말 탐스런 소나무하나가 넓은 바위위에서 보호받고 있다. 이름하여 세진대(洗塵臺), 먼지를 씻어내기 위한 곳. 커다란 바위에 세진대라고 깊게 새겨 놓았다. 그 옆의 어떤 사람 이름. 수령 400년이라는 소나무의 가지들이 바위 아래로 쭉쭉 뻗어 내려갈 것 같다.
앞으로도 가파르게 올라가야 하니 이 곳에서 간식도 먹어가며 오래 쉬었다.
자. 가자. 재를 넘어가서 점심 먹어야지.
하늘에 구름한 점 없다. 산길을 돌다보니 정자를 하나 만들어 놓았다. 조금 더 쉴까? 배낭 내려 놓고 파란 하늘에 취하고파 지붕없는 정자위에 길게 누웠다. 그리고는 깜빡 잠이 들었나?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여자 등산객. 반갑게 인사하고 어디서 오느냐 물었더니 벽송사까지만 다녀온단다. 벽송사에서 길이 험하고 자기는 오늘까지 수철까지 돌아가야 하기에 일찍 내려가야 한다며 쉼터에서 쉬지도 않고 총총이 발길을 옮긴다.
그리고도 다시 한참을 올라갔다. 저 아래 사찰로 보이는 건물이 있고 넓은 공간도 보인다. 저게 벽송사일리는 없을텐데...하고 생각해보니 이상하게 아무리 외길이지만 이정표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기어코 길이 갈라지는 곳에 있어야 할 둘레길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옆길의 나무에 걸려있는 빨간 리본표시. 누군가 이 곳에서 헤매다가 일행을 위해 저쪽으로 가라고 길을 안내한것일거야. 빨간 리본에 일련번호가 써 있다. 무슨 뜻일까?
그런데 어느 순간 막힌 길 끝에 주택이 하나 서 있고 더 이상 갈 길이 없다. 주택 저 아래 밭일 하는 아낙이 있어 둘레길 가는 길을 물으니 이 곳이 아니란다. 이럴 수가 있나? 둘레길은 저 아래로 내려가 다리를 건너가면 된다 한다.
아니 내가 아는 둘레길은 그렇게 길가는 아낙의 말을 듣고 가는 곳이 아니다. 급히 지리산 안내책자에 나온 지리산 안내센타에 전화했다. 지금 있는 곳을 설명해 주니,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송대 마을인데 길을 잘 못 들었단다.
아까 세동마을에서 마을로 들어오지 말고 직진했어야 하는데 난 마을 입구에 세워둔 지리산 안내길 표시만 보고 이길을 들어 온 내 실수. 끝까지 빨강과 까망 표시판을 보고 왔어야 하는데..
그래서 내가 세진대도 지나왔고 목장있는 곳도 지나왔다 했더니 이미 한참 멀리 왔단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토지소유주와 통행권이 해결이 안되어 길을 바꾸었단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 거의 1년전 책이니 그간 업데이트 된 것을 모른 것이다.
아까 내가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절이 견불사이고 그 아래로 한참 내려가면 용유교가 있으니 그 앞에 둘레길 표식을 해 놓았다 한다.
이런 허탈감. 미리 알았더라면 이렇게 힘들게 올라오지 않았을텐데..그러나 어쩌랴..이미 한 고생인데.. 덕분에 등산도 했고..
한참을 내려가니 견불사가 있고 견불사에서 다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는데 올라가는 것 보다 내려가는게 더 힘들다. 가끔씩 스님들이 탄 승용차나 SUV가 부릉 부릉 소리를 내며 올라온다.
만약 내가 올라 갔던 길만큼 다시 또 올라가야 한다면 오늘 산행을 포기하리라 다짐하고 내려간 길 끝. 용유교가 보이고 멀리 세동마을 방향으로 가는 둘레꾼들이 많이 보인다. 그제서야 지리산 안내센타가 말해준 이정표가 보인다.
그 이정표 사이로 난 길. 사람들이 무너기로 내려오고 있다. 지금 시간이면 아침에 금계나 매동마을에서 출발한 둘레꾼들이 지금 이 곳 쯤 올 시간이다.
내려오는 이들에게 물었다. 금계에서 오는 것이냐 했더니 맞다기에 이제 안심. 혹시 금계까지 갈려면 어느 정도나 더 올라가야 하느냐 물었더니, 대답이 시큰둥하다. 그냥 오르락 내리락 길이라 한다.
그 말에 안심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다행히 이 곳부터는 강을 따라서 나란히 가는 길이다. 다른 둘레길은 모두 기존의 있는 길들을 이용해 가는 길이었는데 지금 가는 이 곳은 모두 온전히 둘레꾼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길이다.
길을 새로 닦고 나무를 잘랐으며, 발디딜 바위를 얹어 놓았다. 비록 새로 만들 길이지만 그다지 산림을 훼손한 것 같지는 않다. 하긴 돈을 벌기 위해 만든 길이 아니니 자연보호에도 신경을 썼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믿는다. 지리산 둘레지기가 그런 자연보호 원칙을 세웠으리라고..
끝없이 이어지는 강변의 숲길. 좋다.좋아.
멀리 맞은 편 산위에 이상한 그림이 보인다. 누군가 산을 깍아 바위를 캐고 그 거대한 빈 공간에 부처그림을 그려 넣었다. 예술인가? 아니면 불심인가?
그 끝에 마을이 있다. 의중마을. 마을이기에 밭에 경작물이 많아 둘레지기가 경고장을 붙여 놓았다. 경작물을 훼손하지 말아 달라고.
여기 저기 두릅이 보인다. 그냥 딴 채로 초고추장 찍어 먹으면 맛있는 두릅을 누구나 따고 싶어할텐데.. 밭 여기 저기에 막대기 하나씩 심어져 있는게 뭔가 했더니 두릅일세.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금계 마을 가는 길을 물으니 바로 요기 재 넘어란다. 재너머 가는 길에 커다란 당산나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 곳에 앉아 쉬는데 아까 지나 친 젊은 연인이 다시 왔다. 길 끝까지 갔더니 세멘트 길이라 돌아왔단다. 그 들에게 어젯밤 아궁이에서 구운 고구마를 나누어 주었더니 얼마나 둘이 맛있다고 먹는지 보는 내가 행복했다.
여행은 이런 재미가 있다. 서로 나누어 주는 마음.
당산나무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 기이하게 생긴 나무가 마을 가운데 있다. 어찌보면 버펄로 같기도 하고 산양같기도 하고..
배고프다 산에서 내려오는 즉시 제일 먼저 요기할 곳을 찾았다. 반가운 간판. 무슨 무슨 가든. 저곳에 가서 점심을 먹자. 그런데.. 그 곳에서 나오는 주인 아줌마. 식사 안된단다. 저기 다른 민박집을 가르쳐 준다. 그곳에 가니 그곳도 식사는 안된단다. 나보고 어찌 하라고..배가 고픈데.. 그래도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 주겠단다. 아이고 아줌마 그거면 최고지. 그렇지 않아도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라면먹는 나인데..오늘도 내 생활 패턴을 우연히 즐기게 되네.
라면에 찬 밥 달래서 포만감에 가득 찼는데 이 곳 막걸리가 맛있으니 나물 안주해서 한잔 하고 가란다. 뭐..그럽시다.
차 시간을 물으니 30분마다 함양가는것 있다기에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 커피까지 얻어 먹고..
자 이제 버스타러 가자. 다리 저편에 관광버스가 많이 주차되어 있다. 가까이 가서야 그 곳에 내가 지난 번 산행시 마지막 도착지 인걸 알았다.
지난 번은 나마스테 카페 아저씨가 버스타는 곳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기에 혹시 서울 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마천에서 3시에 있단다.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니 마천까지 걸어서 15분이면 간단다. 뭐 그정도야. 그러나 내 발은 이미 여행이 끝났다는 시효 만료로 생기를 잃어 버렸다. 얼마 멀지 않은 길인데도 걸어가기 싫다.
스쳐 지나가는 승용차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태워 달라고 했건만 아무도 서지 않는다.
걸어가는 이라면 도와 주었을텐데, 승용차를 탄 이는 도와 주지 않는다.
힘들게 걸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 이제 이번의 내 걷기여행을 끝났다.
돌이켜 보건대 이런 걷기 여행처럼 좋은게 없다. 걷는 것은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땀을 흘리는 배설의 즐거움과 땅을 밟는 행복감. 나무와 산과 바람과 하늘이 내 몸과 하나됨을 느낀다.
이제 지리산 둘레길 다섯개 코스는 일단 완주했다. 비록 현재까지는 지리산 둘레길이 반쪽 밖에 안되지만 나중에 완전히 지리산을 순환하는 둘레길이 만들어 지리라. 그 때를 기다려 보자.
다음 목표는 제주도 올레길을 전 코스를 걸어보고..
할 수 있다면 한국의 강산을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통일 전망대까지 종단해 보고 싶다.
틈틈히 서울의 성곽길도 걸어보고 강화의 나들길도 걸어보고 강원도의 바위길도 걸어보자.
인생의 마지막 목표는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로 정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제일 먼저 건강해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아야 하며, 내 신상에도 커다란 변화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열심히 일하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살자. 기도하며..
나에게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준 가족과 하나님에게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