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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가 나뒹구는 지저분한 골목. 확장정비냐, 단순정돈이냐의 의견대립이 첨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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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 초입에 들어선 대형오락실. 젊은애들의 취양에 맞춘 이같은 업종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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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문화의 거리 인사동.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우리의 전통을 느낀다며 인사동을 즐겨 찾는다. 평일 하루 찾는 인구가 2, 3만명. 휴일에는 10만명을 넘는다니 인사동의 명성은 빈말이 아닌 듯싶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인사동, 인사동 하는 것일까. 시민단체인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이하 인사모)’ 김기호(46, 서울시립대 교수)회장은 “뿌리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인사동에 가면 지나간 생활의 한면, 아름다운 추억 한토막을 만날 수 있어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것이다.
실제 인사동, 정확히 말해 인사겙恍틉?일대를 가면 골동, 고미술, 필방, 표구, 고서적 등 잊혀져가는 우리의 옛문화를 만날 수 있다. 그것도 박물관이나 고궁처럼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살아숨쉬는 모습 그대로다.
6년째 인사동에서 전통공예품을 팔고 있는 신용호씨(41, 광주요)는 “인사동의 가치는 우리가 살아온 모습 그대로가 녹아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씨는 보통 전통이라고 하면 초가나 물레방아 등을 떠올리기 쉬운데 그렇게 일부러 꾸민 것은 살아있는 전통이 아니라는 것. 정돈이나 개발이 필요없는 자연스럽게 이어져오는 생활 그 자체가 진짜 전통이라고 강조한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앓고 있다
어쨌든 인사동에서는 우리의 전통이 살아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비가 쏟아지는 날이나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에도 뭔가 우리 것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진 사람들로 인사동 길은 북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멀쩡해보이는 인사동이 속으로 들어가보면 심하게 앓고 있다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다. 어제의 화랑이 오늘 빵집이나 찻집으로 변해있고, 심지어 대형 오락실도 초입에 등장했다. 하나 둘 소리없이 사라져가는 문화업종들. 게다가 액세서리등 소품을 파는 공예품 가게에서는 중국, 미얀마, 베트남 등 국적불명의 외국산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인사동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타까움에 속이 탄다.
“다른 문화업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IMF 한파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 바로 미술 골동 시장입니다. 90년대부터 미술시장이 가라앉기 시작했는데 IMF 사태까지 빚어지니 거의 초죽음 상태죠. 오죽하면 바닥인줄 알았는데 그 아래 지하실이 있더라는 자조적인 얘기까지 나오겠습니까. 화랑이 죽고 골동품점이 떠난 자리에 음식점이나 카페 등 다른 업종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인사동에서 대를 이어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동산방 박우홍(47) 사장. 이대로 가면 조만간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인사동의 색깔이 영영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한다.
“인사동의 건물주들도 문화업종에 세를 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현실이 따라주지 못해 다들 안타까워하죠. 가령 문화업소에 1백만원을 받고 있는데 음식점이 2백이나 3백만원 준다고 하면 요즘같이 어려운 때 거절하기가 쉽겠습니까?”
박사장은 현실적으로 비문화업종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더욱 안타깝다고 말한다.
사실 인사동은 문화의 거리라고는 하지만 이 용어는 법정용어가 아니어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인사동 일대는 일반상업지역이니 오락실이 들어오든, 호프집이 들어오든 건물주 마음이지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동안은 인사동이란 이미지에 문화업종이 경쟁력이 있어 살아남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경제난으로 골동이나 미술 등 문화업종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더 이상 인사동이란 이미지도 이들의 보호막이 될 수 없을 정도로 급속도로 이 업계가 침체돼 있다. 여기다가 인사동을 찾는 부류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골동이나 미술을 감상하고 사려는 사람들이 주로 찾곤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관철동에 몰리던 젊은이들이 인사동으로 그 활동범위를 점점 넓히고 있는 것이다.
인사동은 새로운 방문객들의 취양에 발빠르게 맞춰가고 있다. 오락실, 호프집, 빵집, 음식점에는 젊은 손님들이 넘쳐난다. 그러니 또 생겨나고. 공사중인 곳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대신 화랑이나 골동품점에는 한달에 한건의 거래도 힘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근근이 버티고 있는 업주들 중에는 업종전환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경제논리에 의해 자연스럽게 물갈이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골동 미술이 사라진 자리에 호프, 오락실이
다들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인사동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도 그렇고 건물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인사동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점에는 뜻을 같이 하지만 방법론에서는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개발이냐 보존이냐 말들이 많은데 인사동에 현실적으로 보존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한옥이 잘 보존돼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소방도로 하나 제대로 갖춰져 있습니까? 효율적인 개발방향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산방 박사장은 인도가 없는 도로, 지저분하면서 막다른 골목, 관광버스가 와도 댈 곳이 없고, 공연장, 공중화장실 하나 갖추지 못한 곳이 바로 문화의 거리라는 인사동의 현실이라고 불평한다.
38년간 인사동에서 미술품을 거래해온 동문당 심도식(61) 사장도 “서울 하면 종로, 종로 하면 인사동인데 거리가 지저분하고 휴식공간 하나 없을 정도로 낙후된 곳이 바로 인사동”이라고 말한다.
“미술품은 깨끗하고 안정된 공간에서 감상을 해야 아름답게 보이는데 지금 이 거리는 삭막하고 어수선하기 그지없습니다. 도로는 들쑥날쑥하고 나무 그늘도 없고. 도로를 도시계획선에 맞춰 새로 닦아야 합니다. 또 골목도 반듯하게 정돈을 해서 소방차가 드나들 수 있게 하고. 앞으로 인사동이 제 모습을 찾으려면 큰길가 양쪽으로는 미술품과 도자기류로 채우고 음식점과 찻집 등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산방 박사장과 동문당 심사장은 둘 다 제 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화랑을 경영하는 경우. 덕원미술관 이헌(69) 회장도 여느 건물주와 마찬가지로 “도시계획에 있는대로 도로를 닦고 개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렇듯 건물주들은 대체로 개발을 원하며 그 첫단추로 도로 개설에 무척 애착을 보인다.
그러나 임대해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다르다. 광주요 신용호 사장. “도시계획선대로 도로를 닦으면 인사동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예로 고 천상병 시인의 숨결이 배어있는 귀천이 사라지고 말죠. 그곳은 두평 남짓밖에 안되는 허름한 집이지만 품고 있는 의미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로운 것입니다. 개발의 논리에 밀려 그 집이 사라진다면 우린 너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신사장은 또 개발하더라도 스토리가 있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개발이 시작되면 건물주들은 고층건물을 세워 세를 많이 받으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고 걱정한다.
좁은 골목도 마찬가지.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는 것을 걱정하는 건물주와는 달리 신사장은 골목을 가장 인사동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물론 지저분하고 동선이 끊기기는 하지만 외국인들 눈에는 이 좁은 골목이 아주 신기하게 보입니다. 반듯하게 정돈해 차가 씽씽 달리면 무슨 멋이 있습니까? 무조건 도로를 넓히는 쪽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개발을 하더라도 이곳의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갔으면 합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
역시 세를 내 15년간 영빈가든이란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서학원(66) 사장. “길이 좁아 좋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 넓어지면 하나의 강이 됩니다. 옛 문화의 거리라면 고풍스럽고 보수적인 냄새도 나야 하는데 도로를 새로 넓게 닦다보면 이런 멋은 사라지고 말겠죠.”
서사장은 또 도로를 확장하면 건물주는 이득을 보겠지만 도로에 포함되는 곳에 자리한 세입자들은 다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건물주와 세입자간 상충된 이해를 떠나서도 서울시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도로를 확장하는 것이 과연 이 시대에 얼마나 효과적이냐는 것도 깊이 숙고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건물주든 세입자든 다들 생계수단으로 이 거리에 나와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전통문화를 보존해야 한다고 목소리는 높이지만 이상은 멀고 당장 급한 것은 생업일 수밖에 없죠. 인사동이 어떤 방향으로 간다 하더라도 아픔이 따를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세입자가 밀고 나가면 소유주의 오해를 살 수 있고 소유주가 밀고 나가면 세입자의 오해를 살 수 있다.
이렇듯 인사동 문제는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 사상논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생업과 관련된 일이어서 어느 누가 양보하고 말 것이 아니라는 서사장의 말처럼 무척 예민한 문제인 것이다.
지금 인사동에는 상가겙퓜걍令湧?모임인 ‘인사전통문화보존회(이하 보존회)’가 있다. 회원수는 2백80여명. 8백여개에 달하는 전체 업체들의 절반에도 채 못미친다. 그래서 차없는 거리를 조성하고 문화장터 등을 열며 인사동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대표성면에서는 아직 확실한 인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존회는 서화 골동 관련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건물주들도 상당수죠. 그렇다보니 절대다수인 세입자나 우리같은 업종 종사자들의 입장과 다른 면이 있습니다. 준대표성을 지니는 것에 불과한 보존회측이 어떤 계획을 세워서는 전체 의견인양 발표해서 홍보까지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심지어 동네 분열을 조장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서사장은 주민 전체가 밀어주고 화합하는 총의가 있어야 하는데 한쪽이 얻으면 한쪽이 희생당하니 인사동 문제가 결론이 안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사모 김기호 회장은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인사동 전체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 제시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다보니 작게는 길을 내는 일에서부터 부딪친다고.
“인사동 안의 사람들은 인사동의 미래를 생각할 때 지역 이기주의나 상업 우선주의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특히 건물주나 땅을 가진 사람은 더욱 심하겠죠. 세를 내 점포만 운영하는 사람은 조금 다르겠지만 그들은 발언권이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젠 큰 틀을 만들 때
김회장은 인사동 문제는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떠나서 “왜 사람들이 인사동을 가려고 하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사동은 도시 즐기기의 한부분으로 봐야 합니다. 꼬불꼬불한 골목과 일부 한옥과 같은 물리적인 요소와 책방, 갤러리, 한정식점 등 문화관련 용도가 도시 즐기기의 요소들이죠.”
도시 즐기기가 잘되려면 끊임없이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고 물리적인 환경도 정비돼야 한다는 것이 김회장의 주장이다. 이를 도와주는 것 중의 하나가 차없는 거리 조성인데 실제로는 잘못 운영되고 있다는 것.
“보존회측에서는 뭔가 자꾸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다보니 차가 없어진 거리에 천막을 치고 노점이 들어서게 되는데 이는 천막과 노점이 주인이지 인사동은 무대에 그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노점도 내부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니 주객이 전도되고 있는 셈이죠.”
김회장은 인사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인사동 주민들이나 업주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인사동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논의를 한 후 거기서 뭔가 방향이 잡히면 시나 구에 요구를 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한다.
이렇듯 인사동의 문제는 다들 인식하면서도 해결방향에 대해서는 천양지차다. 보존회측에서는 관이 나서 거리정비 등 개발에 앞장서줄 것을 원하지만 종로구청은 또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다. 예산도 예산이지만 주민들간의 첨예한 의견 대립 때문에 선뜻 앞에 나설 엄두를 못내고 있는 것이다.
종로구청 이상도(46) 문화공보담당관은 “땅주인은 개발을 원하고 세입자는 그 반대니 구청에서 이렇다 저렇다 할 수가 없는 입장”이라고 말한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반대편에서 민원제기를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
입장 차이로 우왕자왕하는 사이에 인사동은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문화지구는 하나의 도구일 뿐 먼저 밭을 일굴지 논을 만들지부터 결정해야 한다는 인사모 김기호 회장의 주장처럼 이젠 인사동이 어떤 방향으로 갈 지 큰 틀을 만들 때다. 그 주체가 자치단체가 되든 인사동 사람들이 되든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 더 이상 늦추었다가는 영영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드는 것이 오늘의 인사동이 처한 현실이다.
글·최정옥 기자, 사진·나영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