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인은 단순히 보는 이의 시각적 만족을 위한 결과물이 아니다. 효율성과 안전, 브랜드의 개성 등 자동차의 모든 내적 가치를 외부로 표현하는 고도의 복합적인 작업이다
‘자동차는 멋있어야 한다.’ 자동차를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 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멋있는 디자인이 자동차에만 해당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달리는 게 본질인 자동차는 다른 어떤 제품보다 역동성이 강조되고, 이는 곧 멋있는 디자인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자동차 디자인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디자인을 통해 구현되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역사를 드러내기도 하고 패밀리룩을 통해 개성과 집단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작은 주름 하나에도 공기의 흐름을 고려한 고뇌가 심어져 있다. 공기저항을 줄여 소음 발생을 막고 연비를 높이는 일도 디자인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어디 이 뿐이랴. 멋을 놓치지 않으면서 안전까지도 확보해야 한다. 이 밖에도 디자인을 통해 구현되는 요소는 수없이 많다.
1 공기저항을 줄여 효율성을 높인다
자동차는 저항을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찰저항과 구름저항, 공기저항 등 움직이는 순간 이동을 저지하는 힘에 부딪히게 된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곧 에너지 소모를 의미한다. 이 중에서 공기저항은 자동차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공기가 어디 한 군데 걸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쪽으로 디자인의 초점이 모아진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즘 자동차들은 대부분 유선형 형태를 띠고 있다. 공기저항을 줄어들면 그만큼 수월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줄어든다. 유선형 디자인이 연비를 높이는 데 기여를 한다는 얘기다. 대체 에너지 개발도 중요하지만 완전한 대체 에너지를 찾을 때까지 현재 자동차의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일이 중요하다. 자동차 디자인도 에너지 효율을 높여 화석연료 고갈에 대비하는 한 방편인 셈이다.
현대 아반떼 하이브리드
아반떼 하이브리드는 아반떼 세단을 베이스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얹어 연료 소모를 최소화 한 모델이다. 일종의 스페셜 버전인 셈이다. 특히 아반떼 하이브리드는 LPG 엔진에 전기모터가 결합해 연비는 LPG치고는 높은 리터당 17.8km를 기록했다. 하이브리드 모델답게 스타일도 차별화 했다. LED가 박힌 헤드램프, 범퍼와 사이드를 둘러싼 에어로 파트, 새로운 디자인 휠 등을 더해 날렵함을 강조했다. 단순히 모양만 바꾸었다고 오해할만한데 여기에는 공기저항을 줄여 연비를 높이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 연료효율성을 높인 모델인 만큼 공기저항에도 신경을 썼다는 증거. 아반떼 하이브리드의 공기저항계수는 0.26으로 일반 아반떼의 0.29보다 낮다. 양산 모델 중 가장 낮은 프리우스가 0.25이니 얼마만큼 공기저항을 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토요타 프리우스
일반 모델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더한 여타 자동차와는 달리 프리우스는 하이브리드 전용모델이다. 초기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공기저항을 줄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세단도 아니고 해치백도 아닌 중간적 형태의 디자인은 공기저항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구조. 공기저항을 가장 적게 받는 탄환이나 물방울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프리우스는 3세대 모델인데 1세대만 해도 세단 형태였다가 2세대부터 지금의 형태를 갖추었다.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잡아 보디 형태를 효율성에 맞춘 예라 할 수 있다. 우연히도 프리우스의 경쟁 모델인 혼다 인사이트도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프리우스의 공기저항 계수는 0.25. 양산 모델로는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렉서스 LS
효율성을 중시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만 공기저항에 신경 쓰는 것은 아니다. 일반 자동차들도 공기 저항을 줄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연료효율성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주행 소음을 줄이고 공기저항에 의한 움직임 변화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렉서스 LS의 공기저항계수는 0.26으로 상당히 낮은 편(대부분의 세단형 자동차는 0.30 전후다). 비결은 매끈한 보디라인에 있다. 돌출부를 최대한 줄여서 공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철판과 철판이 만나 생기는 틈새 부분의 간격을 좁고 균일하게 해서 불규칙한 공기의 흐름을 막았다. 참고로 스포츠카는 무조건 공기저항 계수를 낮추지 않는다. 모양은 아주 날렵하게 생겼어도 공기저항을 통해 달리기 특성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2 한 대로 두 대의 효과를 낸다
자동차의 형태는 세단과 쿠페, 컨버터블, 해치백, 왜건 등으로 정해져 있다. 각각의 형태에 따라 기능이나 실용성이 차이가 나고 장단점이 나뉘게 된다. ‘각각의 장점만을 지닌 차를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이런 목적을 가지고 나온 차가 크로스오버다. SUV와 왜건의 중간적 성질을 지닌 캐딜락 SRX, SUV와 해치백을 섞은 듯한 인피니티 EX, SUV와 쿠페를 혼합한 BMW X6 등이 크로스오버의 범주에 속하는 차들이다. 그런데, 크로스오버와는 달리 본래의 성질을 유지하면서 다른 영역의 차의 장점을 가져온 차들이 있다. 쿠페처럼 보이는데 도어는 네 개인 세단이 있는가 하면, 5도어 해치백이지만 스포티한 3도어 해치백으로 위장한 차도 있다. 이러한 차들은 본래의 기능과 실용성은 살리면서 디자인적인 멋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GM대우 마티즈 크리에티브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는 3도어 해치백처럼 보인다. 알고 보지 않으면 대부분은 3도어로 착각한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5도어 해치백임을 알 수 있다. 비밀은 C필러에 숨어 있는 도어 손잡이 때문. 뒷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뒤쪽 검은 플라스틱 부분에 손잡이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3도어 해치백은 혼자 탈 때에는 상관 없지만 여럿이 탈 때에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에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같은 스포티하고 역동적인 스타일을 표현하는 데는 3도어가 제격이다. ‘5도어의 편의성을 살리면서 3도어의 역동적인 스타일을 살릴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이 5도어이면서 3도어 모델처럼 보이게 하는 ‘유쾌한 속임수’를 만들어 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외국 모델에 종종 쓰여온 방식으로 마티즈가 처음은 아니다. 결국 같은 아이디어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의 문제인데, 마티즈는 차의 성격에 맞게 잘 소화해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YF 쏘나타
YF 쏘나타는 4도어 세단이지만 쿠페의 실루엣을 지니고 있다. 세단이면서 쿠페의 특성을 살린 차들은 종종 있어 왔다. 세단을 쿠페처럼 보이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C필러를 길게 누인 후 트렁크 리드를 짧게 하면 된다. 렉서스 GS와 볼보 세단, 재규어 XF 등이 그 예다. 이는 세단을 기반으로 쿠페화 시켰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쿠페를 세단화 시킨 모델도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CLS가 대표적인 모델. 앞부분부터 경사져 내려가기 시작하는 루프라인, 낮은 차고, 좁은 그린하우스가 영락 없는 쿠페의 모습이다. 하지만 도어는 네 개로 세단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폭스바겐 CC도 같은 부류에 속한다. YF 쏘나타도 세단을 쿠페화 시켰지만 쿠페를 세단화 시킨 것 못지않게 쿠페다운 모습이 살아있다. 대중적인 패밀리 세단으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 쿠페
하드톱은 지붕을 들어낸 차에 철제 루프를 씌운 모델을 뜻한다. B필러가 있는 일반 쿠페와 달리 B필러가 없는 게 특징. 문이 네 개인 세단이나 B필러가 있는 쿠페 들도 필러를 내부로 숨기는 방법으로 하드톱처럼 보이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E클래스 쿠페는 이전 모델인 CLK 쿠페처럼 B필러가 아예 없는 하드톱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대신 앞유리와 뒷유리가 만나는 곳은 가느다란 플라스틱 경계 바(bar)가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뒤 유리 뒤쪽에 분할바가 자리잡고 있다. 이는 뒷유리를 완전히 내려가게 하기 위한 조치다. 결국 하드톱 쿠페이지만 유리는 세단의 그것과 유사한 형태로 보이는 마술을 연출한다.
3 보행자의 안전도 지킨다
자동차는 디자인이 전부가 아니다. 무조건 멋있게 만들 수만은 없다. 공학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하고 안전성도 유지해야 한다. 게다가 생산 비용이나 작업의 난이도 등 현실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컨셉트카 단계에서는 아주 멋있는 차도 양산차로 만들어지면서 모양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멋을 위해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 타협한다고는 하지만, 다른 요소와 달리 안전은 타협하기 힘든 부분이다. 안전성은 충돌 했을 때 얼마만큼 운전자를 보호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요즘은 보행자의 안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한 디자인의 역할이 한층 더 커졌다.
볼보 C30
요즘 주목할 것은 보행자 안전이다. 차대 차로 부딪혔을 때뿐만 아니라 보행자하고 부딪혔을 때 보행자의 안전도 고려해야 한다. 차와 사람이 부딪혔을 때 차의 파손은 미미하더라도 사람은 커다란 부상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유럽에서는 아예 보행자보호 규정을 만들어 법적으로 보행자의 안전을 보호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 때문에 자동차 메이커들은 자동차 프런트 디자인에서 보행자 보호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볼보 C30을 예를 들면, 전면부를 둥글고 부드럽게 디자인 해 보행자와 충돌했을 때 보행자의 부상 위험을 줄인다. 또한 범퍼 밑에 자리잡은 스페셜 스포일러 또한 보행자나 자전거 타는 사람의 다리 부상을 줄이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고급차에서 볼 수 있는 입체형상의 후드 엠블럼도 보행자의 안전에 치명적이다. 그래서 아예 없애거나 평평하게 바꾸는 추세다. 아니면 부드러운 곡면으로 디자인하거나 주행중에는 숨길 수 있게 해놓는 경우도 있다.
4 브랜드의 개성과 가치를 드러낸다
통일적인 모습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디자인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BMW의 키드니 그릴과 꺾어진 C필러(호프마이스터 킥)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아우디의 싱글 프레임 그릴이나 렉서스 L-피네스 디자인 등 다양한 브랜드들이 통일된 디자인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살리고 있다. 이러한 패밀리룩 또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가 과거의 모습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경우에 쓰인다. 또는 정통성을 유지해나가는 고급 브랜드들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주로 사용한다. 트렌드에 따라 계속해서 모습을 바꿔야 하는 대중 브랜드들은 대체적으로 통일성이 떨어지는 편. 하지만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이룬 기아나 3바 그릴로 일부분에서 통일성을 살린 현대 등 대중 브랜드에서도 활발하게 정체성을 살리는 디자인이 이어지고 있다.
아우디 LED 헤드램프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라 해도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끊임없이 창조해낸다. 아우디의 얼굴로 자리잡은 싱글프레임 그릴의 역사도 그리 길지 않다. 2003년 컨셉트카를 통해 처음 선보인 후 급속하게 모든 모델로 퍼졌다. 싱글프레임 그릴은 다른 브랜드 모델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디자인 트렌드를 주도해나갔다. 최근에 아우디는 LED로 새로운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만들었다. 헤드램프에 물결모양으로 점점이 박힌 LED는 아우디를 상징하는 새로운 디자인 요소가 되었다.
기아 슈라이어 그릴
트렌드에 맞게 모습을 바꾸어야 하는 대중 메이커는 통일적인 모습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 영입 후 디자인에 역점을 두기 시작한 기아는 통일된 패밀리룩으로 정체성을 확립해나가고 있다. 호랑이의 얼굴을 형상화 한 로체 이노베이션을 시작으로 기아의 새로운 얼굴이 하나 둘 선보였다. 핵심은 5각형에 크롬테를 두른 일명 ‘슈라이어 그릴’이다. 이제는 기아의 거의 모든 차들이 슈라이어 그릴을 끼고 있다.
GM대우 보디 인 휠 아웃
얼굴뿐만 아니라 보디 형태에서도 통일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GM대우 라세티 프리미어와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는 역동적이고 볼륨감 있으면서도 늘씬하고 매끈한 분위기가 살아있다. 이는 허리가 잘록한 디자인 덕분이다. GM대우의 설명대로 표현하자면 ‘보디 인 휠 아웃(body in wheel out)’으로 휠 쪽은 튀어나오고 몸통은 잘록한 형태다. 콜라병을 생각하면 쉽다.
<Tip> 시대를 초월한 박스형 디자인
요즘 시대의 자동차는 공기저항을 줄이고 멋을 내기 위해 유선형 디자인이 대세다. 하지만 초창기 자동차들은 제작 기술 탓에 박스형이 대부분이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박스형 자동차는 여전히 나오고 있다. 실용성이 높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직사각형 박스 모양이 버리는 공간이 없어서 활용도가 제일 높다. 그렇다고 요즘 나오는 차들이 실용성만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기아 소울이나 닛산 큐브 같은 차들은 박스형 차체를 살리되 패션카의 개념을 집어 넣어 미적인 감각을 살리고 있다. 오히려 유선형 보디를 지닌 차보다 더 개성 있어 보인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는 박스형 차체를 고수하지만 세련미가 넘친다. 요즘에는 박스형 자동차도 공기역학을 고려해서 디자인하기 때문에 박스형이라고 해서 공기저항을 많이 받는다고 할 수도 없다.
자동차 디자인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디자인을 통해 구현되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역사를 드러내기도 하고 패밀리룩을 통해 개성과 집단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작은 주름 하나에도 공기의 흐름을 고려한 고뇌가 심어져 있다. 공기저항을 줄여 소음 발생을 막고 연비를 높이는 일도 디자인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어디 이 뿐이랴. 멋을 놓치지 않으면서 안전까지도 확보해야 한다. 이 밖에도 디자인을 통해 구현되는 요소는 수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