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을 구해 낸 맹장염
지 석 동
우연이었다. 카드를 찍고 맨 앞좌석에 막 앉으려는데 정수리가 훤히 드러난 반백의 버스 기사가 선박에서 쓰는 용어로 “지 국장님 아니세요.”하고 물었다. 엉겁결에 그렇다고 했다. 그는 옛 동료를 만난 기쁨에 환히 웃었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부산에서 수리 중인 대봉5호 선원식당에서였다. 나는 원양어선의 통신장이었고 그는 하선한 사람 자리를 메우러 온 신출내기 선원이었다. 그의 첫인상은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 온 사람같이 몸을 움츠렸고, 웃는 모습도 어색했다. 몹시 수줍어하는 성격이라 억센 뱃사람들 틈에서 어찌 배길까 싶었다. 거기다 노가리같이 왜소한 체구는 힘든 뱃일을 해낼까 싶지 않았다. 그러나 거센 영남 사투리뿐인 배에서 서울말을 쓴다는 것만으로 그가 반가웠다.
그는 정박하거나 항해할 때는 기관실 일을 하고, 조업할 때는 갑판 일을 했다. 여럿이 고기를 잡아 올리고 어구를 챙기는 갑판 일은 남을 따라 하면 되지만, 45도가 넘는 기관실에서 기름투성이로 일하는 걸 보면 안쓰러웠다.
그의 첫 항해는 멀미로 시작했다. 오륙도를 벗어나자 토하기 시작해 동중국해를 지날 때는 물 한 모금 못 넘기고 손가락 하나 까딱 못했다. 대개 이삼일 지나면 누렇게 뜬 얼굴을 들고 나오는데, 그는 더 까부라져 안타까웠다.
나 역시 억센 사투리를 쓰는 거친 선원들 속에서 외로웠던 터라, 몇째 동생 같은 그가 마음에 걸려 먹을 것을 들고 자주 들여다봤다.
“이봐, 이것 먹고 정신 차려! 남들은 일하느라 야단법석인데 마냥 누워 있기만 할 거야. 자 어서 이것 좀 먹고 기운 내. 그래야 가족을 먹여 살리지.”
저만큼 보이는 남국의 멋진 풍광이 그를 불러 냈는지 남십자성을 보려고 나왔는지 출항한 지 일주일 만에 간신히 선실을 기어 나왔다.
그는 외모와는 달리 천성적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일 년 남짓한 선박 생활에서 몇 사람을 부리는 조기장이 됐다. 수줍고 겁 많던 그가 시키는 일에 막힘이 없을 뿐 아니라 마무리까지 잘 해내어 승진한 것이다. 그런 그가 가끔 선미에서 배를 잡고 서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심할 때는 진땀을 뻘뻘 흘렸다. 배 아픈지가 반년이 넘었지만, 몸에 칼 대는 게 겁이 나 미련하게 참고 견뎠다.
이란에서 출항한 뒤 두 달 반 동안 저기압으로 몇 번 고생한 것 외에는 별 탈 없이 조업했다. 그러나 하루에 겨우 서너 시간 자는 작업은 선원들을 지치게 했다. 어창이 차오를수록 선원들은 지쳐갔다. 그런 어느 날 꿈에 어머니를 뵈었다. 꿈에 어머니를 보면 꼭 탈이 나서, 또 무슨 사고가 날까 싶어 걱정됐다.
다음날 오후 갑판에 내려가 엉킨 주낙을 사려주고 있는데 선장이 다급하게 불렀다. 역시 자식을 바다에 보내고 마음졸이는 모정의 계시는 맞았다.
파랗게 질린 기관장이 발전기가 고장 났다고 했다. 비상용 발전기가 있지만, 냉동기를 충분히 돌려주지 못해, 잡은 고기가 썩게 생겼다. 부품이 없어 공수해 와야 했다. 지난번 좌초 때 녹아서 물컹거리던 고기 생각이 나서 서둘렀다. 인근에서 조업하는 배에 여분의 부품이 있으면 도와달라고 애원했지만 허사였다.
발전기 고장을 본사에 보고하면 늘 그랬던 것처럼 듯 또 그 지겨운 이란으로 가라고 할 것이 뻔했다. 그 먼 곳에 가는 동안 고기가 썩을 게 뻔한데 그것을 알고 어떻게 간단 말인가. 갈 수 없었다. 조업이 순조로워 부산까지 절반은 갔다고 좋아했는데 이게 무슨 저주인가.
먼 이란으로 가서 수리하나 가까운 곳에서 하나 부속품을 공수해 와야 했다. 그렇다면 본사에 사고를 빨리 알려 부속품 구할 시간을 벌어주고, 배에서는 가까운 항구로 들어갈 빌미를 만들면 되지 싶었다. 평소에 오른쪽 아랫배를 아파하던 조기장을 염두에 두고 선장실 방문을 두드렸다.
“조기장이 만성 맹장염을 앓는 것 같은데 말해 볼까요? 밑져야 본전 같은데.”
“하긴 밑 갈건 없지. 마, 이란은 생각만 해도 신물이나니 한 번 떠보소.”
본사에 발전기 고장을 알리고 조기장을 선미로 불러냈다. 기름 투성이인 그가 눈을 껌벅이며 바쁜데 왜 오라 가라 하냐는 듯이 바라봤다. 조금 컸다고 건방을 떠는 것 같았지만, 담배부터 내밀었다. 그가 담배를 몇 모금 빨 동안 기다렸다. 왜 불렀나? 궁금할 때쯤
“배 아프다더니 어때? 배 타는 사람은 몸이 재산인데!”
“심할 땐 겁나지만 견딜만 해요. 부산에나 가면 수술을 할까, 바빠서 그냥 버텨요.”
“부산에 갈 날이 아득한데 큰일이군. 기회가 되면 수술받을 생각은 있고?”
그는 의외라는 듯 기름 묻은 눈을 번뜩이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조기장도 지긋지긋해하는 이란에 안 갈 묘수를 찾는 중이야.”
“그럼 나를 미끼로…!”
이란에 두 번이나 가본 그는 눈치가 빨랐다. 그때 선미 좌측에서 거대한 청새치가 뛰어올라 물보라가 허옇게 일었다.
눈부시던 노을이 사윌 때쯤 전보를 받았다.
‘청구한 발전기 부품을 이란으로 보낼 것이니 가서 수리하고 나와 조업하라.’
선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깊숙이 넣어 두었던 보드카를 꺼내 따랐다. 조기장을 설득해 보라는 무언의 암시였다.
희미한 노을 꼬리를 밟고 조기장한테 갔다. 고민하는 기색이 보였다.
“뭍에서 멀어지면 아파서 죽는다고 해도 손쓸 수 없다는 거 알지! 앞으로 석 달은 지나야 부산에 가는데 아픈 맹장을 달고 살기 겁나지 않아? 지금 네 시간 거리에 병원이 있는데 수술하지. 수술은 선박비용으로 하게 돼 있으니 걱정할 것 없어.”
그는 담배 두 개비를 뽀얀 재로 만들고 나서 선장한테 가자고 했다. 그는 걱정하지 말고 수술이나 받으라는 선장의 말을 듣고 병원에 간다고 했다. 우리는 눈을 찡긋하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때 머리 위에서 별똥이 눈물같이 지르르 흘렀다.
새벽 세 시를 넘겨서야 고단한 작업이 끝났다. 초아흐레 달이 진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뱃머리를 돌려 세이셸공화국의 수도 마해로 달리며 본사로 전보를 쳤다.
"긴급환자 발생해서 인근 마해로 입항하니, 발전기 부품을 마해로 공수바람."
전보를 보낸 지 네 시간 만에 안개 자욱한 마해 외항에 닻을 내렸다. 새소리가 정겨운 푸른 장원이 우리를 맞았다.
조기장은 입항한 지 세 시간 만에 마해에서 제일 좋은 시설의 병원 구급차가 데려갔다. 그는 공포에 질려 하얗게 바란 입술을 달달 떨며 실려갔다. 그날 오후 영국계 의사한테서 수술을 받았다.
문병 가서 본 그는 헤 웃고 있었다. 주검의 공포에서 벗어나 얻은 웃음이었다. 그리고 백인 간호사가 친절하게 목욕을 시켜준다고 좋아했다. 그는 수술받은 지 만 3일 만에 배로 돌아왔다. 그가 말하는 간호사들의 친절한 서비스 소리를 듣고 “나도 수술이나 할까.” 하는 선원이 있었다. 일 년 이상 거친 바다에 떠다니다 보니 부드럽고 따듯한 손이 그리워 그런 말을 했지 싶다.
급히 공수해 온 부품으로 발전기를 멀쩡하게 수리했다. 시간을 단축하는 바람에 큰 손실을 막았다. 우리는 마해에서 아름다운 열대 풍광을 만끽하고 5일 만에 다시 출항했다.
살다 보면 개똥도 약에 쓰일 때가 있다. 동료를 괴롭히던 맹장염은 우리가 어렵게 잡은 고기를 썩도록 두지 않았다. 우리를 구해주었고 쉬게 해준 맹장염이 바로 영약이 아니던가.
첫댓글 망망대해에서 맘데로 아플 수도 없겠구나 하는 걱정과 맹장염 덕에 선박을 고칠 수 있었다고 기술해주신 부분이...바다 사람들은 마음 또한 대서양 같이 넓구나 하고 느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