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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Capa
로버트 카파 (미국, 1913∼1954)
19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
1931년 유태인 탄압을 피해 독일로 이주
1933년 파리로 이주
1935년 로버트 카파로 개명하고 본격적으로 보도 사진가로 나섬
1936년 스페인 내란 촬영
1938년 중일 전쟁 촬영
1942년 제2차세계대전 촬영
1945년 전쟁 종결후 미국시민으로 귀하
1947년 사진 통신사격인 '매그넘' 결성
1948년 팔레스티나의 이스라엘 독립전쟁 촬영
1955년 인도차이나 전쟁 촬영에서 지뢰를 밟아 폭사
로버트 카파는 세계적인 다큐 사진 에이전시인 매그넘(Magnum) 을 창립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제2차세계대전이 종결되고 1947년에 로버트 카파는 프랑스의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폴란드의 데이비드 시모어, 와 함께
사진원고 은행격인 '매그넘(Magnum)'을 결성하였으며
매그넘은 현대 사진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사진가 집단으로서
보도사진의 본산지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도 사진가들만으로 구성된 엘리트 집단으로 등극하였는데
매그넘을 창설하게 된 동기는 당시 언론기관을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지는 보도사진의 경우는 사진가들의 독창적인 눈과 사상보다는
편집자 중심으로 운영되어 왜곡되어지는 사진가들의 시선과 제약이 심했다고 하네요.
따라서 사진가들의 창의성이 발휘된 사진 보다는 언론기관이 원하는 사진을 찍어야만 했기 때문에
예술가로서의 주체성과 자유를 염원한 로버트 카파,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데이비드 시모어, 세사람이 뭉쳐 매그넘을 결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매그넘은 비즈니스적인 사진 유통체제를 기업화 시켰으며 보도사진을 편집자 위주에서 작가위주로 바꾸는
세사람의 사명감으로도 볼 수 있겟지요.
그들의 명분은 사진작가들의 시선과 주관을 담은 작품사진을 공유 보관하여 잡지사들이 필요로 하는 사진을 사가도록 하는 방안을 추구했으며
매그넘은 세계를 대표하는 보도사진의 본산지가 되었고 매그넘의 대표자가 로버트 카파였다는 사실.
"만일 당신이 찍은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이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탓이다"
- 카파 -
이런 카파의 명언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의 부인 게르다 타로역시 전쟁터에서 폭격기를 피하려다 탱크에 정면충돌하여 사망하게 됩니다.
가슴 아프게도 결혼 일년만에 이런 변을 당하게 된 카파는 젠틀한 사생활에서 난장판 삶으로 결국 로버트 카파 자신도 41살의 젊은 나이에
1955년 「라이프」지의 요청으로 인도차이나 전쟁을 촬영하던 중 지뢰를 밟아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을 하지요.
앙드레 프리드만(Andre Fridman)... 우리에게 종군 사진가로 잘 알려진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본명입니다.
로버트 카파가 '전쟁 전문사진가'로 불리고는 있지만 사실 그가 전쟁만을 찍고 싶어했던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다만 시대적 상황이 전쟁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의 소재로 전쟁을 선택했던게 아닐까하는 나의 추리.
로버트 카파의 전쟁사진중 가장 유명한 사진으로 1936년 스페인 내란에서 찍은 사진이 웹상에 많이있어 올려 봅니다.
<병사의 죽음 Spanish Loyalist at the Instead of Peath>
이 사진을 시작으로 로버트 카파는 포토저널리스트로써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프랑코가 독재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내란을 일으켰고, 인민전선파가 이에 대항하여 싸우던 상황에서 한 병사가 돌격하기 위해
참호 속에서 뛰쳐나가다가 머리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보여주는 이 사진...을 찍으려면 로버트 카파는 돌격하는 병사 가까이에 있었겠지요.
로버트 카파는 이 결정적인 최후의 순간 <병사의 죽음>을 놓치지 않고 찍어냈고 이 사진이 「라이프」지에 게제가 되자 로버트 카파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되었다고하는데 사실 <병사의 죽음>사진 이전 1931년 코펜하겐의 국제사회주의 회의에
로보트 카파가 다른 보도기자 대신 파견을 나가게 되었는데 운좋게도
연설 중인 도로츠키에게 군중이 던진 돌이 정면으로 맞아 그의 안경이 깨지는 순간을 찍은 사진이 보도 되면서
'로보트 카파'라는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진은 찾을 수가 없어서 아쉽지만 아래 사진으로 대신...
"The landing at Normandy" by Robert Capa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전투장면을 촬영한 사진들은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진이 흔들리고 떨린 상태로 핀트도 맞지 않았지만 제2차세계대전의 보도사진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간주되는 작품들이라네요.
이런 로버트 카파의 사진전을 보고 영감을 얻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라이언 일병구하기'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제 그만 영화로 넘어 가 볼까요..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 톰 행크스 (존 H. 밀러 대장 역), 톰 시즈모어 (마이크 호버스 하사관 역), 에드워드 번즈 (리차드 레이벤 일병 역), 맷 데이먼 (제임스 프란시스 라이언 일병 역)
줄거리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 오마하 해변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긴장된 상황과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다.
노르망디 해변을 응시하는 밀러 대위와 가장 어려운 임무를 수행해야할 두려움에 지친 그의 대원들...
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지만 3형제가 전사하고
적진에서 실종된 유일한 생존자인 막내 라이언 일병을 위한 미 행정부의 특별한 임무를 맡게된다.
단 한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이 위험을 감수해야할 상황에서 대원들은 과연 라이언 일병 한 명의 생명이
그들 여덟 명의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인지 끊임없는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지휘관으로서 작전을 끝까지 책임지고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할 밀러는 부하들을 설득해 다시 라이언 일병이 있다는 곳으로 향한다.
마침내 극적으로 라이언 일병을 찾아낸다. 하지만 라이언은 다리를 사수해야할 동료들을 사지에 남겨두고 혼자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는데....
링컨의 편지를 인용하여 여덟명의 병사를 희생하며 한명의 병사를 구해내고 국립묘지에서 성조기가 휘날리는 모습으로 오버랩하는
미국식 휴머니즘과 애국심은 라이언일병구하기라는 현장감을 보여 준 영화였지요.
종군기자로서 그들을 따라다니것 이상으로 영화 속 현장을 목격한듯한 리얼리티와 2차 세계대전 당시를 공감 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영화
실감나는 전투장면과 인물들의 묘사는 특히 맷 데이먼이 맡은 제임스 라이언 일병 한 병사를 위한 휴머니즘을 통해
영화의 리얼리티를 보여 준<라이언 일병 구하기>
로버트 카파의 전쟁사진들은 단순히 보도하는 입장에서 촬영한 것이 아니다.
전쟁 속 아군과 적군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인간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던 건 아닌지..
전쟁이라는 가장 긴박한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가식된 모습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모습..본능을 보일 수 밖에 없을테고..
이러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로버트 카파는 표현하고 찍고 싶었던 것이다.
그린 이 전쟁 드라마는 상영하는 내내 2차 세계대전 현장에 있는듯 한 그런느낌을 주고 있었고.
그대로 그리고 있었다.
첫댓글 정말 좋은 장르들입니다.
느낌으로 감동으로 봅니다.
좋은 자료 잘 봤습니다~감사합니다~
사진이 영화가 되고... 좋은 작품을 위해선 위험한 곳이라도 한발 더 가까이 가는 정신...
저는 앞으로도 못할 것 같지만...
매그넘의 역사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